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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s ago
INTERVIEW

BALMING TIGER

이제는 서울, 길거리 어디서든 힙합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과연 래퍼들이 꿈꿔오던 세상일까. 그러나 힙합이 대중화된 만큼, 평범해서는 신(Scene)에서 살아남기가 불가능에 가까우니 마냥 낭만이 넘치는 시대라곤 할 수 없겠다. 디지털 미디어 시장이 거대해지면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아이콘을 만들어내는 일이 선택 아닌 필수가 된 시점, 과거보다 삭막해졌다면 더 삭막해졌지 덜하진 않은 듯하다. 이렇게 아등바등한 한국 힙합 신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바밍타이거(Balming Tiger) 크루는 독창적 비주얼과 음악으로 어느새 입지를 굳건히 다지는 중이다.

바밍타이거는 현재 프로듀서이자 디렉터 산얀(Sanyawn)과 비트메이커 어비스(Abyss), 래퍼 병언(Byung Un), 필르머 잔퀴(Jan’qui)까지 네 명의 원년 멤버를 중심으로 래퍼 오메가 사피엔(Omega Sapien), 싱어송라이터 소금(Sogumm), 비트메이커 언씽커블(Unsinkable)을 새로 영입하며 독자적인 세계를 넓히고 있다. 우리는 바밍타이거 크루를 마주하고 이들이 지나온 과거 그리고 미래에 관해 물어볼 수 있었다.

 

만나서 반갑다. 당신들은 각자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오메가 사피엔 : 바밍타이거에서 막내와 영어 랩을 담당하는 오메가 사피엔이다. 도쿄에 있는 게이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 중이다.

병언 : 며칠 전 군악대 시험을 망친 백수 병언이라고 한다. 주로 랩과 노래를 담당하고 있다.

언씽커블 : 반년 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언씽커블이라고 한다. 프로듀서와 디제이를 겸하고, OSIXTWO란 크루에서도 활동 중이다.

산얀 : 바밍타이거의 디렉터이자 프로듀서 산얀이라고 한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에 다니다가 휴학했고, 곧 자퇴할 퓨처 자퇴생이다.

소금 : 바밍타이거의 싱어, 권소희다. 현재 소금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에 참여하지 않은 어비스는 어떤 사람인가?

산얀 : 우리의 기둥 같은 사람. 처음 바밍타이거가 탄생했을 때는 각자 튀려고 하는 성향이 강했다. 어비스는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었다. 음악적 부분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견해차가 생겼을 때도 항상 화해시켜주었다.

병언 : 굿 바이브 담당.

 

바밍타이거는 어떤 계기로 결성했나. 처음 바밍타이거를 구상했을 때와 현재의 이미지에 차이가 있다면.

산얀 : 나와 병언, 어비스 그리고 노아이덴티티(No Identitiy)가 신선한 음악을 선보이고 함께 즐기고 싶어서 결성하게 됐다. 그 취지는 아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선한 음악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크루이자, 레이블 혹은 채널이자 플랫폼이 되고 싶기도 한 재밌는 네트워크다.

 

유쾌한 크루라는 콘셉트도 처음부터 기획된 것인가.

산얀 :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병언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재미난 에너지가 잘 녹아들며 결정적으로 유쾌한 콘셉트가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병언의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디렉터 산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 같은데.

산얀 : 병언은 원래 포크와 기타 치는 이미지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캐릭터가 워낙 유니크했다. 그래서 랩을 한번 부탁해봤더니 정말 멋있게 하더라. 이때부터 래퍼의 이미지가 구축된 것 같다.

 

래퍼로서 숨겨진 재능을 어디서 찾은 건가?

산얀 : 병언의 유튜브에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These Walls”처럼 유명한 트랙을 커버한 곡이 몇 개 있었다. 그걸 듣고 반해버렸지. 일단 병언이 랩을 할 때 저음으로 변하는 톤이 멋진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특별히 전달한 가이드가 있다면.

산얀 : 원체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별도의 가이드는 필요 없었고, 보이스 톤과 앨범 주제에 관한 이야기만 간단히 나누었다.

 

멤버 모두 각자의 카테고리를 가지고 활동하는 영역이 있다. 그런 이들을 바밍타이거 하나로 묶으면서 발생한 애로사항은 없었나?

산얀 : 개성이 다 달라서 우리가 하나의 색깔을 가지고 활동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항상 목마른 사람들이니 바밍타이거의 음악을 많이 들어주길 바랐을 뿐이다. 그리고 대중의 피드백을 원했다.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각자의 목소리를 전 세계에 들려줄 수 있는 크루를 만들고 싶었다. 비전과 목표만 일치하면 묶어내는 건 일도 아니다.

 

산얀은 디렉터로서 프로모션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산얀은 바밍타이거를 알리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는가?

산얀 : VISLA나 하입비스트처럼 독자적인 여러 플랫폼과 친해지고 싶었다. 동시에 딩고(dingo) 같은 대중적인 플랫폼에도 노출되고 싶어서 관심병자처럼 노력했다. 다행히 독자적인 미디어 플랫폼도, 대중적인 플랫폼도 모두 잘 받아주었다.

 

딩고를 통해 발표한 트랙 “I’m Sick”의 뒷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그들과는 어떻게 연락이 닿았나?

산얀 : 딩고 PD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그래서 만났다. 원래는 병언 위주의 다큐멘터리만 찍을 예정이었는데, 하다 보니 같이 음원을 내자고 해서 “I’m Sick”을 딩고 채널로 릴리즈했고, 뮤직비디오도 찍게 됐다. 사실 처음 논의한 내용은 뮤직비디오라기보다는 라이브 클립이었는데, 아이디어를 나누다 보니 BJ를 주제로 한 뮤직비디오가 탄생했고, 라이브 클립과 병언의 다큐멘터리도 나왔다. 당시 이야기했던 게 전부 결과물로 나왔다.

 

병언은 해당 뮤직비디오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혹시 부담을 느끼지는 않나?

병언 : 친구들과 즐기면서 음악을 하고 있으니 큰 부담은 없다. 지금 이 활동에 목을 매지는 않는다. 이제는 일상에서 나를 알아보는 이들이 사진을 함께 찍자고 말한다. 처음엔 즐거웠는데, 계속 찍다 보니 의무가 되는 것 같아서 고민이 생겼다. 뮤지션에게는 이것도 일이겠거니 싶더라.

 

병언은 현재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데, 복무 기간에 대중에게서 잊힐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나?

병언 : 아니. 지금 이룬 것들이 제대 후 다시 음악을 할 때 좋은 이력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름 소소하게 음악 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너무 열정적으로 음악에 매달리지 않아도 괜찮다.

 

Balming Tiger – I’m Sick (M/V)

어린 세대일수록 유튜브에 머무는 시간이 긴데, 이를 향한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I’m Sick”에서 차용한 BJ 문화, 나아가 유튜브 세대를 실제 어떻게 바라보는가?

산얀 : 나는 1인 크리에이터를 좋아한다. 따로 챙겨보진 않지만, 웹에 많이 떠돌아다녀서 TV보다도 많이 보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 시대 아이콘인 철구가 우리 영상을 보고 언급해줘서 좋았다.

병언 : 뮤직비디오를 통해 한국 문화, 특히 바이럴 비디오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관해 고민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화제가 돼야 실질적인 조회 수가 오르지 않나. 촬영하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려는 의도로 BJ 문화를 풍자한 건가?

산얀 : 아니다. 그냥 뮤직비디오 미팅에서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I’m Sick”이라는 결과물이 나왔을 뿐이다.

병언 : 자극적인 방식으로 가려고 했다면, 내가 프로였다면 차라리 철구를 디스했겠지. 나는 아마추어이기에 그냥 내가 본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오메가 사피엔의 뮤직비디오 “Let’s go Beam”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오메가 사피엔 : 나는 딱히 예산도 엔지니어도 없는 상황이라 유튜브에서 비트를 20달러 주고 다운받아 “Let’s go Beam”을 만들었다. 근데 이 데모 덕에 뮤직비디오 제작 감독도 알게 되었고, 나중에 콜드(Colde)에게 피처링 제의도 왔다. 어떻게 보면 바밍타이거와 연결된 것도 “Let’s go Beam” 덕이다.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 같은 플랫폼이 독립 뮤지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편인가?

오메가 사피엔 : 인디 뮤지션이라면 사운드클라우드와 유튜브 외에는 자신의 음악을 소개할 수 있는 곳이 딱히 없다고 느끼지 않을까. 유일하게 세상에 내 목소리를 알릴 수 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이제는 기획사와 PD를 통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유명해질 수 있다.

언씽커블 : 시대가 변하며 생산하는 방식과 소비하는 방식이 테크놀러지에 맞춰 변하는 것뿐이다. 과거에는 LP와 CD를 사야 했지만, 이제는 변화한 기술에 맞게 제작하고 소비한다.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곡을 만들어서 사운드클라우드, 유튜브에 올린다. 그 속에서 빛을 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오메가 사피엔 : 음악뿐 아니라 비디오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미디어를 활용해야 한다.

 

잔퀴는 지금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는 어떤 인물인가?

산얀 : 잔퀴는 원래 음악 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자기가 속한 크루에 영상을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독학으로 영상을 공부했다고 한다. 이제는 노래보다 영상으로 더 유명해진 아티스트다.

 

Balming Tiger – Chef Lee (M/V)

바밍타이거의 뮤직비디오 “Chef Lee”가 잔퀴의 작업이다.

산얀 : 처음에 노아이덴티티를 통해 잔퀴에게 우리 음악을 들려줬다. 그랬더니 징그럽게 재밌는 콘티를 던져주더라. 그 이후로 잔퀴도 크루에 합류했다.

 

추후 공개될 잔퀴의 작업물이라면?

산얀 : 외장 하드에 있던 촬영물이 다 날아가서 뮤직비디오를 재촬영해야 한다. 그래서 잔퀴의 첫 휴가는 뮤직비디오를 찍으며 보낼 것 같다.

 

병언과 리치치가(Rich Chigga)를 비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병언 : 나의 ‘Nerdy’한 면이 있는 그대로 잘 전달되는 것 같다. 내 정체를 드러내는 것 같아 기분 좋다. 내가 프로였으면 리치치가를 디스했겠지…

 

바밍타이거 작업물이 실제 병언과 100% 일치하는 것인가?

병언 : 그냥 내 일부다.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 힙합 신에 들어오며 느낀 바가 있다면?

병언 : 내가 프로였으면 한국 래퍼들 다 디스할 텐데… 사실 나는 내가 한국 힙합 신과 가깝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신 자체로만 본다면, 모두 한국 사회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그런지 서로 잘한다, 못 한다 경쟁하는 상황이 자주 나오는 것 같다. 그냥 보기에도 좁은 곳에서 아등바등하는 느낌.

 

이제는 쇼미더머니를 위시한 TV 프로그램에서 워낙 많은 래퍼가 보이다 보니 오히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욱 희귀한 것처럼 느껴진다.

산얀 : 사실 쇼미더머니도 그렇고, 고등 래퍼도 그렇고,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도 없었을 거다. 또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과 방향을 달리하는 크루다 보니 독특한 존재감이 생긴 것 같다.

병언 : 쇼미더머니를 통해 한국 힙합 음악을 처음 접했다.

산얀 : 2000년대에 우리가 나왔다면 외려 경쟁력이 없어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오메가 사피엔 : 신의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이질적인 힙합 크루도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병언 : 내가 프로였으면 그 시대 메인스트림을 모두 흡수했을 텐데…

소금 : 메인스트림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휩쓸리기 쉬워서 그냥 집에서 혼자 좋아하는 음악을 소비하는 편이다. 그래서 메인스트림을 잘 모르겠다.

언씽커블 : 한국 음악 시장에 우리 같은 또라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제삼자 관점에서 지켜보면 굉장히 재밌지 않은가. 그런 팀이 많아진다면 한국 음악 시장이 독특해질 것 같다.

 

병언은 아까부터 계속 ‘내가 프로였다면’이라는 사족을 붙였다. 병언이 생각하는 프로란 무엇인가?

병언 : 내가 프로가 아니라 잘 모르겠는데, 그냥 자신의 욕망을 쫒아가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음악을 다 떠나서 문화 자체를 건드리고 자극을 줄 수 있는 이들이 프로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프로페셔널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병언 : 그건 단순한 워킹 프로페셔널이지.

 

짧은 시간이지만, 왕성한 작업을 소화했는데도 어떤 이유로 병언은 자신이 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병언 :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니까.

오메가 사피엔 : 즐기면서도 잘한다는 말이네.

 

지난 믹스테잎 [호미 304] 이야기로 넘어가자. 앨범 뒷면에 코믹스가 실렸다. 무얼 의미하는지?

산얀 : 음악 외에도 비주얼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멤버 4명이 모두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를 그려 넣고, 이를 통해 독자적인 세계관을 새겼다. 앞으로 바밍타이거 이름으로 나오는 모든 작업물 역시 [호미 304]에 새겨진 만화처럼 특정한 세계관을 들고나올 예정이다. 지난 “I’m Sick” 역시 그 요소가 숨어있다.

 

그 코믹스를 그린 사람은 누구인가?

산얀 : 이겨레라는 분인데, 나의 전 직장 동료였다. [호미 304] 코믹스를 의뢰할 땐 바쁘지 않았는데 지금은 매우 일이 많아져서 추후 코믹스를 부탁하기 미안한 상황이다.

언씽커블 : 최근 영국 디제이 션 그렌(Sean Gran)의 컴필레이션에 내가 1곡 참여했다. 근데 그 앨범의 커버아트도 이겨레가 그렸다고 하더라.

 

앨범을 모두 팔았다고 들었다.

산얀 : 한 300장 정도? 오프라인으로 다 팔았다.

 

최근 새로 합류한 멤버인 언씽커블, 소금, 오메가 사피엔은 각자 어떤 계기로 합류하게 됐나?

언씽커블 : 지난 1월, 헨즈 클럽(The Henz Club)에서 열린 ‘호미 304’ 파티의 게스트 디제이로 참여했다. 그때 처음 바밍타이거와 인사했고 그 뒤로 꾸준히 연락하다가 4월에 같이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재밌는 크루라 흔쾌히 함께하게 됐다.

소금 : 나는 OST 만드는 회사에 다니다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못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작년 10월 퇴사했다. 그곳은 규율도 심할 뿐 아니라 음악을 창작이 아닌 기계로 뽑아내는 인상이었다. 일이 힘들어서 사운드클라우드로 내 음악을 향한 열망을 분출했는데, 그 작업물이 너무 이상하면서도 한편으로 재밌었다. 뭔가 혼란스러운 그 과정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지인을 통해 산얀을 만났다. 그때 그가 손을 내밀어서 에스컬레이터를 탄 느낌으로 도움을 받고자 합류했다.

오메가 사피엔 : 나는 한국 힙합은 잘 안 들었는데 어느 날, 유튜브 연관 영상에 [호미 304]가 우연히 떴다. 호기심에 들어봤는데 충격을 받아서 산얀에게 DM을 보냈다. 이때 내가 만든 “Let’s go Beam”을 보여주고 그를 처음 만났다. 이전까지는 팀에 들어가서 작업물을 발표하는 행위에 큰 거부감이 들었지만, 바밍타이거는 음악 외에도 앨범 커버나 뮤직비디오처럼 비주얼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스타일이 나와 잘 맞을 것 같아서 고민 없이 바로 합류했다.

 

오메가 사피엔이란 이름은 어디서 왔는가?

오메가 사피엔 : ‘Go ape shit’이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화를 심하게 낸다는 의미다. 이전에 레이지 몬스터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던 중, 친구가 내가 고릴라를 닮았고 화도 잘 내니 에이프(Ape)로 바꿔 지으라고 권유하더라. 그래서 잠시 에이프로 활동했다. 키스 에이프(Keith Ape)의 “잊지마(It G Ma)”가 엄청나게 히트한 뒤부터 내가 그의 아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생겼다. 결국, 이름을 오메가 사피엔으로 바꾸게 됐다. ‘Ape’에서 한 단계 진화한 호모 사피엔에 만화 “디지몬 어드벤처”에 등장하는 가장 강력한 디지몬, ‘오메가몬’의 의미를 합성했다. 일반적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초인이라는 뜻이다.

 

콜드 공연에서 오메가 사피엔의 모습을 보았는데, 라이브를 정말 잘하더라. 라이브 경험은 어디서 쌓았는가?

오메가 사피엔 : 미국 뉴저지에서 살다 왔는데, 그곳에서 할 거라곤 농구와 노래방밖에 없었다. 농구는 못 해서 친구들과 노래방에 자주 갔다. 그때 놀면서 라이브가 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바밍타이거 이전에도 무대를 많이 밟았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공연한 적도 있고, 도쿄 작은 클럽에서도 공연한 경험이 있다.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노하우가 쌓인 게 아닐까.

 

Omega Sapien – Let’s Go Beam (M/V)

직접 뮤직비디오를 감독한다고 하던데.

오메가 사피엔 : “Let’s go Beam”은 내 아이디어다. 물론 여러 명의 아이디어가 뒤섞였지만, 내가 구상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일본 생활은 어떤가. 새로운 신에서 사람을 모으는 일이 쉽진 않았을 거 같다.

오메가 사피엔 : 나는 일본에 가서 철이 들었다. 그전까진 트랩 음악을 대충 찍어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유튜브를 보고 책을 읽으며 브랜딩과 마케팅을 공부했다. 초반에는 일본어도 못 하고 나밖에 없는 상황이라 아까도 말했듯, 유튜브 비트를 20달러에 사서 데모를 만들어 여기저기 돌렸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Rich & Clear” 뮤직비디오도 “Let’s go Beam”과 같은 감독인가?

오메가 사피엔 : “Rich & Clear” 뮤직비디오는 펜아키(Pennacky)라는 사람이 촬영해주었다. 그는 내 “Let’s go Beam”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서 나와 작업하기 위해 내 공연을 찾아왔다.

 

펜아키는 어떤 사람인가?

오메가 사피엔 : 펜아키는 리얼이다. 사실 “Let’s go Beam” 촬영이 힘들었던 이유는 디렉팅을 내가 했기 때문이다. 반면 “Rich & Clear”는 펜아키와 편하게 커피 한 잔 마시며, 영화 “홀리마운틴”을 모티브로 방향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1달 뒤 펜아키가 모든 걸 준비해서 찾아왔다. 덕분에 나는 매우 편하게 작업했다. 그래서 병언과 함께 만든 트랙 “아르마딜로”의 뮤직비디오도 부탁해볼까 한다.

 

오메가 사피엔의 음악은 어디서 영향을 받았나?

오메가 사피엔 : 원래 나도 보편적인 트랩 곡을 많이 작업했는데, 작년 6월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태원 전자음악 클럽을 드나들며 스타일이 바뀌었다. 큰 경험이었다. 그리고 일본 도쿄 역시 전자음악 신이 크다 보니 여기저기서 경험한 게 내 음악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도쿄와 뉴욕, 서울의 언더그라운드 신을 고루 체험했는데, 나라별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

오메가 사피엔 : 한국 사람이고, 바밍타이거 역시 한국 언더그라운드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다 보니, 좀 더 소속된 느낌이 강한데, 일본은 아직도 겉도는 기분이다. 언어가 안 통해서인지 일본 아티스트와 딱히 교류하지도 않는다. 아직 동화되지 않은 느낌? 그리고 일본 힙합 시장은 아직 작은 것 같다. 그런 괴리감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뉴욕에서는 그냥 놀기만 해서 뭐라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언씽커블은 지난 힙합엘이(Hiphople)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에 오면, 프로세스가 바뀌기 때문에 기대된다고 말했다. 서울이란 도시에 어떤 기대를 하는지?

언씽커블 : 이미 광주에서는 앨범도 내고, 파티도 만들어봤다. 이미 내가 짱이 된 느낌이라 단순히 서울로 발을 넓히고 싶었다. 같이 활동하던 여러 아티스트 역시 서울로 많이 올라온 상태라 적응하기는 매우 쉬웠다.

 

언씽커블이 바밍타이거 크루라는 사실을 아직 많은 리스너가 모를 듯한데, 현재 어떤 작업을 진행 중인가?

언씽커블 : “아르마딜로”라는 트랙을 만들었다. 그걸 시작으로 내 앨범도 곧 발표할 것이다.

 

언씽커블의 음악은 바밍타이거의 것과 결이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스타일은 어떤 방식으로 조율하는지?

언씽커블 : 바밍타이거 이름으로 나오는 결과물이다 보니 크루의 색깔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과정이 싫지 않아서 일정 부분 맞춰갔다. 평소 음악을 편식하지 않는 편이라 크루와 함께 작업할 때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멤버 대부분 외국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는데, 소금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소금 : 초등학교 때 중국에서 살았고, 귀국하고 나서는 쭉 대전에 살았다. 매일 집에서 오타쿠처럼 음악만 듣고 직접 곡을 만들다 보니 공연하러 가는 내 모습이 아직도 너무 어색하다. 사실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도 한 달 동안 휴대폰을 3번이나 잃어버린 작년 4월부터다. 그전까지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휴대폰을 계속해서 잃어버리며 깨달음을 얻었다. 회사의 기계적인 작업을 견디기 힘들었고, 퇴사로 이어졌지. 급하게 결정한 거라 사실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 그냥 내 꿈이 너무 커져서 길을 못 찾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금 – 미안해

자신의 음악에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소금 : 초등학교 때 그냥 유튜브로 미국 음악을 듣다가 어떤 흑인이 부르는 커버 송을 봤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깜깜한 배경에 흑인이 그냥 노래 부르는 영상이었다. 잘 부르진 않았지만 자연스러운 소울을 거기서 보았다. 그 사람의 한 맺힌 소울을 참고해서 스킬을 늘리려고 했다. 꼭 노래를 매끄럽게 불러야만 감정이 잘 전달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여기서 캐치했다. 테크닉보다 표현을 배웠다.

 

얼마 전 디제이 웨건(DJ Wegun)의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는데, 소문에 의하면 어떤 아티스트는 피처링을 제안하기 위해 소금이 자주 가는 술집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고 들었다. 그만큼 피처링 제의를 많이 받는 중인가?

소금 : 정말 많이 받고 있다. 뮤지션의 명성과 관계없이 그날 내 기분에 따라 OK가 갈린다. 근데 사실 나도 갑자기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유명해지다 보니, 피처링을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내가 불러준 노래가 작곡가 마음에 들까?’라는 무서운 생각을 하는 게 너무 싫다. 그래서 친한 친구가 부탁하면 하고 모르는 사람이 제의하면 일단 벽을 쳐버리는 것 같다. 바밍타이거를 시작할 때도 친구가 돼야 작업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아마 그때도 벽이 생겨서 그랬던 것 같다.

 

현재 준비하는 앨범은 어느 정도 작업했나?

소금 : 산얀이 비트를 찍어줘서 만들고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사실 앨범을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데도 그냥 철이 없어서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산얀과는 내가 듣는 음악에 관해 주로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져서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계획하고 나오는 앨범은 아닐 것이다. 그려지는 색깔이 없다.

 

바밍타이거의 장기 플랜이 궁금하다. 멤버를 더 영입할 계획도 있나?

산얀 : 바밍타이거 영입의 기준이라고 할 만한 게 딱히 없었는데, 막상 다 모이고 나니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는 점이 공통분모라면 공통분모였다. 개성이 또렷한 게 바밍타이거의 원동력이지 않을까. 멤버를 더 늘리는 일도 마음만 맞는다면 어려울 거 없다. 우리는 그냥 자유로운 단체이자 콜렉티브이며 나아가 채널, 플랫폼의 기능까지 맡고 싶다. 자체적인 콘텐츠도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전 세계 사람이 들어도 좋을 만한 콘텐츠, 플랫폼이 되고 싶다.

 

바밍타이거처럼 새로운 바이브를 가져가려는 신생팀이 있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산얀 : 우리가 벌써 그런 위치까지 올랐나?

병언 : 책을 읽어라.

오메가 사피엔 : 남들이 하지 않는, 자신과 그들을 차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은 음악에 매진하고 모든 정신을 쏟아부어야 한다. 나도 그러려고 한다.

언씽커블 : 서울에 와서 놀란 점이라면 음악을 듣지 않는 아티스트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나는 광주에 있다 보니 혼자 음악을 들을 시간이 많았는데, 서울은 의외로 디깅에 소흘한 뮤지션이 많았다.

소금 : 힘든 시기가 필요하지 않나. 고립되는 경험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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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글 │ 최장민 황선웅
사진 │ 유지민

*해당 인터뷰는 지난 10월에 발간된 VISLA Paper 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 및 정기구독을 통해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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