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EAKER LOVE: 김종선

스니커 러브(SNEAKER LOVE)는 말 그대로 신발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 신발에 관한 이야기다. 발을 감싸는 제 기능 이상으로 어느덧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스니커. 이제 사람들은 신발 한족을 사기 위해 밤새도록 줄을 서고, 야영하고, 심지어는 매장문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손에 넣고자 한다. 그들이 신발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VISLA와 MUSINSA가 공동 제작하는 콘텐츠, 스니커 러브는 매달 한 명씩 '신발을 무진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가 아끼는 스니커의 이모저모를 물을 예정이다. 애인보다 아끼고, 엄마보다 자주 보는 스니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각종 신기술이 난무하는 지금의 스니커 시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신제품을 개발하며, 수많은 스니커 컬렉터의 두뇌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런 와중에 간결한 디자인이지만, 깊은 역사를 지닌 스니커 브랜드 반스(Vans) 마니아를 자처하며 클래식 스니커를 고집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국내 서브컬처 신(Scene)의 대들보 김종선이다. 그 이름보다는 제이에스(Jayass)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2005년, 처음 반스 스니커를 구매한 뒤 지금까지 수십 족의 반스와 함께 거리를 누볐다. 국내 스트리트 패션의 다양한 장면을 연출했던 제이에스, 그가 들려주는 스니커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휴먼트리(Humantree)라는 편집 스토어의 대표였고, 지금은 스투시(Stussy)에서 일하는 김종선, 제이에스(Jayass)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스니커 바잉 사업을 했다고 들었다. 그 시절의 스니커 시장과 지금의 스니커 시장의 변화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2002~2003년 정도에 스니커 판매를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도 정식 발매하지 않은 스니커를 파는 숍이 몇 군데 있었지만, 프리미엄 스니커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은 없었다. 스니커 편집 스토어라고 해봤자 애슬릿 풋(The Athlete’s Foot) 정도? 그즈음 나이키(Nike)의 스케이트보드 라인인 나이키 SB(Nike SB)가 생기고 에어 조던(Air Jordan)의 컬렉터가 슬슬 생겨나고 있었다. 고등학생 사이에서는 에어 맥스(Air Max)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2004년 정도 덩크 SB(Dunk SB)가 등장하며 스니커 게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 나왔던 덩크 SB 네 종류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데니 서파(Danny Supa), 멀더(Mulder) 등의 시리즈가 나오고, 슈프림(Supreme)과 협업한 덩크 SB가 나오며 진짜 프리미엄 스니커 시장이 열렸다. 덩크 SB는 한정된 스니커 숍에서만 판매했다. 이와 함께 스니커 부티크라는 단어가 널리 퍼지고 스니커 신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나도 이런 스니커를 신고 싶은데, 한국에는 이런 스니커 부티크가 없었으니 가까운 일본이나 외국의 스니커 숍을 찾아다녔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은 이전엔 국내에서 쉽게 프리미엄 스니커를 구매할 수 없으니 스니커에 과한 웃돈이 붙고 리셀 또한 활발했지만, 요새 들어 국내에도 워낙 좋은 스니커 숍이 많아졌기에 이전보다는 거품이 많이 빠졌다.

 

처음 스니커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언제인가. 당신의 첫 스니커도 궁금하다.

고등학생 때 춤을 췄다. 당시 댄서 사이에서는 아디다스 슈퍼스타(adidas Superstar)와 나이키 에어 포스 1(Nike Air Force 1)이 최고의 스니커였다. 난 에어 포스 1은 너무 투박한 것 같아 슈퍼스타를 선호했다. 지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신발이지만, 그때만 해도 슈퍼스타를 구하려면 이대 앞이나 압구정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사야 했다. 검은 갑피에 흰 삼선이 들어간 슈퍼스타가 내 의지로 구매한 첫 스니커다.

 

자타공인 반스 마니아다. 언제 처음 반스를 알게 되었나.

처음 구매한 반스 스니커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똑같은 모델을 두 개 샀는데, 그중 한 족은 너무 낡아서 버렸다. 2005년, 휴먼트리를 오픈한 해에 산 반스 스니커다. 그전까지 내게 신발은 무조건 나이키였다. 휴먼트리 오픈 직후 일본을 방문했는데, 그쪽에 ABC 마트가 워낙 많지 않나. 마침 내가 한창 카모플라주 패턴에 꽂혀있었던 시기에 이 카모플라주 패턴 반스를 만났다. 같은 디자인의 스니커 두 켤레를 구매해서 밑창이 떨어질 때까지 신었다. 반스 컬렉터라고 하기에는 시작부터 늦은 감이 있지만, 당시에는 반스를 신은 사람 역시 드물었다. 밝히자면, 구매할 때만 해도 내가 산 반스의 모델명조차 몰랐다. 나중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같은 모델을 또 구매하며 그제야 이 스니커의 모델명이 올드스쿨(Oldskool)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하.

 

반스의 어떤 요소에 사로잡혔는지.

보통 스포츠 브랜드의 스니커는 대부분 투박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반스를 접했을 때, 휴먼트리 내에서 스케이트 펑크를 콘셉트를 가지고 버리드 얼라이브(Buried Alive)라는 의류 브랜드를 전개했다. 몸에 딱 맞게 입는 타이트한 의류를 주로 제작했고, 나 역시 그런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었다. 넉넉한 티셔츠와 바지, 속칭 힙합 스타일로 입는 스케이터도 있지만, 록스타처럼 입는 스케이터도 있지 않나. 그런 스케이터의 스니커가 바로 반스였다. 몸에 맞는 옷을 입다 보니 나이키 스니커가 안 어울리더라. 누구나 자기 옷에 가장 잘 어울리는 스니커가 최고일 텐데, 나에겐 그게 반스였지. 내 라이프 스타일과도 잘 맞아서 꾸준히 관심을 두고 반스라는 브랜드를 계속 파다 보니 그들이 보여주는 콘텐츠, 브랜딩에 계속해서 빠져들었다.

 

최근 반스가 클래식 스니커를 넘어 신기술, 신소재를 사용한 제품을 점차 늘리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방수 소재의 사용이라던가, 울트라쿠시 라이트(UltraCush™ Lite) 기능을 넣으며 진화하는 과정을 유심히 보고 있다. 기능성에 치중하면, 본래의 정체성을 잃을 수 있지 않나. 여러 스니커 브랜드가 욕심을 부리다가 기존 스니커의 매력을 망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반스는 디자인을 훼손하지 않고 그 안에서 오리지널리티를 잘 지키고 있다. 이런 연유로 대단한 기능을 넣을 수는 없겠지만, 이런 반스의 고집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반스는 스니커 외 스케이트보드, 록 등 여러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들이 내놓는 결과물 중 흥미롭게 본 것이 있다면?

반스의 스케이트보드 영상은 언제나 흥미롭게 보고 있다. 지금에 이르러 스케이트보드 문화는 기술로 승부하는 시대가 지난 것 같다. 이제는 스타일이다. 모든 스케이터가 어떻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가, 이 문제를 고민하는 시기다. 반스 소속 스케이터는 그야말로 반스 느낌을 제대로 낸다. 스케이트 영상에 삽입하는 음악도 힙합보다는 펑크, 록 음악이다. 독보적인 스타일을 곧게 유지하고 있지. 최근 재밌게 본 영상은 반스의 50주년 영상이다. 반스의 창업자 반 도렌(Van Doren) 할아버지가 반스 스니커 모양의 자동차를 타고 나오며, 페스티벌을 여는 영상으로 스케이트보드와 BMX, 밴드가 함께 나와 어우러지는 그 3분에 반스의 철학이 모두 녹아있다. 너무 감명받아서 내 블로그에도 올려놨다. 하하. 지난달 로스앤젤레스로 출장갔을 때, 반스 본사도 방문했다.

 

현재 스투시에 몸담은 입장에서 지금껏 나온 스투시 협업 스니커 중 가장 멋진 건 무엇인가.

엄청 오래전에 나왔던 나이키 x 스투시 합작 덩크 하이 모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검정과 갈색 두 가지 컬러가 나왔는데, 뱀피와 타조 가죽을 활용한 나이키 스우시는 물론, 컬러링도 훌륭했다. 당시 한창 나이키 SB가 붐을 일으킨 시점에 그런 제품이 나왔으니 정말 대단했지. 두 브랜드가 힘을 합쳤다는 이유만으로 끝판왕이었던 스니커다. 최근에 나온 반스와의 협업도 멋지다. 올드스쿨과 슬립온(Slip On), 처카 부츠(Chukka Boots)를 발매했는데, 무엇보다 슬립온이 아주 마음에 든다. 언뜻 보기 기본 슬립온과 별다른 바 없어 보이지만, 아웃솔과 갑피 사이에 라인을 삽입한 디테일이 정말 훌륭하다. 이 라인 하나로 캘리포니아 느낌을 확실히 살렸다.

 

현재 많은 브랜드에서 과거의 스니커를 재발매하고 있는데, 레트로됐으면 하는 스니커가 있는지.

요즘에는 덩크를 많이 신지 않지만, 과거 덩크를 좋아했던 입장에서 덩크 SB가 아닌 90년대 나왔던 덩크 프로 제품이 레트로됐으면 좋겠다. 단순한 외형이지만, 간결하고 멋진 컬러의 스니커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그 옛날 덩크가 다시 나오면 반가울 것 같다.

 

스니커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지금 휴먼트리를 거쳐 스투시에서 일하게 된 이유도 내가 어린 시절부터 스니커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스니커를 좋아해서 일본이나 홍콩까지 날아갔고, 그곳에서 신발도 사고 또 많은 스트리트 브랜드를 알게 되었다. 스니커에 관심이 없었다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스니커라는 물건 자체가 지금 내 삶을 만들어준 커다란 에피소드가 아닐까.

 

 

오랜 시간 패션업에 종사하며 무수히 많은 스니커를 접했을 텐데, 혹시 꺼리는 종류의 스니커가 있는지.

개인적으로 투박한 스니커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이테크 요소가 과한 스니커에도 큰 매력을 못 느낀다. 그래도 이전에는 나이키 덩크를 엄청 좋아했다. 지금은 반스를 이렇게 깔아놨지만, 2005년 전까지 덩크를 50족 정도 가지고 있었다.

 

해외여행을 즐기는 것 같은데, 여행 시 따로 착용하는 스니커가 있는지 궁금하다.

여행 다닐 때도 반스를 즐겨 신는다. 언젠가 울트라쿠시 라이트 기능을 추가한 어센틱(Authentic) 모델을 신고 갔는데, 생각 이상으로 편하더라. 너무 오래 신어 신발이 많이 망가졌는데도 여행 갈 때는 매번 그 스니커를 착용한다. 여행을 갔다고 해서 내 스타일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발 좀 편해지자고 어울리지 않는 스니커를 신으면 스스로 구려 보이지 않나. 하하.

 

해외에서 방문한 흥미로운 스니커 스토어가 있었나?

물론 있다. 2005년 도쿄에 방문했을 때, 스킷(Skit)이라는 스니커 숍을 처음 가봤다. 정말 너무 충격적이었다. 비좁은 공간에 꽉 채워진 선반, 그리고 선반 가득 쌓여있는 신발을 보고 기절할 것 같았다. 종류별로 구분한 신발을 깨끗하게 랩에 싸놓은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 숍을 본 이후로는 그 어떤 스니커 숍을 봐도 별 감흥이 없다. 특유의 빈티지 스니커 냄새와 비싼 스니커만 모아 놓은 유리 전시대 또한 기억난다. 스니커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 그 숍에 방문한 후 스니커에 대한 욕심이 더욱 강해졌다. 전설로만 듣던 신발을 버젓이 팔고 있었다니까. 하하. 마이클 잭슨이 죽었는데, 스킷에 가면 마이클 잭슨이 랩에 싸여 있는 거다. 뭐, 그 정도로 놀라웠다. 스킷에 없는 신발은 이 세상에 없는 신발이라고 느낄 정도로 방대했다. 나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스니커 숍이다.

 

아직 갖지 못한 드림 슈가 있는지.

글쎄, 요즘 스니커 게임이 예전 같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구경조차 힘드니 프리미엄이 붙은 스니커가 많았다. 구하기 힘들수록 더욱 갖고 싶은 그런 이상한 심리가 있지 않나. 지금은 어떤 스니커를 갖고 싶을 때 구글(Google)에 검색만 해봐도 여기저기에서 다 팔고 있으니 그런 욕심이 많이 없어졌다. 이제는 안 나오는 옛날 스니커 같은 게 궁금하긴 하다. 가지고 있으면 어떨까 상상해보기도 하고. 예전 슈프림에서 처음 나온 반스라거나. 98년 즈음 나온 올드스쿨 모델인데,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하다. 하하.

 

이전 스케이트보드 슈즈 브랜드 써카(Circa)와 협업을 진행한 적도 있지 않았나. 협업을 진행하며 느낀 점, 스니커 브랜드와의 협업에서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우리는 버리드 얼라이브라는 의류 브랜드 입장에서 스니커 브랜드와 협업했기 때문에 스니커의 구조나 기술을 쉽게 파악할 수 없었지. 버리드 얼라이브는 강한 그래픽과 문화적인 요소를 가진 브랜드였는데, 그걸 스니커에 어떻게 녹일지 많이 고민했다. 결국, 스니커에 강렬한 그래픽을 넣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게 소비자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잘 팔리지 않았지. 제품이 나오기 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사실, 스니커는 신고 다녀야 하는 건데, 우리는 하나의 캔버스라고 생각해 버렸다. 너무 힘을 줬던 게 오히려 해가 됐던 경우다. 만약 또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실제로 신었을 때 가장 멋있을 수 있는 요소를 간결하게 넣어보고 싶다.

반면에, 슈프림은 그 명성답게 신발에 사진을 박아버린다. 하하. 슈프림이기에 가능한 거다. 게다가 슈프림과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 반스의 합작 아닌가. 만약, 슈프림과 반스의 협업에 해롤드 헌터(Harold Hunter)의 사진만 넣었다면, 이 정도의 이슈를 만들어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슈프림은 꼼데가르송을 넣어버리며 스케이트보드 문화 이상의 메리트를 생성했다. 또 다른 시장과 이야기를 낳은 점이 재미있다. 물론, 브랜드 파워도 있겠지만,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동시에 살리는 일은 노련미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골프왕(Golf Wang) 역시 이런 협업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자신의 색에 맞게, 컬러링만으로 자사의 색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잘한 협업의 예다.

 

긴 시간 스트리트웨어 편집숍, 브랜드를 운영한 이력이 있다. 스트리트웨어와 스니커 문화를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까.

이제는 의류와 스니커는 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카테고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핫한 브랜드 모두가 스니커를 내놓고 있지 않나. 심지어 스니커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협업을 통해 독특한 스니커를 발매한다. 예를 들어 슈프림은 의류 브랜드임에도 나이키, 반스, 팀버랜드(Timberland) 등 여러 스니커 브랜드와 협업 스니커를 전개하고 있다. 반면에 나이키 같은 경우는 스니커 중심의 브랜드지만 다양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와 협업하며 스포츠웨어라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조금 더 쿨한 카운터 컬처를 계속 건드린다. 이런 것이 모여 하나의 굉장히 큰 카테고리를 이루고 있다. 만약, 모자 브랜드가 스트리트웨어와 협업을 했을 때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까? 아무리 멋진 브랜드라도 스니커만큼의 화제를 낳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스니커와 의류 브랜드의 만남은 그 이상의 시너지를 내고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진다. 이제는 어떤 사람이 신은 신발만 봐도 그의 취향을 알 수 있는 정도로 하나의 상징이 됐다고 생각한다.

* 이 기사는 무신사 매거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진행 / 글 │ 오욱석
사진 │ 유상구, 고지원
제작 │ VISLA / MU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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