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Playlist: 한국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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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힙합은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 전후로 나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이 발칙한 TV 프로그램이 국내 힙합 신(Scene)에 미친 영향은 실로 거대하다. 쇼미더머니가 등장한 뒤로 국내 래퍼들 역시 완전히 세대교체가 이뤄졌다는 기분이 드는데, 실제로 지금 10대들에게 가사를 외게 하는 래퍼는 버벌진트가 아니라 비와이다. 누군가는 혀를 끌끌 차기도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수많은 관객의 환호성을 꿈꾸며 쇼미더머니 지원서에 자신의 프로필을 적어 넣기도 할 것이다.

다만 쇼미더머니로 한국 힙합을 이야기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 쇼미더머니 그 이전부터 많은 엠씨들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이 울타리가 전광판에 올라가는 금액으로 치부되기엔 소중한 유산이 더러 있다. 당신이 너무 어려서 혹은 이전까지 한국 힙합에 관심이 없었다면 이번 테마 플레이리스트에 소개될 곡들을 주목해보자. 꼰대 같다고? 하나의 문화가 몸에 스며드는 과정은 시즌마다 돌아오는 TV 쇼와는 분명 다른 것일 테다. 한국 힙합을 지켜본 8명의 리스너가 자신의 걸음걸이를 바꾼 트랙을 소개한다.

 

 

1. JP – 푸념(Feat. Drunken Tiger)

https://www.youtube.com/watch?v=fkKHvMHAWuo

힙합에 심취하기 시작할 당시, 제이피(JP)는 그야말로 신을 쥐락펴락하는 MC였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꽤 반듯한 예능 MC가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힙합, 랩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던 90년대 가요계에 그가 발표한 [JP style]은 충격 그 자체였다.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들었으니까. 지금은 내 아이튠스에 “푸념”만이 MP3로 생존해있는데, 종종 플레이할 때마다 마치 오래전에 찍어둔 사진을 꺼내보는 것처럼 뒤섞인 기억과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흘러가는 4분 12초만큼은 여러 감정이 정처 없이 표류한다.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들이 충돌하지 않게 진공의 상태로 만들어주는 거지.

이철빈, VISLA 매거진 에디터

 

 

2. Joosuc – 4Life

내 모든 것을 걸고서 2000년대 초반 가장 멋있는 뮤직비디오가 아닐까 싶은 주석(Joosuc)의 “4Life”. 로라이더 간지를 마음껏 내뿜으며 등장하는 주석 형은 전투모 사이즈 60인 내 대두에 잘 맞지도 않을 것 같은 구찌 벙거지를 한번 사볼까 싶게 만든, 빌어먹을 안도감을 준 래퍼다. 주석 형의 명령을 받고 달려와 그의 뒤를 든든히 받치는 블러드 브로바스(Blood Brovas)는 지금 봐도 빡세다. 힙합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 시절, 나에게 간지가 뭔지 알려준 당신에게 감사! 후반부 유리의 보컬에 울컥하는 뭔가가 일었다면 당신과 나는 힙합으로 하나 된 것. 그거면 됐다. 4 Life!

임인혁, 독자 기고

 

 

3. Swi-T – I’ll Be There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힙합 걸그룹, 스위티(Swi-T)가 계속 활동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곤 한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트리오 그룹 TLC의 “No Scrubs”를 그대로 재현해낸 것 같은 스위티의 의상과 메이크업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갔던 걸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 버린 아쉬운 그룹이다. 이제와 걸크러쉬, 여성들의 힙합, 알앤비가 대세로 떠오르지만, 당시 짧지만, 강렬했던 스위티의 “I’ll be there”은 미약하게나마 우먼파워의 모태가 된 것 같다.

정구희, 브랜드 DAQD 디렉터

 

 

4. YDG – 구리뱅뱅

이 노래가 발표된 시기는 2001년 즈음,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다. 강북은 쫄바지, 강남은 힙합인 시절, 나는 압구정과 강남에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데-나는 강남 힙합이라 부른다-, 그런 동네를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 처음으로 가봤다. 말로만 듣던 압구정을. 왜 강남, 압구정 형 누나들 얘기를 하냐면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그때 당시 압구정, 강남 형 누나들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마치 내가 로망을 가졌던 장소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직접 겪은 시절이 아니라 향수라고 말하기에는 무리지만, 정말 그때의 분위기가 선명하게 느껴지기에 이 노래를 자주 듣는다. 거기에 라임이 어쩌고, 랩이 저쩌고를 떠나서 YDG의 래핑이, YDG의 플로우가 내 귓구멍에 한발 한발 들어올 때마다 흥이 절로 난다. 주말에 놀러 나가기 전, 그리고 적당히 취해 집에 돌아가는 귀갓길에는 와디지(YDG)의 “구리뱅뱅”을 추천하고 싶다.

배형찬, VISLA 지인

 

 

5. Eluphant – 원님비방전(Feat. The Quiett, Infinite Flow)

고등학교 때 처음 접한 곡이다. 벌스(Verse)가 시작되기 전에 더 콰이엇(The Quiett)이 읊조리는 한국적인 인트로부터 충격이었다.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로도 힙합이라는 장르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는데, 이 트랙은 다른 말보다 흥이 난다고 표현하는 게 어울린다. 예나 지금이나 탐욕스럽고 부정을 일삼는 정치인과 윗선을 래퍼들끼리 주고받는 ‘Dialogue’ 혹은 만담의 형태로 비꼬는 방식이 고등학생인 나에게도 어떤 쾌감을 전달해준 것 같다. 해학과 풍자를 바탕으로 한 욕의 미학이랄까. “300년 전에도 무너지지 않는 벽 신분제도, 우리 원님 속은 너무 더러워. 미천한 천민들은 서러워”라는 훅(Hook)이 귀에 쏙쏙 박히는데, 훅을 제외한 벌스들의 스토리 텔링 역시 뛰어나다. 아웃트로의 코믹한 반전을 끝까지 듣길 바란다.

이준우, Salt 필름 디렉터

 

 

6. DJ Soulscape – Story(Feat. Leo Kekoa)

아마 중학생 때일 거다. 등교하기 직전 무심코 튼 TV에서 우연히 본 “Story”의 뮤직비디오가 기억에 남는다. LP판과 담배, 트리플 파이브 소울 후드와 캉골 벙거지, 그리고 흑백 화면 속 과장 없이 표현되는 서울의 여러 단면. 여기에 ‘일 스킬즈(ill Skillz)’의 리오 케이코아(Leo Kekoa)가 풀어내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더해지고, ‘당산대형’ 디제이 소울 스케이프(DJ Soulscape)의 샘플 운용이 담백하게 어우러져 멋진 내러티브가 완성되었다. 16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한국 힙합 역사의 한 페이지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들의 음악과 영상은 충분히 다시 조명받을 가치가 있다.

박지훈, 엔터테인먼트 종사자

 

 

7. Verbal Jint – 1219 Ephiphany

노래를 고르기까지 많은 고민이 따랐다. 대한민국 힙합이 수면으로 떠오른 지는 이미 오래전 이야기, 힙합은 여러 매체에 힘입어 빠르게 대중들과 입맞춤하고 있다. 버벌진트(Verbal Jint)의 “1219 Ephiphany”는 그의 2집 [누명]에 수록된 곡으로, 2008년에 발매된 노래라는 사실에 매번 감탄한다. 날이 서 있지만, 세련된 비트 위에 얹힌 버벌진트의 플로우는 반으로 자르기 힘든 꽁꽁 얼어붙은 쌍쌍바 같다. 물론, 요즘 신(Scene)을 장악하는 트랩이나 돌아온 붐뱁처럼 어깨를 들썩이게 하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뭐랄까? 소울이 넘친다고 해야 하나. 음반 자체도 35곡이 탄탄하게 수록되어 있고, 유기적인 구성을 취한다. 또한, ‘한국힙합은 가사 스펙트럼이 좁다’라는 고정관념을 깨준 것 같아 속이 시원하다. 버벌이 말하듯, “This art form, someone’s gotta take it to higher ground”도 인정하는 바다. 최근 그의 모습에서 [누명]이나 [Modern Rhymes] 같은 음반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얼른 ‘변화의 핵’을 선사하며 돌아와 주길. 하나의 트랙보다는 앨범 전체를 감상하는 걸 추천한다.

탁윤수, CF 에디터

 

 

8. Dok2 – 치키차카초코초

한국 힙합 중 자주 듣고 좋아하는 노래는 수없이 많지만,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트랙을 소개한다면 역시 도끼(Dok2)의 자서전적인 곡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십여 년 전 나는 스카페이스(Scarface)를 보고 “남자다운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낀 뒤 인생의 지향점을 세웠지만, 특별히 사나이답게 살진 못하고 있다. 그러던 나에게 한국 토니 몬타나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으니 그 이름이 바로 도끼, 이준경 님이다.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철저히 실행해나가고 성취하는 모습. 그 자체가 바로 살아있는 현실의 토니 몬타나였다.

예술성 높은 가사, 탄탄한 프로듀싱도 물론 좋은 노래를 선정하는 기준이 된다. 게다가 힙합 음악을 좋아하고 잘 만들어내는 뮤지션은 한국에도 많다. 하지만 힙합 그 자체의 태도로 감동을 준 사람은 대한민국에 준경 씨 말고는 찾기 힘들다. ‘Drug Money’도 아니고 엔터테인먼트 속 만들어진 스타도 아닌 순수한 ‘Rap Money’.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두 손으로 이뤄낸 성과, 자랑 안 하고 싶겠냐? 더블R, 람보르기니 앤 페라리… 진짜배기 남자. 도끼 이준경 씨 존경합니다. 저에게 롤 모델이란 걸 만들어주신 분. ILLIONAIRE… MULTI MILLIONAIRE…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초…
자기가 바라는 대로 모두 이뤄낸 사람…
주문을 외워보자…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초…

조아형, ‘Mixture Experime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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