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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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SNEAKER LOVE : 정영목

스니커 러브(SNEAKER LOVE)는 말 그대로 신발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 신발에 관한 이야기다. 발을 감싸는 제 기능 이상으로 어느덧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스니커. 이제 사람들은 신발 한족을 사기 위해 밤새도록 줄을 서고, 야영하고, 심지어는 매장문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손에 넣고자 한다. 그들이 신발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VISLA와 MUSINSA가 공동 제작하는 콘텐츠, 스니커 러브는 매달 한 명씩 '신발을 무진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가 아끼는 스니커의 이모저모를 물을 예정이다. 애인보다 아끼고, 엄마보다 자주 보는 스니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지나간 스냅백 열풍을 떠올려 본다면, 스냅하이(Snaphigh)라는 닉네임, 혹은 정영목이라는 커스터마이저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후 스니커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세상에 단 한족뿐인 커스텀 스니커를 제작하며, 국내외 많은 커스터마이저에게 영감을 주었다. 모자부터 스니커, 다양한 의류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는 능력은 세계적인 커스터마이저와 비견해도 부족함이 없다. 다양한 스니커를 능숙하게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그에게 스니커란 오랜 친구이자 예술작품과도 같은 각별한 물건이다. 남들이 쉽게 볼 수 없는 스니커의 속내, 커스터마이저로서 들려주는 스니커 커스텀 신(Scene)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아래 인터뷰를 확인해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평범한 IT 회사에서 전략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정영목이다. 인터뷰 성격에 맞게 말하자면, 모자나 스니커를 커스텀하는 커스터마이저 ‘Mr Seoul Money’ 정도로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

 

스냅하이(Snaphigh)라는 이름으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한 적 있다. 당시에는 모자를 중심으로 커스텀 활동을 펼쳤는데.

스냅하이라는 닉네임은 애초에 스냅백이라는 모자 카테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모자를 커스텀한다는 개념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거다. 이미 너무나 유명한 미국의 커스터머 저스트 돈(Just Don)이 그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지. 분명 그전에도 모자 커스텀이 존재했지만, 그게 하나의 게임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스니커 커스텀은 이전부터 하나의 문화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결국, 그 둘 모두 커스텀이라는 문화로 엮이지 않나. 내가 스니커 커스텀으로 영역을 넓힌 이유 또한 커스텀이라는 문화가 스냅백이나 에어 조던(Air Jordan)을 착용하는 것에서 뻗어 나왔기에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었던 거다. 애초에 어떻게 시작했냐고 묻는다면, 정말 어렸을 때부터 스니커에 장난치는 걸 좋아했다.

 

2000년대 초반, 나이키 스우시를 명품 조각으로 대체하는 유행이 다시금 올라오는 것 같다.

오히려 나로서는 그런 흐름이 커스텀 작업을 하지 않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스냅하이라는 닉네임의 시초가 스냅백에 뱀피를 붙이는, 저스트 돈의 형태를 카피하면서 출발한 건데, 어느 순간 이건 아무리 잘해봐야 결국 카피밖에 안 되는 일이라고 느꼈거든. 어떻게 나만의 스타일을 녹여볼까 고민하다 뱀피 대신 명품 패브릭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반응이 상당히 좋았고, 그 작업이 내 시그니처가 됐지. 그때가 2012년 즈음인데 다음 해 정도면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그 명품 커스텀의 흐름이 오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늦어졌지. 하하. 그리고 슈프림(Supreme)과 루이뷔통(Luis Vuitton)의 협업이 이에 영향을 끼친 것도 같은데, 두 브랜드의 협업 컬렉션이 공개된 뒤부터 많은 사람이 루이뷔통 패턴을 다양한 제품에 그리기 시작했다. 스니커에 명품을 커스텀하는 판이 너무 커지다 보니 이 게임에 속해 있는 일이 예전만큼 재밌지 않더라.

 

본인이 바라보는 국내 스니커 커스텀 신의 실정은 어떤가.

최근 들어 조금씩 보이더라. 나는 기본적으로 자르고 재봉하는 방식의 커스텀을 선호하는데, 이런 방식 외에 그림이나 패턴을 그리는 형태를 많이 목격했다.

 

오늘 준비한 스니커를 소개하자면.

특별한 기준보다는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내가 좋아하는 스니커를 들고 왔다. 조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이전 인터뷰에서 나오지 않았던 스니커 중심으로 선별했다. 하하.

 

이건 누구나 알고 있는 에어 조던 1 브레드(Nike Air Jordan 1 Bred)다. 2001년 버전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조던 1 쉐이프가 85년, 그 다음이 2001년 버전이다. 나이키에서 최근에 발매한 제품은 아직까지 눈에 조금 낯설더라. 구매했을 땐, 세월이 오래 지난 터라 아웃솔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비교적 근래 발매한 에어 조던 1을 구매해 아웃솔 교체를 하는 중이다. 바디는 2001년 제품인데, 솔은 최근의 제품인 거지. 커스터마이저로써 이런 과정을 보여주는 게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솔 교체 과정은 자연스레 익힌 건가?

지금은 콘텐츠가 정말 많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콘텐츠가 나오고 있으며, 외국의 유튜브 계정만 뒤져도 커스텀 작업으로 유명해진 친구가 매우 많다. 에어 조던 1이나 나이키 에어 포스 1(Nike Air Force 1) 같은 스니커의 솔 교체는 커스텀 작업 중에서도 상당히 단순한 편이라 어렵지 않다. 결국, 창을 분리하고 다시 붙인 다음에 박음질하는 과정이니까. 이 기술 자체가 누군가를 통해 배우거나 힘들게 습득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작업은 아니지. 과거 온라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정보라고 한다면, 이제는 정보를 찾고 배우는 일이 너무 쉬워졌다.

 

레트로된 스니커의 경우 해체했을 때 내부 퀄리티에도 차이가 있나.

분명 과거로 갈수록 퀄리티가 좋다. 하지만 레트로 제품은 봉제나 여타 디테일을 조금 더 신경 쓴 티가 난다. 박음질을 두 번 한다거나 안감 또한 이전보다 좋은 만듦새를 보여준다. 요즘 나오는 에어 조던 레트로를 봐도 옛날의 것을 충실히 복원하려고 노력하더라. 내부 스펀지의 재질이나 두께, 붙어있는 형태나 접합 등의 디테일을 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오래전부터 이 스니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털어놓게 됐다. 하하. 나이키 에어 맥스 플러스 하이퍼 오렌지 OG(Nike Air Max Plus Hyper Orange)라는 모델인데, 98년의 오리지널 모델은 아닌 2013년 일본의 스니커 편집 스토어 아트모스(Atmos)에서 한정으로 발매한 제품이다. 나름 힘들게 구한 스니커지. 근데 이게 2014년에 풋락커(Footlocker)를 통해 제네럴 릴리즈 됐다. 그건 컬러 코드 자체가 달라서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색이 다르다. 이 제품을 일본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까지 하며 어렵게 구했는데, 풋락커 발매 이후 많이 흔해졌지.

난 아무리 둘러봐도 이 아트모스 한정 스니커를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는데. 하하. 내심 억울한 마음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언젠가 한 번은 꼭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라 들고 나왔다. 재작년 신사동에서 진행한 에어 맥스 데이(Air Max Day)에 이 스니커를 착용하고 갔지만, 그때는 이미 제네럴 버전이 발매한 뒤였고, 이미 에어 맥스 플러스를 신고 많은 사람이 다녀갔지. 행사 중간 사진 촬영을 하는데, 이 스니커를 알아줄 것으로 생각한 유일한 인물, 메이크 원(Make-1) 역시 제네럴 버전이냐고 물어보더라. 그때 물어보지도 않은 구매 과정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이야기를 듣던 형이 “그건 너밖에 모르는 얘기잖아”라고 딱 한 마디 하더라. 나름 슬픈 기억이 서린 스니커다. 하하.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 대부분이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멋진 스니커라도 똑같은 걸 신은 사람을 자주 마주치게 되면 흥미가 확 떨어지지 않나. 굳이 2001년 버전을 신고 다닌다느니, 내가 가진 제품이 남들과는 다른 아트모스 한정 스니커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알량한 ‘부심’에서 나오는 건데, 어느 순간부터 신발 구매하는 과정까지 이런 변태 같은 성향이 생겼다. 하하. 이 제품은 뉴발란스(New Balance)에서 유방암 재단을 지원하기 위해 발매한 뉴발란스 993(Lace Up For The Cure x New Balance 993) 모델이다. 오로지 우먼스로만 나온 제품으로 이건 우먼스의 12.5 사이즈다. 한국에서 나 정도 덩치를 가진 사람이 보통 290사이즈의 신발을 신는데, 굳이 뉴발란스의 핑크색 스니커를 미국 우먼스로 주문해 신는 녀석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변태적인 발상으로 구매했다.

사실, 이 스니커를 구매하는 과정이 내가 다른 스니커를 구매하는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떻게든 설명할 구실을 만들고 싶은 거지.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으니까. 애초에 남성용으로 나올 컬러도 아니지 않나. 하하. 내가 이 제품을 1, 2년 전에 구매했는데, 당시 90년대 힙합 바이브의 순환과 더불어 2000년 초반의 캠론(Cam’ron) 분위기를 내면 엄청 신선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핑크 스니커를 뒤지다가 핑크 에어 포스 1은 역시 식상하다는 생각에 아무도 신지 않는 핑크색 뉴발란스 스니커를 신는다면, 캠론의 2017년을 재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열심히 혼자 소설을 써봤다.

 

에어 조던 11 콩코드 로우(Air Jordan 11 Concord Low) 모델에 언디핏 에어 조던 4(Undefeated Air Jordan 4) 콘셉트를 옮겼다. 혀도 언디핏 조던 재질에 맞게 새로 제작했고, 갑피 역시 충실하게 재현했다. 그나마 제일 자랑스레 내놓을 수 있는 제품이라서 꺼냈다. 근데 생각보다 안 신게 되더라. 이런 것이야말로 언젠가 끝내주게 신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끼게 된다. 왠지 팔기도 아깝고.

 

원래부터 손재주가 좋았나. 뭘 만들고 고치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내 입으로 이야기하기 민망하지만, 좋은 것 같다. 손재주를 떠나서 만드는 일에 집중을 잘한다고 하는 게 맞겠지. 혼자 머리 싸매고 앉아 문제를 해결할 때 짜릿함을 즐기는 편인데, 학교 다닐 때 그 문제가 수학 문제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이런 작업으로 희열을 느끼는 거다. 이전까지 재봉틀 한 번 만진 적 없는 놈이 혼자 공부해서 만들었다는 자부심? 하하. 학창시절에 기숙 생활을 했는데, 룸메이트가 상당한 수재였다. 어느 날 주말에 팀버랜드(Timberland) 부츠에 트라이벌 패턴을 그리고 있었다. 중간고사 기간에 자리에 앉아 4, 50분을 집중하지 못하던 놈이 내리 4시간을 화장실도 안 가고 있던 거다. 룸메이트가 내 모습을 한참 보더니 너는 성공할 것 같긴 한데, 이 학교 덕을 보고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다고 하더라. 아직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이런 일을 좋아한다고 느낀 계기였다.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커스텀 스니커나 분야가 있는지.

2, 3년 전부터 스니커를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데 욕심이 많아졌다. 연습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시간과 노력을 들일 엄두가 안 났던 거지. 이후 몇 번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겨 에어 조던 1 베이프 스타 같은 스니커를 만들었던 거다. 이제는 타 브랜드의 패턴이 포함되거나 브랜드 요소가 포함된 작업보다는 하나의 스니커를 완벽히 다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다. 최근 오프 화이트(Off White)에서 공개한 에어 조던 1 같은 제품. 기존 클래식 스니커 요소를 완전히 재해석하는 제품, 아방가르드하고 포스트 모던의 요소가 곳곳에 포함되어 있지 않나. 언뜻 보면 기존 에어 조던 1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데도 자세히 보면 결국 똑같은 게 하나도 없다. 어차피 나는 신발로 작업해서 상품성을 갖게 하는 데 욕심이 없어진 지 오래니 이제는 더 심하게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커스텀보다는 예술에 가까운 스니커랄까.

북유럽 쪽에 의상을 공부하는 학생이 한 명 있는데, 스니커를 예측 가능한 범위를 넘어 완전히 변형시키더라. 리복(Reebok) 스니커와 아디다스(adidas) 스니커를 반 씩 잘라 둘을 붙여 버리는 작업 같은 것. 그 작업물을 보면 커스텀보다는 현대미술에 가깝지. 신을 수 있을지 없을지 의심이 될 정도의 외형인데, 이런 것을 보며 새로운 욕심이 생기더라. 스니커를 구성하는 패널의 요소를 제멋대로 재해석해서 만든다거나 실루엣을 재구성하는 콜라주에 가까운 작업에 도전해보고 싶다. 워낙 게을러서 실제로 해볼지는 나도 의문이지만. 하하.

 

이건 나름 신선하다고 생각하며 제작한 커스텀 스니커로, 나도 베이프(A Bathing Ape)로 뭔가를 신고 싶다는 욕심에 만들었다. 방금 말한 언디핏 에어 조던 11이랑 같은 맥락이지. 사실 언디핏 에어 조던 4를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더 콰이엇(The Quiett)이나 살 수 있는 거지. 비슷한 제품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 커스텀 아이디어가 시작되기 마련인데, 올 카모로 된 베이프 스타를 신고 싶지만, 도무지 구하기 힘드니까 직접 만들어 본 거다. 베이프 가방을 잘라 갑피를 구성했다. 베이프로 에어 포스 1을 만들면 베이프스타(Bapesta)랑 다를 게 없지 않나, 베이프스타의 짝퉁밖에 안 되는 거니까. 그래서 베이프 스타의 형태를 가져오되 아직 베이프에서 패러디하지 않은 실루엣의 스니커를 가지고 만들면 익숙하면서도 신선하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베이프에서 에어 조던 1을 패러디한 스니커를 발매한 적 없으니 에어 조던 1을 바탕으로 베이프의 다양한 요소를 옮겼다. 이것 역시 만들고 정작 신지는 않았는데, 아이디어 자체는 해외 커스터머 사이에서 엄청나게 퍼졌다. 에어 조던 1의 스우시를 떼어내고 베이프 스타를 박는 것은 이미 많이 차용하는 콘셉트가 되었고, 자랑스레 내가 처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심지어 나에게 허락을 구하려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커스텀 스니커 협찬 문의도 많을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 난 그저 스니커를 즐기기 위해 만드는 사람이고, 만약 어떤 사람이 내가 제작한 물건을 원한다면, 달라고 하거나 구매하거나 그 두 가지일 텐데, 사실 달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런 제품이 소비자가 구매하기에는 상품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나야 그저 재미로 이걸 만들지만, 구매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걸 사려면 베이프스타 가격의 몇 배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쉽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소비자의 입장이라도 차라리 베이프스타를 사지 굳이 이 제품을 구매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그냥 내 개인 작업으로 만족하는 편이고.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커스텀 피스는 상품성이 적다.

 

의외의 답변이다, 스니커 컬렉터라면 세상에 단 한족의 스니커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클 것 같은데.

그러기에 국내 스니커 시장의 판이 아직 작다. 예를 들면, 스니커를 구매할 백만 원의 예산이 있다면, 백만 원으로 살 수 있는 한국에 없는 스니커는 사실 많거든. 플라이트 클럽(Flight Club)에서 뭐 하나 사오면 국내에 없는 제품일수도 있고, 가까운 일본만 가도 희귀한 스니커는 대단히 많다. 오래전에 발매한, 상태 좋은 올드 포스를 이베이(Ebay)에서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미국엔 매일 새삥 스니커를 스무 족씩 살 수 있는 컬렉터가 존재한다. 그 사람이 오늘 당장 스니커에 천만 원을 쓸 예정인데, 커스텀 스니커 때문에 천오십만 원을 소비하는 일을 고민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말한 이유가 국내 커스텀 문화의 한계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스니커만 해도 서브컬처인데, 커스텀은 거기에 속한 더욱 작은 문화가 아닌가. 커스텀 신이 문화적인 힘을 가질만한 방법론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힙합 패션에서 스니커 컬처를 서브컬처로 본다면, 이것은 충분한 규모의 문화 형태인데, 사실 말이 커스텀이지 아직은 리폼에 가깝다. 이것 자체를 하나의 문화로 규정지을 만큼 시장이 형성될까? 결국, 문화도 경제적인 규모가 받쳐줘야 힘을 가지게 되는데, 상품성에 의심이 간다는 말이지. 몇 번이고 하는 이야기지만, 신발 만드는 건 취미로만 해야 즐거운 것 같다.

 

한창 이런 형태의 커스텀 스니커를 제작할 때 눈에 괜찮은 패턴의 정품 가방이 보이면 일단 구매해 쟁여놓았다. 그런데 명품 패브릭을 활용한 커스터마이징에 흥미를 잃고 나니 집에 자투리 명품 패브릭이 많이 남더라. 이런 자투리 가죽을 사용해서 제작했다. 온전히 내가 착용하기 위해 만들었지. 개인 소셜 미디어 계정에 이 제품 사진을 올렸는데, 어디서 가져갔는지 티사(TI$A)가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포스팅해서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스니커마다 커스터마이징의 난이도 역시 다르지 않나.

역시 반스 제품이 제일 편하다. 단순한 실루엣을 가진 스니커가 커스텀하기도 편하고 디테일을 삽입하기 쉽다. 나이키 르브론 11(Nike Lebron 11) 커스텀은 꽤 어렵지만, 클래식한 실루엣의 스니커는 확실히 수월하다. 내가 제일 만지고 싶은 건 에어 조던 1으로, 오히려 많은 커스텀의 바탕이 되는 에어 포스 1에 큰 관심이 없다. 에어 포스 1과 에어 조던 1은 언뜻 비슷하게 생겼고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작업을 해보면 에어 조던 1이 에어 포스 1 로우에 비해 패널이 2배 이상 많다. 가죽이 겹쳐 있는 순서 또한 직관적이지 않고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지. 난 항상 에어 조던 1을 작업하고 싶은데, 쉽게 엄두가 안 나더라. 하하.

반대로 반스 같은 경우는 염력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까지 든다. 하하. 그래서 아까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커스텀 방식에 관해 물었을 때,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커스텀에 아이디어를 더욱 많이 집어넣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래서 최근 뜯기 시작한 게 반스 올드스쿨(Vans Oldskool) 모델이다. 디테일이나 조금 더 재미있는 위트를 가미한 제품이 나오지 않을까. 스냅백 커스텀을 시작할 때도 가판에서 파는 짝퉁 모자 스무 개 정도를 사서 뜯어봤다. 내부의 박음질이나 구조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익혀야 하니까. 쉽고 단순한 것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이건 까먹고 있던 컬렉션 중 하나인데, 과거 내 인생 스니커였다. 가장 갖고 싶었던 스니커인 적도 있었지. 요새는 된장 컬러의 제품이 많이 나오는데, 5년 전만 해도 된장 컬러의 에어 포스 1 스니커를 구하기 어려웠으니까. 보비토 가르시아 에어 포스 1 하이(Bobbito Garcia x Nike Air Force 1 High)는 내 드림 스니커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제품은 도저히 못 신겠다. 다른 된장 에어 포스 1 하이를 사서 감상용으로 둘까 고민했는데, 이게 뭐라고 그냥 하나 더 사나 싶기도 하고. 하하.

 

학창시절, 없는 돈을 모아 스니커를 구매한 일화는 컬렉터라면 공감할 법한 이야기다.

학창시절에는 중고장터에 죽치고 있는 게 일이었다면, 나이가 들고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추면서 굳이 중고로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스니커 커스텀을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중고 스니커를 선뜻 구매할 용기가 생겼다. 스니커를 새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을 습득하게 되니까 스니커를 딥 클리닝하는 건 일도 아니더라. 상태가 안 좋더라도 금세 새 신발처럼 만들 수 있는, 안감까지 완벽하게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니 중고 스니커를 구매할 수 있는 거지. 어지간한 나이키 스니커는 세탁기에 넣고 돌려도 된다. 나이키에서 대량생산하는 제품에 사용하는 가죽은 생각보다 민감하지 않은 저품질의 가죽이기에 스웨이드나 누벅 재질을 제외한 나이키 스니커 대부분은 세탁기에 돌려도 무방하다. 아주 간단한 과정을 통해 마치 팻 조(Fat Joe)처럼 바닥을 핥을 수 있는 상태를 만들 수 있지. 하하.

 

평소에도 스니커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편인가.

아직도 어릴 때 힙합 뮤비에서 본 나쁜 버릇이 남아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스니커는 엄청 아껴 신고, 매번 닦는다. 하하. 출근할 때는 아예 더러운 반스 스니커만 신고 다니지. 그런데 주말에는 멋진 스니커를 신고 더러워질 수밖에 없는 장소에 가지 않나. 흰색 스니커라도 신고 간 날이면 정말 난리 나는 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술기운에 신발을 닦고, 다음 날에도 열심히 닦는다.

 

신발을 상하게 하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생활 습관 같은 게 바뀌지 않나.

바지 내려 입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중학교 때부터 바지 내려 입으면, 나중에는 올려 입는 게 오히려 어색하지 않나. 인생의 반 이상을 내려 입으며 살아왔으니까. 성장기에 스니커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주의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발을 끌지 않는 걸음걸이를 체득하게 된다. 심지어 내 신발이 아닌데도 뒷꿈치를 끌며 걷는 친구를 보면 오금이 저릴 정도다. 하하. 요즘 래퍼는 내 라프 시몬스(Raf Simons) 스니커가 네 반스보다 더럽다는 가사를 쓰며 자랑하지 않나. 요새는 옛날처럼 깨끗한 스니커에 목숨을 거는 그림은 아니니까. 그런데도 난 여전히 새삥에 집착하니, 노땅 티내는 거지 뭐.

 

스니커 커스텀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2013년 즈음 나이키에서 발매한 에어 이지 2 레드 옥토버(Nike Air Yeezy 2 Red October) 콘셉트의 올 레드 뱀피 조던 11을 제작했다. 그땐 세상에 내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던 때라 나이스 킥스(Nice Kicks)나 스니커 뉴스(Sneaker News) 같은 스니커 매거진에 사진도 보냈다. 실제로 여러 매체에 실리며 다양한 곳에서 피드백이 돌아오기도 했지. 어느 날인가 집에 누워있는데, 뭐가 계속 올라오더라. 20대 초반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래퍼가 더 게임(The Game)이었는데, 웹에 떠돌아다니는 레드 옥토버 커스텀 스니커 사진을 그대로 자기 소셜 미디어 계정에 올리더라. 마치 자기가 직접 구매한 것처럼. 하하. 와, 더 게임이 내 사진을 올리는 날도 오는구나, 하며 홀로 감격하던 기억이 난다.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2009년 내가 태어나서 처음 뉴욕에 갔다. 충격이 정말 컸다. 동경했던 도시가 생각보다 훨씬 멋있던 거지. 마침 도착한 날이 핫 97(HOT 97)에서 하는 섬머잼 페스티벌(Summerjam Festival) 전날이었다. 서머잼을 보며 황홀한 기분을 느꼈지. 그리고 두 번째로 뉴욕에 방문한 게 2014년이었는데, 마침 또 섬머잼 시즌에 가게 됐다. 그때 내가 뉴욕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에이랍 뮤직(Araab Muzik)이 스니커 커스텀을 의뢰하더라. 뉴욕에 있는 동안 스니커를 구매해서 작업했다. 그때 에이랍 뮤직이 다음 주 서머잼 오프닝을 맡게 됐는데, 섬머잼에 커스텀 스니커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처음 뉴욕에 방문해 섬머잼 관객으로 맨 뒤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메소드 맨(Method Man) 노래를 들으며 놀았는데, 이번에는 에이랍 뮤직을 만나 에스코트를 받으며 백 스테이지에 들어가는 내 모습이 비현실적이더라. 그때 빅 카메오가 드레이크(Drake)였다. 드레이크나 리한나(Rihanna) 같은 빅스타가 눈앞에 돌아다니는 걸 보니 내가 뭐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었지. 하하. 뉴욕에서 살면 되게 성공할 거라는 착각을 할 만큼. 그런 경험이 되게 즐거웠다. 이게 참, 스니커라는 게 생각보다 재밌구나, 결국 흑인이나 래퍼나 신발 좋아하는 건 똑같다는 걸 느꼈지. 하하.

 

뉴욕은 커스텀 스니커 시장도 규모가 크니 욕심을 냈을 법도 한데.

그때는 분명 그런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 저번 인터뷰에서는 커스터마이징이 시장성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때 생각한 시장성의 규모와 지금의 시장성의 규모를 다르게 생각하는 나이가 된 것 같다. 당시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당장 월세를 낼 수 있는 정도의 시장성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근근이 월세나 내며 사는 게 만족스럽지 않을 나이니까. 애초에 그 게임에 대한 열정도 많이 잃은 것 같고, 이 게임이 오래 나를 즐겁게 해줄 것인가 의심도 들었다.

 

커스텀하기 아까울 정도로 멋진 스니커를 꼽는다면?

일일이 꼽기엔 너무나 많다. 좋아하는 신발이 뭐냐고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에어 조던 1을 말한다. 정확히는 85년 에어 조던 1. 에이샙 몹(A$AP MOB)이 85년판 에어 조던만 신더라. 에이샙 라키(A$AP Rocky)처럼 돈도 많은 녀석이 낡은 스니커를 신고 있는 이유가 그게 바로 85년 조던 원판이기 때문이다.

 

인상 깊은 스니커 스토어라면?

사실 요즘엔 온라인으로 스니커 관련 이미지나 콘텐츠를 많이 접할 수 있지 않나. 2010년에 나이키 에어 이지 1의 사진을 기껏해야 나이키매니아와 같은 스니커 커뮤니티에서 봤다면, 지금엔 그 사진을 보는 일이 너무 쉬우니까. 이제는 어떤 스토어에 가더라도 신발을 실물로 봤을 때 감동이 훨씬 덜한 것 같다. 그래서 플라이트 클럽이나 키스(Kith)와 같은 숍에 가도 충격이 덜하다. 오히려 어린 시절 일본을 처음 방문했을 때, 길바닥에 널린 중고 스니커 숍에서 봤던 중고 조던 비주얼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실제로 신발 사진을 보기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발도 많았으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스니커 스토어라면, 처음 일본에서 만난 이름 모를 중고 스니커 숍이다.

 

아직 갖지 못한 드림 스니커는 무엇인가.

칸예와 루이뷔통이 협업한 루이뷔통 제스퍼(Kanye West x Louis Vuitton Japer). 내가 스니커를 좋아하며 봤던 모든 신발 중 가장 아름다운 스니커 목록에 들어간다. 심지어 어떤 헤리티지를 가지지 않은 모델이지 않나. 갑자기 칸예가 이 신에 뛰어들어 뚝딱 만들어낸 제품이니까. 난 헤리티지를 이유로 최근 등장한 이지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칸예가 제작한 스니커는 훨씬 멋지게 느껴진다. 더구나 이제는 어떻게든 구하거나 구매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니까.

한정판의 개념마저 생소하던 90년대 후반의 에어 포스 1 중에는 끝내 갖지 못한 스니커가 너무나 많다. 개인적으로 91년 발매한 빨간 완창을 가장 갖고 싶었다. 그래서 최근 흰/빨 조합의 하이탑 에어 포스1을 구매해 중창을 칠하는 것으로 만족해버렸지. 하하. 내가 스니커에 손을 쓸 수 있게 된 이후로 드림 슈가 많이 없어진 것도 있다. 조금만 손을 대면 비슷한 느낌을 줄 수는 있으니까. 하지만, 칸예의 루이뷔통 제스퍼는 여전히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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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글ㅣ 오욱석
사진ㅣ 백윤범
커버 이미지ㅣ 박진우
제작ㅣVISLA / MU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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