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DELIGHT – 머리맡 한권의 책

매거진이란 이름 아래 모인 친구들이기에 지적 호기심 또는 허영이 어느 정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했다 한들, 어린 시절부터 킨들 따위를 보며 자란 세대는 아니기에 머리맡에 ‘알고 싶은’, ‘알면 폼날 거 같은’, ‘너무 재미있는’ 등등의 이유로 선택된 책 한권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수염을 기르고 옷도 편하게 입는 사람들의 집단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각자 너무나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다. 그들의 머리맡에 어떤 책이 포개져 있을까? 지금 확인해보자.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금 머리맡에 있는 책을 이야기하면 잭 트라우트(Jack Trout)와 앨 리스(Al Ries)가 쓴 마케팅 서적인 ‘포지셔닝’을 소개해야 하지만, 여기서 소개하기엔 좀 그렇다. 그 전에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떠올려보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떠오른다. 이 책은 2014년에 내가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읽고 한 5년 만에 읽은 소설이기도 하다. ‘설국’을 읽게 된 계기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친한 형과 일본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주제가 일본 문학으로 흘러갔다. 앞서 ‘5년 만에’ 읽은 소설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문학에 굉장히 약하다. 특히 동양 문학은 더 그렇다. 내가 읽은 문학이라 하면 ‘일리아스/오디세이아’로 시작해서 ‘파우스트’, ‘신곡’, ‘죄와 벌’, ‘제인 에어’ 같이 책장에 꽂혀있던 고전문학 모음집부터 ‘이방인’, ‘앵무새 죽이기’, 등등 오직 서양 문학뿐이다. 어찌 보면 ‘설국’은 수능을 잘 치르기 위해 읽었던 교과서 속 국내 문학을 빼면 처음으로 읽은 아시아권 문학일 것이다. 아, 삼국지연의는 빼야 한다.

‘설국’은 독자마다 해석이 분분한 책이다. 많은 문학 평론가도 각자의 해석을 내놓는다. 번역가를 골치 썩이는 부분도 이 점이다. ‘설국’의 원문은 많은 게 생략되어 있다. 그렇기에 해석도 분분하고, 출판사마다, 번역가마다 어투가 다르고 따라서 읽는 이가 그리는 그림도 달라진다. 여기까지가 나에게 ‘설국’을 추천해준 형이 말해준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이 단편을 읽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민음사를 시작으로 여러 출판사의 ‘설국’을 읽었다. 이 책이 노벨문학상을 타게 된 결정적 이유라는 영역본을 읽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이 왜 노벨문학상을 탈 정도로 훌륭한지, ‘설국’의 도입부가 왜 그리도 유명한지, 왜 이 책을 연구한 학자나 논문이 그렇게 많은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일어권에 사는 친구가 이 책은 하이쿠 ─ 일본의 전통 정형시 ─ 와 비슷한 점이 많고, 제대로 읽으려면 일본어 원본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해줬다. 내가 읽은 수많은 ‘설국’의 해설에도 비슷한 말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난 일본어로 쓰인 책을 읽을 정도로 일본어를 잘하는 건 아니다. 결국 ‘설국’은 그렇게 많은 버전을 읽었음에도 머리맡에서 떠나질 않는 책이 되었다. 아마 내가 일본어 원어를 읽을 때까지 떠나지 않을 듯하다.

심은보(Editor)


영알남의 영어의 진실 – 영단어 / 양승준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게 10살 무렵이니까 2000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총 19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는 영어 학원, 과외, 스터디 등 수많은 강사의 손을 거쳐 갔다. 근데 아직도 제대로 된 영어 문장 하나 완성하기가 벅차다.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이걸 노력의 문제라고 꼬집는다면 쿨하게 인정할 수 있다.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하던 범생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글로벌 시대라지만, 나에게 영어란 성적을 위한 수단 그 이상이 되진 못했다. 더욱이 내가 나고 자란 포항은 영어가 필요한 환경이 아니었고, 자주 보던 해외 웹 기사는 구글 만능 번역기에 넣어 버리면 명쾌하진 않지만, 대충 문맥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번역해주었다.

사회로 진출했을 당시까지도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나 퇴사 직후, 서울에서 백수 생활을 전전할 때가 돼서야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스스로 펜을 잡고 영어 공부를 시작한 게 그 무렵이다. 그때 결제한 게 시원스쿨 초급 영어회화. 꾸준히 영어를 습득하면 실력이 유창하게 늘 것이라는 이시원 강사의 말을 100% 신뢰했다. 이때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영어를 습득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니터 너머 입으로 따라 하라는 가르침엔 기시감을 잔뜩 느끼고, 강사가 영어를 발음할 때는 머리로만 되뇌었다. 100% 신뢰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말하기가 전혀 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으론 실제 사람과 대화를 하기 위해 영어 스터디에 가입했다. 동시에 영어를 꽤나 잘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어로 말하는 비법을 묻고 다녔다. 그리고 이 책은 자문에 응한 친구의 대답이다. 이 책을 추천하며 내 생일을 기념한 고마운 친구의 설명은 이랬다. “유튜버 영알남이 만든 책인데, 영단어를 좀 더 근본적인 느낌으로 설명해준다”. 복잡한 단어의 근본부터 설명해준다니, 내 마음만큼은 이미 영어를 통달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이 책이 내 침대 머리맡을 지키기 시작했다. 영어는 여전히 젬병이다. 그냥 내 머리맡에 놓여 있을 뿐. 내가 이 책의 내용을 단 한 줄도 적지 못하는 이유다.

황선웅(Editor)


수줍음도 지나치면 병 / 권정혜 이정윤 조선미 공저

언젠가부터 젊은이들이 서로를 인싸, 혹은 아싸라는 이름으로 구분 짓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낯간지러운 네이밍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 스스로를 굳이 분류해보자면 아싸 쪽에 가까운 성향을 가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책의 부제에 적힌 사회공포증까지는 아니라고 스스로 자위하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고, 사람들 눈치도 적잖히 보는 편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정신 나간 소리지 싶지만, 어쩌면 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릴 때 무슨 마음의 상처라도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나보다 남을 먼저 만족시키도록 가르치는 잘못된 교육 때문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런데 내 일거수일투족을 남들의 기준에 맞추면서 자신을 소진하다 보니, 남들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자리라면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되더라. 가끔씩 남들에게 서툰 모습이라도 보인 날에는 스스로를 지나칠 정도로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마주친 이 책의 제목에 나는 명치를 한 대 씨게 얻어맞았다. ‘수줍음도 지나치면 병’그야말로 일직선으로 냅다 지르는 스트레이트다. 그 위에 적힌 ‘사회공포증의 인지 치료라는 부제도 매력적이었다. 어쨌든 그때 내가 필요한 건 ‘가이드’나 ‘꿀팁’ 같은 막연한 것들이 아니라 효과가 어느 정도 검증된 ‘치료’였으니까.

제목에서 설명하고 있듯, 이 책은 사회공포증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치료법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풀어놓은 것이다. 1998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안에 담긴 내용도 구닥다리일 것이라는 오판은 하지 말도록. 책 속에 등장하는 ‘정대리’, ‘김양’, ‘황원장’의 사례들을 읽다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똑같은 걱정과 불안을 느끼고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마음에 드는 이성이 대화 도중에 시계를 본다면 내 유우머가 그렇게 구렸었나 곱씹어 보게 되는 것이 쫄보들의 인지상정이다.

물론 책 속 치료법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효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시리즈의 이름처럼, ‘팝사이컬러지 북스를 한 권 읽는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읽어보시라. 만일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이 나 때문일까 신경 쓰여 옷 매무새를 점검해 본 적이 있다면, 혹은 이성 앞에서 언제나 완벽해 보이고 싶다는 강박에 시달려 만남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더욱더 일독을 권한다. 남들 눈치만 보다가 말라 죽게 만드는 이 헬조선을 바꿀 수 없다면, 나라도 변해야 조금은 살만해질 테니까.

김홍식(Editor)


지하생활자의 수기 / 도스토옙스키

도스토옙스키라는 이름은 아마도 후대의 작가들에게, 글 깨나 쓴다는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한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의 대문호로 칭송받는 그의 작품은 작가 지망생에게 한 번쯤은 열어야 할 문인 동시에 가벼이 오르지 못할 산으로 다가올 터. 문학의 재미를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서는 러시아 문학의 거대한 벽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느 정도의 두께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어느 날 아주 우연히 중고서점에서 장바구니로 옮겨진 도스토옙스키, 이 대단한 양반은 그 뒤로도 내 머리맡에서 꿈틀대고 있다.

서점에서 집어 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단편 ‘지하생활자의 수기’였다. 그저 내 상황에 잘 들어맞는다고 느꼈던 ‘지하생활자’라는 단어 하나가 그와의 첫 만남을 이어준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한남오거리를 지나 옥수 쪽으로 올라가는 언덕 골목에 붙은 작은 반지하에 살았다. 두 다리를 다 뻗어도 머리가 문밖으로 나올 듯 말 듯한 코딱지만 한 방에서, 불을 끄고 나면 한 줌의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하는 지하에서 ‘만약 내가 감옥에 간다면 내 방 같은 곳에서 몇 년을 살아야 하겠구나’라고 상상하며 잠이 들곤 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퇴근 후 새벽녘, 남 몰래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승강장이었다. 지하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한 나의 동반자였다.

단편인 만큼 단숨에 읽을 수 있을 분량에 내용도 복잡하지 않다. 물론 체르니셉스키가 자신의 이성적 이기주의 이론을 형상화한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답변이자, 본인의 이데올로기적인 변화를 통한 사상의 전환점을 드러낸 물꼬 같은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의 이데올로기와 시대상까지 조목조목 짚어가며 감탄하지 않더라도 어딘지 징그럽기까지 한 심리 묘사, 인물의 고독과 적개심, 냄새가 진동하고 질척거리는 지하실의 체취가 묻어나는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의미로 내 기억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기에 지금도 심심할 때면 아무 페이지나 들춰내서 잠시 문장을 곱씹곤 한다.

지금은 지하에 있던 9평짜리 사무실도 4층으로 이전하고, 집도 지하방에서 3층으로 이사했다. 나는 다시 ‘지하생활자’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 간 것이다. 사실 특별히 경제적인 어려움이라고 할 게 없는 소박한 가정에서 자란 내가 스스로 지하생활자라는 칭호(?)를 갖다 붙인다는 것은 애시당초 기만적인 행위일 것이다. 다만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벗어나 별 볼 일 없는 알몸으로 벗겨진 당시의 얄팍한 감상을 오래전 대문호가 써낸 문학 작품과 동일시했다니, 퍽 우습지 않은가.

권혁인(Editor in Chief)

EDITOR’S DELIGHT – 올 여름, 갖고 싶은 것, 세 가지

쇼핑은 현대인의 스트레스 해소에 아주 거대한 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 자신도 평소에 쇼핑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쓸데없다고 느껴지더라도 왠지 갖고 싶은 물건을 간만에 지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언제나 돈은 한정적이고, 그 안에서 사야 하는 이유와 사지 말아야 하는 이유의 대결 구도 속에서 갈등한다. 사야 하는 이유의 서포터로 자주 등장하는 게 바로 계절이다. ‘이번 겨울에는 롱패딩을 장만하자’, ‘여름에 캠핑 갈지도 모르니까 캠핑 의자를 사자’, 뭐 이런 식. 다가오는 여름, 우리 VISLA 친구들은 여름이란 계절 속에서 어떤 구매의 꿈을 꾸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필요에 의해, 욕망에 의해, 자기만족을 위해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적어나간 리스트를 읽어가며 자신이 갖고 싶은 위시리스트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살 수 있든, 살 수 없든 말이다.

 



백윤범(Photographer)

1. 방독면

작년과 올해 매번최악이라는 단어를 서슴지 않게 내뱉던 기상청의 미세먼지 관련 예보를 보면서 어느새 내 하루의 시작과 끝도 미세먼지를 확인하기에 여념이 없다실제로 지난 3년 사이에 ‘미세먼지 나쁨일’ 수가 20%쯤 증가했다니 듣기만 해도 왠지 목이 칼칼해지는 건 기분 탓일까.

봄보다 한결 낫다고 하지만 여름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방구석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미세먼지 마스크 또한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아직 방독면을 쓰고 거리를 누비기엔 내가 봐도 어색하고 남이 봐도 부담스럽겠지만 이대로 가다가 내가 먼저 죽게 생겼으니 난 써야겠다. 누가 알아? 어느 아티스트가 신발을 해체해 마스크를 만들던 것처럼 가까운 미래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나쁨을 기록하는 날이면오늘 길 가다 마주친 사람의 방독면은 힙했네“. “출근길 버스에서 중국 동부 한정으로 출시한 방독면을 봤네라는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올지?

2. 쿨조끼

지난여름 정말 더웠다. 더운 게 좋고 여름이 좋다던 지인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불가마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올해는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나 같은 땀쟁이는 뭘 입어야 하나’라고 검색하던 중에 쿨조끼라는 게 눈에 들어온다. 냉매, 그러니까 얼음팩을 주머니 사이사이에 넣어서 온도를 낮춘다니. 단순 기능성 소재만 가지고 입으면 당장에 얼어 죽는 것처럼 광고하던 홈쇼핑 제품과는 좀 달라 보인다. 슥하고 훑다 보니 어떤 제품은 한 시간이면 얼음이 다 녹아 쓸모가 없다니 이러한 부분도 잘 확인해봐야겠다. 날씨가 뭐라고 밖에 나가기 두렵기만 한 것인지미친듯이 더운 날,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까지 심해 쿨조끼와 방독면을 함께 쓰고 나간다면 참 압권이겠다.

3. 태양광 자동충전 LED랜턴

빵빵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먹는 수박만큼 최고의 피서가 또 있을까. 하지만 집 밖을 나와 산바람, 강바람, 바닷바람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맵지만, 자꾸 들어가는 낙지볶음 마냥 여름이란 계절을 더욱 당기는 마력일 터. 이럴 때 이 LED 랜턴은 먼 캠핑부터 가까운 한강 나들이까지 꽤 요긴해 보인다.

며칠 전 본지를 통해 어느 브랜드 소식을 전하면서 알게 된 제품으로 몸통인 PVC 수지는 디퓨저 기능을 통해 주변에 빛을 보내고, 사용하지 않을 땐 그대로 압축해 컴팩트하게 보관할 수 있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태양광 패널 부분에는 USB 단자가 있어 휴대폰과 같은 전자제품 충전도 가능하다고. 가격도 만 원대라 부담이 없다.

 



강지훈(Photographer)

1.Louis Vuitton Millionaire Sunglass

머리가 큰 사람이 쓸 수 있는 선글라스 중 최고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루이비통에 온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새롭게 바꾼 이번 밀리어네어 선글라스 모델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가격은 100만원 정도로, 한 번쯤은 노려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굴의 많은 부분을 가리면 가릴수록 보기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으니 올여름 얼굴을 최대한 가려봅시다.

2.Leica Q-2

여름이라고 한다면 더위가 떠오르지만, 장마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라이카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Q의 후속작 Q-2가 출시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방수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방진, 방습이 가능해서 전천후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 같아 구매하고 싶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미세먼지가 있으나 마나 언제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행복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카메라를 사고 첫 컷은 여자 사람 사진을 찍어야 고장 없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속설이 있으니 첫 컷은 여자 사람 사진을 찍어 봅시다.

3. Supreme Kayak

여름은 물놀이의 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물은 좋아하지만, 수영을 못하기에 튜브 같은 것 위에 올라가 있는 걸 좋아합니다누울 수도 있어서 안성맞춤입니다한강에서 카약을 탈 수 있는 것 같은데 튜브 위에 누워 일몰을 보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잘하면 여자분과 동승할 기회도 생길지 모르니 구입해 봅시다.

 



김용식(Editor)

1. Tom Sachs Shop Chair

이젠 알 사람 모를 사람 다 안다는 톰 삭스(Tom Sachs). 나이키와의 협업을 통해 스트리트 컬처 신(Scene)에 이름을 남겼다…….는 모양인데, 스니커에 도통 관심이 없으니 잘 모르겠고, 개인적으로는 프랭크 오션(Frank Ocean)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그를 알고 있다. 프랭크 오션의 가장 최근 공연이었던 2017 FYF Fest 무대에서 그가 앉아있던 의자가 바로 이 제품으로, 지난 3 8일에 톰 삭스의 공식 웹사이트에 한정 판매되었고, 며칠 이내에 완판되었다. 디자인 가구 세계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고급 취향의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예쁜 의자에 작가의 핸드 넘버링까지 더해졌다면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아티스트 혹은 브랜드의 자질구레한 잡동사니, 소위떼기라고 불리는 것들을 지금도 참 좋아하는데, 언젠가는 이 의자 같은 2000달러짜리 예술품도 일말의 동요 없이 질러버리는 쿨함……. 아니 재력을 갖고 싶다. 아니면 소비 욕구만 불러일으키는 무의미한 인터넷 서핑을 그만두는 편이 더 쉬울지도.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는데, 그래서 이게 여름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전혀 상관없다 하하. 구멍 숭숭 뚫린 게 시원해 보이긴 하네.

2. STUSSY SPRING ‘19 CAMPAIGN TEE

주로 브랜드 미상의 저렴한 구제 의류나 50% 이상의 할인율이 적용되는 샘플 세일을 노리는 나의 옷장은 대부분 6만원을 넘지 않는 옷들로 이루어져 있다. 의복을 기호 삼아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표현해야만 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내 옷들이 표현하는 나는거지새끼’ 정도 되려. 가벼운 지갑을취향이라는 미명 하에 숨겨보려 나름 신경 써서 고른 옷들이니 느낌 아는 형 누나들은 알아채 줬으면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만 결국빈티지그런지같은 고급 외래어로도 수식하지 못할 것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샌가 패션에 대한 관심도 많이 떨어지게 되어 안목이랄 것도 없어졌지만, 최근 발매된 스투시(Stussy)의 캠페인 티셔츠는 오랜만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리트 패션계의 큰형님답게, 세상을 떠난 칼 라거펠트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아 샤넬 뷰티 광고를 패러디한 본 제품은 긴 설명 없이도 스투시의 쿨함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비록 완판되어 지금은 웃돈을 주고 구매해야겠지만, 올여름에 이 옷을 입고 다니면 그래도 뭘 좀 아는 놈처럼 보이지 않을까….하는 얄팍한 생각이 솔직한 내 마음이다. 누가 티셔츠를 보고 말이라도 걸어온다면 제대로 설명도 못 하겠지만.

3. 공기청정기

미세먼지 농도 수치가 끝도 없이 치솟던 어느 날, 잔뜩 불평하는 나에게 중국 유학을 다녀온 친구가 ‘중국에서는 이 정도면 피크닉 날씨’라며 너스레를 떤 적이 있다. 그땐 그 바보 같은 모습이 왠지 쿨하게 보여서 종전까지 불평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는데, 결국 지난주에 길에서 만난 그도 마스크를 끼고 있더라. 매일 외출 전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는 삶은 내 계획에는 없었는데, 어느새 비 소식보다 미세먼지 수치를 먼저 확인하는 내 모습에서 왠지 모를 격세지감을 느끼는 요즈음이다. 건강한 식사와 운동을 습관화하는 일은 너무나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일은 공기청정기 한 대만 갖다 놓아도 ‘어느 정도 해결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특히 최근에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과 함께 환기도 잘 안 되는 지하 작업실까지 얻었으니, 공기청정기야말로 여러모로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물건일 것이다. 땀 냄새까지 잔뜩 풍기는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으니 늦기 전에 공기청정기를 들이고 싶다.

 



오욱석(Editor)

1. STUDIO D’ARTISAN x GODZILLA

스튜디오 다티산, 스튜디오 다찌산, 스튜디오 다치잔 등 특유의 아리송한 이름 덕분에 다양하게 불리는 요 브랜드가 오늘의 이야깃거리 중 하나다. 스튜디오 다티산 역시 레플리카 데님의 명대사오사카 파이브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 데님 브랜드로 그 의미 역시직인 공방이라는 뜻. 이렇게나 유명한 브랜드지만, 데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 이리저리 웹서핑하며 일본의 데님 아카이브나 패션 저널에서만 그 이름을 확인했을 뿐, 실물 또한 본 적 없었다. 그러나 작년 여름 틈날 때마다 일본 야후 옥션과 라쿠텐을 통해 스튜디오 다티산을 검색했고, 아마 이번 여름 역시 열심히 일야옥을 헤엄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깊은 취미는 아니지만, 괴수 피규어를 하나둘 모으는 걸 좋아하는데, 아뿔싸 재작년 스튜디오 다티산에서 이러한 괴수 러버의 취향을 저격해버리는 고질라 협업 컬렉션을 발매했다. 주인공인 고질라는 물론, 고질라 시리즈에 등장하는 다양한 괴수가 MA-1 재킷과 티셔츠, 셔츠에 고운 자수로 새겨진 괴수 컬렉션으로 한 눈으로 봐도 그 디테일이 상당하다. 모든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으나 그중에서도 나의 욕망을 자극하는 옷은 등짝에 멋스러운 가재와 고질라가 박힌 자수 셔츠다. 고질라를 주제로 한 협업 컬렉션이니만큼, 모든 제품에 그간의 고질라 시리즈를 담고 있으며, 셔츠에는 1966년 개봉한 비운의 망작 “Godzilla vs The Sea Monster”의 한 장면을 가져왔다.

대략적인 내용은 어떤 청년이 동생을 찾다가 열대 섬에 착륙하게 되고, 거기서 거대 바닷가재 에비라와 고질라를 동시에 만난다는 스토리로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 궁금하면 찾아보길……. 아무튼, 허술한 영화 내용과는 별개로 영화의 주인공은 대괴수 둘, 배경인 열대 섬과 스튜디오 다티산의 상징인 돼지와 데님이 한데 어우러지는 세세한 그림 설정이 꽤 재미있다. 가슴팍에 요코스카 간지로 새겨진 자수 덕분에 괴물딱지나 좋아하는 어린애 같다고 놀림 받을 것 같지도 않고, 꽤 마음에 드는 여름에 입고 싶은 셔츠 남바 완. 발매 2년이 지난 지금 물건을 찾기도 힘들지만, 올 여름 꼭 입고 싶습니다.

2. FUJI Transonic 2.3

2019년의 1분기가 끝난 이 시점, 가장 재미있게 본 영상물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어떤 망설임도 없이 본격 로드바이크 애니메이션겁쟁이 페달이라고 하겠다. 소년 점프의 3대 이념우정, 노력, 승리이 모든 것이 녹아있는 어찌 보면 소년 만화의 모든 클리셰를 답습하는 뻔하디 뻔한 내용이지만,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볼 정도로겁쟁이 페달의 몰입도는 굉장했다. 평소 움직이는 걸 그리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나도 그 땀내 나는 레이스를 흉내 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말이지.

허벅지가 터져나가고 혓바닥이 턱 밑까지 내려오는 혹독한로도 레이스를 보는 것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콘텐츠라면, 등장인물이 타는 로드바이크를 디깅하는 것. 실제 존재하는 로드바이크 브랜드 그리고 그 업체에서 생산하는 모델을 찾아보며, 각 자전거의 디자인과 스펙을 비교하고, 그 어마어마한 가격을 구경하는 일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어찌나 즐겁던지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바이크 브랜드 웹사이트를 타고 타다가 후지(FUJI) 사의 트랜소닉(Transonic)을 만나게 되었다. 프레임을 이루는 각 튜브의 안정적인 비율과 임팩트로 똘똘 뭉친 컬러링은 절로 아름답다는 말이 튀어나오게 한다. 앞서겁쟁이 페달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겁쟁이 페달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후지의 로드바이크를 타지 않는다. 전 세계 로드바이크 라이더, 마니아에게 크나큰 배덕감이 들지만, 그분들 역시 절륜한 외형에서 나오는간지를 완벽히 배제할 수 없을 터. 로드 초보지만, 200만 원짜리 후지 트랜소닉 2.3 올여름 꼭 타고 싶습니다…

3. 물채송화

답답한 반지하 단칸방에서 승강기가 없는 6층 건물로 이사 온 지 어느덧 1년이 지나간다당연히 나의 별것 없는 라이프스타일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그 새로운 행위로 식물에 물을 주는긴 하루 작은 의미를 지니는 일과가 생겼다지금까지 몇 뿌리의 식물을 죽이며뭔가를 키우는 일에는 소질이 없다고 느꼈지만웬걸 이제는 쑥쑥 자라는 식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게 총 여섯 종류의 반려식물을 키우는 지금이번 여름에는 새로운 종류의 식물을 집에 들이려 한다당장 눈에 들어온 것이 물채송화라는 수경 식물로 ‘앵무새 깃이라는 앙증맞은 별칭도 가지고 있다일단 어항에서 키우기 때문에 따로 물을 줄 필요가 없다는 점이 물채송화의 가장 큰 매력이며생명력 또한 무척 강해 쉽사리 죽지 않는다고 하니 수경재배 초보자인 나에게는 이보다 좋은 수경 식물은 없어 보인다무엇보다 그 줄기가 꽤나 자유분방하게 자라 뭔가 전위적인 멋이 있달까과연 어떤 친구가 나와 함께 끈적한 여름을 보낼지 모르겠지만그 어딘가에 있을 물채송화씨 올여름 꼭 키워보고 싶습니다

 



박진우(Graphic designer)

1. Life Sport Sweat Pants

브랜드라는 단어와 연결 짓기 조금 생소한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시작된 이 브랜드의 이름은 ‘Life Sport’다.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이 브랜드는 근래에 본 적 없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들의 웹사이트에 적힌 소개 글은 이렇다.

“Sweatpants are everywhere, they defy emotions of socialization, gender and age. Sweatpants unite contrast, they are a symbol of diet or parallelism for some, a statement of ultimate resistance and emancipation for others”.

쿨하게 영문을 틱하고 복사해놨지만, 사실 나는 영어를 잘 못 하기에 단어 단어를 연결해서 대충 뜻을 보면 왠지 너무 멋지다. 웹사이트 내에 아카이빙되어있는 관련 전시나 행사 이미지를 보면 그들의 정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이미지에선 상투적인 멋 내기, 폼 잡기의 개념은 그들에게 진작에 중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편하게 스웨트 팬츠를 입은 이미지들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임을 보여준다. 슬슬 더워지는 초여름날 야자수가 자수 처리된 ‘Life Sport’ 스웨트 팬츠를 입고 쪼리를 질질 끌며 출근하면 그 이상의 편함은 없을 것만 같다. 역시나 멋진 브랜드를 포괄하는 단어는 ‘태도’가 아닐까.

2. Porsche 964

지금이나 앞으로나 비현실적인 선택이지만, 강력히 염원하기에 적는다. 서울은 복잡한 도시, 차도 많다. 대낮, 서울 시내 운전은 나에겐 괴로운 일이다. 그 반감으로 차에 대한 욕심도 없다. 드림카라는 것도 딱히 없다. 하지만… 작년 겨울 일본 여행에서 중고등학생 시절 열렬한 팬이었던 일본 탤런트히로스에 료코를 시부야 근처에서 우연히 목격했다. 진짜 말이 안 되는 우연으로 목격했다. ‘우연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위대한 뜻을 가졌는지 깨달았다. 목격 당시 료코는 야쿠자 머니의 냄새를 풍기는 빈티지 포르쉐를 타고 내 앞에 등장했다. 어쨌거나 그 뒤로 왠지 포르쉐(Porsche)가 드림카가 되어버렸다. 당시 찍은 사진을 단서로 모델명을 찾아냈는데, 아마도 ‘Porsche 964 Carrera 2 Coupe’. 여기서 964 1989~1994년 사이 생산된 모델이다. 료코가 탄 964 모델은 오직 18,219대가 생산됐다. 난이도가 좀 있는 드림카라고 할 수 있겠다. 햇살 좋은 여름날 964를 타고 서울춘천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강원도의 모던한 별장으로 유유자적 떠나 별장 내 마련된 자갈이 깔린 주차 공간에 우둘투둘 소리를 내며 주차하고 싶다.

3.가레산스이

가레산스이(かれさんすい, 枯山水)란 못 따위의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 등으로 산수를 표현하는 일본의 정원 양식이다. 영어로는 ‘Zen garden’이라고 한다. 2000년대 애플의 맥 공식 배경화면 리스트에서 처음 목격한 후 그 정적인 아름다움 빠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로는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교토 여행을 하게 되면 구경할 수 있는 것 같다.

오래된 담벼락 내 넓게 펼쳐진 자갈과 돌, 풀 등으로 표현된 산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평소 집중을 잘 못 하는 나지만 우황청심환을 먹은 듯한 차분한 마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너무나도 빠른 현대사회의 속도와 관계없이 내가 원하는 속도로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며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는 나의 독립주택의 앞마당에 일본의 정원 장인을 고용해 나만의 가레산스이를 구현하고 싶다. 무더운 여름날 대청마루에 앉아 부채질하며 가레산스이를 느긋하게 바라보는 상상을 해본다.


기획 / 커버 이미지 │ 박진우

EDITOR’S DELIGHT – 단 한 편의 영화 추천

얼마 전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알리타(Alita)”를 보았다. 2019년 첫 영화인 것은 물론, 2016년 여의도 CGV에서 혼자 봤던 “곡성” 이후 처음이다. 그리고 그 전에는 언제 극장에 갔나 생각해보니 2013년 합정 롯데시네마에서 ‘위대한 개츠비’였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3년에 한 번씩 극장을 이용하고 있었다. 요샌 넷플릭스니 와챠니 쿡티비니 어둠의 경로니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영화를 볼 방법은 많으니 왠지 아싸가 된듯한 기분을 합리화했다. 이처럼 영화는 내게 필수가결한 요소는 아니다. 가끔 생각나면 보고, 보고 싶은 게 있을 때 보는 콘텐츠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나에게 큰 울림을 준 영화들은 분명 존재하고, 대다수의 친구 역시 그럴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VISLA 멤버들이 꼽은 영화가 궁금해졌다. 단 한 편의 영화를 추천해야 한다면 어떤 영화를 추천하겠냐고.


트래인스포팅(Trainspotting)  

생각 없이 살아도 너무 생각 없이 살았다. 남들이 휴학까지 하며 어학연수, 인턴 등으로 미래를 계획할 때, 나는 어두운 방에 혼자 박혀서, 어두운 음악과 디스토피아 영화만 찾았다. 미래를 안일하게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던 것일까? 지도교수는 나를 불러, 5년 후 나의 모습을 한번 그려보라고 말했다. 나는 미래를 열심히 설계한 듯 거창하게 말했다사실 평범한 성적으로 졸업한 다음 평범한 회사원 혹은 연구원으로, 여전히 음악 감상을 취미 삼아 유유히 살아가리라고 혼자 생각했다. 취업난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게 아니냐고? 나는 소위, ‘취업 깡패라고 불리는전자 공학을 전공했다. 매일 불경기라는 기사 속에도 반도체 시장만큼은 꾸준히 상승세였단 말이다. 그리고 4학년 기말고사 종료와 동시에, 교수의 우려에 보란 듯이 취업했다. 내 예상보다 과분하게 컸던 회사에 어깨도 조금 펼 수 있었다. 하지만 모텔 생활을 전전하는 출장 라이프와 매일 10시까지 할 일이 없이 눈치만 보는 야근과 주말 특근은 내 계획에 절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으론 확인도 불가능한 반도체 절연막이 얼마만큼 증착됐는지 지긋지긋하게 지켜봐야 하던 시점에서,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이 내 머릿속을 맴돌더라. 절박하게 자유를 갈구하던 터라, 섹스와 마약에 찌들어 꼬이고 꼬인 이들의 인생을자유라는 한 단어로 퉁치고 동경하기에 이르렀다. 또 언더월드(Underworld)의 음악 “Born Slippy(Nuxx)”가 흘러나오는 마지막 장면에 나를 한번 대입해 보았다. 정신이 핑 돌 정도로 흰색만 보이던 각박한 반도체 팹(FAB)에서 자유를 향해 나가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때 영화 주인공 마크 랜턴(이완 맥그리거)이 나에게 다시 속삭이더라. “Choose Life.” 나는 이를 3달간 끝없이 되뇌다 결국 퇴사로 돌진했다. 옳은 선택이었다며 정신 승리하던 와중, “트레인스포팅 2″가 개봉했다. 20년 후의 스토리를 담은 영화 속 마크 랜턴은 그 속에서 여전히 막장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그저 유쾌하게만 즐길 수 없었다

황선웅(Editor)


삼공일 삼공이(301 302) 

영화를 잘 알진 못하지만, 관심이 있어서 관련 수업을 종종 듣는다. 영화 수업은 대개 강의자가 선택한 작품을 감상한 후 해석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곤 하는데, 이때영잘알강의자들의 훌륭한 큐레이션을 손쉽게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 내가 느낀 영화 수업의 최대 장점이다.

박철수 감독의 1995년 작품삼공일 삼공이(301 302)”는 이렇게 알게 된 영화 중에서도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1990년대 한국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기존의 가치들이 무너지던 시기였다. 물질적으로 좀 더 풍요로워졌지만 도시 생활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로 도시 속 사람들에게는 각종 정신 장애가 발생했다. 사회 패러다임이 변하며 한국 영화계에도 다양한 담론이 등장했다.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이 등장했지만 이들 중 현실 여성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한 영화는 드물었으며, 대중의 관심도 적었다. 이와 같은 시대에 발표된 “삼공일 삼공이”는 기존의 영화들과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모습을 조명했다. 대인 기피증과 거식증을 겪는 송희(방은진)는 전통적인 여성 역할을 강요받으며 상처 받은 여성의 전형이며, 지나치게 사랑을 갈구한 대가로 남편과 이혼한 윤희(황신혜) 90년대 한국 사회가 원하던 ‘요리하는 여성성’의 표본이다. 영화 초반에 서로의 상처를 숨기며 대립하던 두 인물은 이후 남성 중심적 사회 구조 속에서 상처 받은 서로의 과거를 알게 되고,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교감을 얻는다.

작품 말미에 윤희는 자신의 트라우마의 궁극적인 해결법으로써 자신을 요리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송희가 이를 받아들이며 그들은 다소 그로테스크한 합일을 이룬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 도전하는 작품의 충격적인 결말이 며칠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작품이 흔히 남성들의 것으로 여겨지는 수사극의 형식을 취함에도 영화의 내러티브를 주도하는 것은 두 여성 주인공이다. 또한, 영화 속 여성의 몸은 남성에게 성적인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의 아픔과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그들은 자신의 최후를 스스로 결정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당대 여성의 현실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는 점에서삼공일 삼공이는 나에게 여성 영화의 훌륭한 예시를 제시한 작품이었다. 본 작품에서 두 주인공이 각자의 이름이 아닌 301, 302호라고 불리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가 단지 송희, 윤희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 어떤 여성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게 아닐까. “마누라 죽이기”(강우석, 1994)가 대중적으로 흥행한 바로 이듬해, 한국 영화계에는 이런 영화도 나왔더랬다.

 김홍식(Editor)

 


베어풋 인 더 파크(Barefoot in the park)

요즘은 언젠가 느닷없이 찾아올 그 시점을 위해 자신만의 영화 라이브러리를 작성하는 중이다. 보석점에서 아침을 먹거나 빗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다소 엉뚱한 제목의 그때 그 시절 미합중국 코미디 영화를 믿고 보는 편이다. 지극히 개인의 기쁨을 고백하는 본 코너에 닐 사이먼(Nill Simone) 동명의 극작에 기반한 67년도 영화 “맨발로 공원을(Barefoot in the Park)”을 소개한다.

색 바랜 음반 표지 같은 포스터가 매력 만점. 저렇게 사이좋게 거니는 두 선남선녀가 누군고 하니, 바로 60년대 미모로 날렸던 여배우 제인 폰다(Jane Fonda)와 브로드웨이 극장의 스타였던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 되시겠다. 이 둘의 열연으로 “맨발로 공원을”은 여성의 포니테일 머리의 매듭이 정수리에 가깝게 올라갔던 시절, 할리우드가 제시한 로맨스 코미디의 교본이 되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시내의 호텔에서 며칠간 나오지 않던 잉꼬부부가 이혼의 위기를 겪고 이를 극복하는 2시간의 여정. 맨발로 공원을 걷는 바보짓으로 모든 갈등이 풀리는 시트콤 같은 전개에 겪어보지도 않는 시절의 향수에 빠진다. 지금도 마찬가지나 어릴 적 내가 흠모한 이들은 60년대 패션 잡지의 여인들이었고 처음 모았던 음반도 60년대 여성 팝 가수의 것이었다. 레이지보이 의자에 파묻혀 흘러간 미국 영화를 연짱으로 보고 싶다. 그 옆엔 코스트코 감자 칩이봉지 정도 있으면 더 좋겠지.

홍석민(Editor)

 


타인의 취향(Le Goût des Autres)

집중력이 낮아서인지 몰라도 평소에 영화를 볼 때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잔인한 범죄, 스릴러, 갱스터 무비만을 찾았던 거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인생에 느긋한 영화 한두 편쯤은 있었다

아마 2000년대 초였을까. 지금 추천하는 이 영화를 고등학교 3학년 혹은 재수생 시절에 본 것으로 기억한다. 도대체 어떤 귀인이 나한테 추천했는지는 아쉽게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지금에 와 무척 고맙다. 아마도 그 당시 내가 활동(?)했던 인터넷 커뮤니티 웹사이트 일원 중 한 명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내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 세상을 내 나름대로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이 영화가 무엇이냐? 1999년 제작되어 2001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아그네스 자우이(Agnes Jaoui) 감독의 프랑스 영화 “타인의 취향(Le Goût des Autres)”이다.

영화 속 다양한 인물 간 갈등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고지식하고 재미없는 사장님과 예술혼에 청춘이 다 연소된 연극배우의 만남, 연극배우에게 빠진 사장님. 사장님은 그녀를 알아가며 그녀 주변 작가들의 그림을 구입하고, 일을 준다. 하지만 그녀는 사장님을 쉽게 말해무시한다. 이유는 예술의자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친구들에게투자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장님의 진짜 마음은무엇이었을까

나는 이 글을 읽는 친구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생략하겠다

나와 맞는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뭘 좀 아는 사람, 뭘 모르는 사람으로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며, 취향을 등급으로 나눠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 여겨지는 이들을 무시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변했고, 낯선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나는 이런 게 좋아, 저런 게 좋아. 네가 좋아하는 건 이런 게 구려, 저런 게 구려,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이 영화는 깨닫게 해줬지만, 나는 여전히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취향마음에 관해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을 제공하고 이 세상엔다양성이라는 단어도 있다고 귀띔해준 영화 “타인의 취향”을 추천한다.

박진우(Graphic Designer)

EDITOR’S DELIGHT – GUILTY PLEASURES

길티 플레저(Guily Pleasure). 떳떳하지 못한 쾌락, 유희. 여기서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은, 불법적이거나, 도덕적인 기준의 죄책감이라기보다는 성숙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일종의 계급처럼 치부하는 사회적인 통념의 기준에서 유치하거나 촌스러운 나머지 들키고 싶지 않은 은밀한 취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남에게 자랑할 만한 장면만을 보여주고, ‘제2의 멋진 나’를 창조해나가며 모두가 인플루언서를 향해 달리는 시대인 만큼, 과거보다 더 자극적인 각자의 길티 플레저가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 자신이 그리는 ‘돕한 나’를 위한 인스타그램 타임라인 뒤에는 불알친구들과도 공유할지 말지 고민되는 인간적인 모습의 나 자신이 있을 것. 쿨가이로 살고 싶은 VISLA 친구들에게 “네 길티 플레저는 무엇이냐?” 질문을 던졌다. 생각보다 추한 것들이 나오지 않아 조금 아쉽지만, 그들의 수줍은 고백에 귀 기울여보자.


세계과자할인점 

이 기획을 빌어 세계과자할인점의 감동을 꼭 나누고 싶었다. 사실, 올여름까지만 해도 세계과자할인점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편협했음을 고백한다. 건조한 네이밍,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드나드는 여고생 무리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으니까. 그러나 햄버거 하나 사 먹을 돈도 남아 있지 않았던 어느 출출한 하굣길에, 세계과자할인점은 궁색하지만 최고 효율의 군것질을 가능케 해주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당장 집 근처 세계과자할인점을 방문해보길. 세계 곳곳, 수천만 코흘리개의 엄격한 심사를 거친 최고의 진미를 대충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맛볼 수 있다. 국산 과자 위주로 판매하는 편의점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리그라는 거지. 어차피 군것질이라는 것이 본디 포만감을 위한 것이 아닌, 심심한 입을 달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생각해볼 때 세계과자할인점은 그야말로 딱 준수한 양의 씹을 거리를 제공해준다. 그동안남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이런 저렴한 가성비를 멀리해왔지만,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은 땡전 한 푼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맛을 갈구한 우리 청년들의 자랑스러운 해답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 정도 수준의 큐레이션을 시시하다고 치부하기엔 나도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분식점을 기웃거렸던 초등학교 시절로부터 그다지 멀리 와 있지 않다

잡소리가 길었지만, 지금도 주머니 사정과 입맛이 비례하지 않는 날에는 종종 세계과자할인점을 찾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가게를 들어서는 내 발걸음이 당당하리라 생각하진 말길. 이게 뭐라고 가게에 들어서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을 보면 아직은 내게길티 플레져임이 분명하다. 무의미한 편견과 허영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2019년이 되길.

김용식(Contributing Writer) 


파워풀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르한 목사의 너절한 설교쯤으로나 치부하던 갖가지 경영서가 어느 날부터 내 손에서 떠나지 않던 건 일종의 절박함에서였을까. 잡지라는 이름에서 떠올릴 수 있는 일련의 일들을 누군가에게서 배운 적 없듯 돈을 버는 법 또한 스스로 겪어내야 했다. 먼저 넘어야 할 산은 표지부터 너무나도 엄숙해서 드러누운 채 읽기 죄스러운 경영서의 첫 장을 넘기는 일이었다. 피터 드러커, 레이 달리오, 리드 해스팅스와 같은 인물을 내 생애 접하는 날이 올 줄 상상이나 했을까. 뒤틀린 야망에 사로잡힌 작자들이나 성서처럼 달달 왼다고 믿어왔던 경영의 원칙. 내게는 왠지 께름칙한 과대포장 광고처럼 느껴졌단 말이다. 성과라는 말에, 이성이라는 말에, 합리성이라는 말에 기꺼이 자신의 생을 내어준 야심가들과는 어딘지 가까워지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성과와 원칙이라는 단어가 빼곡히 적힌 책을 집어 든 그때부터인가 오욱석과 백윤범이 몇 해 전에 진행한 제프 스테이플 인터뷰가 종종 머리에서 맴돌았다. “직접 티셔츠나 모자 몇 개를 만들어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20년 동안 브랜드를 유지한다는 생각은 못 해봤겠지. 스테이플을 시작하고 5년이 지났을 때, 여러 비즈니스 전문가가 위기를 이야기했다. 그들의 말은 대부분 옳다. 90%는 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10% 정도만이 통과한다”.

VISLA가 곧 여섯 번째 생일을 맞는다. 나는 여섯 해 동안 90%의 불안과 10%의 기대가 교차하는 감정 상태로 지나온 것이다. 속을 갉아먹는 것인지 들뜨게 하는지도 모른 채로. 그렇다고 이게 특별한 삶은 또 아닌 것이 나처럼 일반적인 사회질서에서 조금은 비껴나 혼자서 또는 동료들과 함께 철없는 궁리 끝에 뭐 하나쯤 만들어보려는 꿈을 품어본 이들이라면 5년쯤 지날 때 비슷한 감정을 겪었을 거라 짐작한다. 이쯤 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칠지도 모른다. 문화인지 예술인지 그것도 아니면 개똥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남들에게 여간 적지 않은 피해를 끼치며 꿋꿋이 이어가는 그 어처구니없는 창작을 대체 왜 하고 자빠졌는지 말이다. 그러다가 지쳐 나가떨어지는 이들도 여럿 있고, 근근이 버텨가는 이를 보며 나와 같다고 위안 아닌 위안 삼다가도 어딘지 민폐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이거 좀 위험하겠다 싶더라. 그래서 숱하게 떠오르는 핑계를 잠시 뒤로하고 자리에 각 잡고 앉아보자는 일념 하나로 집어 든 것이 이름부터 어딘지 우스운 ‘파워풀’이라는 책이라는 사실. 허탈하긴 하지만 결국에는 그게 지금 내 현실이었다.

나는 올 초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묻거나 책을 찾아가며 앞으로 우리가 업계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원칙을 적었다. 우선 몇 달간 숫자와 친해지려 했다. 손익계산서, 영업이익, 방문자, 노출, 도달. 끔찍하게도 보기 싫었던 그 숫자는 현재의 기초체력을 진단해주었다. 안개 낀 풍경이 비로소 또렷한 사진처럼 보이는 걸 보아하니 그래도 정신은 좀 차린 모양이었다. 솔직하게 인정하자. 나는 분명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진정성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인가? 믿었던 유연함의 실체는 연약함이었나? 그런 와중에도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이 숫자만큼은 정직하다. 더는 부푼 환상에 가슴 벅찰 것도 없으며 막연히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간절하면 이루어질 것이라고들 하던데, 가까스로 붙잡은 지푸라기가 그토록 보기 싫었던 숫자라니.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는 얼마나 더 절박할 것인가. 나는 양가적인 감정 상태를 하나로 정리했다. 이루어지리라 믿었던 것들. 그건 그저 믿는 것일 뿐. 이제 직접 손에 쥐어보기로 했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당신은 무엇을 이뤄냈는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 다시 내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 냉소다. 그렇다면 지금 시작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권혁인(Editor-In-Chief) 


김성모의 용주골 유니버스

대본소 공장장의 아버지. 한때 인터넷 문화의 한 획을 그은 병맛의 원조…라지만 최근 ‘고교생활기록부’의 적나라한 트레이싱이라든지 네이버 웹툰 역대 최하평점이라 해도 무방한 ‘돌아온 럭키짱’ 등을 생각해보면 사실 짜친다는 말조차도 과찬이리라. 문화의 최전방에서 근사한 것들을 소비하는데도 24시간이 모자란 한남동과 서교동의 멋쟁이들은 그 존재조차 알 리 없겠지만, 실은 업계 탑 프로스펙트 기안84조차 “나 혼자 산다” 중 만화방에 갔을 때 가장 먼저 꺼내 드는 ─ 물론 모자이크 처리되었다 ─ 모두가 보았지만 그 누구도 본 척하지 않는 언더그라운드의 숨은 명작이 있으니 바로 ‘용주골’ 시리즈다. 단순히 그 옛날 근성체를 위시로 한 병맛 따위의 겨드랑이나 가랑이 냄새 맡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성매매금지법으로 초토화된 용주골,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그들과 그녀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겠다는 꽤나 결연한 의지를 담아 시작하지만, 실제로 성모 형님이 담아내신 용주골과 창녀, 삼촌들의 삶이란… “나르코스” 속 살벌한 카르텔을 소꿉장난으로 만드는 그야말로 오늘날 인간 하드보일드의 정점이다. 이 만화에서는 굳이 경찰을 매수할 일도 없다. 경찰이 없으니까. 정치인? 군대? 는커녕 일단 일반인은 택시기사가 유일하다. 오직 조폭과 창녀, 택시기사만 존재하는 이 김성모 유니버스의 가장 무서운 점은 모두가 알다시피 끝이 없다는 것. 이름부터 삭막한 ‘허벌창(중3)’이 창녀 엄마의 원수인 아버지(로 추정되는 누군가)를 담그러 가며 산뜻하게 출발하는 ‘용주골 비하인드’는 10권짜리 ‘용주골’의 비하인드 주제를 담은 작품으로 차수로만 700화가 넘어간다. 4일에 걸쳐 식음을 전폐하고 700여 화를 섭렵한 뒤 이제 이 지옥으로부터 해방되나 했더니, 용주골 시리즈만 무려 15개란다.

이것이 진정한 마초의 길, ‘용주골 깡패’, 재즈의 선율 속에 뜨거운 욕망이 전율한다, ‘용주골 블루스’, 이 시대 최고의 스타일은 무엇인가, ‘용주골 강남스타일’ 그리고 ‘용주골 쌍건달’, ‘용주골 소매치기 탑걸’, ‘용주골 살인귀’, ‘용주골 2008’… 거기에 비슷한 느낌의 ‘빨판’과 ‘청송여자감호소’ 따위의 스핀오프까지 보고 있노라면, 사실상 인간으로서 지금까지 쌓아온 도덕이니 인격이니 하는 모든 세계관이 깡그리 무너지는 느낌이다. 물론 그 사이에 숨겨진 성모 성님의 병맛은 여전하다. 주인공의 이름은 장마다 바뀌고, 한국 조폭은 일본 용병을 ‘조센징’이라고 부른다. 이토록 강렬한 만화이건만, 유사 이래 그 누구도 지하철에서 펼쳐보지 않은 만화. 아무리 즐겁고 짜릿한 장면이 나와도 인스타그램에 올릴 장면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그 만화. 그럼에도 누군가 한국형 범죄 드라마를 만들겠다면, 고개를 들어 파주를 보라고 강력히 권하겠다.

김선중(Contributing Writer)


Travel Thirsty

나는 물고기를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물고기를 무서워한다. 물고기가 있는 바다나 물에는 들어가지 않고, 수족관조차도 꺼린다. 요리를 좋아하지만, 생선 요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물고기를 만지질 못하니까. 실제로 익힌 생선은 먹지도 못한다. 그래도 물고기 요리법은 궁금하다. 물고기를 요리하는 여러 채널이 있지만, 이 채널을 무엇보다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말도 안 되게 리얼하기 때문. 이 채널은 세계의 거리 음식을 다루며, 솜사탕부터 형형색색 물고기, 뱀까지 해체와 조리 과정을 모든 걸 그대로 보여준다.

길티 플레저에 웬 요리 이야긴가 싶겠지만, 내게는 이것이 요리 비디오라는 점은 꽤 중요한 요소다. 어쨌든 이 시리즈, 특히 생선 요리는 살아 있는 물고기나 어패류를 죽인다. 즐거움을 위해 보는 동영상에서 편마다 최소 하나의 생명이 사그라진다. 주로 도마 위에서 해체되고, 여러 방법을 통해 물고기는 재조립된다. 그러다 문득 ‘만약 이게 생선이나 어패류가 아닌, 소나 돼지였다면 나는 이 영상을 봤을까?’라는 물음이 생겼다. 만약 그랬다면 아마 안 봤을 거다. 내가 이 비디오를 유심히 보게 된 건 내가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생선이 너무나도 쉽게 죽어 나가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 발짝 멀리 떨어져 비디오로 보는 가장 싫어하는 생물의 죽음. 그냥, 갑자기 단두대와 사형수를 구경나온 시민의 심정이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심은보(Editor) 

 

EDITOR’S DELIGHT – NETFLIX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돈 주고 영상 콘텐츠를 보면 바보 취급을 받았던 한국이지만, 이제는 적어도 내 주변에는 정당한 페이를 내고 넷플릭스(Netflix)나 왓챠(Watcha) 등의 비디오 콘텐츠 서비스를 이용하는 친구들이 꽤 늘어난 듯하다. 술자리나 카페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을 때 자신이 보는 타이틀을 소개하기도 하고 교집합도 찾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우도 잦아졌다. 나 또한 작년 초만 해도 친구들 계정에 여기저기 기생했으나 내가 본 시리즈가 아카이빙되지 않는 게 왠지 짜증 나서 결제해버렸다. 내가 본 영상들의 목록이 남았을 때 좋은 이유는 넷플릭스가 알려주는내 취향과 98% 일치콘텐츠 이런 거 말고 실제로 내가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죽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친구들과 이 정보를 공유해보면 누구는 코미디 시트콤, 누구는 히어로 액션물, 누구는 특정 배우가 나온 작품을 선호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정리된다. VISLA 에디터들에게 삶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무언가를 소개하는 시간, 에디터스 딜라이트(Editor’s Delight)의 첫 번째 주제는 넷플릭스다. 그들의 취향과 삶의 재미를 슬며시 추천받았다.


KKK와 친구 되기

어릴 때부터 나는 드라마나 예능 따위의 것들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단한 약속이라도 한 듯 정해진 시간에 TV 앞을 지키는 일은 귀찮았다. 소위인싸들의 대화에 껴보고 싶어 억지로 챙겨보기도 했지만 도중에 포기하기를 여러 번, 결국 내가 선택한 건 영화나 다큐멘터리처럼 한 큐에 몰아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열정적으로 찾아서 보는 편이냐고 물으면 사실 그것도 아니다. 뭐 좀 보려고 할 때마다 인터넷에서 파일 찾는 일도 만만찮게 귀찮거든. 결국 제일 만만한 대안책인 유튜브에 안주하던 중, 얼마 전 동생이 공유해준 계정을 통해 나도 넷플릭스 유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넷플릭스는 분명 모든 면에서 신세계였지만, 무엇보다도 다큐멘터리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세상 오만 것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중 유독 내 구미를 당긴 건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 작품. 특히 “KKK와 친구 되기는 최근 본 어떤 영상보다도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흑인 뮤지션 데릴 데이비스(Daryl Davis)는 대표적인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Ku Klux Klan)의 친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어린 시절 다양한 문화적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그림자처럼 쫓아오는 인종차별을 피할 수 없었던 그는 1990, KKK 단원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로 결심한다. 그들의 무조건적인 증오의 배경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편견에 맞서는 그의 방법은 단순하다. 절대 말이 안 통할 것 같은 이들과 마주 앉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교화의 과정에서 폭력의 자리는 경청과 이해의 노력이 대신한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만나 대화한 지 30년 정도 지난 지금, 그의 창고는 KKK단의 간부들이 단체를 탈퇴하면서 건네 준 로브들로 가득하다. 차별과 증오를 벗어버린 그들은 모두 데릴의 친구가 되었다. 물론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협박을 당하기도 하고, 흑인 운동가에게서 동족의 배신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갖은 핍박에도 그는 묵묵히 자신의 철학을 삶을 통해 증명해낸다. 두 집단의 뿌리 깊은 분노 속에서 화해자를 자처하는 그의 헌신은 작지만 숭고하다. 데릴이 주장하는 소통의 방법이 정말 최선의 해결책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리와 갈등으로 대변되는 트럼프의 시대에 그의 삶은 분명 일깨우는 바가 있다. 남과 여, 국민과 난민,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갈등이 극에 달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화면은 어서 다음 콘텐츠를 선택하라며 재촉했지만 내 손은 한동안 허공에 머물렀다.

김홍식(Contributing Writer) 



한니발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한 범죄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에 흥미가 있어 뒤늦게 전설의 미드브레이킹 배드를 시작으로기묘한 이야기”, “마인드 헌터”, “루머의 루머의 루머”, “나르코스”, “다크”, “맨헌트: 유나바머”, “퍼니셔”, “죄인등 숨 쉴 틈 없이 달렸다. 그 후 살인과 피에 조금은 무뎌진 상태에서 만난 이 드라마 시리즈, 북유럽 미남처럼 생긴 아저씨가 커버로 등장하는한니발이 나와 마주했다. 영화양들의 침묵재탕 같은 제목이 왠지 꺼려졌지만 ─ 실제로 재탕이다 ─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자마자 나는 호로록 빠져들었다.

순식간에 시즌3까지 마무리한 결과, 핵심 내용은 외과의사 경력이 있는 정신과 상담의인 주인공 한니발 렉터(메즈 메켈슨) 교수가 비밀스럽게 인간을 사냥해서 얻은 인육을 멋지게 요리해서 와구와구 먹는 게어쨌거나의 골자다. 이전에 본 다른 드라마의 잔인한 장면들은 오히려 캐주얼하게 느껴질 정도로 엽기적이고 고어한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살인을 예술로 승화시키려고 시도를 거듭하는 한니발 렉터 선생은 항상 쓰리피스 슈트를 멋지게 차려입고 지성이 넘치는 멘트를 마구 날리며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지식과 센스를 겸비한 멘트로 상대방을 압도한다. 역사, 문화, 음악, 음식 등 어떤 카테고리든 초월적 지식을 자랑하며 심지어 그림도 잘 그린다. 지식을 쌓느라 육체 단련에 소홀한 것도 아니다. 드라마 중간에 등장하는 수영장 장면에서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남성호르몬이 철철 흐르는 역삼각형 몸매를 자랑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한니발 렉터 특유의 섹시미는 요리할 때 발산된다. 셔츠를 두세 번쯤 걷고, 레시피와 재료를 결정하고, 재료 손질을 거쳐 요리한 음식을 먹는 장면은 어떤 요리 프로그램에서도 보지 못한 고급스러움이 있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완성된 넥스트 레벨의 인간이니, 상대적으로 멍청하게 느껴지는 인간사회에 지루함과 미개함을 느끼고 결국엔 미쳐버려 비밀의 인육 사냥을 펼치는 그 심정을 왠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잔혹한 범죄 스릴러이지만 시즌별로 시즌 1은 프랑스 요리, 시즌 2는 일본 요리, 시즌 3은 이탈리아 요리의 이름으로 에피소드 제목이 정해져 있다. 손님을 초대해서 자신이 직접 조리한 인육 요리를 대접하며 이 요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소개할 때는 왠지 황교익이 생각나기도 한다. 넷플릭스에서 최고의 고어함을 자랑하기에 잔인하거나 출혈 장면을 잘 보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추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잊지 마시길. 고어함도 최고지만, 주인공 한니발 렉터의 고상한 면모는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의 캐릭터성을 자랑한다.

박진우(Graphic Designer)


파라다이스 PD

넷플릭스 콘텐츠를 훑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바로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 영상, 이를테면 과하게 폭력적이고 성적이거나 약물과 관련된 콘텐츠들이다. 자극적인 영상이 마구 쏟아지는 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분명 제약이 많은데, 그런 것들이 필터링 없이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실정이다. 학부모라면 다소 꺼릴 만하지만, 조금 더 빠르게 미국 본토의 콘텐츠를 느껴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환영할 일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시청했던파라다이스 피디(Paradise PD)”는 한국 표현으로 비유하자면 그야말로 약 빤 내용으로 채워졌다. 파라다이스 시티의 경찰서에서 일하는 ‘BAD’ 경찰들을 보여주는 이 시리즈는 2018 8, 첫 시즌을 개시했으며 현재 넷플릭스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

지나는 뚱뚱한 경찰 더스티를 괴롭히는 여경이다. 치프 랜달은 경찰관 서장이며 같은 서에서 근무하는 케빈의 아버지다. 불렛은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약물에 중독 강아지다. 제랄드 피츠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걸린 경찰관이다. 이 중에서 주인공급 캐릭터를 꼽으라면 경찰서장 랜달과 그의 아들 케빈이다. 케빈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총을 쏴서 그의 고환을 터트렸고 아버지는 아내와 이혼했다. 랜달은 이혼의 원인이 아들 케빈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 이 부분을 글로 작성하니 매우 드라마틱하고 진지한 내용 같지만 시즌1 1화 시작과 동시에 약 10초 만에 이 모든 내용이 나온다 ─. 이후 랜달은 남성 호르몬 패치를 온몸에 부착하는데, 패치를 붙이지 않으면 몸이 여성화된다. 이 간단한 설정만으로도 이 작품이 얼마나 약을 빨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우스파크를 재밌게 본 이들이라면파라다이스 피디역시 취향에 잘 맞을 것. 병신미 하나는 확실히 사우스 파크를 능가한다 ─ 사우스 파크의 병신미를 넘기란 정말 쉽지 않다 ─.  깊은 고민 없이 이런 맛이 간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느끼고 싶다면 바로 클릭해보자. 이 시리즈를 보고 나면 본인이 꽤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최장민(Director)



러브 라이브! School Idol Project

늦어도 한참 늦은 시작임엔 틀림없었다. 몇 년 전 일본 열도를 휩쓸고 한국에까지 본국의 광기를 전도한 메가 히트 시리즈러브 라이브! School Idol Project”. 어렴풋이 알고만 있던 본 만화영화를 제대로 살펴본 계기는 역시나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 계정을 공유하는 지인의 침 튀기는 추천에 나란히 앉아 보았더니 방영된 지 5년이 지나도 여전히 전하는 울림이 크더라. 등쌀에 못 이겨 봤다고 말한 것 치고는 잘도 반나절을 내리 봤다. 폐교를 앞둔 학교의 여학생들이 스스로 아이돌 그룹을 결성해 결국 학교의 위상을 높여 위기를 극복한다는 몇 시간의 여정. 아이들이 유쾌히 웃고 노니 그저 예능 프로그램 보듯 가볍게 넘길 수도 있었으나 무시할 수 없는 신선한 이질감이 있었기에 첨언한다.

우선 작품을 통틀어 남자가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더라. 지나가는 인파의 실루엣 정도가 전부라 ─ 주인공 중 한 명의 아버지가 잠시 등장하나, 대사는커녕 얼굴조차 가려졌다 ─ 단언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 적나라한 남성향의 콘텐츠가 아닌가 싶었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 흔한 연애선 하나 그어지는 일 없이, 공동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 무리가 시청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응원뿐. 지지고 볶으며 위기를 극복하는 그들을 보며 같이 긴장하고 안도하는 것밖에 허락되지 않았다. 커피 내리다 연애하고 수술하다 연애하는 모 드라마의 전개도 남녀노소의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김용화 감독의국가대표가 일순 연상되는 이 만화영화의 전개에 홀랑 공략되었을 남녀 불문 팬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실제로 모 일본 대기업 3사가 힘을 합쳐 성공시킨 거대 프로젝트인 본 가상 아이돌 시리즈는 수년에 걸친 준비 기간 끝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나아가 연이은 속편의 성공으로 힘입은 본 허상의 캐릭터 그룹이 여타 아이돌의 성공 척도 돔 공연을 성사시키기에 이르렀으니, 이즈음이면 스토리텔링 콘텐츠의 신화적인 성공이라 봐도 손색없을 것. 물론 정서가 다른 타국의 대중문화이니 기탄없이 이해하긴 무리가 있지만, 단기 여행에서 느낄 수 없는 일본의 응원 문화를 본 만화영화가 교묘히 공략한 게 분명하다. 한국 가요 절반이 슬프고 화나 죽겠다면 일본 가요 절반은 붕 떠서 서로를 응원하더라. 흥미로운 차이라고 생각한다. 되도록 그 중간에서 살아야지. 여생은 울릉도에서 보내야겠다.

홍석민(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