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Playlist: My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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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즉시 방을 한번 살펴보라. 개인적인 취향,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물건 혹은 친구들과 공유하는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놓인 방은 분명 독특한 개성을 띠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에서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때는 어떤 음악을 듣는가? 당신이 열심히 가꾼 – 혹은 내버려 두거나 – 방을 음악으로 묘사한다면 과연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다섯 명이 말하는 ‘My Room’ 플레이리스트를 감상해보자. 그리고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의 방에 어울리는 음악도 우리에게 알려 달라.

 

 

1. Shakatak – Night Moves

가로로 누워도 별문제 없을 만큼 큰 침대를 선호하는 편이라 내 방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건 결국, 옷과 침대다.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듣기에는 영국 출신 애시드 재즈 밴드, 샤카탁(Shakatak)의 그루비한 음악이 좋다. 묵직한 베이스라인과 몽환적인 코드 워크 그리고 덤덤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보컬까지. 처음 “Night Moves”란 곡을 들었을 때 받은 느낌은 펑키하고 신나면서도 편안하다는 것. 다소 모순적일 수도 있지만, 정말 두 가지 바이브가 동시에 느껴졌기에 나는 그걸 절제된 세련미라고 표현하겠다. 방에서 무언가를 구상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틀어놔도 방해되지 않는 적절한 BGM이 될 것이다.

Hashmate, 프로듀서/DJ

 

 

2. Bobby Caldwell – Sunny Hills

작업실에서 보내는 일과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일을 마치고 나서 여유를 느끼며 석양을 바라보거나 쾌청한 휴일에 내가 기르는 식물과 작업실 곳곳으로 쨍한 햇살이 반사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1982년에 발표된 – 기가 막히게 내가 태어난 해와 같다 – 바비 칼드웰(Bobby Caldwell)의 1982년 작 [Carry On] 앨범에 수록된 “Sunny Hills”라는 곡을 이 공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영혼이 석양과 함께 사라질 것 같은 나른하고 몽환적인 아저씨의 보컬과 서정적이고 단순한 멜로디, 분명 집에서 노을과 함께 인생을 돌아보며 써내려갔을 것 같은 가사까지 완벽한 나의 인생 노을 송이라고나 할까….. 석양을 바라보며 한 번쯤 꼭 들어보았으면 한다.

남무현, 그래픽 디자이너 

 

 

3. Pat Metheny – Travels

바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내 방. 나는 오늘에 지쳐 가방과 함께 거실 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리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거나 집에 돌아왔을 때 정신적으로 나를 달래줄 수 있는 것들이 필요했다. 나는 그동안 틈틈이 여행하면서 느낀 타지의 독특한 정서, 당시 내 기억을 담을 수 있는 사물들을 하나씩 방안에 들이기 시작했다. 이들을 오늘의 위안과 삶의 새로운 영감으로 삼으며.

이 곡을 들을 때면 잔잔한 바람과 그윽하게 저문 갈대밭 길이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는 듯 그 사이에서 심호흡하며 걸어가는 나를 상상한다. 사해에서 주워온 자그마한 소금결정체들, 브루클린에 사는 친구가 그린 그림, 아바나의 로컬 미술마켓에서 가져온 역동적인 색감의 프린트, 모로코 어느 시골 아틀리에에서 흥정한 카펫 그리고 여행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로부터 받은 미소와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차분히 다음 여정을 준비한다.

반복되는 일상도 하나의 여행과 같아 어떠한 풍경과 기억들은 시간을 머금을수록 새로운 의미와 혜안을 선물한다. 숱한 경험을 지나 깨달음을 반복할수록 사람도 하나의 작품이 되어간다. 사는 모습은 각기 달라도 사람이 향하는 마음의 그곳은 비슷한 지점이 아닐까.

김민준, 코오롱 스포츠 기획 MD

 

 

4. Tracy Cahpman – Fast Car

빛 한 줌 담아내지 않는 공간에서 작은 불빛 하나에 의존해 사색하는 걸 좋아한다. 특별할 거 없는 내 방은 그런 시간으로 가득 채워졌다. 분위기에 쉽게 취하는 성격이라 그 시간에는 늘 음악이 동반되는데, 이때 즐겨 듣는 플레이리스트 중 한 곡이 바로 “Tracy Chapman – Fast Car”다. 처음 접한 건 리믹스 버전이었다. 알고 보니 이 노래는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팝송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곡이었다. 고른 음들로 이루어진 기타 소리와 잔잔하지만 가공되지 않은 그녀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그 시대를 대변한다. 그 이상의 표현은 무리인 것 같다. 백문이 불여일청!

윤성희, 프로덕션 어시스턴트

 

 

5. Bob Dylan – Girl From the North Country 

https://youtu.be/dyN-ya3rCPw

#201/ 각자의 방은 완벽하게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공간이 아닐까. 내 (정신) 상태에 따라 방의 얼굴은 수시로 바뀐다. 찬찬한 가을바람이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는 시월의 가을, 지금 내 방은 어떤 모습일까. 사실 밀푀유처럼 켜켜이 쌓인 옷가지와 노르웨이에 대한 열망을 형상화한 듯한 옷더미 산이 항상 내 시선에 걸려있는, 불안정한 상태다. 정리 또 정리, 치우고 어지르고를 반복한 지 2주차. 누군가 도와줬으면 좋겠지만, 누가 도와준다 해도 매일 이렇게 혼자서는 도통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런 201호를 잘 표현하는 음악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Silver Linings Playbook)”의 OST 수록곡, 밥 딜런(Bob Dylan)의 “Girl From The North Country”다.

‘문제적’인 두 사람 – 제니퍼 로렌스가 분한 ‘티파니’와 브래들리 쿠퍼가 분한 ‘팻’ – 이 마음을 열고 ‘함께’ 춤 연습을 시작하는, 잔잔하게 가슴 뜨거워지는 장면에서 흐르는 곡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 어울린다. 영화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은 흔히 알려진 것과 같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아니다. 두 또라이의 좌충우돌식 사랑을 테마로 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린 꼭 정상이어야만 할까? 충돌로 시작한 관계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을 거쳐 끝에는 인간애적 사랑과 결실을 보는 드라마다. 부단히 고치고 싶어도 고쳐지지 않는 것들, 어딘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그럴 용기가 없는, 삭막한 도시에 사는 우리는 모두 어쩌면 비정상이지만 정상으로 살기 위해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모두에게는 남에게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고, 상처가 있다. 살다 보면 그 상처를 스스로 드러내는 용기의 시간이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다가 의도치 않게 들춰지는 일도 경험한다. 상대의 찢어지고 구멍 난 곳을 알아채고, 그저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려고 한다면, 다시 발견한 삶은 더 매끄럽고 사랑스럽지 않을까. 매일, 매주, 매달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내 방도 내 삶도 내 사랑도 그렇게 어루만지고 노력한다면 더 사랑스러워지지 않을까, 하고 희망한다. 오늘도.

강국화, 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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