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유람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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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연배가 한참 위인 한 어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이 비슷한 할배들끼리 노니까 배우는 게 없다고. 인생 다 산 소리나 하면서 매일 누군가 욕하기 바쁜데, 그러면 진짜로 늙는 거라고. 어린 친구들 말에 경청하면서부터 다시 사는 데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단다. 그는 자기네 말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니 곧이곧대로 새기지 말라며, 어린 나이에 벌써 달관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반대로 생각해보니 마찬가지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노년의 삶에서 나는 굳이 시선을 돌린 채 살아왔다. 그들의 존재가 나에게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어쩌면 오늘의 경험이 노인의 입처럼 굳게 닫힌 벽에 약간의 틈새를 열어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방 손님은 대부분 여주인과 친하다. 이들은 들어오면서 주인에게 꼭 안부 인사를 한 두 마디씩 건넨다. 근처 쌀집 아저씨도 오고, 식당 주인도 오고, 정수기 필터를 교체해주러 온 아저씨도 들른 김에 차 한잔하고 간다. 물건을 맡겨놓고 금세 사라지는 손님도 있다. 자주 드나드는 단골이 지역 주민들이라 그런지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는 자연스레 주인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다방은 거창하게 말하자면 지역 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 지역 특색이나 주변 상황과 맞물려 독특한 성격의 공간으로 발전한 듯했다. 돌이켜 보니 다방은 그 주인을 닮았다. 그리고 그 주인이 남자인 건 왠지 상상하기 힘들다.

요즘 커피숍은 영업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다방은 오래된 TV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한 다방 주인은 손님이 없는 오전이나 밤에는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기도 하지만, 대개는 음악을 꺼둔다고 했다. 물론, 와이파이를 지원하는 다방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러니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낼 요량이라면 차라리 근처 커피숍을 찾아보는 게 낫다. 어느 다방엘 가든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는 주인이 따뜻한 엽차 한 잔을 내준다. 물 한 잔이지만, 카페와 구분되는 온기가 있다. 난 이때까지도 엽차가 그냥 물이라는 걸 몰랐다.

 

 

인현 시장 근처 다방 주인은 자기를 그냥 이모라고 부르라 했다. 이 다방이 50년 된 자리인데, 지금 이모는 20여 년 전쯤 예전 주인에게 가게를 이어받아 지금까지 운영했다. 이곳은 ‘문학 다방’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한 이모는 다방 벽에도 온갖 시와 글을 붙여놓았다. 다방에서 주최하는 어떤 문학 모임 회원들의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마디 얘기를 나누자마자 이모는 책꽂이에서 책을 한 아름 들고 왔다. 한번 읽어나 보라면서. 하나를 물으면 이모는 열 가지의 자부심을 늘어놓았다. 드라마, 영화 촬영장소로도 자주 등장했는지, 사진을 한가득 스크랩한 파일이 옆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우연히 한 번 들른 젊은 친구들도 이곳의 편안함에 매료되어 곧 단골이 된단다. 담배를 못 참는 어르신도 많아서 손님이 많이 없을 때는 그냥 감수하고 재떨이를 드린다고. 불법이라기보다는 서로를 배려한다는 인상이다. 이점은 거의 모든 다방이 비슷했다.

이곳은 철제 냉동고 대신 오래된 아이스크림 통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나 볼 법한 전화기도 반가웠다. 주변 골동품 업자나 어디서 장사하는 아무개가 와서 비싸게 살 테니까 팔라고도 했다. 그래도 이모는 끝까지 넘기지 않았다. 뭐든 옛날 게 좋으니까. 그 좋은 게 하나둘씩 사라지는 요즘, 이모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곧 가게를 이전한다고 했다. 상호가 예쁘게 적힌 커피잔도 있었다. 유독 널찍한 소파와 격자무늬의 바닥이 이모의 취향과 마음 씀씀이를 펼쳐냈다. 가게 주인이 이토록 자신의 공간을 아끼니 손님이라고 다를까. 이모는 유창하게 다방을 소개했지만, 정작 개인적인 이야기는 사양했다. 방송 어디에 나왔다는 팻말로 다방 벽을 훼손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자신을 알리기에 급급한 요즘, 이모는 오랜 세월 가게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레 삶의 지혜를 터득한 것 같았다. 유난히 따뜻했던 곳. 손님들 편하게 놀고 쉬다 가면 그걸로 됐다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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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밤이다. 다방의 밤은 유난히 더 어둡다. 손님이 아무도 없는 이곳에 홀로 앉아 있으면 감상에 젖게 십상이다. 정처 없이 쏘다니다 잠시 비를 피하는 그런 기분. 그들도 잠시 비를 피하고자 다방을 찾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서대문 근처 한 다방에 밤 8시쯤 도착했다. 이곳 역시 50년 가까이 된 다방이다. 지금 주인은 세 번째로 맡아 93년부터 지금까지 운영해왔다. 근처에는 관공서와 신문사가 많아 노인들보다는 주로 양복 입은 회사원이나 지역 주민들이 온다고. 주인은 요새 서로 대화는 안 하고 스마트 폰만 보는 회사원들도 늘었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과거 한 매체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적 있는데, 기자가 숫제 소설을 써놓았다며 투덜거렸다. 그 뒤로 주인은 취재를 일체 거부했다. 내 물음에도 몇 번 퉁명스럽게 반응했지만, 명함에 적힌 이름과 본인의 성씨가 같다는 걸 확인한 다음부터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전통과 예절을 강조하는 분이었다.

예전에는 교통편이 지금처럼 고르지 못해서 당시 직장인들은 새벽 나절부터 통근 버스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회사 근처에 도착하면 자투리 시간이 남아 다방에서 쉬어가곤 했다고. 카카오 버스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다. 지금처럼 잠시 머무를 곳이 많지 않던 때, 다방은 참 많은 역할을 했구나 싶다. 쉽지 않은 도시 생활 속 그들의 이름을 외고 맞아준 곳. 그때는 우글거렸을, 텅 빈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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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한쪽을 가득 메운 해바라기와 화초를 보니 주인의 취향이 퍽 화사한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꽃에 관심 없단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사달라고 하길래 어쩌다 저만큼 들여놨을 뿐이라고. 이 공간을 대표하는 색이 그런 별 볼 일 없는 우연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니 웃음이 났다. 호방한 분이라 왠지 다방 아가씨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도 될 것 같았다. 조심스레 운을 띄우자, 막힘없이 답한다. 주인은 일반인들이 영화나 TV에서 다루는 일부분만 보고 나서는 죄다 티켓다방만 있는 줄 안다고 답답한 심정을 꺼내놓았다. 미모의 여성을 고용했지만, 접대를 보낸 적은 없었다. 종업원이 또각거리는 구두를 신거나 껌을 씹고 있으면 즉시 돌려보냈을 정도로 깨끗하게 운영했다. 손님과 친해진 종업원들이 자리에 앉아 차 한잔하고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지, 같이 술을 먹거나 다른 만남을 주선하는 식의 영업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다방에서 쉽게 술도 팔던 때인데, 주인은 자신의 장사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는 철저히 금했다. 그 시절, 다른 가게를 나무랄 것도 없지만, 적어도 이곳은 손님과 주인 간의 단단한 믿음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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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TV, 테이블 다 예전 주인이 쓰던 그대로다. 벽에 붙은 그림 하나 바꾸지 않았다. 딱히 고장 난 것도 아니니까. 우리는 너무 많이 사들이고 또 너무 많이 내다버린다. 새것, 새것, 새것만을 숭배하는 시대. 값비싼 커피 머신에서 질 좋은 원두를 갈아 만드는 세련된 카페만 해도 서울 바닥에 널렸는데, 다방이 웬 말인가. 그러나 이들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서 미련하게 다방 자리를 지키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소신껏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옛날사람일 뿐. 모든 카페의 주문이 진동벨로 이루어진다면 그것도 서글픈 일이다.

우리가 수십 가지나 되는 외국산 음료를 고르려고 카페를 찾는 게 아니듯, 그들도 단지 늙어서 다방에 가는 게 아니다. 서툴러서, 새로운 방식이 어색해서, 아니면 뭐 이런저런 이유로. 열 달 전, 친구들과 함께 세대의 벽 앞에서 잠시 망설이던 기억. 어색한 시선을 떨군 건 분명 나뿐이 아니었을 터다. 누군가 나에게 맛집처럼, 갈 만한 다방을 묻는다면 그냥 가까운 곳 아무 데나 가보라고 하겠다. 어차피 어딜 가더라도 익숙한 옷처럼 몸에 맞지는 않을 테니까. 다만 오랜만에 반가운 누군가를 만나 세상 사는 이야기하고 싶을 때, 서울 어느 거리에서 다방을 마주친다면 그때는 한 번쯤은.

다방유람 -上-

사진 ㅣ 권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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