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DE MODE Spin-off 옷 구매에 의미를 부여하는 영화 이야기 #2

지난 회 다룬 “대탈주”가 영화사뿐 아니라 ‘옷질’에도 매우 중요한 영화인 건 익히 알겠으나, 역시 60년대 영화인지라 접근성이 매우 좋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옷질에 무척이나 중요한 영화라면 역시 모두가 익히 예상했을 그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는 잘 몰라도 그 이름은 어디서 주워들어 봤을 법한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에다가 역시나 ‘할리우드 명배우’를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가 주연을 맡은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가 되겠다. 197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따위의 이야기는 오히려 영화의 원초적인 재미를 설명하는 데 거추장스러울 정도인 본 영화는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직후의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는 전쟁 후 트라우마로, 불면증에 시달리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퇴역 군인 트래비스 비클(Travis Bickle)이 맨해튼의 뒷골목에서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일상, 그 속의 방황과 분노를 다루고 있다.

지난 “대탈주”의 힐츠(Hilts) 대위가 2차대전의 전쟁포로  공군 파일럿이었다면, 이번에는 베트남 참전 해병대니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거기에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만큼 패션의 아이콘은 아닐지언정 어쨌든 당대 할리우드의 아이콘으로서 본작에서 메소드 연기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드니로 어프로치’를 본격적으로 선보이며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로버트 드 니로라니. 역시나 이래저래 옷 지랄을 떨기에는 안성맞춤인 영화인 것이다.

 

You talkin’ to me?

“You talkin’ to me?”로 시작되는 전설의 애드리브를 갈길 때도, 이제는 밈(Meme)의 하나가 되어버릴 정도로 유명한 ‘박수를 날리는 장면’에서도,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부터 그의 유니폼이 된 그 옷은 모두가 아는 그것. 라벨 그대로 1965년 -실은 1966년 – 에 도입된 후 ACU 패턴이 적용된 2005년까지 약 40여 년간의 수많은 재출시를 통해 오랜 기간 미군 야상으로 대활약한 전설의 그것, M-65다. 실제 베트남전 때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고 하니, 참전용사로서 사회에 융화되지 못한 채 택시 운전을 전전하는 그가 입기에는 안성맞춤인 옷이다.

 

물론 아냐, 그 야상…

 

2차대전 때의 M-41부터 시작된 미군 야상의 역사라든가 M-65의 세대 구분 같은 건 이제 나무위키에서조차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여기에서는 간단하게나마 주둥이를 털자면, 드니로가 착용하고 있는 M-65는 오늘날 업계 표준(?)이라 해도 무방한 2세대 M-65다. 66년 딱 일 년간 보급되었던 프로토타입 개념의 1세대 제품과 다르게 견장이 추가되었으며, 뒷세대와 비교해 은색 지퍼나 면 100% 같은 점들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매뉴팩쳐에 따라 다른 듯하다.

 

왼쪽 위부터 1, 2, 3, 4세대 야상 구분, 사실 미국인도 이런 구분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미쳐버린 사회와 맞짱을 까기 전, 그래도 불면증 치료의 목적으로 택시 기사를 시작하던 그 시절에 입고 있던 재킷 역시 썩 멋스러운데, 탱커 재킷(Tanker Jacket)이라고 불리던 이것은, 이름 그대로 전차병들에게 보급되던 옷이다. 운동성을 고려하여 짤뚱하게 제작되었으며, 안감으로는 양모를 써서 보온성까지 갖추어 2차대전 당시 지상군뿐 아니라 비행기 조종사 역시 사랑했다고 알려진 본 제품을 왜 베트남 참전용사가 입고 있는지는 내가 알 리 없다.

 

맨 처음 상원의원을 태웠을 때도, 또한 영화의 마지막 베티를 태우는 장면에서도 늘 입고 있다. 택시기사 유니폼.

2010년, 각본가 폴 슈레더(Paul Schrader)는 극중 실제 착용했던 의상과 소품 등을 해리 랜섬 센터(Harry Ransom Center)에 기증했고, 이 중에 탱커 재킷이 있었다. 이후 ‘마틴 스콜세지’ 전시회에 몇 차례 전시되기도 했다고. 여기의 킹콩 와펜은 비클의 분노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근사하게 복각하는 업체들도 오리지날 특유의 아우라를 완벽하게 재현해내지 못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설의 M-65가 아닌 이 제품을 기증한 걸 보면, 군인을 대표하는 외투와 미국인을 상징하는 플란넬 셔츠의 조합이야말로 캐릭터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복식일지도.

 

오리지날 킹콩 컴패니의 포스. 여튼 두 제품의 기증(?)은 이후 톡톡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외에 군바리 느낌을 진하게 내주는 아이템이라면, 일단은 선글라스. “한국이나 미국이나 택시기사들은 라이방을 쓰나 보네~”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도 있지만 나름 2차대전 때 미군에 스퀘어 에비에이터(Square aviator)를 보급하던 아메리칸 옵티컬(Americal Optical)의 전형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비로소 상원의원을 암살하고자 마음을 먹고, 홈트레이닝 중에 입고 있는 티셔츠는 미 해병대(US MARINES) 보급 티셔츠이다.

 

이 정도는 실제로 착용해도 꽤 근사할 듯하다.

 

뒤집어 입은 티셔츠 역시 중요한 포인트.

이러한 ‘해병’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밀리터리와 함께 비클의 한 축을 이루는 복식이라면, 웨스턴일지 모르겠다. 상술한 바와 같이 거의 모든 장면에서 입고 나오는 플란넬 셔츠는 여지없이 웨스턴 셔츠의 전형이며, 청바지는 LEE 101S 모델에 신발까지도 강력한 갈색 웨스턴 부츠. 근사한 수트와 드레스 슈즈가 전투복이 된 뉴욕의 풍경과 대비되는, 철 지난 과거 미국의 문화이자 당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노동자/하위 계층의 유니폼으로서 상징을 둔다고 할 수 있으려나?

 

…라고 하지만 우리 눈에는 사실상 이보다 예쁠 순 없다.

원래 의도와 관계없이 지나치게 우아한 체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처음 소개팅 때는 마치 우디 앨런 영화의 중산층 캐릭터처럼 더부룩한 머리에 붉은색 코듀로이 재킷을 입고 있던 그가 서서히 뉴욕의 더러움을 인식하면서 복식이 바뀌어 가더니 비로소 맛탱이가 간다. 알몸에 M-65를 걸치고 모히칸까지 이르는 이 일련의 복식 변화는 결국 비클의 무너져가는 심리를 나타내는 나름 중요한 수단이었으리라 – 아님 말고 – .

하여튼, 상기 대부분의 제품은 이베이에서 실물로 구매할 수 있다. M-65 2세대야 워낙 개체가 줄어들고 있다지만 여전히 $60~80선에 구매할 수 있고,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한국 컴뱃샵 중고장터가 전 세계에서 가장 싸게 M-65 오리지날을 구할 수 있는 곳이다. 50~60년대 LEE 101Z야 $200을 훌쩍 넘지만, 적당한(=근본 없는) 70년대 LEE 라이더스 데님 정도면 $20에도 살 수가 있다. 리바이스나 펜들턴의 웨스턴 네루 셔츠 역시 $20~30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며, 각종 마켓 브랜드의 제품은 그보다 싸다. 나름 근본을 갖춘 토니라마(Tony Lama) 급의 웨스턴 부츠는 상태와 사이즈, 디자인에 따라 $40~100 정도의 베리에이션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쪽은 전혀 몰라서.

애석하게도 에비에이터는 썩 비싼 것 같다. 빈티지 에비에이터를 찾다 보면 자주 나오는(=비싼) 1/10 12K (전체 무게의 1/10이 12K 금이니까 실제로는 전체 무게의 5%가 순금) 스펙의 제품을 비딩 없이 구매하려면 수백 달러는 내야 하는 모양이다. 일부 1/10 등의 스펙 정보가 없거나 차라리 크롬으로 된 제품의 경우는 조금 싼 것 같기도 하다.

 

도합 $168.82 택시 드라이버 팩.

 

위는 $650, 아래는 $664.99. 실물이 $70-80인 것을 생각해보면, 뭔가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토록 멋진 작품의 멋스러운 옷들이니, 빈티지에 미제라면 죽고 못 사는 일본 친구들이 빨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익히 알법한 버즈릭슨(Buzz Rickson)이나 리얼 맥코이(Real McCoy), 지난 시즌 대탈주에서 대활약한 토이즈 맥코이(Toys McCoy) 등 복각 브랜드라면 모두가 한 번 혹은 여러 번 킹콩 컴퍼니의 와펜을 제작했다.

우선 탱커 재킷. 타 브랜드의 경우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혼모노들인 토이즈 맥코이는 랜섬 센터에 기증된 실물을 검증하여 완전한 복각을 이루어 냈다고 한다.

 

휴스턴(Houston)의 탱커 재킷, 등뒤에는 정확히 비클의 이름이 스탠실로 박혀 있다.

 

토이즈 맥코이의 탱커 재킷, 기증된 제품을 토대로 복각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기존 토이즈 맥코이의 컴뱃 재킷과 비교했을 때의 소매 차이. 실물 검증을 통해 촬영용 소품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찾아내 적용했다.

 

리얼 맥코이의 탱커 재킷.

 

 

 중국 브랜드의 복각 역시 나름 상당하다.

M-65부터는 한 개씩만. 역시나 지옥에서 돌아온 진짜 중의 진짜 토이즈 맥코이의 제품이 가장 두드러지는데, 2세대 M-65의 기본 밀스펙은 기본으로 하여 특유의 킹콩 패치와 슬로건 배지까지 모두 완벽하게 구현하였다. 특히 영화 속 탱커와 M-65의 킹콩 패치가 다르다는 것을 파악해서(진짜?), 실제로 제품에 달리는 패치까지도 탱커와 다르게 제작했다고 한다.

 

완벽하다, 저 할리우드 소품 라벨까지.

 

실제 토이즈 맥코이가 적용한 와펜의 모습.

이쯤에서 킹콩 패치만 한 번 관찰해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일 것이다. 토이즈 맥코이 성님들 말에 따르면 M-65와 탱커의 패치 모양이 다르다고도 하고(M-65가 좀 더 못생겼다), 실물의 모습을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탱커 기준으로 실물과 각 브랜드의 탱커 로고를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놈들이 가장 혼모노인지는 각자 확인하시라.

 

위에서 살펴본 것들을 하나씩 다시 한번 빠르게 확인해보자. 주인공의 한 축을 담당했던 웨스턴 제품군도 당연히 있다. 주야장천 입던 체크무늬의 옷은 실물을 토대로 복각하였는데, 특히 실물의 패턴이 직조가 아니라 프린트임을 고증하여 이 역시 완벽하게 재현하였다. 암살하러 갈 때 입었던 흰색도 당연히 발매했다. 홈 트레이닝 중 입고 있던 해병대 티셔츠가 백미인데, ‘흰색을 입는다면 어떨까!?’ 라는 상상을 더해 무려 흰색을 출시하는 것으로 모자라, ‘왜 극 중에서 주인공은 옷을 뒤집어 입었을까!?’ 에 대한 고민 끝에 뒤집어진 프린트도 발매한다. 심지어 뒤집어 입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인쇄가 비치다 보니 옅게 보일 수밖에 없는데, 이들은 그 옅은 질감까지 재현해냈다.

 

암살복 / 평상복

 

 

‘흰색이었다면?’ 같은 상상을 하다가 합성까지 한다.

이쯤 되면 뭔가 위험하지 않나 싶다.

 

청바지는 감히 리(LEE)가 건재한 마당에 브랜드 라벨까지 따다 붙이긴 어려웠을 테니 전형적인 라이더즈 데님의 복각 정도인데 – 그렇다고는 하지만 백포켓 스티치만 없다뿐이지 거의 완벽한 재현 – , 여기서는 오히려 리얼 맥코이가 리와 손을 잡고 제대로 하나 뽑아내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에비애이터도 없을 리가 없다.

 

토이즈 맥코이의 데님.

 

리얼 맥코이의 협업 제품. 본 제품을 통해 영화에 사용된 리 청바지는 벨트 루프가 7개인 라이더스 제품(101S)이지만 지퍼플라이를 사용하였으며, ‘하프 셀비지’ 정도로 커스터마이즈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본 영화와는 관계 없지만, 혼모노답게 토이즈 맥코이 역시 “더 헌터(The Hunter)”의 데님을 리와 함께 만들었다.

 

선글라스 케이스와 안경닦이에도 나름 주인공 이름을 박아 넣는 등 신경을 썼다.

여기까지 쓴 토이즈 맥코이의 모든 옷을 다 합치면 대략 260만엔(세금 별도). 트래비스에게 이 정도의 돈이 있었으면 첫 데이트 때 포르노 극장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마치며

특별히 교훈이 없는 코너인지라 마땅한 결론도 없다. 이걸 감히 세 편이나 쓴다고 하면 귀싸대기를 맞을 것이 분명하니,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미국 영화 속 아이코닉한 옛날 옷들이나 감상하며 아마 돌아오지 않을 다음 편 ‘디어헌터 속 마운틴 재킷과 빈티지 아웃도어’편을 감히 기약해본다.

 

TMI

백투더 퓨처(Back To The Future). 나이키 브루인(Nike Bruin)이나 클래스 파이브(Class-5)를 연상시키는 주황색 다운 베스트도 꽤 멋스럽지만.

 

멋 중의 멋이라면 역시 이스트팩 (Eastpak) 초창기 모델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무렵 백투더퓨처 복각은 아니었지만 나름 리터니티(Returnity)라는 이름으로 패디드 파카(Padded Pak’r)가 재출시되기도. 국내에서는 안 팔려서 2만원에도 팔았다.

 

다음으로 리의 아버지. 제임스 딘 선생님, 101Z 만큼이나 상의 역시 꽤나 유명하다.

 

맥그리거(McGregor)의 안티 프리즈(Anti Freeze) 재킷, 촌스러워 보이지만 리얼 맥코이 등에서도 열심히 복각한 제품으로.

 

실물은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당연하게도 다른 색상은 매우 쉽게 구할 수 있다.

 

다음으로, 디어 헌터(Deer Hunter)의 마운틴 재킷. 워낙 유명한 디자인이라 어디 건가 싶지만, 홀루바(Holubar)의 요세미티 파카(Yosemite Parka)이다. 아웃도어계의 권위자 브루스 존슨의 의견이라는데.

 

당시 수많은 아웃도어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81년도에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로 팔렸는데, 2008년에 프리츠(Fritz)라는 회사가 브랜드명을 사들여서 이렇게 다시 독립했다고 한다. 2016년 브랜드 70주년을 맞이한 디어헌터(Deer Hunter) 70주년을 리이슈했고, 이외에도 보다시피 시그니처인 주황색과 마운틴 재킷 디자인을 베이스로 다양한 옷을 뽑아내고 있다 – 다만 여느 아웃도어 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라인이 따로 있는지까지는 잘…

 

(좌) 70주년 기념판 / (우) SHIPS 복각버전, 일본이 참 잘 해요.


글 │ 김선중
제작 │ VISLA, MU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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