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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HISTORY 101: 시대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과 아이템

101 수업: [미] (대학의) 기초 과정의, 입문의, 개론의; 초보의, 기본이 되는 수업


현대 사회에서 현명한 소비자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홍수처럼 넘쳐나는 사방의 광고와 유명인의 패션, 금세 바뀌어 버리는 트렌드의 유혹까지. 물론,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의복생활이 더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이나 유행에 의존해 소비한다면, 의복의 제대로 된 이해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얼마 지나지 않아 질려버리기에 십상이다. 옷을 창작한 디자이너의 생각과 브랜드의 철학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특정한 제품을 구매한다면 당신의 옷장은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로 가득 찰 것.

이는 바로 이 수업의 목표이기도 하다. ‘101’이란 숫자는 새내기 대학생이 완전히 처음 접하는 과목의 옆에 붙는 숫자다. 말 그대로 기초 수업을 의미한다. ‘히스토리 101(History 101)’은 역사가 깊은 브랜드는 물론 특정한 제품과 인물을 아우르는 수업으로 더 이상 인스타그램 속 ‘OOTD’ 태그의 참고 없이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찾을 수 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 연연하는 증거는 곳곳에 있다. 지금의 문화 기준점이 회상의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도 한몫한다. 실제 과거의 향수가 소비 심리를 끌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과거를 끌어와 현재를 조명하는 레트로 콘텐츠는 시대를 불문하고 성행한다.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를 봤던 이라면, 2015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80년대 카페’를 만들어 과거를 추억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눈에 담는 당신이 경험한 시대는 반가움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는 일종의 동경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이번 히스토리 101은 잠시 브랜드 소개를 접어두고,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의 패션 아이콘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덧붙여, 그 당시 유행한 스타일을 소개해볼 참이다.

 

CHAPTER 1: 70, 80년대, 펑크와 함께한 변화의 물결

 

펑크 룩의 창시자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 Westwood)

젊은 시절의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

펑크란 무엇일까. 70년대의 갈기갈기 찢어진 티셔츠, 높이 세운 모히칸 헤어스타일, 히피, 섹스, 파괴, 미래에 대한 불안감, 사회의 만연한 관습에 분노와 저항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해체하고, 혁신하는 펑크는 패션에서 더없이 짜릿하고 매력적인 장르다. 이에 매 컬렉션, 펑크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반영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빼놓으면 섭섭할 것. 그녀는 1970년대 런던 펑크 문화의 탄생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1980년대 이후에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개척하는 가운데 역사와 전통, 문화,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지적 탐구의 과정을 작품 세계에 표현해왔다.

그녀는 원래 영국 한 지방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지만, 말콤 맥라렌을 만나며 삶이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웨스트우드는 주류 문화에 반(反)하는 태도를 드러내고, 이를 패션으로 표출하는 힘을 배운다. 1971년, 그녀는 430 킹스 로드에서 첫 번째 숍, ‘Let it Rock’을 열었고, 파트너이자 연인인 말콤 맥라렌의 조언으로 시대를 풍미하는 디자인을 선보이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맥라렌은 당시 70년대 영국의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매니저였고, 웨스트우드가 디자인한 의상을 멤버들에게 입혔다. 이는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펑크 룩 창시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영국의 실업률은 최고조에 달했고, 이로 인한 실업청년의 울분과 반항적인 태도가 펑크 패션과 만나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냈다. 이들에게 펑크만큼 잘 어울리는 스타일도 없었을 것이다. 과연, 시대의 진정한 펑크 히로인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일부러 혁명을 일으키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왜 한 가지 방식으로만 해야 하고, 다른 방식으로 하면 안 되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 비비안 웨스트우드

1970년대, 영국 런던의 19 킹스 로드에 있던 펑크족들

 

David Bowie

뮤지션으로서 쌓은 명성과 별개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는 대중음악 속 패션이 하나의 중요한 요소임을 증명했다. 70년대 앨범 커버의 데이비드 보위, 당시 화사한 꽃무늬의 벨벳 드레스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선 모습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아마 최초의 드레스를 입은 남성 로커였을 것.

계기는 이렇다. 70년대 당시 데이비드 보위의 아내 앤지 보위(Angie Bowie)는 어느 부티크에서 옷을 고르던 중 장난삼아 자신이 입어보던 드레스를 그에게 입혔다. 예상대로 옷은 그와 묘하게 어울렸고 가게 주인은 보위에게 옷을 무상으로 줄 테니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읽어달라고 요청했다. 얼마 후 보위는 자신을 위해 ‘남성용 드레스’를 따로 디자인해달라고 부탁하며, ‘중성적인 외모’를 잘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드레스를 입은 남성 로커’의 비주얼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했고, 여왕을 타깃으로 한 콘셉트는 왕실을 심기를 건드렸다. 앨범은 판매 금지되었고, 소속 레코드사는 보위를 해고하기에 이른다. 일각에서는 그를 공개적으로 여장을 즐기는 변태적 복장 도착자로 분류했다. 소속 레코드사나 스폰서 하나 없이 만들어진 다음 앨범에서 그는 마치 로런 버콜(Lauren Bacall)과 그레이스 켈리(Grace Patricia Kelly) 같은 흑백영화 속 미모 여배우를 연상케 하는 특유의 비주얼을 전면에 부각한다. 그러나 야유와 욕설이 쏟아지는 다른 한쪽으로 어디선가, 분명 미묘한 지각 변동의 기운이 일었다. 패션계는 그 혁신의 공기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읽어내고 빠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메트로 섹슈얼’의 붐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애초에 하층 노동계급 남성의 노동가이며 고달픈 삶의 위안으로 출발한 록 음악은 태생적으로 남성적인 섹슈얼리티 그 자체였다. 60년대 중반, 비틀즈(Beatles)가 젠틀한 모드족의 전형으로 소녀의 마음을 뺏을 때, 그 반대편에서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Mick Jagger)는 “여자는 내 엄지손가락 밑에 있는 존재들”이라는 말로 원색적인 마초이즘을 뱉어댔다.

 

David Bowie – Ziggy Stardust (live 1972)

70년대의 시작과 함께 당시 무명의 로커 데이비드 보위가 선보인 파행적인 이미지는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데이비드 보위, 티렉스(T. Rex)의 마크 볼란(Marc Bolan)을 뒤이어 70년대 전반에 등장한 글램 로커는 보수적 전통 속에서 거세된 양성적 비주얼을 과장되게 표출하는 것으로 세상의 편견에 도전한다. 플랫폼 슈즈, 주름 장식의 빅토리안 스타일 셔츠, 깃털과 반짝이는 스팽글, 짙은 아이라인에 대담한 메이크업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야한 남자들의 시대. 그가 만들어낸 무대 위의 분신, “Ziggy Stardust”의 비주얼은 전통적 복장 관습의 파괴였고 그 영향은 무시하지 못할 파장으로 대중문화에 스며들었다. 무엇보다 패션이야말로 글램에 가장 적당한 장르였다. 이후 글램은 디올(Dior), 구찌(Gucci), 지방시(Givenchy),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와 같은 패션 브랜드를 홀린 영감이 된다.

‘패션’으로 손쉽게 통칭하는 트렌드의 흐름 속에서 과연 자신만의 ‘스타일’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진정한 스타일리스트는 얼마나 될까. 보위는 ‘패션’과 ‘스타일’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데이비드 보위의 인터뷰 중 일부. ‘스타일’에 관한 날카로우면서도 명확한 규정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데이비드 보위: 철학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스타일이란 ‘좋아하는 문화에 당신이 내리는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자를 하나 산다고 가정합시다. 어떤 스타일의 의자를 살까요? 왜 어떤 의자는 사기가 싫을까요? 왜냐면 당신의 집에 놓일 의자 자체가 당신과 관련된 어떤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에요. 이런 게 의자라든가 양말 같은 것까지. 심지어 당신이 데이트하는 여자나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적용되는 겁니다. 우리가 보고 고르는 모든 것은 스스로가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결국, 스타일이란 ‘각 개인이 창조하는 그 자신의 문화’라는 이야기죠.

기자: 아마도 그것이 오늘날 미디어가 패션에 집착하는 이유군요?

데이비드 보위: 그들은 패션을 ‘스타일’이라고 착각하고 있어요.

 

대퍼 댄(DAPPER DAN) 그리고 구찌 메이드 인 코리아?

80년대 다수의 래퍼가 유명 브랜드를 입는 행위는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부와 지위를 얻었다는 증표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대퍼 댄(Dapper Dan)이 있었다. 그는 구찌, 루이뷔통(Louis Vuitton), 펜디(Fendi) 등 유명 패션 하우스의 모노그램을 이용해 트랙 슈트와 오버사이즈 재킷 등 자신만의 ‘명품’ 옷을 만든 할렘 출신 재단사다. 그 당시 댄은 모든 MC의 패션 레퍼런스였다. 솔트 앤 페파(Salt-N-Pepa), 런 디엠씨(Run D.M.C),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그리고 팻 보이즈(The Fat Boys) 같은 그 시대 가장 유명한 밴드와 아티스트 모두 그의 작품을 입었다.

댄의 디자인은 단연 성공적이었지만 그가 ‘훔친’ 상징적인 로고를 소유한 패션 회사는 입장이 달랐다. 그는 루이뷔통과 구찌를 포함한 여러 패션 하우스로부터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그는 표절과 지적 재산권 침해로 유죄 판결을 받고 1992년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수년이 지난 후 현재, 다소 아이러니하게 저작권을 침해한 혐의로 댄을 법정으로 데려간 패션 하우스가 그의 스타일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구찌 2018 크루즈’ 컬렉션에서 나온 의상은 누가 봐도 대퍼 댄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그렇다, 구찌는 자신의 디자인을 카피한 디자인을 다시 카피해내며 자신들만의 모조품의 모조품을 만들었다.

 

미켈레는 표절을 향한 비난에 대응함과 동시에 대퍼 댄이 곧 구찌와 협력하기를 바라며 단지 대퍼 댄에 경의를 보낸 컬렉션이라고 밝혔다. 이후 그는 다음 컬렉션에 실제로 구찌 남성 캠페인을 통해 대퍼 댄과의 협업을 성사했다.

대퍼 댄 외 80년대 뉴욕 전역 한국인과 중국인 판매자가 생산, 판매한 가짜 구찌 티셔츠 또한 현재 미켈레의 구찌를 대표하는 디자인 중 하나다. 과거 더스트 백, 박스 등의 패키지 디자인에서 이미지를 따온 이 셔츠는 저렴한 건 물론 당시 패션 하우스 또한 아무런 대응이 없었기에 더욱 빠르게 퍼졌다. 이렇게 80년대의 ‘모조품’이 1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단지 진품을 카피한 디자인이 아닌 나름의 독창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CHAPTER 2: 새로운 시도가 가득했던 90년대

 

지금의 패션을 바꿔 놓은 헬무트 랭(Helmut Lang) | A/W 1998

1990년대는 헬무트 랭의 것이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켈빈 클라인(Calvin Klein)과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이 팝 문화의 대중성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랭처럼 스타일을 주도적으로 이끈 브랜드는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수집한 일본 데님, 페인트 스플래터, 테크니컬 패브릭, 본디지 스트랩, 생방송으로 진행한 패션쇼, 금속성 패브릭, CD로 제작한 쇼 초청장, 이 모든 것이 랭이 본인의 이름을 건 브랜드에 있던 시절에 시도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런웨이를 논할 때 헬무트 랭 1998 A/W 쇼는 빠지지 않는다. 그는 미니멀리스틱 특유의 감성으로 밀리터리 룩과 마감되지 않은 옷감 디테일을 선보였고 여느 디자이너보다 혁신적인 기술을 시도했다. 쇼는 콘크리트 벽이 돋보이는 공간에서 진행되었는데,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 웹을 통해 런웨이를 생방송했다. 이 비디오는 추후 CD로도 만들어져 배포되었다.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의 뷔욕(Bjork)

뷔욕의 스타일을 본 적 있는가.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사운드만큼이나 스타일 역시 남다른 뮤지션. 마치 지적 능력을 갖춘 외계 생명체가 지구의 옷을 입는다면 이러할까. 아이슬란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뷔욕은 매번 음악, 패션, 영화 등 분야를 막론한 다양한 콘셉트를 시도해왔다. 자신의 명성만큼이나 독특한 개성을 지닌 패션 또한 한몫했을 것. 뷔욕을 주시해온 사람이라면, 그녀의 앨범 아트워크와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의복과 커스텀의 역할 관계를 확실히 반영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를 착용한 뷔욕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오랜 친구이자 협력자인 뷔욕은 그의 장례식에서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Gloomy Sunday”를 불렀다. 뷔욕의 네 번째 앨범, [Homogenic]의 앨범 커버는 알렉산더 맥퀸의 작품이다. 그는 “Alarm Call” 뮤직비디오를 감독하며 본인의 상상력을 펼쳤다.

 

Alarm Call (Directed by McQueen)

그녀는 1994년 개봉한 프랑스의 패션쇼를 다룬 영화 “패션쇼(Pret-a-Porter)”에 출연한 바 있다. 데뷔 당시인 90년대 초반의 사진을 봐도 시대적 차이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녀는 옷을 예술로 승화하고 음악 세계와 접합하는 능력 또한 탁월하다. 시대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뛰어넘기도 해야 하는 예술가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아티스트가 바로 뷔욕이 아닐까.

 

90년대를 정의한 스타일 트리오, TLC

90년대 TLC는 전에 없던 새로운 스타일과 함께 등장했다. 1집 활동 시절 커다란 사이즈의 배기팬츠와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즐겨 입으며, 그들만의 힙합 스타일을 선보였다. 신생 스트리트 브랜드 ‘크로스 컬러스(Cross Colours)’ 제품을 즐겨 입었는데, 화려한 원색을 여러 개 쓰는 크로스 컬러스 특유의 디자인은 TLC의 생기발랄한 캐릭터와 어우러져 옷과 그룹 모두 인상적으로 보이게 했다. TLC가 큰 성공을 거두며, 크로스 컬러스의 인지도도 단숨에 올라갔다. 그룹은 에어로졸 스프레이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린 옷을 입곤 했다. 이런 그래피티 패션은 1980년대 초반 흑인 밀집 지역에서 잠시 유행하다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지만 TLC의 덕을 보며 다시 한번 대중 앞에 등장한 계기가 되었다.

 

TLC – No Scrubs

초창기에는 멤버 레프트 아이(Left-Eye)가 단연 돋보였다. 그녀는 오른쪽 안경알에 콘돔을 붙여 씀으로써 독보적인 스타일을 완성했다. 그녀가 콘돔을 붙인 첫 번째 이유는 오른쪽 눈을 가려서 자신의 닉네임을 부각하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당시 에이즈(AIDS)의 확산이 중대한 사회적 이슈 중 하나였기 때문에 질병을 예방하고 안전한 성관계를 하자는 주장을 담기도 했다. 게다가 TLC가 지향해온 스타일, 음악의 가사를 상기하면 그들은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오히려 지금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시도를 거행했다. 자신들에게 남성이란 즐거움의 원천인 동시에 계몽 대상이라며 선구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지 룩의 아이콘, 커트 코베인(Kurt Cobain)

커트 코베인의 사진은 하나같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더 없이 찢어진 청바지에 기름때가 누덕누덕 붙어있는 모습, 그는 이른바 그런지 룩의 아이콘이었다. 1980년대 하이패션과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더럽고 지저분한 스타일로 정의되는 그런지 룩은 도회적 보헤미아니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1960~70년대 히피룩의 영향을 받았다. 거리의 반항기 어린 청소년으로부터 시작한 이 하위 패션은 결국 파리와 밀라노의 캣워크마저 점령해버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남성이 쉽게 건드리지 않는 여성 문제부터 시작해 에이즈, 인종차별 문제 등 사회적 이슈를 만들 법한 메시지 역시 서슴지 않았다.

 

오늘날 ‘패션 아이콘’이란 칭호는 너무 쉽게 붙여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90년대에는 진정한 스타일 아이콘 커트 코베인이 있었다. 얼룩은 ‘그런지’라는 멋스러움으로 포장되었으며, 그의 지친 표정은 삶의 저항을 온몸으로 표현한 밴드 너바나(Nirvana)의 전성기 뒤에 있었다. 성공에 가린 커트 코베인의 이야기는 사진 속 그의 모습처럼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반항적인 성향이 무언가를 부숴버리지 않고 창작하는 데 발현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조각난 마음에서 음악이란 환풍구를 찾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척해냈다.

20년이 지난 지금 커트 코베인 특유의 과장되지 않은 스타일은 지금까지 조명을 받고 있다. 이후 다양한 패션 브랜드의 디자이너는 자신의 컬렉션에 커트 코베인과 그의 밴드 너바나에 경의를 표하는 컬렉션을 구성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타카히로 미야시타(Miyashita Takahiro)의 넘버 나인(Number (N)ine)과 더 솔로이스트(The Soloist)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타카히로 미야시타는 유스컬처와 커트 코베인이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완벽한 본보기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커트 코베인,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 데이비드 보위가 제외된 옷을 디자인하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룩북과 런웨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찢어진 패치워크 청바지와 느슨히 흘러내리는 카디건에 레이어된 체크 셔츠 그리고 커다란 선글라스까지,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CHAPTER 3: 스트리트웨어가 주도한 2000년대 초반

 

I hate the new Kanye, I miss the sweet Kanye

2000년대 초반은 베이프(A Bathing Ape)와 BBC(Billionaire Boys Club), 아이스크림(Icecream)과 같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가 힙합 패션을 주도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칸예 웨스트(Kanye West)가 있었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는 2000년대 초반 힙합 아티스트 중 가장 화려한 색을 즐겨 입는 부류였다.

2004년 칸예 웨스트는 그의 데뷔 앨범인 [The College Dropout]을 발매했는데, 이 앨범은 기존 ‘갱스터 랩’의 틀을 깨며 좀 더 익살스럽고 자아가 드러나는 스타일의 랩을 선보였다. 이 앨범은 힙합 업계의 판도를 바꿨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그 당시 칸예가 입었던 컬러풀한 폴로셔츠, 핑크 스웨터, 루이뷔통 백팩은 이전 XXXL사이즈 티셔츠와 다리까지 내려오는 배기한 청바지 스타일을 선호하던 힙합 아티스트와 거리가 있었다. 다행히 댐 대쉬(Dame Dash)와 제이지(Jay-Z)가 있는 로커펠라(Roc-A-Fella)에서 레코드 계약을 성사했지만, 그의 다소 컬러풀하고 활기찬 스타일로 힙합 거장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최근 노예제도를 두고 모호한 발언을 남기고,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를 지지하는 뉘앙스로 논란을 일으킨 칸예 웨스트. 그가 특이한 비전을 가졌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얼핏 보기에 어색해 보이는 행보 또한 결국 다 그만의 비전이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행보를 통해 증명해왔다. 2000년대 초반 그가 셔터 쉐이드(Shutter shade)라는 괴상한 선글라스를 착용했을 때를 기억하는가. “Stronger” 뮤직비디오에서 쓰고 나온 이 선글라스는 곧 모든 옷가게에 진열되었고 유행을 이끌었다.

 

‘단 한 번’을 위해 만들어진 나이키 에어 맥스 360 하이브리드 x 에어 맥스 97 “원 타임 온리”(Nike Air Max 360 Hybrid x Air Max 97 “One Time Only”) 시리즈

지금이야 역대 에어 맥스 시리즈를 섞어 놓은 하이브리드 모델을 흔히 볼 수 있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이러한 디자인이 흔치 않았다.

나이키는 97년 아웃솔 전체를 감싸는 에어 버블을 갖춘 에어 맥스 97을 출시한 뒤 2006년 에어 버블이 100% 솔을 감싸는 에어 맥스 360(Air max 360)를 새롭게 발표하며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했다. 위 “One Time Only”, 즉 ‘단 한 번’ 시리즈는 360 시리즈를 홍보하기 위해 2006년도에 출시했으며 에어맥스의 아이코닉한 실루엣 아래 360 에어 버블 솔을 결합해 태어났다.

 

스케이트보드 슈즈에서 영감을 받은 어글리 슈즈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의 스케이트 슈즈는 그 어떤 스니커보다 두꺼운 실루엣을 자랑했다. 어글리 슈즈 열풍이 무섭게 퍼지는 지금 에이샙 라키(A$AP Rocky)는 그 트렌드를 이어가며 최근 ‘LAB RAT’이라는 퍼포먼스로 위 2000년대 초반 스케이트 슈즈를 연상시키는 언더 아머(Under Armour)와의 협업 스니커즈를 정식 공개했다.

 

최근 에이샙 라키의 퍼포먼스

비디오 속 라키가 보여 준 검정 색상의 스니커는 그 소재 외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2001년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오시리스(Osiris)에서 발매한 스니커 모델 D3를 연상케 하는 협업 스니커는 이미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데이비드 보위부터 칸예 웨스트까지. 음악뿐 아니라 패션까지 눈여겨볼 지점을 던져주는 이들이다. 실제 많은 디자이너는 이전에 존재하던 패션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그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한 가지 이유를 제시해본다면, 빠르게 급변하는 세상 속 그 아무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는 미래의 또 다른 거울이 되는 게 아닐까.


글 │ 김나영
이미지 디자인 │ 이남훈
제작 │ VISLA, MU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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