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DELIGHT – 올 여름, 갖고 싶은 것, 세 가지

쇼핑은 현대인의 스트레스 해소에 아주 거대한 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 자신도 평소에 쇼핑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쓸데없다고 느껴지더라도 왠지 갖고 싶은 물건을 간만에 지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언제나 돈은 한정적이고, 그 안에서 사야 하는 이유와 사지 말아야 하는 이유의 대결 구도 속에서 갈등한다. 사야 하는 이유의 서포터로 자주 등장하는 게 바로 계절이다. ‘이번 겨울에는 롱패딩을 장만하자’, ‘여름에 캠핑 갈지도 모르니까 캠핑 의자를 사자’, 뭐 이런 식. 다가오는 여름, 우리 VISLA 친구들은 여름이란 계절 속에서 어떤 구매의 꿈을 꾸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필요에 의해, 욕망에 의해, 자기만족을 위해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적어나간 리스트를 읽어가며 자신이 갖고 싶은 위시리스트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살 수 있든, 살 수 없든 말이다.

 



백윤범(Photographer)

1. 방독면

작년과 올해 매번최악이라는 단어를 서슴지 않게 내뱉던 기상청의 미세먼지 관련 예보를 보면서 어느새 내 하루의 시작과 끝도 미세먼지를 확인하기에 여념이 없다실제로 지난 3년 사이에 ‘미세먼지 나쁨일’ 수가 20%쯤 증가했다니 듣기만 해도 왠지 목이 칼칼해지는 건 기분 탓일까.

봄보다 한결 낫다고 하지만 여름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방구석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미세먼지 마스크 또한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아직 방독면을 쓰고 거리를 누비기엔 내가 봐도 어색하고 남이 봐도 부담스럽겠지만 이대로 가다가 내가 먼저 죽게 생겼으니 난 써야겠다. 누가 알아? 어느 아티스트가 신발을 해체해 마스크를 만들던 것처럼 가까운 미래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나쁨을 기록하는 날이면오늘 길 가다 마주친 사람의 방독면은 힙했네“. “출근길 버스에서 중국 동부 한정으로 출시한 방독면을 봤네라는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올지?

2. 쿨조끼

지난여름 정말 더웠다. 더운 게 좋고 여름이 좋다던 지인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불가마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올해는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나 같은 땀쟁이는 뭘 입어야 하나’라고 검색하던 중에 쿨조끼라는 게 눈에 들어온다. 냉매, 그러니까 얼음팩을 주머니 사이사이에 넣어서 온도를 낮춘다니. 단순 기능성 소재만 가지고 입으면 당장에 얼어 죽는 것처럼 광고하던 홈쇼핑 제품과는 좀 달라 보인다. 슥하고 훑다 보니 어떤 제품은 한 시간이면 얼음이 다 녹아 쓸모가 없다니 이러한 부분도 잘 확인해봐야겠다. 날씨가 뭐라고 밖에 나가기 두렵기만 한 것인지미친듯이 더운 날,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까지 심해 쿨조끼와 방독면을 함께 쓰고 나간다면 참 압권이겠다.

3. 태양광 자동충전 LED랜턴

빵빵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먹는 수박만큼 최고의 피서가 또 있을까. 하지만 집 밖을 나와 산바람, 강바람, 바닷바람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맵지만, 자꾸 들어가는 낙지볶음 마냥 여름이란 계절을 더욱 당기는 마력일 터. 이럴 때 이 LED 랜턴은 먼 캠핑부터 가까운 한강 나들이까지 꽤 요긴해 보인다.

며칠 전 본지를 통해 어느 브랜드 소식을 전하면서 알게 된 제품으로 몸통인 PVC 수지는 디퓨저 기능을 통해 주변에 빛을 보내고, 사용하지 않을 땐 그대로 압축해 컴팩트하게 보관할 수 있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태양광 패널 부분에는 USB 단자가 있어 휴대폰과 같은 전자제품 충전도 가능하다고. 가격도 만 원대라 부담이 없다.

 



강지훈(Photographer)

1.Louis Vuitton Millionaire Sunglass

머리가 큰 사람이 쓸 수 있는 선글라스 중 최고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루이비통에 온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새롭게 바꾼 이번 밀리어네어 선글라스 모델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가격은 100만원 정도로, 한 번쯤은 노려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굴의 많은 부분을 가리면 가릴수록 보기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으니 올여름 얼굴을 최대한 가려봅시다.

2.Leica Q-2

여름이라고 한다면 더위가 떠오르지만, 장마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라이카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Q의 후속작 Q-2가 출시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방수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방진, 방습이 가능해서 전천후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 같아 구매하고 싶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미세먼지가 있으나 마나 언제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행복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카메라를 사고 첫 컷은 여자 사람 사진을 찍어야 고장 없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속설이 있으니 첫 컷은 여자 사람 사진을 찍어 봅시다.

3. Supreme Kayak

여름은 물놀이의 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물은 좋아하지만, 수영을 못하기에 튜브 같은 것 위에 올라가 있는 걸 좋아합니다누울 수도 있어서 안성맞춤입니다한강에서 카약을 탈 수 있는 것 같은데 튜브 위에 누워 일몰을 보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잘하면 여자분과 동승할 기회도 생길지 모르니 구입해 봅시다.

 



김용식(Editor)

1. Tom Sachs Shop Chair

이젠 알 사람 모를 사람 다 안다는 톰 삭스(Tom Sachs). 나이키와의 협업을 통해 스트리트 컬처 신(Scene)에 이름을 남겼다…….는 모양인데, 스니커에 도통 관심이 없으니 잘 모르겠고, 개인적으로는 프랭크 오션(Frank Ocean)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그를 알고 있다. 프랭크 오션의 가장 최근 공연이었던 2017 FYF Fest 무대에서 그가 앉아있던 의자가 바로 이 제품으로, 지난 3 8일에 톰 삭스의 공식 웹사이트에 한정 판매되었고, 며칠 이내에 완판되었다. 디자인 가구 세계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고급 취향의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예쁜 의자에 작가의 핸드 넘버링까지 더해졌다면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아티스트 혹은 브랜드의 자질구레한 잡동사니, 소위떼기라고 불리는 것들을 지금도 참 좋아하는데, 언젠가는 이 의자 같은 2000달러짜리 예술품도 일말의 동요 없이 질러버리는 쿨함……. 아니 재력을 갖고 싶다. 아니면 소비 욕구만 불러일으키는 무의미한 인터넷 서핑을 그만두는 편이 더 쉬울지도.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는데, 그래서 이게 여름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전혀 상관없다 하하. 구멍 숭숭 뚫린 게 시원해 보이긴 하네.

2. STUSSY SPRING ‘19 CAMPAIGN TEE

주로 브랜드 미상의 저렴한 구제 의류나 50% 이상의 할인율이 적용되는 샘플 세일을 노리는 나의 옷장은 대부분 6만원을 넘지 않는 옷들로 이루어져 있다. 의복을 기호 삼아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표현해야만 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내 옷들이 표현하는 나는거지새끼’ 정도 되려. 가벼운 지갑을취향이라는 미명 하에 숨겨보려 나름 신경 써서 고른 옷들이니 느낌 아는 형 누나들은 알아채 줬으면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만 결국빈티지그런지같은 고급 외래어로도 수식하지 못할 것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샌가 패션에 대한 관심도 많이 떨어지게 되어 안목이랄 것도 없어졌지만, 최근 발매된 스투시(Stussy)의 캠페인 티셔츠는 오랜만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리트 패션계의 큰형님답게, 세상을 떠난 칼 라거펠트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아 샤넬 뷰티 광고를 패러디한 본 제품은 긴 설명 없이도 스투시의 쿨함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비록 완판되어 지금은 웃돈을 주고 구매해야겠지만, 올여름에 이 옷을 입고 다니면 그래도 뭘 좀 아는 놈처럼 보이지 않을까….하는 얄팍한 생각이 솔직한 내 마음이다. 누가 티셔츠를 보고 말이라도 걸어온다면 제대로 설명도 못 하겠지만.

3. 공기청정기

미세먼지 농도 수치가 끝도 없이 치솟던 어느 날, 잔뜩 불평하는 나에게 중국 유학을 다녀온 친구가 ‘중국에서는 이 정도면 피크닉 날씨’라며 너스레를 떤 적이 있다. 그땐 그 바보 같은 모습이 왠지 쿨하게 보여서 종전까지 불평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는데, 결국 지난주에 길에서 만난 그도 마스크를 끼고 있더라. 매일 외출 전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는 삶은 내 계획에는 없었는데, 어느새 비 소식보다 미세먼지 수치를 먼저 확인하는 내 모습에서 왠지 모를 격세지감을 느끼는 요즈음이다. 건강한 식사와 운동을 습관화하는 일은 너무나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일은 공기청정기 한 대만 갖다 놓아도 ‘어느 정도 해결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특히 최근에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과 함께 환기도 잘 안 되는 지하 작업실까지 얻었으니, 공기청정기야말로 여러모로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물건일 것이다. 땀 냄새까지 잔뜩 풍기는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으니 늦기 전에 공기청정기를 들이고 싶다.

 



오욱석(Editor)

1. STUDIO D’ARTISAN x GODZILLA

스튜디오 다티산, 스튜디오 다찌산, 스튜디오 다치잔 등 특유의 아리송한 이름 덕분에 다양하게 불리는 요 브랜드가 오늘의 이야깃거리 중 하나다. 스튜디오 다티산 역시 레플리카 데님의 명대사오사카 파이브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 데님 브랜드로 그 의미 역시직인 공방이라는 뜻. 이렇게나 유명한 브랜드지만, 데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 이리저리 웹서핑하며 일본의 데님 아카이브나 패션 저널에서만 그 이름을 확인했을 뿐, 실물 또한 본 적 없었다. 그러나 작년 여름 틈날 때마다 일본 야후 옥션과 라쿠텐을 통해 스튜디오 다티산을 검색했고, 아마 이번 여름 역시 열심히 일야옥을 헤엄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깊은 취미는 아니지만, 괴수 피규어를 하나둘 모으는 걸 좋아하는데, 아뿔싸 재작년 스튜디오 다티산에서 이러한 괴수 러버의 취향을 저격해버리는 고질라 협업 컬렉션을 발매했다. 주인공인 고질라는 물론, 고질라 시리즈에 등장하는 다양한 괴수가 MA-1 재킷과 티셔츠, 셔츠에 고운 자수로 새겨진 괴수 컬렉션으로 한 눈으로 봐도 그 디테일이 상당하다. 모든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으나 그중에서도 나의 욕망을 자극하는 옷은 등짝에 멋스러운 가재와 고질라가 박힌 자수 셔츠다. 고질라를 주제로 한 협업 컬렉션이니만큼, 모든 제품에 그간의 고질라 시리즈를 담고 있으며, 셔츠에는 1966년 개봉한 비운의 망작 “Godzilla vs The Sea Monster”의 한 장면을 가져왔다.

대략적인 내용은 어떤 청년이 동생을 찾다가 열대 섬에 착륙하게 되고, 거기서 거대 바닷가재 에비라와 고질라를 동시에 만난다는 스토리로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 궁금하면 찾아보길……. 아무튼, 허술한 영화 내용과는 별개로 영화의 주인공은 대괴수 둘, 배경인 열대 섬과 스튜디오 다티산의 상징인 돼지와 데님이 한데 어우러지는 세세한 그림 설정이 꽤 재미있다. 가슴팍에 요코스카 간지로 새겨진 자수 덕분에 괴물딱지나 좋아하는 어린애 같다고 놀림 받을 것 같지도 않고, 꽤 마음에 드는 여름에 입고 싶은 셔츠 남바 완. 발매 2년이 지난 지금 물건을 찾기도 힘들지만, 올 여름 꼭 입고 싶습니다.

2. FUJI Transonic 2.3

2019년의 1분기가 끝난 이 시점, 가장 재미있게 본 영상물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어떤 망설임도 없이 본격 로드바이크 애니메이션겁쟁이 페달이라고 하겠다. 소년 점프의 3대 이념우정, 노력, 승리이 모든 것이 녹아있는 어찌 보면 소년 만화의 모든 클리셰를 답습하는 뻔하디 뻔한 내용이지만,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볼 정도로겁쟁이 페달의 몰입도는 굉장했다. 평소 움직이는 걸 그리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나도 그 땀내 나는 레이스를 흉내 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말이지.

허벅지가 터져나가고 혓바닥이 턱 밑까지 내려오는 혹독한로도 레이스를 보는 것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콘텐츠라면, 등장인물이 타는 로드바이크를 디깅하는 것. 실제 존재하는 로드바이크 브랜드 그리고 그 업체에서 생산하는 모델을 찾아보며, 각 자전거의 디자인과 스펙을 비교하고, 그 어마어마한 가격을 구경하는 일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어찌나 즐겁던지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바이크 브랜드 웹사이트를 타고 타다가 후지(FUJI) 사의 트랜소닉(Transonic)을 만나게 되었다. 프레임을 이루는 각 튜브의 안정적인 비율과 임팩트로 똘똘 뭉친 컬러링은 절로 아름답다는 말이 튀어나오게 한다. 앞서겁쟁이 페달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겁쟁이 페달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후지의 로드바이크를 타지 않는다. 전 세계 로드바이크 라이더, 마니아에게 크나큰 배덕감이 들지만, 그분들 역시 절륜한 외형에서 나오는간지를 완벽히 배제할 수 없을 터. 로드 초보지만, 200만 원짜리 후지 트랜소닉 2.3 올여름 꼭 타고 싶습니다…

3. 물채송화

답답한 반지하 단칸방에서 승강기가 없는 6층 건물로 이사 온 지 어느덧 1년이 지나간다당연히 나의 별것 없는 라이프스타일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그 새로운 행위로 식물에 물을 주는긴 하루 작은 의미를 지니는 일과가 생겼다지금까지 몇 뿌리의 식물을 죽이며뭔가를 키우는 일에는 소질이 없다고 느꼈지만웬걸 이제는 쑥쑥 자라는 식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게 총 여섯 종류의 반려식물을 키우는 지금이번 여름에는 새로운 종류의 식물을 집에 들이려 한다당장 눈에 들어온 것이 물채송화라는 수경 식물로 ‘앵무새 깃이라는 앙증맞은 별칭도 가지고 있다일단 어항에서 키우기 때문에 따로 물을 줄 필요가 없다는 점이 물채송화의 가장 큰 매력이며생명력 또한 무척 강해 쉽사리 죽지 않는다고 하니 수경재배 초보자인 나에게는 이보다 좋은 수경 식물은 없어 보인다무엇보다 그 줄기가 꽤나 자유분방하게 자라 뭔가 전위적인 멋이 있달까과연 어떤 친구가 나와 함께 끈적한 여름을 보낼지 모르겠지만그 어딘가에 있을 물채송화씨 올여름 꼭 키워보고 싶습니다

 



박진우(Graphic designer)

1. Life Sport Sweat Pants

브랜드라는 단어와 연결 짓기 조금 생소한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시작된 이 브랜드의 이름은 ‘Life Sport’다.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이 브랜드는 근래에 본 적 없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들의 웹사이트에 적힌 소개 글은 이렇다.

“Sweatpants are everywhere, they defy emotions of socialization, gender and age. Sweatpants unite contrast, they are a symbol of diet or parallelism for some, a statement of ultimate resistance and emancipation for others”.

쿨하게 영문을 틱하고 복사해놨지만, 사실 나는 영어를 잘 못 하기에 단어 단어를 연결해서 대충 뜻을 보면 왠지 너무 멋지다. 웹사이트 내에 아카이빙되어있는 관련 전시나 행사 이미지를 보면 그들의 정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이미지에선 상투적인 멋 내기, 폼 잡기의 개념은 그들에게 진작에 중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편하게 스웨트 팬츠를 입은 이미지들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임을 보여준다. 슬슬 더워지는 초여름날 야자수가 자수 처리된 ‘Life Sport’ 스웨트 팬츠를 입고 쪼리를 질질 끌며 출근하면 그 이상의 편함은 없을 것만 같다. 역시나 멋진 브랜드를 포괄하는 단어는 ‘태도’가 아닐까.

2. Porsche 964

지금이나 앞으로나 비현실적인 선택이지만, 강력히 염원하기에 적는다. 서울은 복잡한 도시, 차도 많다. 대낮, 서울 시내 운전은 나에겐 괴로운 일이다. 그 반감으로 차에 대한 욕심도 없다. 드림카라는 것도 딱히 없다. 하지만… 작년 겨울 일본 여행에서 중고등학생 시절 열렬한 팬이었던 일본 탤런트히로스에 료코를 시부야 근처에서 우연히 목격했다. 진짜 말이 안 되는 우연으로 목격했다. ‘우연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위대한 뜻을 가졌는지 깨달았다. 목격 당시 료코는 야쿠자 머니의 냄새를 풍기는 빈티지 포르쉐를 타고 내 앞에 등장했다. 어쨌거나 그 뒤로 왠지 포르쉐(Porsche)가 드림카가 되어버렸다. 당시 찍은 사진을 단서로 모델명을 찾아냈는데, 아마도 ‘Porsche 964 Carrera 2 Coupe’. 여기서 964 1989~1994년 사이 생산된 모델이다. 료코가 탄 964 모델은 오직 18,219대가 생산됐다. 난이도가 좀 있는 드림카라고 할 수 있겠다. 햇살 좋은 여름날 964를 타고 서울춘천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강원도의 모던한 별장으로 유유자적 떠나 별장 내 마련된 자갈이 깔린 주차 공간에 우둘투둘 소리를 내며 주차하고 싶다.

3.가레산스이

가레산스이(かれさんすい, 枯山水)란 못 따위의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 등으로 산수를 표현하는 일본의 정원 양식이다. 영어로는 ‘Zen garden’이라고 한다. 2000년대 애플의 맥 공식 배경화면 리스트에서 처음 목격한 후 그 정적인 아름다움 빠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로는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교토 여행을 하게 되면 구경할 수 있는 것 같다.

오래된 담벼락 내 넓게 펼쳐진 자갈과 돌, 풀 등으로 표현된 산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평소 집중을 잘 못 하는 나지만 우황청심환을 먹은 듯한 차분한 마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너무나도 빠른 현대사회의 속도와 관계없이 내가 원하는 속도로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며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는 나의 독립주택의 앞마당에 일본의 정원 장인을 고용해 나만의 가레산스이를 구현하고 싶다. 무더운 여름날 대청마루에 앉아 부채질하며 가레산스이를 느긋하게 바라보는 상상을 해본다.


기획 / 커버 이미지 │ 박진우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