집단의 드레스코드 : 훌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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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정말 다양한 의복 문화가 존재한다. 2008년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극심한 추위를 느껴서 노스페이스(The NorthFace)의 패딩을 입은 것이 아닌 것처럼, 어떤 유행 속에도 스토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연유로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었는지 알 수 있고, 그 내용 자체도 상당히 흥미롭다. 이번 이야기는 서브컬쳐 속에서 긴 시간 동안 고집을 지켜 그들만의 의복문화를 탄생시킨 훌리건에 대한 내용이다. 술자리에서 아는 체하기 좋고, 동시에 꽤 박식하며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제대로 숙지하여 써먹어보자.

훌리건 로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훌리건(Hooligan)이란, 축구의, 축구에 의한, 축구를 위한 축구 광신도 같은 집단이다. 훌리건 간의 다툼으로 매년 엄청난 수의 사람이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했으며, 이 광신도 집단을 보고 있자니 팬들의 스포츠 정신은 과연 어떤 종류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실 훌리건은 축구 종주국으로서 자존심과 긍지가 만들어낸 문화라기보다는 1960년대 영국 보수정권 당의 사회복지 축소와 빈부격차에 분노를 느낀 빈민으로부터 시작된 문화에 가깝다. 축구 경기장에서 울분을 표출하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와 더불어 자신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떤 억하심정이라 해도 정부, 구단의 입장에서 훌리건은 상당한 골치덩이였음에 틀림없다. 응원하는 팀의 패배, 승리에 대한 분노와 흥분이 항상 도를 넘어서는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 이에 경찰, 구단 측의 합세로 훌리건을 진압하는 일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천 명 정도의 경찰 인력으로 그 다섯 배를 쉬이 넘기는 압도적인 훌리건의 숫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훌리건 간의 격투 

훌리건이라는 단어는 축구가 탄생한 19세기 무렵, 영국에서 생겨났다. 영국의 거의 모든 축구팀은 펌(Firm)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있는데, 여기에는 축구팀에 가장 강한 충성심을 가진 이들이 모여있다. 이들 대부분은 빈민, 노동자 계급으로, 고정된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아 팀의 거의 모든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성격 역시 일반 팬들에 비해 과격한 양상을 보이며, 상상을 뛰어넘는 조직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여러 가지 특징이 단순한 팬을 넘어 어째서 ‘훌리건’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거리에서 고성방가를 지르거나 집단 간의 패싸움 정도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만 명 정도 되는 인파가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원정팀이 홈팀의 도시 상점가를 습격하거나, 차량을 박살 내는 등의 행패를 부리는 일은 훌리건에게 일상다반사다.

훌리건 도시

훌리건이 점령한 런던 거리

정부는 도를 넘어서는 훌리건의 행태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경찰 측에서는 훌리건들의 계급과 연관 지어 투박하거나 낡은 옷을 입은 사람을 집중적으로 단속했다. 이에 훌리건은 비싸고 좋은 옷을 입으면 단속에 걸리지 않는 것에 착안, 유럽의 고급 브랜드를 입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디다스(adidas), 라코스테(Lacoste), 휠라(Fila)와 같은 브랜드를 선호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톤 아일랜드(Stone Island), 씨피 컴퍼니(CP Company), 아쿠아스큐텀(Aquascutum), 프라다(Prada), 버버리(Burberry), 프레드 페리(Fred perry) 등의 고급스러운 스포츠웨어로 취향이 변하고 있다. 개중에는 영국의 유서 깊은 브랜드도 존재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탈리아의 브랜드 역시 적지 않다. 이는 축구의 세계화와 동시에 해외 원정을 떠나는 축구팀을 응원하러 갔던 훌리건의 영향이 컸다. 특히, 항구도시인 리버풀 훌리건이 해외의 명품 브랜드를 착용하기 시작하며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하여 훌리건의 상징과도 같은 스톤 아일랜드나  C.P. 컴퍼니 같은 이탈리아 브랜드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훌리건 브랜드들 훌리건의 대표적인 브랜드

훌리건 스톤스톤 아일랜드의 재킷을 착용한 훌리건들

이러한 훌리건 스타일이 ‘캐주얼’로 지칭되면서 ‘캐주얼’은 훌리건의 최신 의복 문화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다. 실제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하다 보면 구장의 입석(이를 테라스라고 하며 훌리건의 전용석 쯤으로 분류된다)에 있는 젊은이들 다수가 스톤 아일랜드의 옷을 착용하고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스톤 아일랜드를 포함한 명품 캐주얼 브랜드가 단속을 피하기 위한 용도가 아닌 자신이 훌리건임을 나타내주는 증거가 될 법도 한데 훌리건들은 끊임없이 명품 캐주얼을 입는다. 사실, 지금에 이르러서 명품 캐주얼은 자신의 정체를 은닉하는 용도보다는 훌리건으로서의 소속감을 높이는 유니폼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구장에 오는 사람 중 팀의 레플리카 유니폼을 입는 사람이 그냥 팬이라면, 스톤 아일랜드를 걸쳤다는 것은 펌에 소속된 성골 팬이라는 뜻이다. 스톤 아일랜드의 나침반 와펜이 훌리건 세계에선 훈장과도 같은 것일지도.

훌리건 뱃지 모음 스톤 아일랜드 이미지의 훌리건 뱃지들

거칠고 폭력적인 훌리건의 이미지의 여파로 명품 캐주얼의 이미지 하락에 대한 회사의 우려 역시 만만치 않은데, 그 중심에 있는 스톤 아일랜드나 씨피 컴퍼니는 외려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허나, 프라다와 버버리 같은 브랜드는 자브랜드의 이미지 하락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 훌리건에게 각광 받는 제품을 생산 중지하기도 했다. 이는 다음에 이어질 차브족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훌리건 셋전형적인 훌리건 세트

왜 스톤 아일랜드가 훌리건을 대표하는 옷이 되었는지 조금은 궁금증이 풀렸는가? 영국을 넘어 다른 국가에서도 훌리건 문화가 전파되고, 의복 문화 역시 비슷한 양상을 띠는 것을 보면 훌리건 문화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보인다. 그리고 이는 단지 훌리건 문화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이 글을 읽었다면 영국 리그를 관람하게 되었을 때, 스톤 아일랜드의 재킷과 버버리의 머플러를 착용하고 입석 티켓을 사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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