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색 연구ㅣ제4화 슈프림, 마이클 잭슨을 기리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Michael Joseph Jackson)의 이름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많은 이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2010년 그의 미발표곡을 모은 앨범 [Michael], 2014년 발매한 앨범 [Xscape]는 등장과 동시에 49개국 아이튠스(iTunes)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며 아직 MJ의 인기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작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Forbes)는 숨진 유명인사의 연간 수입을 발표했는데, 마이클 잭슨이 한화 9,300억 원이라는 액수로 4년 연속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그 어마어마한 돈이 천국으로 입금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죽어서도 현존하는 웬만한 가수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매주 목요일 밤, 호시탐탐 당신의 돈을 노리는 슈프림(Supreme)이 이번엔 작정하고 일을 벌였다. 이제는 그 무엇이 컬렉션에 등장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은 행보를 보이는 이 스케이트보드 브랜드가 마이클 잭슨의 손을 잡고 또 하나의 레벨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지난 컬렉션을 통해 마이클 잭슨에 대한 복선을 깔며, 우리의 뒤통수를 또 한 번 후려친다.

 

슈프림이 이번 컬렉션에 삽입한 마이클 잭슨 이미지는 1982년 발매한 [Thriller] 앨범 활동 당시의 이미지로 마이클 잭슨은 빨간 보타이와 가죽 재킷을 착용한 “Billie Jean” 뮤직비디오의 의상을 착용하고 있다. 이 앨범은 세계적으로 6,5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갔으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마이클 잭슨의 황금기를 담고 있는 사진 한 장의 이면에는 그의 어린 시절, 음악, 사랑 등 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마이클 잭슨은 1958년 잭슨 가족의 여덟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마이클 잭슨이 유년기를 보낸 인디애나 주의 게리는 현재까지 미주 신문에 ‘미국 최고의 범죄 도시 Top 5’에 오를 정도로 악명 높은 지역이며, ‘Scary Gary’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경제 악화로부터 발생한 최악의 치안 수준을 자랑하는 도시다. 마이클 잭슨의 아버지는 개리 내 제철공장의 노동자였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그를 버티게 한 유일한 원동력은 음악이었다. 그는 숙부와 함께 리듬 & 블루스 밴드 팔콘즈(Falcons)를 결성해 기타 연주자로 활동했는데, 음악을 사랑한 부모의 영향은 잭슨 형제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비옥한 음악적 토양 안에서 그 재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마이클 잭슨의 아버지는 스택스 레코드의(STAX Records)의 오티스 레딩(Otis Redding)같은 리듬 & 블루스와 초기 로큰롤을 연주했고, 마이클 잭슨의 형제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부커 티 앤 더 엠지스(Booker T. & the M.G.’s)의 기타 연주를 곧잘 따라 했다. 이러한 분위기 덕에 마이클 잭슨은 3살부터 제임스 브라운의 춤과 노래를 접했고 자연스레 흑인음악 특유의 바이브를 체득했다. 어린 시절 형제와 잭슨즈(Jackson’s)를 결성해 활동하던 시카고는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같은 전설의 소울싱어가 활동하던 곳으로 슈프림은 이전 시즌에서 스택스 레코드를 비롯해 앞에 열거한 흑인음악 거장에 대한 존경을 담은 제품을 꾸준히 발매하며 이번 마이클 잭슨 컬렉션 또한 이전부터 진행한 슈프림의 음악 취향을 반영한 협업임을 알린다.

 

마이클 잭슨은 그 폭발적인 가창력의 뿌리로 어머니를 언급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았는데,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 끝내 이루지 못한 음악의 열망 때문이었을까. 어머니는 마이클 잭슨의 누나들에게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마이클 잭슨에겐 노래를 가르쳤다. 슈프림은 지난 드랍에서 옛 소울 앨범을 연상케 하는 폰트로 ‘Sick Mother – Sick Child’라는 문구를 새긴 후디를 발매했다. 어머니와 마이클 잭슨의 관계를 그의 어머니가 앓은 병과 ‘멋진’을 의미하는 ‘Sick’이라는 은어로 돌리며 이런 센스 넘치는 문구를 만들어낸 건 아니었을까.

 

잭슨 형제가 하루아침에 슈퍼스타가 된 것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무대에 오를 수 있다면 그 어디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연을 감행했다. 무명 코미디언, 스트리퍼 사이에서 연주하는 건 잭슨 형제에게 예사였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며 잭슨즈의 매니저를 자처했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디트로이트의 모타운 레코즈(Motown Records)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당시 모타운은 다이애나로스 앤 슈프림즈(Diana Ross & the Supremes)로 미국의 음악 차트를 휩쓸고 있었다.

 

2001년 슈프림은 모타운의 슈프림스 티셔츠를 발매했다. 재즈 뮤지션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러브 슈프림(A Love Supreme) 티셔츠와 같이 ‘Supreme’이라는 단어가 적힌 앨범을 선별한 슈프림의 재치이자 그간 보여준 흑인음악에 대한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결과물이었다.

모타운의 대표 베리 고디 주니어(Berry Gordy Jr.)는 어떻게 하면 모타운 레코즈의 루키 잭슨 파이브(Jackson Five)를 대중에게 알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일단 잭슨 형제를 당시 모타운의 인기가수였던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 집에 머물게 한 것이 그의 첫 번째 전략이었다. 다이애나 로스는 마이클 잭슨에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스타로서 갖춰야 할 능력과 노하우를 전수했고 그들 역시 다이애나 로스를 잘 따랐다. 소파 뒤에 숨어 그녀가 거울 앞에서 하는 춤을 따라 췄다는 일화는 다이애나 로스에 대한 그들의 동경을 잘 나타낸다.

 

 

다이애나 로스는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던 마이클 잭슨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예술가를 소개하며 내면의 예술적 능력을 키워주었다. 마이클 잭슨이 어린 시절 그린 그림 소재 중 유독 미키 마우스가 눈에 많이 띄는데, 그 이유는 바쁜 스케줄로 인해 갈 수 없었던 디즈니랜드에 대한 동경이 그림으로 드러난 것이다. 훗날 디즈니랜드와 3D 영상 어트랙션을 진행한 일 역시 이러한 배경이 있다. 1972년 소년과 쥐의 우정을 그린 동명의 영화 벤(Ben)의 O.S.T에 수록한 곡 “Ben” 또한 쥐를 주제로 한다. 이처럼 마이클 잭슨에게 미키 마우스는 각별한 캐릭터였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봤을 때, 이번 시즌 발매한 슈프림 티셔츠 중 미키 마우스를 소재로 하는 아티스트 조 로버츠(Joe Roberts)의 작품이 등장한 것도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슈프림 제품의 프린팅 중에 자주 등장하는 꽃이 있다. 이번 시즌 롱 슬리브와 플라워 셔츠에 프린팅한 데이지(Daisy)라는 꽃으로 이 꽃에도 잭슨 파이브와 다이애나 로스의 일화가 담겨있다. 1969년 8월 11일 다이애나로스가 언론사를 초대한 자리에서 잭슨 파이브를 소개한 역사적인 장소, 베벌리 힐스에 위치한 프라이빗 클럽의 이름이 ‘데이지(The Daisy)‘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베리 고디 주니어의 두 번째 전략은 다이애나 로스의 유명세를 이용하는 것으로 그녀는 클럽에 초대한 기자에게 잭슨 파이브를 직접 소개하며, 11살짜리 마이클 잭슨에게 8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한 일화는 익히 유명하다. 성인 못지않은 가창력을 소유한 어린아이는 그야말로 신동처럼 비춰졌다.

 

 

마이클 잭슨은 음악 외 많은 분야에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 영화에 큰 매력을 느꼈는데, 데이빗 린치(David Lynch) 감독의 수작 엘리펀트 맨(Elephant man)에 등장하는 존 메릭(John Merrick)의 변신과, 좀비나 늑대인간이 출연하는 스릴러물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마이클의 취향은 그가 출연한 영화와 뮤직비디오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 대한 열정과 매 앨범 새로운 시도를 했던 마이클 잭슨은 신곡을 위해 영화를 제작할 계획을 세운다. 영화 고스트(Ghost, 1996)는 1996년 10월 미국에서 개봉한 35분짜리 단편영화로 그는 홀로 시장, 해골, 악령 등 1인 5역을 맡아 연기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마이클이 해골로 변신해 추는 ‘스켈레톤 댄스(Skeleton Dance)’ 장면이다. 핼러윈 데이 파티에서 슈프림 본즈 스웨터를 입고 고스트의 춤을 따라 춘다면, 그날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마이클잭슨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평생을 온갖 루머와 음모론에 시달려야했다. 슈프림은 마이클 잭슨의 취향, 특정 사건, 루머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프린팅을 선보이기도 했다. Dream 티셔츠의 낙서에는 마이클 잭슨의 관심인 스릴러, 호러와 관련한 소재가 등장한다. 1986년 개봉한 영화 파리(The fly, 1986)를 의미하는 패턴과 스파이더맨의 감독 샘 레이미의 초기작 이블 데드(The Evil Dead, 1981)를 거미줄 그래픽을 통해 재치 있게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에 호러 만화로 프린팅한 70년대 ‘GRIPPER’ 과자봉지까지 본다면 슈프림의 집요한 덕질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릴스 후디에 프린팅한 다양한 인물과 마이클 잭슨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PINORAMA에 접속해보자. 그가 생전 수집한 피겨, 게임기 등 다양한 물건을 웹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스릴스 후디의 모나리자, 이소룡 사진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그를 둘러싼 음모론, 신비주의를 나타내는 상징물을 새겨 넣고, 포르노그라피 이미지를 통해 아동 성추행 누명으로 인한 저택 수사 사건과 성인 잡지를 증거라며 가져간 이들에게 던지는 조롱마저 잊지 않았다.

 

7주차 드롭에서 동시에 발매한 3장의 티셔츠를 기억하는가. 디자인의 연관성을 쉽게 알 수 없는 세 가지 프린팅의 티셔츠, 그 비밀의 열쇠는 마이클 잭슨이었다. 슈프림스의 팬이라면 60년대 밥 헤어, 코와 입의 실루엣만을 보고도 프린팅된 여성이 다이애나 로스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잭슨에게 다이애나 로스는 어려서부터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녀를 위한 곡을 쓸 정도로 아끼고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1995년 마이클 잭슨은 상처의 아픔을 담은 자전적 성격의 앨범, [히스토리(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를 발표한다. 앨범 커버를 담당한 다아애나 왈작(Diana Walczak)은 당시 혁신적인 컴퓨터 그래픽으로 저지 드레드(Judge Dredd, 1995)에 참여했었던 CGI(Computer Generated Imagery) 분야의 선구자였다. 앨범 발표 1년 뒤 이베이(eBay)에 마이클 잭슨의 3D 스캔 이미지가 올라와 마이클 잭슨이 자신을 본뜬 사이버 클론을 제작하려 했다는 소문은 세간의 호기심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디지털로 표현한 마이클 잭슨의 동상과 SF 공포영화 론머 맨(The Lawnmower Man, 1992)에서 선보인 가상공간의 장면을 참고한 슈프림 사이버 티셔츠의 그래픽은 붉은 배경과 푸른빛의 컬러 배치까지 더해 히스토리 앨범 재킷과의 연결고리를 더욱 강하게 한다.

 

 

히스토리 앨범의 첫 싱글이었던 “Scream”은 아들에게 거짓말을 시켜 성추행혐의 합의금을 뜯어낸 이반 챈들러(Evan Chandler) 사건에 대한 마이클의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아들 조든 챈들러(Jordan Chandler)는 MJ 사망 이후 자백했고, 아버지는 죄책감으로 인해 결국 자살했다. 일련의 사건이 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슈프림 티셔츠가 히스토리 앨범을 의미하는 사이버 티셔츠 옆에 나란히 자리하게 된 이유다.

마이클 잭슨 컬렉션은 그간 슈프림이 보여준 흑인 음악에 대한 오마주의 연장선이며, 슈프림은 마이클 잭슨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와 관련된 가십거리와 취향을 짜임새 있게 재구성했다. 슈프림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이클 잭슨 컬렉션 발매일은 마이클 잭슨 기일의 정확히 한 달 전인 5월 25일로 설정했다.

마이클 잭슨의 업적은 MTV 최초로 흑인 뮤직비디오를 방영한 쾌거를 이뤄냈고, 뮤직비디오 속에 컴퓨터 그래픽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일, 음악 녹음 기술의 혁신, 무대 연출, 춤, 패션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찰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다음 세계로의 출발선을 끊었다. 이제 더는 마이클 잭슨의 무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패션 브랜드를 통해 그를 떠올리는 일은 역시나 흥미롭다.

이미지 출처 ㅣ 위키피디아, 슈프림 공식 웹사이트, 컴플렉스, 파인 아트 아메리카 등 다수
커버 일러스트 ㅣ 이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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