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색 연구ㅣ제3화 서부 힙합의 전설 2PAC과 슈프림

슈프림(Supreme)은 매해 발표하는 컬렉션에 다양한 문화와 인물의 이야기를 동시에 풀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그들은 힙합을 소재로 특정한 시대와 사건을 짚어내는데, 진홍색 연구 제1화에서는 90년대 뉴욕 힙합의 제왕 비기(Notorious B.I.G)와 슈프림 2017 S/S 시즌을 연결 지어 슈프림이 비기를 오마주하는 방식을 다뤘다. 비기와 양립한 또 한 명의 전설을 기억하는지?  90년대 동서부 힙합 진영에서 일어났던 피 튀기는 디스전을 기억한다면 이번 화의 주인공을 단숨에 유추할 수 있을 것. 지금부터 슈프림이 공개한 제품을 바탕으로 서부 힙합 신(Scene)의 전설적인 인물을 쫓아가보자.

 

1. Leather Utility Vest

이번 시즌 발매한 가죽조끼와 반다나는 90년대 서부 힙합을 대표하는 래퍼 투팍(2PAC)이 애용한 아이템으로, 그 연관성을 비교적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한눈에 알기 쉬운 아이템을 선보이는 것은 왠지 슈프림답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슈프림이 어떤 제품 속에 투팍을 숨겨 놓았는지 지금부터 그 발칙한 속내를 파헤쳐볼까.

 

투팍은 흑인 민권운동이 활발했던 1970년대, 혁명가인 아버지와 흑인 무장조직 흑표당(黑豹黨, Black Panther Party)의 일원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 정부는 흑표당을 강력히 탄압했고 집에 침입해서 체포하는 등 강경한 정책을 펼친다. 투팍의 어머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감옥에 갇힌 그녀는 임신 중이었고, 그 배 속에 있던 아이가 바로 투팍이다. 마치 설화와도 출생 비화. 영웅에게는 항상 고난이 따르는 법.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직장을 잃은 뒤로는 이 도시를 떠나 볼티모어, 마린시티, 오클랜드를 떠돌며 흑인 게토 지역의 열악한 상황를 직접 보고 자랐다. 이 시절 어머니를 향한 특별한 감정과 고통받는 흑인의 현실은 훗날 그의 랩 가사로 고스란히 옮겨진다.

 

2. Origins Keychain

흑인 게토 지역에서 만난 마약중독 10대 미혼모 브렌다의 이야기를 담아낸 곡 “Brenda’s Got a Baby”는 당시의 비참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번 액세서리 중 임신한 여성을 형상화한 열쇠고리는 투팍을 뱃속에 지닌 채 고된 수감 생활을 이어나간 어머니와 10대 미혼모 브렌다를 떠오르게 한다.

 

3. Nun L/S Tee

투팍이 발표한 싱글 “I Wonder If Heaven Got A Ghetto”의 뮤직비디오를 기억하는가. 라이오넬 C. 마틴(Lionel C.Martin)이 감독한 이 뮤직비디오는 총에 맞고 쓰러진 투팍이 가상의 수녀원에서 깨어나 벌어지는 일을 내용으로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이름과 숫자가 투팍을 상징하는 기호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인데, 한 예로 투팍이 깨어난 가상의 수녀원 ‘Rukahs’는 투팍의 이름인 ‘Shakur’를 뒤집은 것이며, 차량의 번호판 ‘61671’은 투팍이 태어난 71년 6월 16일을 뒤집었다. 최근 슈프림에서 발매한 Nun L/S Tee는 수녀의 얼굴을 재치 있게 표현, ‘I Wonder If Heaven Got A Ghetto’ 뮤직비디오에서 투팍을 구한 수녀를 떠올리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M_7Hno0L0o

 

4. Supreme x COMME des GARÇONS SHIRT Gabardine Suit / Air More Uptempo

협업 컬렉션에서도 투팍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슈프림은 이번 꼼 데 가르송 셔츠(COMME des GARÇONS SHIRT)와의 협업에서 눈알 패턴으로 이루어진 게버딘 슈트와 레이온 셔츠, 지갑을 발매했다. 단순히 꼼 데 가르송의 이전 작업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수십 개의 눈을 프린팅한 그래픽에서도 투팍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

 

96년 발매한 투팍의 네 번째 앨범 [All Eyez On Me]는 랩 역사상 최초의 더블 앨범으로 빌보드 앨범 순위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첫 주에만 566,000장을 팔아치우며 골드를 기록했고, 미국 내에서만 6백만 장, 현재까지 9백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더불어 싱글로 발매한 [California Love]는 더블 플래티넘 싱글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번 시즌, 나이키(Nike)와의 협업 모델로 에어 모어 업템포(Air More Uptempo)가 선정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오리지널 모델 에어 모어 업템포는 1996년 투팍이 사망한 해에 발매한 모델이다. 또한, 블랙, 레드 컬러와 함께 골드를 제작한 이유도 투팍의 [All Eyez On Me] 발매 당시 골드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일과 관련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유추해본다.

 

5. Coleman CT200U Mini Bike / Vanson® Leather Star Jacket

이번 시즌의 콜맨(Coleman) 미니 바이크와 벤슨(Vanson) 레더 재킷은 굳이 바이크를 타지 않아도 구매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멋진 아이템이다.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의 대명사 슈프림이 어쩐 일로 바이크 관련 제품을 내놓았을까? 이 역시 슈프림의 수수께끼가 숨어있다. 벤슨 레더 재킷을 발매한 이유에 대해 알고 싶다면 당장 유튜브에 접속해 “112 ft. BIGGIE & MASE – ONLY YOU”를 검색해보라. 그 뮤직비디오 속에서 5초 안에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재킷이 비기를 떠올리게 한다면, 바이크는 이번 화의 주인공 투팍을 언급한다.

투팍의 명곡 “California Love” 뮤직비디오는 1985년에 상영한 영화 매드맥스(Mad Max : Beyond Thunderdome)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다 보면 투팍과 닥터 드레(Dr. Dre)가 탑승한 데저트 카와 함께 질주하는 여러 대의 바이크가 등장한다. 투팍이 사망한 지 20년이 되는 작년과 올해, 그를 기념하는 움직임은 슈프림 외 다른 브랜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6. VLONE / Palace Skateboards / Urban Outfitters

잠시 슈프림에서 눈을 돌려보자. 에이셉 바리(A$AP Bari)가 런칭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브이론(VLONE) 또한 투팍을 기념했다. 브이론은 투팍의 이니셜을 새긴 모자와 의류뿐 아니라 투팍의 사촌 자말라의 레시피로 메뉴를 기획한 레스토랑과 투팍의 인생을 기념하는 특별한 공간 ‘Powamekka Cafe’를 열며 존경을 표했다.

 

영국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팰리스 스케이트보드(Palace Skateboards)도 질세라 투팍 관련 의류를 내놓았고, 미국의 스트리트웨어 편집 스토어 어반 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에서도 ‘The 2Pac Forever Collection’ 캡슐 컬렉션을 통해 투팍 20주기를 기념했다.

 

7. CashCannon™ Money Gun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 많은 스트리트웨어 추종자의 마음에 불을 지폈던, 캐쉬 캐논 머니건은 슈프림의 전매 특허인 ‘쓸데없지만 갖고 싶은’ 아이템 리스트다. 어른을 위한 장난감을 이번 컬렉션에 포함한 이유는 무엇일까. 머니건은 지금까지 언급한 비기와 투팍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는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Thug Life’를 외치며 가난과 고통 속에 신음하던 흑인 공동체의 삶을 진솔한 가사에 담아낸 투팍. 비기를 찾아간 날, 의문의 총격 사건으로부터 촉발된 동서부 힙합 진영 간의 갈등은 결국 비기와 투팍 모두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남겼다. 슈프림은 머니건으로 90년대 힙합을 대표한 두 영웅을 기린다.

슈프림은 결코 투팍을 옷에 새기지 않는다. 허나 투팍에 관련된 이야기를 제품 속에 은밀히 풀어 놓으며 미국 힙합, 나아가 거리의 걸출한 인물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어떤가. 즐거운 시간이 됐나? 투팍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혹, 누가 아는가. 지구상 어딘가에서 마키아벨리로 새 삶을 사는 그가 슈프림 홈페이지를 보며 웃음 짓고 있을지도.

이미지 출처 ㅣ 위키피디아, 슈프림 공식 웹사이트, 디스콕스 등 다수
커버 일러스트 ㅣ 이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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