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f Simons Fall / Winter 2017 뉴욕 패션위크 컬렉션 리뷰

라프 시몬스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우아한 방식으로 펑크를 이야기하다. 
지난 2월 1일, 뉴욕 첼시에 있는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에서 라프 시몬스(Raf Simons)의 2017 Fall / Winter 뉴욕 패션위크 남성복 컬렉션이 열렸다. 작년 8월,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로 선임된 라프 시몬스는 뉴욕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며 그의 독립 레이블인 라프 시몬스 컬렉션이 디딜 장소 또한 뉴욕으로 옮겼다.

 

라프 시몬스는 최근 침체된 뉴욕 남성복 컬렉션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새로운 자극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부 매체에서는 그가 뉴욕 남성복 컬렉션을 구원하러 왔다고 표현할 정도로 기대에 부푼 상황이다. 이에 부응하듯 다수의 뮤지션,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바이어 등은 그의 뉴욕행을 환영하며 갤러리를 지켰다. 그중에서도 최근 새 싱글 “Please Don’t Touch My Raf” 의 일부를 공개하며 라프 시몬스에게 존경을 표했던 에이셉 라키(A$AP Rocky)는 가장 설렌 표정으로 프런트에 자리했다.

 

이번 쇼를 앞두고 라프 시몬스는 그의 파트너, 강아지와 함께 뉴욕으로 이주하였다. 이는 이번 쇼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밀접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번 컬렉션은 20여 년 전 처음 뉴욕에서 자유의 여신상과 I♥NY를 마주했던 마음가짐과 생경함 그리고 현재 느껴지는 뉴욕의 젊고 신선함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가 뉴욕에서 컬렉션을 준비하는 시점에 선출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불러일으킨 논쟁적인 정치 상황 ㅡ 반이민 행정명령 ㅡ 은 자신으로 하여금 펑크를 떠올리게 했다고 말했다. 이미 “Kinetic Youth (1998)”, “Riot Riot Riot (2001)” 등 펑크 문화를 뿌리에 둔 작업을 선보였던 그가 2017년에는 어떤 방식으로 이를 풀어냈을까.

 

그는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총리에 대항했던 7~80년대 펑크 뮤지션과 현재 상황에서 연결고리를 찾은 듯하다. 컬렉션의 시작과 함께 들려오는 음악은 록시 뮤직(Roxy Music)의 “In Every Dream Home a Heartache (1973)”. 양성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며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당대 글램록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들의 음악이 울려 퍼지며 컬렉션은 시작되었다.

 

갓 미국에 편입된 이민자로서 ㅡ “American Fashion Great Again”을 위해 초대받은 위치지만 ㅡ 현재의 정치적인 소용돌이를 어떠한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번 컬렉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몫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색감과 중성적인 스타일링의 모델이 주를 이루는 런웨이를 보자면 그가 곳곳에 숨겨놓은 메시지가 썩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자, 그럼 이제 그가 펑크를 다루는 방식을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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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어깨의 테일러드 코트와 구슬 장식의 목걸이, 우아한 컬러와 새틴 소재의 사용. 남성성과 여성성의 충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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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펑크를 표면적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 펑크는 특정한 현상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표현이다. 나는 줄곧 유스컬처를 에너지원으로 삼아왔으며, 펑크의 겉모습을 흉내 내기보다는 그들이 대항했던 방식과 기법을 통해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 라프 시몬스 인터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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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 플랫폼으로써 DUCT TAPE ㅡ 미국식 청테이프 ㅡ 를 활용했다.
“WALK WITH ME”, “NEW DAWN FADES”, “OUT OF NIGHTMARE”, “ANY WAY OUT OF THIS”, “I♥YOU” 등 부드러운 톤과 구호로 메시지를 녹여내는 그의 작업방식은 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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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 시몬스는 아이들이 부모의 유니폼을 꺼내어 입는 방식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밝혔다. 그래픽 티셔츠 위에 걸쳐 입은 넓은 어깨의 코트 ㅡ 아버지의 코트를 연상시키는 ㅡ, 스케이트 보더를 연상시키는 카키색 치노 팬츠와 큰 사이즈의 검정 셔츠 조합,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옷장에서 꺼내어 입은 듯 큰 사이즈의 청록색 작업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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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으로 정착했을 때 그 생경함을 떠올렸을까. 기념품 가게에 수북이 쌓인  I♥NY를 트위스트한 그래픽 니트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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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뉴욕에 온 자신을 환영하는 이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 역시 잊지 않았다.

 

쇼의 후반부 텍사스 출신의 엠비언트 팝 밴드 시가렛 애프터 섹스(Cigarette after Sex)의 “Keep on Loving You (2015)“가 울려 퍼졌다. 현실을 위로하듯 나긋한 음악과 함께 15분간의 쇼는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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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이 컬렉션이 유스(Youth)에게서 영감 받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반대로 그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할 것이다. 나는 모든 걸 내가 처음 컬렉션을 준비하던 순간으로 돌리고자 했다. 내 브랜드의 시작은 유스컬처가 지닌 태도와 옷 입는 방식, 그들이 사회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가의 문제와 떼어놓을 수 없었다. 나는 온전히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갔다. 어떤 면에서는 항상 그러한 마음가짐을 지녀 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라프 시몬스는 쇼를 전후로 치러진 다수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패션계에서는 드물게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의견을 내는 태도를 보였다. 한편으로는 대형 럭셔리 그룹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 레이블로서 그의 브랜드가 지닌 자유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펼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줄곧 유스컬처와 깊은 교감을 추구했던 그는 본인의 강력한 영향력이 미치는 젊은 팬덤에게 자신의 의견을 내는 데 주저하지 말고 이를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덧붙였다. 지금의 어지러운 상황을 마주한 젊은 세대에게 부드럽고 우아한 방식으로 펑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위트가 돋보이는 컬렉션이었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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