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불 뮤직 서울소리 송캠프 #1

슬픈 사실이지만, 우리의 전통, 국악은 현재 대중에게 사랑받는 장르가 아니다. 우리의 소리를 대중에게 널리 전하기 위해 국악과 서양악을 결합하는 시도가 종종 이루어졌지만, 한시적인 ‘시도’에서 더 멀리 나아가진 못한 듯하다. 시간이 지나며 국악은 점점 더 멀게만 느껴지는데, 여기 전통과 국악과 관련된 대중과 국내 음악가의 인식에 변화를 일으킬 움직임이 하나 있다. ‘서울소리(Seoul Sori)’라는 이름의 해당 프로젝트는 레드불 뮤직(Red Bull Music) 주관으로 지난 3월부터 약 1년에 걸쳐 진행하는 거대한 음악 교류의 장이다.

서울소리는 2명의 어드바이저,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 초이스37(Choice37)의 리드 아래 모두 8명의 프로듀서 아킴보(Akimbo), 프랭크(FRNK), 아이오아(IOAH), 라이언클래드(Lionclad), 피제이(PEEJAY), 시모(SIMO), 양양(YangYang), 제이보(ZAYVO)가 참여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첫 시작을 알린 ‘Phase 1’에서 두 명의 어드바이저는 각기 다른 지향점의 샘플팩을 제작했고, ‘Phase 2’에서는 이 샘플팩을 바탕으로 8명의 프로듀서가 개인 곡 작업에 돌입했다.

 

VISLA가 며칠간 취재한 ‘Phase 3’은 지난 7월 19일부터 22일까지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진행한 송캠프(Song Camp)로, 첫날인 19일, 남사당패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가 강연자로 출연해 참여 뮤지션들에게 리듬 섹션에 관한 조언을 건넸다. 20일에는 앨범 [Communion]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박지하가 멜로디 섹션을 강의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송캠프에서는 1차로 작업한 곡을 발전시키는 리뷰 세션을 진행했고, 9명의 프로듀서가 3인 1개 조로 미션 트랙을 제작해 일부 공개하기도 했다.

앞으로 서울소리 프로듀서는 전통의 의미 확장에 초점을 두고 작업에 몰두하여 12월에 전시와 함께 앨범을 선보일 예정이다. 베일에 싸인 이들의 결과물은 벌써부터 많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본 매거진은 총 4일간의 송캠프 일정에 모두 참여해 아킴보를 제외한 모든 프로듀서가 미션 트랙을 제작하는 모습을 영상과 인터뷰에 담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전통, ‘우리 소리’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곡 작업의 진행 상황에 관해 물었다.

 

초이스37

‘서울소리’란 무엇인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음악은 영적인 소통 방식이라고 느꼈다. 국악도 영적 속성에 기반을 두지 않나. 과거에 무당들이 국악의 요소를 활용해 혼령을 불러냈듯이. 현대에 우리가 듣는 음악은 삶의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차이로, 국악을 낡은 음악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요즘에는 발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국악을 가공하여 우리가 원하는 어떠한 소리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아쟁이나 가야금의 주파수(Frequency)를 활용해서 과거의 느낌을 담은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게 바로 서울소리가 아닐까 한다.

 

전자음악이나 힙합 장르는 국악과 비교했을 때, 시대적 간극이 큰 현대 음악이다. 그 갭을 서울소리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그 간극에 다리를 놓는 일이 서울소리의 목적이다. 오래됐다고 여겨지는 과거의 음악과 지금 시대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 서양인은 ‘한국의 소리’를 전혀 모른다. 그들이 언제든지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우리의 소리를 소개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서양인은 ‘동양의 소리’라고 하면 일본이나 중국의 악기, 양식을 떠올리는데, 우리의 소리는 전혀 다른 것이지 않나. 우리는 한국 고유의 소리를 세상에 소개하고자 한다.

 

샘플팩을 만들면서 한국의 소리가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인접한 아시아 국가의 소리와 뭐가 다르다고 느꼈는지?

비록 중국이나 일본 악기에 해박한 건 아니지만, 한국의 아쟁 같은 악기는 정말 독특한 소리를 낸다. 굉장히 날카로운, 모든 것을 가르는 소리라고 할까. 그런 점이 정말 새롭다. 하지만 대중은 잘 모른다. 나 역시 몰랐으니까. 이번에 국악기의 소리를 새롭게 접하면서 많이 감탄했고, 우리조차 잘 모르는, 세상에 소개할만한 개성 있는 소리가 정말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종류의 국악기는 국내에서 단 3명의 장인만 제작할 수 있다고 하더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나머지 한국에서도 외면당하는 현실인 거지.

이번 샘플팩으로 하여금, 우리의 고유한 소리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존중받을 수 있길 바란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비트를 만드는 젊은 친구들도 이 샘플팩을 쓰면서 한국의 소리에 감탄하는 모습을 상상해봐라.

 

두 명의 어드바이저가 만든 샘플팩의 차이점을 듣고 싶다. 

내가 만든 샘플팩은 사실 저번에 한국을 방문한 디제이 다히(DJ Dahi)에게 영감을 받았다. 당시 그와 디제이 소울스케이프까지 셋이서 세션을 진행한 적 있는데, 그가 샘플팩 루프를 드럼 머신에 넣어서 즉석에서 잼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 서울소리를 담은 내 샘플팩은 프로듀서가 언제든지 드럼머신에 넣고 잼을 할 수 있는 루프(Loop)로 만들었다. 나는 루프에 집중했고, 소울스케이프는 음계에 집중했다. 이렇게 두 가지 샘플팩을 완성해 각기 다른 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프로듀서 모두가 사용할 수 있게끔 하고 싶었다.

 

iKON의 “이리오너라”에서 리믹스 작업을 통해 이미 국악 샘플링을 선보인 적 있다.

사실 그 리믹스는 내 보스 YG가 요청한 거다. 알다시피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도 태평소 소리가 등장하는데, 당시 그 파트는 이번 프로젝트의 강연자인 김덕수 선생님이 연주하셨다. 나도 그런 영향을 받아서 국악기를 자연스레 활용했지. 과거에 내가 좋아하는 대금이나 가야금 소리를 샘플링해서 비트를 만든 적도 있다. 진짜 멋진(Dope) 소리니까.

 

이번 샘플팩이 해외의 K-Pop 신(Scene)이나 K-Pop에 영감을 받는 프로듀서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하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길 바란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의 소리를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하고, 이 장르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다. 우리는 국악이 외면당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진행한 소울스케이프를 진심으로 리스펙트한다. 서울소리와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의 다음 세대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자신의 뿌리를 경험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 역사에 아로새겨진 ‘한’이라는 정서는 언제까지나 우리 악기와 핏줄에 흐를 테니까.

 

프랭크

한국의 전통 악기를 샘플러로 사용하니 어떤 기분이 드는가?

생각보다 특색이 강했다.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서 즐겁게 작업 중이다.

 

어떤 사운드 샘플러가 가장 마음에 들었나?

처음에는 아쟁이 재미있었다. 타악기 계열의 악기도 멋지다. 사실 샘플 아카이브가 워낙 다양해서 아직 모두 들어보지 못했다. 작업하면서 이것저것 들어보고, 사용해 보는데 대체로 마음에 드는 편이다.

 

곡 작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면. 

초반 개인 작업 과정에서 조금 헤맸다. 전통이라는 말에 집착해서인지,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악도 하나의 소스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서 빠르게 만들고 있다.

 

해외 페스티벌, 행사 참여 경력이 많다. 혹시 자국의 전통적인 사운드를 현대 음악에 접목하는 시도를 즐기는 아티스트와 교류한 적 있는지?

만난 적 없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서울소리 이후에도 본인의 음악에 샘플팩을 활용할 의사가 있는지.

거창하게 국악의 퓨전 같은 말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전통 악기가 내는 소리를 하나의 소스로 필요에 따라 사용할 계획이다.

 

송캠프는 즐거웠나?

XXX 외에 팀을 이뤄서 작업하는 일이 처음이라 두렵고 선뜻 나서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앞으로 다른 프로듀서와도 재밌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잠을 많이 못 자서 피곤하다.

 

피제이

한국의 전통 악기를 샘플러로 사용한 소감은?

예전부터 전통 악기로 작업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제안이 와서 기쁜 마음으로 합류했다. 매우 재밌는 경험이었고, 지금도 많은 영감을 받으면서 작업 중이다.

 

어떤 사운드 샘플러가 가장 마음에 들었나?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특히 마음에 든 악기는 25현 가야금과 장구였다. 특히 25현 가야금은 서양악의 7음계 스케일을 모두 표현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화성에 특히 신경 쓰는 프로듀서인데, 국악기 샘플을 사용하면서 곡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 진행되었는지?

지금까지 만든 작업물은 모두 서양 음악이었다. 아무래도 서양 음악에 익숙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구상한 100%를 구현하기는 어려웠다. 어떻게든 작업물을 완성하기 위해 국악을 조금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재미를 느꼈다.

 

지난 비긴즈(Hiphoper) 인터뷰에서 작업물의 장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제는 어떤 음악인지 확실히 말해줄 수 있는가?

내 작업물의 스타일은 나도 아직 잘 모른다. 단순한 비트일 수도 있고, 인스트루멘탈 연주곡일 수도 있고, 보컬 곡일 수도 있다. 단지 좋은 음악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 중이다.

 

서울소리 이후에도 국악을 활용할 생각이 있는가?

샘플이 다양하다 보니 여러 가지로 쓰임새가 많을 것 같다. 스스로 “국악을 만들어야지”라는 의미는 두진 않겠지만, 샘플팩에서 좋은 소리를 찾아 계속해서 사용할 계획이다.

 

4일간의 송캠프는 어땠나?

지금까지는 혼자 작업하는 일에 익숙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다양한 실력 있는 프로듀서들과 함께 작업해보니 서로 친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라이언클래드


한국의 전통 악기를 샘플러로 사용한 소감은?

국악기는 나와 거리가 멀다고 느꼈는데, 가까이서 보니 친근감과 생동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어떤 사운드 샘플러가 가장 마음에 들었나?

전통 음악은 전통이라는 틀이 있어서 그런지 내 음악에 녹여내기 힘들었다. 이번 ‘서울소리’는 두 어드바이저가 전통적인 악기로 전통적이지 않은 작업을 시도한 것 같아 샘플팩 전체가 귀하다고 생각한다.

 

앞선 비긴즈(Hiphoper) 인터뷰에서 트립합을 언급했다. 트립합의 장르적 특성은 우울함과 침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의 전통 악기로 그 특유의 무드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아무래도 내가 가진 바이브가 곡에 안 들어갈 수는 없다. 비록 국악을 즐겨 듣진 않지만, 국악이 가진 애환이 담긴 그루브를 한국적인 색깔에 깊게 적셔서 내 나름의 트립합 바이브로 만들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이번 작업에도 MPC를 주로 사용했는데, MPC를 즐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MPC를 사용한 뒤로 몸의 리듬이란 걸 느끼게 되면서부터 계속 즐겨 사용하는 것 같다. 첫날 김덕수 명인이 말한 ‘원을 그리는 리듬’과 비슷하게 내 손으로부터 음악이 나오는 그 느낌이 좋다. 라이브 플레이 퍼포먼스 덕분에 계속 사용하는 이유도 있다.

 

국악 샘플을 MPC로 다루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장구 리듬이나 우리의 전통 리듬을 아직 캐치하지 못했다. 국악의 장단을 공부하면서 샘플팩을 이용해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면 국악기를 더욱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아 기대 중이다.

 

서울소리가 끝난 후에도 국악을 활용할 계획인가?

무조건. 샘플팩을 처음 받았을 때 너무 기뻤다. 소울스케이프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질문도 이거였다. 앞으로 많이 사용하게 될 것 같다.

 

송캠프는 어떤 의미로 남았나?

좋은 작업 환경을 제공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팀을 이루고, 하나의 주제로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제이보

국악을 접목하는 일련의 작업을 진행하며 무엇을 느꼈나?

개인적으로 국악은 생소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즐겁게 작업했다.

 

어떤 사운드 샘플러가 가장 마음에 들었나?

가야금의 화이팅 넘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곡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 진행되었나?

원래 색다른 방향으로 멋지게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작업하다보니 방향이 많이 틀어져서 결국, 기존 내 스타일의 곡이 탄생한 것 같다.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한 “멍멍잉”,”청소기” 등으로 보아 음악에 일상적인 영감을 주로 풀어내는 것 같은데, 서울소리 트랙의 주제는?

‘서울소리’ 프로젝트가 레드불에서 진행하는 행사인 만큼, 레드불 관계자가 좋아할만한 곡을 재밌게 만들고 있다.

 

‘서울소리’를 기회로 많은 프로듀서를 만나고 있다. 다른 프로듀서들과의 차별점이 있다면?

내 음악은 말 그대로 날 것이다.

 

‘서울소리’ 이후에도 국악을 활용할 생각이 있는가?

음정이 불안정한 특성 탓에 조금 힘들었지만, 국악기는 매우 좋은 사운드 소스다.

 

송캠프 소감은?

형들과 작업 중인데, 갈피를 잘 못 잡아서 심란하다.

Red Bull Korea 공식 웹사이트
서울소리 송캠프 #2 보러가기 


진행 │ 김홍식
인터뷰 / 글 │ 황선웅
사진 │김용식
영상 │MSG(양준형, 이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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