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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김윤기(Yoonkee Kim)

아티스트 김윤기는 ‘곤충스님 윤키’라는 이름으로 2000년, 데뷔 앨범 [관광수월래]를 발표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실험적인 음악으로 당시 언더그라운드 신(Scene)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그는 4번째 정규 앨범, [Asian Zombie]의 발매를 기점으로 그 영향력을 일본에까지 넓힌다. 이후 런던과 일본을 오가며 예술 활동을 이어온 김윤기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음악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는 그가 몇 년간의 공백을 깨고 지난 4월, 8집 앨범 [She’s Ready Now]를 발표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김윤기를 기억한다. ‘곤충소년 윤키’라는 이름은 당신의 실험적인 음악과 함께 뇌리에 깊게 남았다. 굳이 본명으로 돌아온 이유가 있다면?

예전에는 예명과 본명을 모두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게 ‘곤충소년 윤키’라는 이름이다. 그러나 이제는 본명으로만 활동하고 싶어서 그냥 ‘김윤기’를 사용한다. [Kim]이라고 불리던 이전 무제 앨범부터 내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화가들이 가명을 쓰지 않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본명을 더욱 드러낸 것 같다.

 

활동할 때마다 예명이 조금씩 바뀌는 걸 보면서 당신은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했다.

곤충스님 윤키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 나는 옥수동 현대아파트에 살았다. 거기에 절이 하나 있었고, 그걸 보면서 스님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절 주위에 곤충도 많아서 곤충스님 윤키가 됐다. 그런데 지금은 그곳에 살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이름을 바꿨다.

 

다른 이름은 외국인들이 부르기 어려워서 다시 본명을 쓴다는 말을 어떤 인터뷰에서 봤던 것 같다.

맞다. 외국인들에게 나를 김윤기라고 소개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

 

홀연 캐나다로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

두 장의 앨범을 내고 공익 생활을 했다. 그때 안 좋은 일들을 겪었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처음에는 미국에 가고 싶었는데, 알다시피 절차가 매우 복잡했다. 나를 반기는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캐나다로 떠났다. 캐나다에는 아는 누나가 살았고, 머물기에도 까다롭지 않은 국가였다. 가서 곡을 쓰면서 좀 쉬고 싶었다.

 

다시 영국으로 갔다.

음악을 계속하기에 밴쿠버라는 도시는 움직임이 너무 적었다. 좀 심심해졌는데, 캐나다에 사는 누나가 런던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런던은 패션, 음악 등 활발한 교류가 발생하는 곳이라고 했다.

 

런던에 거주할 때 완성한 [I worry, too] 앨범은 기존의 음악보다 더욱 로 파이(Lo-Fi)한 사운드가 두드러진다.

녹음기의 차이인 것 같다. 그전까지는 8트랙 녹음기를 썼다가 [I worry, too]에서는 4트랙 녹음기로 바꿨다. 4트랙 녹음기는 4가지 악기를 사용할 수 있는데, 따라서 드럼, 기타, 베이스, 노래만 담았다. 8트랙은 더욱 악기를 풍부하게 쓸 수 있지만, 4트랙도 나름의 맛이 있다.

타이틀 곡 “ihealyouyouhealme”는 음악도, 뮤직비디오도 굉장히 평화롭다. 런던에서의 생활이 그만큼 만족스러웠나?

정말 즐거웠다. 영국 레코드사에서 앨범을 내지 못한 점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을 했다. 스케이트보드와 음악을 통해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친구들과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인연이 닿아서 영국 스케이트보드 숍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그들에게서 딱히 인종차별을 받지는 않았다.

 

당시 영국 덥(Dub) 사운드에 영향을 받았나?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 그런 음악을 더 많이 들었고, 영국에서는 7,80년대 큐어(Cure), 프린스(Prince), 아니면 마돈나(Madonna)나 데피치 모드(Depeche Mode)와 같은 것들을 들었다. 2006년 즈음에는 70년대 사이키델릭 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 요소들이 [I worry, too] 앨범에 들어간 것 같다.

 

영국에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3년간의 학업 기간이 끝났다. 비자도 더 안 나올 것 같았고, 가족도 너무 그리웠다.

 

계속 머물고 싶지는 않았나?

물론 더 있고 싶었다. 영국에서 앨범을 내고 활동하면 왠지 DJ Shadow처럼 될 것 같았다. 하하. 그러나 3년간 학생 비자로 머물러서 또 공부한다고 해봤자 비자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I worry, too] 앨범에서 서울은 각박하다는 표현을 했는데, 한국에서 지내는 요즘은 어떤가?

그 당시에는 자연주의자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있다 보니까 그런 부분은 천천히 사라지고, 그냥 서울이 좋더라.

 

서울의 어떤 점이 좋은가.

일단 평화로운 것 같다. 영국에는 왕이 있지만, 한국에는 없다. 또 서울에는 가족이 있다.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뮤지션의 앨범이 외국에서 라이센스되는 일은 흔치 않다. 일본에서 어떤 음반을 발매했나?

일본에서 내 음반은 [Old Habits], [Asian Zombie],[Han River 1994-2004] 순으로 발매되었다. 일본에는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느꼈다. [Old Habits]는 한국에서 먼저 발매했지만, 일본에서는 [Asian Zombie] 다음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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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영국에서 일본을 오가며 활동한 것인가?

음반을 내고 공연, 인터뷰를 몇 번 진행했다. 일정을 마친 후, 런던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일본에 와서 투어를 하고 그랬다. 처음 갔을 때는 앨범 프로모션 형식으로 두 달 정도 머물렀다.

 

직접 만든 레이블, ‘슬로우 서울’을 통해 발매한 앨범도 몇 장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슬로우 서울 레코드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자면.

나 말고 다른 아티스트는 없었다. 당시 캬바레 사운드를 통해 [관광수월래] 앨범을 발표하면서 나도 레이블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역학을 공부하던 때라 이런 것도 일종의 무역이 아닐까, 하고 관심이 갔었다. 홍보도 직접 했다. 당시 상아, 향, 퍼플 레코드에만 유통을 시키면 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일본 레코드 관계자들을 만나서 슬로우 레코드를 통해 발표했던 앨범을 다시 낼 수 있었다. [Mexican Vacation], [Old Habits], [Asian Zombie]는 사업자 등록도 안 하고 레코드숍에 데모테잎처럼 두고 판매를 했다. 이런 식으로 슬로우 레코드를 통해 일본의 레코드숍과 연결됐다.

앨범 [Electro-nics]는 피지컬 음반으로 딱 5장만 발매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음반을 내고 싶어도 당시 레코드 회사가 나를 안 찾아줘서 그냥 혼자 만들었다. 그래서 가격도 터무니없게 책정했다. 주파수(Zoopasoo) 레이블을 운영하시는 분에게 5장을 드렸는데, 아마 한 장도 안 나갔을 것이다. 장당 30만 원이니까.

 

2006년에 한국에 돌아온 뒤 자취를 감췄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음악을 그만두고 싶었다. 한국에 와서 녹음기, CD, 레코드를 다 버렸다. 여자친구와 헤어지듯, 다시는 보기 싫을 정도로 음악이 싫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음악 안 하고 뭐하냐고 하셔서 다시 시작한 거다. 공백기였다.

 

혹자는 당신의 음악을 두고 ‘무국적음악’이라고 부른다. 당신이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성이라면?

나는 한국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 그래서 한국적인 음악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라디오 소리, 매미 소리 같은 것들을 녹음했더니 왠지 한국의 동요 같았다. 내가 생각한 소리에 가까웠다. 이처럼 우리가 한국에서 향유하는 경험들, 피자를 먹고 롯데월드에 가고 산에 가서 매미를 잡는 등 모든 것들을 빨주노초파남보로 나열시켜보니 그 안에서 한국적인 것들이 발견되더라. 지금 이곳도 스타벅스 아닌가? 전통적인 찻집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 뭘 해도 한국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신의 음악이 장르 파괴적이라는 말에 동의하는가.

그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만들고 싶은 음악은 한국적인 것이다. 다만 순수하게 한국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외국의 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새롭게 창조하는 것인데, 그런 부분에서 내 음악이 어떤 사람에게는 장르를 파괴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노래하는 것도 즐기는가.

좋아한다. 노래도 하고 랩도 하고 이것저것 해본다. 그러다 보면 또 무지개가 그려지지 않겠나. 2021년에 발매할 앨범까지 모두 준비해놓았다. 6, 7장의 앨범이 대기 중이다.

 

윤키의 음악이라고 하면 대충 그려지는 그림이 있지만, [Electro-nics] 라든지, 덥 사운드를 담은 [Yoonkee meets Dennis Bovell] 같은 앨범은 실제로 들어본 리스너가 많이 없다.

홍보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에서 보여주거나 얼마 전, TBS 인디애프터눈에 출연하는 등 나름 노력하고 있다.

 

당신이 한국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에게 준 영향이라면?

실험적인 작곡 방식이나 소리에 대한 접근이 아닐까. 그때는 그냥 친구들이 좋아하는 내 음악, 사운드를 더 발전시키고 싶었다. 이렇게 하면 장환이(DJ Smood)가 좋아하겠구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요즘 누구에게서 음악적 영감을 받는가?

최근 나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 누구인지 찾다가 내가 떠올랐다. 요새는 내가 만든 음악이 자극을 주는 것 같다. 예전에는 도어스(Doors)도 좋아했고,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Arrested Development)도 좋아했다. 음악을 그만두려고 결심한 이후로는 특별히 자극을 주는 아티스트가 없다. 물론 지금도 음악을 찾아 듣기는 하지만 딱히 와 닿지는 않는다. 2006년 이후로 나를 자극하는 음악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닐 영(Neil Young) 같은 아티스트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좋더라.

 

지금까지 꽤 많은 앨범을 냈다. 본인의 음악을 자평하자면?

되게 웃기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래도 자부심 비슷한 건 있다. 한국에서 이런 음반을 낸 것이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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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에 발표한 8집 앨범 [She’s Ready Now]는 컴퓨터로 녹음했지만, 지금까지는 쭉 홈 레코딩을 고집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요즘에는 컴퓨터로 작업하지만, 솔직히 지금도 예전에 버린 8트랙 녹음기가 생각난다. 다시 쓰고 싶어서 가끔 이베이를 뒤지곤 한다.

 

장비를 버린 것을 후회하는가?

그렇다. 버린 다음에 후회한 경험, 누구나 있지 않나?

 

이번 앨범이 이전의 음악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분노가 줄었다. 그리고 좀 더 차분해졌다.

 

오대리와 함께 120분짜리 “ENDLESS LIFE” 영상을 공개했다.

사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그분이 풀 버전을 유튜브에 올렸더라.

 

어떤 점이 맘에 안 드는가?

오디오는 맘에 드는데, 비디오가 그렇지 않았다. 만족할 만큼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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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기 동안 그림도 그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드로잉 북 ‘DRY’를 선보였다. 다시 흥미가 생긴 건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는 오히려 예전보다 덜한 편이다. 다만 놀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하루에 하나씩은 꼭 그리고 있다. 다시 그림을 그리면서 Dooonut과 함께 티셔츠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기분 좋게 그릴 때도 있다.

 

예전 그림들을 볼 수 없어서 아쉽다. 2006년 즈음 당신의 웹사이트 Slowseoul.com은 홈페이지 레이아웃은 물론, 윈도우즈(Windows) 사운드로 만든 BGM이라든지 신선한 요소가 많았다. 예전에 모아놓은 아카이브를 다시 공개할 생각은 없나?

파일, 원본 모두 버렸다. 뭔가를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한꺼번에 다 버리는 편이다. 나도 보고 싶은데 찾기 힘들더라.

 

그리고(GRIGO) 갤러리와의 인연은 언제부터 생긴 것인가.

전시회를 열고 싶어서 서울에 있는 갤러리 모든 곳에 이메일을 보냈다. 세 군데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중 하나가 그리고 갤러리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야기가 잘 통해서 책과 음반 모두 그리고를 통해 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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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서 음반을 낸 방식은 독특했다.

갤러리를 통해 음반을 내는 것도 괜찮은 방식 같다.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어떤 레이블을 통해서 앨범을 냈는데, 내 앨범을 칠푼이처럼 소개한 적이 있다. 그에 비하면 훨씬 만족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앨범을 홍보하고 인터뷰도 하는 것. 스티커도 만들고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할 것이다.

 

상업적인 성공을 꿈꾸는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하고 싶다. 유명해져서 음반으로 돈을 더 많이 벌면 기분 좋을 것 같다. 사실 내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해서 부담감은 많이 없다. 욕심부리지 않고 하고 싶을 때 하는 정도로 만족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은?

9월에 그리고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다.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http://yoonkee.com)에서 확인해보길 바란다. 11월에 새 앨범이 또 나올 예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구매 부탁한다.

 

진행/텍스트/사진 ㅣ 최장민
진행 협조  ㅣ Plaski

김윤기의 공식 웹사이트

VISLA Magazine
VISLA Magazine / visla.kr
Web: http://visla.kr
E-mail: dominator@visl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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