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드레스코드 : 차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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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란 도대체 어디서 파생된 말일까? 건달도 아니고 조폭도 아닌 어중간한 계층을 이르는 이 말의 어원은 6·25 전쟁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로부터 태어났다. 동냥하는 전쟁고아를 이르던 ‘동냥아치’가 줄여져 지금 흔히 쓰이는 ‘양아치’가 된 것. 반백 년을 훌쩍 넘긴 지금에 이르러 동냥아치는 사라졌지만, 양아치는 남았다. 지금은 행실 및 인성이 불량한 사람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건달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한 사람, 혹은 그 무리를 지칭하기도 하는 양아치는 사자와 호랑이 주변을 맴도는 승냥이 같은 느낌이 든다. 앞서 소개했던 훌리건, 로 라이프가 복장에 대한 어떤 목적의식이 있었다면, 이번에 소개하려는 차브(Chav)는 그 궤를 조금 달리한다. 전형적인 영국의 양아치, 그 패션을 일컫는 차브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그들만의 리그를 확실하게 표방한다.

차브3무리지어 있는 차브족

최근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를 기억하는가. 지겹게 봐왔던 영국의 첩보 기관 M16이 아닌 킹스맨이라는 가상의 첩보기관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큰 호평을 얻은 킹스맨은 복식에 관한 ‘클래식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주며, 몇 년 사이 널리 확장한 클래식 열풍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하지만 킹스맨에서 보여주는 ‘룩’은 클래식만이 아니다. 새로운 킹스맨이 되기 위해 문을 두드린 또 다른 주인공 에그시가 초반에 보여줬던 패션은 영국 양아치 차브(Chav)의 전형이다. 적당히 굽은 모자의 챙, 노골적인 삼선의 아디다스 져지는 차브라면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할 아이템이다. 단정함을 완벽하게 소거한 그들의 패션은 신사의 나라라는 칭호를 무색하게 한다. 동시에 차브에서 클래식으로 넘어가는 에그시의 복장은 영화 내 주요한 복선을 제공하기도 한다.

Kingsman-The-Secret-Service-2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중 영화 초반 차브로 표현되는 에그시

왜 차브인걸까. 양아치도 동냥아치라는 어원의 아버지가 있듯이 차브 역시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말은 아니다. 차브의 탄생에 관해 세 가지의 속설이 있는데, 반항적인 젊은 광부를 뜻하는 Charva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고, 공공 임대 주택에서 폭력을 일삼는 ‘Council-Housed And Violent’의 준말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아이를 뜻하는 집시어 ‘Chavi’가 변형되었다는 설이다. 차브는 영국 내에서 상당히 불량한 이미지로 낙인찍혀 있다. 어원 그대로 차브는 영국의 10대가 주를 이루며, 가끔 철들지 않은 소수의 20대를 포함한다.

차브 패션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명품 브랜드 버버리(Berberry)를 빼놓을 수 없다. 앞서 소개한 로 라이프가 폴로(Polo)를 찬양했다면 차브에게 버버리는 어떤 상징과도 같다. 값싼 싸구려 패션을 추구하는 그들에게 버버리와 같은 명품을 선호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버버리에서 출시한 노바체크 캡은 차브족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판매의 이익보다 차브족이 애용하는 브랜드라는 오명에 골치를 썩던 버버리는 결국 노바체크 캡의 생산을 중단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프라다(PRADA)의 검정색 운동화가 차브족에게 인기를 끌어 영국 내 판매를 중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_86차브가 열광하는 버버리 야구모자

prada-sneakers-womens-am-44287-0p영국내 판매를 중지한 프라다 스니커

좀 더 깊숙이 들어가자면 차브의 드레스코드를 설명하는 여섯 가지 정도의 특징이 있다. 머리부터 훑자면 방금 언급한 버버리 노바체크 패턴의 야구모자, 아디다스 트랙탑과 같은 운동복 상의, 금으로 된 악세사리(보통은 가짜다), 트레이닝 팬츠, 더러운 청바지, 바지 아랫단을 감싼 흰 양말, 마지막으로 프라다, 아디다스,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는 것이다. 조금 더하자면 이들은 최신형 전자기기를 선호하는데, 주로 아이팟으로 힙합을 듣는다. 2006년 즈음이 차브의 전성기였지만 그 명맥은 여전한 듯 하다. 앞서 버버리, 프라다와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차브가 착용하는 제품에 대한 제재를 가했지만, 사실 차브 대다수는 주로 가품을 착용했다. 그러니 기업의 이러한 제재에 도 불구하고 딱히 제품을 구하지 못한 경우는 없지 않았을까?

차브5자유분방한 모습의 차브족

못된 차브이런 못된 행동을 일삼기도 한다

차브족은 영국 하류 계층의 자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자신의 출생 성분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드러낸다. 가품과 싸구려 금목걸이를 착용하며 상위 계층의 문화를 비웃는 행위는 기존 젊은이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과는 확연히 다르다. 당당한 차브족의 태도는 싸구려, 저속함을 이르는 키치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차브족 문화가 계속 대두되는 것은 차브 문화가 단순히 그 변두리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심 문화까지 그 영역을 확장한 차브 문화는 영국의 유명한 축구선수 웨인 루니,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제니퍼 로페즈 등이 차용하는 하나의 ‘패션’이 되었고, 심지어 영국 왕자 역시 차브 패션을 선호할 정도로 영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패션 코드가 되었다. ‘차브’라는 것이 하나의 현상이 되면서 ‘쿨함’의 상징이 된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차브족의 대표적인 웹사이트, 차브스큠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차브문화를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How to be a Chav>

위 영상은 완벽한 차브가 되는 10가지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1. 욕설하는 것
  2. 맥도날드에서 음식을 먹는 것
  3. 쓰레기 같은 차를 사는 것
  4. 그리고 그 차를 더 병신처럼 만드는 것
  5. 임신하거나 임신시키는 것
  6. 패거리에 속하는 것
  7. 밖, 혹은 다리 위에서 언쟁을 벌이는 것
  8.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9. 체포되는 것
  10. 인생을 끝내는 것


가이드라기보다는 차브를 비꼬는 의도가 다분하지만, 차브의 싸구려 문화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참고로 5번과 같은 ‘임신’에 대한 항목은 차브족의 마지막 관문 같은 느낌으로 실제 남자는 임신한 여자친구를 데리고 다니거나, 여자의 경우에 임신을 하는 것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이들의 집단인 차브 세계에서 굉장한 인정을 받는다. 차브의 행동 패턴, 특징은 이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차브 패션의 핵심은 착용한 모든 아이템이 어울리지 않는데 있다. 명품 야구모자에 트레이닝복, 여기에 더한 금목걸이는 쉽게 매치할 수 없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그런 부조화를 개성으로 만들어버린 차브 문화는 한 세대를 휩쓸며 ‘저급한 개성’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냈다. 날 것 그대로의 차브에 비하면 외려 하이엔드 브랜드의 단골 주제 ‘그런지 룩’은 속물적이다. 날 때부터 하층민으로 분류되는 자신의 출생성분을 그대로 드러내며 날 것을 표방하는 그들의 문화, 하류 문화라고 해서 그 의미까지 무시하는 시각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그들의 행위를 단순한 양아치, 불량의 단어로 묶기엔 무언가 서글프다. 현재 차브 스타일은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차브’라는 단어는 여전히 유효하다. 유행이 아닌 사회 현상으로 굳어진 차브는 지금의 달관세대, 사토리세대를 떠오르게 한다.

글 ㅣ 오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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