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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s ago
FEATURE

talk:session ─ 4Black, GR1, Jodae

오랜 시간 국내에서 활동한 그래피티 라이터(Graffiti Writer) 세 명과 함께 두 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눴다. 지알원(GR1)조대(Jodae) 그리고 포블랙(4Black)이 이번 시간의 주인공이다. 서울 도심에서 ‘지알원왔다감’이라는 스티커 한 번 본 적 없다면 온종일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동양적인 문양을 바탕으로 ‘한국의 그래피티’를 오랜 시간 연구한 조대의 벽화는 마치 효험 좋은 부적을 연상케 한다. 포블랙은 이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그래피티 라이터로서 도시 곳곳에 자신의 태깅(Tagging)을 아로새겼다. 그들과 함께 한국 그래피티(Graffiti)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해보았다.

 

그래피티를 시작한 계기는?

조대: 고등학교 때 ‘힙합’이라는 만화책으로 그래피티를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친구 한 놈이 그래피티를 하겠다는 걸 따라서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그래피티 자체를 이해하기보다는 사람들이 하는 와일드 스타일(Wild Style)을 보고 그게 그냥 그래피티인 줄로만 알았다. 스타일로 먼저 접했던 거지.

지알원: 어렸을 때부터 힙합 음악과 길거리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관련 콘텐츠를 하나씩 어렵게 찾아보던 차에 “Beat Street” 필름에 나오는 그래피티에 매력을 느꼈고, 곧바로 스프레이 몇 통 사서 시작했다. 집 근처 다리 밑이나 공터 벽 같은 곳에다가 내 멋대로 그리곤 했다. 당시에는 네이버, 다음도 없던 시절이라 소스(The Source) 잡지 뒷장에 실린 그래피티 사진을 찢어서 자료로 활용했다. 그 사진들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거의 20년 전이다. 하하. 다음 그래피티 카페가 만들어지고 나서부터는 그곳에 하나둘씩 모이면서 교류가 생겼다. 그전에는 아마 대부분 혼자 하지 않았을까.

포블랙: 나는 10년 전에 오스카(OSKA)라는 친구를 만나서 둘이 블랙핸드(Black Hand)라는 팀으로 그래피티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피스(Piece)와 캐릭터 위주로 작업했다. 그러다가 딤즈(Dimz)를 만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바밍(Bombing)에 빠졌다.

지알원: 내가 딤즈를 소개해줬지.

포블랙: 맞다. 같이 피스를 그리고 놀다가 바밍에 관심이 생기면서부터 여기저기 스팟(Spot)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조대: 내가 막 그래피티를 시작했을 때, 지알원은 꽤 인지도가 쌓인 상태였다. 형을 존경의 눈길로 바라봤다.

 

오랜 시간 그래피티에 시간을 쏟은 만큼 한국 그래피티의 역사 또한 꿰고 있을 것 같다. 막 활동을 시작할 당시 어느 지역에서 움직임이 가장 활발했던 건가?

조대: 거의 없었다. 근래 그래피티에 관심이 생긴 이들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곳들, 이를테면 압구리(압구정 굴다리), 부산 똥다리 같은 스팟이 아예 없을 때니까. 특별히 그래피티의 성지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다.

 

당시 주변 그래피티 라이터에게서 받은 영향이라면?

조대: 초창기에는 헤즈(Hez)라는 형의 작업을 좋아했다. 외국 아티스트의 것보다는 주변 형들의 그래피티를 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의 작업을 보면서 ‘아, 그래피티가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지.

지알원: 나는 원체 오래전부터 하다 보니 주변에 같이 할 사람이 없었다. 부산에서 혼자 하다가 진스(JNSBH), 바사라(Barsara), PS 같은 형들을 알게 되면서 같이 그리곤 했다.

포블랙: 캐릭터를 그릴 당시에 JNJ 크루를 좋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밀한 묘사나 잘 그린 그림보다는 바밍이나 그래피티의 진정성을 고민하는 쪽으로 스타일이 바뀌었다. MQ, BNE 같은 그래피티 라이터에게 영향받으면서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점차 변했다.

 

4Black – ???

순수한 그래피티의 정체성은 사실, 예술 형식이라기보다는 반달리즘이나 갱스터 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회화’와 구분하려는 태도인가?

포블랙: 그렇다. 연습에 시간을 쏟으면 누구나 어느 정도까지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그래피티라는 건 말 그대로 그래피티의 맛을, 그 느낌을 알아야 하니까.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지알원: 나는 처음에 그래피티가 멋있어서 보는 그대로 받아들인 케이스다. 내가 시작했을 때는 그래피티라는 문화의 역사나 체계적인 정보를 받아들일 창구가 없었다. 태깅에서 스로업(Throw Up), 와일드 스타일까지의 발전과정을 어디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하. 단지 멋있으니까 스타일을 연구했고,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레 온전한 문화로 받아들이게 됐다.

포블랙: 그게 바로 가장 순수한 관점에서 그래피티를 받아들인 경우다. 스타일부터 파고드는 사람도 있고, 태깅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케이스도 있다. 그러나 결국 진짜 그래피티에 빠져든 사람이라면, 문화의 뿌리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조대: 나는 큰 고민 없이 그래피티를 보고 그냥 “이거 재밌겠는데”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사람이다. 하하.

지알원: 혼자 그래피티를 연구하다가 아트 크라임(Art Crime, 세계 최초의 그래피티 웹사이트. 인터넷과 각종 커뮤니티가 발달하기 이전부터 세계적인 그래피티 라이터들이 드나들던 성지)이라는 곳을 알게 됐다. 당시 아트 크라임의 메인이었던, 거의 모든 그래피티 라이터가 동경하던 스위스 그래피티 라이터 다래(Dare)에게서 와일드 스타일의 영향을 받았다. 세스(Ces)라는 아티스트도 좋아했다.

 

미술, 예술 관련 정규 교육을 받았나?

지알원: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전공했다.

조대: 고등학교 때였다. 평소처럼 학교를 마치고 벽에 그림을 그리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보고는 “미술 한번 해보지 않겠나?”라고 권유했다. 무슨 만화도 아니고. 하하. 알고 보니 미술 학원 선생님이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원비가 없다고 말했더니 돈은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그때부터 입시 미술을 시작했다. 대학은 디자인과를 나왔다.

포블랙: 대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다가 때려 치웠다.

지알원: 시각 디자인과에 갔는데 사실,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그래피티, 스트리트 아트 작업을 이어왔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이걸 죽을 때까지 하려면 전문적인 공부가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지금은 다시 대학원에 입학한 뒤 회화를 공부하고 있다.

 

한국 입시미술제도 안에서 공부했다면, 아무래도 그래피티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인다는 일이 당시에는 무모한 도전이었을 텐데.

지알원: 자연스러웠다. 그냥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다.

포블랙: 길거리 문화를 좋아하니까. 이게 그림을 그리는 일과는 조금 다르다. 이걸 문화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벽에 그림을 그린다고 인식하는 사람의 차이다.

조대: 그래피티를 하는 친구들이 다들 좀 끼가 있다. 길거리에 그림을 왜 그리겠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서다. 그렇게 시작해서 오래 하다 보면 작업이나 마인드도 성숙해지는 거지.

 

본인의 태그네임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조대: 친구들이 내 이름의 앞 두 글자로 조대, 조대 부르다 보니 그냥 이걸 쓰게 되었다.

지알원: 딱히 별명도 없어서 그래피티의 첫 두 글자 ‘GR’에 숫자 1을 붙여서 GR1이라고 정했다.

포블랙: 기억이 잘 안 난다. 학창시절, 내가 하도 장난을 많이 쳐서 친구들이 싸비코라고 불렀다. 이 별명이 자연스레 ‘4Black(4B, ‘사비’라고도 부른다)’이 된 것 같다.

지알원: 별명이 사비였는데, 그걸 영어로 늘어뜨리니 포블랙이라는 왠지 멋진 이름이 된 거다.

 

활동하면서 다른 그래피티 라이터와 충돌한 적도 있나? 누군가 의도적으로 본인의 피스나 태깅을 덮어버렸다든지.

조대: 나를 저격한 경우는 없었다. 몇 번 그림이 덮인 적 있는데, 딱히 대응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실수려니 하는 거다.

포블랙: 땅덩이가 워낙 작으니 큰 싸움이 일어나기는 힘들다. 건너 다 아는 사이라 서로 안 맞으면 그냥 자연스레 멀어지는 거지, 상대방 피스를 덮어버린다거나 불순한 의도로 저격하는 경우는 드물다.

조대: 예전에는 그래피티가 워낙 낯선 문화였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인 줄도 모르고 남의 피스를 자기 걸로 아무렇지도 않게 덮는 애들도 많았다. 압구정 굴다리 같은 곳은 워낙 많이 바뀌다 보니 미리 전화해서 “여기 피스 내가 덮을게”라고 동의를 구하는 경우도 있고.

포블랙: 한국에도 바밍 문화가 생기면서 인식이 좀 바뀐 것 같더라. 오래전에는 스티커를 붙이거나 태깅할 때도 남이 이미 표식을 남긴 자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덮는 경우가 잦았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절묘한 스팟을 찾아서 태깅을 남겼는데, 바뀌어있으면 당연히 기분 좆같지. 이게 무슨 굴다리 피스도 아니고.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싸움 거는 거니까.

지알원: 일러스트나 그림을 그리다가 새롭게 이 바닥에 들어온 친구들이 암묵적인 룰을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기존 태깅에 스로업을 하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완전히 그어버리면 열 받는다.

포블랙: 그런 실수는 초짜들이 많이 한다. 그 친구들은 상습적으로 덮는 게 아니거든. 잘못했더라도 사과하고 지우면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는다. 도시 구석구석 살피면서 열정적으로 덮어버리는 애들은 한국에 없다고 보면 된다.

지알원: 요새 길거리에 스티커 붙이는 친구들 많지 않나. 괜히 빈 곳을 찾아서 조심스럽게 붙이는 게 아니다. 보통 처음 해보는 사람들이 실수하더라. 스티커 만들어서 기분 좋게 여기저기 붙이고 다녔는데, 알고 보니 다 남의 스티커 위에다 해버린 거지. 하하.

조대: 그런데 사실 너무 기본적인 이야기다. 남의 그림을 자기 걸로 덮는 게 정상적인 일은 아니잖아?

 

4Black – ???

해외 그래피티 라이터가 한국을 방문하면 같이 활동하는 편인가? 공격성을 띠고 한국 라이터들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하는지?

조대: 젠틀한 친구도 있고, 미친놈도 많다. 보면 바로 안다. 해놓은 꼴을 보면 한국을 무시하고 들어오는 건지, 리스펙트를 가지고 하는 건지 금세 알 수 있다.

포블랙: 딱히 잘못했다기보다는 이게 사소한 느낌 차이인데, 기분 나쁠 정도로 태깅을 왕창 조져놓은 애들이 꼭 있다. 한국을 존중하는 친구들은 그 안에서도 공간을 배려한다.

지알원: 우리가 외국에 가도 마찬가지다. 이건 보면 알아.

포블랙: 왜 자기 걸 덮었냐면서 이메일로 싸우자고 덤비는 애들도 있다.

조대: 한국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거야. 서양인이 한국 여성에게 함부로 굴고, 길에서 행패 부리는 일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우리야 짬밥 좀 생겼으니 외국에 나가서도 함부로 남기진 않지. 최근에 일본 친구가 유럽 쪽 그래피티 라이터 몇 명과 함께 크루를 만들어서 한국에 놀러 왔는데, 트레인바밍(Train bombing)을 계획한다고 말했다. 웃긴 건 바밍하기도 전에 술이 떡 돼서 정신을 못 차리던데. 소화기를 길에다 뿌리고 다니면서 여성에게 집적거리는 꼴을 보니까 한 대 때리고 싶더라고. 꼬락서니가 딱 경찰에 잡힐 것 같아서 멀리했다. 결국 이태원 경찰서 근처 벽에 수정액으로 태깅하다 바로 잡혔다고 들었다. 그때 기분 통쾌했지.

 

그래피티를 처음 시작한 동네는 어느 곳인가?

포블랙: 앞서 말한 오스카라는 친구와 함께 인천에서 활동했다. 송내역 근처에 주로 남겼다.

조대: 내가 충남 서천 출신인데, 시골이라 그런지 동네에 빈 공터가 많았다. 밤마다 친구를 불러내서 같이 그리곤 했다. 동네 예식장 벽에다가 몰래 그리다가 주인에게 잡힌 적도 있다. 이미 페인트가 칠해져 있길래 나도 한번 그려봤다고 설득했더니 그 뒤로는 허락해주더라. 그래서 동네에서 당당하게 그렸다.

 

서울에 오고 나서는 주로 어디로 나갔나?

조대: 그릴 곳이 없다 보니 항상 다리 밑으로 갔다. 금정역에서 그래피티 라이터들과 모이곤 했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이 바로 지알원이다.

지알원: 갑자기 키 큰 친구가 다가오더니 쑥스러운 듯 인사하더라.

조대: 우리 동네에는 그래피티라는 걸 아는 사람이 없었거든. 지알원을 비롯한 형들이 운영하던 인터넷 카페를 보면서 자랐지. 실제로 마주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형도 그 당시 그림 잘 그리고 스타일이 독특한 라이터로 알려진 상태였다. 예전에는 더 멋있었는데. 하하.

지알원: 부산에서 활동할 때 같이 하던 친구들과 만든 스팟이 부산 똥다리다. 구린내가 너무 많이 나서 똥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인데, 당시 그래피티하는 친구들이 죄다 그곳에 모였다. 지하철역 세 군데를 합한 길이로 그래피티가 이어지니 점차 이목을 끌었지. 2000년도 중후반부터 프리스타일 랩 배틀 하는 친구들도 하나둘씩 모이면서 그 친구들은 랩하고 우리는 그래피티하면서 놀았다. 겨울에 작업하고 있으면 누가 드럼통 하나 훔쳐 와서 같이 불도 쬐면서 추위를 견뎠다.

 

부산 똥다리를 거쳐 간 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지알원: 되게 많지.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형들부터 여기 있는 조대, 포블랙까지 한 번씩은 다 거쳐 갔다.

조대: 그래피티하는 사람이라면 부산 똥다리에 자기 작업 하나쯤은 있었다. 관문 같은 곳이라고 해야 하나.

지알원: 스팟이 딱 두 군데였으니까. 서울 압구정 굴다리, 그리고 부산 똥다리다. 일본까지 소문이 나서 찾아오고 그랬다.

 

그래피티라는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본인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냈는지, 한국이라는 배경이 작업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조대: 좆밥으로 살다가 슈파서커스(SUPACRQS) 크루에 들어가면서 180도 변했다. 2000년도 중반쯤 거프모트(Gufmott) 형의 제안을 받고 들어갔는데, 사실 당시에는 그 크루가 정확히 어떤 활동을 하는지도 몰랐다. 지방 촌놈이 서울에 올라와 전혀 연고도 없었으니까. 어쨌든 슈파서커스 멤버들과 교류하면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때 한국적인 것에 관해서 많이 고민했고, 그 크루를 나온 뒤에도 추구하는 방향성은 변하지 않고 내 안에 남아있다. 그래피티 문화 자체는 서양에서 왔지만, 그 안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 노력을 쏟았다. 한지에 먹을 쓰는 작업도 그 생각에서 발전한 방식이다.

지알원: 내 작업은 아무래도 와일드 스타일과 근래의 스트리트 아트로 나눌 수 있다. 지금은 스트리트 아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와일드 스타일로 그래피티를 할 당시에는 한국적인 색깔보다는 유니크한 스타일에 초점을 맞췄지만, 페이스트업(Paste-Up, 경찰의 눈을 피해 길거리에서 빠르게 작품을 남기고 사라지는 그래피티/스트리트 아트에 특화된 작업 방식의 일종. 포스터 바밍이라고도 부른다) 작업으로 넘어오면서 동양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블랙 앤 화이트가 아닌 블랙 앤 그레이를 베이스로 작업하고, 작품의 주제도 동양인에 관련된 이야기다 보니 특히 외국 친구들이 오리엔탈 성향이 짙다고 피드백을 준다. ‘지알원왔다감’이라는 일종의 스티커 프로젝트는 ‘태깅을 왜 할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했다. 이를테면 태거들이 남기는 ‘ㅇㅇㅇ Was Here’ 같은 거지. 그걸 한국에서 한글로, 내 방식대로 표현하고자 했다. 오히려 한글로 쓰니 임팩트가 강한 것 같기도 하고.

포블랙: 내게 영향을 주는 것들을 많이 따라가려고 했다. 애니메이션 전공이라 그런지 처음에는 JNJ 크루 형들처럼 화려한 캐릭터를 잘 그리려고 했고 또 좋아했다. 세븐스 레터(Seventh Letter) 크루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그 뒤로는 문화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바밍을 주로 팠는데, 아무래도 나와 성향이 비슷한 라이터들의 그래피티를 찾아봤다. 뉴욕에서 바밍하는 크루의 작업에서 좋은 영향을 받는다. 한국적인 변화보다는 외국 문화를 그대로 수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지알원: 포블랙은 더 순수한 그래피티에 가까운 태깅, 스로업이 하나의 정체성이 됐다.

 

GR1 – 지알원왔다감

지금의 한국 그래피티 신(Scene)은 어떻게 변하는 중인가?

포블랙: 바밍 문화가 활발해졌다. 초기에는 압구정 굴다리에서 주구장창 피스 그리는 애들만 많았는데, 이제는 여기저기서 바밍하는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알원: 피스, 바밍을 굳이 구분할 필요 없이 이제는 자유롭게 그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초기에는 ‘멋진 벽화’라는 회화적인 개념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그래피티, 스트리트 아트라는 하나의 문화로 발전한 것 같다. 태깅, 스티커, 바밍 등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이제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병신도 많지만, 진정성 있게 자신의 걸 지속해가는 멋진 친구들도 간혹 보인다. 갤러리에서도 그래피티를 수용하는 시대니까. 대중의 인식이 바뀌었다.

포블랙: 피스만 파는 타입은 아무래도 마음 편하게 그리는 걸 선호하는 애들이다.

조대: 예전에는 스프레이 왕창 사다가 압구정에서 굴다리 인테리어 하는 애들만 많았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는데, 일본에서 민트(Mint)라는 친구가 와서 서울을 아주 바밍으로 조지고 간 적 있다. 그때는 나도 바밍이 어색하던 시절이라 그 친구와 함께 다니면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뒤로 조금씩 태깅과 스로업을 연습하면서 그 친구의 영향을 내식대로 받아들였다. 딤즈가 바밍을 정말 잘한다. 걔 태깅은 ‘All City’거든. 아, 근래 다녀온 샌프란시스코에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지역은 뮤랄(Mural) 문화가 완전히 정착된 곳이라 그런지 어딜 가나 벽화를 볼 수 있었다. 태깅이고 피스고 할 거 없이 이 모든 게 자연스레 섞인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문화적인 영감을 많이 받은 곳이다.

 

오랜 시간 활동한 세대와 이제 막 길거리로 나온 그래피티 라이터의 차이라면?

조대: 활발하게 활동하는 친구는 없는 것 같다. 아직도 한국은 나이 많은 라이터들이 더 열심히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세대에서 확 치고 나오면, 오래 활동한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자극받는 부분이 있는데, 조금은 아쉽다.

포블랙: 진득하게 이어가기보다는 재미로 시작했다가 금방 빠지는 케이스가 많아 보인다. 지금 이 바닥에서 오래 한 사람들과 갭이 너무 크니 어울리기 쉽지도 않고, 학생 신분에 돈도 궁하고, 큰 피드백도 없고 뭐 여러모로 굳이 이걸 안 해도 되니까.

지알원: 여건은 더 좋아졌는데, 문화를 간절히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해야 하나. 서울 곳곳에 이미 태깅과 피스가 많기도 하고. 그러나 신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은 분명 더 늘어났다. 이 중에서 또 걸러지고 남으면서 저변이 커지기 마련이니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비교적 벽화에 관대한 편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그래피티가 활발하게 이야기되는 국가는 아닌데.

포블랙: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홍대 쪽 경찰들이나 그래피티에 익숙하지, 다른 지역에서 누가 피스 그리고 있으면 그냥 그림 그리는구나, 하고 말걸? 문제를 일으킬 만한 사건도 거의 없고.

조대: 하는 사람들이 없잖아. 최근 외국 친구를 새로 알아낸 스팟에 데려가서 같이 작업하는데, 갑자기 경찰이 오더라.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신분증 한 번 확인하고 그냥 갔다. 그때 그 친구가 엄청나게 놀랐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바로 연행된다면서. 사실, 한국은 그 정도로 빡빡하진 않거든.

포블랙: 아마 조대가 거리에서 이름 좀 날린 친구라고 생각했을 거다.

조대: 한국은 도시 전체가 그래피티로 가득 차거나 트레인바밍이 빈번해서 사회적 문제를 얘기하는 나라가 아니라 그런지 아직은 꽤 관대한 것 같다.

 

GR1 – 무제, Nanxian, China, 2017

길거리에서 직접 본 그래피티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포블랙: 한국에서 임팩트 센 건 아직 못 본 것 같다. 외국에 나갔을 때, 그래피티 사이사이로 스티커를 붙인 적 있는데, 다음날 와보니 내가 바밍한 곳 위로 엄청나게 큰 그래피티가 생겼다. 그걸 보고 깜짝 놀란 적 있다.

지알원: 몇 년 전 홍콩에 페이스트업 하러 갔다가 우연히 고층 빌딩 사이에 떡하니 붙은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의 피스를 본 적 있다. 이전까지는 작은 타일 수준의 작업을 보면서 별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는데, 엄청나게 큰 그림을 보고 나니 그 작가가 다르게 보였다. 땀 뻘뻘 흘리면서 포스터 붙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뭐 하는 건가 싶더라고. 하하.

조대: 없다. 아, 아까 얘기한 민트가 인상적이었다.

포블랙: 맞아. 민트가 임팩트 셌지. 내가 주로 피스 그리는 데가 신도림 쪽에 있었는데, 거기 건너편에 거의 10t 트럭 다섯 대짜리 블락바스트를 남기고 갔더라.

조대: 다들 스타일만 파고 있는데, 갑자기 한국에 존나 크고 심플한 태깅이 떡하니 생겼으니 확실히 충격이었지.

지알원: 기억난다. 다들 스로업하고 깔짝거릴 때, 그 건너편에다가 10m쯤 됐나, 20m? 진짜 엄청나게 큰 태깅을 남겼다.

 

민간 낙서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를테면 ‘쓰레기 버리지 마시오’, ‘철수야 사랑해’ 같은.

지알원: 빨간색 스프레이로 쓴 “오늘도 예술가인 척 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문구가 재미있었다. 그거 비슷한 글도 몇 개 봤는데, 아마 다 지인이 남겼을 거다.

 

서울을 중심으로 많은 지역에 흔적을 남겨왔다. 또 어떤 장소에 그래피티를 하고 싶은가?

조대: 그냥 길거리에 내 그림이 많았으면 좋겠다.

지알원:
 다들 이야기할 만한 여러 스팟이 있을 텐데, 조금 위험한 이야기라 패스하겠다.

 

혹시 트레인바밍을 말하는 건가? 간혹 뉴스에서 소식이 들리지만 그래도 국내에서는 드문 케이스라고 알고 있다.

지알원: 한 번은 경찰이 찾아와서 자료를 무더기로 건네주는데, 그게 다 과거 국내에서 발생한 트레인바밍 기록이었다. 이 중에서 아는 사람 있으면 말해달라면서. 하하. 알고 보면 한국에도 트레인바밍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본인의 작업으로 법적인 처벌을 받은 적도 있나?

조대: 한창 태깅에 빠져 있을 때, 여기저기 남기고 다니다가 한 번 문제 된 적 있지. 하하. 자세히 말할 수는 없다.

 

GR1 – 달콤한 인생, Nanxian, China, 2017

지난 2013년, 외국 그래피티 라이터가 한국에 남긴 트레인바밍을 각종 매체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한 적 있다. 한국 사회의 윤리적 잣대가 각종 소셜 미디어, 커뮤니티를 타고 그래피티라는 문화와 정면으로 맞닥뜨린 가장 큰 이슈였다. 당시 온라인에서 이 문제를 두고 국내 그래피티 라이터 간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것은 그래피티의 정체성, 상업적인 변화, 이전부터 끊임없이 이야기된 범죄와 예술 사이의 논란과도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조대: 포블랙이 직접 댓글을 남기지 않았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딱히 누군가의 손을 들기 힘들다. 다만 ‘그래피티’ 한다면서 상업적인 일만 좇는 일부 ‘그래피티 라이터’를 보면 좀 안타깝지. 나만 해도 길에 있는 내 태깅과 그림은 다 자식처럼 느껴지거든. 그런데 그들은 브랜드를 따라다니면서 허락된 공간에 그림을 그리고, #Graffiti 해시태그를 달아서 소셜 미디어에 올린다. 한국형 그래피티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 경찰 피해서 태깅하고 페인트칠하는 애들은 뭐가 돼.

지알원: 길에서 한번 벗어나면 그렇게 되는 거다. 지금부터 또 10년이 지나면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거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계속 이 문화를 이어갈 테지만 또 시대가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래피티 라이터라면 최소한 길에서 그 사람의 태깅, 스티커 하나쯤은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은 그래피티 라이터가 너무 많다.

포블랙: 나는 당시 그래피티가 대중 친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에 반대했다. 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결국, 돈 되는 일만 좇기 십상이다. 그래피티가 삶에 녹아들지 않는다면 아무 히스토리도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건 오리지널이 아니니까. 길에서 그래피티를 남겨온 사람들이 꾸준히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인다면, 그걸로 돈을 벌 거나 갤러리에서 전시를 연다고 해서 문제 될 게 뭐가 있겠어.

지알원: 포블랙이 캐릭터를 그릴 줄 몰라서 바밍만 하는 게 아니다. 문화의 본질을 인식하고 있으니 끊임없이 바밍하면서 다니는 거다.

 

바밍 문화가 퍼지면서 생긴 문제점이라면?

포블랙: 그래피티 문화에서 토이(Toy)라는 말이 있는데, 초짜, 병신 뭐 이런 뜻이다. 신에서 토이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한국에서 다른 국가의 도시 이름을 쓰는 것부터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지. 심지어 그 지역에 살던 사람도 아니다. 랙킹(Racking, 스프레이를 훔치는 행위. 상업성을 거부하는 그래피티의 문화적 속성이 극도로 강조된 행동 양식)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서 양아치 같은 짓을 반복하는 이들도 있다.

조대: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면 그냥 병신인 거지.

지알원: 보통은 병신끼리 싸운다.

 

VISLA TV: empty world hypothesis (feat. chingoo)

친구(Chingoo)라는 이름의 그래피티를 알고 있나? 서울 길거리에 하나둘씩 보이다가 한번은 뚝섬 스케이트보드 파크에 무더기로 남긴 바밍으로 이슈가 된 적도 있다. 누군가 친구에 적의를 품었는지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덮어버리기도 했다.

조대: ‘씨발, 이 토이 새끼 마음에 안 들어’라고 느껴서 조지고 다닌 게 아닐까. 나도 누군지 궁금하긴 했는데, 그냥 그러다 말겠지 했다.

포블랙: 그 그래피티가 공격을 받은 이유는 그림에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공이 쌓이면 라인 하나에도 힘이 담기는데, 그런 임팩트를 주지 못하니 주변 사람들이 우습게 보는 거지. 디자인이 아니라 깊이의 차이다. 키스 해링(Keith Haring)도 그림만 보면 되게 단순하잖아.

 

지금에 와서 스트리트 아트, 그래피티는 대형 기업, 광고, 디자인과도 연계되며 누군가에게는 잘 팔리는 상품이 된 것 같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를 초빙한 갤러리 전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최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위대한 낙서’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일련의 전시도 그 흐름을 잇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조대: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외국 걸 가져와서 그럴듯한 타이틀로 포장하는 모습이 썩 와닿지는 않는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브랜드, 자본이 끼어들다 보면 상업적인 전시가 될 수밖에 없거든. 진짜 길거리에서 활동하는 이들과 교류하는 게 아니지 않나.

지알원: 좋아하는 작가의 작업을 직접 본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문화가 상업화되는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계속해서 찾으면 결국, 돈이 들어올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피티 역시 마찬가지다. 순수한 문화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자는 말은 지금 사회에 맞지 않는다. 다만 진정성 있는 행보를 유지하는 이들이 그 자본의 혜택을 보는 게 아니니 그게 좀 아쉽지.

조대: 문화의 본질을 추구하는 친구들은 보통 쉽게 타협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러다 보니 타투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작업을 이어가는 형편이다.

포블랙: 직업으로 인식하니 문제다. 이건 그냥 라이프스타일이고, 문화일 뿐인데 한국에서는 꼭 뭘 하나 하면 그걸로 성공해야겠다는 목표를 만들어야 체면이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근데 그 성공의 기준이라는 게 결국 돈이잖아. 돈이 안 되니까 그래피티를 할 수 없다면 그냥 안 하면 되는 거지. 뭐.

지알원: 각자 선택에 달린 문제다. 재미로 건드려보다가 완전히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직업을 따로 구할 수도 있다. 어쨌든 목적이 불순한 친구들은 바로 티가 난다.

 

그래피티/스트리트 아트는 그 성격상 사회, 정치적인 상황, 지역적 특수성과 맞물리며 더 강한 울림을 전달하는 것 같다. 길거리에서 갤러리로 넘어오며 필연적으로 작품과 연계된 맥락이 제거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고유한 매력이 퇴색한다고 느끼지는 않나?

지알원: 어떤 문화든 현장감이 최고지. 그래피티, 스트리트 아트 자체가 길에서 탄생한 문화니까 길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축구경기를 직접 가서 보는 것과 TV로 보는 것 중에서 뭐가 더 감동이 클까? 나는 갤러리에서 거리 예술을 받아들이는 지금의 흐름도 긍정적이라고 본다. 국경의 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을 볼 기회이기도 하고.

포블랙: 사실, 그래피티와 갤러리를 굳이 연결 지을 필요는 없다. 그래피티를 그래피티답게 잘하고, 멋있는 행보를 이어온 사람이 갤러리에서 전시를 연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목표가 갤러리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더 많은 사람이 그의 그래피티를 볼 수 있는 거니까.

지알원: 신에서 유명해진 사람을 갤러리에서 부르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그래피티를 흉내 낸 작업을 그래피티라는 이름으로 전시하려는 이들은 이 바닥에서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아예 병신으로 생각한다.

조대: 백날 캔버스 잡고 그리던 사람이 갑자기 밖에서 그린다고 치자. 근데 나는 꼴 보기 싫은 거지. 솔직히 텃세를 부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거 좀 힙한 거 같으니까 나도 한번 해봐야지’라는 생각 한번 안 해봤겠어.

포블랙: 명분처럼 하는 거 같아. 스트리트 아트라는 타이틀 하나 걸려고 몇 번 해보고 나서 스트리트 크레딧을 얻어가는 거지.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는 것처럼.

 

대중은 그래피티와 스트리트 아트를 딱히 구분하지 않고 같은 장르로 받아들이기 쉽다.

조대: 그래피티와 스트리트 아트를 비교하는 짤방을 혹시 본 적 있나? 그래피티는 자갈길, 스트리트 아트는 반듯한 인도로 묘사했더라.

포블랙: 그래피티는 그들만의 소통체계, 스트리트 아트는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예술 형식에 가깝다.

조대: 그래피티는 범죄의 냄새가 강하고 왠지 깽판 치는 것 같지 않나? 그냥 목숨 걸고 하는 거니까. 하하.

포블랙: 그래피티가 영역 표시라면, 스트리트 아트는 그걸 예술로 포장한 느낌. 그래피티는 “내 이름 빵빵 터트릴 거야”, 스트리트 아트는 “나는 사람들과 예술로 소통할 거야”와 같은 차이다.

 

조대 – 인내,  Nanxian, China, 2017

인스타그램의 등장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범죄로 치부되던 그래피티도 점차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 존중받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아가면서 무엇을 느끼는가.

포블랙: 볼 게 많아졌다. 예전에는 자료를 찾기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손가락 몇 번 움직여서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아카이브도 쉽게 훑어볼 수 있다. 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게 전반적으로 접근성이 좋아졌다.

조대: 난 인스타그램 팔로워 늘리려고 존나 그린다. 내 그림 많이들 보라고. 그게 오히려 동기부여가 된다. 자빠져있을 바에야 그림이나 더 그리자, 뭐 이런 생각으로.

 

MBN에서 ‘스티커식 그래피티’라는 타이틀로 뉴스를 내보낸 적 있다. 앵커는 교통표지판에 붙여놓은 스티커를 지적하면서 스티커 바밍이 운전자가 신호를 인식하는 데 지장을 준다며 문제점을 제기했다.

조대: 그래피티가 이슈될 때마다 뉴스에서는 깨진 유리창 이론 같은 걸 들먹이면서 계속 분위기를 조장하는데, 보고 있으면 어이없지. 당시 뉴욕하고 지금 한국하고 완전히 환경이 다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대체.

지알원: PC 보급이 대중화되니까 언론에서 인터넷 중독 우려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정리해보자. 그래피티, 나아가 스트리트 아트는 여타 미술 형식과는 달리 유독 행위자의 태도, 아우라 혹은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한 문화로 느껴진다. 멋진 그래피티란 무엇일까.

포블랙: 진정성을 꾸준히 유지하는 이들의 작품 전부.

지알원: 파인아트든 회화든 랩이든 뭐든 자기 걸 하는 사람.

조대: 개인적으로는 한국적인 토대 위에서 작품을 이어가는 작가도 멋지다. 그리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면서 계속 변화하는 사람들.

 

그 반대의 경우라면.

조대: 자기 정체성 하나 없이, 맨날 똑같은 그림 그리고 돈 되는 일만 하는 작가. 자기 태깅, 스티커 하나 길에서 볼 수 없는데 그래피티라는 타이틀 써놓은 애들.

포블랙: 그런 애들이 자신의 작업을 그래피티라고 생각할까 무섭다.

지알원: 포장지를 너무 신경 쓰는 사람들. 본질이나 알맹이는 모르고 어떻게 하면 좋은 포장지에 잘 싸서 있어보이게 할까 고민하는 친구들이 여전히 많다.

조대: 남의 작품 카피하는 사람들이 존나 싫다. 아예 하지 말든가 아니면 노력을 존나 하든가. 남의 세월을 훔치는 행위잖아.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이런 게 더 쉬워졌지.

지알원: 한 시대에서 위대한 작가가 탄생하면 그에게 많은 예술가들이 큰 영향을 받는다. 당연한 이치다. 거기서 중요한 건 그걸 자신의 작품에 어떻게 녹여내느냐다. 완전히 남의 작품에 기생해서 자기 걸 완성하는 이들에게는 존중이 생기지 않는다.

포블랙: 그건 보면 안다. 뻔해.

조대: 자신이 중심에 있고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에 영감을 얻은 건지, 남의 것만 보고 갖다 베낀 건지는 눈으로 보면 안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 거다.

 

조대 – 무제, San Francisco, USA, 2015

오랜 시간 그래피티 라이터의 삶을 살았다. 아직 더 도달하고픈 단계가 있다면?

지알원: 예전에는 그냥 무작정 그렸다면 근래에 들어서는 작업을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조대: 길거리에 내 그림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좋은 스팟을 찾거나, 스케일에 신경 쓰면서 정말 ‘멋진’ 그래피티에 초점을 맞춘다.

포블랙: 임팩트 큰 거 하나 하면 나머지를 다 깨버릴 수 있으니까.

조대: 다른 이야기로는 이제 돈을 벌고 싶다. 계속해오던 부업도 그만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걸로 돈을 벌고 싶다. 상업적인 일을 하다 보면 내 그림이 그들이 매긴 가격에 팔린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내 작품을 직접 파는 편이 속 편한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내 그림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

포블랙: 그게 좋은 거지. 그런데 너무 돈에 목표를 두면 순수한 작업이 흔들리는 것 같아서. 자신을 팔면 팔수록 작업에 진정성이 떨어지니까.

 

그래피티로 돈을 번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조대: 상업성만 따라가는 작가들 참 싫어하는데 그렇다고 마냥 욕만 할 수는 없다.

포블랙: 셰퍼드 페어리의 경우에도 오베이가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주지 않았나. 먹고 사는 고민을 안 할 수 없다. 사실, 어떻게 보면 순수하게 그래피티로만 돈을 벌겠다는 마인드가 이 문화의 본질적인 속성에 어긋나는 것일 수도 있다.

 

언젠가는 그래피티를 그만둘 날도 올까?

조대: 아니, 절대 그런 건 없어. 멍청해서 그렇다. 이것만 생각하고 살아서 아예 다른 걸 할 줄 모른다. 병신이지 아주.

포블랙: 요새는 바밍을 하지 않는다. 지금 나를 더 드러내려고 애쓰기보다는 하나를 남기더라도 공을 들이고 싶다. 다만 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은 문화를 그만둔다는 말은 사실 어색하게 들린다. 안 할 때도 있고, 부지런하게 활동할 때도 있겠지. 그러나 아예 손을 뗀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지알원: 2000년대 중반에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회사를 다녔는데, 퇴근도 칼 같고 매달 돈도 꼬박 잘 들어오니 개인적인 작업도 무리 없이 이어갈 수 있었다. 남는 시간에 작업하면서 여유롭게 사는 일상이 퍽 마음에 들었다. 굳이 뭐 어렵게 한국에서 아등바등 사나 싶었지. 그런데 몇 달 지나니 미치겠더라고. 안정된 생활에 젖어 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는 그게 안 되던데.

 

진행 / 글 │ 권혁인
사진 │ 4Black, GR1, Jodae 제공
커버 이미지 │ 박진우

*해당 기사는 지난 10월에 발행한 VISLA Paper 2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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