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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슈퍼 8 필름으로 영상 찍기

슈퍼 8은 먼 옛날 60년대 코닥(Kodak)에서 만든 영상 필름 포맷이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듯이 필름으로 영상을 찍는 일인데, 누구나 집에서 편하게 찍을 수 있도록 영화 필름을 카세트테이프처럼 규격화했기에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도 쉽게 찍을 수 있다. 필름을 카메라에 끼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필름 카트리지를 집어넣고 방아쇠를 당기면 된다. “이 시대에 과연 필름으로 영상을 찍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은 그냥 통과하자. 모든 행위를 ‘효율성’으로만 판단한다면 세상에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카메라 안에 필름 카트리지를 넣고 총 쏘듯 방아쇠를 당기면 된다]

1. 카메라 고르기

대부분 슈퍼 8 카메라가 이미 30~40살은 먹었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는 물건을 찾는 일 자체가 어려운 편이다. 배터리를 넣고 방아쇠를 당겨서 츠르륵 소리가 나면 일단 안심이다. 그 뒤 프레임레이트가 잘 변경되는지, 줌인은 잘 되는지 등 세부 기능을 확인하면 된다. 한국 골동품 시장에서 10만 원 이하에 구할 수도 있고, 이베이(eBay)에서 구할 수도 있다. 10~20만 원이면 제법 괜찮은 슈퍼 8 카메라를 구할 수 있다.

  • 특수 기능

디지털카메라와 다르게, 슈퍼 8 카메라는 렌즈를 제외하면 기본적인 퍼포먼스는 거의 비슷한 편이다. 하지만 슬로우 모션이나 인터벌 촬영 같은 특수 기능은 조금씩 차이 난다. 슬로우 모션을 찍고 싶다면 36fps나 54fps처럼 높은 프레임레이트를 지원하는지 확인하고, 인터벌 촬영을 하고 싶다면 인터벌 기능이 있는지, 원하는 촬영 간격을 설정할 수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Super8Wiki에서 카메라 제조사를 고르고 모델을 선택하면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슈퍼 8 카메라로 소리를 녹음하려는 사치는 부리지 말자. 소리 녹음이 가능한 슈퍼 8 필름은 생산이 중단됐다. 그러니 굳이 녹음 기능이 있는 카메라를 고를 필요 없다.

[Nizo Professional의 프레임레이트 설정 노브]

  • 카메라가 인식할 수 있는 필름 감도 확인하기

슈퍼 8 필름은 규격화된 카트리지에 들어있지만, 필름마다 ASA 값, 즉 필름 감도가 다르다. 여기서 조금 귀찮아진다. 카메라도 제각기 인식할 수 있는 필름 감도가 달라서 요즘 생산하는 슈퍼 8 필름의 감도를 읽을 수 있는지 미리 확인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자동 노출로 설정해놓고 찍었을 때 영상이 까맣게 나오거나 하얗게 다 날아가 버릴 수가 있다. 물론 자동 노출을 못 할 뿐이지, 수동으로 조리갯값을 조절하면 된다. 하지만 슈퍼 8 카메라는 조리갯값을 조절하더라도 뷰파인더에서 변경된 노출 정도를 확인할 수 없어서 필름과 카메라의 ASA 값의 차이 정도에 따라 얼마만큼 수동으로 조절해야 하는지 직접 계산하고 감으로 조절해야 한다. 시간이 남아돌지 않는다면, 쓰고자 하는 필름과 ASA 값이 맞는 카메라를 구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참고로 초창기에 생산된 카메라는 대부분 40, 64 ASA만 읽을 수 있다.

필름의 ASA 값은 필름 스펙에 적혀있고, 현재 생산되는 필름의 종류가 열 개 남짓이라 금세 파악할 수 있다. 카메라별로 읽을 수 있는 ASA 값은 Super8Wiki에서 확인할 수도 있고, 카메라를 직접 열어서 봐도 된다. 슈퍼 8 카메라의 필름 통을 열면 아래 사진과 같이 안쪽에 작은 핀이 두 개가 있다.

 

[미놀타 XL-Sound 42의 안쪽 핀]

이 두 개의 핀은 각각 카메라가 읽을 수 있는 ASA 값과 내장 85 필터의 사용 여부를 나타낸다. 흰색 핀의 위치를 자로 재면, 정확히 내 슈퍼 8 카메라가 지원하는 ASA 값을 확인할 수 있다. 자는 이 링크에서 출력하면 된다. 언제 저걸 다 출력해서 재고 계산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겠다. 제일 편한 방법은 카메라 모델명과 사용하고자 하는 필름의 모델을 검색해서 이미 그 조합으로 촬영한 누군가의 영상을 직접 보는 것이다.

  • 노출계용 전지 필요 유무

대부분 슈퍼 8 카메라는 일반적인 AA 배터리를 사용한다. 하지만 간혹 1.35v 노출계용 전지가 따로 필요한 기종이 있다. 이 빌어먹을 1.35v 전지는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데다가 구하더라도 몇만 원씩 하므로 노출계용 전지가 필요 없는 모델을 구하는 편이 낫다. 만약 1.35v 노출계용 전지가 정 필요하다면, 굳이 외국에서 사지 않고 동네 약국에서 파는 1.4v 보청기용 zinc-air 전지를 사용하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찜찜하긴 하지만 테스트해보니 별문제가 없었다.

Tip 1. 만약 1.4v 보청기용 전지를 써도 노출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내 Nizo S 800 역시 AA 배터리 외에 노출계용 1.35v 전지가 필요한 모델인데. 1.4v 보청기용 전지를 사서 넣어보니 작동하지 않았다. 한동안 헤매다가 알루미늄 포일을 조금 잘라서 끼워 넣으라는 외국 블로그 글을 보고 해보니까 바로 작동했다. 혹시 1.4v 전지의 사이즈가 작아서 노출계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면 알루미늄 포일을 끼워보길 추천한다.

[캐논의 814 XL Electronic]

Tip 2. 모델명에 XL이 있는 카메라

보통 슈퍼 8 카메라는 셔터 각도가 180 이하인데, 어떤 모델은 220 정도인 것도 있다. 이렇게 셔터 각도가 넓을수록 더 많은 빛을 받으니 어두운 배경에서 촬영하기에 더 유리하다. 추가 조명을 쓰지 않고 존재하는 조명(Existing Light)만으로 촬영할 수 있다는 의미로 모델명에 XL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왕 같은 가격이라면, XL이 붙은 걸 사는 편이 낫다. 하지만 워낙 오래된 카메라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말자.

 

2. 필름 고르기

어렵게 슈퍼 8 카메라를 구했다면, 이제 필름을 구하면 된다. 슈퍼 8 필름은 이렇게 카트리지 안에 들어 있다.

[현재도 생산하고 있는 코닥의 슈퍼 8 필름 Kodak Tri-X]

가장 많이 쓰는 필름은 코닥에서 생산 중인 ‘Kodak Vision3 컬러 네거티브’ 시리즈 3개와 흑백 리버설 ‘Tri-X’다. 50D는 빛이 많은 야외 촬영에 적합하고, 200T는 다양한 조명 환경에서, 500T는 실내 촬영에 적합하다.

 

[코닥의 슈퍼 8 필름]

컬러 필름의 모델명을 보면 숫자와 알파벳 T, 혹은 D가 붙어있다. 숫자는 위에서 이야기한 필름의 감도(ASA 값), 그리고 D와 T는 색 균형을 말한다.

  • Daylight 필름과 Tungsten 필름의 차이

모델명이 D로 끝나는 필름은 태양 빛에 색 균형이 맞춰져 있다는 뜻이고, T로 끝나는 필름은 실내등(텅스텐)에 맞춰져 있다는 말이다. 초창기 슈퍼 8 필름은 실내등에 색 균형이 맞춰진 터라 실내등 조명 아래서만 최적의 색을 표현할 수 있다. 이 경우, 태양 빛 아래서는 색이 푸르스름하게 나오기 때문에 태양 빛과 비슷한 주황색 필터(85 filter)가 필요하다. 그래서 모든 슈퍼 8 카메라는 주황색 필터가 내장되어있고, 그 내장 필터를 쓸지 안 쓸지 선택하는 버튼이 있다. 즉, T로 끝나는 필름을 대낮에 실외에서 사용한다면, 아래 사진과 같이 태양 조명을 선택해서 내장 필터를 사용해야 한다. D로 끝나는 필름을 쓴다면, 항상 실내등으로 설정해서 이 주황색 필터가 해제되도록 해야 한다.

[Nizo Professional의 내장 필터 노브]

  • 네거티브와 리버설의 차이

네거티브는 현상했을 때 색/명암이 반전되는 필름이고, 리버설은 눈에 보이는 대로 기록되는 필름을 말한다. 네거티브 필름이라고 해도, 컴퓨터에서 색 반전을 하면 되니 전혀 문제가 없다. 단, 영사기로 필름을 쏘아보고 싶은 로망이 있다면, 리버설 필름을 써야 한다. 비록 코닥에서는 컬러 리버설 필름 생산을 중단했지만, ‘Wittner Chrome 200 D’와 같은 컬러 리버설 필름이 여전히 존재한다.

[Wittner의 슈퍼 8 컬러 리버설 필름]

Tip 3.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

유통기한이 지난 오래된 필름은 되도록 안 쓰는 것이 좋다. 힘들게 찍은 필름이 하나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현상 가격이 거의 3배 정도 비싸다.

 

3. 찍기

카메라를 사고 필름을 구했다면, 이제 찍으면 된다. 슈퍼 8은 18fps에 최적화되어서 18fps로 찍고, 18fps로 스캔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디지털 파일로 작업하려면 24fps로 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기본이 30fps 이상인 요즘 촬영 환경에서 18fps은 움직임이 부드럽지 않기 때문인데, 이건 개인의 취향의 문제인 것 같다. 촬영자가 원하는 프레임레이트로 설정하고, 조명 환경을 태양 빛, 실내등 중 하나로 선택한 뒤, 초점 거리를 맞추고, 방아쇠를 당기면 모터가 돌면서 촬영이 시작된다.

 

  • 카트리지당 촬영 분량

하나의 카트리지를 기준으로 18fps로 촬영할 경우 3분 20초를 찍을 수 있고, 24fps일 경우 2분 30초를 찍을 수 있다. 카트리지를 다 쓰면 필름에 “exposed”라는 글자가 표시된다.

[“exposed”라는 표시가 보이는 다 쓴 카트리지]

  • 사용 중인 카트리지 잔량 확인하기

대다수의 슈퍼 8 카메라에는 필름 카운터가 있어서 남아있는 필름의 양을 확인할 수 있다. 단, 필름 통을 열면 초기화되니 필름 통을 열 때는 몇 칸을 썼는지 기억하는 편이 좋다.

[Nizo Professional의 필름 카운터]

Tip 4. 슈퍼 8 카트리지는 언제든 마음대로 꺼내도 된다.

왠지 필름이라는 말에 암실이 아닌 곳에서 카트리지를 꺼내면 안 될 것 같지만, 슈퍼 8 필름 카트리지는 빛이 차단되기에 마음대로 꺼내도 된다. 물론 노출된 몇 프레임은 빛을 받아서 손상되지만, 그게 오히려 슈퍼 8 필름의 맛일 수도 있다. 그리고 찍다 보면 중간에 카트리지를 꺼낼 일이 많다. 혹시 “exposed”가 표시되었는지(필름을 다 썼는지), 아니면 혹시 모터가 헛돌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Tip 5. 모터가 헛도는 증상 확인하는 방법

모터가 헛도는 증상을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제일 편한 방법은 노출된 필름 구석에 펜으로 점을 찍어두는 것이다. 조금 찍은 다음 카트리지를 꺼냈을 때 점이 없어졌으면 잘 찍혔다는 뜻이다. 만약 찍은 점이 그대로 있다면, 필름이 헛돌고 있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카트리지가 카메라에 잘 로딩되지 않았거나, 필름이 카트리지 내부에서 엉켜서다. 카트리지가 잘 로딩될 수 있게 ‘찰칵’ 소리가 나도록 끝까지 카트리지를 넣어주고, 그래도 헛돈다면 필름 제조사를 욕하면 된다. 카트리지 중앙 부분을 태엽 돌리듯 강제로 돌려서 엉킨 필름을 풀 수 있다고들 하는데, 엉킨 필름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찍기 전 되도록 필름에 점을 찍어서, 모터가 헛돌지 않는지 확인하면 편하다]

4. 현상과 텔레시네

다 찍었다면, 이제 현상과 텔레시네를 하면 된다. 사진 필름과 마찬가지로 슈퍼 8 필름도 현상해야 한다. 그리고 현상한 필름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야 하는데 이를 텔레시네라고 한다. 현재 한국에는 필름을 현상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외국 현상소로 필름을 보내서 현상과 텔레시네를 해야 한다. 코닥에서는 전 세계 필름 현상소의 정보를 홈페이지에 정리해두었으니, 이 중 슈퍼 8을 현상하는 곳에 연락해서 필름을 보내자. 유명한 곳으로는 미국 캘리포니아 Pro8mm이 있고, 가까운 곳으로는 일본 도쿄의 Retro Enterprise가 있다.

보통 필름과 빈 USB를 택배로 보내면, 현상한 필름과 텔레시네한 파일을 USB에 담아 되돌려 준다. 어떤 곳은 텔레시네한 파일을 웹하드에 올려두기도 하는데, 파일 용량에 따라 역시 별도 비용을 내야 한다.

[현상을 마치고 무사히 돌려받은 필름 릴]

tip 6. 피할 수 없는 공항의 X-ray

필름은 X-ray를 쬐면 손상될 우려가 있다. 불행히도 외국으로 택배를 보낼 때, 공항의 수화물검사 단계에서 X-ray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택배 박스에 온통 ‘Film No X-ray’라고 도배하는 몸부림뿐. 엑스레이 보호 커버를 사용하면 해결될 것 같지만, 필름을 받는 단계에서는 그조차 할 수 없다.

[Film, No X ray로 도배한 택배 상자]

5. 비용

비싸도 너무 비싸다. 필름 값, 현상과 텔레시네, 배송비까지 계산하면, 고작 3분 20초를 찍는 데 약 10만 원 정도 든다. 얼마 전, Kodak에서 전설의 컬러 리버설 필름 엑타크롬(Ektachrome)을 2017년 4분기에 재생산한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정말 필름이 부활하는 걸까? 어쩌면 한국에도 다시 슈퍼 8 필름 현상소가 생기지 않으려나.

해외 현상소와 이메일을 주고받고, 비싼 비용을 치르고, 국제 택배를 한없이 기다려보면 “이 짓도 더는 못 해 먹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 와중 좋은 점이라면, 필름이라는 비싸고 한정된 자원 덕택에, 한 컷을 찍을 때마다 더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휴대폰 카메라로 간편히 찍고 후보정을 해도 언뜻 비슷해 보이는 영상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차르륵 소리와 함께 줄어드는 필름 카운터를 확인하며 신중하게 선별한 순간을 찍어보는 경험까지 전해주진 않는다. 비싸고 힘들지만, 짬짬이 1년에 한두 카트리지씩 찍으며 사는 일도 나름 즐거운 허송세월이 아닐까.

글 │ 양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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