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Pollination 이곳저곳

이한민과 안대근은 때로는 스케이터로, 때로는 필르머로서 작업물을 선보였다. 조용하지만 결코 식지 않는 열정을 품은 서울의 스케이터 안대근은 쏟아지는 그의 푸티지(Footage)가 앞선 수식어를 증명한다. 이한민은 ‘핫미네이터’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결코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로컬 스케이터의 뒤를 따라간다. 2018년 초부터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반스(Vans)와 함께 장편 스케이트보드 필름을 준비한 둘은 오는 지난 11월 3일, 시사회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Cross-Pollination 이곳저곳”

프로젝트를 간단히 소개해달라.

이한민: 정식 명칭은 “Cross-Pollination 이곳저곳”이다. 보드 타면서 아트워크를 만드는 친구 김준영이 꽃과 벌을 주제로 삼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꽃과 벌이 서로 필요한 관계인 것처럼 스케이터와 필르머 역시 함께해야 빛을 볼 수 있기에 꽃과 벌로 비유했다. 그리고 이민혁이 크로스 폴리네이션(Cross-Pollination)이라는 단어를 찾아 추천해주었다. 제목 뒤에 붙은 ‘이곳저곳’은 내가 하도 많이 돌아다닌다고 해서 친구들이 붙인 이름이다.

안대근: 꽃이 스스로 수분하는 게 아니라 벌의 도움을 받아 수분하는 데 의의를 두고, 필르머와 스케이터의 관계를 대입했다.

 

황지석이 완성한 지난 반스 풀 렝스 필름 “계속계속”과 다른 점이라면.

이한민: “계속계속”은 개인 파트 스케이트보딩 위주의 필름이었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스토리에 치중했다. 주인공인 안대근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안대근: 스케이터들이 꽃이 되고, 필르머가 벌이 되는 것. 그 둘이 공생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이는 교차 편집과 아트워크로 드러난다.

 

영상에 삽입한 애니메이션 역시 새로운 시도의 일부인가.

안대근: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처음과 마지막 부분에 삽입했다.

이한민: 애니메이션은 신중히 써야 한다. 스케이트보드 필름에 자칫 잘못 사용하면 오리지널리티를 해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프로젝트에 돌입했나. 이한민은 아마도 반스와의 첫 작업이 아닐까 싶은데.

이한민: 안대근이 나에게 2월 말쯤 반스 영상을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서류상으로는 4월부터인데, 마음이 급해서 추울 때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클라이언트와 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어떤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 어떤 기분이었나?

이한민: 촬영할 때 딱히 부담감은 없었다. 매일 안대근과 붙어 다녔다.

 

안대근은 왜 이한민을 추천했는가?

안대근: 처음부터 반스에서 그렇게 제안했다. 그리고 사실 이전부터 브랜드와 별개로 함께하자고 이야기했는데, “계속계속” 촬영 스케줄로 바빠져서 시기를 놓쳤다.

 

둘 다 스케이팅과 필르밍을 모두 소화한다는 공통점이 흥미로웠다. 이번 촬영을 통해 서로의 스타일을 새롭게 확인한 부분이 있다면?

이한민: 각자의 스타일이 명확하기에 타협점을 고려했다.

안대근: 내가 프로젝트의 필르머인 이한민과 카메라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넘어가는 장면이 있다. 아마 내가 직접 촬영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온 재미있는 파트가 아니었나 싶다.

이한민: 안대근은 책임감이 강하고 체계적이다. 타고 싶은 스팟이 있으면 우선 탐색하고 직접 가서 시도하고 성공해낸다. 준비성도 철저하고 열정도 많다. 이런 스케이터는 정말 드물다.

안대근: 이한민의 거친 촬영 스타일이 부러웠다. 괜히 ‘핫미네이터’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는 걸 촬영하면서 깨달았다. 스케이터가 트릭을 성공할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필르머로서 이한민은 조금 더 특별한 느낌이었다. 조금 다른 얘기로, 그는 서울에 사는 나를 픽업하기 위해 분당에서 차를 끌고 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심지어 당일치기로 대전에 다녀온 적도 있다. 부지런히 돌아다닌 덕에 많은 클립을 찍을 수 있었다.

이한민: 원래 영상 제목을 ‘아반떼’라고 지으려고 했다. 이번 촬영을 진행하면서 30,000km를 주행했거든.

 

전작의 필르머 황지석과 이번 프로젝트의 필르머 이한민의 차이라면?

안대근: 황지석이 묵묵한 스타일이라면, 이한민은 끈질기게 붙어있는 타입이다. 보통 필르머가 먼저 지치는데, 이한민과 촬영하면 스케이터가 먼저 지친다. 그의 에너지 덕에 탄생한 클립이 많다.

이한민: 큰 프로젝트는 처음이었다. 노련미가 부족하다보니 어려움을 겪었지.

 

프로젝트의 필르머로서 이한민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싶었나?

이한민: 안대근과 안대근의 친구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반스 코리아 스케이터들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을 작업한 고아림이나 그림을 그리는 김준영, DTSQ의 김수현처럼 멋진 활동을 하는 주변 친구들을 더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DTSQ의 김수현이 파트 BGM을 만든 것인가?

안대근: 내 파트는 김수현이 다 만들었다. 기존 외국 음악보다 주변에서 활동하는 로컬 뮤지션의 음악을 사용하고 싶었다. 다만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김수현을 제외한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쓰지 못 했다. 그게 아쉽다.

이한민: 쓰고 싶은 음악이 많아도 라이센스 문제가 항상 걸린다. 그래서 반스 뮤직 라이브러리 웹하드에 담긴 음악을 들으며 수시로 가편집했다.

 

김수현에게 어떤 음악적인 가이드를 제시했나?

안대근: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 맞춰주었다. 함께 상의하면서 곡을 완성했다.

 

이한민은 이번 프로젝트에 코닥사의 슈퍼 8(Super8) 필름을 사용했다. 취급이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이에 따르는 고충은 없었나.

이한민: 슈퍼 8을 쓰려면 촬영법, 업체, 스캔 등 많은 걸 공부해야 한다. 나도 양성준 스케이터와 슈퍼 8과 관련된 내용을 공유하면서 터득해나갔다. 돈과 시간, 열정이 모두 필요한 작업이지. 모든 작업이 수동이라 자칫 잘못하면 필름을 날려먹기 십상이다.

안대근: 개인적으로는 슈퍼 8으로 찍어본 경험이 없어서 너무 좋았다. 다만 필름 가격이 너무 비싸서 좀 부담됐다.

이한민: 카트리지 하나에 100불이라고 보면 된다. 하나에 3분 30초를 찍을 수 있으니 결국, 3분에 100불을 쓰는 거지.

 

슈퍼 8을 고집하는 이유라면.

이한민: 더 멋진 영상을 위해서다. 개인적인 욕심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아날로그 기종을 수집하던데.

이한민: VX-1000이 전 세계적으로 씨가 마르고 있어서 보이는 대로 사 모으고 있다. 이미 단종된 모델이라 분해와 수리까지 모두 독학해야만 제대로 쓸 수 있다. 늙어서도 이걸 쓰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신과 트릭이라면?

안대근: 두 개가 있다. 둘 다 이전부터 하고 싶은 트릭이었다. 다른 스케이터가 보기에는 어려운 트릭이 아닐 테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전부터 욕심이 나던 거라 너무 좋았다. 그날 입고 나간 옷과 신발, 날씨나 영상에 찍힌 분위기까지 마음에 들었다.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옷을 신경 쓰는 편인가?

안대근: 좋아하는 옷을 입었을 때 잘 되면 기분이 정말 좋다.

 

프로젝트를 거쳐 스케이터로서 발전한 부분이라면?

안대근: 촬영할 때마다 더 크게 움직이고 싶은 마음에 중후반쯤 되면 지치고 만다. 그러나 언제 또 이런 프로젝트를 해보겠나. 내가 성공한 트릭이 영상에 나온 걸 보면 홀가분하다. 그 기분 때문에 계속해서 트릭과 필름에 욕심을 내는 것 같다.

 

“Cross-Pollination 이곳저곳 (B-Sides)”

프로젝트에서 완수하지 못한 트릭은?

안대근: 노즈 매뉴얼(Nose Manual)을 해서 널리(Nollie)로 올라가는 트릭, 킥플립 노즈 매뉴얼 등의 응용을 시도했지만 결국 찍지 못했다.

 

스케이터로서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안대근: 스케이트보드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누군가는 올림픽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어려운 트릭을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난 남들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지 않다. 그렇게 되고 싶었지만, 한계에 부딪힌 뒤로는 나만의 것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국내 스케이트보드 신에서 나오는 결과물이 몇 년 전과 비교했을 때 더 적어진 것 같은데.

이한민: 그렇다. 필르머가 더 많아져야 한다. 열정이 있는 사람이 먼저 찍자고 이야기해야 한다.

안대근: 인스타그램으로 쉽게 찍어 올릴 수 있으니 결과물이 쉽게 소비된다고도 느낀다. 시대가 변하는 것 같다. 시장이 작은 이유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더 열심히 해도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주변에 멋진 작업물을 내는 동료가 있다면?

이한민: 곽경륜이다. 데드맨 콜링(Dead Man Calling)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결과물을 잘 내고 있다.

안대근: 데드맨 콜링의 곽경륜. 그리고 데일리 그라인드(Daily Grind) 조광훈과 신준섭.

 

이번 프로젝트가 둘에게 남긴 것을 말해달라.

안대근: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 음악, 비디오, 아트워크 그리고 지금의 인터뷰까지 많은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순수하게 스케이트보딩이 좋아서 시작했지만, 다양한 문화가 한 데 묶일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다.

이한민: 배움.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서 쌓이는 노련함. 실수한 걸 반복하지 않는 것. 뭘 하든지 성취감은 중요하다. 또한 이걸 발판삼아 더 좋은 걸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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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글 │ 최장민
사진 │ 배추

*해당 인터뷰는 지난 10월에 발간된 VISLA Paper 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 및 정기구독을 통해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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