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DE MODE Spin-off 옷 구매에 의미를 부여하는 영화 이야기 #3

좋든 싫든 현재 우리가 향유하는 빈티지 문화의 상당 부분이 일본으로부터 유래한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인이 장르, 세분화한 미국의 옛 복식이라고 해야 할까. 그중에서도 최근 워크룸 프레스가 발간한 ‘헤비듀티’가 다루는 빈티지 아웃도어의 경우 사실상 60년대 요세미티 아래 캠프 4의 미국 히피가 만들어 입던 등산복을 바탕으로 일본 특유의 오타쿠적인 개량을 통해 체계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 이하 버클리 베이스의 ‘택갈이’ 제품이 수많은 일본발 브랜드의 복각 대상이 되어 종국에는 미국인이 자국의 철 지난 브랜드 옷을 따라 만든 ‘MADE IN JAPAN’ 옷을 수입하는 형국에 이르는… 일본 버블시절 특유의 무지막지한 소비력과 집요한 재생산, 역수출이 만들어낸 영역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그러다 보니, 넓은 범위에서 60~80년대에 나온 미국 영화 중 아웃도어적인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묻어나는 영화, 소위 말하는 ‘Hiking and Backpacking Movie’를 슬쩍 훑어보면 당시의 유행하던 동계 방한복이자 오늘날 수많은 브랜드에서 발매하는 아웃도어 제품의 원류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잡문에서는 ‘헤비듀티’를 상징하는 전설의 외투 두 가지를 비롯한 일련의 빈티지 아웃도어 제품이 당대의 영화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등장했으며, 그러한 당대의 기능성 의류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브랜드를 통해 어떻게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었는지를 가늠해 보…겠다면, 너무 거창하고 그냥 오늘도 여자들은 싫어하는 바보 같고도 예쁜 옷을 구경해 보자.

 

1945년 에디 바우어(Eddie Bauer)의 다운재킷 광고

이 제품의 정확한 이름이 무엇일까. 퀼티드 파카나 다운 파카보다는 우리에겐 패딩만큼 익숙한 이름은 없으리라. 1936년 ‘이불로 옷을 만들자!’는 시도로부터 만들어져 1940년에 무려 특허로 등록되었다는(Patent No. 119122) 에디바우어(Eddie Bauer)의 스카이라이너(The Skyliner)를 시작으로 이후 극지 원정대의 유니폼으로도 보급된, 당시 기준 최첨단 기능성 이불때기가 서브컬처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오늘날 힙스터 필수요소를 정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요세미티의 히피와 클라이머가 사랑한 옷이기 때문이리라.

 

ValleyWalls: A Memoir of Climbing and Living in Yosemite by Glen Denny. Published by Yosemite Conservancy, May 2016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의 개썅마이웨이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아이거 빙벽(The Eiger Sanction, 1975)은 발매 연도와 제목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시피 그러한 70년대 아웃도어 패션을 총망라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무렵 전문 산악인을 비롯해 히피 형님에 이르기까지, 업계에서 제일 먹어주던 60/40, 65/35 등의 나일론/면 혼방 원단을 사용한 다운 파카의 향연이 펼쳐진다. 특유의 톤다운된 녹색, 주황색, 파란색, 노란색의 색상과 다운 압축의 기술이 지금같이 근사하지 않다 보니 만들어지는 투박한 실루엣, 거기에 군더더기 하나 없이 그저 기능에 충실한 단출한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뉘앙스가 지금 봐도 매력적이다. 이는 롱패딩의 안티테제로서 아도를 쳤던(혹은, 지금도 치고 있는) 숏패딩(…)의 성님뻘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당시의 촬영 현장을 담은 이 사진만 보더라도, 녹색과 노란색의 다운 파카 그리고 왼쪽에 살짝 보이는 하이킹 부츠까지. 뭔가 비즈빔(VISVIM) x 몽클레르(Moncler) 혹은 대너(Danner) x 화이트 마운티니어링(White Mountaineering)에서 방금 나온 듯한, 비즈빔의 나카무라 히로키(Hiroki Nakamura)가 블로그에 얼마 전 올린 등산 아티클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그야말로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패션이다. 홀루바(Holubar)의 제품이라는 업계 관계자의 인터뷰가 있지만, 실제 각 개체가 어떤 브랜드인지까지 알기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60, 70년대 콜로라도나 시애틀 등지에서 쏟아져 나온 미국발 아웃도어 제품 대부분은 몇 개의 공장에서 균일하게 생산되어 택과 스냅만 달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익히 아는 노스페이스와 시에라 디자인(Sierra Design), 캠프7(Camp 7), 클래스 5(Class 5) 등의 다운 파카가 왜 비슷하게 생겼으며 심지어 오늘날 복각 브랜드의 다운 역시 어찌하여 유사한 디자인을 공유하는지 설명이 될 수 있을까.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캠프7, 노스 페이스, 클래스 파이브, 홀루바(Houlbar)의 빈티지 다운 재킷

이러한 옷이 단순히 요세미티 히피의 전유물인 동시의 일본인의 라이프 스타일 옷에만 한정되었느냐 하면,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보기엔 투박해 보이는 나일론 면 혼방의 이 제품들은 상술한 바와 같이 당대 최고의 테크웨어이기도 했다. 가령 노스페이스 재팬 등에서도 꾸준히 발매하고 있는 브룩스 레인지(Brooks Range) 같은 제품은 나름 히말라야, 알래스카, 안데스 전용 익스페디션 파카로 극한 온도에서 버틸 수 있도록 보급되기도 했으니, 단순히 간지용만은 아니었다는 것.

 

백팩커즈에 소개된 브룩스 레인지의 상세 소개, 왼편 성님들을 보면 극지 탐험용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을 위시한 다양한 헤리티지/빈티지 베이스의 브랜드에서는 겨울철마다 거의 숙명(?)과도 같이 본 다운 재킷을 발매하는데, 나름 자기들만의 색깔을 입히는 데 선수인 형님들조차 색감과 소재를 제외하면 60년대의 그것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옷을 출시하는 걸 보면 본 제품의 생명력과 위대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더불어 히말라야에 가는 분 중에 이제는 이 옷을 입는 사람이 없겠지만, 라이트 캠핑 쪽에서는 여전히 유니폼과 같이 취급되는 것 같다.

 

위로부터 몽클레어 비즈빔, 캡틴 선샤인(Kaptain Sunshine), 케이프 헤이츠(Cape Heights), 슈거 케인(Sugar Cane), RRL(비즈빔정도가 되면 나름 자기들만의 색을 입히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다)

 

아예 본격적으로 ‘60/40 시에라 디자인이라고 명명해 버리는 크레센드 다운 웍스(Crescent Down Works)

 

기무라 타쿠야 착용으로 전설이 된 베이프(A Bathing Ape)의 레더 다운 역시 오리지날 디자인은 이쪽을 베이스로 한 것이 틀림없다.

 

헤리티지 브랜드로서 노선이 좀 더 단단한 일본 쪽의 노스페이스 퍼플 라벨(좌)은 물론이고, 북미의 오리지날 노스페이스 역시 시에라 자켓’(우)과 같은 이름의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한편, 당연하지만 동일 디자인의 베스트 역시 이쪽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제품이다. 팔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히말라야 정상에서 굳이 다운베스트를 입었을 것 같지는 않으나, 적당한 하이킹이라던가 일상에서는 오히려 활용도가 높았을 것. 특히 라이트 백패킹에 있어서는 헤비 플란넬 셔츠와의 조합 등을 통해 충분한 기능성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하이킹 쪽으로는 후술할 25시의 추적(Shoot to Kill, 1988)이 대표적이겠지만, 역시 이 다운베스트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이란 백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의 마티 맥플라이가 입은 주황색 다운베스트가 아닐까. 노스페이스 파운더 중 한 명인 유스투스 바우싱어(Justus Bauschinger)가 만든 클래스 파이브의 옷이라는 각종 증언(?)들이 있지만 사실상 상기 다운 재킷과 마찬가지로 정확히 어느 브랜드인지를 확증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상의 나일론 다운재킷만큼이나 빈티지 아웃도어 그리고 일본 70년대 패션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홀리 그레일이라면, 역시 마운틴 파카(Mountain parka). 그리고 이 마운틴 재킷을 가장 완벽하게 담아낸 영화는 감히 이견이 존재할 수가 없다. 바로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가 주연한 디어 헌터(Deer hunter)다.

 

심지어 영화 속 성님이 입고 있는 옷도 쉬이 맞출 수 있다. 바로 세계 최초로 마운틴 파카를 만들었다는 홀루바의 그것. 관련하여 마운틴 파카 하면 ‘빡’하고 생각나는 시에라 디자인(Sierra Design)의 공동 설립자인 조지 막스(George Marks)가 직접 ‘우리는 옷 준 적 없다’고 확답했다.

 

1950년대의 홀루바 마운틴 파카, 의외로 거의 디자인이 완성되어 있다.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백팩커즈가 선정한 17대 영화(…) 중 하나인 25시의 추적(Deadly Pursuit, 1988)에서는 마운틴 파카가 거의 공식 유니폼이나 마찬가지. FBI 요원과 산악 안내인이 범인을 추적하는 본 영화에서 요원들이 입고 있는 옷은 전형적인 80년대의 마운틴 파카다. 60~70년대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스트링 등에 달린 파츠가 가죽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었으며, 흉부에 자리한 주머니가 대각선 지퍼로 바뀐 것이 주요한 차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젠센(Jensen) 스타일의 백팩과 패스트 칼라(Fast Color) 반다나를 매고 있는 FBI요원이나, 주황색 다운베스트에 루스색(Ruthsack) 스타일의 라이트 백팩을 맨 산악 안내원의 패션 역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하이킹/백팩킹 베이스 빈티지 아웃도어의 전형이다. 출연진의 단체 사진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프레임 백팩(Framed backpack)은 놀랍도록 불편하지만, 이베이(eBay) 빈티지 백팩 카테고리에서 늘 찾아볼 수 있는 단골 제품 중 하나이며, 헤비한 다운파카 대신 입은 마운틴 파카 혹은 다운베스트 속 매치한 헤비 플란넬은 경량화와 보온을 책임지는 라이트 백팩킹의 핵심!

 

이러한 마운틴 파카는 미국에서는 가벼운 하이킹에 주로 쓰였으며, 일본에서는 반 재킷(Van Jacket)을 필두로 한 프레피 룩과 매치하여 도심 속에서의 외투 역할을 꽤나 충실하게 수행했다. 더불어 그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쪽 역시 현장(?)에서도 자주 사용되었던 것 같다. 실제 1930년대 히말라야 원정대의 사진 같은 걸 보면 어마어마한 레이어드의 제일 바깥에 마운틴 파카와 같은 잠바때기를 걸쳤고, 팔의 맵시로 추정해 보건대 어떠한 안감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멋진 옷을 제작한 성님들의 최근 행보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듯하다. 가령 일본의 영향권에 있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미국 내 명맥을 유지하는 게리(Gerry)의 최근 발매 제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운치 있는 빈티지 디자인이 무색하리만큼 꽤나 현대적인(=국산 등산복스러운) 옷을 만들어내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 브랜드 이름을 따다가 라이선스로 만들어 내는 캠프7이나 클래스 파이브의 경우, 헤리티지 제품의 꾸준한 생산과 더불어 퍼티그 팬츠와 같은 필수제품(?)까지도 총망라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멋진 것일까. 일견 보기엔 후자의 제품들이 멋스럽기는 하지만 무언가 흔해 보이는 일본발 라이선스 브랜드의 룩북과 그들 특유의 ‘몇십 년 전통의 브랜드 블라블라’ 따위를 읽고 있노라면 피로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오히려 게리에서 출시하는 지극히 월마트스럽고, 그렇기에 지금 당장 넷플릭스 속 주인공이 입어도 썩 어울릴법한 개썅마이웨이 기능성 제품이야말로 디어헌터 속 마운틴 파카와 같이 진짜 오늘의 미국을 담아내는 옷은 아닐는지.


글 │ 김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