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De Mode #2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 영화의 협업

영화 하나를 봐도 관객의 각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누가 어떤 영화를 선택했는지도 해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데, 그 결정은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관 혹은 철학에 따른다. 2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 영화의 협업’에서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슈프림(Supreme), 스투시(Stussy), 반스(Vans), 칼하트(Carhartt), 베이프(A Bathing Ape)가 선택한 영화가 어떤 의의를 지니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려 한다. 특히, 영화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연결지점에 집중했기에 그들의 역사와 콘셉트, 아이디어와 자연스럽게 마주한다. 영화 속 다양한 요소가 패션으로 승화하기까지, 과연 스트리트 브랜드가 협업을 통해 읽어낸 것은 무엇일까?

 

Supreme x Scarface

갱스터 ‘토니 몬타나(Tony Montana)’의 비극적 삶을 재조명하다.

브라이언 드 팔마(Brian De Palma)의 영화 스카페이스(Scarface)는 1932년 동명의 영화 리메이크작이지만, 실상은 골격만 같을 뿐 시대, 공간적 배경이 다른 새로운 영화다. 스카페이스는 1920년대 미국 금주법 시대의 악명 높은 갱단 두목 알 카포네(Al Capone)를 지칭한다. 그의 얼굴 왼편에 난 섬뜩한 칼자국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기도 하다. 영화 도입부는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1980년 쿠바의 마리엘 항구가 개방되면서 72시간 새 미국 선박 3,000척이 쿠바로 향했다. 플로리다에 상륙한 망명자의 영상이 이어지고, 드디어 주인공 토니 몬타나가 등장한다. 여기서 스카페이스는 토니 몬타나라는 인물이 결국 현실의 단편들로부터 빚어져 나오는 인간임을 보여준다. 갱스터 영화가 그려온 성공과 추락이라는 서사, 예측 가능한 교훈이라는 장르적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에도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범죄자인 ‘사람’에 주목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는 토니 몬나타라는 개인을 본다. 미국 사회는 본인이 원하고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끊임없이 주입한다. 그는 불법 마약 거래를 통해 성공을 향한 뜀박질을 쉬지 않는데, 영화는 이런 추악한 현실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허구의 실체를 파헤친다. 슈프림(Supreme)은 사회적 현실과 토니 몬타나가 추구했던 이상을 세 단락의 글로 편집해 그를 기념했다. 토니 몬나타는 충동적이고 무모하다. 눈을 치켜뜬 채 격앙된 얼굴이 클로즈업된 장면과 후반부 광기 어린 총기 난사 장면은 티셔츠, 스케이트보드 데크에 삽입되었다. 캐릭터가 압축, 표현된 장면을 선택해 적재적소의 아이템에 배치한 것은 슈프림이 토니 몬나타라는 인물의 본질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돈, 여자, 권력을 전부 얻었지만 결국 모두 잃는 토니 몬타나, 뒤틀리고 왜곡된 욕망을 풍자하는 듯한 ‘THE WORLD IS YOURS’라는 문구는 영화의 상징적 슬로건으로 작용한다. 토니가 자신의 저택에서 최후를 맞을 때조차 지구본을 본뜬 조각상에는 ‘세계는 너의 것’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역설적 슬로건은 슈프림 디자인의 두 가지 미학인 화려함과 단순함에 각각 적용되었다. 토니 몬나타가 필사적으로 쫓던 꿈은 악몽이었으며 그가 잠시나마 가졌던 세계는 얄팍하기 그지없다. 슈프림과 스카페이스의 협업은 토니 몬타나의 비극적 삶을 재조명한다.

 

Vans x Starwars

고진감래형 성공 신화의 교집합.

미국의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George Lucas)는 한때의 서부극이 그랬듯, 미국인에게 어떠한 형태의 ‘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바로 스타워즈(Starwars)다. 스타워즈는 영화 역사상 지금껏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기념비적인 성과를 남겼다. 하나의 영화 시리즈로 거대한 팬덤을 거느린 스타워즈는 이내 하나의 문화 현상과 브랜드로 나아간다. 반스(Vans)와 스타워즈의 협업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순히 두 브랜드의 명성 때문이 아니다. 스타워즈와 반스라는 두 거대한 이름에서 우리는 각 분야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 신화를 이뤄냈다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SF라는 낯선 장르와 아이를 주 타깃 삼아 동심을 겨냥한 스타워즈는 당시 통념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콘셉트의 영화였다. 스튜디오의 숱한 거절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반스는 영화배우 숀 펜(Sean Penn)이 영화 ‘리치몬드 연애소동(Fast Times At Ridgemont High, 1982)’에서 슬립 온(Slip-On)을 착용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와 동시에 다수의 스포츠화를 생산하며 기업을 키우지만 이는 곧 회사의 재원을 고갈시키는 원인이 되었고, 결국 기업 파산 프로그램의 일종인 ‘Chapter 11’에 의한 부도를 기록한다. 반스와 스타워즈의 고진감래형 성공 신화가 쓰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일련의 위기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스타워즈는 개봉과 동시에 이전의 모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단숨에 박스오피스 왕좌의 자리에 오른다. 관객을 열광시키며 대중성은 물론, 평론가의 극찬 역시 이어졌다. 스타워즈 신드롬은 아카데미 시상식 7관왕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또한, 반스는 기업재정비를 통해 3년 만에 채무를 모두 청산하며 파산프로그램 관리대상에서 제외된다. 새로운 소유주의 재정적인 뒷받침으로, 1989년 반스의 첫 번째 시그니처 스케이트보드화인 스티브 카발레로(Steve Caballero)를 선보였으며, 이후 웝트 투어(Warped Tour), 크라운 스케이트보딩(Crown Skateboarding) 이벤트를 후원하는 활동을 통해 현재 세계 제일의 스케이트보드 슈즈 브랜드로 성장했다.

반스와 스타워즈의 협업은 스타워즈 3부작(STAR WARS TRILOGY)인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Episode IV: New Hope),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Episode V : The Empire Strikes Back),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Episode VI : Return of the Jedi)에서 영감을 얻었다. 스타워즈의 상징적인 캐릭터가 반스의 각 제품에 등장하는데 반스는 일부 디자인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해 내러티브가 있는 콘텐츠와 균형을 맞췄다. 해적 프린트를 새겨 넣은 모델은 다스 베이더(Darth Vader)와 스톰트루퍼(Stormtrooper)를 나타내고, 하프캡(Half Cab) 제품에서는 요다(Yoda)를 ‘선’으로 환원한 올 화이트 스타일, 다스베이더를 ‘악’으로 환원한 올 블랙의 대조를 보여준다.

 

Stussy x The Dark Knight Rises

다크 나이트 시리즈엔 진정한 영웅이 없다.

스투시(Stussy)는 DC의 히어로물 배트맨(Batman) 시리즈 3부작 마지막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 출시를 기념하는 특별 협업 티셔츠 컬렉션을 선보인 바 있다. 블랙 컬러 베이스에 티셔츠는 포스(Force)와 마스크(Mask), 월드 투어(World Tour)로 장식된다. 전면에는 비행하는 배트맨과 배트맨 마스크를 클로즈업한 그래픽을 프린팅했다. 후면에는 슈퍼 히어로 배트맨의 기술 및 능력 목록을 기재했다. 가시적으로 드러난 제품의 두드러지는 콘셉트는 보라색과 파란색을 혼합한 그래픽이다. 이는 사실 스투시와 다크나이트의 접점을 형상화한 협업의 결정적 요소다. 흐릿하고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그래픽은 영화의 배경 고담 시티를 뒤덮는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가져오며 제품에 영화를 흡수시킨다.

스투시가 해당 협업 디자인을 택한 그 배경에 접근하자면, 영화 속 메시지에서 출발할 수 있겠다. 수많은 영화에서 반복하는 재앙의 후렴구는 다크 나이트에서도 울려 퍼진다. 그러나 다크 나이트 시리즈는 이전의 식상한 구조 대신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더 나아가 윤리적 행위에 질문을 던진다다. 영웅 배트맨과 악당 조커로 명확히 구분되었던 등장인물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에게 선악에 대한 고민을 갖게 한다. 공공의 선을 실현하기 위한 개인의 희생은 진정한 선이라 할 수 있는가? 인간 내면에 감춰진 양면성과 대면하는 장면 그리고 선과 악이 한 얼굴에 공존했던 ‘투 페이스(Two Face)’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정의’의 의미를 자문하게 된다. 영웅물 다크 나이트 시리즈에 진정한 영웅은 없다.

 

Carhartt x 8 Mile

디트로이트(Detroit)가 주는 상징성.

지난 1회 ‘21세기 이전 패션의 역사’에서 소개한 영화 8마일(8 mile)을 기억하는지. 8마일은 힙합 문화가 지배적이던 9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래퍼의 성장과 갈등을 그린 에미넴(Eminem)의 자전적 영화다. 워크웨어의 대명사 칼하트(Carhartt)는 영화 8마일의 15주년을 기념해 협업 컬렉션을 진행했다. 8마일과 에미넴 그리고 칼하트는 낯선 듯 익숙한 조합이다. 이 둘은 그들의 모태 ‘디트로이트’로 묶인다.

1889년 해밀턴 칼하트(Hamilton Carhartt)는 미국 동부 디트로이트 작업복 의류회사를 설립한다. 고되고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의 작업복은 튼튼한 직물로 만들어야 했다. 칼하트는 작업복을 덕 캔버스 원단으로 제작했고 이 단단한 원단은 이후 칼하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칼하트 US 라인의 ‘디트로이트 재킷’은 칼하트의 대표적인 모델로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제품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오리지널 브랜드의 시그니쳐 재킷을 수식하는 단어가 디트로이트라는 건, 칼하트에 있어서 이 도시가 차지하는 의미가 상당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실제 에미넴이 나고 자란 디트로이트는 영화 8마일의 주 무대가 된다. 디트로이트의 8마일은 백인과 흑인을 격리하고 부유층과 빈민층을 가르는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고속도로다. 가난과 피폐함 속에 남겨진 이들에게 8마일은 지리적, 물질적 경계선이자 정신적인 경계선이기도 하다. 디트로이트는 성장환경으로는 끔찍한 장소지만, 동시에 에미넴이 재능을 키운 곳이기도 하다. 이 복합적인 도시 디트로이트는 8마일과 에미넴에게도 상징적일 수밖에 없다. 칼하트 오리지널 라인과 에미넴이 함께하는 협업의 이름은 ‘E13’, 협업 컬렉션의 발매 시기는 미정이나, 수익은 에미넴이 자신의 본명을 따 설립한 자선 단체인 마샬 매더스 재단(Marshall Mathers Foundation)에 기부해 디트로이트의 불우한 젊은이를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A Bathing Ape x Alien: Covenant

오리지널리티의 미덕.

베이프(Bape, A Bathing Ape)의 독창성은 고유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베이프는 개인의 패션 철학, 정체성, 아이디어와 같은 추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구체적인 캐릭터나 패턴으로 형상화하는 데 발군의 능력을 보인다. 베이프의 시그니처 로고로 쓰이는 원숭이 일명, ‘사루(Saru)’도 이 비범한 능력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사루는 영화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1968)를 모티브로 제작했는데, 미지근한 물에서 목욕하는 원숭이처럼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그려낸 것이다. 카모플라주와 샤크 패턴과 같은 베이프의 대표적인 디자인은 루이뷔통(Louis Vuitton)을 모델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여타 브랜드 혹은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어 보이는 베이프의 주 무기는 따로 있다. 바로 관련 대상을 ‘자기화’하는데 강하다는 것. 영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속편 에일리언 : 커버넌트(Alien : Covenant)와의 협업을 살펴보자.

 

이 컬렉션에는 다양한 그래픽 티셔츠, 크루넥(Crewneck) 및 후디를 비롯해 약 10종류의 아이템이 포함되었다. 제노모프(Xenomorph)와 페이스 허거(Face Hugger)가 베이프의 상징인 유인원 사루와 베이비 마일로(BABY MILO)로를 공격하는 그래픽의 삽입은 앞서 언급한 베이프가 가진 재능의 발현이다. 외계 생물이 인간 세포로부터 양분을 빨아들이며 기생하는 존재라는 것, 창조자와 피조물의 뒤틀리고 일그러진 관계, 베이프는 에일리언 시리즈의 이 두 가지 핵심을 정확히 꿰뚫었다. 그리고 전혀 이질감 없이 본인의 색채와 화합하며 ‘베이프화’하는 데 성공했다. 베이프와 에일리언의 협업은 브랜드가 지닌 오리지널리티(Orignality)의 중요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위에서 살펴본 스트리트 패션과 영화의 협업은 그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할 때에 보지 못했던 매력을 과시한다. 막강한 시너지를 내며 하나의 콘텐츠를 탄생시킨 작업은 각자가 일궈낸 브랜드의 명성에 걸맞은 형태였다. 앞으로 어떤 협업을 통해 우리를 놀라게 할지, 예고 없이 찾아올 세기의 만남을 기다려보자.

글 │ 최세담
커버 이미지 │ 박진우
제작 │ VISLA, MU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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