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session ─ Honey Badger Records

한국의 전자음악 신(Scene)은 지금껏 많은 레이블이 태어나고, 이내 모습을 감췄다. 그중 허니 배저 레코즈(Honey Badger Record)는 2014년, JNS의 [Overly Vivid]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꾸준히 존재해왔다. 약 3년간 11장의 음반을 발표했고, 다양한 베뉴에서 각자가 허니 배저 레코드의 이름으로 플레이하기도 한다. 그들이 바라본 현재 한국 클럽 언더그라운드 신, 더 나아가 한국의 음악 시장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이태원, 한남동에 있는 허니 배저 레코드의 작업실에 모인 그들은 천천히,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허니 배저 레코즈(Honey Badger Record)를 소개해달라.

JNS: 서울에 기반을 둔 언더그라운드 일렉트로닉 음악 레코드 레이블이다. 프로듀서가 중심에 있는 음반을 주로 발매한다. 보컬에 기반을 둔 음악은 릴리즈한 적도 없고, 계획도 없다.

 

‘프로듀서가 중심이 되는 음악’이라고 말했는데, 장르나 색깔은 상관없나?

JNS: 내가 들었을 때 허니 배저 레코즈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싶은 음악이다. 기준이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다. 보컬이나 랩이 들어간 음악을 배척하는 건 아닌데, 원체 관심이 없다. 랩 음악은 어렸을 때 많이 들었지만, 보컬이나 가사가 들어간 음악은 아예 안 듣는다. 익숙하지 않을 정도니까.

 

퓨처 카와이(Future Kawaii)는 LYJ와 보컬 다로(DALO)가 함께하는 그룹이지 않나.

JNS: 퓨처 카와이의 음악에는 보컬로 진행한 곡도 있고, 보컬을 복스(Vox) ─ 보컬을 뜻하는 말. 이 인터뷰에서는 보컬을 샘플 개념으로 사용했다는 의미로 쓰였다 ─ 로 쓴 곡도 있다. 나는 후자의 형태에 좀 더 주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Negative 2.0”도 노래를 부른 건 아니지 않나.

 

LYJAE – Negative 2.0 (feat. Future Kawaii)

지금까지 어떤 뮤지션이 허니 배저 레코드에서 앨범을 발매했나.

JNS: 내가 [Overly Vivid]를 냈고, 마더 네이처 오케스트라(Mother Nature’s Orchestra)의 [To Make this Wolrd Better]가 나왔다. 내가 영국에 있던 시절 음악을 같이 한 친구다. 쿠메오 프로젝트(Cumeo Project)는 음반을 냈지만, 최상민은 개인 사정으로 쉬고, 소제소(Sojeso)는 음반을 더 내고 싶다고 말했다. 킴 케이트(Kim Kate)도 허니 배저 레코즈에서 여러 음반을 냈고, DJ 보울컷(DJ Bowlcut)과 노 아이덴티티(No Identity)도 LYJAE로 싱글을 발매했다.

 

허니 배저 레코즈 음악가들은 다른 곳에도 소속되어있다.

JNS: 외국 음악가들도 여러 레이블에서 음반을 내지 않나. 소제소는 모자이크 서울(Mosaik Seoul)과 밴드를, 노 아이덴티티는 헥스 화이트(Hex White)를, 킴 케이트는 레이블 메르시 지터(Merci Jitter) 활동을 겸한다. DJ 보울컷은 워낙 다양하게 움직이고. 다른 레이블 사람들도 허니 배저 레코즈에서 음반을 낼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아직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뮤지션끼리 편 가르기도 심하고 레이블 자체도 별로 없다.

 

케이크샵(Cakeshop)에서 파티를 자주 연다. 허니 배저 레코즈는 자체적으로 라인업을 꾸리는 경우가 많은데.

JNS: 사람이 충분했다. 가능하면 우리끼리 하려고 한다. 게스트로 보통 한 명쯤 섭외한다. 우리와 함께 오프닝을 할 수 있는 친구 정도면 충분하다.

소제소: 각자 추구하는 장르가 달라서 걱정한 적도 있다. 나는 원래 디제이도 아니라 그냥 힙합이나 틀려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JNS가 알아서 타임테이블도 잘 짜고, 그게 제법 나쁘지 않다 보니 좋아지던데.

 

일부러 장르를 다양하게 선보이는 것 같다.

JNS: 나름 재밌는 파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장르에 집중하는 크루는 이미 많지 않나.

노 아이덴티티: 외국은 한 가지 맥락을 잡고 깊게 파는 경우가 많은 만큼, 허접 취급을 받았을 수도 있다.

JNS: 나는 외려 플로어의 흐름이 끊기는 걸 걱정한다. 정적이 생기면 관객이 나가니까. 그래도 케이크샵(Cakeshop)은 색깔을 하나로 규정한 베뉴가 아니라 그런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는 게 가능하다. 파우스트(Faust)에서는 그렇게 못 했을 거다.

 

노 아이덴티티가 클래식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OST를 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노 아이덴티티: 실제로 한창 틀고 있는데, JNS가 볼륨을 내리고 있었다.

JNS: 내가? 아마 취해있었을 거다.

노 아이덴티티: 표정이 항상 안 좋다. 테크노 같은 걸 틀지 않는 이상 표정이 좀….

JNS: 그건 오해다.

 

왜 클럽에서 굳이 그런 음악을 트는가?

노 아이덴티티: 반대로 되묻고 싶다. 왜 안 되는가? 음악을 선보이는 데 이유는 없다. 음악을 틀 때도 계속해서 창의력을 사용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음악을 생각해보니, 할 수 있는 게 많은데 한 장르에 국한하는 건 뭔가를 놓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테크노나 하우스를 플레이하는 게 별 재미가 없다. 장르의 멋은 정확히 알지만, 너무 많이 들어서 지루해진 듯하다.

킴 케이트: 트는 모습만 봤을 땐 노 아이덴티티가 가장 재밌어 보인다. 헤드폰 안 끼고 셋을 플레이한다든지, 별로 빠른 트랙이 아닌데도 bpm을 끌어올려서 튼다든지 하는 시도 말이다. 무턱대고 하는 게 아니라 절묘한 포인트를 잘 찾아낸다. 트는 곡 자체는 나와 큰 차이가 없지만, 접근 방식이 다르다. 그게 과연 ‘트롤링’인가? 트롤이 뭔지, 클럽에서 디제이나 파티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경험이 무엇인가에 관한 생각을 해봐야 한다. 노 아이덴티티는 그 폭이 더 넓을 뿐이다. 가스앰프 킬러(The Gaslamp Killer)가 노 아이덴티티 같은 행동을 진짜 많이 한다. 게네가 하면 존나 좋아하는데, 노 아이덴티티가 하면 왜 문제인가.

노 아이덴티티: 열일곱 살 때 가스앰프 킬러를 엄청나게 좋아했다. 그때 한창 하우스 믹스만 듣고 살았는데, 가스앰프 킬러를 들어보니 미친 짓을 너무 많이 하더라고. 생각의 차이라고 믿는다. 클럽의 포맷에 갇힐 필요 없다. 나는 항상 매트릭스에 빠지지 말자고 되뇐다. 불편한 짓을 해야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 플레이를 안 하려고 하거나, 아예 모르는 것 같다. 한국이 그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하다. 나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이상한 생각을 늘 해왔으니까 플레이할 때도 과감하다.

 

왜 한국에는 클럽의 포맷에 갇히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는가?

킴 케이트: 대안적인 플랫폼이 사라져서 그런 게 아닐까. JNS와 내가 와트엠(WATMM)을 할 때도 돈은 못 벌었지만, 우리 걸 하고, 그것만으로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같은 대화를 풀어낼 기회도 더 많았다. 지금은 상황이 당시보다는 낫지만 단점도 있다. 상업적인 플랫폼이 클럽 밖에 안 남았다. 상업적이지 않은 시도를 하고 싶어도 할 곳이 없다. 검증이 안 되니까 사람들은 더 시도하기 어려워지지.

노 아이덴티티: 중간이 없는 게 문제다. 마니아는 마니아, 대중은 대중, 이렇게 극단적으로 분리된 것 같다. 마니아는 ‘한 장르만 한 시간 내내 틀어야 한다’가 판단 기준이고, 대중은 대중만의 판단 기준이 있겠지.

 

마니아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또 테크노 신인 거 같다.

킴 케이트: 한 장르 안에서도 두 가지 포맷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테크노가 특히 심하다. 내가 하고 싶은 테크노는 그쪽 사람들에게는 테크노가 아닌 상황이다. 내 처지에서는 ‘이것도 모르면서 테크노를 얘기하네?’라는 식으로 해석되고 뭐 그렇다.

JNS: 노 아이덴티티와 킴 케이트가 한창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나’라고 얘기하지 않았나. 그들도 똑같이 생각할 거다.

킴 케이트: 교집합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쪽에서 다른 걸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다. 같이 하고 싶어도 어려운 거지. JNS와 테크노 클럽을 가보면 ‘나는 여기서 못 하겠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그들이 음악을 진지하게 한다는 건 인정한다.

 

작고 열악한 신 환경에서 허니 배저 레코즈는 꾸준히 내실 있는 행보를 보였다.

JNS: 결과론이지만, 중간에 오두방정을 떨어서 빨리 그만둔 사람들이 많지 않나 싶다.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대출받고, 음반 막 찍어내고, 바이닐 몇백 장씩 내고 브랜드와 협업도 하는 식으로 똑같이 하면 나는 아마 딱 1년 만에 닫을 거 같은데. 물론 중간에 한 번씩 욕심날 때가 있다. 한 번 터뜨려볼까 싶은 거지. 그렇지만, 그다음 그림이 안 그려진다. 레이블로서의 노선을 이어갈 계획이라면, 지금처럼 빌드업하는 게 옳다고 본능적으로 느낀다.

킴 케이트: 경제적으로 음악 하는 방법을 알았다. 음악을 내고, 파는 기간만 따지면 길게 잡아 5년이 넘는다. 무언가를 했을 때 보이는 아웃풋의 최대치가 이제 대충이나마 보인다. 과거엔 CD를 찍었다면, 이제는 그 돈으로 마스터링이나 PR에 쓰는 게 낫다는 이야기를 JNS와 나누기도 한다.

JNS: 당시에는 CD를 찍는 게 맞았다. 불과 3, 4년 전이지만, 디지털로만 발매하는 건 ‘음반이 나온 거야?’라고 취급받던 때니까.

 

JNS는 과거 한국에서 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레이블을 직접 차리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JNS: 다른 레이블에서 음반을 내려고 해도 내줄 레이블이 없을 것 같다. 레이블이 적은 건 분명 사실이다. 수퍼프릭 레코드(SuperFreak Records)나 헥사 레코드(Hexa Records), 그레이터 풀즈(Greater Fools Records) 정도?

 

JNS – Rubber, Wood & Steel EP (Full Preview)

JNS와 킴 케이트는 실제로 외국에서 음악 활동을 했는데, 어떤 경험이었나?

JNS: 나도 영국에 가기 전에는 영국인 모두가 엄청 멋진 전자음악을 들을 줄 알았다. 근데 8~90%는 팝을 듣더라. 다 똑같다. 다만, 그 1%의 실제 인구 숫자를 한국과 비교했을 때, 영국이 훨씬 많다. 언더그라운드라고 치면, 한국에서 백 명, 거기는 천 명이 음악을 만든다.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킴 케이트: 신 전체의 숫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구가 엄청 많은 데도 아무것도 없다가 이제야 등장한 게 중국 신인데, 그건 두힛츠(dohits)나 하이어 브라더스(Higher Brothres)가 촉매제 역할을 한 거다. 그렇다고 게네가 다 해 먹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 한국보다 더 암울해도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이 상당히 많다. 체코가 좋은 예다. 바이닐 앨범이 많이 나올 뿐만 아니라 테크노 신도 커졌다. 한국 언더그라운드는 현실 점검이 안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상황을 바라보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다들 언더그라운드라고 하지만, 메인스트림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레이블을 더 댈 수 있다. 하이그라운드(HIGHGRND), 비스츠 앤 네이티브스(Beasts And Natives Alike, 이하 BANA)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지.

JNS: 그 둘은 색이 좀 다른 거 같다. 콘셉트만 차용한 거지.

킴 케이트: 대형 기획사, 인디 레이블 사이의 상위 호환 인디 레이블을 만들어버린 거다. 다들 ‘케이팝을 해야지’라는 생각은 안 해도, 그런 기획사에 들어가서 편하게 음악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음악가 개인으로 보면 먹고 살아야 하니까 맞긴 한데…. 언더그라운드는 아니지 뭐. 사실, 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냥 자신의 포지션에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허니 배저 레코드가 바라보는 한국 클럽 신은 어떻게 변하는 중인가.

JNS: 프로듀싱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면서 판이 커지긴 커졌다.

노 아이덴티티: 뿌리가 없다.

킴 케이트: 태세를 전환하지 못 한 디제이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웠을 뿐이다.

 

Kim Kate – Drug Culture EP

체코 신 이야기를 하면서 ‘외부에서 보았을 때 의미 있는 행위’라고 말했다. 비슷하게 한국만의 색채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1차원적으로 가야금 샘플 같은 요소를 예로 들 수 있다.

노 아이덴티티: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고민하던 부분이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짜치지 않으면서도 멋있는 무언가다. 1차원적인 가야금 샘플 같은 건 로우파이 하우스, 로우파이 힙합에서는 멋있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다른 장르에 접목하기에는 기술적으로 잘 안 묻는다.

 

JNS: 첫째로 멋이 없고, 의미를 찾기도 어렵다. 막상 그런 걸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더라. 애초에 다른 시각을 가져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들이 봤을 때는 한국 전통이 낯설고 재밌으니까 건드리는 거지. 우리가 다른 문화에서 재미를 느끼는 경우랑 비슷한 느낌이다. 외려 억지로 접목하려고 하면 재밌지도 않고 결과물이 좋지도 않다.

노 아이덴티티: 토키몬스타(Tokimonsta)가 2010년에 발표한 [Midnight Menu]에 수록된 “Lucid Walking” 말고는 멋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요새 나온 국악을 엄청 디깅한 적이 있다. 은근히 멋진 게 있긴 있더라. 다만, 아직은 2% 부족하다. 그들만의 리그인 거지. 한국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없다는 게 문제다.

킴 케이트: 전통을 가져가야 한국적이란 생각 자체가 틀린 거 같다. 헌법만 봐도 지금의 나라는 조선이 이어져 온 국가가 아니지 않나. 조선 시대의 걸 지금 전유한다는 말인데, 그게 꼭 한국적인 건가? 잘해봤자 국뽕 소리나 들을 거고.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한국의 색은 근본이 없는 것이라는 결론이 난다.

JNS: 흔히 ‘비빔밥 문화’라고 하지 않나. 여기엔 아주 많은 이유가 있다. 외국은 100년, 200년 된 건물이 있기에 고유한 색이 유지되는 건데,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그 이후로 한옥도 남아있고, 슬레이트로 만든 집도 남아있는 거지. 음악에도 그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뭐가 진짜 우리의 것이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기 힘들다.

DJ 보울컷: 외국을 자주 다니면서 정체성이란 게 과연 존재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음악은 결국 패턴의 조합이다. 흔히 말하는 에스닉한 코드 진행이나 멜로디 진행 같은 걸 한국에서 사용해도 결국 똑같은 펜타토닉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와 단절하고 가는 게 낫다고 본다. 중국이나 일본을 가면 오히려 과거에 사로잡혀 신선한 걸 하지 못한다. 국가의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오히려 한국을 부러워한다. 파리는 18세기에 도시를 재건한 이후, 어떤 건물도 새로 지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실제로 파리는 현재 뚜렷한 움직임이 없지 않나. ‘프랑스 사람들은 뭘 하길래 음악을 이렇게 잘하지’ 싶어서 가봤더니, 동네에서 클럽 NB보다 못한 음악들을 틀고 있었다. 스피커도 엄청 허접하다. 반대로 한국은 전통에서 벗어나 있지 않나.

킴 케이트: 386의 정신적 유산이다. 국악조차도 조선의 역사서를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음악이 별로니까 중국의 것을 따르자’와 같은 말이 많다. 실제로 창만 몇 개 남았지, 기록된 곡도 얼마 없다. 한국의 정체성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음악은 포크 뮤직 정도다. 더군다나 지금은 2010년대인데, 과거의 정체성에 연연해야 하나?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마이너리티, 정체성을 내세우고 활동하는 사람을 보아도 ‘그 지역에 있다’라는 그 이상의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DJ 말폭스(DJ Marfox)도 그렇고, 심지어 꼼(Gqom) ─ 남아프리카 공화국 동부의 상공업 도시, 더반(Durban)에서 발생한 음악. 아프리칸 비트, 줄루어 챈트 등을 사용하여 거칠게 만들어진 로컬 음악이었으나, 영국의 레코드를 통해 클럽 신으로 번졌다 ─ 은 남아공 사람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래 활동하는 음악가들은 하나에 묶여있지 않다. 빠르게 받아들이고, 지칠 때 지치고, 만들 땐 꾸준히 만든다. 꿈비아(Cumbia) ─ 카리브 연안에 기반을 둔 음악. 남미에서 춤을 추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었으나, 이 또한 유럽발 레코드에서 수입하며 클럽 음악으로 변모했다 ─ 는 프랑스 힙스터 애들이 듣고 난 뒤, 레코드를 가져가서 파니까 다시 페루에 역수출됐다. 결국 ‘한국적인 것’으로 돌아가자면, 트랙을 많이 만들어서 보여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창의성이란 개념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노 아이덴티티: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나마 외국은 어렸을 때부터 자아를 훈련하는 교육을 나름 해온 거 같다. 우리는 아예 없었다. 그래서 난 레슨할 때 한 달 정도는 본인이 누구인지, 국적에 상관없이 음악을 같이 들으며 자신을 찾는 연습을 시킨다. 그래야 한국이 뭔지, 음악이 뭔지 이야기할 수 있다.

킴 케이트: 창의적인 게 무엇이냐고 생각해보면 사실 어렵지 않다. 나는 레슨할 때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라고 말한다. 자기가 하던 걸 매일 하면 된다. 같은 샘플 쓰던 거 쓰고, 비슷한 음색 쓰는 거지. 지겨우면 조금씩 바꾸면서 하면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떻게 해야 자신이 특별해지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개인으로 볼 때는 정체성이 매우 중요하다.

DJ 보울컷: 나는 완전히 반대다. 최대한 카피한다. 나도 예전엔 둘처럼 생각했지만,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래서 카피하고, 샘플도 많이 쓴다. 음악이라는 걸 보는 관점이 각자 다양하지만,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에는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빨간색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빨간색’이라는 단어가 없으면 설명할 수 없다.

음악은 샘플, 특정 리듬으로 설명할 수 있다. 쿵, 쿵, 쿵, 쿵. 이게 하나의 리듬이다.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형태소 단위다. 오래전부터 많은 뮤지션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형태지만, 완전히 창의적인 방식인가? 공통의 언어로 서사를 만들었을 때, 받아들이지 않는 집단과 받아들이는 집단이 있다. 내가 음악을 만드는 건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창의적인 것이라면 마치 라이스 버거 같은 메뉴다. 근본은 같은데,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거지.

노 아이덴티티: 덧붙이자면,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게 남과 달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말이 아니다. 예술이라는 게 무섭다. 사람에게 환상을 엄청나게 심는다. 음악에서 촉이나 영감 같은 말을 쓰지 않나. 다른 분야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다가 촉으로만 성공하고 장인이 되는 게 절대 불가능한데, 음악에서는 마치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아이디어로 모든 걸 해결하는 식이지.

하지만 촉도 생각해보면, 수만 가지 패턴을 연습했기에 나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음악을 포기했다. 이제는 현상적으로 접근해서 얘기해보고 싶다. 결국엔 예술은 감정, 창의성을 표현하는 일이다. 이게 되려면 기본적으로 자신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 방법은 상관없다. 그걸 체득한 뒤부터 유재하와 아르카(Arca)를 비교할 수 있다.

킴 케이트: 얼마나 전유하고, 얼마나 자신의 정체성을 넣을 거냐는 일종의 비율 이야기다. 런던과 서울의 차이점을 딱 하나 느낀 게, 비슷한 걸 하는 사람이 많으니 존나 든든하다. 소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어떤 샘플을 쓰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볼 수 있고, 프로젝트도 볼 수 있다. 내 것도 물론 공유한다. 그런데 서울에 오면 존나 외롭다. 정체성이라는 게 정말 웃긴 게,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한국에서 영국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변화를 줘도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DJ 보울컷: 정체성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DJ 사일런트’, ‘소울 컴퍼니’ 같은 것들.

 

No Identity – 1993 EP

음악가로서 정체성이 정해진다는 건 양날의 검인 것 같다.

JNS: 뒤돌아보면 잘 된 사람들은 변화를 잘 해냈다. 근데 사람들은 ‘변하면 안 돼’, ‘초심 찾아’, ‘변했어’, ‘1집이 명반인데’, 이런 얘기를 하지 않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들은 중심은 있되, 변화에는 맞춰간다.

킴 케이트: 요즘처럼 시대가 휙휙 바뀌는 때에는 하나만 파다가 망하기 마련이다.

JNS: 본인 걸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그러면서 기대를 너무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코어가 너무 세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좋았던 만큼.

노 아이덴티티: 한국은 코어가 없지 않나?

JNS: 한국의 코어는 가요에 있는 것 같다. 테크노에 영향받은 이정현 노래 같은 게 코어 아닐까? 90년대의 가요가 TR-909, TB-303을 많이 쓰지 않았나. 진짜 테크노 말고, 테크노의 요소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127 bpm을 정말 좋아한다고 우스갯소리처럼 생각해봤다.

DJ 보울컷: 힙합 좋아하는 사람 이만큼, 가요 좋아하는 사람 이만큼. 이런 식으로 딱 나뉘어 있고 그 경계가 모호하다.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을 유치할 때 보통 멜론의 ‘좋아요’를 지표로 삼는다. 클럽 신에 해당하는 지표는 사운드클라우드가 아닐까.

DJ 보울컷: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마냥 사운드클라우드 팔로워 숫자가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예를 들어서 외국에서 한국 시장에 접촉하려고 할 때, 그들만의 풀이 있다. 그 안에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JNS: 메인스트림은 숫자가 지표지만, 언더그라운드는 그 숫자 자체가 작으니까. 나쁘게 말하면 인맥이다. 케이크샵을 예로 들자면 유명인사도 오지만, 숫자로 다루긴 애매한 뮤지션도 많이 찾는다. 물론 그들이 프로모션을 잘한 케이스인데, 보통 프로모터나 에이전시를 통해 공유된 정보를 믿고 진행하는 것 같았다.

DJ 보울컷: 한국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에이전트 시스템은 확실히 부족하다.

킴 케이트: 안 그래도 에이전트 시스템을 만들자고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아무래도 음악만 하다 보면 다른 부분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데, 에이전시의 시스템이 필요할 때 만들면 그때는 너무 늦다는 거다. 그런데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으려면 실적을 내서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내가 뮤지션은 매일 트랙이나 만들라고 하는 거다.

JNS: 근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았나?

노 아이덴티티: 그 포지션을 하이그라운드, 바나 같은 레이블이 하려는 것 같다.

 

모두 에이전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것 같은데.

DJ 보울컷: 실제로 진행할만한 자원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한국인이 그 역할을 맡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프로모터는 외국으로 나가야 하니까. 로컬은 뮤지션의 놀이터지, 정작 중요한 시장은 아니다. 그래서 프랑스가 무섭다.

JNS: 한국인이 해서 안 될 게 있나?

DJ 보울컷: 프랑스를 예로 들면 모든 일이 프랑스 커뮤니티에 침투하면서 발생한다. 한국 커뮤니티 안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곳에는 아무런 국제적인 연결 가능성이 없다. 홍콩의 한 야외 레이브 파티를 갔는데, 정글 안에서 스피커만 가져다 놓고 하는 파티였다. 주최는 홍콩에 사는 프랑스 사람이었지만, 온갖 나라에서 놀러 온 관객으로 가득했다. 그곳에 참석한 홍콩 음악가는 자연스레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니 언어나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이들이 유리하지.

노 아이덴티티: BANA가 지금 그 역할을 잘 하는 것 같다. 직접 가서 사람을 보고, 영입하거나 곡을 사 온다.

킴 케이트: 아무튼 한국은 내수 시장을 기대하면 안 된다. 외국 역시 눈을 밖으로 돌린 상황이고.

JNS: 한국 시장만 봐도 서로 뜯어먹지 않나.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으면 뮤지션들이 뭉칠만한 긍정적인 흐름이 생길 수 있다.

노 아이덴티티: 뮤지션의 역량도 그 수준에 못 미치는 것 같다. 어떤 장르에서도 세계적인 퀄리티를 뽑아내는 사람은 극소수다.

 

한편으로는, 인터넷의 속도가 뮤지션의 세계적인 교류를 풍성하게 했다.

DJ 보울컷: 인터넷도 하나의 지역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JNS: 현실의 음악과 인터넷 음악은 정말 다르다. 어쨌든 우리가 인터넷으로 배우고, 구심점이 인터넷이 되었다.

 

인터넷이 메인이었던 신의 흐름을 케이크샵이 오프라인으로 끌고 오지 않았나.

JNS: 맞다. 케이크샵은 클럽에서 플레이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가져오지 않았나. 한국에는 그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노 아이덴티티 말대로 모든 음악이 인터넷에서 왔으니까.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한 음악가는 한국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재현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말을 한 적 있다.

노 아이덴티티: 자존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DJ 보울컷: 동, 서양의 차이일 수도 있고, 한국 혹은 집단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일 수도 있다. 분석하는 기준이 다른 것 같다. 서양은 아카이빙하고 철저히 분류하는 작업에 능하다.

JNS: 사운드 오브 사운드(Sound of Sound) 같은 잡지도 수십 년째 발행되는 중이다. 사실 지금 되게 웃긴 거 아닌가. 웹, 유튜브로 보면 되는데 굳이 종이로 기록하는 일을 한다. ‘요즘 누가 저런 거 봐’라고 하지만, 보는 사람은 본다.

DJ 보울컷: 중심을 만드는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기록하고 분류하는 일. 장르 역시 동양은 외부적 요인에 집중하고, 서양은 내부적 요인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아마 언어적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닐까.

노 아이덴티티: 동양은 경직된 문화라고 해야 할까. 중국이 이진법을 먼저 개발했어도, 컴퓨터로 이어지지 않았던 건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렵게 발명했어도 점으로밖에 사용하지 않는 거지. 어쨌든 이건 옛날얘기다. 앞으로 시대 흐름은 더 빨라지고, 정보는 더 많아질 텐데. 서양권이든 동양권이든 중요하지 않은 날이 올 것이다.

 

장비에 예민한 프로듀서도 많을 것 같다. 특정 장비의 질감을 이야기하는 이들이나 값비싼 장비에 집착하는 프로듀서를 본 적 있다.

DJ 보울컷: 환상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킴 케이트, 노 아이덴티티가 레슨을 하니까 많이 들었을 법한 이야기다. 좋은 사운드를 내기 위해선 좋은 장비가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장비병’에 걸린 친구들이 있다. 아니면 약간 배우고 나니 아직 어린데도 벌써부터 꼰대가 되어서 특정 장비가 최고라는 환상을 갖는다. 선입견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는 모든 장비가 다 괜찮은 거라고 말해줘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맨날 뱅어를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음악처럼 장비도 다양하게 써봐야 한다. 일종의 언어 아닌가.

킴 케이트: 이게 다 큐오넷 때문이다.

DJ 보울컷: 처음에는 나 역시 전기도 신경 쓰고, 룸 어쿠스틱에도 엄청 공을 들였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도 엄청 받았지. 이제는 신경 안 쓴다.

JNS: 솔직히 외국 애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룸 어쿠스틱이 잘된 곳에서 하면 당연히 좋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공간에서도 하면 한다. 근데 커뮤니티에서는 다 맞추고 시작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 갖추어진 상태에서 음악을 해야 한다는 말이지. 외국 친구들은 좀 더 열려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음악가도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DJ 보울컷: 이제는 누구나 음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초반부터 완벽한 장비를 갖추려고 에너지를 쓸 필요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 최대한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킴 케이트: 처음부터 비싼 장비들을 갖추고 음악을 시작하는 건 사실 정반대의 이야기다. 음악으로 성공해서 스튜디오를 갖췄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처음 음악을 시작한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DJ 보울컷: 나는 턴테이블로 시작을 해서 그런지, 시퀀서 화면으로 음악을 만들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턴테이블로 하면 재밌는데 시퀀서를 작동하면 고통스러운 거다. 요즘은 눈을 감고 만든다. 이런 과정을 거치니 성장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매번 같은 방식으로 할 수는 없다는 말이지. 그러니 다른 누구에게 조언하는 일은 더 어렵다.

노 아이덴티티: 나는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환상이란 걸 인정하고 현상만 바라보세요’라고 조언한다. 음악 만드는 연습을 더 해야 한다. 장비에 집착하는 병도 같은 맥락이다. 나도 비슷한 상황에 부닥쳐본 적이 있다. 막상 장비를 사니 제대로 못 썼다. 지금은 잘 할 수 있다. 음악 만드는 연습을 많이 했고, 미친 짓을 많이 해봤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걸 수도 있지만, 다르게 바라보는 연습을 많이 했다. 믹싱할 때 EQ를 6db 이상 올리면 안 된다는 ‘정설’이 있지 않았나. 이런 걸 무시하고 다 해봤다. EQ를 백 개도 걸어봤다. 나는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EQ 백 개, 리버브 백 개, 컴프레서 백 개를 걸어보라고 하고 싶다. 이걸 해봐야 안다. 안 해보면 모른다. ‘EQ 다음 컴프’ 같은 순서에 빠져있으면 갇힌다. 물론 소리가 깨끗하게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뻔하게 하면 뻔하게 나온다. 창의성은 다르게 바라볼 때 나온다.

킴 케이트: 망가뜨려 봐야 한다. 나는 음악을 시작하는 이에게 ‘아, 영감이 떠오른다’,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하루에 몇 시간씩 앉아있고, 음악 만들고, 때 되면 밥 먹고, 퇴근하고, 자는 걸 반복해야 한다. ‘질’보다는 ‘양’이다.

JNS: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환상에서 벗어난 거지. 왜, 모두가 슈퍼스타가 되고 싶어 하지 않나.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그건 하다 보니 슈퍼스타가 되는 거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다. 이 직업, 음악이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접근하면 많은 것이 쉬워진다. 그러면 아침에 나오든 저녁에 나오든 패턴이 생긴다. 슈퍼스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의 직업인이 되어 있고,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거지.

 

슈퍼스타를 향한 환상 중 하나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 아닌가.

JNS: 그들의 삶이 매일 죽어라 놀고, 친구들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그야말로 뮤직비디오일 뿐이다. 마이크 앞에서 죽어라 랩했든, 버스 뒤에서 가사를 적었든 그런 과정은 모르겠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였기에 스타가 된 거다. 직업의식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지.

DJ 보울컷: 소제소는 자신이 일기 쓰듯이 음악을 만든다고 하더라. 나는 이번 음반의 60%를 버스 안에서 만들었다. 부평에서 혜화로 출퇴근하는 데 두 시간 걸린다. 11인치 맥북 에어로 대중교통 안에서도 충분히 음악을 만들 수 있다.

 

’허니배저 레코드 뮤지션은 자신의 음악이 플레이되는 걸 목적으로 음악을 만들 거다’라고 킴 케이트가 이야기한 적 있는데.

DJ 보울컷: 나는 디제이니까 플레이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근데 그런 목적으로 만든 곡은 생각보다 틀기 어렵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걸 만들었을 때, 제삼자 측면에서 틀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좀 더 쉬운 걸 만든다. 이렇게 쌓이다 보면 한 가지 테마로 여러 가지 형태가 나온다. 거기서 고르면 된다. 기본적으로는 하고 싶은 걸 하지만, 평소에 댄스 음악을 많이 들으니 그 형태가 나오는 거 같다.

킴 케이트: 결국, 플레이되기 위한 프로세스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곡은 어디서 틀어야겠고, 어디서 끊어야겠다는 걸 확실하게 안다. 남들이 트는 걸 들어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플레이된다. 그래서 다른 디제이가 트는 걸 듣고 새롭게 얻는 아이디어도 제법 있다. 그게 재밌다. 단순히 내 음원을 사서 듣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내 음악을 디제잉의 일부로 플레이한다는 건 내용부터 정말 다르다.

JNS: 남이 내 곡을 틀 때 깜짝 놀라곤 한다. ‘이걸 이렇게 트네?’. 며칠 전에도 아는 이에게 음악을 보내줬더니 그 트랙 후반부에 루프를 돌려놓고 믹스하더라.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내 노래 같지 않았다. 일정 구간을 반복하니 완전 다른 곡이 된 거다. 다른 디제이가 플레이하면 내가 못 하는 걸 할 수 있다.

하우스, 테크노 싱글을 내던 음악가들도 풀렝스 앨범을 내면 좀 다르게 낸다. 하우스, 테크노의 작법은 가지고 가는데, 앨범이라는 형식 때문인지 되게 자신의 색을 많이 묻어나게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플레이하기엔 잘 안 붙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싱글은 장르적 특성에 집중한 ‘우리’의 음악이고 앨범은 ‘내’ 음악, 나를 표현하는 음악에 가까워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DJ 보울컷: 장르 특성이 영향을 미친다. 하우스와 테크노는 ‘우리’ 음악이다. 곡이 나와도 리믹스할 수 있고, 새롭게 틀 수도 있다. 하지만 글리치는 ‘내’ 음악에 가깝다. 특성상 하우스 같은 건 쉬운 언어라 해석할 여지가 많다.

DJ Bowlcut – Colmena EP (Full Preview)

플레이를 떠나서 자신만을 위한 음악이라고 한다면.

DJ 보울컷: 요즘은 주로 앰비언트(Ambient)다. 아무에게도 안 들려준다. 오직 나를 위해서 만든다. 나중에 한참 지나면 또 우리의 음악으로 들어오긴 한다. 나도 그중 하나니까. 샘플을 따려고 유튜브에서 ASMR ─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준말. 최근 유튜브에서는 청각을 자극하여 시각 심상을 만들어내는 영상 혹은 사람이 속삭이는 소리로 한정되어 쓰인다 ─ 같은 걸 찾아듣다가 빠져버렸다. 처음에는 사람 목소리만 들었는데, 나중에는 파리의 한 카페, 가스 새는 소리에도 매료되었다. 재밌는 게, 점점 ASMR을 찾아 들어가다 보니 가상의 공간을 소리로 만들기 시작하더라. 스타트랙 엔터프라이즈호 캡틴 실의 침실 같은 걸 만들어 올린다. 스타워즈 어느 행성의 노이즈를 소리로 표현한다. 이게 생각보다 기술이 많이 필요하다.

JNS: ‘쿰칙쿰칙’ 드럼이 있는 곡만 많이 듣다 보면 어느새 앰비언트가 편해진다.

노 아이덴티티: DJ 보울컷이 하는 방식이 어떻게 보면 시공간을 생각하는 일이다. 음악을 4요소로 멜로디, 코드, 리듬, 사운드로 크게 나눠봤을 때, 전자음악은 거의 리듬과 사운드로 이루어진다. 스토리는 멜로디와 코드가 특정한 색깔로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우리는 리듬과 사운드 위주니까, 이 둘로 이루어진 음악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 시공간을 생각하는 단계까지 가야 하는 것 같다.

DJ 보울컷: 모든 음악이 앰비언트를 기본적으로 깔고 간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본질 자체는 아까 말한 시공간을 채우는 일이다. 지금 이곳도 되게 조용한데, 여기에 새소리만 넣어도 채워지는 게 있다. 그게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옛날부터 그 점을 인지하고 살았다. 피라미드나 고딕 성당에 가보면 건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리버브에 신경을 많이 썼다. 공간감과 앰비언스를 만들기 위함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옛날, 원시인이 살던 동굴 안에서 소가 그려진 벽화를 두드렸을 때 마치 소와 비슷한 음역의 소리가 난다고 밝혔다. 음악과 공간과 시간의 연관성을 생각한 일이다. 멜로디, 코드, 사운드는 여기에 움직임을 준 거지. 앰비언트나 댄스 음악은 공간을 만들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춤을 추고 놀 수 있다. 멜로디가 들어가면 한 인물에 집중하게 된다. 무대 위에 배우들이 있어서 거기에 껴 들어갈 수 없는 거지. 그런 면에서 ‘왜 배우가 안 나와?’, ‘왜 시작 안 해?’라고 생각하면 앰비언트가 어렵게 느껴지는 거다.

JNS: 나도 아주 예전에는 음악을 좋아해도 이해한 건 아니었다. 댄스음악을 만들다 보면 공간, 빛의 중요함을 알게 된다. 노는 사람은 모를지 몰라도, 디제이에게는 사소한 조명 하나도 신경 쓰인다. 울림이 적거나, 너무 밝으면 사람들이 안 논다.

DJ 보울컷: 극장 안에서 조명을 다루는 방식과 비슷하다. 우리는 공간을 만들고, 관객은 알아서 놀라는 거지. 우리는 공간을 디자인한다.

노 아이덴티티: 힙합 신에서 제이딜라(J Dilla)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직접 비트를 만들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맞는 말이다. 처음에 내가 소울 컴퍼니만 들을 때는 다들 왜 그렇게 제이딜라를 칭송하는지 몰랐다.

DJ 보울컷: 제이딜라가 비트를 만들던 때 그 공간에 어울렸던 사람이 있고, 그 바이브가 있다. 그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디트로이트에서 듣는 것과 한국에서 듣는 것과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그때의 바이브가 어떤지 아는 시점이 온다. 음악을 많이 듣다 보면, 음악이 타임머신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고 그때부터 음악이 너무 재밌어진다.

 

서울에서 음악을 하는 건 당신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노 아이덴티티: 말했지만, 이건 환상 게임이라서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맞을 거다. 너무 클리셰한 답변도 재미없고. 플랫폼이 재미없다는 건 확실히 느꼈는데, 새롭게 만들려고 하니 내가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1, 2년 안에 이뤄질 것 같진 않다. 5~10년은 바라봐야 한다. 나는 환상이 없어서 그 순간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환상을 깨야 하는 건 당연하다. 나는 지금 환상을 깼고, 그 뒤를 만들어나가는 중이다. 환상을 새롭게 만드는 거지. 그게 가능하다면 서울을 넘어 국가, 인종 같은 게 중요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DJ 보울컷: 이제는 공간적으로 서울이라는 말이 크게 중요하진 않다. 음악 만들 때도 서울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와 닿는 게 있나 싶기도 하다. 내 음악을 듣는 사람도 대부분 외국인이다. 그래도 아까 얘기했던 커뮤니티로의 관점에서는 나와 같이 노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우리를 지지하는 집단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 파티 음식도 서양 음식만 먹다가 갑자기 카레 같은 걸 가져오면 신선한 것처럼. 서울에는 ‘이런 것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서울’하면 강남스타일 이야기를 하는데 이제는 또 그렇지 않다. 언젠가 로보토미(LOBOTOME)와 뎀데프(Damdef)의 “No Brothers” 트랙 댓글에 유저들의 다양한 반응이 달린 적 있다. 그들도 그라임 신 안에서 새롭고 신선한 게 나왔다고 생각한 거지. 신을 리드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서울이란 곳에는 이런 것도 있다. 뭐, 이런 거.

JNS: 비슷하다. 런던에서 돌아왔을 때는 나름 서울에서 뭘 할 수 있을지 갑갑했다. 그러다가 점점 지역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걸 그냥 한다. 허니 배저 레코즈도 서울을 대표하는 레이블이 될 필요도 없다. 그래도 내가 서울에 있는 건 현실이고, 분명히 이곳이 내게 영향을 주고 있다. 여기서 외국 음악을 듣고, 외국 사이트에 들어가도 밥을 먹고 움직일 때마다 서울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다 보면 우리만의 색깔이 나오지 않을까? 꼭 무언가를 넣어야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방식이지. 영국에서 만든 내 음악과 한국에서 만든 내 음악이 상이한 것처럼.

DJ 보울컷: ‘인터페이스’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차를 타고 갈 때, 오토로 운전하든 스틱을 운전하든 가는 모양새가 다르다. 인터페이스가 다르니까. 음악도 똑같다. 과정이 달라지니까, 결과물도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서울이란 인터페이스 안에 있다.

JNS: 환경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이 음악에 영향을 준다.

노 아이덴티티: 그런 면에서 나는 서울을 탈출하라고 말하고 싶다.

JNS: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첫 번째 조언이다. 나도 탈출을 하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탈출과 음악은 별개의 문제다. 나는 탈출해서 먹고살다 보니 음악을 하나도 못 만들었다. 음악으로 돈을 벌고 싶고,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음악을 계속하고 싶으니까 서울에 있는 거다. 그래서 페기 굴드 같은 뮤지션이 용감하다. 소셜 미디어에 화려한 모습을 올리지만, 사실 되게 외로울 거라고 생각한다. 참 대단하지. 거기서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본인이 뚜렷한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더 많은 걸 버려야 한다.

Honey Badger Records 공식 사운드클라우드 계정

진행 / 글 │ 심은보
사진 │ 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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