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f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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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Big Deal) 레이블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자처한 래퍼 딥플로우(Deepflow)는 이제 비스메이저(Vismajor)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많은 동료와 함께 새로운 청사진을 그린다. 꿋꿋이 한 길을 걷는다는 말은 너무나도 흔하게 사용되지만, 그것을 실제로 행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딥플로우는 10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해왔다. 최근 세 번째 정규 앨범 [양화]를 발매하며 4년간의 열매를 맺은 래퍼, 딥플로우와 양화, 그리고 한국 힙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얼마나 오래 준비한 앨범인가?

전작 [Heavy Deep]을 낸 게 2011년이고 2012년 중순부터 앨범 [양화]를 기획했으니까 햇수로는 3년, 제작기간은 2년 조금 넘게 걸렸다.

 

자이언 티(Zion.T)의 싱글 “양화대교”의 발표일과 겹쳐져서 발매를 미뤘다고 들었다.

원래 생각한 기간에 비해 엄청 밀리긴 했다. 2012년 초순부터 앨범 타이틀을 결정하고 작업에 들어가 그해 말에는 나올 줄 알았는데,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고 콘셉트 안에서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치며 날짜가 계속 미뤄졌다. 앨범이 거의 완성될 때쯤 자이언 티의 “양화대교”가 나와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은데 그건 아니고… 어차피 SNS에서 ‘양화’로 이전부터 해쉬태그 홍보를 했기 때문에 자이언 티만큼 화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던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이번 [양화] 앨범을 위해 버스광고나 인스타그램 15초 공개 등 홍보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모두 본인이 기획한 것인가?

VMC는 지금 스톤쉽(Stoneship) 에이전시랑 같이 움직이는데 대개는 스톤쉽의 대표인 똘배와 내가 같이 회의를 해서 프로모션을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편이다. ‘양화’라는 콘셉트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똘배가 갑자기 양화대교에 현수막을 걸자고 했다. 그런데 막상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촌스러운 것 같아서 버스광고로 방향을 틀었다. 인스타그램도 원래는 프리뷰 영상을 만들려고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못해 궁여지책으로 세곡씩 공개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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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양화] 버스광고  

버스광고는 마치 영화 홍보 포스터 같았다. 반응은 어땠나?

워낙 작은 규모의 레이블이라 그런지 실질적인 효과를 체감하진 못했다. 그러나 버스광고를 다시 SNS에 올린 것을 보고 신선하다는 피드백이 좀 나온 것 같다. 광고를 다시 광고한 셈인데 그게 효과를 본 거지.

 

먼저 싱글로 공개된 트랙, “잘 어울려”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액션 브론슨(Action Bronson)이 생각나더라. 그의 스타일을 의식하고 있는가?

액션 브론슨은 현재 내 Favorite MC 목록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작년부터 심하게 꽂힌 래퍼다. 그의 랩 스타일, 비주얼에서 느껴지는 일관된 감성은 나와 그가 ‘동류’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의식한다기보다는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액션 브론슨이라는 캐릭터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찐한 B급 코드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또 액션 브론슨과 내 음악이 같은 것은 아니지 않나. 어쨌든 랩을 할 때 구사하는 라이밍, 악센트 등 여러 부분에서 그가 나와 동류의 캐릭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동족을 발견해서 반가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작두”는 이번 앨범에서 킬링 트랙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곡의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

다양한 형태의 앨범을 제작하면서 앨범 내 킬링 트랙의 유무를 선정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꼈다. 이번 앨범을 제작하면서 그 지점에 들어갈 트랙이 필요했고 나는 그것을 “작두”로 정했다. 예전에 친구와 라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동사와 명사, 그리고 의성어/의태어까지 곁들여지면서 이러한 단어들이 자연스레 링크되는 라이밍이 가장 수려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시기에 ‘작두’라는 명사와 ‘싹둑’이라는 의성어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서 한번 제대로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넉살을 VMC에 영입하면서 확신이 섰다. 아예 “작두”라는 트랙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역시 넉살의 공이 크다.

 

넉살은 그를 위한 트랙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작두”에서 빛을 발한다. 

이 곡의 핵심은 넉살이다. 나머지 두 래퍼는 넉살을 서포트하는 역할이다. 그의 앨범이 다음에 나오기 때문에 넉살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벌스가 가장 중요했고 내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다. 그래서 처음 넉살이 가져온 가사를 보고 이정도로 우리를 이길 수 있겠냐면서 다시 써오라고 했다. 하하.

 

시기에 안 좋은 질문이지만 이센스(E Sens)와도 협업 트랙 얘기가 오갔을 것 같다.

후반부 트랙 중 하나를 염두에 뒀고 실제로 센스가 가사를 쓰고 있었다. 다만 여러 사건이 있어서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아쉬운 일이지.

 

이번 [양화] 앨범 크레딧을 보면 프로듀서 TK의 이름이 빼곡하다. 그만큼 VMC 내에서 그의 입지는 독보적일 것 같은데. 

근 몇 년간 내가 꽂혔던 사운드를 구현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TK였다. 그는 밴드 사운드에 관한 이해도가 높다. 우리 레이블 규모로는 전 트랙에 세션을 쓴다든지 편곡을 외부에 돌리는 일이 쉽지 않은데, TK가 있어서 이 모든 걸 가능한 일로 바꿀 수 있었다. 힙합은 보통 음악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친구들이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래서 악보를 볼 줄 모른다거나 지극히 자신의 감각에 의존해 작업하는 아티스트가 많은데, TK는 그와는 반대로 음악을 제대로 ‘배운’ 친구다. 물론 제대로 배운 사람이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내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고도 남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TK는 힙합 장르의 의외성을 캐치하지 못할 때가 있어서 내가 가진 샘플 컷, 색다른 테마와 TK의 탄탄한 시퀀싱을 잘 조합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VISLA가 뽑은 베스트 트랙 “잘 어울려”와 “작두”는 당신의 비트다. 프로듀서로서의 행보도 생각하고 있나?

고등학교 때부터 비트를 찍기 시작했는데 프로듀싱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랩을 하고 싶은데 비트를 구할 데가 없어서였다. 그 당시 랍티미스트가 애시드를 가르쳐줬고 아직도 나는 그때 쓰던 프로그램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좋은 시퀀싱 프로그램이나 여러 가지 발전된 툴에도 욕심이 없고 아직은 프로듀서로서의 행보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래퍼 딥플로우가 진짜 내 모습, 나의 것 같기 때문이다.

 

“당산대형”은 딥플로우의 육중한 무게가 전해지는 트랙이다. ‘당산대형’이라는 예명으로도 잘 알려진 DJ Soulscape를 염두에 두고 쓴 곡인가?

재미있는 점은 대중은 Soulscape의 별명이 당산대형이라는 것과 이 곡이 이소룡의 영화, ‘당산대형’에서 모티브를 땄다는 사실을 잘 모르더라. 자연스럽게 당산 지역과 연관 짓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곡은 정말로 작업실이 당산에 있을 때 완성한 곡이다. “당산대형”은 말 그대로 곡을 만들 때부터 그룹의 수장 위주로 피처링을 생각했고, 아무래도 ‘당산대형’이라는 말이 DJ Soulscape 형의 ‘a.k.a’니까 허락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답정너처럼 클럽에 찾아가 동의를 구했다. 다만 이 곡이 트랩 사운드라 Soulscape라는 이름과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앨범과 9번 트랙 제목 모두 ‘양화’다. 이는 이번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양화대교는 딥플로우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가?

집과 홍대를 오가며 양화를 건널 때면 중2병 감성에 젖어들었다. 하하. 홍대에서 무대 위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래퍼의 삶을 살고 양화대교를 건너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감정을 맛본다. 양극단을 달리는 감정의 매개체가 양화였다.

 

“버킷리스트”나 “양화”와 같은 트랙은 가사 전달은 훌륭하지만 보컬의 사용이나 프로덕션이 신파적이고 상투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클리셰(Cliche)’와 ‘웰 메이드(Well Made)’의 한 끗 차이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감동을 끌어올리기 위해 스트링(String)을 집어넣는 곡 구성이나 신파적인 요소를 나도 물론 싫어한다. 다만 이번 앨범은 ‘웰메이드’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TK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나는 최대한 가사로 온도 조절을 하고 상투적으로 가지 않으려 했다. 내가 완전히 좋아하는 형식미는 아니지만 그런 요소를 지켰기 때문에 이번 앨범이 더 반응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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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트랙을 기점으로 앨범 전반부 래퍼 딥플로우에서 후반부 인간 류상구로 변화한다. 그 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형식미를 두고 봤을 때 한 앨범 안에 아예 다른 사운드가 들어가는 건 지양하고 싶었고 화자의 태도도 일관적으로 유지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조차 내 모습은 아니더라. 초반부 트랙은 아드레날린이 넘치고 과장된 상태다. 홍대에서 공연하는 딥플로우는 과장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공연을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 인간 류상구는 또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예전에는 그것이 완전히 일치된 하나의 딥플로우이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 다름을 인정하게 됐다. 앨범에서 이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앨범에서 한국적인 진한 블루스가 느껴진다. 그런데 일부 트랙들이 동어반복으로 느껴져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사실 10곡 정도로 추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내가 지켜야 할 몇 가지 선이 있었는데 무조건 풀 렝스 앨범이여만 하고, 각자 곡의 역할이 있고, 곡들의 연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앨범 자체도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지길 바랐고 따라서 커버 아트도 영화 포스터처럼 만들었다. 복선의 역할을 하는 트랙도 있었고 여러모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트랙 수도 줄이지 않고 처음 생각했던 구성을 지켰다. 누군가는 내가 만든 서사에 공감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양화]를 만들면서 가장 만족한 부분이라면.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비트에 신경을 많이 썼다. 작업 과정에서 비트를 바꾸고 뒤엎은 적도 많았다. 그렇게 신경을 쓴 만큼 이 앨범의 비트들이 내가 담고 싶던 이야기의 미장센 역할을 잘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 다 다른 비트지만 일관된 냄새를 풍겼다고 생각한다. 가사에 심어놓은 메타포(Metaphor) 역시 전작보다 더 깊이 들어간 것 같아 드디어 앨범다운 앨범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었다. 그 상황에 맞는 똥들을 하나씩 싸놓은 걸 모은 것이 전작이라면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기획과 의도대로 만들어진 ‘앨범’이다.

 

반면에 여전히 남는 아쉬움은?

아쉬운 점이라면 여전히 호불호가 갈리는 나의 랩과 음악. 그리고 [양화] 역시 허점 없이 완벽한 앨범이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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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MC는 처음 크루로 모습을 비치고 지금의 레이블, 회사로 거듭났다. 소속 아티스트의 끈끈한 유대는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훈훈한 부분인데 비즈니스로는 명확하게 선을 나누는 편인가?

VMC 내부적인 구성에서 비즈니스라고 부를 만한 부분은 딱히 없다. 그러나 외부적으로는 비즈니스의 모습을 유지한다. 레이블 안 래퍼들끼리는 자유롭게 피처링을 주고받지만, 프로듀서에게는 확실하게 페이를 지급하는 편이다. 공연 섭외야 자기가 한만큼 오는 대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형 기획사처럼 누굴 끼워서 데려가고 그런 일들은 하지 않는다. VMC 멤버 중에서 스톤십과 계약한 일부 래퍼들이 가장 바쁜 것 같다.

 

VMC 멤버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지금은 딥플로우다. 하하. VMC의 교집합은 애초에 딥플로우였다. 그러나 그 다음에 관해서는 설명하기 힘들다. 음악 성향이 비슷한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알던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내 친분을 위주로 모였다. 그런데 나와 친해지고 쉽게 흡수되고 유대를 가지게 되는, 그리고 나에게 일정량의 리스펙트가 있는 친구들은 알게 모르게 공통점이 있었다. 연예인 행세, 허세를 싫어해서 오히려 그 반대되는 면을 과장되게 보여주는 점도 비슷한 것 같다. 하하.

 

VMC와 딥플로우가 그리는 미래는 같은 방향으로 설정되었나?

같길 바란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크루, 레이블에 몸을 담았다. 그렇게 20대를 보냈고 여러 집단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오랜 시간 동안 집단 내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이라든지 멤버들 간 관계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그러므로 앞으로 내가 VMC 안에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전략 시뮬레이션 하듯 그려보는 중이다. 나를 제외한 VMC 멤버들은 모두 20대라 그 시기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포지션을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나에게는 보이기 때문에 같은 아티스트로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VMC가 그리는 청사진을 중심으로 방향성에 대해 논의를 하고 내가 알려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전달하려고 한다.

 

빅딜을 나오면서 다시는 어떤 크루나 단체에 속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빅딜을 나와서 다시는 어떤 집단을 만들거나 소속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 친하지도 않은데 뭔가에 얽매이고 트러블이 발생하는 흔한 프로세스에 질려버렸다. 서로 친해서 같이 즐겁게 술 마실 수 있는 친구들이 진짜 크루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 맞는 동생들과 서로 음악이나 서포트하고 술이나 먹자는 취지에서 비스메이저를 꾸렸던 거다. 어떤 야망이나 비즈니스와는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그런데 또 남자가 경계 안에 발을 걸치고 있다 보면 전부 집어넣고 싶어지지 않나? 그러다 보니 몸집이 자연스레 커지고 레이블, 컴퍼니라는 목적이 확실히 섰을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엔지니어, 아트 디렉터 등 우리와 함께할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이퍼(Cypher)를 공개했다. 반응이 신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스메이저 콘텐츠 중에서도 꽤 주목받은 것이라 다시 한 번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단체곡이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어서 VMC의 색깔을 담아 잘 활용할 생각이다. 그간 내 앨범에 너무 집중해서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그때 비스메이저의 색깔이 드러난 것 같다. 어둡고 무게감 있는…

하하. 개개인이 검정은 아닌데 내가 빅딜 때부터 가지고 온 색깔이고 은근한 강요 때문에 멤버들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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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트랙인 “가족의 탄생”에 “날 키워준 빅딜 형들 전해줘 안부”라는 가사가 있다. 지금에 와서 빅딜을 돌아보면 어떤 감정인가?

나의 20대였고 나를 만들어준 집단이다.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봤을 때 그 당시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던 내가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건 빅딜 덕분이었다. “빅딜을 등에 업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고마운 집단이고 애증의 집단이다. 일부 빅딜 멤버와는 지금도 연락한다.

 

데드피(Dead’P)와는?

다 알다시피 공연에서 크게 틀어진 뒤로 따로 이야기한 적은 없다. 물론 이 바닥이 좁다 보니 마주칠 일이 잦은데 뵙게 되면 인사는 드린다.

 

“잘 어울려” 뮤직비디오를 직접 디렉팅했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직접 나선 것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랩 이외의 분야에도 욕심이 있었나?

내 감성을 표현해내기 위한 수단으로 랩, 뮤직비디오, 아트워크 등 가능한 모든 것들을 동원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디렉터의 입장에서 VMC 멤버에게도 내 색깔을 입히고 싶은 욕심이 날 때가 있다.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다. VMC의 래퍼들이 내 색깔로 규정될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내 앨범에서는 그 욕구를 전부 풀어보고 싶었다.

 

한국 힙합에서 보기 드문 ‘떼샷’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딥플로우이기 때문에 수긍이 갔다.

사실 더 많았어야 했다. “잘 어울려”와 같은 힙합 트랙의 뮤직비디오에서 ‘떼샷’은 무조건 들어가야 할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현실적으로 사람을 섭외하고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게 힘들지 않나. 어쨌든 당연히 할 생각으로 진행했다. 이번에 키쓰 에이프(Keith Ape)의 인스타그램 영상을 봤는데 제대로 된 ‘떼샷’이 나올 것 같더라. 기대하는 중이다.

 

너무 많은 것을 하다 보니 금세 지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앨범이 늦어졌다. 여러 가지 욕심이 자꾸 생겨서 뭘 하나를 해도 더 하게 되고 시간이 지연됐다. 당분간 정규 앨범은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던밀스의 ‘화끈한’ 시리즈 앨범 커버도 직접 작업했다고 들었다. VMC의 아트 디렉터인 Row Digga와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지 궁금하다.

그 친구와 나는 취향은 비슷한데 풀어나가는 화법이 다르다. 그래서 가끔 의견충돌이 생긴다. Row Digga는 정적이고 나는 화끈한 것을 좋아해서 조율이 힘들 때가 있다. 그러다가 이번에 한번 깊은 대화를 나눈 뒤, 화끈한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나는 그래픽 디자인 쪽에서 완전히 빠지기로 했다. 자기 분야에 신념이 강한 친구다.

 

한국의 많은 힙합 아티스트가 레퍼런스와 표절의 경계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힙합 신에서 고유한 정체성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래퍼에게 오리지널리티는 가사다. 프로듀서들에게는 실례가 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비트는 일종의 미술, 미장센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힙합의 장르 특성상 표절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르고 저작권 문제가 불거지다 보니 다들 많이 예민해진 것 같다. 힙합의 정서 자체가 표절이랑 섞일 게 아닌데 말이다. 어떤 비트가 됐든 그 안에 심어놓는 래퍼의 랩이 평가 포인트 아닌가? 코드 진행이 같던 말던 그 당시에 유행하던 비트의 성향이고 하나의 흐름일 뿐이라 나에게는 크게 신경 쓰이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법적인 부분으로 들어가거나 뮤지션으로서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이 기존 유명한 아티스트의 권위나 트랙에 카피하듯 다가가는 접근법이 구리다고 생각하는 거지, 비슷한 성향의 곡들이 나오는 것에는 반감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힙합을 들으면서 왜 그거에 집착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래퍼들의 플로우 카피 역시 많은 리스너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말이 계속 나오는 부분인 것 같다.

나는 많이 해매는 애들한테 그냥 외국 래퍼를 카피하라고 한다. 아무리 트랙 하나를 똑같이 카피하더라도 결국 본인의 입을 통해 한번 걸러지는 과정에서 다른 것이 나온다. Kool G Rap은 랩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플로우를 80년대에 자기가 다 했다고 말했다. 결국, 지금 시대는 한정된 음절 안에서 얼마나 세련되게 디자인하고 어떤 식으로 재조립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쇼미더머니 이후 다수의 래퍼를 섭외해 콘셉트 없이 진행되는 일회성 힙합 콘서트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래퍼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는가?

아티스트들은 이미 대부분 느꼈을 것이다. 이런 행사를 주최하는 쪽에서는 마치 몇십 년 동안 공연을 지속할 것처럼 거창한 멘트와 함께 기획의도를 설명하지만 1회만 성사되고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게 돈이 된다 싶었는데 벽을 느낀 거지. 따라서 나도 그냥 페이 조절이나 잘해서 공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공연을 기획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쇼미더머니에 출연했던 래퍼들을 죄다 불렀는데도 표가 안 팔리니 궁여지책으로 공짜표 뿌리고 관객 수 대충 채우는 행사가 여태껏 얼마나 많았나?

 

SNS를 비롯해 여러 곡을 통해 소위 ‘발라드 랩’, ‘발라드 래퍼’ 대한 통쾌한 메시지를 남겼다. 원래는 예민한 이야기를 잘 꺼내는 타입이 아니지 않나?

내가 변했다는 것을 티 내고 싶었다. 예전의 20대 초중반 크루 막내일 때와는 처세를 다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왜 자꾸 누구의 눈치를 봐서 자신을 회색분자로 만들려고 하는 걸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이런 말들이 어차피 엔터테인먼트가 될 것이라면 차라리 써먹어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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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어울려”에서 언급했던 래퍼 중 누군가가 자기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고 치자. 같은 트랙에서 만날 수 있을까?

굉장히 달콤한 제안이라면 몰라도 굳이 그런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뱉은 가사도 있고 이미 이 안에서 엔터테인먼트가 형성됐는데 결국 내 손해 아닌가. 16마디 피처링에 1억을 주는 제안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대중가요로 흡수된 래퍼가 가끔 거친 트랙을 발표하며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그 알량함이 더 싫다. 차라리 그 영역 안에서 새로운 행보를 모색하든가. 절대로 면죄부가 될 수 없는 행동이다. 현명하게 커리어를 쌓을 수도 있을 텐데 결국엔 얄팍함이 드러난 거다. 갑자기 욕이 난무하는 가사를 뱉고 거친 트랙을 낸다고 해서 정체성이 변하는 게 아닌데.

 

래퍼 산이의 “모두가 내 발아래”로 인해 다른 래퍼들이 대동단결하는 재미난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 어떤 심정이었나?

‘쇼미더머니’라든가 미디어의 잘못된 조명으로 한국 힙합 신이 손상당하고 있다고 느낀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리 열 올릴 필요가 없는 게 하나의 현상이나 유행에도 흐름이 있듯 또 거품이 빠질 것으로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산이와 같은 캐릭터가 존재하는 게 재밌다. 영화 브라운 슈가(Brown Sugar)에 등장하는 달마시안은 어떤 의미에서는 필요한 존재다. 이번 곡을 들으면서 ‘역시 산이!’라고 생각했다. 만화나 영화도 아니고 어떻게 자기 역할에 이렇게 충실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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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로 개인적인 이야기는 일단락되었다. 딥플로우가 새롭게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딥플로우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앨범을 통해 다 다룬 것 같다. 다음 정규 앨범에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에 대한 생각을 해봤는데 딱히 떠오른 것은 없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나도 기대 중이다. 일단은 정신적인 해방을 즐기고 싶은 단계다.

 

아예 다른 이의 시점에서 스토리텔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고스트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가 즐겨 하는 스타일이다. 캐릭터 설정을 다시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딥플로우 개인 콘텐츠는 이제 흥미가 떨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해봤다. VMC에 새롭게 계약한 래퍼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쓰는 거지. 누가 들어도 딥플로우지만. 하하. 꼭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풀어내고 싶다.

 

딥플로우의 향후 활동과 계획을 들려 달라.

일단 앨범 [양화] 콘서트를 5월 23일에 상상마당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 내 행보는 개인적인 작품보다는 VMC를 서포트하는 일 위주로 이뤄질 것 같다. 그러면서 창작욕구는 가벼운 싱글, EP형식으로 툭툭 던지면서 풀어내려고 한다.

스톤쉽 공식 웹사이트 

진행 ㅣ 최장민 권혁인

텍스트/편집/사진 ㅣ 권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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