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DE MODE Spin-off 옷 구매에 의미를 부여하는 영화 이야기

필름 드 모드(Film De Mode)는 ‘영화 속에서 패션이 기능하는 바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특정 장르의 구분 없이 영화와 패션의 교집합이 될 만한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함으로써 VISLA 매거진의 품격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보배 같은 기획기사였다. 약 3주 전, 여섯 번째 에피소드를 끝으로 마무리된 본 시리즈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우리 같은 바보들에게 이따금 일어나는, 옷을 사는 데 영화가 기능하는 경우를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여기에는 기존의 필름 드 모드 시리즈가 담아내었던 ‘영화 속 등장하는 복식의 의미’, ‘패션의 역사’, ‘옷을 통해 살펴보는 시대상’과 같은 교양은 전혀 없으며, 다만 일본 오타쿠들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집착과 이베이(eBay)에 서려 있는 죽은 군인들의 원혼만이… 여하튼 프롤로그를 시작해보자.

 

6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본 작품은 그야말로 모든 장면이 클래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불멸의 명작이다. 대략의 내용을 김경식 스타일로 소개하자면 아마도 첫 마디는 “때는 2차 대전, 여기 독일 수용소에 잡힌 전쟁포로 미공군 파일럿 힐츠(Hilts) 대위가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얼마나 많은 옷이 등장할지 심히 위험한 냄새가 마구 풍기는데, 그 와중에 주연배우는 사실상 섬나라 아메카지와 워크웨어 문화의 유일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이다. 모든 장면이 클래식인 만큼, 영화에서 형님이 입은 옷 대부분이 빈티지의 전설이 되었다.

 

힐츠는 미국 파일럿으로서 평상복 느낌으로 A-2를 입었고, 그렇게 게임은 끝나버렸다. 최근의 섬나라 혹은 일부 패션왕 친구들의 타이트한 A-2를 비웃는 듯한, 팔을 번쩍 들어도 될 만큼의 넉넉한 맵시는 사실상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A-2 착용 사례이리라. 후술한 토이즈 맥코이(Toys Mccoy)의 대장 오카모토 히로시(Hiroshi Okamoto)의 경우 어렸을 때 맥퀸의 A-2를 입고 싶었는데 구할 길이 없어 비슷한 재킷을 구매해 리폼을 했다고 할 만큼, 분명 누군가에게는 꽤나 엄청난 파급력을 미친 착장이다.

 

A-2 재킷 안에 입은 저 스웨트셔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평범해 보이지만 가죽 잠바를 벗겨놓고 보면 팔을 톡 하고 잘라낸 것이 꽤나 멋스럽다. 특히 무엇보다 공군의 상징인 에어 포스 블루(Air Force Blue) 스웨트셔츠가 변색되어 보라색 비스름하게 되어버린… 그 기묘한 색감이 포인트인데, 놀랍게도 실제 촬영 때 사용한 빈티지 제품이 팔리기도 했다고. 가격은 말해 뭐하겠는가

 

상의를 대충 훑었으니 순서대로 내려가면, 그다음은 바지다. 전형적인 60년대 WW2 오피스 팬츠. 실제 현행 제품보다는 뭔가 맵시가 날렵하다. 일부 아재들의 증언이나 토이즈 맥코이 등의 카탈로그에 따르면, 원래는 시대극이라 실제 오피스 팬츠를 가지고 왔지만, 맥퀸 형님께서 통바지는 별로 멋이 없다며, 저렇게 수선하셨다고 한다. 남자 중 남자인 맥퀸 입장에선 시대 고증이니 무엇보다 간지가 중요했던 것이다.

 

액세서리도 그 착장에 커다란 비율을 차지한다. 신발은 2차 대전 육군 표준 신발인 Type3 M43 서비스 부츠(Service Boots). 특히 영화 속에서 끈을 묶어 어깨에 툭 걸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유명하고, 가방은 바로 파일럿 전용 가방인 에비에이터 키트 백(Aviator Kit Bag). 형의 극 중 이름인 V.HILTS 스탠실이 멋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시계는 롤렉스 스피드킹(Rolex Speedking). 전쟁포로가 어떻게 롤렉스를 찼나 싶기도 하지만, 롤렉스의 파운더인 한스 윌도프(Hans Wildorf)는 당시 모든 영국 전쟁포로(POW)에게 “원하는 롤렉스를 골라라. 쏴주겠다”고 했단다. 잠깐 당신은 독일사람… 인가 싶으나 중립국 스위스 거주자로서 나치에 저항한 위대하신 분이라고. 실제 “대탈주”의 주역이었던 클리브 제임스(Clive James Nutting) 형님 역시, 롤렉스 오이스터 크로노그래피(Oyster Chronogaph, Ref. 3525. Case No. 185983. Made in 1941)를 찼다고 한다. 이렇게 상세한 스펙을 어찌 아냐면, 역시나 옥션에서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렸다

 

글자 하나하나 남자의 박력이 느껴지는 롤렉스 오더시트

이 중에서 실물을 구한다고 했을 때, 역시 비교적 난이도가 쉬운 것은 역시 WW2의 오피서 팬츠다. 어차피 결국은 군용 보급 바지인지라, 이베이(eBay)에서 대전 시대의 실물 제품을 썩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최적의 사이즈를 찾는 건 여간 힘든 일이겠지만, 맥퀸 형도 수선했는데 뭐… 다만 M-43 서비스 부츠의 경우 사실상 모든 워크웨어 브랜드의 복각 1순위이자 오타쿠의 성배라 실물은 좀처럼 마주하기 어려운 듯하다.

문제의(?) A-2는 일단 ‘도대체 저 때 맥퀸 형이 입은 옷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이 나오진 않은 것 같다. 다만 이스트만(Eastman) 등에서 복각할 때 공식적으로 러프웨어(RoughWear) 27752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으로 봐서 이쪽이 유력하지 않나 싶은데. 여하튼 오늘은 이베이 특집이 아니니… 몇 개의 실물 사진이나 감상해보자.

 

오리지날 러프웨어의 군납 A-2. 이렇게 놓고 보면 영화상의 옷과는 썩 다른 느낌이다

군 공장 생산품인 1756이란 얘기도 있다고 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이렇게 보니 맥퀸이 수선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

Aviators Kit Bag AN-65051

M-43 Service boots

상술한 바와 같이 수많은 브랜드가 “대탈주” 맥퀸의 복장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영향을 받았다. 이스트만(Eastman)이나 버즈릭슨(Buzz Rickson) 등에서 “대탈주” 별주의 A-2나 서비스 부츠 따위를 발매하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압권은 역시 리얼 맥코이의 창시자이자 토이즈 맥코이의 대장이신 오카모토상.

 

이쪽도 확실하게 THE ESCAPE A-2라고 명명해버린다

그러나 진짜는 여기 있다

“대탈주”로부터 시작된 브랜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아예 대탈주 시리즈를 매년 출시하고 계시다. 일단 역시나 A-2 오타쿠답게, 집요하리만큼 철저하게 A-2를 복각한다. 2005년 처음 나온 A-2의 공식 명칭부터 아예 “A-2 V.HILTS”인 이 옷의 디테일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세세한 소재의 특징이나 밀스펙 따위는 물론이거니와 영화사의 라이센스를 취득해 라벨에 헐리웃 소품실 랏(Lot) 번호까지 박아버렸다.

 

멋이 나버린다

말끔한 디자인 외에도, 영화 속 탈주로 고생하느라 여기저기 헤진 A-2를 재현해내고자 결국 할리우드 소품실에 의뢰해 빈티지 가공처리 샘플을 받아내고, 이를 통해 쿨러 킹(Cooler King)이라는 가공 버전까지 출시한다.

 

쿨러 킹, 확실히 좀 더 위험하다

가죽과 시보리에 빈티지 가공이 들어간 쿨러 킹 모델.

지독하게도 계급장 디테일은 오카모토상이 손수 페인트한다고 한다

2005년 발매 이후 최초로 리뉴얼한 버전. 소매가 바뀌고 뭐 그랬다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순서대로 가보자. 당연히 스웨트셔츠도 있다. 일반(?) 버전과 커팅 버전 모두.

 

특유의 색감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근사한 라벨과 라이센스 택은 덤 

언제나 정직한 착용 샷을 통해 우리의 지갑을 수호해주던 라쿠텐 피팅모델이지만, 이번만큼은 뭔가 예쁘다

바지. 당연히 판다. 형님들의 설명에 따르면, 색상과 원단의 조직감은 물론이고 실루엣 역시 오리지날 제품을 충분히 복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맥퀸이 입은 그대로를 재현했다고 한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도대체 어떻게 맥퀸이 입은 옷도 없는데 완벽하다 자부할 만큼 패턴을 따낼 수 있었을까 하면, 그냥 영화 엄청 돌려보고 촬영 현장 사진부터 플라이어, 잡지 광고까지 모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모아 눈으로(…) 따냈다고 한다.

 

허리춤에 달린 할리우드 소품실 택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좀 심하다 싶다

신발. 당연히 있다. 자세한 디테일을 나누기 전에, 패키지에서 이미 게임이 끝나있다

 

가방은 무려 두 종류다. 우선은 실물 빈티지의 밀스펙을 그대로 재현한 ‘V.HILTS- ORIGINAL’과, 크기를 줄이고 어깨끈을 달아 실용성을 겸비한 ‘V.HILTS’이 있겠다. 실용성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모든 밀스펙은 그대로 준수하고 있으며, 동시에 아무 실용성이 없는 할리우드 소품실 택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디테일 역시 집요하다…

그 외에도 판다. 엄청나게 판다. 힐츠가 첫 번째 아내에게 받았다는 펜던트도 판다. 왼손에 끼고 있던 두꺼운 은반지도 판다. 촬영 대기할 때 버펄로 셔츠를 입고 있었기에 버펄로 셔츠도 당연히 판다. 브랜드 이름답게 피규어도 판다. 물론 피규어도 대탈주 시리즈의 옷을 입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오카모토상이 그린 맥퀸 원화도 판다. 영화 속 맥퀸 사진이 찍힌 티셔츠 정도면 양반이고, 심지어 ‘힐츠 대위가 포로가 되기 전, 파일럿 시절에는 보통 무슨 옷을 입었을까?’라는 생각으로 지들이 만든 밀리터리 티셔츠까지 판다. 이 정도면 사실상 코스프레의 차원도 아니고, 팬카페 굿즈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실제 은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역시나 비싸다

사실 그냥 만들어 본 것이 아닌가 싶지만, 여튼 그렇다고 한다…

장난감이 우리보다 옷을 잘 입는다

 

지독하다

이 그림은 정말 가지고 싶다

여하튼 상기의 복식 자료를 토대로 모 블로그에서는, 오늘날 미 공군 출신 포로로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 아이템을 아래와 같이 요약 정리해주었다.

 

  • 짙은 갈색의 Type A-2 재킷: 앞쪽의 지퍼는 열고, 플랩 포켓이 있어야 한다.
  • 10버튼 군용 피 코트.
  • 래글런(Raglan) 타입의 헤비 듀티 스웨트셔츠. 소매는 자른다.
  • 옅은 카키색의 오피서 팬츠: 벨트 루프가 있어야 하고, 주머니 입구는 비스듬한 모양. 오른쪽 뒷주머니는 플랩이 있고 왼쪽은 없다. 밑단은 커프스 없음.
  • 갈색 스웨이드 러프아웃(Roughout) M-43 서비스 부츠.
  • 흰 양말.
  • 롤렉스 스피드킹: 스틸 케이스, 블랙 다이얼, 갈색 스트랩.
  • 왼쪽 손에 은색 반지를 낀다.
  • 메달리온이 달린 얇은 펜던트를 걸친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계신 맥퀸교 교황과

 

그 신도들

이쯤 되면 옷이라는 것이 외부 환경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수단도 아니요, 이성에게 어필하기 위한 멋내기의 수단도 아닌 느낌이다. 그야말로 오늘날 의복이란 축구 유니폼, 교회 단체 티셔츠와 같은 나의 소속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 누군가에겐 공장 잠바 같은 옷이, 또 누군가에게는 ‘저 형도 맥코이 환자구나…’라는 연대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토이즈 맥코이는 대탈주를 위한, 대탈주에 의한, 대탈주의 브랜드요, 유일무이 대탈주 코스프레 동호회인가. 당연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영감일리가 없다. 헌터(Hunter)를 비롯한 맥퀸의 다른 영화 속 제품도 찬양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바닥에서 “대탈주”만큼이나 위험한 하나의 영화를 또 지독하게 디깅하고 있는데, 이는 다음 화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글 │ 김선중
커버 이미지 │ 박진우
제작 │ VISLA, MUSINSA

*해당 기사는 무신사(MUSINSA)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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