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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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아티스트 윤석철은 커리어 시작부터 항상 ‘천재’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재즈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은 언제나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를 주축으로 한 윤석철 트리오뿐만 아니라 다양한 뮤지션과 함께한 결과물을 통해 윤석철은 그 자질과 역량을 직접 입증했다. 계속해서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켜왔으며, 흥미로운 실험에도 주저하지 않는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나는 남들처럼 곡도 쓰면서 연주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윤석철이다.

 

단순히 재즈 피아니스트라고 하기에는 활동 범위가 좀 더 넓은 것 같다.

DJ나 프로듀서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같이 라이브 세션도 하고, 자연스럽게 공동 음악 작업을 하다 보니 EDM, 힙합과 같은 장르의 요소가 가미된 것 같다. 그러면서 내 음악도 조금씩 변하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재즈에 기반을 두고 음악 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이런저런 장르를 다하는 이상한 사람이 됐지만. 하하.

 

재즈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아버지는 한때 가수를 꿈꿨을 정도로 끼도 많았고, 음악을 정말 좋아하셨다. 어릴 적, 그런 아버지 차를 탈 때면, 척 맨지오니(Chuck Mangione), 루이 암스트롱 (Louis Armstrong)과 같은 재즈 음악이 자주 흘러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재즈라는 장르를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단순히 척 맨지오니의 “feels so good” 멜로디를 좋아했고, 음악이 나올 때면 따라서 흥얼거리기도 했던 거 같다. 어쩌면 그때 아버지 차에서 들었던 그 음악들이 드라마틱한 순간으로 남아 그로부터 조금 자란 중학생이 되어 작곡하고 싶다고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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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윤석철의 재즈 입문에 영향을 준 은사가 있다면.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재즈 음악을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재즈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단지 막연하게 작곡을 하고 싶었고, 그땐 오히려 가요나 팝송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중 작곡을 잘하려면 연주를 잘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으면서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학교종이 땡땡땡”을 재지하게 연주하는 것을 듣고는 넋이 나갔다. 굉장히 신선했다. 아마 이게 바로 재즈와의 첫 만남이자, 재즈 음악을 하고 싶다고 강렬하게 느낀 순간이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학교종이 땡땡땡”이 재즈를 선택한 계기 또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약 10여 년간 연주자의 길을 걸어 왔다.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 무엇이 다른가?

스무 살 때 연주를 시작할 그 당시에도 잘하는 재즈 뮤지션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재즈 신(Scene)에는 잘하면서도 다양한 개성을 가진 팀이 정말 많이 등장했다. 분명 재능 있는 뮤지션이 많아졌는데, 공연할 수 있는 클럽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재즈 공연이다 페스티벌이다 해서 표면적으로 재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흔히들 음악 자체보다는 특정한 무드를 위해 재즈를 찾지 않나?

 

재즈 신에서 윤석철 트리오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스무 살까지는 줄곧 스탠다드 재즈(Standard Jazz)를 해왔지만, 여러 장르가 혼합된 재즈 음악을 하는 윤석철 트리오를 변종이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꽤 있을 것 같다. 특히 스탠다드 재즈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적어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평소 음악을 하지 않을 때 무엇을 하나.

주로 영화를 제일 많이 본다. 책을 읽기도 하고. 날씨가 좋을 때는 데이트를 하거나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닌다. 이런 시간이 음악에 반영될 때가 있는데, 사실 연애하면서 가장 많은 영감을 얻는다.

 

윤석철 트리오는 어떻게 모이게 됐는가.

아마 첫 만남은 한 공연에서 서로 연주자 ‘땜빵’으로 모였던 거로 기억한다. 상이 형은 우리보다 나이가 3살이 많다 보니 공연 경험이 많았고, 영진이는 동갑이라 그런지 비슷한 시기에 연주를 시작했더라. 우리는 그 만남을 계기로 술도 마시고, 대화도 많이 나누면서 친해졌다. 그 당시 솔로 1집 앨범 발표 이후, 인디밴드나 록밴드와 같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두 사람과 함께라면 더 많은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유럽 투어(독일, 폴란드) 당시 6개 지역에서 펼친 단독 콘서트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고 하던데.

서방국가에서 공연한 것은 나에게 굉장한 자극이 됐고, 그건 일종의 도전과도 같았다. 사실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함께 간 거지, 윤석철 트리오가 유명해서 초청받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현지 사람들이 내 음악을 좋아할까?”라는 의구심도 있었고, 걱정도 많았다. 다만 생각했던 것과 달리 반응이 좋아서 놀랐고, 한편으로는 자신감도 생겼다. 한번 경험했으니 조금 더 좋은 앨범을 만들고, 연주에 더 공을 들여서 계속해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실용음악과 최연소 교수로 출강한 이력이 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연주자에게 특별한 경험이 됐을 것 같은데.

교수는 아니고 그냥 시간 강사였다. 다른 학과도 마찬가지겠지만, 실용음악과를 졸업하고 재즈 공부한 사람들이 막연하게 교수를 목표로 삼는데, 나도 어렸을 땐 비슷했다. 졸업하고 대학원을 나와 뉴욕, 네덜란드 같은 곳에 유학을 다녀온 다음, 교수가 되서 강의하고 가끔 앨범도 내는 그런 안정된 삶을 나 역시 원했던 것 같다. 강의를 나가게 된 것은 잼(Jam) 공연을 같이하면서 색소포니스트 성제 형(손성제)과 친하게 지냈는데, 날 좋게 봤는지 교수 권유를 하더라. 물론 동덕여대 김광민 교수님에게 추천서를 내고 나서도 너무 어리다는 것과 여러 가지 이유로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 25살에 강의할 기회를 얻었다.

 

[즐겁게, 음악]에 수록된 “렛슨 중”은 실제 녹음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여대에서 실제 교수 생활은 어땠나?

사람들이 실제 녹음이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실황은 아니고 재연한 것이다. ‘즐겁게, 음악’이라는 의미를 조금 희화적이나 반어적으로 표현해놓고, 이 음악을 들으면 극적일 것 같아서 아이디어를 낸 거다. 교수 생활은 “렛슨 중”에서 그 분위기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분명 있지만, 연습을 전혀 안 해서 오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나는 스무 살일 때 한참 열심히 했는데. 하하. 요즘 어린 친구들 만나서 10년 뒤 모습을 물어보면 음악으로 성공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교수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부분도 있다.

 

앞서 언급한 발표작 [즐겁게, 음악] 이야기를 더 해보자. ‘즐겁게, 음악’이라는 타이틀이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즐겁게, 음악’인가?

사실 이 앨범을 만들 때 전혀 안 즐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4~5개 학교에 강의를 나가게 되었는데, 강사를 병행하면서 음악 작업을 하다 보니, 정작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부분에 있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잠시 슬럼프가 왔다. 그러고 나서 느낀 것은 ‘나 이제 좀 즐겁게 음악을 해야겠다.’ 이 앨범을 만들면서 이제는 즐겁게 음악을 해야겠노라고 다짐했다. 그 마음가짐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윤석철 트리오 – “Someday My Fxxxxx Will Come”

“Someday My Fxxxxx Will Come”는 프로듀서 무드슐라(Moodschula)와 함께한 곡이다. 같은 멜로디 라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정서를 담고 있는 무드슐라의 “My Fxxxxx”와 어떻게 결합한 건지 궁금하다.

무드슐라 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감정에 충실해서 한번 피아노를 친 적이 있다. 그 펼쳐 놓은 연주에서 형이 마음에 드는 부분을 조합한 것이 “My fxxxxx”다. 작업을 마치고 형이 들려줬는데, “이거 진짜 제가 쳤어요??”라고 할 만큼 깜짝 놀랐다. 나는 그냥 발라드를 연주했을 뿐인데, 하하. 아무튼 완성된 “My fxxxxx”를 듣고 만든 곡이 “Someday My Fxxxxx Will Come”이다. 그런 점에서 “My Fxxxxx”이 오리지날이라고 할 수 있겠다. “My fxxxxx”와 다른 점은 후반부다. 후반부에서 원곡이랑 좀 다르게 전개되는데, 여기에 숨겨둔 포인트가 있다. 마지막에 불규칙하게 흘러가는 파트에다 Earl Klugh의 곡 “Someday My Prince Will Come” 코드를 집어넣었다. 편곡을 한 부분인데,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만 알 수 있게끔 장난쳐놓았다.

 

“Someday My Fxxxxx Will Come”과 “My Fxxxxx”에서 Fxxxxx는 Fucker인가?

저는 처음에 생각한 건 ‘Fucker’였다. 굳이 숨기거나 모르게 하자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냥 Fxxxxx으로 해놓아서 사람들이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게끔 여지를 남겨둔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최근 360sounds 부산 투어에 다녀왔다. 피제이(Peejay) 밴드와 함께 공연했는데, 언제부터 호흡을 맞췄나?

피제이 형의 “After Summerday”를 같이 작업하고 나서 형과 함께 라이브를 한 적이 있다. 나도 시퀀스나 신스를 다루다 보니 옆에서 세션을 도와줬다. 형이 라이브 프로듀서가 아니기도 하고, 셋(Set)에 연주곡도 많아서 같이 하게 된 건데 즉흥적인 부분까지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다. 역시나 이번 360sounds에서도 즐거운 공연을 만들었다. 재미도 있지만, 확실히 시너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기대해도 좋겠다.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한 “그냥(just)”의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

해솔이(자이언티)가 지금처럼 바쁘지 않을 때, 내 작업실에 종종 놀러왔다. 그때 내가 연주하면 해솔이가 노래를 부르며 같이 잼(Jam: 즉흥연주)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코드 연습을 하다가 멜로디 하나를 해솔이에게 들려줬는데 엄청나게 좋아하더라. 그 자리에서 노래하더니 곡을 가져가서 효섭이(크러쉬)랑 작업을 해왔다. 그러고 나서 나는 피제이 형에게 드럼을 부탁했고, 그렇게 “그냥(Just)”이 완성됐다.

 

한국 대중가요의 문법을 따르지 않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도 이렇게 잘될 줄 몰랐다. 멜로디나 코드 진행 모두 가요에서 흔히 쓰이지도 않거니와 눈에 띄는 훅도 없지 않나. 곡 제목처럼 그냥저냥 흘러가는 곡인데 좀 의외였다. 어쨌든 잘됐으니 좋은 거지, 뭐. 하하.

 

근래 행보를 봤을 때 피제이와 무드슐라, 두 프로듀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둘은 어떤 면에서 다르고 윤석철의 음악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나?

일단 피제이 형은 연주자로서의 면모도 강하고 그루브를 중시하는 타입이다. 반면에 무드슐라 형은 정말 비트 그 자체로 접근한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는 것? 이들은 예술가의 입장에서 소스(Source) 하나하나를 다룬다고 해야 하나. 또 두 아티스트 모두 기본적으로 프로듀서라 그런지 밑그림을 다 그려줘서 나로서는 더 즐겁게 연주하면서 놀 수 있다. 라이브할 때는 오히려 더 편하다.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다른 측면에서 봤을 때 프로듀서가 나를 소스의 개념으로 사용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정서가 밑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확실히 잘 통한다.

NOCADENCE(Mood Schula x Yun Seokcheol) – “TEST 3”

클럽 에반스에서 ‘Super Jam Day’라는 타이틀로 진행하는 잼 공연에 호스트로 나서고 있다. 새로운 뮤지션과 갑작스럽게 음악으로 소통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어떤 준비를 하고 무대에 오르나?

진짜 아무것도 안 한다. 단지 곡만 정할 뿐이다. 사실 7년째 Jam 공연을 하고 있는데, 처음 1~2년은 진짜 관두고 싶었다. “내가 왜 실력도 없는 애들의 간주를 하는 거지?”라는 오만한 생각이 지배하던 때였다. 요즘은 선생님과 같이 공연하고, 나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까 받아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어떤 책임감도 생겼고.

 

잼 공연에서 기억에 남는 뮤지션이 있다면.

탭 댄서 한 분이 기억에 남는다. 재즈의 어법을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그냥 ‘타닥’, ‘타닥’하는 것 같은데도 곡에 대한 이해가 높고, 연주자와 주고받는 애드립이라든지, 여러모로 감각이 뛰어났다.

 

공연 중간에 짬을 내서 음악을 설명하거나 관객과 이야기를 나눌 때, 되게 어수룩하게 보이더라. 그런데 실제로는 말도 잘하고 위트 있는 편이지 않나. 연출인가?

하하. 친한 친구들도 쇼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콘셉트를 잡았다기보다는 공연을 하면서 말한다는 게 나한테는 엄청나게 어색한 일이다. 공연도 잘하고 멘트도 너무 잘하면 부자연스럽지 않나? 철저하게 계획한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게 좋다.

 

앨범 녹음 기간이 아주 짧다고 들었다. 하루나 이틀 만에 끝내버린다고.

재즈연주자니까. 그리고 늘 첫 테이크가 가장 좋다. ‘조금 아쉽다’가 되면 녹음을 끝낸다. 세 명이 호흡을 맞추는 일이라 그런지 같은 곡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텐션이 달라지고 초반의 신선함도 사라진다.

 

악보 없이 녹음한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재즈를 하는 사람들이 악보를 보는 건 멋없는 일이다. 그래서 애초에 악보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정규 2집 [Love is a song]은 평단과 대중에게서 극찬을 받은 앨범이었다. 재즈의 색채를 잘 보여주면서도 장르적 결합이 눈에 띄는데, [Growth]와는 다르게 어떤 지점을 더 표현하고 싶었나?

1집은 스물세 살에 녹음했다. 이십 대 초반부터 공부한 것들을 정리하고, 저명한 재즈 연주자들을 흉내 낸 앨범이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찾은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힙합을 좋아했다. 특히 DJ Soulscape의 광팬이었는데 지인의 소개로 그를 만나 더욱 다양한 음악을 접했다. 그 이후로는 진짜 하고 싶은 대로 음악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래서 DJ Soulscape의 대표곡 “Love is a song”을 커버하고 싶다는 의사를 말했고, 그는 정말 흔쾌히 허락해줬다.

윤석철 트리오 – “음주권장경음악”

“막무가내”, “음주권장경음악”, “여대 앞에 사는 남자” 등 곡명이 인상적이다. 음악 외적으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인가?

보통 음악 먼저 만들어놓고 제목을 정하는데, 제목을 정할 때는 정말 심혈을 기울인다. 연주곡이다 보니 제목과 곡의 색깔이 맞아야 전체적인 느낌이 더욱 살아난다. 그런데 한국의 재즈 뮤지션들은 대부분 유학을 다녀와서 그런지 너무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것 같았다. 나는 단지 많은 사람에게서 공감을 얻고 싶을 뿐이다. “음주권장경음악”은 원래 제목이 없는 곡이었다. 녹음 막바지에 작업이 잘 안돼서 엔지니어 형과 저녁을 먹으러 중식당에 갔다가 여차여차 고량주 3병을 마셨다. 그러고 돌아와서 다시 녹음했는데, TV를 보면 가수들이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나? 녹음할 때 술 먹으면 잘 된다고. 사실 그때 느꼈다. 녹음을 한 번에 끝내면서 “음주권장경음악”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음주권장경음악”이라고 정하고 보니 연주와 신스가 어우러져서 그 느낌이 잘 묻어나오는 거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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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음악에 영향을 주거나 특별히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다면?

카우보이비밥 OST로 잘 알려진 칸노 요코(Kanno Yoko)를 좋아한다. 칸노 요코는 항상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 그 음악들이 다 좋다. 배울 점이 많다. 그녀를 보면서 기회가 되면 영화 음악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향후 계획을 알려 달라.

당분간 이렇게 음악 작업도 하면서 라이브도 할 것 같다. 아주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앨범 작업도 할 것이다.

 

진행/텍스트 ㅣ 이철빈
사진 ㅣ 백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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