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영감ㅣ2017년 4월호ㅣ김평우 유지민 기고

19대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 열 네 명의 후보가 TV 토론에서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가장 강력한 후보 문재인과 이를 뒤쫓는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홍준표 후보의 말, 말, 말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고 있다. 봄 날씨와 함께 어딘지 들떠 보이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신은 무엇에 영감을 받는가? 4월 영감은 지난 나플라(Nafla) 인터뷰 촬영을 맡은 유지민(a.k.a Zeemen)과 VISLA가 사랑하는 서울 스케이터, 김평우가 참여했다.

직캠ㅣ 카메라로 직접 찍는 행위

‘직캠’ 혹은 ‘팬캠’은 특정 퍼포먼스를 하는 피사체를 팬들이 고급 DSLR 카메라로 직접 촬영하는 행위를 말한다. 직캠의 장점이라면 기존의 무대 영상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현장감, 그리고 세로형 앵글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퍼포먼서를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언젠가 EXID의 “위아래”라는 곡이 하니 직캠으로 차트 역주행을 시작하더니 각종 차트 1위를 차지하는, 직캠 히스토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했다. 심지어 EXID는 앨범 활동을 마친지 이미 3개월이 지난 뒤였다. 그 뒤로 직캠의 무시무시한 효과를 감지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발 빠른 여우들은 직캠을 조금 더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다.

이제 가수 외 퍼포먼서에게도 초점이 맞춰졌다. 바로 댄스팀 직캠의 등장이다. 인스타그램이 모델과 포토그래퍼와 함께 커다란 상호작용을 일으킨 것처럼, 직캠은 섹시 댄스를 화끈하게 추는 댄스팀과 큰 케미스트리를 발생시켰다. 실제로 유튜브 직캠 조회 수 기준으로 상위에 랭크된 영상 대부분은 이미 댄스팀 직캠이 접수한 상태. 심지어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어디서 돈이 났는지 모를 전문 직캠러(직캠 촬영기사)들의 촬영 장비가 HD에서 4K로 진화했다. 모니터를 세로로 돌리고 4K 직캠 영상을 틀면 섹시댄스를 추는 댄서가 바로 옆에서 숨 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정도면 거의 VR 바로 전 단계라고 볼 수 있겠다.

유튜브에 검색되는 직캠의 조회 수를 살펴보자면, 커버 이미지가 굉장히 자극적이고 야한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직캠을 검색하는 사람들이 더 뜨겁고 더 자극적인 걸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수로 데뷔한 아이돌은 노출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지만, 애초에 행사 위주로 기획된 댄스팀이라면 조금 더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강렬한 안무를 선보이니 직캠 타겟에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레이샤’, ‘밤비노’를 배출해낸 댄스 전문 기획사 JS 엔터테인먼트의 행보를 보며 댄스팀에서 아이돌 가수로 진화한 프로세스를 정리해보자면,

  1. 끼 있는 친구들로 댄스팀을 꾸린다.
  2. 각종행사에 노출시켜 직캠 촬영을 유도한다 – 직접 할 수도 있겠다 -.
  3. 유튜브에 업로드된 직캠의 조회 수가 높아질수록 인지도가 올라간다.
  4. 행사비를 올린다.
  5. 행사비를 모아 앨범을 낸다.
  6. 때깔 좋은 뮤직비디오로 기선을 제압한다.

상위 1%의 거대 아이돌 스타들은 직캠 장사에 관심이 없겠지만, 행사가 주가 되는 영세 기획사들은 아마도 댄스팀에게 밥그릇을 뺏기는 기분일 것이다. 아마도 다들 제2의 밤비노를 기획하거나 넥스트 비즈니스를 힘겹게 예측하지 않을까. 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새로운 스타를 배출한 직캠 컬처를 체크해보자.

VISLA 매거진 그래픽 디자이너 박진우

Bad Brainsㅣ 밴드

배드 브레인즈(Bad Brains)는 1980년대 워싱턴 DC에서 결성된 하드코어 펑크록 밴드다. 나는 이 밴드를 스케이트보드 비디오를 통해 알았다. ‘하드코어 펑크록’이라는 수식어만큼 시끄러운 음악이었고, 스케이팅 역시 강렬했다. 그래서 이 밴드를 좋아했던 것 같다. 예전에 미국에 갔을 때, 우연히 배드 브레인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다. 나는 배드 브레인즈를 다른 펑크록 밴드처럼 다 때려 부수는 이미지로 알고 있었는데, 다큐를 보고 나니 그들은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보컬 H.R.은 무대에서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주지만 평소 모습은 신사 같았다.

몇 주 전 보드를 타다가 어깨가 탈골돼서 응급실에 갔다. 처음 빠진 팔이라 무척 아팠다. 마취하고 진료가 끝나가던 와중에 갑자기 ‘PMA’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PMA’는 밴드의 곡, “Attitude” 가사에 나오는 단어로, ‘Positive Mental Attitude’의 줄임말이다. 당분간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못할 것이다. 보드를 타지 못하는 건 괴로운 일이지만, ‘PMA’라는 말은 그사이 좀 쉬어야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나를 바꾸어놓았다. 왜 갑자기 이 말이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펑크록 밴드가 대체적으로 니힐리즘이나 부정적 태도가 강한 성향이 있는데, 배드 브레인즈는 이에 상반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가 추구하는 스케이트보딩은 배드 브레인즈의 펑크록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스케이터 김평우

청량리 588ㅣ홍등가 

지난주, 청량리 588에 다녀왔다. 곧 있으면 더는 이곳을 볼 수 없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다음 날 바로 짐을 쌌다. 그래도 오랜 서울살이에 이따금 청량리를 지나는 일은 있었지만, 내가 지내던 동네와는 워낙 거리가 있었던 탓에 이곳은 나에게 상상에서나 존재하던 장소였다.

청량리 588은 과거에 서울, 아니 어쩌면 한국을 대표하는 홍등가였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그저 철거 준비가 한창인 폐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밤이면 588일대를 선홍빛으로 환하게 밝혔을 법한 조명들은 산산조각이 난 채로 땅바닥에 나뒹굴었고, 곳곳에 ‘성매매는 불법입니다’, ‘신고합시다’라고 적힌 낙서가 괜스레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행인들은 제대로 된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목길에서 쉴 새 없이 오가는 차들의 전조등을 가로등 삼아 걸음을 재촉했다.

청량리역에서 588 방면으로 처음 맞닥뜨린 집과 마지막 두 집만이 붉은빛을 발했다. 그들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철거를 반대하는 대자보를 크게 써서 유리 벽에 붙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윤여정이 주연한 영화, “죽여주는 여자”가 생각났다. 한참 그곳을 배회하던 나에게 누군가 와서 “이곳은 사유지고, 한창 시끄러울 때니 오래 머물러봤자 좋을 게 없다”고 했다. 이제 청량리 588은 이제 청량리 4구역 재정비촉진지구라는 이름으로 재개발되어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과 랜드마크 타워가 들어선다.

VISLA 매거진 에디터/포토그래퍼 백윤범

분노ㅣ일본 영화

근 몇 년간 내가 믿었던 것들이 되려 발목을 붙잡고, 그사이 스스로 만들어낸 신념 혹은 환상에 억지로 기대는 제법 달라진 나를 발견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잘 몰랐다. 술에 물 탄 듯, 적당히 세속적인 삶을 지향하면서도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마음 한구석에서 욕하는 또 다른 나 자신을 견디기 힘들었고, 그 괴리감은 비뚤어진 욕망으로 번졌다.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기분. 흔히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과 당대 지식인들의 글에서 나름의 해답을 찾고자 했지만, 그것조차도 결국은 내가 겪지 않은 이야기며, 머릿속에서 맴돌지는 모르겠으나 실제 삶에서 내 행동을 바꾸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 나는 어딘가 화로 가득 차 있었다.

감정을 묵히면 곪거나 화가 된다. 삶은 균형적이어야 하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그릇만큼의 물을 채워야 하거늘,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성공을 담보로 오늘의 진실한 순간을 외면하려 했다. 나는 삶에 거창한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 줄 알았다. 범인의 삶을 부정하려고 애쓰던 그 시간 동안 꽤 망가진 것이다. 묵은 화는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뿐. 내 분노는 지금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다만 또다시 실수를 저지르고, 자신을 책망하는 악순환이 시작될 찰나, 옆에서 도와준 이들의 진심은 얄궂게도 전에 없던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도 많은 패배를 마주하겠지만, 적어도 자문한 것,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을까”에 대한 답은 나온 셈이니.

VISLA 매거진 편집장 권혁인

참이슬 클래식ㅣ 소주 

요즘 모든 것이 돌고 돌아 비빔밥에 양념만 바뀐 것마냥 다시 재탄생되고 있다. 난 서른다섯 살 사진가 그리고 전자음악가란 타이틀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를 모두 맛본 나로서는 세상사 무슨 요지경인가 혀를 내두르다가도 밥벌이에 치이며 인정하는 편이다. 언더그라운드, 서브컬처, 아티스트, 디제이, 뮤지션, 기획자, 공연 등 내 주위에 어렵게 숨 쉬는 단어들은 술자리에서 십여 년간 지칠 대로 들었던 화두다. 정신 차리고 돌아보니 나조차도 성공과 실패를 두려워했던지라 그저 즐기면 될 해외 문화를 한복을 곱게 입히고 선비 행사를 하듯 받아들여 지금은 꼰대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처지가 된 지 오래. 술프다. 배고프고.

얼마 전 알게 된 녀석이 나에게 찾아와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사진가를 하고 있다며 어떤 보이지 않는 루트와 인생 설계 비스름한 것을 물어본 적 있다. 술펐다. 배고프고.

혼자 지하 스튜디오에 앉아서 길게 생각하기도 싫어서 짧게 자문했다. “난 어떻게 살아가지?” 지난 겨우내 약 처방 없인 잠도 못 자고 매일 술에 의지하다시피 한 처지라 목 뒤에 낙인이 찍힐 뻔했다. 의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과연 삶에 정답이 있을까? 있다. 멋진 아티스트가 얼마나 많은가. 참고 견뎌냈지 않은가! 술이 덜 깼다.

사실, 멋진 음악이나 사진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못쓰겠다. 우리가 하는 일이 솔직히 멋있지 않거든. 열심히 할 거 하고 노는 수밖에. 모든 것이 돌고 돌아 비빔밥에 양념만 또 바뀐 채 흘러가겠지만 말이다. 오늘도 날이 좋다. 술프다 배고프고.

포토그래퍼 / DJ 유지민

글ㅣVISLA, 김평우, 유지민
커버 이미지ㅣ박진우, 박근범(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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