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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DEAN

지금 대한민국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음악 중에서도 흥행의 보증수표라면, 근 몇 년 사이 무서운 속도로 치고 들어온 이름, 딘(DEAN)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겠다.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D(Half Moon)”를 통해서. 딘을 감미로운 R&B 가수로만 접한 이들이 잘 몰랐던 사실 하나는 그가 성인이 되자마자 줌바스 뮤직 그룹(Joombas Music Group)이라는 베테랑 프로듀서 집단에서 경력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적잖이 쌓인 음악적 내공을 바탕으로 딘은 좀처럼 흠결을 찾기 힘든 단단한 신예 뮤지션으로 거듭났다.

데뷔 초기부터 무대가 아닌 곳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그가 최근 갑작스레 ‘쇼미더머니 6(Show Me The Money 6)’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여러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딘은 동료 지코와 함께 준비한 다채로운 장르와 콘셉트의 무대로 행주의 우승에 지분을 보탰다. 방송이 끝난 뒤로 더 많은 이들이 계속해서 그의 과거와 지금을 훑고 있다.

 

요새 뭘 하고 지냈나.

쇼미더머니 6가 끝난 뒤, 그동안 미뤄왔던 일을 하나씩 정리 중이다. 최근 이사하고, 차도 샀다. 이번 주에는 좀 쉬러 도쿄에 갈 예정이다.

 

편하게 다닐 수 있을까?

아직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글쎄.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하하.

 

미국에서 새 앨범을 작업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사운드클라우드로 공개할 트랙뿐만 아니라 [130 Mood: Revenge]라는 새 앨범을 완성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닐 계획을 짜고 있다.

 

직접 밝혔듯 제임스 딘(James Dean)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를 동경하는 이유라면?

어머니가 제임스 딘을 무척 좋아했는데, 그 영향인지 나도 자연스레 빠져들었다. 그의 도전과 실험정신, 한 시대의 상징이라는 점까지 모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반항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모습이 내가 추구하는 삶, 음악적인 방향성과도 잘 맞았다.

 

무엇에 저항하고 싶은가.

뭐랄까. 예전에는 뻔한 음악에 저항하고 싶었다. 이제는 그걸 넘어서 어떤 사회적인 통념이나 선입견을 깨고 싶다. 나를 향한 시기와 질투에 반항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잘 타오르는 성격인가.

나는 감정이 불안한 사람이다. 억울하다고 마냥 참는 성격도 아니고. 어떨 때는 나 자신이 너무 마음에 들지만, 한없이 싫어질 때도 있다.

 

대중적인 성공이 불안정한 감정 상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성공이란 말은 타인의 시선에 달린 문제인 것 같다. 불안은 내 안에서 나오기 때문에 좀 다른 성질이라고 본다.

 

왜 그렇게 불안한가?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습관처럼 불안함이 몸에 배어있다.

 

반항적이고 날 것의 음악을 추구한다는 본인의 말과 지금의 입지, 음악적 행보가 조금 다르다고 느낀 적은 없나?

부정하지 않겠다. 결국에는 결과물로 증명해야 할 것 같다. 아티스트의 행보가 곧 이미지니까. 올 초에 가장 많이 고민한 주제다. 상업성보다는 오래전부터 그리던 이상향에 가까운 음악을 해야겠다고 느꼈다.

 

쇼미더머니 6에 출연한 계기라면?

이 방송으로 드러내고 싶은 지점이 명확히 있었다. 출연 전에 고민하던 부분은 혹시라도 내가 대중에게 친근한 뮤지션으로 느껴지지는 않을까 하는 문제였다. 나는 딘이라는 이름과 음악이 계속 낯설길 바란다. 아담 샌들러(Adam Sandler)와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를 예로 들자면, 모두 훌륭한 감독이지만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방향은 후자 쪽이다.

 

방송에서 어떤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나.

나는 힙합이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사람인데, 자꾸 한쪽으로 이미지가 치우치는 것 같아서 못내 아쉬웠다. 힙합이라는 장르와 나의 연결점을 계속해서 찾고 싶었고 결국, 출연을 결심했다.

 

유튜브에서 키스 에이프(Keith Ape)와 활동하던 시절의 트랙이 공개됐다. 랩과 싱잉을 섞는 모습은 여러 번 봤지만, 완전히 래퍼의 영역에서 만든 곡이 있는 줄 몰랐다.

어렸을 때부터 흑인 뮤지션을 동경해서 머리도 밀고 다녔다. 나와 잘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뒤로는 음악적으로도 방향을 틀긴 했지만, 힙합은 내 뿌리에 가깝다. 고등학교 때, 정글 라디오 같은 곳에 자작 랩을 올리곤 했다. 외국 문화를 비교적 빨리 받아들인 편인데, 그때 오드 퓨처(Odd Future)나 팩딥(Pac Div) 같은 크루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장퀴(Jan’Qui)라는 영상 아티스트나 키스 에이프와 같은 뮤지션들과 함께 크루를 만들어서 활동했다. 아르바이트와 음악을 병행하다가 회사에 들어갔다. 자유롭게 음악만 하기에는 가정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다. 나는 회사에 들어갔고, 키스 에이프는 오케이션을 비롯한 동료들과 독립적인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그 시절 음악이 다시 회자되니 기분이 어떤가?

딘이라는 사람을 알아가기에 좋은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부끄럽지는 않다. 처음부터 힙합은 내 중심에 있었으니까. “D(Half Moon)”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을 테지만. 하하.

 

크루로 활동하다가 회사에 막 들어갔을 때 심정은?

나는 돈을 벌고 싶었다. 물론 독립 아티스트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노선을 변경한 셈이다. 프로듀서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시간을 두고 더 긴 호흡으로 달려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성공한 뮤지션을 떠올리면서 위안 삼은 거지.

 

혹시 처음 만든 곡을 기억하나.

당연히 기억한다. 최근에 다시 듣기도 했다. 디스코 기반 인스트루멘털에 멜로딕한 랩을 한 곡이다. 당시 록 사운드에 랩을 얹는다든지, 얼터너티브한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키드 커디(Kid Cudi)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줌바스 뮤직 그룹과 연을 함께하면서부터 몇 년 간 음악적인 강행군이 이어졌다. 그 시절에 배운 것이라면?

줌바스는 아카데미가 아니라 실제 활동하는 프로듀서들이 모인 회사다. 나는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일로써 음악을 접했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당시 유행하던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라든지, 유럽 기반의 신스팝 등 더 다양한 음악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때 회사 선배 프로듀서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프로듀서 그룹에서 곡을 쓴다는 건 창작의 출발점이 독립적인 뮤지션의 입장일 때와는 조금 다른 의미일 것 같다. 그 차이에 관해서 듣고 싶다.

곡의 레퍼런스가 존재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곡이 바라보는 지향점이 명확하다. 프로듀서는 그 아티스트가 왜 그 곡을 레퍼런스로 삼는지 의도를 고민하고 사운드를 결정한다. 어떻게 보면 원곡을 카피하는 연습이 사운드나 질감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딘의 중심에서 R&B를 빼놓을 수 없다. 랩이 R&B로 바뀌게 된 계기는?

어느 순간부터 랩 트랙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R&B 보컬에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흔히 말하는 R&B의 정석 같은 앨범을 죄다 찾아서 들었다.

 

보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어떤 방식으로 목소리를 다듬었나?

한국 실용음악 교육과정은 보통 발성의 기본, 올바른 소리를 내는 방법을 가르친다. 반면에 일반적인 래퍼들은 홈레코딩을 통해 본인의 톤을 찾고, 기존 래퍼를 따라 하면서 개성을 만들어나가는데, 내 경우도 이와 비슷했다. 교육을 받을 여건이 안됐으니까. 혼자 외국 노래의 훅 같은 걸 따라 부르면서 톤을 찾았다. 톤을 다듬는 데 시간을 쏟다 보니 데뷔 초기에는 발성이 좋지 않았다. 그 뒤로 라이브나 퍼포먼스를 보강하면서 어느 정도 ‘보컬’이라는 개념이 성숙해진 것 같다.

 

평소 어디서 영감을 받는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길가의 나뭇잎을 보고 아무것도 못 느낄 때도 있지만, 새로운 느낌을 받는 날도 있다. 마치 우울할 때 주변 사물에 감정을 이입하기 쉬운 것처럼, 기분에 따라 그 느낌도 달라진다. 농구공이 백보드에 맞을 때 나는 소리라든지, 일상의 소리에서도 재밌는 아이디어를 얻는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수많은 팬이 딘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인다. 몇 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는데, 그 점이 자신을 힘들게 하지는 않는가?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와 실제 내 모습과의 괴리감이 불편하게 다가온 적도 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제 각종 매체와 대중의 시선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이 됐다. 바라던 삶인가?

나는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농담이 아니다. 나는 내가 연예인이라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밖에 잘 돌아다니는 성격도 아니고. 그냥 스물여섯 살의 삶을 사는 남자다.

 

뮤지션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분위기는 어떤가.

내가 추구하는 ‘반항’은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한국은 뮤지션, 스타가 예의 바르길 원한다. 그러나 존중과 배려는 대중과 뮤지션 양쪽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할 덕목이다. 나는 소셜 미디어에 직접 댓글을 달기도 하면서 성격을 드러내는 편이다. 주변에서 굳이 일일이 대응할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그게 나인데 어쩌겠나. 차라리 그런 식으로라도 내 성격을 보여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원체 억울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혼자 있을 때 자유롭다고 느끼는가? 아니면 주변에 누군가가 있을 때 더 많은 창의력이 발휘되는가?

주변 동료들과 함께할 때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다. 현재 앨범을 준비 중인 RAD 뮤지엄(RAD Museum)이라는 동료 뮤지션이 있는데, 그와 감성이 잘 맞아서 특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주변에 재능 있는 동료가 많아서 그런지 그들과 함께 있으면 여러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Dean – I’m Not Sorry feat. Eric Bellinger (Lyric Video)

에릭 벨린저(Eric Bellinger)가 참여한 첫 번째 싱글, “I’m Not Sorry”를 발표하자마자 화제를 모았다. 이외에도 LA 기반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과 자주 교류하는 것 같은데 그들과의 협업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진 건가?

첫 싱글을 낼 때는 미국 시장에서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회사 차원에서 에릭 벨린저에게 연락했다. 그 뒤로 친분을 쌓은 에스타(Esta)나 앤더슨 팩(Anderson .Paak) 같은 뮤지션은 자연스럽게 소개받거나 놀다가 만난 사이다. 그들과 교류하는 과정은 정말 재미있었다. 그 친구들은 정말 자유롭다. 한국에서 음악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대중과의 접점이나 세일즈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데 미국은 워낙 소비자도 많고 층도 다양해서 마니악한 장르라도 그들만의 신(Scene)이 만들어진다. 작업할 때도 그냥 느낌 가는 대로 해보자는 식이다. 모든 게 즉흥적이다. 밥을 먹듯, 놀 듯 작업한다. 그들이 곡을 쓰는 과정은 놀이문화에 더 가까운 것 같더라고.

 

소울렉션(Soulection)을 비롯한 LA발 비트 신과 접점이 있는 듯하다. 그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영향을 받아들인 건가.

제레미(Jeremih)와 슐로모(Shlohmo)가 협업한 곡이 큰 계기가 됐다. 우연히 접한 그들의 음악에 충격을 받았고, 그 뒤로 지역적인 사운드에 더 심취했다.

 

[130 Mood: TRBL]은 음악 외적 요소까지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장치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역순차 구성, 폴라로이드 이미지, 커버아트에 숨겨진 의미 같은 것들은 앨범을 맛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한 앨범의 기획자로서 욕심이 드러나는 부분인데.

내가 동경하는 아티스트는 음악뿐만 아니라 음악을 둘러싼 모든 구성에 본인의 철학과 아이디어를 녹여냈다. 심지어 패션까지도. 내 지향점 또한 그들과 같으니 당연한 일이다.

 

앨범의 주제는 아무래도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건가?

그렇다. 내가 느낀 사랑과 이별, 그에 관한 복합적인 감정을 담았다. 그래서 ‘트러블Trouble’이다.

 

정작 음악에서 드러낸 주제의 표현 방식은 다소 상투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장르적으로 통일감이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앨범이어서 만족한다. 할 이야기는 다 했으니.

 

‘130 Mood’라는 앨범 콘셉트 역시 제임스 딘과 연결고리가 있다. 그의 애마, 포르쉐 550 스파이더의 보닛에 적힌 숫자가 바로 130인데, 앨범과 어떤 관련이 있나?

‘130 Mood’는 앨범의 주제라기보다는 앞으로도 내가 발표할 앨범의 대전제로 붙는, 일종의 시리즈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마블 시리즈를 떠올리면 쉽다. 나는 앨범을 만들 때, 그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의식과 전체적인 구성, 스토리텔링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따라서 시리즈 형식의 앨범을 포괄하면서도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름이 필요했다. 딘의 어원이 제임스 딘에 있다면, 내 음악은 그의 실험정신을 이어받은 반항적인 음악이다. 그러니 제임스 딘이 사랑하던 차, 그가 결국 사고로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개조와 실험을 반복하던 포르쉐에 적힌 ‘130’이라는 숫자를 시리즈 타이틀로 정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 아닐까.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는 이유라면.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림 하나를 완성하면 어머니에게 보여주곤 했는데, 정작 그림은 못 그렸지만, 항상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열심히 설명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때부터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즐긴 게 아닐까 한다.

 

딘이라는 이름은 한 명의 뮤지션이라기보다도 프로듀서, 기획자들의 종합적인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재능 있는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걸 좋아한다. 앞으로도 포토그래퍼, 스타일리스트 등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까지 포괄해서 전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음악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공연의 구성, 미술, 퍼포먼스, 앨범 아트, 패션까지 딘이라는 아티스트의 색깔을 잘 구현할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하고픈 욕심이 있다.

 

계속해서 음악의 오리지널리티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장르적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다른 걸 다 떠나서 결국 내가 지속해서 내는 결과물이 내 오리지널리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어린아이의 꿈이 영화 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목표로 이어졌다. 음악에 내 세계관을 담고, 의미를 남기고 싶다.

 

새 앨범 [130 Mood: Revenge]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길까.

이번에도 지금의 내 모습을 담았다. 내 자신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 이야기가 많은 사람을 대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다. 영화를 만들 듯, 일일이 각본을 짜고 있다고 말하면 조금 힌트가 되려나.

 

어느새 한국 음악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됐다. 다만 딘의 이상향이 팝스타가 아니라고 한다면 앞으로의 행보는 또 다른 도전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잘 팔리는 뮤지션은 많다. 그러나 결국, 작품성과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그 뮤지션과 음악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Dean – Love feat. Syd (Music Video)

비교적 최근 발표한 싱글, “Love”에서 호흡을 맞춘 시드(Syd)는 VISLA가 사랑하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땠나?

나 역시 디 인터넷(The Internet) 밴드를 비롯해 솔로로 발표한 앨범을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시드의 매니저와 회사 매니저가 연락이 닿아서 내 음악을 들려줬더니 바로 수락하더라. 꿈같은 일이었다. 작업 역시 순조롭게 진행됐다. 시드는 쿨한 사람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듯이 음악 하는 뮤지션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등장한 그 순간부터 곡의 분위기를 장악했다.

특별한 기교 없이도 목소리 그 자체로 독보적인 무드를 표현할 줄 안다고 해야 하나. 악기 하나하나가 다르듯, 시드의 목소리도 또렷한 색을 띠는 것 같다.

 

딘이라는 악기를 자평하자면?

가장 큰 매력은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내 음악의 장점 이자 단점이 바로 팝Pop적인 요소가 묻어나온다는 건데,, 그렇기 때문에 목소리를 컨트롤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걸 잘하는 뮤지션이 바로 차일디시 갬비노(Childish Gambino)다.

 

회화 작품을 비롯한 다양한 이미지를 소셜 미디어에 올리곤 한다. 음악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을까?

나를 이루는 것들이 결국 내 음악을 암시한다. 내게 영감을 주는 모든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다른 매체로도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뭘 하든 했을 것 같은데. 예술이라는 게 워낙 재밌지 않나. 어쨌든 나를 보여주는 거니까. 거꾸로 보여주기도 하고, 배배 꼬기도 하면서 내 감정을 표현했을 것 같다. 그런데 어찌 됐든 음악을 했을 것 같아. 아니라면. 음. 그래도.

 

창작자의 발전은 엄정한 자기비판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음악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쓰는 편인가?

그렇다. 지금에 와 마음에 안 드는 곡도 많지만, 그 당시의 나도 결국 나니까 그래도 인정하는 편이다. 예술가는 표현과 철학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도전할 만하다.

 

요즘 가장 관심 있는 주제라면.

철없음. 철없음에 관한 것들. 그리고 유스(Youth)다. 유스와 관련된 전시가 부쩍 늘어난 것 같지 않나? 아무래도 유스라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광범위한 주제다. 나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만약 내가 회사에 남아 계속 곡을 썼다면 안정적인 삶이었을까 되뇌어보기도 하고. 그러나 나는 더 자유롭고, 불안한 삶을 택했다. 그 삶을 이제 몸소 느끼는 중이다.

 

유스가 시간적인 구분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유스는 일종의 순수함이다. 할아버지가 젊은 여성에게 잘 보이려고 옷을 꾸미는 행위도 순수함이다. 나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전시를 보고 영감을 받는다든지, 어떤 장소에서 새로운 생각을 한다든지 뭐 그런 것들. 새로운 느낌을 찾지 않을 때, 더는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때 그 순간 유스가 구분되는 것 같다. 오늘 대화를 나누면서도 나는 좋은 느낌을 받는다. 끊임없이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느끼고 싶은지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도 공연할 때, 새로운 느낌을 받는가?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무뎌진 부분도 있지 않을까.

나는 항상 공연 전에 긴장한다. 떨기도 하고 벅차오르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공존한다. 예민해지는 거지. 그 순간까지가 내 음악이니까. 그래서 올라가기 전에 나는 술을 마신다.

 

얼마나 마시고 올라가나.

높은 도수의 술을 즐겨서 위스키나 보드카를 물에 섞어 마시곤 한다. 술을 마시면 감성에 잘 취하는 편이라 공연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오히려 너무 취해서 꼴사나운 모습까지 다 보여주는 것 같아 이제는 딱 한 잔만 마시고 올라간다.

DEAN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진행 / 글 │ 권혁인 최장민
사진 │ 유지민
스타일리스트 | 김도희

*해당 기사는 지난 10월에 발행한 VISLA Paper 2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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