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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s ago
INTERVIEW

Kyle Ng

무언가를 감독한다는 건 곧 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는 주변을 살피는 세심함과 흐름을 간파하는 날카롭고 넓은 안목이 필요하다. 가을이 지나가기 전,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패션 디렉터 카일 응(Kyle Ng)을 만났다.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카일 응은 긴 기간 주변에 예술적 항로를 제시해온 인물. 그리고 현재 그가 감독 중인 문화 집단 브레인 데드(Brain Dead)는 패션을 무기 삼아 세계 서브컬처 신(Scene)에 빠르게 침투했다. 뾰족하게 선 감각 때문에 껄끄러운 인물이 아닐까 싶었으나 괜한 우려였다. 멋진 것을 좋아하고 그에 관해 떠들길 좋아하는 그는 때론 이전 슈프림(Supreme)의 멋을 전파하던 편한 동네 형을, 때론 다수의 브랜드를 성공으로 이끈 디렉터의 면모를 흘렸다. 그와 편히 나눴던 한 시간 남짓한 대담. 그는 별로 숨기는 것이 없었다.

 

2016년부터 운영 중인 음반 레이블 브레인 데드 레코드(Brain Dead Records)를 먼저 다루고 싶다. 브레인 데드의 이름으로 음반 레이블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브레인 데드는 애초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의 집단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브레인 데드 레코드라는 취향 발산 수단을 만들게 됐다. 바이닐 레코드나 테잎(Tape)의 형태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내놓고 있다. 테러블 레코드(Terrible Records), 서브돔(Subdom) 등과 함께 작업을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지. 브레인 데드란 집단이 유명해진 계기는 알다시피 의류 라인 덕이지만, 우린 언제나 음악을 비롯한 타 예술 분야도 중요하게 여기며 관련 움직임에 참여하려 한다.

브레인 데드 레코드의 시작이 궁금하다.

디제이들의 믹스테잎이다. 실제로 존재하진 않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테마로 삼기도 했지. 체리스톤스(Cherrystones)나 김미파이브(Gimme Five)의 마이클 코펠멘(Michael Kopelman), 그리고 비스시츠(Biscits) 등의 아티스트가 브레인 데드 레코드를 통해 테잎을 발매했다.

 

지금까지 브레인 데드 레코드의 발간물을 보자면 딱히 금전적인 이익을 생각하고 운영하진 않는 것 같진 않다.

재미있으니까 계속하는 거지. 더군다나 브레인 데드는 처음부터 돈을 벌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아니다. 아이디어에 살을 하나둘 붙여나가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된 거다. 어떤 걸 만들고 싶다는 뜨거운 욕구가 원동력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근처에서 브레인 데드의 결에 맞는 음악을 만들고 있다면, 그 친구는 이제 우리와 함께 가는 거다. 지금까지 다져온 플랫폼으로 그의 음악을 널리 알리는 거지.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이 모여 폭발하는 시너지는 무엇보다 짜릿하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문화를 알려준 멋진 형들이었듯, 이제 브레인 데드는 어린 세대에게 우리 기준의 ‘멋진 것’을 보여주려 한다.

 

시장 반응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의류 분야와 달리 음반 레이블은 비교적 청자의 반응을 가늠하기 힘들 것 같은데.

맞는 말이다. 사실 브레인 데드의 라디오 방송을 몇 명이 듣는지도 모른다. 이게 먹히는 건지 아닌지 긴가민가할 때도 있었지. 하지만 최근의 NTS ─ 영국발 인터넷 라디오 스테이션 ─ 라이브 쇼가 그 근심을 떨친 계기가 되었다. 브레인 데드의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수백의 인파와 음악을 즐기는 분위기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더라. 브레인 데드가 의류 브랜드로 인식되는 것을 경계하던 나에게는 고무적인 이벤트였다. 오해 말길 바란다. 컨버스(Converse)와의 협업 등 새로운 분야에 진출해 팀의 영향력을 넓히는 일도 보람차고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뒷일을 생각 않고 우리가 제멋대로 벌인 일에 누군가가 답해줬다는 것. 그게 아름다운 일이다.

의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길 꺼리는 점이 흥미롭다.

내 경험으론, 패션 계통에 일하는 이들 중엔 패션이란 현상 그 자체에 사로잡혀 큰 문화적 움직임에 둔감해진 이들이 많았다. 다시 질문에 답해보자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문화에 관한 높은 이해도라고 생각해왔기에 브레인 데드는 지금같이 존재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제품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의미란 말이다. 우리는 재킷이나 바지를 만드는 일에 들어가는 만큼의 열정과 노력을 진(Zine)이나 앨범 혹은 각종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데 쏟는다. 가능한 우리가 속한 문화에 충실한 브랜드를 전개하려는 노력, 그게 바로 지금까지 우리가 여러 협업을 이뤄올 수 있었던 이유다.

브레인 데드는 나와 파트너 애드 데이비스(Ed Davis)를 일컫는 단어가 아니다. 이건 에너지가 응집된 덩어리다.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 같달까. 쉬지 않고 뛰노는 아이가 에너지를 바람직하게 발산할 방법을 부모가 교육하듯 나는 브레인 데드란 큰 힘이 나아갈 방향만 제시하고 있다. 컨버스, 도버 스트리트 마켓(Dover Street Market) 그리고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과 함께 진행한 몇 개의 사업이 그 예시겠지.

 

보통 브레인 데드는 어떤 방식으로 협업을 진행하는가. 

대중을 노린 상품을 출시하고 싶다면 우리에게 협업을 제안하지 않겠지. 브레인 데드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일이나 인물 혹은 비슷한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과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내용이 흥미롭더라도 철학이 다르면 얼마를 제시한다 해도 절대 같이 일하지 않는다. 반면에 비슷한 철학으로 운영되는 NTS가 같이 공짜 라이브 쇼를 하자고 제안하면 별 고민 없이 수락한다.

 

브레인 데드를 시작하기 전, 팜택틱스(Farm Tactics)를 운영하며 어반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를 비롯한 여러 브랜드의 디자인, 경영 등에 힘을 보탠 것으로 안다.

이전에는 많이 다른 브랜드 일에도 참여하곤 했다. 지금도 가끔 참여하지만 이전만큼은 아니다. 언급한 어반아웃피터스는 좋은 경험이었다. 힙합이나 록 음악이 그러하듯, 한 개인의 자아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맥락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내가 어반아웃피터스에서 맡은 역할이 바로 지금 시대에 걸맞는 문화적 의미를 함유하게끔 돕는 일이었다. 그들의 사업 모델에 부정적인 감정은 전혀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박리다매 사업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다음 행보가 브레인 데드였나.

그렇다. 그저 옷만 만드는 일에 싫증이 나더라. 나를 이루는고 둘러싼 것들을 표현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브레인 데드를 구상했다. 초기 브레인 데드는 지금처럼 여러 분야를 포괄하지 않았다. 의류 라인이 전부였지. 세계 곳곳의 정말 멋있는 장소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옷. 그래픽 아트를 비롯한 디자인 요소를 잘 살려 하나하나가 옷보다는 어떤 행사의 머천다이즈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어반아웃피터스가 아니라 도버 스트리트 마켓, 모호크(Mohawk General Store) 그리고 굿후드(Goodhood)를 취급 매장으로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우리 같은 아트워크를 선보이는 브랜드가 없기도 했고.

 

눈에 확 들어오는 아트워크가 브레인 데드’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트워크는 우리의 메시지를 담는 용기일 뿐이다. 덧붙이자면, 브레인 데드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나조차 정의하기 어렵더라.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니 단언하기 힘들다. 지금은 우리의 머리에서 한 번 걸러진 생각이 브레인 데드스러운 것이라 말해두겠다. 다음에 우리가 좋아하는 잼을 브레인 데드 이름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그것도 우리 같은 맛이겠지.

 

브레인 데드와 이전 운영하던 브랜드 사이의 차이를 설명한다면.

이전에 이끌던 브랜드들은 우선 아웃도어 성향이 강했다. 내가 암벽 등반을 미친 듯이 좋아하는 탓도 있다. 자연의 소재를 어떻게 기능적인 디자인과 융합할지 많이 고민했다. 어찌 됐건, 이전의 것이 옷감이나 디테일에 치중한 의류 브랜드였다면 브레인 데드는 더 포괄적인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브레인 데드가 이전의 것들과 생판 다르다는 의미는 아니다. 브레인 데드의 의류에도 아웃도어적인 디자인 요소가 많이 들어갔고 앞으로도 계속 녹여낼 예정이다. 한국의 헬리녹스(Helinox)와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다.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한 전략이 있다면.

프로모션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어차피 우리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가 아닌가. 그럼 우리들이 소개하고 싶은 삶의 방식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브레인 데드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친구들과 만드는 아트 프로젝트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브레인 데드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어지럽고 엉망진창이다. 사실 이렇게 전문가답지 않은 접근이 썩 맘에 든다. 그러면서 패턴에 빠지는 걸 경계 중이지. 브랜드가 패턴에 빠지면 소비자는 안심한다. 다음 행보가 예상 범주 안에 있으니까. 패턴이 생겨서 나쁠 건 없겠지만 우리는 그 예상을 부수는 일이 즐겁더라.

 

본인이 직접 출연 중인 TV 시리즈 ‘소셜 패브릭(Social Fabric)’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방송 덕에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많은 이를 만났는데.

어쩌다 보니 출연하게 되었다. 재미있더라고. 나와 전혀 다른 이들을 만나면 얻는 것이 많다. 한번은 일본에서 오랜 기간 펑크스타일의 옷을 만들어 온 사람을 만난 적 있는데 큰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난 아직 배울 것이 많다.

평소 어떤 방식으로 지식을 습득하는가. 

지금처럼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며 얻는 지식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아는 이야기와 그대가 아는 서울의 정보를 교환하는 거지. 세계를 돌며 수집한 정보는 결국 디자인으로 승화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San Fransisco)에서 자랐다.

어렸을 땐 힙합을 많이 들었다. E40, 2pac, 투쇼트(Too Short) 등 베이 에어리어(Bay Area, 샌프란시스코 만의 해안 지역) 출신 유명한 래퍼들이 있지 않나. 그러고 나서 펑크(Punk) 록 음악에 빠지기 시작했지. 밴드 활동도 했다. 고등학생 즈음에는 소닉유스(Sonic Youth)를 비롯한 프로그레시브 록에도 귀를 기울이며 노이즈(Noise) 음악을 비롯한 실험적인 신에도 관심을 쏟게 되었다. 하지만 엇나가거나 비행을 저지르진 않았다.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했지. 담배도 안 피우고 나이가 차기 전까진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영화가 좋아서 영상을 공부하고 로봇 공학도 독학했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모든 건 문화에 관한 공부였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를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어떤 곳인가?

여러 관심사를 혼자 파던 중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다. 멋진 작업을 하는 사람이 많아도 같이 나와서 공유할 플랫폼이 없는 샌프란시스코와 달리, 로스앤젤레스에선 확성기로 광고하듯 작업물이 튀어나오고 물 흐르듯 협업이 이뤄지더라. 뭐든 가능한 샌드박스(Sand Box)와 같은 도시에 난 푹 빠졌다. 세계 최고의 도시다. 날씨는 두말할 나위 없고.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 살 것 같다.

 

브레인 데드 집단을 이끄는 본인은 역동하는 미국 서부 신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그런 입장에서 미국 문화의 현주소를 밝혀본다면.

뭘 입밖에 내뱉든 별 상관없는 시대가 지금이다. 발언의 진위를 떠나 멋만 부릴 수 있다면 용인되는 사회지. ‘진짜’가 사라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뇌가 멈춘 것처럼 텅텅 빈 유명인들의 언행을 좇는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이 브레인 데드(=뇌사)인 거다.

 

그렇다면 당신의 브레인 데드는 어떻게 다른가.

다르다기보다는 반항하고 보는 거지. 우리의 바지나 재킷은 그저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여러 분야를 탐방한 후 확립한 우리의 정체를 녹여낸 하나의 이야기다. 나와 내 친구들뿐만 아니라, 협업을 통해 주변의 멋진 생각과 사고를 불어넣은 우리의 제품으로 소비자는 알게 모르게 점점 문화에 가까워질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발달로 유명인을 무작정 따라가는 이들이 더욱더 많아지고 있다.

인터넷은 양날의 검이고 사실 그렇게 세계관이 확실한 사람은 많지 않다. 수많은 이들이 유명인의 패션이나 발언을 입고 지지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문제는 집단을 이루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자신을 굽히고 머릿수 많아 보이는 패거리에 붙거든. 특정 브랜드의 옷을 웃돈 주고 사 입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긴 안목으로 보면 이런 현상은 생산자,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오리지날리티가 강한 스타일로 하나의 상징이 된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의 오프 화이트(Off-White)를 예로 들자. 버질이 고심해 창조한 브랜드의 진정성을 지금의 소비자가 참으로 인식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취향에 따라 누구라도 작은 집단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리고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을 묶는 매개로 쉽게는 옷이 있겠지. 나 본인도 작은 집단에 속해있다. 한국의 정식 딜러숍인 웝트(WARPED.)에서 만날 수 있는 에릭 엘름(Eric Elms)를 비롯한 내 친구들의 브랜드와 브레인 데드의 제품. 비슷한 이들이 모여 만든 작은 사회의 한 예시다.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 중 하나가 DIY(Do It Yourself) 정신이라고 타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밝힌 적 있다. 지금 로스앤젤레스의 DIY 정신이라면?

현재 로스앤젤레스의 DIY는 트랩(Trap)이다. 진짜배기 DIY. 트랩 프로듀서들은 쉬지 않고 곡을 뽑더라. 냅다 기타로 갈기고 보던 이전 펑크 록 키드처럼 지금의 소년소녀들은 방구석에서 컴퓨터를 만지며 트랩 비트를 만든다. 내가 즐겨 듣는 장르는 아니지만 매우 리스펙트한다. 하지만 DIY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지.

 

음악의 퀄리티가 좋지 않다는 뜻인가.

그건 아니다. 내가 뭐라고 나서서 판단하겠나. 트랩의 에너지는 특별하다.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의 음악을 들으면 몸에 힘이 돌지.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는 진짜 하드코어고. 집에서 DIY로 음악을 만드는 건 다 좋다. 하지만 로큰롤(rock’n’roll) 스타처럼 행동하는 점이 이상하다는 거다. 정말 록이나 펑크를 알아보고 영감을 얻은 게 아니라 텀블러(Tumblr)를 대충 훑고 얻은 지식으로 겉모습만 대충 따라 하지.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나 제이 딜라(J Dilla)는 사실 지금 세대의 뮤지션이 아니니 몰라도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조이 디비전(Joy Division)만 알면서 라이프 스타일이 펑크인 것처럼 행동하면 스스로 어색하지 않을까. 적어도 알아보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라프 시몬스(Raf Simons)가 지금의 위치에 오른 기저엔 하위문화와 청년문화에 관한 깊은 이해가 뒷받침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한남동 웝트에서 진행된 이번 컨버스와의 협업 행사 때 길가에 앉아 콘티를 그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평소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가.

지나가는 노인이 입은 조끼가 너무 멋지더라. 주변 사람들이나 기물에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아 언제나 사진을 찍어 놓는다. 그런 거지. 이 사진도 마찬가지다. 크록스(Crocs)를 신은 누군가가 이상한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쓰고 지나가던데 재미있더라고.

 

그렇다면 이번 컨버스 협업 제품의 영감은 무엇이었나.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버로스(William S. Burroughs)였다. 각종 패턴이 한데 섞인 디자인은 혼란스럽지만 아름답다. 신문 기사로 콜라주 작품을 만들었던 그를 우리가 재해석한 결과지. 간단하게 아트워크만 쓱 집어넣고 말았으면 편했겠지만 이번엔 꼭 윌리엄 버로스의 작품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픽 아트로 매 제품 이목을 모으는 브레인 데드다. 지금 눈 여겨봐야 할 그래픽 디자이너를 꼽는다면.

내 파트너 에드가 최고다. 가시우스(Gasius)도 정말 멋지지. 마지막으로 인물은 아니지만, 드리퍼 월드(Dripper World)라는 뉴욕의 티셔츠 매장. 각종 언더그라운드 밴드를 위해 정신 나간 아트워크를 만들더라.

 

브레인 데드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혼돈이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의 새로운 도버 스트리트 마켓 팝업 행사를 준비 중인데, 플라스틱으로 주조한 코뿔소와 캥거루에 우리 제품을 박아 넣을 생각이다. 우리의 이전 행보로 이번 팝업도 펑크스타일이겠거니 지레짐작한 이들의 예상을 부수고 싶다. 혼란스러움이 우리 미래의 중심이 될 것이다. 앞서 말한 잼도 출시 임박이고 움직이는 쓰레기통도 곧 만나볼 수 있을 거다. 아, 비누와 향도 구상 중이다.

 

릴 웨인(Lil Wayne)과도 협업해서 티셔츠와 디지털 앨범을 내놓은 거로 안다.

릴 웨인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든. 나쁘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끝나자마자 바로 다른 음악 발매 준비에 착수했다. 뭔가 성공을 바라는 브랜드가 밟는 당연한 순서를 걸어본 느낌이었지.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릴 웨인의 트럭핏(Trukfit)과 협업했다면 재미있었을 텐데.

하하. 그러게 말이다.

 

바이닐 레코드를 열심히 모은다고 들었다.

개인적인 취미다. 여행 다닐 때마다 한가득 사 오거나 디제이 일정이 있을 땐 미국에서부터 끙끙대며 가져온다. 무겁지만 그 무게가 마음에 든다. 음악을 몸으로 즐기는 느낌이랄까. 오해 마시길. 난 실력 있는 디제이가 아니고 비싼 레코드를 모으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즐기는 사람일 뿐이다. NTS에서 쇼를 진행할 땐 100% 레코드로 해결한다.

 

이번 서울에서 구매한 바이닐 레코드가 궁금하다.

푸샤 티(Pusha T)의 신보. 하하. 독일에서 제작했다길래 신기해서 샀다.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이다. 마음의 안식은 어디서 찾나.

바쁘고 여유 없을 때가 가장 편하고 안심하는 시기다. 불편해야 편하더라고. 농담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편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하나를 이뤘을 때 안주하지 않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 오늘 컨버스와의 협업 신발이 전부 팔렸다고 해서 손뼉 치고 헤실거리면 딱 거기까지인 거다. 언제나 목표는 다음 단계의 준비로 이어진다. 매출 달성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더할 말이 있나.

잘 모르겠는데? 한국 사랑해요.

Kyle Ng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Brain Dead 공식 웹사이트


진행 / 글 │ 최장민, 홍석민
사진 │ 백윤범
협조 │ 컨버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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