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P KIM

20160627_interview_05Photo by Lui Araki

스케이트보드라는 낯선 문화가 한국에 막 자리 잡은 90년대 말, 포토그래퍼 펩 킴(Pep Kim)은 당시 부지런히 아스팔트를 달구던 초창기 스케이터들과 함께했다. 뜨거웠던 한국 스케이트보드 역사의 제1막은 2004년에 발간된 그의 첫 사진집, 실버라인(Silverline)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후 유럽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던 펩 킴은 2010년, 뉴욕에 정착한다. 스케이트보드는 그에게 사진을 알려주었고, 사진은 그를 여행자로 만들었다. 최근 펩 킴은 뉴욕에서 만난 스케이터 애런 해링턴(Aaron Herrington)과의 오랜 작업을 ‘Rose is the Apple of My Eye’라는 이름의 사진전으로 선보였다. 이제는 미국 동부 스케이트보드 신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역사를 기록 중인 그의 뒤를 따라가 보았다.

 

 

지난봄, 징크(ZINC)에서 ‘Rose is the Apple of My Eye’라는 사진전을 열었다. 분위기는 어떠했나.

아무래도 전시 주제(Subject)인 애런 해링턴을 포함해 스케이트보드 트립을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칼하트(Carhartt) WIP팀 멤버들이 사진전에 와서 분위기가 더 좋아진 것 같다. 콰이엇 리프(The Quiet Leaf)라는 잡지의 새 이슈 런칭과 함께 진행한 전시라서 더 많은 사람이 몰린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작품이나 전시 제목을 물어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아쉬웠다. 도록에 사인을 부탁하는 사람도 없었고. 전체적인 전시 기획이나 구성은 계획한 대로 잘 진행되어서 만족한다.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신 칼하트 관계자분들과 징크 갤러리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긴 스케이터, 애런 해링턴을 오랜 기간 촬영했다. 스케이터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그는 어떤 사람인가.

애런과 처음 작업을 시작한 게 2011년쯤이었는데, 둘 다 무명으로 뉴욕에 와서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던 시기였다. 애런은 이제 세계적인 스케이터가 됐지만, 기본적으로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엄청나게 많은 걸 이뤄낸 친구인데, 그건 꾸준히 자신의 스케이팅을 발전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잘 타는 스케이터는 세계 어디에도 널려 있다. 그러나 자기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스팟(Spot)을 찾아서 스케이팅하고 그걸 또 기록으로 남긴다는 게 사실, 굉장히 고된 작업이다. 그는 그 과정을 이해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스케이팅을 기록해나가는 몇 안 되는 스케이터 중 한 명이다. 그냥 친구로서도 괜찮은 사람이다. 의리도 강한 편이고.

 

‘Rose is the Apple of My Eye’ @ZINC Gallery
Photo by 최경호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면?

앞서 말한 대로 관객들이 전시 제목을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아서 힘이 빠지기도 했는데 사실, 제목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Rose’는 포틀랜드(Portland), 오레곤(Oregon)의 별명이고, ‘Apple’, 또는 ‘Big Apple’은 뉴욕(New York)을 지칭하는 말이다. 또한, ‘Apple of My Eye’는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뜻하는 표현이다. 애런이 뉴욕에 와서 몇 년간 괄목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건 사실이지만, 마음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도시는 포틀랜드라는 말이다. ‘Apple’이 중의적인 의미로 쓰였다. 전체적인 기획은 짧은 기간에 많은 것들을 성취한 애런의 ‘Semi-Retrospective’ 전시라고 할 수 있다. 기획상 애런의 어릴 적 사진이 필요했는데, 그의 어머니가 사진을 보내주어서 더 탄탄하게 구성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기 전에는 어떤 것들을 즐기며 살았는지 궁금하다.

글쎄. 스케이트보드는 20년 조금 넘게 탔고, 그전에는 축구를 좋아했다. 최근 5년 정도는 다시 축구에 빠져 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전까지는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보드를 타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지.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스케이트보드의 영향이 컸나.

그렇다. 90년대 말에 서울 한전에서 주로 보드를 타던 GTM이라는 크루가 있었다. 그 팀의 영상을 촬영하던 종수형이 처음 완성한 ‘비상’이라는 스케이트보드 비디오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한국만의 미디어를 통해 스케이트보드를 접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때가 2000년을 앞둔 99년 말로 기억하는데, 시기도 시기고, 정말 뭔가 크게 변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수형을 보면서 나도 멋진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영상은 형이 하고 있으니 나는 사진을 찍어야지, 정도로 단순하게 접근했다. 종수형만큼 잘할 자신이 없었거든. 이미 잘하는 사람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 분야에서 같은 걸 하느니, 나만의 뭔가를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스케이트보딩만 촬영하는 건 아니지만, 스케이트보드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의 다큐멘터리적 요소, 인내심 같은 걸 배웠다. 뉴욕으로 이주한 뒤 끈기는 더 강해졌다. 영하 10도에 차도 없이 100블록도 넘게 스팟을 찾아다닌다고 생각해봐라. 끈기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스케이트보드를 단순히 쿨한 문화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은데, 끈기있는 이들의 행보가 진짜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가장 즐기던 한국 스케이트보드 비디오가 있다면 몇 개만 소개 부탁한다.

앞서 언급한 “비상”, “Full Logic”, “Enjoy Your Youth(이하 EYY)”. 특히 “EYY”의 승현이 형 파트는 편집이 기가 막히다. BGM도 아주 좋았고.

 

어릴 때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했나.

메뚜기. 아직도 싫다.

 

당신에게 영향을 준 사진작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스케이트보드에 관련된 작가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스케이트보드 사진은 나에게 특정한 예술형식(Art Form)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다큐멘터리, 라이프스타일 장르에 가깝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란트 브리테인(Grant Brittain)은 전 세계 스케이트보드 포토그래피에서 가장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에서는 다니엘 해럴드 스투르트(Daniel Harold Strurt)를 따라갈 사람이 없지 않을까? 아마도 영원히. 얼마 전 개봉한 아디다스 스케이트보딩(adidas Skateboarding)의 “Away Days”에서 많은 사진을 담아낸 셈 루비오(Sem Rubio)의 흑백 사진도 굉장히 멋있다. 보편적인 ‘사진’ 영역 안에서는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와 알렉 소스(Alec Soth)의 사진을 좋아한다. 한국 작가 중에는 노순택 작가, ‘KIDS NOSTALGIA’ 작업을 완성한 박성진 작가를 좋아한다. 베를린의 한 레스토랑에 성진이 형 작품이 크게 걸려있는데, 딱 봐도 엄청난 힘을 가진 작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사진작가가 사용하는 카메라는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다. 그간 어떤 카메라들이 당신의 손을 거쳤고, 지금 주로 사용하는 카메라는 무엇인가? 간단한 설명 부탁한다.

‘캐논(Canon) 5D Mark3’야 워낙 팔방미인이니 말할 것도 없고… 한때 스케이트보드 포토그래퍼들에게 사랑받던 ‘핫셀블라드(Hasselblad) 503’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팔고 없다. 요새는 ‘H5D’를 가끔 스튜디오용으로 사용한다. 기계 자체가 매력 있는 건 사실, 소형 카메라라고 생각한다. ‘라이카(Leica) CL’은 길거리로 나갈 때 항상 소지하는 카메라다. 좀 시끄러운 걸 빼면 ‘F3’도 흠잡을 데 없는 좋은 카메라고. ‘리코(Ricoh) GR1’은 성능도 디자인도 모두 좋은데, 고장이 잦아서 아쉽다. 얼마 전 도쿄에서 ‘올림푸스(Olympus) XA’를 구매했는데, 생각보다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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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ep Kim

당신이 한창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던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한국 스케이트 신(Scene)은 어떤 게 변했나?

뭐 다를 게 있나. 판때기 위에서 사람이 하는 게 크게 보면 다 똑같지. 보드 자체는 철저히 혼자서 타는 거지만, 스케이트보드라는 게 원래 패거리(Crew) 문화에 뿌리를 둔 라이프스타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개인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삼삼오오 몰려다니면서 재밌게 타는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다고 본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문화가 기록되는 방식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요새 스케이터들 옆에 붙어서 쿨력(Cool力)을 기르려는 그루피 같은 애들이 보이는데, 이것도 재밌는 현상인 것 같다. 유럽이나 뉴욕에서도 트래셔(Thrasher) 입은 모델이 보드 타는 애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니까.

 

스케이트보드 촬영과 기타 상업적인 작업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두 작업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궁금하다.

내가 전업 스태프로 일하는 스케이트보드 잡지가 없어서 그런지, 나에게 스케이트보드 촬영은 일종의 라이프스타일처럼 다가온다. 금전적인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노력 대비 가장 돈을 적게 받는 분야가 아닐까. 그런데 인생의 모든 요소를 경제적 관점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 않나? 스케이트보드 사진을 찍는 건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하는 일상 같은 거다. 내가 속한 도시, 스케이트보드 역사의 일부분을 내가 기록하는 셈이니 그런 관점에서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브랜드와 함께하는 작업은 그 안에서 창의력을 발산하는 것도 좋지만, 기본적으로는 클라이언트를 만족하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재미없는 작업도 있지만,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거니까. 상업적인 작업을 진행해보면 큰 프로덕션이 돌아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부분에서 나름 흥미로운 요소를 찾을 수도 있다.

 

뉴욕에 처음 도착했을 때, 무엇을 느꼈나? 아무래도 다양한 인종,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인 도시에서 카메라가 쉴 틈이 없었을 것 같은데.

부족한 내 영어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지금도 짧은 영어로 어떻게든 살지만, 그때 당시에는 “아, 이렇게 살다가는 그냥 좆밥이 돼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말겠구나”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지금은 일의 리듬이나 형편이 많이 좋아졌지만, 살림이 굉장히 어려울 때는 계속 오기로 버텼다. 내가 뉴욕 간다고 했을 때, 아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적당히 하다가 와. 서울 애들이 뉴욕 가는 게 뭐, 필리핀 애들이 서울 와서 뻐기는 그런 느낌이지.” 내 오기에 불을 붙여준 그분께 감사드린다.

 

낯선 사람을 찍을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 궁금하다.

먼저 의사를 물어보고 찍기도 하지만, 자기표현에 능한 사람들이 모인 도시라 그런지 거절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대놓고 먼저 찍을 때가 많다. ‘Don’t be a Nice Ne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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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ep Kim

약 10년 전에 발표한 첫 번째 사진집, 실버라인은 지금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당시 감회, 그리고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다면.

프로덕션이 아주 엉망인 책이다. 그땐 나이도 어렸고, 협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촬영, 디자인, 기획, 인쇄, 감리까지 모든 걸 혼자서 해버렸다. 각 분야 전문가들하고 일하는 게 좋을 결과물을 만드는 핵심인데, 그때는 그걸 몰랐으니 제대로 나올 리가 없지. 뭐, 국내 스케이터나 실버라인을 접한 해외 포토그래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는 한 거 같다. 백남준 선생님이 타계하시기 몇 주 전, 운 좋게도 지인을 통해 책을 선물로 드렸는데 한국에도 재밌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어서 기뻐했다고 들었다. 실버라인 프로젝트에 함께 해준 모든 스케이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펩보이진(PepBoyZine) 첫 번째 이슈에서 당신이 속한 축구 클럽, 차이나타운 사커 클럽(Chinatown Soccer Club, 이하 CSC)을 촬영한 사진을 선보였다. 매주 그들과 교류하며 사진을 찍는다는 것, 그 에너지는 스케이트보드 촬영이나 클라이언트 작업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을 텐데.

축구는 매주 화, 목, 토, 혹은 일주일에 세 번을 맞춰서 한다. 6~8월 시즌에는 일주일에 여섯 번 한 적도 있다. 요새는 CSC를 프로젝트 형식으로 따로 찍지는 않지만, 지난 3년간 조금씩 팀을 기록하는 일 자체가 꽤 재미있었다. 가입하기 전부터 항상 흥미를 느꼈던 팀이기도 했다. CSC의 특징은 일반적인 축구 클럽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에너지를 가진 개인이 모인 어떤 공동체의 개념이란 거다. 이기려는 축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순수하게 축구가 좋아서 모인, 15년간 단단한 결속력으로 유지되는 팀이다. 나에게는 스케이트보드 외에도 굉장히 중요한 라이프스타일인데, 일단 인생의 선배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 훌륭한 친구들이 많아서 이들 중 몇몇은 마음속으로 멘토처럼 느끼곤 한다. CSC 멤버들 사진을 찍을 때 염두에 둔 부분은 개개인의 주변에서 보이는 독특한 순간을 캐치하는 거였다. 이미 피터 서덜랜드(Peter Sutherland)가 한번 작업한 팀이기에 그와 다른 시각으로 풀어내는 것도 중요했다.

 

‘Chinatown Soccer Club’
Photo by Pep Kim

CSC는 패션, 예술 분야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한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과 함께 정반대 영역에 있는 듯한 ‘스포츠’를 하는 건 어떤 기분인가?

멤버들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훌륭한 지위를 확보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가족적인 분위기가 유지된다는 점이다. 서로 필요할 땐 각자 분야에서 도움받을 때도 있지만, 팀 안에서 지위를 의식하지는 않는다. 겉모습만 보고 CSC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이제 신입은 거의 받지 않는다. 쿨한 사람들은 뉴욕에 널리고 널렸다. 팀 안에서 좋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진작가는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지역을 여행하고 싶은가?

최근, 도쿄에 다시 방문하고 싶었는데, 마침 일본 칼하트에서 ‘Rose is the Apple of My Eye’ 전시를 원했다. 그들의 초청을 받아 일본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포토그래퍼들이 선호하는 제3세계 국가는 사실, 별 관심 없다. 오토바이를 타고 유럽 일주를 하고 싶은데, 언제가 되려나. 파리는 언제 가더라도 항상 기분 좋은 도시다. 뉴욕만큼 펑키(Funky)한 에너지는 없지만, 파리만의 고상한 느낌을 사랑한다. 기본적으로 시민들이 문학, 예술에 조예가 깊은 점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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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ep Kim

지금의 서울, 혹은 한국의 어딘가는 아직도 당신에게 흥미로운 소재인가?

그렇다. 아니 ‘매우’ 그렇다. 경제적으로 빠르게 근대성을 획득한 반면, 많은 부분이 아직 전근대를 벗어나지 못한 서울에는 제법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소재들이 아직도 많다. 다른 도시에 머물다 돌아오니 서울에 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더라.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에는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서울의 재미있는 요소들을 캐치해서 아주 독특하게 보여주는 힘이 있다.

 

새롭게 구상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간단히 언급 부탁한다.

미국 동부 스케이터들의 포트레이트를 기록하는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200명분의 사진이 모이면 책을 출판하고 전시도 열 예정인데, 서두르지는 않으려고 한다. 펩보이진도 올해 안에 한 권 정도 더 만들 생각이다.

Pep Kim 개인 웹사이트

진행 / 글 ㅣ 권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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