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진

자랑할 만큼 많은 경험은 아니지만 그간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 바가 있다면, 맞은편에 앉은 상대와 나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현장의 미묘한 공기를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친한 지인을 인터뷰한다는 건 큰 고개를 미리 하나 넘고서 완만한 길을 동행하는 일과 다름없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낯간지럽다. 언제 봐도 반가운 술친구 정충진과 다시금 소주병을 까고 회포 푸는 일을 마다할 리 없으나 그에게 이것저것 묻는다는 게 어딘지 지인에게 보험 파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속내를 털어놓기 어려운 탓일까.

정충진은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영상을 찍어서 밥벌이한다. 동시에 대학원에서 뒤늦게나마 다시 영상을 공부 중이다. 그와 나눈 숱한 술자리를 떠올려본다. 매일 영화를 한 편씩 볼 정도로 영화광이라는 점, 국내 감독 중에서도 유독 홍상수의 이름을 많이 언급하는 점, 일주일에 서너 번씩 소주를 마신다는 점, 한국 사회에 큰 불만을 품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냈다. 새삼 무슨 이야기를 더 할까 싶어 가볍게 소주 한잔하자고 불렀지만, 예상보다 더 흥미로운 일화를 들었으니 간단히 정리해 이곳에 남겨 둔다.

 

 

처음 보는 이에게 자신을 뭐라고 소개하는가?

웬만하면 소개 안 한다. 그냥 뭐, 일로 만나는 자리라면 어쩔 수 없지만 내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거의 백수라는 식으로 말하지. 자신이 되게 떳떳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좆같은 것 같다. 그냥 내 작업물을 보고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알아서 판단하는 게 낫다. 만나서 얘기해보면 자기는 뭐도 하고 뭐도 하는데 막상 포트폴리오 보면 너무 병신 같고. 그런 애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나를 소개하기 부끄럽다.

 

뮤직비디오를 위주로 커머셜, 개인작업 등 영상물을 지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처음 영상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인가?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영상을 찍었다. 처음 들고 찍은 카메라가 VX-2100이었는데, 그걸로 좀 찍다가 대학교에서 디자인과 다니며 자연스럽게 영상을 곁다리로 배웠다. 연극영화과 수업 같은 걸 도강하면서 혼자 했다. 딱히 뭐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영상을 독학으로 공부하며 전공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배움의 과정을 겪었을 것 같다.

영상을 전공하지 않아서 그런지 도제, 선후배 관계 같은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멋대로 했다. 그러면서 독자적인 스타일이나 방식을 익힌 것 같다. 만약 교수나 선배들에게 일일이 크리틱을 받으면서 찍었다면, 아마도 내 자신에 확신을 가지고 하기는 어려웠겠지. 당연히 프로덕션이나 체계라고 해야 할까. 이런 부분이 전공자와 비교했을 때 덜 다듬어졌다고 생각한다. 결국, 반반인 것 같다. 어떤 길로 영상을 시작하더라도 얻는 게 있고 잃는 게 있다.

 

유년기, 자신에게 특별한 영향을 준 매체가 있다면 무엇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막 없는 외국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두고 가면 그냥 무작정 봤다. 디즈니, 닌자거북이 같은 만화부터 AFKN까지, 그러면서 영상물과 친해진 것 같다. 친형이 일본 만화 오타쿠라 문화개방 전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돌려보기, 뭐 이런 모임에 나갔다. 예전에 왜 지하상가에 가면 슬레이어즈나 미야자키 하야오 시리즈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가득 담은 CD를 싼 가격에 구워주지 않았나. 형을 따라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할리우드 영화, 홍콩 영화에도 꽂혔고, 나아가 시대비판적인 영화나 조금 더 고민할 여지가 많은 예술 영화까지 이어지게 된 거다.

 

대구는 정충진의 고향이다. 어떤 곳인가?

대구는 정치적으로도 고립되었고… 뭐 이런 건 다들 아는 이야기니까. 내 유년기를 생각해보면 존나 병신이었지. 살던 동네도 시답잖고, 한 학년에 반이 딸랑 두 개밖에 없는 그런 학교에 다녔다. 친구들도 다 고만고만한데 공부도 못하고 이상한 짓거리나 하던 그런 학창시절. 몇 살 많은 형들한테 삥 뜯기면서 막상 대들 용기는 못 내고, 그런 애들끼리 모여서 이상한 오락이나 하고 술 먹고 놀았다. 한국의 좆같은 문화 그 모든 걸 대구에서 느꼈던 것 같다. 학창시절의 선후배, 양아치, 일진 문화 이런 것들. 막상 싸움도 잘 안 하면서 깡패놀이 하고 그런 거. 지금 생각해보면 재밌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그런 추억이다.

 

서울에서 일하다가 가끔 고향에 가면 누구를 만나나?

동네 친구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만난 친구들에게 좋은 자극을 받는다. 삶의 의지라고 해야 되나. 다 비슷한 애들끼리 뭉쳐 놀다 보니 실업반이나 공고 다니다가 바로 사회생활로 뛰어든 친구가 많다. 이 친구들은 모두 다 자수성가했다. 이미 다 결혼해서 가장이지. 열심히 살고 돈 벌고 있다. 막상 만나서 예술 따위의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어렸을 적 친구들과 만나면 살아가는 어떤 힘이 생긴다. 물론, 너무 자주 만나면 빡세겠지만. 하하. 동네 친구들끼리는 서로 크게 기대하는 것도 없고 그냥 만나서 사는 얘기 하는 거니까, 좋은 거지.

 

처음 상경했을 때 느낀 감정이라면.

딱히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진 않았다. 입시미술을 하려고 처음 서울 땅을 밟았을 때 놀라긴 했지. 미대 입시라는 게 정말 지옥이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나서 입대하기 전까지는 술이나 처먹고 영화나 볼 줄 알았지, 특별히 뭘 하지는 않았다. 전역한 뒤, 360사운즈를 만나 첫 리캡 영상을 찍었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부터 서울이 조금씩 재밌어진 것 같은데.

 

처음 의뢰받은 작업은 무엇이었나?

뤄썸(RVVSM)과 첫 작업을 했던 것 같다. 트래셔(Thrasher) 팝업 스토어를 방배동 rm. 360에서 진행했는데, 그때 리캡 형식의 영상을 부탁받았다. 그다음이 파이브 보로(Five Boro) 프리미어 리캡 영상. 아직도 생각나는 건 360사운즈에서 처음 제이락(J Rocc)을 불렀을 때다. 그 파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정말 즐겁게 촬영했지.

 

Somdef – Get Raw (feat. Simo, Ari & DJ Someone)

그렇게 영상을 하나둘씩 찍다가 썸데프(Somdef)의 “Get Raw”로 업계에 첫 발을 들였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DIY라고 말할 수 있는 기분 좋은 기억이지. 예산이 아예 없었다. 하하. 촬영할 때, 디제이 섬원(DJ Someone)이 차에 냉장고를 실어서 학교 캠퍼스까지 날라주고 그랬는데. 고생했지만 그래도 즐거웠지.

 

이후 기린, 무드슐라 등 여러 뮤지션들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영화광 정충진이 뮤직비디오로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면? 아무래도 즐겨보던 영화와는 문법이나 스타일이 달랐을 텐데.

다른 장르라고 봐야지. 트랜지션이나 인물을 드러내는 방식을 고려할 때, 차이가 생기는 것 같다. 물론 서로 스타일 일부를 차용할 수는 있다. 워낙 영화를 좋아해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연출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편집 과정에 영향을 준다. 무의식적으로 내 작업에 스며드는 거지 이건 좀 다른 얘긴데, 나는 단 한 번도 콘티대로 편집한 적이 없다. 콘티를 가끔 그리기야 하지만, 머릿속에만 담아두고 현장에서는 꺼내보지 않는다. 상황만 숙지하고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촬영한다. 편집할 때도 콘티대로 하려고 하면 잘 안 된다. 실제 현장과 콘티는 다를 수밖에 없어서 콘티대로 흘러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검정치마 – 내 고향 서울엔

검정치마의 “내 고향 서울엔”이 대중에게 적잖은 호응을 얻었다.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완성한 작업물인가?

처음 조휴일 씨와 미팅할 때 서로 서울에 대한 기억을 공유했다. 80년대 서울, 88올림픽, 옛날 유람선, 63빌딩과 같은 이미지들. 그러면서 본인이 등장하지 않고, 중년 배우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내게 말했다. 그런 식으로 대화를 이어가다가 이병준 배우를 섭외하고 자연스레 세션도 진짜 연주자들이 아닌 가짜 밴드 형식으로 연출했다.

 

뮤지션들이 선호하는 감독으로 잘 알려졌다. 반면에 본인이 직접 나서서 제안한 적도 있나? 혹은 그러길 원하는 뮤지션이나 다른 아티스트, 친구가 있다면.

내가 명함 돌리고 그러질 않아서.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누군가의 뮤직비디오를 찍어보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주변에 재미있는 친구들을 개인 프로젝트 형식으로 담고 싶다. 이건 항상 생각하는 부분이다. 실제로도 이래저래 찍고 편집해보고 하는데,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공개하지 않았다.

 

주변 인물에 관한 다큐멘터리인가?

그렇긴 한데 쉽지 않다. 다큐멘터리야 언제나 관심 있는 장르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항상 무너진다.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 장르다. 음악이 상당 부분 흐름을 끌고 가지 않나. 곡에서 힌트를 상당수 찾을 수 있다. 다큐는 적어도 뭐 하나를 찍으려면 시간을 오래 들여야 하는데, 이걸 찍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항상 무너지고 만다. 내가 대체 뭘 알아서 이러고 있지, 이런 생각도 들면서 하다가 그만두고. 또 하다가 그만두고.

 

다큐멘터리를 만들려면 왠지 좀 뻔뻔하고 우직하게 밀어붙여야 할 것 같다.

나는 촬영 현장의 느낌이 중요한 타입이다. 내가 촬영하면서 불쾌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 있으면 클립을 제대로 못 본다. 거기서 무너지는 거다. 다큐멘터리 수업에서는 ‘왜’에 관한 질문을 많이 던진다. 근본적인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는 작업이 선행된다. 나는 내가 왜 이 작업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 게 태반이라 개인적으로 이러한 질문들이 흥미로웠다. 냉정하게 돌아보면 사실, 별 의미 없는 작업도 많거든. 내가 왜 살지? 내가 이걸 왜 찍고 있는 거지? 따위의 질문들.

 

그렇게 질문을 되뇌다 보면 자칫 염세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서 동기부여를 얻는가?

멋진 그림이 나올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항상 시작할 때는 의욕적인 편이다. 이미지를 상상하면 즐겁고, 내가 찍고 싶은 이미지를 정리하다 보면 안에서 끓어오르는 게 생긴다. 물론 예상대로 다 되지도 않을뿐더러 우여곡절도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왜’에 관한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은 어찌 보면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는 내 미래가 딱히 밝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루고 싶은 예술적 성취는 있지만, 그거야 뭐 개인만족이니까. 특별히 부지런한 사람도 아니고, 야망이 큰 것도 아니다. 그냥 해 뜨고 지는 걸 보면서 만족하고, 좋은 영화나 음악 즐기고 주말에 술이나 처먹는 게 전부다. 술 먹을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 혼자 지낸다. 내 안에서 정리되는 기분도 들고 좋지.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살고 싶은데. 작업하다가 소주 좀 먹고 또 하루 종일 자는 삶.

 

홍상수 감독의 열렬한 팬이다. 그의 작업에서 어떤 영감을 얻나? 실제 본인의 개인 작업물인 “This is everything”에서도 감독의 목소리를 빌렸다.

한국, 그중에서도 서울이라는 곳이 내게는 되게 감옥 같다. 지하철 노선도나 지도를 펴놓고 몇 달 간 개인 경로를 펜으로 표시하면 아마도 종이가 뚫릴 것이다. 그만큼 단조롭다는 뜻인데, 홍상수는 그 안에서 다른 지점을 발견하는 듯하다. 그러니 지루할 틈이 없지. 인물의 대사를 구현하는 방식도 놀랍고, 무엇보다 인물의 대사에서 드러나는 감독의 실존주의적 태도에 매력을 느낀다. 이 순간에는 이게 전부라고 말하는 그 느낌. 그걸 표현할 수 있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홍상수다.

 

지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면.

영화 “그 후”에서 등장하는 택시 신(Scene). 그야말로 마법 같은 순간. 기주봉(택시기사 역)이 눈이 온다고 말하니 김민희가 창문을 내리고 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갑자기 눈이 내려서 예정에 없던 대사를 기주봉이 말하고, 그 순간에 김민희가 반응했다고 하는데 그 6분은 정말 콘티로 백날 생각해도 나올 수 없는 영화적인 순간이었다. 뮤직비디오를 계속 찍다 보면 편집이라는 작업에 악감정이 생길 정도로 지리멸렬하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 택시 신과 같은 작업으로 해소하고픈 욕구도 있다.

 

가장 많이 돌려본 영화는 무엇인가?

이와이 슌지의 “4월 이야기”. 회수로 따지면 가장 많은 것 같다.

 

영화감독 짐 자무시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중국 황제에 관한 영화보다 자신의 개를 산책시키는 한 사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중략) 나는 미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망 따위의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충진의 영화관, 나아가 삶의 철학이 있다면 듣고 싶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무엇을 표현하더라도 뻔한 클리셰를 지양하려고 한다. 아니면 너무 뻔해서 컬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지점을 찾는다든지. 짐 자무시쯤 되는 사람이야 명확히 자신의 영화 철학을 말할 수 있을 테지만, 나는 아직 “이게 내 신념이에요”라고 말하기 부끄럽다. 나는 그저 카메라를 정지시켜놓고 그 프레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는 걸 즐긴다. 반면에 커머셜이 추구하는 어떤 극적인 연출에서도 어떤 쾌감을 얻는다. 지금 내 입장에서는 비틀어보기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같은 것도 다르게 보는 일.

 

반면에 무엇을 지양하는가?

줏대 없이 남 따라하는 거.

 

동료들과 함께 30days VHM 등 DIY 전시, 이벤트를 기획했다. 주변 창작자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에 참여하고 지켜보면서 무엇을 느꼈나?

솔직히 말하자면, 별 의미는 없다. 재밌게 논 거지. 재밌게 망한 기억? 하하. 돈 써가며 참여한 입장에서 당연히 어떤 식으로든 의미는 만들 수 있지. 조언까지는 아니지만, 한 마디 보태자면 행사를 위해서 주먹구구식으로 준비하면 그 콘텐츠와 구색이 흐려지고 성취감까지 놓칠 수 있다. 하는 데 의의를 둘 수는 없는 거니까. 뭔가를 하려는 시도는 충분히 응원할 만하지만.

 

흔히 언더그라운드라고 말하는 이곳에서 활동하며 드는 생각은.

참 웃긴 일이 많다. 가장 사건사고가 많이 생기는 이유는 버짓, 바로 돈 때문이다. 친분을 빌미로 그냥 해달라, 재밌는 거 한 번 같이 만들어보자, 뭐 이런 얘기로 공짜 작업을 만드는 상황들. 하하. 삼세번까지는 좋다 이거야. 네 번째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서로 재밌는 걸 만들기 위해 DIY 정신으로 만든 좋은 작업도 있고, 의 상한 경험도 있다. 순수한 협업이면 클라이언트처럼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바꿔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거지. 당연히 곡을 듣고 느낀 나만의 해석이 있는 건데. 다들 자기 욕심으로 싸우는 거다. 어떤 애들 보면 영상이나 사진 찍는 사람들이 다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줄 안다. 가소롭지. 언더그라운드라고 하는 곳이 이런 게 참 재밌다. 그 우스운 지점이. 하하.

 

한동안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염리동에 살았다. 철거 전 염리동 주변의 풍경을 영상에 담아 비미오에 올린 걸 봤는데, 이 동네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나?

의미가 크다. 대학 졸업하고 기숙사에서 살다가 도망치듯 들어간 곳이 염리동이다. 첫 작업실이자 월세집이었지. 집주인 할머니도 너무 좋으신 분이었다. 동네는 게토였는데, 좋은 기억이 많다. 살던 곳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었다는 이야기는 뉴스에서나 봤지, 이렇게 쫓기듯 이사하는 사람이 내가 될 줄은 몰랐다. 그때부터 서울의 주택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았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변천사는 그야말로 게임 같다. 나처럼 월세살이 하는 사람들이야 뭐, 추억이 조금 밀리는 정도지만, 오랜 시간 터를 잡고 산 주민들은 상심이 크겠지. 염리동을 계기로 서울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찍고, 공부했던 것 같다.

 

“금붕어를 붕어빵으로 만드는 방법”, “태평소 산조”, “empty world hypothesis” 등의 영상에는 사회적으로 은유하는 이야기가 내포되어있다. 정충진이 드러내는 욕망의 기저에는 한국사회를 향한 분노나 냉소가 자리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작업 역시 분노, 열등감 같은 감정에서 비롯된 게 전부다. 내가 싫어하는 사회의 모습을 어떻게든 비꼬고 싶은 거지. 나이를 먹으면 부드러워진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시간과 여유가 된다면 계속해서 사회적 이슈를 바라보는 시선을 영상으로 풀어보고 싶다. 좆같은 건 좆같다고 말해야지.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된 사회를 그려본 적이 있나?

그런 걸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갈등이 없어질 수 있을까 싶다. 인간이라는 게 본디 싸움을 좋아하고 편 가르기 좋아하고 그래서.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언제나 문제가 발생하니까. 좆같은 일은 언제나 생겨난다.

 

Life and Time – 정점

최근 라이프앤타임의 두 번째 정규 앨범 [Age]의 뮤직비디오 세 편을 도맡아 촬영했다. 그중에서도 히말라야까지 가서 완성한 “정점”이 인상적이었는데,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나.

원래 그 기간에 히말라야에 갈 생각으로 비행기 티켓까지 끊어놓은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라이프앤타임 진실이 뮤직비디오를 제안했다. 같이 대화하다 보니 또 끓어오르는 게 생겨서 같이 가자고 했다. 다 같이 고산병 걸리고, 비행기도 놓치고, 산사태 피하느라 차 두고 걸어다니고, 별의별 일 많았지.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찍었다.

 

기존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레이어의 중첩이나 특별한 효과 없이 이번 “정점”에서는 자연의 용모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그렇게 찍을 수밖에 없다. 두 눈으로 대자연을 맞닥뜨렸는데, 다르게 찍을 방도가 없는 거지.

 

뮤직비디오 외에도 네팔에서 촬영한 개인 작업물 “Lunch Time”, “Only Once Away My Son”을 비미오에 올렸다. 그중 “Lunch Time”은 앞서 말한 듯, 카메라를 열어두고 그 프레임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정충진의 성향이 드러난 작업이다. 한 여성이 밥을 먹는 그 장면에 어떤 호기심이 생긴 건가?

낭떠러지인데도 너무 천연덕스럽게 밥을 먹고 다시 유유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이 한 편의 영화 같았다.

 

Only Once Away My Son

“Only Once Away My Son”은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상황을 인지하기 힘들다. 누군가의 죽음에 관련된 것 같은데, 붉은 색채와 파편적인 이미지에서 전해지는 감정이 왠지 모르게 무거웠다.

힌두교인의 화장 풍습이다. 편집하지 않고 그냥 죽 찍어서 올렸다. 찍다 보니 내가 왜 이걸 편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남의 장례식을 편집해서 뭐하겠나 싶어서 그냥 올렸다. 그때 이상한 기분에 홀려서 찍은 것 같다.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의식 같은 건데 다들 흥을 띄우는 가운데 유가족이 오열하는 모습이 유독 눈에 걸렸다.

 

작년에도 히말라야에 다녀왔다. 이번이 두 번째 네팔행이었는데, 이곳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나?

일단 물가가 싸다. 휴양지라고 생각하고 가면 힘든데, 약간의 고생만 감수한다면 그다음부터는 거의 공짜다. 특히 산 속으로 들어간 순간부터는 정말 싼 가격으로 대자연을 느낄 수 있다. 숙박이나 식사 모두 거저에 가깝다. 안나푸르나 같은 곳을 그 가격에 그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지. 말로 형언하기 힘든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원근법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경험을 한 달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안에 변화가 찾아온다. 무작정 걷자고 마음먹고 며칠간 걸었더니 어느새 내가 바뀐 거지. 동물조차 이곳에서는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다. 주인도 없는 들개들인데, 그냥 지네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더라. 자고 싶으면 마음껏 자고, 사람을 봐도 심드렁하고. 그냥 어슬렁거리다가 트래킹하는 사람들 보면 같이 좀 걸어주기도 하고. 소탈한 사람만큼이나 동물 역시 달랐다.

 

힘든 여정을 마치고 나서 특별히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동료가 있나?

2주간의 스케줄 동안 함께할 촬영감독을 구하기 힘들었다. 페이, 스케줄 등 조건을 맞추기 힘들었지. 사실 페이도 적고, 기간도 2주씩이나 되는데 누가 선뜻 나서겠나. 결국 내가 드론을 배워서 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토미가 자기가 지금 LA인데 왕복 비행기표만 내달라, 그러면 장비까지 다 들고 가겠다고 했다. 너무 고마웠지. 페이 협상까지 다 끝내고 나서 그를 네팔로 불렀다. 그에게 고마울 뿐이다. 미안하고. 이 기간을 함께하면서 우린 서로 신뢰가 생겼다.

 

인스타그램을 활발하게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주변 친구들과 술 먹고 장난치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만큼은 꾸준히 올리고 있다.

분위기 잡고 술 마시는 게 싫다. 여자 한 번 꼬셔보려고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 친구 옆에서 산통 깨는 일도 재밌다. 소주 좋아하는 애들끼리 개소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게 좋다. 안 그래도 사는 게 치열한데 놀 때는 병신처럼 놀아야 즐겁지.

 

소주를 고집하는 이유라면.

맥주는 더부룩해서 싫고, 와인은 알러지가 있어서 그런지 안 받는다. 그냥 소주가 편하지. 가끔은 위스키도 좋다.

 

최고의 술안주는?

안주를 찾아 먹는 편이 아니라 딱히 선호하는 건 없다. 그냥 오이나 마른안주 정도면 좋다.


진행 / 글 │ 권혁인
사진 │ 배추

*해당 인터뷰는 지난 10월에 발간된 VISLA Paper 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 및 정기구독을 통해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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