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색 연구ㅣ제2화 슈프림이 정치적 태도를 드러내는 방식

슈프림(Supreme)은 그들이 지지하는 서브컬처를 직접적으로 혹은 은밀한 방식을 통해 제품에 드러내는 걸 즐긴다. 이는 정치적 태도를 표현하는 행위에도 이어지며 많은 이의 머리 위에 또 한 번 물음표를 띄운다. 슈프림은 지난 미국 대선 기간에도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세이지 엘세서(Sage Elsesser)가 ‘I Voted’ 스티커를 든 사진을 게시하며 대선에 높은 관심을 표했다. 그렇다면, 슈프림의 정치적 노선은 과연 어떤 방향일까. 이번 이야기는 17 S/S 시즌에 발매한 제품 디자인을 중심으로 현 미국 정치에 어떤 태도를 견지하는지 알아보자.

 

1.Obama Anorak 

 

슈프림은 미리 공개한 17 S/S 룩북을 통해 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를 프린팅한 제품과 ‘Fuck The President’ 티셔츠를 발표했다. 오바마의 얼굴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프린트가 여러 매체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 제품은 ‘Kangas’로 불리는 아프리카 전통 의복 패턴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다. 오바마의 지지자와 배우 빅토리아 로웰(Victoria Rowell)이 위 패턴을 사용한 드레스를 제작해 시상식에서 착용하며 큰 이슈를 몰았다. 그리고 슈프림은 그 디자인을 차용한 아노락과 셔츠를 발표해 그들이 지지해온 오바마의 퇴임을 기념했다.

 

2. Trump T-Shirts

이외에도 슈프림은 몇 가지 제품에서 자신이 반대하는 정치인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전 대통령과 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다. 사실, 슈프림이 도널드 트럼프와 관련된 제품을 발표한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원유, 볼펜, 사람의 피 같은 독특한 재료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진 러시아 출신의 현대 미술가 안드레이 몰로드킨(Andrei Molodkin)과의 협업이 그 시작점으로, 슈프림은 안드레이 몰로드킨과 세상에 단 한 장뿐인 티셔츠 샘플을 제작했다. 앞면의 박스로고와 함께 뒷면에는 도널드 트럼프의 사진에 반전효과(Negative Effect)를 주어 트럼프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이 티셔츠는 트럼프가 당선된 후 경매가가 치솟아 약 2,600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판매되었다.

 

3. FTP T-Shirt

 

그로부터 14년 후 슈프림은 17 S/S 컬렉션에서 FTP 티셔츠를 발표한다. 티셔츠 속 ‘Fuck The President’ 문구는 누가 보더라도 현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한 디자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문구 아래에 프린팅한 하프와 트럼펫을 연주하는 천사 그림의 의미는 무엇일까. 답은 그림 속 천사들이 연주하는 악기에 있다. 왼쪽의 천사가 연주하는 하프는 레이저 하프 – 레이저 광선을 인터페이스로 연주하는 악기 – 를 의미한다. 과거 미국 SNL에서 트럼프를 풍자한 대역배우가 레이저 하프를 연주한 데서 착안했으며, 오른쪽 천사가 연주하는 트럼펫은 트럼프의 독특한 헤어 스타일을 조롱하는 것. 트럼펫을 마우스로 클릭해 트럼프의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날려주는 기상천외한 사이트를 방문해본다면 그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슈프림은 2003년의 작업처럼 도널드 트럼프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이와 관련된 사건을 천사 프린팅을 통해 재치 있게 풍자했다.

 

 

4. Eternal T-Shirt

 

이터널 티셔츠에 프린팅한 사진은 1963년 정권의 불교 탄압과 미국의 공격에 반하는 의미로 베트남의 틱광둑(Thích Quảng Ðức) 스님이 소신공양 – 스스로 몸을 태워 부처에게 바치는 행위 – 을 행한 것이다. 이 사진은 당시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인식에 큰 변화를 일으킨 역사적인 기록물이며, 자본주의와 미국을 향한 비판적 가사를 담은 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의 92년 앨범 재킷으로도 사용되었다. 슈프림은 이전 시즌 RATM의 폰트를 차용한 모자를 발매하며 RATM에 경의를 표했다.

 

5. Zapata Work Shirt

 

사파타 셔츠와 재킷에 등장하는 에밀리아노 사파타(Emiliano Zapata)는 멕시코 혁명에서 판초 비야와 연합군을 구성해서 싸웠던 아나키스트로, 독재 정권에 대항한 멕시코 독립혁명의 지도자이자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슈프림은 어떤 의도로 틱광둑 스님의 사진과 사파타의 초상이 담긴 의류를 발표했을까. 이는 이전에 벌어진 여러 사건으로 말미암아 현 트럼프 정부와 이에 대항하는 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트럼프가 멕시코 장벽 건설을 주장하고, 이민자를 압박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는 등 이전 정부와 상반된 강압적인 행동을 취해온 것에 반대하는 슈프림의 입장과도 같다. 슈프림은 탄압과 무력에 대항했던 틱광둑 스님의 소신공양 사진과 멕시코의 독재정권과 투쟁한 사파타의 이미지를 현 미국 상황에 대입함으로써 트럼프에 반대하는 뜻을 내비쳤다.

 

6. Cowboy Denim Work Jacket

 

슈프림 2017 S/S 시즌 첫 티저 이미지로 유명한 카우보이 재킷의 프린팅은 과거 말보로(Marlboro)의 유명한 담배 광고 카우보이 시리즈를 제작한 사진작가 짐 크란츠(Jim Krants)의 작품이다. 카우보이 이미지는 기존 필터 담배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새롭게 제작한 광고로써 당시 진짜 카우보이를 모델로 진행해 큰 이슈가 되었다. 말보로는 이 광고를 통해 초창기 미국의 개척 정신을 상기하며,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담배로 자리매김했다.

 

7. 2017 S/S  Supreme x The North Face Collection  

매 시즌 큰 인기를 구가하는 슈프림 x 노스 페이스(The North Face) 협업에서는 1989년 미국, 중국, 영국 등 총 6개국의 탐험대가 남극을 탐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미국의 개척정신과 맞닿아 있는 자랑스럽고도 역사적인 원정이었다. 커다란 성조기를 프로덕트 뒷면에 수 놓은 이번 디자인은 미국의 남극 탐험을 기념하며, 미국의 기본을 이루는 ‘개척 정신’을 나타낸다. 슈프림은 17 S/S 제품을 통해 트럼프를 풍자하고, 미국의 현 정부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도 하고, 미국의 개척 정신을 상기하는 말보로의 이미지와 남극탐험 이야기를 통해 트럼프의 슬로건인 ‘Make America Great Again’의 진정한 의미를 반문한다. 동시에 미국의 독자적인 가치와 정신을 일깨우려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17 S/S 컬렉션에서 선보인 정치 관련 제품은 이전 ‘FUCK BUSH’ 스케이트보드 데크와 같은 직접적인 방식이 아닌 간접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을 택한 터라 컬렉션을 즐기는 재미를 더한다. 앞으로 계속될 17 S/S 제품에 또 어떤 이야기가 더 숨겨져 있을지, 남은 드롭을 기대해보자.

이미지 출처 ㅣ 구글, 슈프림 공식 웹사이트, 디스콕스 등 다수
커버 이미지 ㅣ 이일주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