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FLA

‘혜성같이 등장하다’라는 관용구는 꼭 나플라(Nafla)를 위한 말 같다. LA에서 서울로 날아온 그의 음악은 한국 힙합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래퍼와 팬, 미디어는 모두 LA를 주목했다. 시선은 이제 메킷레인(MKIT RAIN)의 나플라로 향한다. LA와 서울, 전혀 다른 두 도시를 경험한 이 래퍼는 과연 어떤 음악을 준비하고 있을까. 공격적인 음악과 다르게 나플라는 오히려 순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최근 뭘 하면서 지냈나?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다. 특별한 구상은 없다. 정해진 틀 없이 좋아하는 소리나 비트가 있으면 곡을 만들어보는 식으로 하고 있다.

 

레이블 메킷레인이 생긴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팔로워 수가 늘어나는 게 확연히 보인다. 1년 동안 우리가 널리 퍼진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하는 팬과 스타일을 좋아하는 팬으로 층이 갈리는 것도 재밌다. 개인적으로는 공연 노하우가 생겼다. 처음에는 인이어 끼는 법조차 몰랐으니까. 지금도 계속해서 레벨을 올리는 기분이다.

 

‘MKIT RAIN 퍼스트 클래스’, ‘EBS 스페이스 공감’, 중국 공연 등 큰 공연이 이어졌다. 부담감은 없었는지?

나는 집에서 직접 음악을 만든다. 믹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페스티벌에서 음악을 재생했을 때 다른 아티스트에 비해 음압이 적었다. 이제는 여러 부분에서 ‘이런 것까지도 신경 써야 하는구나’라고 느낀다. 많은 걸 깨우치는 중이다. 체력적으로는 날씨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대구 공연 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정말 덥다는 말밖에 안 나오더라.

 

메킷레인은 어떻게 만들어진 레이블인가?

결국에는 크루가 레이블이 된 거다. LA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음악 하다가 우리 음악을 가지고 한국에 가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다만 어떤 레이블에 들어가든지 레이블 색깔이 입혀질 수밖에 없지 않나. 그보다는 우리 스타일을 유지하고 싶어서 직접 만든 거다.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자랐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다섯 살까지 살았다. 중간에 한국에 들어와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가 다시 미국에 돌아가서 대학교를 나왔다. 현재는 이중국적이다.

 

언제부터 음악을 진지하게 대한 건가?

사실, 나는 그냥 대학생이었다. 음악은 취미였을 뿐, 직업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교 졸업 막바지에 딱 반년 남았을 때 ‘큰일 났다. 이제 뭐 하지?’ 싶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잘 풀려서 음악을 계속하고 있다.

 

당신이 살던 LA에도 아시아 신(Scene)이 있지 않았나.

그렇다. LA에도 영어로 랩 하는 신과 한국어 래퍼 신으로 나뉜다. 영어로 랩 하는 쪽이 우리보다 조금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한국어 신은 취미에 가까웠는데, 메킷레인이 자리를 잡아준 듯하다.

LE TV – KIHLA Cypher in LA 

LA에서 음악을 할 때부터 한국행을 생각했는지?

처음부터 한국어로 랩을 했고, 항상 한국을 바라봤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 레이블 어디 들어갈래’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지냈다.

 

한국으로 넘어올 때 어떤 결심 같은 게 있었나.

루피(LOOPY)가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 간다고 선전포고했다. 케이 타운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는데, 느닷없이 그런 말을 뱉으니 다들 ‘멘붕’이었지.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결과, 다들 따라가기로 했다. 2015년 10월의 이야기다.

 

기존 국내 래퍼들과 친분이 있던 건가?

아니. 13년 만에 돌아온 거다. 한국은 뭐가 바뀐 것 같으면서도 안 바뀌었다.

 

한국 힙합 신을 체감하는가.

‘쇼미더머니’라는 베이스가 있지 않나. 힙합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렸다.

 

한국에 잘 적응했나?

아직도 어렵다. 특히 날씨가 힘들다. 캘리포니아 쪽 날씨는 정말 최고다. 반면에 서울은 너무 춥거나 너무 덥다. 이제야 좋아질 기미가 보인다. 지금 즐기면서 좋은 음악을 많이 뽑아야 한다. 하하.

Nafla – Locked & Loaded (Feat. Owen Ovadoz) M/V

나플라가 주목받은 건 역시 “Locked & Loaded”의 공이 컸다. 이 트랙의 성공 이후 순차적으로 싱글이 나왔다.

앞서 말했듯이 작업을 멈추지 않는 스타일이다. “Wu”도 그때 연속으로 만든 트랙이다. “Mercy”는 “Wu”보다 더 먼저 만들었다. 당시 공개한 트랙마다 반응이 좋았는데, 사실 발매 시기에 관해서는 요새 더 고민이 많다. 아무래도 상업적으로 노선이 바뀌었으니까.

 

“Wu”는 누가 봐도 우탱 클랜(Wu-tang Clan)을 모티브로 한 곡이다. 우탱 클랜에 각별한 애정이 있는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우탱 클랜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를 좋아하면 좋아했지. 근데 “Wu”의 비트에 우탱 클랜의 무드가 있지 않나. 거기에 맞췄다. 우탱 클랜 중에서는 메쏘드 맨(Method Man)과 올 더리 바스타드(Ol’ Dirty Bastard)를 좋아한다. 둘의 스타일을 참고했다.

 

인터뷰에서 빅 엘(Big L), 제이지(JAY Z), 노토리어스 비아이지를 유독 강조했다. LA에 살면서도 동부 래퍼들을 좋아하는 이유라면?

나에게 미국 힙합을 들려준 게 영 웨스트(Young West)라는 친구인데, 그가 처음 들려준 게 빅 엘이다. 그 전에는 소울 컴퍼니(Soul Company), 허니 패밀리(Honey Family), 소울 커넥션(Soul Connection) 등 한국 힙합만 들었다. 미국 힙합의 매력을 그때 알았다. 그렇다 보니 뉴욕 사운드가 첫인상이 강했다. 지금은 여러 부류를 즐겨 듣고 좋아한다.

 

어떤 뮤지션에게서 영향받았는지?

시대마다 다르다. 전에는 90년대의 뉴욕 사운드를 좋아했다면,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Section. 80]으로 날아다닐 때는 켄드릭 라마가 가장 인상 깊었다. 라임 배치를 특이하게 하지 않나. 비슷한 시기에 탈립 콸리(Talib Kweli)도 좋아했다. 음악을 플로우에 집중해서 듣던 시기다. 조이 배드애스(Joey Bada$$)가 [1999]를 냈을 땐 ‘아, 역시 이거였지’하면서 뉴욕 힙합을 들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피처링 제의도 많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실제로 피처링한 횟수는 적은 편이다.

꽤 많이 거절했다. 베이빌론(Babylon)과 했던 건 당시 나에게 제안한 첫 유명인이었기 때문이다. 함께하면 내 목소리를 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피처링 하나하나에 ‘나플라’를 알리려는 의도가 있었다. 다만 너무 피처링이 잦으면 색깔이 굳어질 거 같아서 어느 정도 몸을 사린 것도 있다.

 

우태운과의 협업에서 말이 좀 나왔다.

그 곡에서도 이야기하지만,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컸다. 나도 주변인에게 곡을 추천해줄 때 “야, 이 곡 피처링한 애 좆 돼. 들어봐”라고 한다. 비트가 내 맘에 들고, 내가 잘하면 만족스럽다. 거기에 돈까지 주면 흔쾌히 할 수 있다.

본인의 랩에 상당히 자신 있는 듯하다.

내가 최근 화가 나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는 더 심했다. 난 잘하는데 들려줄 곳이 없으니까. 그래도 결국, 잘하면 사람들은 모인다. 지금은 반대로 겸손해졌다. 랩을 내세우기보다는 곡을 정말 곡처럼 만들고 싶다.

 

[This & That]은 전체적으로 둔탁하다. 당신의 감정과 상태가 영향을 미쳤을 듯한데.

[This & That] 이전에 2010년에 만든 믹스테입이 있고, [Platonixtape]과 [Buttafla Effect]가 있다. 모든 믹스테입을 만들 때 마음가짐은 같다. [This & That]을 만들 땐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내 목소리, 내 랩, 내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데 채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더 열심히, 더 잘, 더 난리를 부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한국 힙합을 동경하던 나플라가 한국에서 반응을 일으켰을 때, 그 감흥은 어땠나?

“Locked and Loaded”가 처음이었다. 그때만 해도 오왼 오바도즈(Owen Ovadoz)를 만난 적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파일을 주고받으면 곡을 만들어 올리는 식이었다. 오왼 오바도즈가 베이스크림(Basecream) 소속이지 않나. 거기서 리포스트를 해주니까 내 소셜 미디어에도 반응이 왔다. 그걸 꽉 채워서 보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확인을 안 했다. 확실하게 반응을 느낀 건 헨즈 클럽(The Henz club)이었다. 화장실 가고 싶은데 못 나갈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기대치보다 [New Blood] EP의 피드백은 적은 듯하다.

첫 등장은 마치 슈프림 박스 로고 드롭하는 거다. 이제는 끝났다. 볼 사람은 이미 다 봤지 않나. 처음이 가장 프레시하다. 근데 신선하단 건 언젠가 썩는단 뜻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다른 신선함을 추구한다. 내가 “Wu”를 냈고, “Wu”가 빨린다고 “Wu 2″를 만들면 이미 프레시하지 않은 거다. [New Blood]를 만들 때는 최근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새로운 랩을 보여주고 싶었다.

 

[New Blood]는 처음에 음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선가?

[New Blood]의 믹싱/마스터링을 내가 직접 했는데 자신이 없었다.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다른 프로덕트에 비해 수준이 떨어질 거로 생각했다. 쌓인 거 빨리 내보내는 목적이었기에 널리 퍼뜨리는 게 중요치 않았다. 듣고 싶으면 듣고 말면 말라는 식이었다.

Nafla – Mercy (Feat. AP) M/V 

리스너 입장에서는 나플라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때라고 느껴서인지, 마스터링에 아쉬움이 남았다.

[New Blood]의 믹싱/마스터링을 직접 한 이유도 있다. “Mercy”를 여러 스튜디오에 맡겼는데, 내가 생각하는 맛이 안 났다. “Mercy”는 좀 꾸깃꾸깃해야 맛깔나는 곡인데, 스튜디오에 맡기면 내가 일부러 삑사리를 낸 부분조차도 깔끔하게 나오더라. 그렇다고 “Mercy”만 내가 직접 하고 나머지는 스튜디오에 맡기면 전체적 흐름에 비교했을 때 “Mercy”가 이상해진다. 그래서 내가 전부 직접 한 거다.

 

이제는 당신의 랩을 증명했다고 생각하나?

내가 끝을 찍은 거 같다. 다양한 걸 많이 보여줬다. 이제는 랩보다는 곡을 더 잘 만들고 싶다. 미국은 랩만 잘해도 활동할 수 있지만, 한국은 마니아층만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대중적인 곡도 만들고 싶다.

 

‘겸손’이란 단어가 계속 나오는데, 과거 당신은 롤모델이 필요 없다고 가사를 쓴 적 있다.

아까 말했듯이 뮤지션마다 각기 다른 멋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롤모델을 꼽기 어렵다. 누구는 이래서 멋있고, 누구는 저래서 멋있다. 지금도 롤모델을 찾고 있다. 또 롤모델이 필요 없다고도 느낀다. 굳이 찾아야 하나?

그때그때 받는 영향을 흡수해서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스타일인 것 같다. 최근에는 뭘 듣나?

대단한 아티스트가 많다 보니 겸손해진다. 요즘은 비틀스(The Beatles)를 듣는다.

 

한국 래퍼는 누굴 좋아하나.

재지팩트(Jazzyfact). 예전에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에 들어갔는데 1위에 있더라. 궁금해서 들어봤더니 엄청 잘하더라고. 아, 아티스트보다는 트랙을 따라가는 편이다. 박명호의 “사진”, 디지(Deegie)의 “너는 천사다 난 아닌데”.

 

당신은 왠지 미국 메인스트림만 들으면서 자란 이미지다. 실제로 ‘미국물’이란 말을 인터뷰에서 언급하지 않았나.

맞다. ‘메킷레인 놈들 미국물’. 하하. 미국물은 나에게 메리트다. 기사에 쓸 수 있는 말이다. 우리가 성공한 뒤로 LA에 한국어로 랩 하는 이들이 늘었다. 우리가 새로운 영역을 펼쳐준 느낌이라 뿌듯하다. 부산, 광주, 서울 힙합 신이 있듯이 LA 케이타운 힙합 신이 생긴 거다.

 

메킷레인에 ‘미국물’ 이미지가 없었다면, 지금과는 달랐을까?

못 떴을 거다. 메리트가 없지 않나. 그냥 영어 많이 쓰는 래퍼들이지. 미국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면 비주얼도 부족했을 거다. 우리가 입는 옷, 비디오에서 드러나는 날씨 같은 걸 한국에서 표현했으면 크게 주목받지 않았을 것 같다. LA는 우리에게 좋은 무기다.

‘한영혼용’에 관한 생각도 궁금하다. 한국은 한영혼용에 민감하다.

나는 평소에 말할 때도 영어를 섞어 쓰고 랩 또한 다르지 않다. 한국말도, 영어도 신문에 쓸 수준은 아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다. 언어에 약한 건 내 단점이지만, 둘을 섞으면 내 무기가 된다. 한국 래퍼가 ‘한영혼용’하는 것도 제대로만 하면 상관없다. 딱 보면 티 나는 게 있는데, 그런 래퍼들은 아쉽지.

 

한국 도시의 매력은?

겨울에 옷을 예쁘게 입고 싶은데 결국, 파카를 입어야 한다. 너무 추우니까.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지 그만의 매력이 있는데, 서울은 담배와 술이 어울린다. 왠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뉴욕 같기도 하다. 여유는 없지만 존나 할 거 딱딱 한다. 여유가 많으면 게을러진다.

 

당신이 최근 주목하는 음악은 누구의 것인가.

루피, 재지팩트 2집 그리고 이센스(E SENS). 미국 음악은 나올 때마다 듣다 보니 딱히 기다리는 래퍼는 없다.

 

한국 힙합 신은 유난히 ‘랩이 유행이지, 힙합이 유행이 아니다’라는 말이 통용되는 곳이다. 이 부분을 생각해본 적 있나?

나 역시 힙합 문화를 깊게 파지 않았다. 랩이 먼저였다. 그래서 디제잉, 비보잉, 그라피티 등 힙합 문화에 특별한 자부심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설프게 아는 척 했다가 들키면 그게 더 욕먹을 짓이니까.

 

나플라가 그리는 청사진에 관해 듣고 싶다.

나는 개인의 철학과 태도가 모든 걸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경우엔 아직 못 찾았다.

지금은 한국에서 거주 중인가?

그렇다. 이제는 미국에 ‘놀러’ 간다. 미국으로 한두 달 가서 쉬다 오곤 한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놀 때가 아니니 미국에 가고 싶을 때면 꼭 일할 명분을 만든다. 가서 놀다가도 꼭 곡을 만들어서 가져온다.

 

LA와 서울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고충이라면.

나는 되려 서울에 적응하지 않으려고 한다. 언젠가는 적응하고야 말겠지만,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추고 있다. 그게 나를 다르게 만드니까. 여유를 부려야 미국에 있을 때처럼 음악이 나올 거 같다.

 

그 차이에서 얻는 영감도 다를 것 같은데.

“California Love”와 나스의 음악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한국에서도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받아야 할지 고민한다. 특별한 영감을 찾으러 다닐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아까 언급했듯, 완전한 ‘적응’은 피하는 편이다.

 

LA가 가장 그리울 때는?

핫소스와 렌치. 어니언링 찍어 먹으라고 주는 렌치 소스가 너무 그립다. 한국은 감자튀김에 케첩만 찍어 먹는다. 케첩도 존나 조금 주잖아.

NAFLA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진행 ㅣ 최장민 심은보
글 ㅣ 심은보
사진 ㅣ 유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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