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드 페이퍼(RUDE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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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 페이퍼(Rude Paper)가 최근 발표한 2집 앨범 [Destroy Babylon]은 본연의 레게로 돌아가려는 멤버들의 고민이 짙게 담겨 있다. 그들은 더욱 완전해지기 위해 레게의 고향, 자메이카로 날아가 밥 말리가 노래를 부르던 그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마쳤다. 고되지만, 영감으로 충만한 여정은 “Road to Jamaica”라는 타이틀의 다큐멘터리로 완성되었다. 루드 페이퍼는 훗날, 한국 레게의 초석을 다진 그룹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쿤타(Koonta)와 알디(RD), 그리고 케본(Kevon)을 만났다.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쿤타(이하 쿤): 루드 페이퍼의 보컬을 맡고 있다. 알디는 루드 페이퍼의 프로듀서, 케본 형은 기타리스트다. 알디는 루드 페이퍼가 돌아가는 모든 걸 컨트롤한다. 전체적으로 알디는 엄마, 케본 형은 아빠, 그리고 나는 문제아 외동아들 같은 포지션이다.

 

앨범이 발매된 지 시간이 꽤 흘렀다. 무엇을 하며 지냈는가?

알디(이하 알): 2집이 거의 3년 만에 나왔다. 그동안 자메이카까지 다녀오며 쌓아놓은 콘텐츠가 많다. 이걸 만드느라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중간에 콘서트도 한번 진행했다.

 

“Road To Jamaica”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언제까지 내는 건지?

: 아마 1~2월까진 꾸준히 나올 것 같다. 총 6회에서 7회까지 기획하고 있다. 이걸 마무리하느라 아직 발표하지 못한 뮤직비디오도 몇 개 있다. 요즘 앨범 하나를 3년 정도 준비하면 매우 긴 시간이라고들 하는데,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으니 장기적으로 꾸준히 보여주고 싶다.

 

영상 콘텐츠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 영상이 굉장히 중요해진 시대다. 그래서 가십 거리도 영상에서 보여줄 생각이다. 대중도 그런 부분에 관심을 두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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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장르를 고집하는 뮤지션이 한국에 흔치 않은데, 특히 레게 뮤지션은 정말 보기 힘들다.

: 루드 페이퍼를 처음 결성했을 때는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재밌게 표현하는 게 목표였다. 그게 1집 앨범 [Paper Spectrum]이다. 레게에 집중하게 된 건 아무래도 쿤타의 영향이 컸다. 루드 페이퍼의 프론트 맨은 쿤타인데, 프로듀서의 입장에서는 프론트맨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레게에 빠졌다. 원래는 힙합, EDM 프로듀서였는데 그게 완전히 뒤집혔다. ‘레게를 하기 위해 지금까지 음악을 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음악에 집중하다 보니, 혼자서는 안 될 것 같아 새 멤버를 영입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레게란 장르의 트렌드나 커뮤니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룹이 되고 싶다. 여기에 집중하여 콘텐츠를 생산하려고 한다.

: 나는 크리스천이고, 레게는 영적인 음악이다. 그래서 난 가사를 적을 때 ‘내가 크리스천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에 중점을 둔다. 성공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 음악을 하는 게 아니다.

케본(이하 케): 내가 볼 땐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음악을 하는 것 같진 않다. 음악을 시작했단 거 자체가 별생각이 없단 증거 아닌가. 각자 다른 곳에서 음악을 했지만, 우리는 결국 만났다. 그리고 레게를 한다. 이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1집 때 케본은 기타 세션으로 참여했다. 쿤타가 블루스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케본의 영입이 훗날, 블루스를 위한 초석은 아닌가?

: 나중에 내가 어떤 음악을 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중심을 두고 있는 건 레게다. 그러나 블루스라는 음악이 “우리 늙었는데 블루스나 할까?”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건가? 잘 모르겠다. 나는 어쨌든 지금 레게를 하고 있다.

케: 여담이지만, 블루스를 위해 날 영입했다면 잘못된 선택이다. 하하. 느낌이라면 낼 수 있지만, 제대로 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쓰라고 할 것이다. 레게도 비슷하다. 이론적으로 접근할 수는 있지만, 정말 그 느낌을 낼 수 있느냐 묻는다면 자신 없다.

: 신대철 씨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블루스를 만들어오라고 한 적이 있다. 참여 밴드가 앞다투어 블루스 코드에 노래를 만들어오자, 이건 흉내만 낸 거라며 화를 냈다. 바로 그 얘기다. 훌륭한 음악은 단순히 흉내만 내서 만들 수 없다.

 

보통 레게로 대표되는 이미지는 기타, 덥 리듬, 여름이다.

: 나는 솔직히 요즘 힙합 신에서 레게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들이 아는 만큼 대중이 모른다고 해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어떤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면, 어설픈 트랩 비트에 돈 얘기를 하면서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밥 말리 같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댄스홀 음악을 하고 싶으면 댄스홀이 어떤 건지, 자메이카에 어떤 음악이 있고, 그들이 무슨 가치관을 가졌는지 알아야 한다. 한국식 레게 같은 걸 이야기하며 주먹구구식으로 “내가 하는 음악이 레게야“라고 하는 뮤지션에게는 미안하지만, 박수 쳐줄 수 없다. 그건 레게가 아니다. 음악을 만들 거면 깊게 공부하고, 조금 더 알아본 후에 했으면 좋겠다.

: 나는 오히려 ‘레게’라는 말을 듣고 떠오르는 어떤 밝은 음악 이미지라도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양날의 검이지만, 한국 땅에는 레게가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 레게는 철학이나 삶, 사명을 주로 이야기한다. 세계적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커뮤니티나 신(Scene)이 형성된 나라는 몇 없다. 일본이나 미국, 동남아시아 쪽이 전부다. 해당 국가를 살펴보니 TV를 비롯한 매체에 나오는 방식이 매우 중요하더라. 한국의 경우에는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레게는 레게머리를 해야 한다’ 같은 편견을 깨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우린 어쨌든 최대한 올바른 형태로 레게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다. 정공법으로 하는 거지. 지속해서 다가간다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가장 큰 문제는 레게 뮤지션이 너무 없다는 거다. 다양함이 있어야 서로 비교할 수 있지 않나. 힙합은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음원이 쏟아지고, 워너비도 많다. 그 안에서 논쟁도 이뤄지며 신이 발전하고 있다. 레게는 신 자체가 없다. ‘레게=스컬 아니면 쿤타’라는 공식이 10년째 그대로다.

 

근래 미국에서도 트랩에 레게를 섞은 듯한 음악이 많이 나왔다. 그 영향이 아닐까?

: 그들도 결국, 힙합이 기반이다. 얼마 전 팔로알토 공연에서 바빌론(Babylon)을 만났다. 이번 앨범 제목이 [Destroy Babylon]이지 않나. 그런데 우리가 그를 디스(Diss)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바빌론에게 그 얘기를 해줬더니 웃더라. 사실 레게를 조금만 알아도 이런 말은 나올 수가 없는데. 하하. 모르는 건 손을 들고 질문하면 된다. 하지만 모르는 걸 아는 듯, 얘기하는 건 문제다. 그러면서 꼭 “씨발, 내가 맞잖아”라고 생각하지 않나?

: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어떻게든 레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혹시 추천하고 싶은 한국 레게 뮤지션이 있나.

쿤: 이번에 룹샨(Rupshan)이란 친구가 믹스테입과 싱글을 발표했다. 그 친구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또, 킹스턴 루디스카(Kingston Rudieska). 킹스턴 루디스카가 이번에 어떤 음악을 할지 감이 안 잡히는데, 많이 기대하고 있다. 레게 뮤지션들이 탄력을 많이 받는 시기가 딱 요즘인 것 같다. 내년 여름에는 사람들이 ‘이게 레게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앨범이나 공연이 많이 나올 것 같다.

알: 이번 앨범으로 루드 페이퍼가 기폭제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레게 콘텐츠가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경우는 드물지 않았나. 그런 의미에서 현역 아티스트들도 자극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지금의 루드 페이퍼가 있기까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만 잘한 게 아니다. 스마일리 송(Smiley Song)이나 동양표준음향사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역할을 맡은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 분들까지도 좀 더 나은 형태로 끌어올리고 싶다. 그게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물론 주목을 받는 건 플레이어들이지만, 레게라는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사이드에 서 있는 예술가들이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쿤: 왜 옛날에 MC는 많고, DJ는 없다는 가사도 있지 않았나. 나처럼 입으로 노래 부르는 친구들은 앞으로도 많이 나올 거다. 그보다도 베이스나 드럼을 잘 치는 뮤지션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그런 친구들이 정말 필요하다. 어릴 땐 기타 리듬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리듬은 레게뿐만 아니라 스카, 펑크 록에서도 사용한다. 레게에서 제일 중요한 건 드럼과 베이스다. 드러머와 베이시스트가 존경을 받았으면 좋겠다. 내가 꿈꾸는 시대는 멋진 베이시스트가 베이스를 치고, 늙은 할아버지들이 공연장에서 감탄하는 그런 풍경이다.

 

2집 제목이 [Destroy Babylon]이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케: 자메이카에서는 바빌론(Babylon)이 물질만능주의를 뜻하는 단어다. 요즘 한국에서 사는 게 힘들다는 건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인간미가 사라져 간다. “꿈이라도 좋아”가 타이틀이 된 것도 비슷한 이유다. 누군가가 아파할 때, 대부분 너만 힘드냐고 묻는 게 요즘 사회다. 이번 앨범에는 그들을 위로해주고, 공감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가사는 레게의 장점이다. 앨범이 너무 정치적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보다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에 가깝다.

Rude Paper – 꿈이라도 좋아

‘바빌론’이라고 하면 성경이 먼저 떠오른다. 인간이 세운 바벨탑이 붕괴하고, 언어가 분할되는 그 이야기 말이다.

쿤: 바빌론은 바빌로니아라는 나라의 수도 이름이다. 대학살이 벌어졌고, 최초의 자본주의 문명이 생겨난 곳이기도 하다. 거기는 돈으로 모든 걸 다 살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사는 이 도시가 바빌론이다. 물질이 친구, 부모보다 더 귀해졌다. 인간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꿈이 공무원이라고 말하는 시대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려는 게 아니라 뭐가 중요한지를 이야기하려는 거다.

알: 근본적인 건 그 이야기가 맞다. 바빌론은 자메이카에서 많이 쓰는 단어다. 자메이카는 내부적으로 굉장히 부패한 나라다. 밥 말리가 ‘One Love’를 외쳤지 않나. 한국에서는 너무 쉽게 이야기하지만, 자메이카는 ‘One Love’의 무게감이 매우 크다. 단순한 인사치레나 평화를 비는 말이 아니라, 형제들이 죽어간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말이다. 그만큼 자메이카 사회가 절망적이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있다. 그 상황을 바빌론이라 부른다. 부패한 탑을 없애자는 의미다. “꿈이라도 좋아”에는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다. 누군가는 색깔론이나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초점은 좌, 우가 아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 부분, 사람이 사람답게 생각하지 않는 걸 집어내려고 했을 뿐이다.

 

가장 트렌디한 음악을 하다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락 스테디나 댄스홀과 같은 장르도 곧 볼 수 있을까.

알: 댄스홀은 믹스테입으로 풀어낼 계획이다. 락 스테디는 우리보다 잘하는 밴드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거대한 일본 레게 시장에 가도 루드 페이퍼는 꿀리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건 신, 그 자체다. 역사와 깊이, 태도 자체가 다르다. 그 부분에서는 조심스럽다.

 

루드페이퍼의 작업 방식을 알려 달라. 세 명은 어떤 식으로 호흡하는가?

케: 세 가지 정도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원래는 알디가 만든 곡에 쿤타가 가사를 입히는 방법, 쿤타가 훅을 완성하면 거기에 곡을 맞추는 방법이 주가 됐다. 그러나 이제 한 가지가 더 늘어났다. 쿤타는 즉흥적으로 굉장한 걸 만들어낸다. 가끔 여과 없이 툭툭 나오는 가사가 있는데, 그걸 내가 여과지로 거르고, 그다음 소재를 다시 던져주면 쿤타는 또 미친 듯이 뭔가를 뱉어낸다. 이렇게 곡을 완성하는 방식을 요새 즐긴다.

 

故 김광석의 “변해가네”를 편곡한 노래가 2집 앨범에 수록되었다. 아까 이야기한 [Destroy Babylon]에 잘 맞는 주제 같은데.

쿤: 이건 내 개인적인 얘기다. 굳이 일반화할 생각은 없다. 사실 처음에는 [Destroy Babylon]이라는 타이틀과 전혀 관계없는 가사가 많았는데, 그걸 다 버리고 크리스천의 입장에서 가사를 쓰고 나니 모든 게 잘 풀렸다. 결국, 다른 걸 다 떠나서 “변해가네”는 앨범에 들어갈 노래였던 거다.

 

알디와 케본은 프로듀서로서, 혹은 세션으로서 루드 페이퍼 외에도 다양한 음악 작업을 해왔다. 루드 페이퍼의 음악과 외부 작업 간격에서 중심을 잡는 게 어렵지 않았나.

알: 그래서 나는 3년간 외부 작업을 끊었다. 한 1년 정도 병행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루츠 레게라는 건 내가 빠져들지 않는 이상 만들어낼 수 없는 영역이었다. 레게에 완전히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솔직히 그사이 좋은 기회도 많았지만, 후회는 없다. 집중한 만큼 좋은 앨범이 나와서 기쁘다.

케: 나는 반대다. 아이돌 음악이나 발라드곡을 많이 작업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지치더라. 그럴 때 활로가 된 게 루드 페이퍼였다. 루드 페이퍼는 곡 자체가 가요 어프로치가 아니라서 너무 신났다. 가요를 할 때 항상 노멀(Normal)하게 깎으면서 밸런스를 잡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기타를 쳐놓고도 너무 멀리 가지 않았느냐고 멤버들에게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

 

코러스에 참여한 린다(Linda)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쿤: 예뻐서. 농담이다. 하하. 린다는 라퍼커션(Rapercussion)의 메인 보컬이다. 브라질에 가서 실제로 삼바 음악 라이브를 하는 친군데, 현재 오리샤(ORIXA)라는 여성팀의 메인 보컬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라퍼커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라퍼커션의 멤버인 자이언 루즈(Zion Luz), 렉토 루즈(Recto Luz)는 친형제다. 렉토 루즈는 현재 우리 드럼을 맡고 있다. 한국에서 레게 드럼을 이 정도로 쳐 줄 수 있는 사람은 렉토 루즈 뿐이다.

알: 라퍼커션은 브라질 음악에 가깝지만, 같은 캐리비안 커뮤니티로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One Hiphop Festival 당시 우리는 50분짜리 무대를 꾸며야 했다. 마이크만 잡고 공연하는 게 너무 성의 없을 것 같아서 라퍼커션에게 함께 하자고 슬쩍 얘기를 건넸다. 도와준다고 해서 한두 명쯤 올 줄 알았는데, 스무 명이 왔더라. 안무까지 다 준비해왔다.

 

2집 앨범을 위해 직접 자메이카를 다녀왔다. 알디가 자메이카행을 제안했을 때, 나머지 멤버는 흔쾌히 받아들였나?

케: 나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못 갔다. 쿤타는 끌려갔다. 하하.

쿤: 정말 가기 싫었다. 가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알디가 미국을 가자고 했으면 웃으면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자메이카는 가기 싫었다. 자메이카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항상 위험하니까 조심하라고 하더라. 창문 밖에서 총알이 날아온다고 하는데 오죽하겠나.

Road to Jamaica(Episode 5): Final Recording

앨범 발매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콘텐츠는 역시 “Road To Jamaica”다.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알: 앨범을 만들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러던 와중에 주변 사람이 자메이카에 한 번 다녀와야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 말에 꽂혀서 무작정 다음 날 티켓을 알아봤다. 처음엔 혼자 가려고 했다. 근데 엠 타이슨(M. Tyson)이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쿤타는 계속 안가겠다 했고. 하지만 쿤타를 두고 엠 타이슨과 가면 그림이 이상하지 않나.

쿤: 나는 “그래도 돼. 뭘 고민해? 그냥 둘이 가”라고 했다.

알: 그래서 무작정 쿤타를 끌고 갔다. 그런데 계획을 세울수록 이 기회를 놓치기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막말로 우리가 터프 공 스튜디오(Tuff Gong Studio)에서 레전드와 녹음을 해도 누가 알아주겠는가. 실제로 지금도 못 알아보지 않나. 워낙 영세한 뮤지션들이고, 한국 사람들은 레게를 잘 모르니까. 이렇게 중요한 순간이 그냥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영상으로 남겨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비디오 디렉터가 필요했다. 1집 때부터 함께 해준 인스피(Insp)라는 친구에게 여건만 만들어주면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는데, 흔쾌히 응했다.

 

예기치 못한 일도 많이 일어났을 것 같다.

알: 자메이카에 머무는 동안, 돌발 상황이 많이 생겼다. 나는 지금껏 내 인생은 내가 설계하는 것이고, 최선을 다하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자메이카에 다녀오면서 그 믿음이 깨졌다. 오죽했으면 ‘신이 해결해주는 부분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메이칸이 ‘Rastafari’를 외치고, 왜 매일 ‘God Bless’를 읊조리는지 알 것 같았다. 하루를 끝마치고 방 안에서 술을 마시며 ‘오늘도 무사히 숙소로 돌아와 다행이다’라고 되뇌었다.

쿤: 나는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3주 내내 ‘오늘도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를 내뱉다 보니, 이제는 농담이라도 죽인다는 말을 안 쓰게 되더라.

알: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도움을 받아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Road To Jamaica”가 별 자극이 되지 않겠지만, 시간이 흘러 한국 레게 아티스트들에게 교과서 같은 콘텐츠가 되길 바란다.

 

일본 레게 뮤지션들과 교류한 적이 있나? 기억에 남는 인물을 소개해줘도 좋을 것 같다.

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Road To Jamaica”에도 나오는 찰리(Challi)다. 우리가 오사카에서 공연했을 때, 찰리가 속한 밴드를 만났다. 일본은 레게 페스티벌이 정말 크다. 전성기 시절에는 6~7만 명이나 보러 갈 정도였으니까. 한국으로 따지면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Ultra Music Festival) 급 규모다. 그런 페스티벌에서 찰리가 하루에 60곡씩, 3일 내내 연주한다고 한다. 그만큼 잘나가는 일본 베이시스트다. 그 형은 1년에 한 번씩 레게 비즈니스로 자메이카에 간다. 우리가 낯선 땅에서의 여정을 걱정하니까 투어 일정에 맞춰 자메이카로 와줬다.

 

루드 페이퍼 콘서트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알: 콘서트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다. 원래는 베이스 없이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공연 2주 전에 함께 연주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개런티나 항공편과 같은 부분을 해결하는 게 부담돼서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찰리가 그런 거 필요 없고, 그냥 같이 연주하고 싶은 거라고 말했다. 이제는 가족 같은 사이다.

 

또 기억에 남는 뮤지션이 있다면?

알: 앨범 참여 아티스트 중에 가차(Gacha)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가차판(Gachapan)이란 팀에서 곡을 쓴다. 일본인이지만, 자메이카에서 자메이카 여자와 산다. 거기서 만든 곡을 일본에 팔고, 자메이카 현지 뮤지션과 작업하는 사람이다. 내가 정말 대단하다 생각하는 아티스트에게 곡을 주고, 작업한다는 게 신기했다. 가차가 음악을 들려줬는데, 목소리가 익숙했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비지 시그널(Busy Signal)’이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쿤: 그것도 모르고 나는 거기에 훈수를 뒀다. 그러니까 가차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

알: 가차판이 만든 트랙에 아이도니아(Aidonia)가 노래했는데, 그 친구도 우리를 좋아해서 금방 친해졌다. 우리가 뭔가 베푼 것도 없는데 다가와 줘서 너무 고마웠다. 나는 원래 잡식 프로듀서다. 그런데 그동안 겪었던 장르가 이기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레게 뮤지션들이 이타적이다.

쿤: 그들은 따지는 게 없다. 음악이 좋고 사람이 좋으면 된 거지, 굳이 정치하지 않는다.

 

자메이카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터프 공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이다.

알: 터프 공 스튜디오는 밥 말리의 유산이고, 자메이카의 유산 같은 곳이다. 무턱대고 예약한다고 해서 사용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아니다. 운이 좋게도 우리는 자메이카에 도착하자마자 얼 친나 스미스(Earl “Chinna” Smith), 이나 데 야드(Inna de Yard)의 식구들과 가까워져서 스튜디오를 허락받았다. 그러고 나서 비즈니스가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관계가 돈독해졌다. 자메이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링크’다. 사람과의 관계가 형성된 이후 작업이 가능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나 데 야드로 갔기에 짧은 시간에 많이 어필할 수 있었다. 여기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쿤타의 즉흥성이었다. 사실 터프 공 스튜디오보다 더 신중했던 건 세션을 모으는 일이었다. 해외에서 레게 녹음을 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 되게 예민했다. 돈은 돈대로 죄다 털어서 왔는데, 여차하면 다 날리는 거니까.

 

터프 공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곡과 한국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곡 모두 한 앨범에 실렸다. 두 스튜디오의 질감을 맞추는 과정에서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

케: 일단 ‘소스’의 개념으로 봤을 때는 큰 차이가 없다. 믹스를 진행하며 가장 놀랐던 건 드럼과 브라스였다. 하나씩 들었을 땐 몰랐는데, 전체로 보면 드럼 소스의 질감이 엄청나다. 나와 알디는 드럼 녹음을 받기 전에 고민했다.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으니까. 근데 정말 달랐다. 터프 공 스튜디오 마이크 위치가 밥 말리가 처음 녹음했던 그 자리 그대로라고 하더라. 장비는 우리보다 안 좋지만, 그들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또 하나 재밌는 건 브라스 믹스였다. 왜, 큰 틀을 생각하다 보면 작은 걸 간과하지 않나. 알디가 자메이카에서 느낀 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고민하던 도중, 패닝을 사람들이 앉아있던 그대로 조정해보니 느낌이 살아났다. 다시 한 번 [Destroy Babylon]을 들어보면, 브라스 소리가 다르게 들릴 것이다. 존재감이 강하진 않은데 꽉 차는 느낌이다.

쿤: 자메이카에 가기 전에 모 스튜디오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긴데, 아무리 밴드 녹음을 받아도 드럼은 새로 씌워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터프 공 스튜디오는 그 말을 무색하게 했다. 정말 부러웠던 게, 자메이카는 레게란 장르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어서 레게에 최적화된 사운드 시스템이 갖춰졌다. 한국은 가요, 아이돌 일변도의 음악 시장이라 그런지 스튜디오 아이덴티티가 없다. 이게 어쩌면 현실이다.

알: 보통 악기 세팅을 길게는 한 시간까지 한다. 근데 터프 공에서는 드러머가 자리에 앉더니 바로 레코딩을 시작했다. 솔직히 기분 나빴다. 우리를 무시한단 생각이 들었지만, 터프 공 스튜디오는 레게만 몇십 년째 녹음하는 곳이지 않나. 그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케: 나는 자메이카에 가진 않았지만, 멤버들과 매일 통화했다. 녹음 후에 알디가 “얼 친나 형님이 기타를 치는데, 용이 한 마리 꿈틀거린다”고 말했다. 나와 겹치는 파트라 속으로는 얼마나 잘 쳤는지 한번 보자는 생각으로 데이터를 받았다. 소리를 들어보니 사운드가 되게 얇았다. 앰프도 연결하지 않은 생소리였고, 험 노이즈도 심해서 당시엔 별거 아니라고 느꼈다. 한국식 표현으로 ‘댐핑’도 전혀 없었다. 음반을 들어보면 두툼한 소리는 내 기타고, ‘짜깍’거리는 건 얼 친나 스미스의 것이다. 완성된 곡을 들어보니 오히려 내 소리가 음악에 묻어나지 않았고, 얼 친나 스미스의 기타는 그루브를 전부 살리고 있었다.

알: 이 이야기는 “Road To Jamaica” 다큐멘터리에서 다룰 거지만, 어쨌든 우리는 돌발 상황에 대비해서 정말 많이 준비했다. 앨범을 트랙별로 다 들려주려고 소스를 일일이 땄고, 케본 형에게 부탁해서 악보까지 가져갔다. 근데 악보를 보여줘도 필요 없다고 하고, 파트 별로 들려줘도 듣다가 치우라고 했다. 그러고는 노래나 한번 듣자고 하더라. 우리는 동양인에, 나이도 어리지, 경력이 뭐가 있나. 틀라니까 틀어야지. 다들 앉아서 잠시 듣더니, 노래를 끊고 연주를 시작했다. 쿤타 보컬만 남겨놓고 녹음을 시작했는데, 내가 만든 어프로치에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연주하더라. 다들 인이어 이어폰 같은 걸 쓴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사전에 맞추지도 않았다. 보컬을 듣고 연주하다가, 브릿지에서 기가 막히게 변주하더라. 한 4분이 지나니까 곡이 끝났다. 원 테이크에 끝났다.

쿤: 그러고선 더빙을 했다.

알: 이 세션을 위해 한국에서 돈을 바리바리 모아온 거다. 곡당 120만 원이다. 4분이 지나니까 120만 원이 날아갔다. 한국에서 이만큼 썼다면 온종일 굴려야 하는데, 그럴 만한 게 없었다. 두 번째 곡에 들어갈 땐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4분 동안 라이브로 이뤄져서 에디팅도 필요 없었고 수정을 한다고 뭐가 더 나올 것도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믹스할 때도 가장 집중했던 건 당시의 현장감이다.

 

치안은 어땠나. 자메이카에서 곤경에 빠진 적은 없었나?

알: 음악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지만, 정말 많은 일이 벌어졌다. 특히 낙석사고 이후, 차주가 계속 죽인다고 쫓아왔다. 공연에도 쫓아오고, 레코딩 하는 당일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쿤: 항상 기분 좋다가도 그 새끼만 보면 또 “아 씨…”

알: 차주가 자메이카에서 구할 수 없는 액수의 돈을 요구했다. 방법은 없는데 시간은 계속 흘렀고, 그 와중에 레코딩이나 여러 가지 일은 진행해야만 했다. 내부적으로도 긴장감이 팽팽했다. 나중엔 새벽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다. 그 정도로 삶이 절박하다는 걸 느꼈다.

쿤: 나는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다음번엔 안전하게 가고 싶다. 솔직히 새벽 2시에 트렌치 타운(Trench Town)에 들어가는 동양인은 알디 뿐이다. 거기는 외부인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고 하더라.

알: 그때 처음으로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알: 국내 레게 신은 너무 영세하다. 헌신이나 열정이 없으면 레게 커뮤니티 안에서 활동하기 힘들다. 뮤지션들부터 순수한 마음으로 레게를 좋아한다. 더 많은 사람이 레게를 좋아하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는 더는 바랄 게 없다.

쿤: 나는 앞으로 나올 플레이어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자네는 아직 이곳에 올 그릇이 안 되네”라는 선배의 입장에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자신이 왜 이 음악을 하는지 기본적인 지식과 태도를 갖췄으면 좋겠다. 태도는 외형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겉치레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한다. 난 레게를 하지만, 드레드 락은 하지 않는다. 라스타(Rasta)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 / 진행 ㅣ 심은보

사진 ㅣ 백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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