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FF STA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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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비둘기가 그려진 나이키 SB(Nike SB) 덩크 로우 – 단 150족만을 발매했다 – 는 뉴욕시의 모든 스니커헤드를 흥분케 했다. 흰색과 회색, 선명한 오렌지색이 섞인 이 스니커는 뉴욕의 상징, 비둘기를 표현함에 모자람이 없었다. 발매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500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굉장한 몸값을 자랑하고 있다. 스트리트 신(Scene) 내 어마어마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디자이너이자 디렉터, 제프 스테이플(Jeff Staple)의 역사도 이와 함께 쓰였을 터. 현재 많은 이들이 그의 자취를 좇으며 추격전을 벌이고 있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관록은 여전히 그를 이 신의 꼭짓점에 머물게 하고 있다. 도시 속 비둘기처럼 항상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제프 스테이플,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STAPLE LOCKUP

어떻게 스테이플(Staple)이라는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19년 전? 꽤 오래전이다. 내년이면 이 일을 한 지 20년이 되니까.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비슷한 부류의 길거리 문화가 전무했다. 스테이플은 항상 스트리트 신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시작점은 내가 다니던 아트 스쿨부터다.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다가 파슨스 디자인 스쿨로 학교를 옮긴 뒤 디자인을 시작했다. 어느 날 핸드 프린트 티셔츠를 만드는 과제가 주어졌는데, 스무 장가량을 제작해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그러고 나서 뉴욕 주변 갤러리에 놀러 갔을 때, 직원 한 명이 내가 입고 있는 티셔츠가 마음에 든다며 자신의 가게에서 판매할 수 없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열두 장을 제작했다. 금세 품절됐고, 다시 스물네 장을 찍었다. 이게 소문이 나면서 여러 스토어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그게 비즈니스의 첫 시작이었던 것 같다.

 

 

스테이플의 탄생이었나.

스테이플의 시작은 조금 더 나중의 일이다. 그 이름은 95~97년 사이에 지어졌으니까. 이전 스케이트보드 문화는 디씨 슈즈(DC Shoes), 빌라봉(Billabong), 퀵실버(Quicksilver) 같은 서부 브랜드가 주류였고, 동부는 션 존(Sean John), 로카웨어(Rocawear), 팻 팜(Pat farm) 등의 힙합 브랜드가 주름잡고 있었다. 이 두 문화는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있었지. 난 백인도 흑인도 아닌 아시아인이었기에 이 두 문화를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 디자인 또한 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덕분에 더욱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었다. 당시 힙합은 무거운 금색 체인, 롤스로이스로 대변할 수 있는 ‘Bling’, 그 자체였다. 후부(Fubu)나 로카웨어 같은 브랜드가 그런 분위기를 이어갔고 커다란 로고가 담긴 티셔츠, 배기바지를 주력으로 생산했다. 난 그런 문화의 반대편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었다.

 

 

스테이플이라는 브랜드의 테마는 무엇인가.

스테이플의 의미는 가장 기본적이고,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무엇’을 주제로 한다. 쉽게 말해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게 우리의 주된 영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걸 스테이플 안에 넣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스테이플이라는 브랜드 이름의 유래가 꽤 재밌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 사람들이 내 이름 제프 뒤에 스테이플을 붙여서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내 본명인 것처럼, 하하. 생각해보니 처음 티셔츠를 주문했던 직원이 나를 제프 스테이플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 얘기했는데도 자기는 계속 그렇게 부르겠다고 말하더라. 이제는 그게 정말 내 이름처럼 되어버렸지.

 

 

긴 시간 브랜드를 이끄는 과정에서 다져진 철학이라면. 

스테이플의 기본 철학은 긍정(Positive), 사회(Social) 그리고 접촉(Contagion)이다. 내게 긍정이라는 단어는 지구를 구한다든가, 육식을 하지 않는 그런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지. 사회는 곧 사람이다. 접촉은 한 사람에서부터 다른 사람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발전을 이루고 그것을 퍼뜨리게 하자는 이야기다. 비둘기가 그려진 스테이플은 의류 라인이며, 스테이플 디자인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다. 리드 스페이스(Reed Space)는 리테일 스토어의 기능을 한다. 이 세 파트 모드 위 철학을 따르고 있다. 의류 스테이플을 대표하는 또 다른 문구는 ‘Flock with us’인데, 이게 ‘Fuck with us’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하. 아무튼, 이 세 회사는 모두 독립되어 있으며, 심지어 은행 계좌도 전부 다르다. 나는 이 모든 그룹의 파운더로 일하고 있다.

 

 

오랜 시간 비둘기를 스테이플의 상징으로 삼아왔다.

난 계속 비둘기를 사랑해왔다. 비록 많은 이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동물이지만, 난 항상 비둘기를 존경해왔지. 비둘기는 굉장한 허슬러다. 당신이 나에게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로 인터뷰 요청을 한 것도 일종의 비둘기 허슬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매체가 제프 스테이플이 한국에 온 사실을 알고 인터뷰 요청을 할지 말지 고민할 때 당신은 연락처도 모른 채 DM으로 연락하지 않았나.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거다. 이게 바로 허슬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비둘기를 높게 산다.

 

 

서울에도 꽤 많은 비둘기가 살고 있는데, 혹시 본 적 있나?

스테이플이 비둘기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 세계 모든 도시에 비둘기가 있어서다. 전 세계에 널린 게 비둘기 아닌가. 하하. 내가 처음 비둘기 로고를 사용했을 때, 난 비둘기가 뉴욕에만 많은 줄 알았다. 근데 도시 대부분이 비둘기와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지. 뉴욕은 분명 큰 도시다. 스테이플은 뉴욕에서 탄생했고 스트리트 패션을 모토로 하고 있다. 비둘기가 있는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은 스테이플의 잠재적인 팬이다. 스테이플이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었던 기저에 이런 사실이 자리한 거지. 어린 시절 난 폴로 랄프로렌(Polo Ralph Lauren)의 빅 팬이었다. 누구나 알겠지만, 폴로의 로고는 바로 폴로 게임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폴로 게임은커녕 말을 보기조차 어렵다. 뭐 부자나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면 쉽게 볼 수 있겠지만. 확실한 건 도시인에게 말은 친근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비둘기가 새로운 세대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은 비둘기와 평생을 함께한다. 그리고 그들이 비둘기가 그려진 스테이플 의류를 걸칠 때 스스로 자랑스러울 수 있는 거지.

 

 

어떤 이는 스테이플의 비둘기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말하기도 한다. 

뭐, 멍청한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 그런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었고 굳이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브랜드의 의미를 잘 모를 뿐이니까. 그들은 어떤 브랜드의 디자이너일 수도 있다. 직접 티셔츠나 모자 몇 개를 만들어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20년 동안 브랜드를 유지한다는 생각은 못 해봤겠지. 어쩌면 다음 달 집세를 어떻게 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런 비평은 ‘왜 나이키(Nike)는 아직도 스우시(Swoosh)를 사용하는 거야, 왜 삼선을 사용하지 않는 거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 가지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다 대부분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그들은 그저 내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테이플, 스테이플 디자인, 리드 스페이스가 해온 모든 것을 훑은 다음, 닥치고 꺼지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해온 일의 1%만 보고 말하는 건 굉장히 섣부르다. 블랙 스케일(Black Scale)을 운영하는 메가(Mega)는 모든 코멘트에 일일이 ‘Fuck You’라는 댓글을 쓰더라. 굉장한 스트레스겠지. 벤 볼러(Ben Baller)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열세 살짜리 아이랑 온라인으로 설전을 펼치는 일일 수도 있지. 차라리 그런 아이들을 스테이플 사무실에 초대해서 우리가 그동안 이룬 것을 보고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긴 시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겪은 어려움이라면.

스테이플을 시작하고 5년이 지났을 때, 여러 비즈니스 전문가가 위기를 이야기했다. 그들의 말은 대부분 사실이다. 90%는 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10% 정도가 이를 통과한다. 10년을 넘기는 경우는 당연히 훨씬 적겠지. 스테이플이 5년을 맞이했을 때, 정말 힘들고 떠나고 싶었다. 어느 땐가 함께 일하던 다섯 명의 팀원에게 더는 이 일을 못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너무 어려웠고 스트레스도 굉장했다.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는 즐거웠다. 하지만, 직원이 생기고 매달 월세를 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생기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달마다 임대료, 각종 세금, 월급을 계산해야 하고 모든 직원은 먹고살기 위해 나만을 바라본다.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고, 매달 일정 액수를 벌어야 하며, 그 액수를 만들지 못하면 자신의 몫은 0이 된다. 이런 짓거리를 매달 해야 하는 거지. 내가 떠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직원들은 떠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들은 당신이라는 선장이 우리에게 배에 탈 것을 요청했는데, 혼자 수영해서 떠나는 일과 같다고 말했다. 바다 저 너머까지 인도해달라고 했다. 그 메시지는 꽤 강력하게 작용했다. 그 미팅에서 눈물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때 다시 시작할 것을 결심했다. 이때만큼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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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리드 스페이스의 문을 닫았다. 그 이유는?

리드 스페이스의 문을 닫는 일은 이 년 전부터 생각했다. 그 뒤로 정확히 이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 왜 이 년씩이나 걸렸냐고? 새 직업이 필요하게 될 직원과 그동안 진행한 100여 개가 넘는 브랜드 때문이다. 영업을 멈추는 건 내 자식을 없애는 것과 같은 희생과 고통이 따른다. 스스로 리드 스페이스의 혁신적인 재탄생에 관해 배워야만 했지. 그대로 끝내기보다는 혁신을 이루고 싶었고 진화를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이어지고 있으며 90% 정도 정리가 끝났다. 다음에 어떤 일을 시작할지도 생각해냈지. 문을 닫았을 때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지만, 최근 난 꽤 들떠있다. 난 이제 뭘 시작해야 할지 알고 있으니까. 아마 첫 번째 리드 스페이스를 잊게 될 정도로 멋진 공간이 탄생할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인터넷 덕분에 오프라인 스토어를 여는 일은 더욱 큰 위험부담을 안게 되었다. 건물주는 월세를 계속 올리길 원하고 직원은 더욱 많은 임금을 원한다. 모든 비용이 오르지만, 당신이 파는 옷의 가격은 같고 버는 돈 역시 같다. 하하. 그저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물건을 사는 일을 기다리는 방식은 한물갔다. 이게 리드 스페이스가 전환점을 맞이한 이유다.

 

 

언제 문을 새로 열게 될지 말해 줄 수 있나?

정확한 일자는 미정이지만, 2017년 3월쯤으로 예상한다.

 

 

여전히 스테이플 브랜드의 디렉터이자 디자이너 역할을 맡고 있는지.

디렉터와 디자이너, 이 두 단계 사이에는 많은 일이 필요하다. 다행히 나는 매우 강력한 디자인 팀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디자인과 기본 콘셉트에 관여한다. 의류 하나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많은 디테일이 필요하기도 하고. 내가 콘셉트와 마케팅, 비주얼을 관리한다면, 제품의 봉제와 같은 작은 부분은 디자인 팀이 담당한다. 내게 스테이플과 스테이플 디자인, 리드 스페이스를 운영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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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니커에도 큰 애착을 보이는 편이다. 최근 흥미로웠던 스니커가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 착용한 스니커. 내 친구 에롤슨 휴(Errolson Hugh)가 디자인한 에어 프레스토(Acronym x Nike Air Presto)를 좋아한다. 그밖에 아디다스(adidas)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 역시 눈여겨 보고 있다. 최근 스테이플은 푸마(Puma)와 협업을 진행했고, 이전에는 휠라(Fila)와도 제품을 만들었다. 지금은 스니커헤드가 되기 좋은 시기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소비자는 오직 두 개의 브랜드만을 원했다. 나이키와 에어 조던(Air Jordan), 이 또한 같은 회사였지. 그러나 요새는 모두가 멋진 스니커를 만들고 있다. 브룩스(Brooks), 서코니(Saucony), 디아도라(Diadora) 같은 작은 회사도 멋진 신발을 내놓지 않나.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가 나이키인가?

어린 시절 최고의 스니커 브랜드는 리복(Reebok)이었다. 2000년대는 나이키가 조금 게을렀던 것 같다. 하하. 그동안 아디다스가 엄청나게 노력하면서 나이키보다 재밌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 나이키의 아크로님 에어 프레스토는 그간 만든 스니커 중 최고다. 아디다스는 최근 NMD, 알파 부스트(Alpha Boost), 울트라 부스트(Ultra Boost) 이지(Yeezy) 등 굉장한 신발을 쉬지 않고 발매하고 있다. 테크놀로지도 마찬가지다. 애플(Apple)도 슬슬 잠드는 것 같지 않나. 1등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최근 삼성과 구글(google)이 하는 일을 봐라. 애플과 나이키도 1등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두 분야의 1위 끼리 서로 가까운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점이다. 동시에 이 둘만이 함께한다는 것 또한 재미없는 일이기도 하지. 요즘 아디다스가 ‘그래 너희끼리 잘해봐. 난 아티스트와 놀 테니까’라고 말하는 그림이랄까.

 

 

지금까지 스테이플은 정말 많은 협업을 해왔다. 협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은 뭘까.

지금은 모두가 협업을 진행하고 있지 않나? 하입비스트(Hypebeast)만 봐도 매일 같이 브랜드 협업 기사를 써낸다. 이미 많은 브랜드가 서로 협업하는 게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각자 쉬지 않고 전화를 돌려대면서 협업을 요청하고 있겠지. 난 협업을 진행할 때 그 브랜드와 직접 만나서 스케치를 해보거나 저녁을 먹는다. 구식이지만, 이런 과정이 ‘진짜 협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여러 브랜드가 하는 협업은 서로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않은 채 그저 이 메일과 몇 통의 문자, 파일을 주고받으며 샘플을 제작하고 보여주는 정도로 협업을 진행한다. 아마 길에서 만나도 서로 누군지 몰라서 인사조차 못 하고 지나치겠지. 스테이플은 역사에 비해 비교적 적은 협업을 진행했다. 한 해 평균 두 건에서 네 건 사이 정도였으니까. 다른 브랜드는 한 달에 한 번은 협업하는 것 같다. 가끔 내 비즈니스 파트너와 세일즈 담당자가 왜 협업하지 않느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내 대답은 간단하다. ‘협업하고 싶은 브랜드가 없으니까.’ ‘혹은 내가 협업하고 싶은 브랜드 디렉터를 만난 적이 없어서.’ 이렇게 두 가지다. 어떤 회사의 경우는 시즌 카탈로그의 준비서류에 ‘협업?’이라고 적힌 네모 박스를 마련해둔다. 누구랑 하던지 상관없으니 무조건 협업을 하자는 의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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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번 푸마와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3년 전 푸마와 일본판 클라이드로 협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200달러 정도의 가격에 한정판으로 발매했는데, 나름대로 흡족했던 프로젝트다. 시간이 지나 이전보다 가격을 줄이고 수량을 늘려서 많은 사람이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스니커를 만들고 싶었다. 다시 시작함과 동시에 이번에는 일본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제작하길 원했지. 비둘기의 대표 컬러인 흰색, 회색, 검은색을 스웨이드 스니커에 배분했다. 그리고 각 스니커의 발매 국가를 전부 다르게 설정함으로써 네 가지로 이루어진 스니커 세트를 모으는 걸 어렵게 만들었다. 하하.

 

 

어느 국가에 배분했나.

흰색은 북, 남아메리카, 회색은 유럽과 중동, 검정은 아시아와 호주에서 발매했다. 오래전 나이키는 도쿄, 런던, LA, 뉴욕 등 지역별로 다른 스니커를 만들었다. 뉴욕에 살면서 도쿄발 신발을 갖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 직접 스니커 사냥꾼이 되어야만 다른 지역의 스니커를 소유할 수 있었다. 현재 나이키 랩(Nike Lab)에서 발매하는 제품은 소량이지만, 전 세계 누구나 가질 수 있다. 푸마와 함께 예전의 스니커 수집에 대한 향수를 끄집어내고 싶었던 거다. 우리는 한 가지 반칙을 했는데, 스테이플의 웹사이트에서 전 세계 정식 발매일보다 일주일 빠르게 네 가지 신발을 모두 판매했다.

 

 

그렇다면 스테이플이 지향하는 방식의 협업은 무엇인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협업을 원한다. 내년은 스테이플의 20주년이기에 많은 협업을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내 방식의 협업은 쉽지 않다. 해외에 있는 브랜드의 경우에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직접 대화를 나눠야 한다. 내게 협업은 데이트와 같다.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이 사람과 잘 맞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협업에 있어 각각의 브랜드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협업을 진행할 수 없겠지. 당장 협업을 하지 않아도 알고 지내는 일 또한 좋은 것 아닌가?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나서 그 브랜드가 마음에 들면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진행은 한 달부터 일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스테이플은 단순히 돈으로 움직이는 협업을 지향하지 않는다. 특히 의류 라인 협업은 우리 컬렉션의 1% 정도만을 차지할 뿐이다. 나는 협업을 위해 적당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헌드레즈(The Hundreds)와는 무려 5년간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아직도 협업하지 않았다. 하하. 불과 지난달 바비 헌드레드(Bobby Hundred)를 만났는데도 결정하지 못 했다. 결코 서두를 필요가 없다. 어느 순간 적당한 때가 찾아오고 물 흐르듯 일을 진행하면 된다. 나는 대표로서 다른 회사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다. 각자 디자인 팀이 있기에 세부적인 사항은 그들이 또 이야기하겠지. 그러나 일 속에는 반드시 자연스럽고 긴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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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인 스킬쉐어(Skillshare)에서 강의를 진행 중이다. 그동안 스킬쉐어로 진행한 프로그램을 소개해달라.

스킬쉐어는 매우 좋은 프로그램이다. 나는 스킬쉐어 이전부터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NYU, 콜롬비아 등 다양한 학교 강단에 섰고, 30명 정도 되는 학생이 내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이 30명은 대부분 부유한 집에서 자랐지. 내 강의를 듣는 데 큰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선호하는 타입의 학생도 아니었다. 새롭고 젊은 친구와 교류하고 지식을 나누는 게 내가 강단에 서는 목적이다. 그런 학생들이라면 돈을 안 받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지. 스킬쉐어는 나만의 교실을 만들어준다. 학생은 전 세계 사람이다. 최다 수강생은 25,000명이었다. 웹사이트를 통해 대화하고 과제를 내주는 것 또한 가능하다. 학생이 직접 당신에게 강의료를 지급하니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신생 브랜드 디렉터들을 한 데 모아서 진행한 수업이 있다고 들었다.

난 지금까지 6개의 수업을 진행했다. 내 첫 수업은 콘테스트 방식을 취했는데, 8,000명이 넘은 학생이 자신의 브랜드를 나에게 보내줬다. LA부터 아프리카까지 정말 다양했지. 이 많은 브랜드끼리 서로 교류하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난 이 중 탑 50을 선정했고, 다시 10개로 줄였다. 그 10개 브랜드 디렉터를 뉴욕에 초대한 뒤 1:1 조언을 해줬지. 한국 브랜드 이세(IISE) 또한 이 중 하나였다. 난 그들에게 과제를 주고 1등을 선별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스트리트 패션쇼 ‘아젠다 쇼(Agenda Show)’ 부스를 선물했다. 돈만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쇼지. 남아프리카에서 온 브랜드가 우승해서 부스를 받았다. 이런 일은 스킬쉐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스킬쉐어를 통해 어떤 성과를 거두고 싶은가.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 그들이 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나도 그들에게 배운다. 전 세계 창의력 있는 인재를 연결하는 일도 스킬쉐어의 목적 중 하나다. 이런 모든 일은 나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일이지. 특히 나보다 훨씬 어린 학생의 브랜드를 보는 건 매우 흥미롭다. 인터넷과 함께 자란 이들의 브랜드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 그들의 생각을 내 방식으로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내가 터득한 회사 경영이나 비즈니스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고 정보를 나누는 거다.

 

 

혹시 스킬쉐어의 성격을 띤 다른 플랫폼이 있는지.

이미 스킬쉐어를 베껴낸 여러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 나 또한 요청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난 스킬쉐어에서만 강의를 진행한다. 너무나 많은 회사가 생겼기에 자신과 맞는 회사를 선택하는 게 제일 좋겠지.

 

 

가까운 시일에 다른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 있는가?

현재 6개의 수업이 있다. 새로운 분야의 강의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 역시 공부해야겠지. 또한,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려면 흥미로운 소재가 필요하다. 아마 좀 더 명확한 강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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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유명한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 또한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활약 중이다. 이 직업은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나와 후지와라는 하는 일이 조금 다르다. 예컨대 크리에이티브 컨설팅은 통역사이자 항해사다. 큰 회사는 젊은 사람, 자주 대면하지 못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 난 큰 회사가 뭘 원하는지 파악하고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지. 당신이 입고 있는 스톤 아일랜드는 정말 크고 오래된 기업이다. 그러다 그들은 스켑타(Skepta)를 필요로 하지. 이런 경우 스켑타는 스톤 아일랜드의 통역사 역할을 하는 거다. 스켑타가 스톤 아일랜드에서 광고료를 받지 않더라도 팬에게 ‘이 X되는 브랜드, 스톤아일랜드를 체크해봐!’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즉시 스톤 아일랜드를 파고든다.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를 펴고 항로를 결정해야 한다. 후지와라 히로시나 나에게 마법 물약 따위는 없다. ‘쿨’한 프로덕트를 내놓는 필승의 방식을 내놓을 수 없다는 얘기다. 모든 고객과 상황에 맞는 각각의 요구가 있다. 그걸 정확히 짚어내는 일을 크리에이티브 큐레이션(Creative Curation)이라고 부르겠지. 히로시는 내 멘토이자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다. 그는 사람의 취향을 만드는 테이스트 메이커에 가깝다. 일종의 음식평론가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음식평론가는 음식점에서 음식을 맛보고 그게 어떤지 평가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 의견에 따른다. 난 브랜드와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입장이다. 그가 프라그먼트 디자인(Fragment Design) 로고를 상품에 넣는 일은 이 제품이 좋다는 평가이자 증명이다.

 

 

일하는 방식의 차이에 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들려줄 수 있나?

난 항상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그의 레벨에는 닿지 못했다. 아마 나도 언젠가는 비둘기 로고만 넣어도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하. 그는 자신이 테니스 클래식 스니커를 새롭게 디자인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테니스 클래식이 마음에 들어, 이건 정말 훌륭해.”라고 의견을 내비치는 거다. 내가 푸마와 협업할 때 흰색 푸마 스웨이드에 비둘기 로고만을 넣을 수는 없다. 콘셉트와 나아갈 방법을 구상하는 일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된다. 이 두 프로세스가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다. 히로시는 프라그먼트 디자인의 협업, 프로덕트를 언급할 때 직접 만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즐긴다. 실제로 프라그먼트 디자인 오피스엔 창고가 없다. 모든 것은 나이키나 리바이스(Levi‘s), 버튼(burton)이 만들고, 재고와 비즈니스까지 담당한다. 프라그먼트 디자인은 아이디어를 던져 줄 뿐이다. 프라그먼트 디자인에 얼마나 많은 직원이 있을 것 같나? 히로시 외 두 명이 회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내 아래엔 48명의 직원이 움직이고 있다. 난 단추와 지퍼를 제작하는 직원, 배송할 직원도 필요하지만, 히로시는 이런 이들이 필요하지 않다. 나도 그처럼 일할 수 있길 원한다. 그러나 난 아직 그 정도 인물이 되지 못 했다. 히로시는 나보다 훨씬 영리한 사람이다.

 

 

패션필드에서 많은 일을 해왔다. 당신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패션, 디자인, 판매, 교육까지 이미 너무 많은 일을 벌여 놨다. 하하. 지금 하는 일을 더 멋지게 잘하고 싶을 뿐이다. 더는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진 않다.

 

진행 / 글 ㅣ 오욱석, 이신재

사진 ㅣ 백윤범

Staple Design 공식 웹사이트
Jeff Staple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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