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DELIGHT – GUILTY PLEASURES

길티 플레저(Guily Pleasure). 떳떳하지 못한 쾌락, 유희. 여기서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은, 불법적이거나, 도덕적인 기준의 죄책감이라기보다는 성숙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일종의 계급처럼 치부하는 사회적인 통념의 기준에서 유치하거나 촌스러운 나머지 들키고 싶지 않은 은밀한 취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남에게 자랑할 만한 장면만을 보여주고, ‘제2의 멋진 나’를 창조해나가며 모두가 인플루언서를 향해 달리는 시대인 만큼, 과거보다 더 자극적인 각자의 길티 플레저가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 자신이 그리는 ‘돕한 나’를 위한 인스타그램 타임라인 뒤에는 불알친구들과도 공유할지 말지 고민되는 인간적인 모습의 나 자신이 있을 것. 쿨가이로 살고 싶은 VISLA 친구들에게 “네 길티 플레저는 무엇이냐?” 질문을 던졌다. 생각보다 추한 것들이 나오지 않아 조금 아쉽지만, 그들의 수줍은 고백에 귀 기울여보자.


세계과자할인점 

이 기획을 빌어 세계과자할인점의 감동을 꼭 나누고 싶었다. 사실, 올여름까지만 해도 세계과자할인점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편협했음을 고백한다. 건조한 네이밍,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드나드는 여고생 무리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으니까. 그러나 햄버거 하나 사 먹을 돈도 남아 있지 않았던 어느 출출한 하굣길에, 세계과자할인점은 궁색하지만 최고 효율의 군것질을 가능케 해주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당장 집 근처 세계과자할인점을 방문해보길. 세계 곳곳, 수천만 코흘리개의 엄격한 심사를 거친 최고의 진미를 대충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맛볼 수 있다. 국산 과자 위주로 판매하는 편의점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리그라는 거지. 어차피 군것질이라는 것이 본디 포만감을 위한 것이 아닌, 심심한 입을 달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생각해볼 때 세계과자할인점은 그야말로 딱 준수한 양의 씹을 거리를 제공해준다. 그동안남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이런 저렴한 가성비를 멀리해왔지만,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은 땡전 한 푼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맛을 갈구한 우리 청년들의 자랑스러운 해답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 정도 수준의 큐레이션을 시시하다고 치부하기엔 나도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분식점을 기웃거렸던 초등학교 시절로부터 그다지 멀리 와 있지 않다

잡소리가 길었지만, 지금도 주머니 사정과 입맛이 비례하지 않는 날에는 종종 세계과자할인점을 찾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가게를 들어서는 내 발걸음이 당당하리라 생각하진 말길. 이게 뭐라고 가게에 들어서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을 보면 아직은 내게길티 플레져임이 분명하다. 무의미한 편견과 허영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2019년이 되길.

김용식(Contributing Writer) 


파워풀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르한 목사의 너절한 설교쯤으로나 치부하던 갖가지 경영서가 어느 날부터 내 손에서 떠나지 않던 건 일종의 절박함에서였을까. 잡지라는 이름에서 떠올릴 수 있는 일련의 일들을 누군가에게서 배운 적 없듯 돈을 버는 법 또한 스스로 겪어내야 했다. 먼저 넘어야 할 산은 표지부터 너무나도 엄숙해서 드러누운 채 읽기 죄스러운 경영서의 첫 장을 넘기는 일이었다. 피터 드러커, 레이 달리오, 리드 해스팅스와 같은 인물을 내 생애 접하는 날이 올 줄 상상이나 했을까. 뒤틀린 야망에 사로잡힌 작자들이나 성서처럼 달달 왼다고 믿어왔던 경영의 원칙. 내게는 왠지 께름칙한 과대포장 광고처럼 느껴졌단 말이다. 성과라는 말에, 이성이라는 말에, 합리성이라는 말에 기꺼이 자신의 생을 내어준 야심가들과는 어딘지 가까워지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성과와 원칙이라는 단어가 빼곡히 적힌 책을 집어 든 그때부터인가 오욱석과 백윤범이 몇 해 전에 진행한 제프 스테이플 인터뷰가 종종 머리에서 맴돌았다. “직접 티셔츠나 모자 몇 개를 만들어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20년 동안 브랜드를 유지한다는 생각은 못 해봤겠지. 스테이플을 시작하고 5년이 지났을 때, 여러 비즈니스 전문가가 위기를 이야기했다. 그들의 말은 대부분 옳다. 90%는 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10% 정도만이 통과한다”.

VISLA가 곧 여섯 번째 생일을 맞는다. 나는 여섯 해 동안 90%의 불안과 10%의 기대가 교차하는 감정 상태로 지나온 것이다. 속을 갉아먹는 것인지 들뜨게 하는지도 모른 채로. 그렇다고 이게 특별한 삶은 또 아닌 것이 나처럼 일반적인 사회질서에서 조금은 비껴나 혼자서 또는 동료들과 함께 철없는 궁리 끝에 뭐 하나쯤 만들어보려는 꿈을 품어본 이들이라면 5년쯤 지날 때 비슷한 감정을 겪었을 거라 짐작한다. 이쯤 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칠지도 모른다. 문화인지 예술인지 그것도 아니면 개똥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남들에게 여간 적지 않은 피해를 끼치며 꿋꿋이 이어가는 그 어처구니없는 창작을 대체 왜 하고 자빠졌는지 말이다. 그러다가 지쳐 나가떨어지는 이들도 여럿 있고, 근근이 버텨가는 이를 보며 나와 같다고 위안 아닌 위안 삼다가도 어딘지 민폐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이거 좀 위험하겠다 싶더라. 그래서 숱하게 떠오르는 핑계를 잠시 뒤로하고 자리에 각 잡고 앉아보자는 일념 하나로 집어 든 것이 이름부터 어딘지 우스운 ‘파워풀’이라는 책. 허탈하긴 하지만 결국에는 그게 지금 내 현실이었다.

나는 올 초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묻거나 책을 찾아가며 앞으로 우리가 업계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원칙을 적었다. 우선 몇 달간 숫자와 친해지려 했다. 손익계산서, 영업이익, 방문자, 노출, 도달. 끔찍하게도 보기 싫었던 그 숫자는 현재의 기초체력을 진단해주었다. 안개 낀 풍경이 비로소 또렷한 사진처럼 보이는 걸 보아하니 그래도 정신은 좀 차린 모양이었다. 솔직하게 인정하자. 나는 분명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진정성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인가? 믿었던 유연함의 실체는 연약함이었나? 그런 와중에도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이 숫자만큼은 정직하다. 더는 부푼 환상에 가슴 벅찰 것도 없으며 막연히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간절하면 이루어질 것이라고들 하던데, 가까스로 붙잡은 지푸라기가 그토록 보기 싫었던 숫자라니.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는 얼마나 더 절박할 것인가. 나는 양가적인 감정 상태를 하나로 정리했다. 이루어지리라 믿었던 것들. 그건 그저 믿는 것일 뿐. 이제 직접 손에 쥐어보기로 했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당신은 무엇을 이뤄냈는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 다시 내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 냉소다. 그렇다면 지금 시작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권혁인(Editor-In-Chief) 


김성모의 용주골 유니버스

대본소 공장장의 아버지. 한때 인터넷 문화의 한 획을 그은 병맛의 원조…라지만 최근 ‘고교생활기록부’의 적나라한 트레이싱이라든지 네이버 웹툰 역대 최하평점이라 해도 무방한 ‘돌아온 럭키짱’ 등을 생각해보면 사실 짜친다는 말조차도 과찬이리라. 문화의 최전방에서 근사한 것들을 소비하는데도 24시간이 모자란 한남동과 서교동의 멋쟁이들은 그 존재조차 알 리 없겠지만, 실은 업계 탑 프로스펙트 기안84조차 “나 혼자 산다” 중 만화방에 갔을 때 가장 먼저 꺼내 드는 ─ 물론 모자이크 처리되었다 ─ 모두가 보았지만 그 누구도 본 척하지 않는 언더그라운드의 숨은 명작이 있으니 바로 ‘용주골’ 시리즈다. 단순히 그 옛날 근성체를 위시로 한 병맛 따위의 겨드랑이나 가랑이 냄새 맡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성매매금지법으로 초토화된 용주골,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그들과 그녀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겠다는 꽤나 결연한 의지를 담아 시작하지만, 실제로 성모 형님이 담아내신 용주골과 창녀, 삼촌들의 삶이란… “나르코스” 속 살벌한 카르텔을 소꿉장난으로 만드는 그야말로 오늘날 인간 하드보일드의 정점이다. 이 만화에서는 굳이 경찰을 매수할 일도 없다. 경찰이 없으니까. 정치인? 군대? 는커녕 일단 일반인은 택시기사가 유일하다. 오직 조폭과 창녀, 택시기사만 존재하는 이 김성모 유니버스의 가장 무서운 점은 모두가 알다시피 끝이 없다는 것. 이름부터 삭막한 ‘허벌창(중3)’이 창녀 엄마의 원수인 아버지(로 추정되는 누군가)를 담그러 가며 산뜻하게 출발하는 ‘용주골 비하인드’는 10권짜리 ‘용주골’의 비하인드 주제를 담은 작품으로 차수로만 700화가 넘어간다. 4일에 걸쳐 식음을 전폐하고 700여 화를 섭렵한 뒤 이제 이 지옥으로부터 해방되나 했더니, 용주골 시리즈만 무려 15개란다.

이것이 진정한 마초의 길, ‘용주골 깡패’, 재즈의 선율 속에 뜨거운 욕망이 전율한다, ‘용주골 블루스’, 이 시대 최고의 스타일은 무엇인가, ‘용주골 강남스타일’ 그리고 ‘용주골 쌍건달’, ‘용주골 소매치기 탑걸’, ‘용주골 살인귀’, ‘용주골 2008’… 거기에 비슷한 느낌의 ‘빨판’과 ‘청송여자감호소’ 따위의 스핀오프까지 보고 있노라면, 사실상 인간으로서 지금까지 쌓아온 도덕이니 인격이니 하는 모든 세계관이 깡그리 무너지는 느낌이다. 물론 그 사이에 숨겨진 성모 성님의 병맛은 여전하다. 주인공의 이름은 장마다 바뀌고, 한국 조폭은 일본 용병을 ‘조센징’이라고 부른다. 이토록 강렬한 만화이건만, 유사 이래 그 누구도 지하철에서 펼쳐보지 않은 만화. 아무리 즐겁고 짜릿한 장면이 나와도 인스타그램에 올릴 장면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그 만화. 그럼에도 누군가 한국형 범죄 드라마를 만들겠다면, 고개를 들어 파주를 보라고 강력히 권하겠다.

김선중(Contributing Writer)


Travel Thirsty

나는 물고기를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물고기를 무서워한다. 물고기가 있는 바다나 물에는 들어가지 않고, 수족관조차도 꺼린다. 요리를 좋아하지만, 생선 요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물고기를 만지질 못하니까. 실제로 익힌 생선은 먹지도 못한다. 그래도 물고기 요리법은 궁금하다. 물고기를 요리하는 여러 채널이 있지만, 이 채널을 무엇보다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말도 안 되게 리얼하기 때문. 이 채널은 세계의 거리 음식을 다루며, 솜사탕부터 형형색색 물고기, 뱀까지 해체와 조리 과정을 모든 걸 그대로 보여준다.

길티 플레저에 웬 요리 이야긴가 싶겠지만, 내게는 이것이 요리 비디오라는 점은 꽤 중요한 요소다. 어쨌든 이 시리즈, 특히 생선 요리는 살아 있는 물고기나 어패류를 죽인다. 즐거움을 위해 보는 동영상에서 편마다 최소 하나의 생명이 사그라진다. 주로 도마 위에서 해체되고, 여러 방법을 통해 물고기는 재조립된다. 그러다 문득 ‘만약 이게 생선이나 어패류가 아닌, 소나 돼지였다면 나는 이 영상을 봤을까?’라는 물음이 생겼다. 만약 그랬다면 아마 안 봤을 거다. 내가 이 비디오를 유심히 보게 된 건 내가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생선이 너무나도 쉽게 죽어 나가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 발짝 멀리 떨어져 비디오로 보는 가장 싫어하는 생물의 죽음. 그냥, 갑자기 단두대와 사형수를 구경나온 시민의 심정이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심은보(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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