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5 Favorites : GOODNECK

‘Top 5 Favorites’의 세 번째 주인공은 바로 조승훈(GOODNECK, 굿넥)이다. 축구 마니아를 위한 펍, 굿넥을 운영하고 굿넥이라는 이름의 의류 브랜드까지 런칭하며 완전한 굿넥으로 살아가는 조승훈은 축구 문화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가 축구를 사랑하는 방식이 다소 생소할지도 모르나 결국 자신이 직접 겪고 느낀 축구로부터 만들어진 생활방식일 뿐이다. 축구에 열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곧 굿넥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된다. 무수한 축구 문화 가운데 독자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나가는 조승훈, 그가 소장한 축구 저지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것들을 소개한다.

 

TOP 1: 7번 저지

펩시콜라(Pepsi Cola) 프로모션

이 7번 저지는 2002년 당시 펩시콜라 광고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실제 경기장에서는 입진 않았다. 이 광고에는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 뿐만 아니라 라울(Raul), 로베르토 카를로스(Roberto Carlos), 베론(Veron), 에마뉘엘 프티(Emmanuel Petit), 루이 코스타(Rui Costa), 에드가 다비즈(Edgar Davids)에 이르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함께 출연했다. 이 어마어마한 선수들이 스모 선수들과 축구경기를 펼치는 콘셉트였지. 아마 축구를 좋아하는 내 또래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광고일 것이다. 그때의 향수가 있다. 이걸 구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이베이(eBay)를 뒤지다가 어느 날 떡하니 올라온 걸 보고 바로 주문했다. 이 저지는 전사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기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싸구려지. 정식 발매는 아니고, 프로모션 용도로 몇 장 뽑은 것 같다.

 

영국 국가대표

데이비드 베컴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7번이라는 숫자 역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베컴을 좋아하다 보니 7번을 등에 달고 뛰었던 선수들의 족보를 훑기도 했지. 어릴 적 나에게는 네 명의 7번 영웅이 있었는데, 바로 베컴, 호날두, 나카타 그리고 박지성이다. 어렸을 때부터 만나보고 싶었는데 결국 꿈을 이뤘다. 호날두는 이미 대단하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에 그의 행보가 더욱 궁금하다. 반면에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 7번, 알렉시스 산체스(Alexis Alejandro Sanchez)는 역대 최악이다. 최근 주목할 만한 7번 선수가 많아졌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한국 국가대표이자 토트넘 홋스퍼(Tottenham Hotspur)의 손흥민 또한 7번이 잘 어울리는 선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03~04 시즌

호날두가 맨유로 이적했을 때 열광하던 기억이 난다. 지금과는 또 다른 호날두의 스타일이 있었으니까. 마른 체형에 콩나물 머리를 하던 혼자우도 시절, 호날두의 7번 유니폼이다. 더구나 스폰서도 영국의 이동통신업체 보다폰(Vodafone)이었지.

 

TOP 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98~99 시즌

맨유가 트레블을 달성한 전성기 시즌의 서드 저지와 키퍼 저지다. 일본 빈티지 숍에서 구했다. 한창 본격적으로 유니폼을 모을 때가 있었다. 지금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큰 경기가 있을 때 종종 꺼내 입는다. 펍을 하면서 빈티지 저지 문화를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이 골키퍼 저지는 영국 이베이에서 구한 건데 이때가 바로 맨유 레전드 키퍼, 페테르 슈마이켈(Peter Schmeichel) 시절이라 더 뜻깊었지. 90년대 특유의 어벙한 골키퍼 핏도 마음에 든다. 사진으로 봤을 땐 몰랐는데 제법 두껍다. 테니스공 같은 재질이라 먼지도 잘 붙고 여러모로 관리가 쉽지가 않은 저지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기능성 의류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말도 안 되는 저지를 입고 슈퍼스타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재미있다. 이 시즌 유니폼은 홈, 어웨이, 서드를 가리지 않고 정말 멋있었다.

 

엄브로(UMBRO) 시절

엄브로 본사가 맨체스터 지역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디자인할 때 지역 고유의 감성을 담았으리라는 환상이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00주년 저지

맨유 팬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저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전 ‘Newton Heath LYR F.C.’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해로부터 100년이 지난 2002년, 기념 저지가 발매됐다. 이 저지는 양면으로 입을 수 있다. 실제로 당시 선수들이 이걸 입고 경기를 뛰었더니 통풍도 안 되고 무거워서 말이 많았다고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이 유독 많이 보인다.

축구팬이라고 해서 저지를 꼭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일부 제품을 제외하면 얼마든지 빈티지 저지를 구할 수 있다. 펍을 운영하면서 맨유 저지를 사고 싶다는 고객들의 요청을 많이 받았다. 다양한 경로로 옷을 사고파는 중인데, 이런 문화를 좋아하는 이들과 계속해서 교류하고 싶다.

 

EPL 10~11 시즌 19번째 우승 기념 ‘Champion No 19’

맨유가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이 확정되고 나서 조금이나마 기를 불어넣을 마음으로 맨체스터에 갔다. 시기적으로도 내가 가장 형편없을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하나 보고 떠난 첫 여행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그때 알렉스 퍼거슨(Alex Ferguson) 감독과 박지성을 비롯하여 선수들을 직접 만나고 사인을 받은 저지다. 당시 리그 19번째 우승을 했기에 마킹도 ‘Champion 19’로 했었지.

맨유를 향한 팬심이 남다른 것 같다,

축구를 좋아하는 관점이 다 다르지 않나? 나 같은 경우는 직접 하는 것도 좋고 보는 것도 좋다. 저지 역시 입고 싶은 것과 소장하고 싶은 것이 나뉜다. 가지고 있다가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저지가 있다는 말이지. 나름의 용도가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어렸을 때 열광하던 맨유의 영웅들은 거의 다 은퇴했다. 2005년 즈음 맨유의 트레블 시절을 이야기하면 엄청 오래된 이야기 같았는데 지금 어린 친구들과 함께 박지성 시절을 꺼내어보면 마치 내가 차범근의 현역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과 다름없더라.

 

어떻게 하면 좋은 축구팬이 될 수 있을까?

이게 내 영원한 숙제다. 맨유 골수팬을 만나보며 ‘저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혹은 ‘모든 저지를 사 모아야만 진정 축구팬일까?’ 따위의 생각을 해본 적 있다. 레어한 저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게 자신이 진정한 축구팬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물질적인 소유보다는 정신적인 경험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편이다.

 

맨유 골수팬이 되기까지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면?

베컴 때문이지. 뻔하지만 고등학교 때 베컴의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고 다녔다. 당시 베컴 머리 한 번 안 해본 남자가 있을까? 하하. 여태 베컴을 다섯 번 정도 만났다. 가작 기억에 남는 건 화장실에 갔다가 문을 열고 나왔는데 베컴이 줄을 기다리고 있더라. 이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해도 크게 호응이 없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재밌는 경험이지.

 

 

TOP 3: 1996년 대한민국 국가대표 유니폼

1996년 대한민국 국가대표 유니폼

많은 이들이 96년 국가대표 축구팀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하는데 나 역시 96년도 국가대표 유니폼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한다. 이민성이 도쿄 대첩을 일궈낸 때의 유니폼이 바로 이것이다. 이땐 엠블럼이 없었다. 태극기도 투박하게 패치로 붙어있다. 지하상가에서 파는 태극기 패치 같은 거다. 색 배합도 특이하고. 이번 국가대표 유니폼과 동일하게 검은색 하의였다.

96년 국대 유니폼은 현재 프리미엄이 붙은 상태다. 어디서 구했나?

홈, 어웨이 둘 다 중고장터 매물로 구했다. 내가 구하고 나서 가격이 엄청 올랐다. 이런 레플리카가 유행인 것도 한몫하지 않을까. 칼라(Collar)의 디테일도 멋있고. 내가 소장한 국대 유니폼 중에 가장 오래됐다. 이전 유니폼도 구하면 구하는데 가격이 꽤 비싸다. 홈 저지 사인은 최근 2002년 월드컵 선수들이 모이는 행사에 참석했다가 그때 받은 거다. 어웨이 저지에는 이때 가장 좋아하던 선수인 홍명보의 사인을 받았다.

 

이 유니폼의 매력이라면.

올드 탭이 간지지. 이 당시에 ‘Made in U.K’ 유니폼 중에서도 탭만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것들이 있다. 내가 이렇게 소장한 유니폼 중에는 지급용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근래에는 지급용을 원하는 팬들이 많아져서 시중에 많이 풀렸지만, 이때만 해도 구하기 어려웠다. 특히 키퍼용은 아예 팔지도 않았다.

 

 

TOP 4: 2014 브라질 월드컵

브라질 월드컵 국가대표 유니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40일간 현지에서 국가대표를 응원했다. 안타깝게도 대표팀은 16강에 진출하지 못했고, 그 뒤로 작은 도시 사우바도르(Salva-dor)에 갔다. 축구도 지고, 계획 없이 낯선 동네에 와서 그런지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면서. 당시 대표팀은 이미 귀국한 뒤였다. 나는 이 유니폼과 몇 가지 티셔츠를 가져온 게 전부였다. 40일의 여정을 나름 기록하기 위해서 브라질행을 택했는데 되게 허탈했지. 그래서 그런지 국대 유니폼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떤 투철한 애국심 같은 게 생겼다고 해야 하나.

당시 국가대표 유니폼 안쪽에는 ‘투혼’이라는 단어가 적혀있다. 굿넥 펍에서도 동일한 ‘투혼’ 네온사인을 확인할 수 있는데 특별히 이 단어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모든 국가를 통틀어 이렇게 멋진 슬로건을 본 적이 없다. 서예가 열암 송정희 선생님이 직접 쓰셨다. 투쟁하려는 기백, 정신이라는 의미도 마음에 들고 글씨 자체도 멋지다. 이 유니폼만 두고 본다면 그렇게 희귀한 제품은 아니다. 이때가 축구를 향한 열정이 가장 뜨거웠던 시기다. 전 세계 축구팬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 축구를 빌미로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때의 기록을 결과물로 완성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의미가 남다르다. 그 시기를 함께한 저지라 뜻깊을 수밖에.

 

상파울루 FC 유니폼

브라질 현지에서 타 축구팬과의 교류를 통해 구했다. 벨기에전에서 1:0으로 패배했을 때 이 상파울루 FC(São Paulo FC)를 입은 한 남자가 내게 와서 “한국, 졌지만 잘했다”라며 유니폼을 교환하자고 했다. 내가 입고 있던 굿넥 티셔츠를 주고 상파울루 FC 저지를 받았다. 이 저지가 나에게는 그 어떤 희귀한 옷보다도 소중하다. 그 상파울루 FC의 팬 역시 이러한 경험을 평생 간직하지 않을까? 다시 만나기는 힘들겠지만, 10년, 20년이 지나더라도 이 옷을 보면 그가 떠오르겠지.

 

TOP 5: 2018 러시아 월드컵 국가대표 유니폼

2018 러시아 월드컵 국가대표 유니폼

우즈베키스탄과의 마지막 경기를 지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엄청나게 중요한 경기였지. 나 역시 간절했기에 직접 우즈베키스탄에 응원하러 갔다. 처음으로 경험한 국가대표 원정 경기였다. 90분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고, 자력은 아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본선에 진출했지. 그런데도 신태용 감독과 대표팀은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귀국행 비행기를 함께 타고 오는데, 국민의 반응이 싸늘해서인지 분위기 역시 좋지 않았다. 나에게는 영웅같은 선수들인데, 옆에서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답답했다.

우즈베키스탄 경기가 굉장히 치열했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어땠나?

전반전이 끝나고 경기장 밖으로 잠시 나왔는데, 경찰 몇백 명이 나를 호위했다. 어웨이 팬으로서 보호받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현지 사람과도 사진을 많이 찍었다. 천 명쯤 될 거다. 어떤 이들은 나를 보고 욕했다. 순간 분위기가 심각해진 적도 있다.

 

국가대표 유니폼 중 골키퍼 유니폼을 선정한 이유가 있나?

키퍼 유니폼이 가장 멋있잖아. 다른 이유는 없다. 사인도 받았다. 내겐 잊지 못할 추억이 담긴 유니폼이다.

조승훈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


진행 / 글 │ 이철빈
사진 │ 백윤범

*해당 기사는 지난 10월에 발행한 VISLA Paper 6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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