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EAKER LOVE: 손야비

스니커 러브(SNEAKER LOVE)는 말 그대로 신발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 신발에 관한 이야기다. 발을 감싸는 제 기능 이상으로 어느덧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스니커. 이제 사람들은 신발 한족을 사기 위해 밤새도록 줄을 서고, 야영하고, 심지어는 매장문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손에 넣고자 한다. 그들이 신발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VISLA와 MUSINSA가 공동 제작하는 콘텐츠, 스니커 러브는 매달 한 명씩 '신발을 무진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가 아끼는 스니커의 이모저모를 물을 예정이다. 애인보다 아끼고, 엄마보다 자주 보는 스니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2000년대는 신선했다. 소위 뉴 밀레니엄이라 불리며 나이키 에어 맥스(Nike Air Max)와 같은 스니커가 큰 인기를 끌었고 전에 없던 패션이 유행했다. 손야비는 그 시절의 문화를 동경하며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기념비적인 아카이브를 모으는 컬렉터이자 스타일리스트다. 그만의 철학은 분명하다. 아이템 하나하나에 이해도가 없으면 본인이 착용하지도, 남에게 대여해주지도 않는다. 이는 분명 그 자신이 패션에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베이(eBay)를 탐험하던 소년이 확고한 스타일리스트로 자리 잡기까지, 손야비와 함께 스니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손야비라고 한다. 물론, 본명은 아니다.

 

손야비라는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몰려다니다 고등학생에게 맞을 뻔한 적이 있다. 그때 나 혼자 도망을 갔는데, 친구들이 그 이후부터 야비하다고 손야비라 부르더라. 하하.

 

오늘 가져온 스니커의 테마는 무엇인가.

특별한 테마는 없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스니커를 가져왔다.

 

보통 스니커, 패션 컬렉터를 보면 나이키 에어 조던(Nike Air Jordan)과 같은 스포츠 브랜드 스니커를 수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디자이너 브랜드 스니커 수집이 생소한데.

중학생 때부터 옷이나 신발을 모아왔다. 아버지가 무역 쪽에서 일하셔서 이베이를 잘 다루셨다. 그 영향으로 나도 이베이 시스템을 일찍 배웠다.

 

스포츠 스니커 컬렉터처럼 하이엔드 스니커 또한 컬렉터의 장이 존재하는지.

신(Scene)이라고 말할 수 있는 판은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

 

스니커즈 컬렉터는 보통 스니커를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해 착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반면, 데이비드 카사반트(David casavant)와 같은 컬렉터는 더 많은 사람을 입히기 위해 스니커를 수집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누군가 나에게 스니커 대여 요청이 왔을 때 빌리는 이가 그 아이템을 잘 알지 못하면 빌려주지 않는다. 친한 동생이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는 어떤 제품을 빌릴 때 그 제품을 공부해온다.

 

컬렉터이면서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하다. 스타일링할 때 고려하는 포인트라면.

특정 브랜드나 스타일에 이해도가 있는 사람과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스니커를 빌려줬을 때 손상되어 돌아온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제품의 컨디션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다.

 

스타일리스트라는 일 특성상 자신의 아이템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을 텐데, 그런 연유로 차마 이 자리에 가져오지 못한 스니커가 있는지.

그게 바로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의 아티저널(Artisanal) 독일군 스니커다. 마르지엘라 스니커 중 가장 가치 있는 신발이라고 생각하는 제품으로 350켤레 정도만이 제작되었고, 내가 보유한 스니커는 2001년도 S/S 컬렉션 제품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니커이기도 하다.

 

본인만의 스니커 케어법이 있나.

따로 스니커 케어를 안 한다. 진짜 멋지게 신고 싶은 신발은 묵혔다가 신는다. 요즘 발렌시아가(Balenciaga) 스니커가 유행이지 않나. 트리플 에스(Tiple S)와 같은 디자인은 특히나 멋지다. 이런 제품 같은 경우에는 유행에 맞춰 신기보다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착용하고 싶다.

 

오랜 세월이 지난 스니커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이베이를 통해 많이 구매하지만, 가끔 국내에서 귀한 스니커를 찾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중고나라 같은 곳에서 갖고 싶던 스니커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한 적 있다.

 

스트리트웨어에 하이엔드 스니커를 매칭하는 모습은 자주 보이지만, 하이엔드 브랜드에 스포츠 브랜드 스니커를 신는 건 왠지 조금 낯설게 보인다. 하이엔드 브랜드와 어울리는 스포츠 스니커는 뭐가 있을까?

요즘은 편한 스니커를 신으면 잘 어울리더라. 키코 코스타디노브(KIKO Kostadinov)가 대표적이지 않나. 아식스(Asics)와 협업한 스니커까지 출시하며, 상당한 이슈를 몰고 있다.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러한 매칭을 잘 하는 것 같다.

 

근래 하이엔드 스니커가 근래 일반 스포츠 브랜드 스니커의 다양한 요소를 많이 차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처음 ‘와, 진짜 못생긴 신발이다!’라고 생각했던 스니커가 라프 시몬스(Raf Simons)의 2008년 데스틸(De Stijl) 컬렉션이다. 튀고 싶어서 구매한 스니커로 당시 정말 파격적이었지. 지금 발렌시아가가 선두를 이끌었고, 그 뒤를 이어 여러 브랜드가 착화감에 상관없이 외형에 치우친 스니커를 많이 내는데 뭐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착화감을 중요시해서 평소에 뉴발란스(New Balance) 스니커를 즐겨 신는다.

 

근래 아식스, 호카 오네오네(Hoka One One)와 같은 소위 어글리 스니커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스니커가 인기를 끄는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관심 받고 싶은 것이 아닐까? 누군가 봐줬으면 하는 그런 심리일 것 같은데.

 

지금의 아카이브 피스가 그렇듯 현재의 제품이 몇 년 후엔 정말 찾기 힘든 아이템이 될 것 같은데, 최근에 나온 컬렉션 중 구매한 제품이 있는가.

‘GmBH’라는 브랜드로, 세르핫 르시크(Serhat Isik)와 포토그래퍼 벤자민 알렉산더 휴즈비(Benjamin Alexander Huseby)가 함께 전개하고 있다. 상당히 마음에 든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의류공장에서 버려지는 원단을 재활용해 이탈리아에서 생산한다. 원단과 다르게 마감과 복착이 편하다. 이런 요소를 되게 하이엔드의 무드로 내는 브랜드라서 매 시즌 구매하고 있다. 스니커는 뉴발란스를 자주 구매한다. 너무 편하다. 역시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뉴발란스의 가장 큰 장점은?

착화감이다. 내가 알기로는 뉴발란스는 교정용 신발을 만들면서 브랜드를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

 

오늘 준비한 스니커즈를 하나씩 소개 부탁한다.

 

이 신발은 마르지엘라에서 90년대에 제작한 스니커다. 마르지엘라가 막 브랜드를 시작했을 때는 충분한 자금이 없어서 재활용을 토대로 브랜드를 전개했다. 이 스니커는 기존 완성된 신발 위에 페인트를 칠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밑굽에는 마르지엘라의 각인이 새겨져 있다.

 

2005년도 S/S 라프 시몬스의 모토(Moto)라는 스니커다. 아까 말했다시피 물건을 아끼는 성격이 아닌데, 이 신발은 아직 신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하.

 

톰 삭스(Tom Sachs)라는 시각 예술가가 제작한 두 번째 스니커. 참 멋진 디자인이지만, 완성도가 조금 아쉽다. 변형이 잘 이루어지는 원단을 사용했고, 아웃솔 역시 불편하다. 단순히 톰 삭스의 팬이라서 구매한 제품이다.

 

런던 기반의 패션 브랜드 코트웨일러(Cottweiler)와 리복(Reebok)의 협업 스니커, 엄청 편하다.

 

이탈리아의 슈즈 브랜드 OXS의 러버 소울(Rubber Soul)이라는 스니커다. 비틀즈(Beatles) 곡 제목을 가져온 신발인데, 개인적으로 엄청 선호하는 디자인이다. 유럽여행 당시 이 스니커를 신었는데, 그 추억이 좋아서 이 스니커만 네 켤레 째 착용하고 있다.

 

슈프림(Supreme)의 명작인 슈프림 x 나이키 덩크 SB(Supreme x Nike Dunk SB) 모델이다. 첫 시즌 스니커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잃어버리는 바람에 10주년 재발매 제품을 구매했다. SB 시리즈라는 말이 무색하게 굉장히 불편하다. 과연 이 스니커를 신고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이 스니커 또한 아직 한 번도 신지 않은 제품이다.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다이너소어 주니어(Dinosaur Jr)와 컨버스(Converse)의 협업 스니커로, 프린팅이 매력적이어서 구매했다.

 

살면서 결혼식과 같은 경조사에 가야 할 때가 있지 않나.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새가 필요한 자리에 신기 위해 준비한 신발이다.

 

마르지엘라의 독일군 시리즈를 여러 족 소장하고 있다. 이 제품은 아웃솔이 은색으로 되어있는 스니커로, 과하지 않으면서도 개성을 드러내고 싶을 때 착용한다.

 

지금껏 공개한 개인 컬렉션을 보면 단연 라프 시몬스가 돋보인다.

라프 시몬스 말고도 선호하는 디자이너가 많다. 패트릭 소더스탐(Patrik Soderstam)이나 버나드 윌헴(Bernhard Willhelm), 월터 반 베이렌동크(walter van beirendonck), 간류(ganryu) 등을 좋아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며 더는 시즌을 전개하지 않는 브랜드도 있고,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컬렉션을 전개하는 경우도 많아졌지. 나 또한 빈티지 의류만 수집하는 건 아니다. 지금 한창 붐업되는 디자이너보다는 조용히 멋진 의류를 전개하는 디자이너의 의류를 구매하는 편이다.

 

라프 시몬스와 아디다스의 협업은 기본적인 스니커의 형태에 라프 시몬스의 이니셜을 삽입하거나 그 형태를 완전히 변형시킨 제품까지 다양한 변주를 이어간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라프 시몬스 협업 스니커는 무엇인가.

두툼한 장화의 외형을 빌린 버니(Bunny)라는 스니커다. 비싼 가격이 아닌데, 아직 구매하지 못했다. 막상 구입해도 착용하지 않을 것 같아서.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에 나올 법한 스니커다.

 

2005년 이후의 라프 시몬스 컬렉션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는 목소리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는 2005년 이후에도 멋진 라프 시몬스 컬렉션이 있다. 2013년의 컬렉션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는 2010년과 2013년, 두 번에 걸쳐 진행했다. 이스트팩(Eastpak)과 함께한 협업 컬렉션도 멋지다.

 

지금껏 구매한 제품 중 가장 값비싼 의류는 무엇인가.

최근에 레더 재킷을 하나 구매했다. 2004년도 피터 시빌(Peter Saville)이 참여했던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상징적인 앨범 그래픽 [Unknown Pleasures]가 그려진 재킷.

 

 

마르지엘라와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헬무트 랭(Helmut Lang) 등 90년대와 2000년대를 풍미한 브랜드가 최근 들어 주춤한 기색을 보인다.

맞다. 지금 헬무트 랭 디자이너가 셰인 올리버(Shayne Oliver)로 바뀌었지 않나. 기존의 헬무트 랭보다 더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헬무트 랭의 리이슈가 아닌 셰인 올리버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만나고 싶다.

 

소장하고 있는 아카이브 컬렉션은 빈티지 의류를 넘은 예술 작품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전시해볼 생각은 없나.

그런 제안을 꽤 받았는데, 내가 가진 의류를 전시할 생각은 없다. 이런 의류가 작품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거든.

 

음악과 영화에도 관심이 많아 보인다. 본인에게 영향을 끼친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에 큰 영향을 받을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하지는 않다. 최근 흥미롭게 본 작품이라면,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이다. 사운드 트랙도 좋았고, 대중문화의 많은 요소를 집합한 영화였다. 스토리가 조금 유치했지만, 재미있게 봤다.

 

현재 ‘soft office’라는 개인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티셔츠를 발매했는데, 본격적인 브랜드를 전개해볼 생각은 없는지.

지금 당장은 없다.

 

soft office의 게시판에서 국내 브랜드를 언급하면 경고를 받는다던데.

한국에 카피 브랜드가 너무 많다. 그래서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언급할 수 있는 국내 브랜드라고 한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헤리티지 플로스(Heritage Floss). 의류의 질과 디테일이 훌륭하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의류 브랜드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헬리녹스(Helinox)의 팬이다.

 

이제는 돈만 있다면, 어떤 아이템이라도 구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다. 이전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아이템을 구하던 시대와는 감흥이 다를 것 같은데.

낭만까지는 아니지만, 진짜 밤을 새우며 아이템 디깅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돈만 있다면,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이런 의류에 예술 작품이라는 표현을 삼가는 편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멋있게 살고 싶다.

* 이 기사는 무신사 매거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진행 / 글 │ 김나영, 오욱석
사진 │ 배추
제작 │ VISLA / MU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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