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폭로전’으로 변질된 한국 Control 대란.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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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Visla 뉴스에서도 언급했듯이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지른 불이 태평양을 타고 한국에까지 넘어왔다. 빅 션(Big Sean)의 곡 control에서 그는 수많은 랩퍼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자신이 이 랩씬을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드러냈고 궁극적으로는 지금 이 랩 게임의 수준이 더 올라가야한다며 새로운 힙합 춘추전국시대에 일갈을 남겼다. 켄드릭 라마를 비롯하여 그의 verse에 반응한 랩퍼들의 답가들이 힙합엘이(Hiphople)를 통해 실시간으로 한국에 전해졌고 많은 힙합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또한 한국에서도 이런 랩 게임 열풍이 한번 불어야한다는 반응이 일었고 결국 한국 힙합의 문제아, 스윙스(Swings)가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어, 이센스가 스스로 이 떡밥을 물었다. 그는 이 사태를 그저 뒷짐 지고 바라보지 않았다. “You Can’t Control Me”라는 곡을 자신의 사운드 클라우드에 업데이트 함으로써 그날의 네이버 검색어 1위를 차지했고, 곡에 담긴 공격적인 가사와 여전히 출중한 그의 랩 스킬은 SNS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 냈다. 스윙스는 도화선에 불을 지폈고 이센스는 작은 불씨에 아예 기름통을 부어버렸다.

 

이센스의 “You Can‘t Control Me”는 아메바 컬처를 비난하고 힙합씬에 자극을 줌과 동시에 “어설픈 MC들은 이제 나서지 마라”라는 경고의 의미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마치 영화 타짜에서 아귀가 호구 아저씨는 이제 장기나 두라하며 이제 몸 풀기는 끝났으니 선수들끼리 놀아보자고 말했던 것처럼. 모르긴 몰라도 호기심에 가사를 끄적이고 믹싱을 끝낸 아마추어 혹은 언더그라운드 MC들중 상당수는 자신의 곡을 공개하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랩에 있어서만큼은 아무도 이를 달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Verse들을 만들어온 이센스였다. 그리고 이 리스너들의 칭송을 받는 랩퍼가 타겟으로 삼은 것은 현재, 한국 최고의 랩퍼라 일컬어지는 랩 괴물 개코(Gaeko). 격이 다른 이 싸움은 시작부터 수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게다가 이 전쟁의 내용도 아메바 컬처 내막에 관련된 부분이니 그들과 관련이 없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이 흐름에 몸을 맡기기에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고래싸움에 용기내서 참전해보려 했더니 그 싸움조차 저 먼 바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면 비유가 적절할까. 어쨌든 “You Can’t Control Me”는 최근 몇 년간의 다이나믹 듀오의 대중 스타로서의 행보에 불만을 갖던 힙합 리스너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며 많은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 것은 한국 힙합 역사에서 다신 없을 디스전의 서막이었다.

 

이센스는 현재 메이저 힙합씬의 정상에 서있는 개코를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고 개코의 답곡, “I Can Contol You”가 공개되면서 세상의 관심은 이 둘에게 집중되었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힙합에 관심 없는 아저씨, 누나, 동생, 친구들도 모두 힙합평론가가 되어 이 둘의 역량을 가늠했고, 그들의 진실 혹은 거짓을 판단하는 판사의 흉내를 냈다. 이 둘의 격돌에 의해 묻힌 감이 있지만 딥플로우(Deep Flow), 데드 피(Dead’P)와 같은 관록있는 랩퍼들도 ‘Control 대란‘에 참여를 하여 메시지를 남겼고, 어글리 덕(Ugly Duck), 데피닛(Deffinite)과 같은 신예들도 Control비트에 랩을 보태며 톡톡히 한 몫을 했다. 규모로 보나 공격성으로 보나 그 정도가 유례없을 이 전쟁은 오랜 시간 쌓여왔던 랩퍼들의 한과 분노, Swag이 뒤섞여 대 해적 시대 가 아닌, 대 디스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이센스가 두 번째 디스곡, “True Story”를 발표하며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그는 자신의 디스는 켄드릭 라마의 멋진 의도와는 상관없는 행보라고 스스로 트위터를 통해 밝혔으며, 실제로 “True Story”는 듣는 이들이 불편해질 정도로 차갑고 적나라한 가사를 담고 있다. 그는 디스의 대상을 오로지 아메바 컬쳐로 한정하여 진실 여부를 떠나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횡포를 낱낱이 까발리는데 주력했다. 시퍼렇게 날이 서있는 이 곡은 힙합팬들 뿐만 아니라 아메바 컬쳐의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들에게도 적지 않은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True Story”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이 곡과 거의 동시에 공개된 사이먼 디의 “Control”, 그리고 사이먼 디에 대한 스윙스의 답가 ”신세계“ 역시 아메바 컬쳐를 둘러싼 불편한 폭로전이 계속되면서 많은 리스너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일부 팬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웃고 떠들던 과거의 영상을 띄우면서 ”몇 일전에는 이들의 랩 배틀이 즐거웠지만 이들의 감정싸움이 이정도로 극으로 치 닫을 줄은 몰랐다. 차라리 지금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며 불안한 심경을 드러냈다. 확실히 지금의 폭풍전야는 불안하고 불편하다. 마치 누구 한명이 단두대에 올라야 끝을 맺을 수 있는 비극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언론에도 보도가 된 이번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사회적인 우려가 제기 되었다. 사회적 이슈가 된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디스전 공방’은 순수한 힙합문화로서의 의미보다는 법정공방, 진실여부에 대중들의 시선이 더 쏠릴 것이다. 힙합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입장에서 이 문제에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욕설과 폭로가 난무하는 광경이 분명 ‘정상적인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교육적인 부분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은 터무니없다. 어디 요새 학생들이 시골 학당에서 천자문만 외는 순수한 애들이던가. 언론은 서태지 때도 그랬고 H.O.T 때도 그랬다. 언제나 그들은 문화와 예술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노심초사 한다. 아니면 그 말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시 이야기 해보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90년도 후반, 한국 힙합의 1세대라 불리는 이들 중 상당수는 적어도 순수한 힙합 그 자체를 가지고 고민했으며 이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왔다. 수많은 크루들이 생겼다가 그 자취를 감추었으며, 많은 랩퍼들의 입에서 주옥같은 명곡들이 만들어졌고 그 때 역시 수많은 디스전이 존재했다. 드렁큰 타이거의 기념비 적인 공중파 1위는 힙합이 한국 땅에서 드디어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한 기분 좋은 기억이었고 무브먼트 크루의 메이저 씬 진출의 성공은 대중들에게 힙합 음악을 널리 알릴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그것은 수많은 한국 언더그라운드 랩퍼의 지향점, 또는 순수한 힙합을 희석시킨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힙합을 꿈꾸는 이들의 토양이 되었고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2세대 랩퍼들을 키워냈다.

 

한국의 작은 힙합씬은 대한민국 시리즈와 함께 뜨겁게 불타올랐고, 옥석이 가려지는 시간들을 거치며 흔히들 말하는 더러운 엔터테인먼트의 냄새가 스며들었다. 성장하던 한국 힙합은 갈 길을 잃은 듯 삐걱거렸고 제대로 그 모양새를 다 갖추지도 못한 채 짧지 않은 시간을 표류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모두가 쉬쉬하며 덮어두었던 불편한 진실은 곳곳에서 곪아 부풀어 올랐고 그 것은 한국의 힙합씬 폐부 한가운데를 깊숙이 관통했다. 몇 몇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힙합으로 먹고 살려면 예능에 나와 랩으로 우스꽝스러운 4행시를 짓지 않으면 안 되고 괴상망측한 무대 의상을 입지 않으면 안 되며,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값 싼 감성들을 음악에 녹여내지 않으면 안 되는 슬픈 공식이 생겨버렸다.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역시 ‘돈’이 결부되어 있다. 그것이 지금 이 일부 거물급 랩퍼들의 디스전 공방이 씁쓸한 이유이다.

 

지금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아메바 컬처의 수장, 다이나믹 듀오 역시 지금은 친근하고 랩 잘하는 대중적인 스타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많은 팬들은 그들이 힘들게 걸어온 발자취를 기억하고 있다. CBMASS 시절, 그들 또한 다른 랩퍼들을 디스하며 날을 세웠고 이들이 빚어낸, ‘진짜’ 냄새가 나는 힙합에 우린 열광했다. 이후 개코와 최자는 그들의 돈을 가지고 장난친 동료 한명과의 연을 잘라냈고 이후에도 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뒤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 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새로운 랩 시대의 주역은 배신을 겪으며 성장한 ‘셋보다 나은 둘’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들은 어쩌면 10년 전의 그 남자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있다.

 

이제 음악과 비즈니스가 복잡하게 얽힌 불편한 이야기들은 접어두고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다 볼까. 정말 오래간만에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힙합의 냄새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달콤한 홍대 감성 힙합, 발라드 힙합과 같은 괴상한 포장지로 감싸놓은 힙합이 조명되는 것 보다는 모양새가 낫다. 디스곡의 아수라장 속에서 몇몇 이들은 사실 순수하게 랩으로 답가를 내놓기 곤란한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힙합씬의 발전과 리스너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선수들이 아닌 관련자 일동은 모두 이 사각의 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선수들의 패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기획사의 언론플레이는 상황만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방송 타는 것에 재미를 붙인 한 영화평론가의 냉소와 조롱 따위는 가볍게 콧방귀 뀌면 그만이다.

 

흙탕물이 묻었을지언정 이 랩 게임은 더 지속돼야 한다. 자극적인 디스전을 위해 더이상 총알을 장전할 필요는 없다. 갈고 닦은 각자의 기량은  암묵적인 룰과 보이지 않는 심판이 존재하는 ‘랩 배틀’에서 펼쳐보이면 된다. 수준 높은 랩 배틀은 힙합에 대한 대중들의 왜곡된 시선을 금세 잠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의 힙합은 세간의 부정적인 시각을 두려워 할 시점이 아니다. 간만에 한국의 힙합이, 그것도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대규모의 디스전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잃을 것도 많겠지만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어글리 덕(Ugly Duck)의 발견 또한 이 ‘얻는 것’에 속한다. 취할 것은 취하되 상처 난 부위는 과감히 도려내 버려야 한다.

 

돌아가 발단의 원인을 생각해보자.  켄드릭 라마가 울렸던 경종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분명 그의 랩을 들었던 국내의 힙합 아티스트들 또한 이 씬의 Bar를 올려야 한다는데 만장일치 동의를 표 했을 것이다. 켄드릭 라마를 차치하고서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국내 랩퍼들의 ‘힙합다운 힙합’이 고개를 내밀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만드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숙제이다. 서늘한 디스전 공방의 이면에는 못 내 지울 수 없는 씁쓸함이 진하게 맴돌고 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 않나. 10년 전 선배들이 세워 올려놓은 기둥은 그렇게 녹록지 않으며, 힙합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우리는 두 눈으로 확인했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쉬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좌표이다. 이제 한국 힙합이 걸어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봄이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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