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months ago
INTERVIEW

MAKE-1

‘Make-1’, ‘@Pay_billz’, ‘PRRCPrivate Road Running Club’ 등 이진복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따른다. 각종 파티와 러닝은 물론, 국내외 패션 마켓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 힙합 음악에 빠져든 뒤 오랜 시간 국내 서브컬처 신(Scene)의 저변에서 여러 움직임을 아우르는 그는 여전히 빠른 발걸음으로 언더그라운드의 다양한 범주를 넘나드는 중이다. 20여 년의 시간 동안 맞춰온 조각, 그가 두 손으로 일군 움직임과 함께 오랜 시간 주변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변해왔는지 그리고 지금 주목하는 움직임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360사운즈(360Sounds)의 멤버 메이크원(Make-1)으로, 현재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고 있다.

 

로컬 파티의 MC뿐만 아니라 PRRC 운영, 의류 프로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건가?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어린 시절 디제이 스무드(DJ Smood)라는 친구의 영향을 받아 랩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게 지금 이 신Scene에 들어오게 된 첫 발걸음이다. 이후 씨비매스(CB MASS)라는 그룹에서 랩을 하다가 일스킬즈(Ill Skillz)라는 팀을 만들어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뉴욕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되게 좋아했는데, 그들은 자신의 팀을 상징하는 머천다이즈를 제작하곤 했다. 음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처럼 부가적인 의류를 만드는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렇게 직접 의류를 제작해보자고 시작한 첫 브랜드가 바로 부루마불 하우스(BURUMARBUL HOUSE)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직접 일을 진행하며 의류 제작에 관한 많은 것을 깨우쳤다. 이런 경험으로 의류 제작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 와중에 360사운즈를 시작했다. 초창기 파티에는 아무런 스폰서도 없었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며 조금 더 큰 규모의 파티 이벤트를 진행해보고 싶어서 나이키에 연락해 파트너십을 맺었고 긴 시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PRRC의 시작도 비슷하다. 운동화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이키 스니커를 접했고, 그들이 자랑하는 기술력이 집약된 러닝슈즈를 신었다. 스니커를 그저 패션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직접 뛰어가며 느끼고 싶었다.

그들의 스니커를 그저 패션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직접 뛰어보면서 느끼고 싶었기에 정바울이라는 사람과 서로 연락하며 같이 달리게 된 거다. rm.360이라는 공간에 모인 뒤 다 같이 러닝을 하는 게 PRRC의 출발점이다. 당시 외국에서는 러닝 문화가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붐업과 맞물려 전 세계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바로 알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 흐름 속에서 PRRC라는 러닝 클럽이 탄생했다. 내가 음악이라는 방식으로 360사운즈에 속해있듯 PRRC 또한 라이프스타일로 접근한 일로, 우리가 할 수 있으면서도 멋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본인이 직접 디렉팅한 부루마불 하우스와 오리지널 컷(Original Cut), 시간적인 차이가 있지만 두 브랜드는 어떤 지향점을 두고 운영했는지 궁금하다.

부루마불 하우스는 우리에게 필요한 걸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브랜드다. 처음에는 간단한 티셔츠나 피케 셔츠 정도만을 제작했다. 이태원에 틴틴(Tin Tin)이라는 편집숍이 있었다. 그곳은 에코(Ecko)와 트라이벌(Tribal), 트리플 파이브 소울(Triple Five Soul) 등의 여러 해외 브랜드를 수입, 판매하던 숍이었다. 우리도 그와 비슷한 성격의 브랜드를 하고 싶었지만, 그만큼 큰 규모를 움직일 수 없으니 작게라도 시작해보고자 한 것이 부루마불 하우스다. 커다란 볼륨의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혼자 진행하니 힘에 부칠 때가 많았다.

이때 휴먼트리(Humantree)와 함께하면 수월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루마불 하우스를 진행함과 동시에 옥근남이라는 친구가 많은 도움을 줬다. 우리가 원하는 퀄리티의 옷을 만들 수 있게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부분을 통해 휴먼트리라는 회사에 큰 믿음이 생겼고 이후 서로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브랜드의 전체적인 감독과 콘셉트는 내가 주도하되, 의류 생산과 홍보는 휴먼트리가 맡아 진행하는 프로세스, 그렇게 오리지널 컷이라는 새로운 브랜드가 탄생했다. 지금은 헤리티지 플로스(Heritage Floss)라는 브랜드를 전개하는 이윤호라는 친구가 오리지널 컷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당시의 헤리티지 플로스는 의류보다는 원단에 중점을 둔 브랜드였는데, 그 원단을 오리지널 컷에 적용한 것이 지금 헤리티지 플로스라는 의류 브랜드로 이어졌다.

그렇게 몇 시즌을 보낸 뒤 휴먼트리의 내부 사정이 어려워졌고, 나 또한 조금씩 360사운즈의 업무에 초점을 맞추면서 오리지널 컷의 시즌을 종료했다. 하지만, 오리지널 컷은 여전히 내가 가장 아끼는 브랜드다. 최근 오리지널 컷의 재개에 관해 제이에스(Jayass), 이윤호와 이야기를 나눴다. 언젠가 좋은 기회가 온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사이 다양한 국내 스트리트 브랜드가 부흥했다. 본인의 브랜드를 더욱 확장하고픈 욕심은 없었나.

지금 국내 패션 마켓을 주름잡는 라이풀(Liful)이나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을 운영하는 두 친구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브랜드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좋은 파트너와 팀원을 꾸리는 과정이 중요하다. 부루마불 하우스나 오리지널 컷을 회사로 발전시키는 일은 우리가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다. 물론, 욕심도 났지만,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면서까지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이 사무실도 8D 크리에이티브(8D Creative)라는 회사에서 제공한 공간이다. 아직은 직접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인생관을 바꾸면서까지 뭔가를 얻고 싶은 욕심은 없다.

 

새로운 브랜드를 전개해볼 계획은 없는지.

아직은 없다. 대신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맡아서 진행 중이다. 일본 그래픽 아티스트 베르디(Verdy)의 제품을 생산해주는 일인데, 이 프로젝트 또한 일본에 거주하는 친구가 베르디를 소개해주면서 자연스레 시작되었다. 그는 자기가 만든 그래픽으로 옷을 찍는다고 말했다. 실제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니 그 결과물을 꾸준히 게시하더라. 그 티셔츠를 나와 내 주변 친구가 입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베르디 의류의 국내 생산을 제안했다.

이후 베르디가 직접 한국에 와서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들은 뒤 우리에게 베르디 프로덕트의 생산을 맡겼다. 최근 베르디는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결이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베르디의 개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지 고민한다.

 

시중에 나오는 베르디의 의류는 전부 한국에서 만들어지나.

전부는 아니지만, 최근 진행한 팝업 스토어의 제품은 전부 우리가 생산했다. 베르디는 브랜드 이전에 한 명의 아티스트다. 아이디어는 많지만, 아무래도 실질적인 생산에는 서툴다. 오히려 우리가 역으로 제안하기도 하면서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메이크원이라는 이름의 최근 커리어는 패션이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패션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보다 아버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 흔히 말해 ‘멋진 것’과 ‘짜치는 것’을 구별하는 감식안을 물려받았다. 어린 시절 대부분 농구를 즐기지 않나. 별생각 없이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 그려진 티셔츠를 갖고 싶다고 말하면, 아버지는 출장길에 더 좋은 나이키 티셔츠를 사다 주셨다.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내 옷에 불만이 생길 때도 있었다. 분명, 남들이 쉽게 갖지 못하는 좋은 옷이었지만, 또래 집단에서는 이상하게 느껴졌거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내가 아버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걸 느꼈다. 야구를 즐겨 하다보다 보니 어센틱 기어와 팬 기어의 차이도 알게 됐다. 어릴 때부터 의류를 둘러싼 다양한 요소를 많이 겪고 자란 것 같다.

 

현재 다양한 스포츠, 스트리트웨어 브랜드가 메이크원을 찾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능력을 탐내는 걸까?

글쎄, 최근에도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에서 스노우 비치(Snow Beach) 컬렉션 재발매 런칭 이벤트 진행을 요청했다. 난 대행사에서 일해본 적도 없고, 행사라면 360사운즈 파티나 내가 하고 싶은 이벤트만을 진행했다. 일정한 보수를 받는 비즈니스 모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 폴로는 내가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 브랜드와 결이 잘 맞는다는 이유로 연락했다고 말했다.

난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일을 진행할 때는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어린 시절부터 축적한 아카이브를 통해 다양한 창의성을 표현할 수 있기에 나이키라는 브랜드와도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소셜 미디어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이제는 소셜 미디어의 중요도를 이야기하는 게 촌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소셜 미디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브랜드가 찾는 이유일 거다.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한다지만, 어느덧 사무실까지 차렸다.

회사라고 해봤자 직원은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단 세 명뿐이다. 규모를 확장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방금 얘기한 것처럼 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이가 나를 외부에 소개할 때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대외적으로는 프로덕션을 관리한다고 말하지만, 난 내가 완벽한 비즈니스맨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난 이 간극에서 오는 모호함을 즐긴다. 굳이 나 자신을 정의하고 싶지도 않다. 뜻이 통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혹은 직접 뭔가를 하고 싶을 때 일을 벌이는 데 만족한다.

 

의류 프로모션이라고 한다면, 어떤 과정으로 일을 진행하는지?

생산 대행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아카이브와 창의성을 토대로 클라이언트에 제안하는 게 일의 시작점이다. 한국의 의류 프로모션은 클라이언트가 제작하고 싶은 것을 실물로 제작해주는 일을 뜻한다. 의류를 제작할 공장과 적합한 원단을 수배하고 원하는 제작 방식을 종합해 생산과 납품을 관리하는 일이다. 우리는 기존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일한다. 어떤 이벤트나 아티스트와 관련된 제품이 있다면, 우리가 역으로 제안해 판매하는 방식까지 그림을 그린다. 따라서 이미 자리가 잡힌 큰 브랜드와 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단순한 제품 생산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콘셉트나 디자인에도 관여한다는 말은 곧 클라이언트가 그 ‘감각’을 믿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일을 진행할 때 주안점은?

내가 하는 일이 많은 돈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주로 소규모, 일회성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기 때문이다. 난 이런 일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멋진 것,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제작하는 게 프로젝트의 첫 번째 조건이다. 또한,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아티스트나 이벤트의 방향성에 부합하는 프로덕트를 제작하는 일이 중요하다.

 

현재는 그 저변을 더욱 넓혀 국내뿐 아니라 가까운 일본부터 미국까지 다양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냈다. 다양한 네트워크는 보통 어떤 계기로 만들어지는가.

사람을 통해 이어지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일단,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는 세계적으로 넓은 인맥이 있고, 이규범(KB) 또한 패션 업계에 많은 끈이 있다. 그렇게 주변 친구와 가볍게 이야기하다가 이루어지는 일도 있다. 한국에서는 클럽이 많은 역할을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디제이와 아티스트가 클럽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소셜 미디어 덕분에 그 벽이 훨씬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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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한 소셜 미디어 또한 당신의 강점이다. 실제 인스타그램이 당신의 커리어에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지금에 이르러 인스타그램은 개인 미디어가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게시해주면 돈을 준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 엄청나게 당황했다. 그전까지 인스타그램 계정이라는 건 내 블로그처럼 개인 일상을 담고 주변 친구에게 알려주고 싶은 정보를 올리는 편리한 매체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느 순간 사용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마케팅 도구로 활용되는데, 그 모습이 여전히 생경하다.

인스타그램 마케팅 제안이 올 때는 여전히 반감이 든다. 인스타그램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하던 플랫폼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개인의 삶을 살아가고, 그저 소셜 미디어라는 새로운 매체가 생겨서 이용하는 것뿐이지. 지금 이 순간 역시 내 인스타그램은 공식적인 미디어 채널과 사적인 것 사이의 모호함을 유지한다. 어렵다. 아직도 배워가는 단계다.

 

각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의 흐름을 즉각적으로 확인하고 연결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와중에 로컬 문화라는 맥락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컬에서 지지를 받지 않은 채로 세계적인 성장을 이루었다고 치자. 그 뿌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로컬을 기반으로 확장했을 때 그 본체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비교적 더 젊은 세대는 우리와 접근방식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갑작스러운 탄생과 그 존재만으로도 기반이 될 수 있는 시대니까. 이런 마인드로 성공을 이룬 친구 역시 많이 봤다. 그 마인드 또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지대 없이 떠다니는 일이란 그저 허상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그것도 하나의 문화인 것 같다. 함부로 비판할 수는 없다.

 

오랜 시간 서브컬처 신에 몸을 담갔다.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많은 변화를 체감했을 것 같은데.

이 문화에 빠져든 뒤로는 언제나 힙합과 스트리트 컬처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다. 평생 이 속에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지. 이러한 태도가 부루마불 하우스와 360사운즈, 오리지널 컷이라는 결과물로 자연스레 이어진 거다. 언젠가는 어떤 문화와 비교하더라도 가장 에너지 넘치고, 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의 힙합, 스트리트 컬처는 어떤가. 시장도 커지고, 힙합 음악은 K-POP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스트리트 컬처가 우리만의 문화보다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길 바란다. 깊게 간다면 더욱 쿨한 것을 찾아내고 옥석을 가릴 수 있겠지. 반면, 예전부터 나와 이런 문화를 즐기고 함께한 친구들이 신에서 사라지거나 제 모습을 잃었을 때 느끼는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회의감이 든 적도 있었나.

회의감보다는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하는 일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할당된 비용 역시 많지 않다. 그 예로 난 여전히 사무실에서 직접 티셔츠를 갠다. 열정이 없다면 힘든 일이다.

 

근래 신의 큰 이슈라면, 휴먼트리의 영업 종료다. 오랜 시간 명맥을 이어온 스트리트웨어 브랜드가 사라지는 시점에서 향후 국내 시장은 어떻게 변할 것 같은가.

휴먼트리의 종료를 두고 주변 친구들과 함께 대화를 나눈 적 있다. 휴먼트리는 쉼 없이 바뀌는 지금 시장에 적응하지 못했다. 시스템을 체계화해서 건강하게 만들어야 할 시기에 그걸 놓쳐버린 거다. ‘지금껏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잘 됐잖아’라는 마인드로 운영할 때 바깥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다. 이미 많은 국내 스트리트웨어 브랜드가 시스템을 도입하고 적응하는 시기였지. 어쨌든, 휴먼트리 쇼룸의 마지막은 굉장히 아쉽지만, 제이에스 역시 나름의 역할이 있고, 스투시(Stussy)를 통해 조금 더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도 그 능력을 알고 있으니 기회가 생기면, 충분히 제 역량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요즘 내가 보는 패션 마켓의 재미있는 현상은 부틀렉(Bootleg)이다. 최근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는 물론 럭셔리 하우스까지 주목하는 문화다. 부틀렉도 스트리트웨어의 일부다. 일종의 커스터마이징이지. 어떻게 보면 ‘가짜’라고 볼 수 있는 요소지만, 여러 브랜드가 이 에너지를 인정하며, 협업까지 진행하는 지금의 흐름을 보면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문제는 그런 기회가 왔을 때 잡는 사람과 놓치는 사람, 기회를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각자의 생각이지만, 부틀렉 컬처는 점점 좋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부틀렉 컬처를 뭐라 정의할 수 있을까.

부틀렉이라는 개념 자체가 참 애매하다, 한국어로 번역하기에도 어색하지, 그러나 그 시초는 힙합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힙합 뮤지션이 구찌(Gucci)나 루이뷔통(Louis Vuitton), 펜디(Fendi) 등 여러 디자이너 하우스의 패브릭을 구해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의류를 제작한 게 그 시발점이다. 로고를 재해석하기도 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신선함을 드러냈다. 진짜와 가짜는 그저 느낌으로 판단하는 거다. 정확히 수치화할 수 없는 거니까. 어쨌든, 어느 순간부터 부틀렉이라는 문화가 퍼지는 현상이 상당히 신선하다.

본인의 에너지와 독창성만 있다면 대중을 넘어 브랜드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거지. 이전에는 혼자 만들어 입는 게 전부였다면, 이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즉각적인 판매 또한 가능하다. 힘든 홍보 과정을 생략해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그것을 바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이제는 ‘Make-1’이라는 닉네임보다 @Pay_billz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이들도 많을 텐데.

부루마불 하우스를 진행할 때, 데님 팬츠를 제작한 적 있다. 첫 데님 팬츠의 이름이 오리지널 컷이었고, 그다음 제작한 제품이 바로 페이 빌즈(Pay Billz)라는 제품이다. 별 의미는 없었다. 돈과 관련된 단어를 찾다가 덜컥 결정한 제품명이지. 당연히 인스타그램 계정 이름을 ‘Make-1’으로 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 계정을 누가 만들어 놨더라. 그래서 그냥 페이 빌즈라는 이름을 썼다. 재미있는 건 여러 사람이 주변에 날 소개할 때 페이 빌즈라는 인스타그램 아이디로 말한다는 사실이다. ‘이건 그냥 내 인스타그램 계정일 뿐인데, 이게 내가 될 수 있나?’라고 생각했다.

 

어떤 활동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얻나.

몇 년 전만 해도 온라인 서칭을 하거나 블로그, 주변 친구를 통해 정보를 얻었다. 거기서 얻는 정보에는 특정한 필터링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소셜 미디어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얻는다. 전 세계에서 순식간에 올라오는 정보를 끊임없이 만날 수 있으니까. 그 와중에서 생기는 피로감이 있지만, 이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을 보며 많은 걸 느낀다.

더불어, 난 이전부터 뒤에 숨겨진 인물을 찾아내는 걸 즐겼다. 프로덕션이나 브랜드 디자인의 배후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습득한 디깅(Digging) 본능이 여기서 발휘되는 거다. 우리는 정보를 찾아다니던 세대다. 디제이의 해외 공연 비디오나 스케이트보드 비디오에서 스쳐 지나가는 훌륭한 음악, 외국 잡지에서 모델이 입은 멋진 옷을 봤을 때 그 작은 정보를 찾기 위해 무수한 단서를 뒤적거려야 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에 몇 초간 노래를 들려주면, 바로 제목이 나오고, 인스타그램 태그를 통해 누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렇게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요소를 찾는 게 훨씬 재미있다. 지금 C.E(Cav Empt)를 전개하는 ‘Sk8thing’은 이전 베이프(A Bathing Ape)나 BBC(Billionaire Boys Club)을 디렉팅할 때부터 그 뒤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가 일본의 댄서 팀과 힙합 아티스트를 위해 비밀스럽게 제작한 부틀렉 티셔츠 또한 찾고 있다. 나는 여전히 옛날 것을 찾아보는 걸 즐기고, 이 문화가 어떻게 발전해나가는지 지켜보는 걸 좋아한다.

 

PRRC 또한 본인의 또 다른 명함이라고 할 수 있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러닝이라는 게 가장 기초적이고 오래된 운동이지 않나. 360사운즈에서 여러 파티를 진행하며, 항상 술과 피로에 절어 있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 생활 방식을 달리기를 통해 바꿔보자는 시도가 PRRC의 시작이었다. 2012년에 PRRC를 시작하며, 정바울 형이 많은 걸 얘기해줬다. 지금까지 대표님을 자처하며, PRRC 멤버 모두와 의논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아무튼, 러닝 시작 후 몇 달간은 개인적으로 달리기를 하다가 나중에 함께 모여서 뛰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일종의 커뮤니티를 형성해보자는 뜻이었다. 같은 코스를 함께 뛰고 이야기도 나눠보면 자신을 가늠할 수 있다.

마라톤 대회 첫 출전은 안산 바닷길 마라톤 대회였는데, 그곳에서 많은 걸 느꼈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정말 잊지 못할 긍정적 경험이었지. 이 경험을 내 주변 사람도 겪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제안하고 같이 달렸다. PRRC를 운영한 지 2~3년이 지났을 때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도 조금은 휩쓸렸던 것 같다. 스포츠보다는 패션에 가깝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나 PRRC는 생활방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패션이나 유행보다는 우리가 하는 일을 계속하는 게 중요했다.

난 360사운즈의 메이크원이지만, 달리기도 한다. 내가 쿨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뿐이다. 주변에 디자이너가 있으니 원하는 로고를 부탁하고, 그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대회에 나가서 소속을 대표한다. 비록 아마추어지만, 멋진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면 좋지 않을까? 이제는 클럽 멤버가 꽤 많아져서 해외 마라톤을 나가면 PRRC라는 사실만으로 우리를 가족처럼 대해준다. 우리도 우리가 받은 환대를 해외 러닝 클럽에게 베풀어주고 싶어서 작년부터 BTGSEL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비즈니스보다는 문화를 좋아하기에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다.

 

정바울이라는 인물이 자주 언급되는데, 그는 누구인가?

정바울 형은 PRRC뿐만 아니라 부루마불 하우스, 오리지널 컷, 360사운즈를 시작할 때도 많은 도움을 줬다. 항상 우리 뒤에서 아이디어와 힌트를 줬다. PRRC는 그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움직임이다. 실제, PRRC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 대부분을 그가 도맡는다.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지만, 스트리트 컬처에 애정이 많아서 PRRC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자신의 열정을 해소하고 있다.

 

처음 러닝을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한민국 보통의 남자라면 대부분 군대를 다녀왔을 것이다. 내 경우는 군 시절 매일 5km씩을 달렸다. 한국의 많은 이는 운동보다는 체벌의 형태로 달리기를 접한다. 따라서 달리기에 반감을 품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건강을 위해 달리기 시작한 뒤 나이키에서 광고하는 새로운 러닝슈즈의 영향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일상화로도 많이 착용하지만, 러닝슈즈는 역시 달릴 때 제 기능을 100% 발휘하지 않나.

 

PRRC는 러닝 클럽을 넘어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머천다이징으로 브랜딩을 단단히 하고 있다. 향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갈 의향이 있는지.

브랜드보다는 자연스럽게 진행한 움직임이다. 박창용, 남무현, 프로파간다 등 좋은 디자이너가 곁에 있어서 PRRC를 대표하는 로고를 손쉽게 제작할 수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정바울이 내건 PRRC의 슬로건이 바로 ‘내가 가면 길이 된다’다. 처음 PRRC라는 러닝 클럽을 조직하고 함께 뛸 때 러닝 코스에 되게 연연했다. ‘바른 길’과 ‘틀린 길’을 재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때 정바울이 “야, 좆까고 그냥 가면 돼, 가서 돌아오면 되잖아”라고 말했다. 코스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이게 PRRC의 태도가 된 거다. ‘굳이 만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 그냥 만들어 보는 거다. 브랜드라는 틀을 잡은 큰 그림이 있던 게 아니다. 지난 BTGSEL 팝업 스토어의 프로덕트 또한, 이전 윤협이 서울에 방문했을 때 그와 함께 뉴욕 러닝 클럽 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작됐다.

 

도쿄의 러닝 클럽 AFE와 진행한 BTGSEL 팝업 스토어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들려 달라.

AFE(Athletics Far East)는 도쿄에서 활동하는 러닝 클럽으로, PRRC와 가족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AFE의 파운더 DKJ는 이전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와 일해온 사람으로 우리는 이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출장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교류하며 친분을 쌓았다. AFE 역시 러닝 클럽으로 조금씩 그들의 프로덕트를 제작하고 있었다. PRRC와 가족처럼 지내지만, 선배라고 판단해서 서울 팝업 스토어를 함께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도쿄와 서울, 시간과 지리 등 다양한 공통분모가 있지 않나. 합심해서 기획한 특별한 이벤트가 바로 BTGSEL이고, 그들과 PRRC 모두 만족한 즐거운 행사였다.

 

러닝이 바꾼 삶의 태도라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건 여전하다. 다만, 러닝은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을 잡아주는 행위일 뿐이다. 무엇보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 과정이 삶에 많은 도움이 된다. 러닝은 솔직한 운동이다. 내가 한 만큼 결과물이 나온다. 대회에 나가서 달리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굉장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스포츠다. 꼭 누구를 위해서 뛰는 건 아니거든. 자신을 위해 뛰는 거지.

 

나이키와는 어떤 파트너십을 맺었나.

나이키의 특정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컨설팅을 해준다. 가장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는 제품 테스팅이다. 나이키는 PRRC의 팀원이 자사의 제품을 선호한다는 걸 알고 있으며, 우리 또한 그들이 제작한 제품을 실제로 착용해보면서 적절한 조언을 해준다. 국내 마케팅 플랜과 러닝 이벤트에도 어느 정도 관여한다.

 

최근 눈여겨보는 국내 서브컬처 신의 흥미로운 움직임이라면.

주변 친구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본다. 디스이즈네버댓만 해도 바닥에서 시작해 지금은 패션 위크에서 쇼를 열기도 하고 라이풀 또한 LMC(Lost Management Cities)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공격적으로 운영 중이다. 미스치프(Mischief)는 일본 팝업 스토어를 통해 그 영향력을 더욱 확장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는 한남동에 자리한 편집 스토어 웝트(WARPED)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 아비 골드(Avi Gold)의 브랜드 부틀렉 이즈 베러(Bootleg is Better)를 찾다가 웝트를 알게 됐다. 소셜 미디어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브랜드를 한국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 세계 서브컬처 신의 움직임을 빠르게 체크하고 그에 관련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는 웝트의 움직임에 눈이 간다.

 

이전 아프로킹(Afroking) 파티나 부루마불 하우스를 진행하던 10년 전과 지금, 어떤 변화가 느껴지는가.

나는 변한 것 같지 않은데, 주변은 많이 변한 것 같다. 내가 발전이 없다면 없는 거겠지만, 난 언제나 비슷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동네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모습은 여전히 신기하다.

 

오랜 시간 신에 머물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아프로킹 파티를 처음 시작했을 때? 아프로킹 파티는 친구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시작한 파티다. 언젠가 친구가 한국에 디제이 큐버트(DJ Qbert)를 불렀는데, 그 파티가 망해서 몇 백만 원의 손해가 났다. 그 빚을 갚아줄 겸 홍대가 아닌 우리 동네에서 파티를 열어보고자 시작한 것이 아프로킹 파티다.

당시 압구정에서 쌈지가 운영하던 공간에서 처음 파티를 진행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360사운즈 최대의 행사인 360스타디움(360Stadium)에 여러 아티스트를 초청했을 때 역시 기억에 남는다. 혼자 진행해오던 오리지널 컷을 브랜드로 발전시켜서 정규 컬렉션을 발매하던 그 순간도 잊을 수 없다.

 

본인이 생각하는 구린 것이라면?

그건 느낌이다. 살면서 축적된 다양한 감이 있지 않나. 그런 게 멋과 구림을 판단하는 기초가 되는 것 같다. 물론, 그게 바뀔 때도 있다. ‘느낌’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니까.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계속 이렇게 사는 것. 거창한 목표 없이 지금보다 윤택하게 지금 이 삶을 유지하는 게 목표다. 운 좋게도 내 바람처럼 상황이 계속 좋아지고 있다. 랩을 그만두고 가사를 쓰지 않으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이런 고민이 호스트 엠씨라는 길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이전까지 디제이는 그저 래퍼 뒤에서 음악을 트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많은 엠씨가 디제이에게 영향을 받았지. 실제 제유(JU)나 소울스케이프, 디제이 렉스(DJ Wreckx), 디제이 스무드 등 많은 디제이가 엠씨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많은 조언을 해주는 선생님 역할을 했다.

하지만, 래퍼의 공연이 끝난 뒤 디제이가 노래를 틀 때 많은 사람이 공연장을 나갔지. 디제이만으로도 충분히 멋진데, 내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이름을 더욱 많이 외치면서 파티를 부드럽게 유지하는 것밖에 없더라. 지금은 호스트가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디제이를 인식하고, 그 음악 성향까지 꿰고 있다. 그들도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시대가 온 거다.

이 경험은 모두가 노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념을 주었다. 브랜드도 똑같다 내 주변 친구의 브랜드가 이름을 알리고 꾸준히 발전하는 과정을 돕고 싶다. 내가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하고 홍보한다면 그 보상은 자연스레 나에게도 주어진다.

 

지금 주목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몇 가지 꼽자면.

@Verdy 오사카 출신으로 지금은 도쿄를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 친구이자 파트너이기에 추천.

@Firstrun 블랙 로즈 NYC 캡틴, 나이키 러닝 클럽 코치. 로스타(Rostarr) 형님이 로고 작업을 해주어 알게 된 블랙 로즈 NYC(Black Roses NYC)의 캡틴 녹스 로빈슨(Knox Robinson)은 진지하고 멋지게 러닝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Ruba 뉴욕 베이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Lono3가 비정기적으로 출간하는 SYNERGISM의 VOL.3를 통해 알게 된 루바 아부 니마(Ruba Abu-Nimah)는 패션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문화 아카이브를 통해 많은 영감을 준다.

@Armesarmesarmes #360EUTOUR 중 스위스 로잔을 갔을 때 우연히 만난 친구들의 브랜드로 기존 패션 브랜드의 형식을 따르지 않고 그들만의 흐름으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Some_ware Brendan Fowler & Cali Thornill-Dewitt 멋!

@bettergiftshop 아비 골드의 Better™️ 브랜드 프로덕트를 판매하는 계정, 흡사 선물 가게 분위기를 내며 본인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빈티지 때기를 판매하는 콘셉트가 멋지다.

 

메이크원이 추천하는 식당은 많은 이들에게 큰 신뢰를 얻는다. 추천할만한 서울 식당 세 곳을 소개해달라.

명동 장수갈비 어릴 적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서 갔던 추억의 갈빗집. 예전에는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영양센터를 함께 운영했는데, 진짜배기 단골손님은 장수 갈비에서 영양센터의 메뉴를 주문해 먹곤 했다. 나중에 커서 그들의 크로스 오더를 꼭 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지만, 지금은 따로 운영되고 있어 다시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다. 오랜 시간 영업을 중단했으나 현재 더욱 깔끔한 모습으로 영업 중!

홍대 개미집 부산에서 360사운즈 파티를 진행했을 때 발란사(Balansa)를 운영하는 김지훈의 소개로 알게 된 해운대의 식당 개미집. ‘낙곱새’라는 미묘하고 입에 착 붙는 메뉴 이름과 전골과 볶음 사이의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맛 때문에 꾸준히 부산을 가곤 했지만 이젠 홍대에서도 그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메뉴에 삼겹살을 추가하며 꿈의 메뉴가 완성되는 듯했지만, ‘낙곱삼’은 너무 느끼하다는 이유로 주문하지 않는다.

정동길 덕수정 사람마다 제육볶음의 취향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함바집 스타일의 제육볶음과 삼치구이를 함께 먹을 수 있는 식당. 식당 분위기가 조금 아쉽지만, 정동길, 시립미술관 그리고 덕수궁을 산책하며 위로받을 수 있다.

Make-1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진행 / 글 │ 오욱석
사진 │오세린

*해당 기사는 지난 4월에 발행한 VISLA Paper 4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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