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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Film De Mode #3 세기를 뒤흔든 패션 아이콘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한 스타를 보면 그들의 패션과 스타일 또한 화제가 된다. 필름 드 모드(Film de Mode) 3화에서는 세기가 바뀌고도 여전히 ‘패션 아이콘’으로 남아있는 4명의 스타 그리고 그 패션에 관련된 영화를 소개할 예정이다. 에디 세즈윅(Edie Sedgwick), 제임스 딘(James Dean),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까지, 이 4명의 패션 아이콘이 영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지 살펴보자.

 

에디 세즈윅, 화려한 패션과 함께한 삶의 굴곡.

-영화 “팩토리 걸(Factory Girl, 2006)”

60년대 뉴욕 맨해튼, 예술계의 정점에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있었다. 앤디 워홀은 ‘순수 미술’의 관습과 전통에 반기를 들고 ‘팝아트’라는 새로운 개념의 현대 미술을 도입한 선구자로 이 혁명적 예술가는 미술이란 장르에만 자신의 예술을 한정 짓지 않았다. 그는 광고와 디자인, 영화 등 시각예술에도 손을 뻗쳤고, ‘공장(Factory)’이라 불리는 본인의 스튜디오에서 창작 활동을 했다. 그의 뮤즈, 에디 세즈윅과 함께.

영화 “팩토리 걸”은 공장이라 일컬어지는 작업실에 찾아오는 여자, 에디 세즈윅에 관한 영화다. 앤디 워홀과의 만남으로 에디는 순식간에 슈퍼스타가 된다. 그러나 점차 술과 우울증, 약물 중독, 거식증 등으로 망가져 가고, 결국 28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에 작별을 고한다. 짧지만 강렬했던 인생만큼이나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건 그녀의 패션이다.

 

그녀를 수식하는 패션 용어가 너무 많기에 일일이 나열하기가 무의미할 정도지만, 그녀의 패션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직도 많은 유명인이 에디와 그녀의 패션을 오마주한다. ‘잇 걸(It Girl)’이란 단어는 에디 세즈윅을 통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락 시크 스타일의 선두주자였던 에디의 스타일은 자유로운 보헤미안처럼 보였다. 그녀는 뉴욕의 미니멀하고도 베이직한 룩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과장되고 볼드한 귀걸이와 액세서리로 글래머러스함을 추구했다. 그녀를 대표하는 또 다른 이미지 중 하나인 쇼트컷과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은 중성적이고 퇴폐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오늘날 하의실종 패션의 원조 격인 검정 타이즈도 에디의 스타일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언제나 손에 들려있던 담배는 그녀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일종의 패션 아이템으로 여겨졌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선, 천진한 미소를 보이면서도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에디 세즈윅. 그녀가 보여준 스타일은 본인 그 자체였다. “팩토리 걸”은 에디 세즈윅이라는 인물을 서사를 갖춘 하나의 캐릭터로 그려 내는 데 실패한 듯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패션과 60년대 뉴욕의 분위기, 앤디 워홀과 에디 세즈윅이 함께한 화려한 예술가 집단에 대한 묘사는 탁월하다. ‘패션 아이콘’으로서 에디 세즈윅이 궁금하다면 “팩토리 걸”을 감상해보자.

 

제임스 딘, 청춘의 패션을 대변하다.

-영화 “에덴의 동쪽(East Of Eden, 1955)”,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 1955)”

제임스 딘이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는 고작 3편이다. “에덴의 동쪽(East Of Eden, 1955)”, “이유 없는 반항”, “자이언트(Giant, 1956)”까지. 24살의 나이로 요절한 지 어느덧 60여 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제임스 딘이 지금도 ‘청춘’의 상징으로서 남아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가 보여준 영화 속 캐릭터와 패션 때문일 것이다.

그의 첫 주연작 “에덴의 동쪽”은 현대판 카인과 아벨 이야기인 존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 Jr)의 원작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이 작품에서 제임스 딘은 ‘칼(Carl)’이란 역할을 맡아 아버지의 애정을 갈구하며 기성세대와 갈등을 겪는 캐릭터를 표현한다. 상실감에 몸부림치는 영혼은 보수주의에 반발하던 전후 세대 청춘의 공감을 자아냈다. “에덴의 동쪽”으로 제임스 딘의 전설이 시작됐다면, “이유 없는 반항”에서는 그의 패션까지 청춘을 상징하기에 이른다.

 

니콜라스 레이(Nicholas Ray)의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이 연기한 ‘짐 스타크(Jim Stark)’는 거친 청춘을 대변한다. 공동체에 저항하고 결코 타협하지 않는 고독한 인물. 가죽점퍼와 청바지, 부츠 등의 의상을 입는 건 마치 불안한 청춘의 반항적 태도를 대표하는 듯하다.. 실제 영화 개봉 후, 미국의 거의 모든 고등학교에서 흰 티셔츠 위에 빨간 재킷을 걸치는 스타일이 유행했다. 제임스 딘이 입었던 ‘리 101 라이더 데님(Lee 101 Riders Denim)’은 지금까지도 청바지의 정석처럼 여겨진다.

 

한편 “자이언트”는 제임스 딘이 이전 캐릭터에서 벗어나 중년의 모습을 연기하며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의 유작임에도 “자이언트”에서 기성세대로 분한 제임스 딘의 모습은 우리의 머릿속에 잘 각인되지 않는다. 제임스 딘은 오직 “에덴의 동쪽”, “이유 없는 반항”의 청춘으로서 기억된다. 불안한 눈빛과 우울한 표정, 정서적 결핍은 실제 제임스 딘의 성질이기도 했다. 위 세 편의 영화를 감상하며 영원히 존재하는 청춘 제임스 딘을 만나보자.

 

오드리 헵번, 지방시와 헵번 룩을 창조.

-영화 “사브리나(Sabrina, 1954)”,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1961)”

오드리 헵번을 떠올릴 때 그녀의 패션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오드리 헵번 스타일’이 우리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1953)”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오드리 헵번은 빌리 와일더(Billy Wilder) 감독의 “사브리나”를 통해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이러한 ‘헵번 룩’을 창조한 실질적 인물은 디자이너 ‘지방시(Givenchy)’다. 이 둘의 인연은 헵번이 지방시를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파리 유학 후 돌아온 사브리나의 캐릭터를 위해 실제 파리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에게 의상을 맡기기로 한 것.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이던 지방시는 헵번의 첫 번째 제안을 거절했다. 오드리 햅번은 지난 컬렉션 의상이라도 괜찮다며 계속해서 요청했고, 결국 “사브리나”의 세 가지 장면을 위한 의상을 지방시에서 선택한다. 또한, 오드리 헵번이 “사브리나”에서 선보인 몸의 라인에 꼭 맞게 재단된 지방시의 팬츠는 일명 ‘사브리나 팬츠’로 불리며 전 세계적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이때 같이 신고 나온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플랫 슈즈도 ‘사브리나 슈즈’로 이름 붙여지며 함께 유행의 중심에 섰다.

이 외에도 헵번의 짧고 발랄한 헤어 스타일은 햅번 커트로 불렸다. “사브리나”는 27회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며 헵번을 패션 아이콘으로 굳혔지만, 지방시는 영화 크레디트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후 오드리 헵번은 영화 출연 계약서에 ‘반드시 지방시가 제작한 의상을 영화에서 입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며, 약 8편의 영화를 지방시와 함께한다.

 

이들이 최고의 시너지를 보여준 작품은 단연 “티파니에서 아침을”일 것이다. 영화 속 지방시의 ‘리틀 블랙 드레스’는 오드리 헵번의 가장 상징적인 룩이 된다. 블랙 드레스를 입고 커다란 선글라스와 벨벳 장갑을 낀 채 커피와 빵을 들고 티파니 매장 안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단연 20세기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헵번은 지방시의 의상을 영화 속에서만 입지 않았다. “로마의 휴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탈 때 입은 드레스도 지방시의 작품이다. 위에 언급한 잘 알려진 작품들을 통해 이 둘의 40여 년의 우정이 빚어낸 매혹적인 햅번 룩을 감상해보자.

 

마릴린 먼로, 백치 금발과 비련의 여인 사이 이중적 면모.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 1959)”, “7년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 1955)”,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My Week With Marilyn, 2011)”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만큼 살아서도, 세상을 떠나서도 끊임없이 상업적 이미지로 소비되는 배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50년대 섹스 심벌로 군림한 그녀는 ‘멍청하고 섹시한 금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그녀에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겨준 역할은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맡은 멍청하고 섹시한 금발이었다.

 

이 작품의 감독인 빌리 와일더(Billy Wilder)는 먼로의 통풍구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7년 만의 외출”의 감독이기도 하다. 마릴린 먼로의 대표적 이미지, 통풍구에서 나오는 바람에 위로 말아 올라가는 치마를 붙잡는 포즈는 사실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아왔던 것은 영화 현장을 방문한 기자들의 홍보용 사진일 뿐. 또한, “7년 만의 외출”이란 한국 제목과 달리 원제는 결혼 7년째가 되면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싶어서 근질(Itch)거리기 시작한다는 의미로 먼로는 유부남 주인공의 시선을 사로잡는 대상으로 자리한다.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특유의 걸음걸이와 육감적인 몸매, 빨간 립스틱 등은 ‘마릴린 먼로’만의 이미지로 굳어졌지만, 그 이면에 있는 먼로의 기구한 사생활과 연약한 내면, 비극적 삶 등도 끊임없이 재조명된다.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은 남성들의 시각적 환상을 만족시켜주는 금발의 여배우가 아닌 한 명의 인간 ‘마릴린 먼로’의 진실한 내면에 주목한다. 그러나 영화는 마릴린 먼로의 패션을 재창조하며 그녀를 표현할 때 패션과 스타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실제 마릴린 먼로가 등장한 고전 영화와 그녀의 삶을 기념하는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등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지닌 사랑스러운 마릴린을 만나보자.

 

결국,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한다는 것은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 뒤로 허무함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 누군가의 뮤즈로, 누군가의 우상으로 영원히 기억될 이들의 강렬했던 삶. 몇십 년의 세월을 거치고도 아직도 회자되는 이들의 패션과 스타일, 더 나아가 그들의 보여준 삶의 태도와 가치관은 이들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군림하는 데 타당한 근거로 뒷받침한다.


글 │ 최세담
커버 이미지 │ 박진우
제작 │ VISLA, MU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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