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O LEE

벽면을 가득 채운 유리창을 타고 들어오는 햇볕을 뒤로한 채 아프로 리(Apro Lee)는 응접실 한가운데 자신의 소파에 앉았다. 반대편 손님용으로 준비한 기다란 소파의 끝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셰퍼드, 다우드(Daud)의 전용석이었다. 나는 내 정면에 앉은 남자보다 덩치가 큰 개의 뜨거운 시선을 억지로 피했다. 다우드는 계속해서 내 발가락을 핥았지만, 멈추게 할 도리가 없었다.

아프로 리는 긴장을 풀 겸 담배를 한 대 피우자고 했다. 그제야 내가 이곳에 앉아있는 이유를 자각할 수 있었다. 천천히 공간을 둘러보았다. 국적을 알 수 없는 몇 가지 소품과 한국의 전통적인 가구 그리고 병풍이 묘한 분위기를 이루었다. 한 시간가량의 대화가 시쳇말로 물 흐르듯 이어졌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내 옆에서 털을 비벼대는 다우드 그리고 조용히 확신에 찬 말을 건네는 아프로 리의 모습이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타투를 한 지 10년이 넘었다. 타투를 처음 접한 계기를 떠올려보자면.

2005년 즈음부터 시작했으니까 십몇 년 됐네. 특별한 계기는 없지만 이걸 말하려면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고 만화 보는 걸 좋아했다. 대여섯살 때부터 만화가가 꿈이었다. 그러나 나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공부를 못한 게 아니라 아예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결국 어떤 대학도 갈 수 없었지. 그렇게 성인이 되고 입대해서 제대 1년 남기고 생각해보니까 만화가는 너무 힘든 직업인 거지. 지금은 웹툰이 생기고, 만화가 영화로도 제작되면서 만화가들 벌이가 더 나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만화가만큼 어려운 길이 있을까 싶었다. 현실적인 걱정이 앞섰다.

그러다 우연히 군대에서 타투 관련 뉴스를 봤다. 타투이스트와 타투를 받은 사람이 함께 경찰에 소환됐다는 뉴스였다. 당시에는 몸에 일정 부분 이상 타투가 있으면 군대가 아니라 감옥에 갔다. 그때 경찰에 끌려가던 청년의 몸에 커트 코베인 얼굴 타투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타투를 보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타투라고 하면 이레즈미나 트라이벌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얼굴이 타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지.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타투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공부는 못해도 손재주는 그리 나쁘지 않았고, 그림도 계속 그려왔으니 타투는 한 번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면 당시 생소한 타투보다도 다른 장르의 예술가로 꿈을 키워볼 수도 있지 않았나?

물론 고민했다. 그러나 예술가로 성공을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학력, 돈, 중요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이 세 가지 중 내가 충족하는 조건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무명이어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쉬워졌지만, 십여 년 전에는 내 작품을 드러낼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나는 너무 가진 게 없었으니까.

2005년 즈음이면 타투 문화에 관한 대중의 인식이 부정적일 때다. 지금이야 일종의 패션, 문화로 받아들이지만 당시에는 문신은 깡패들이나 하는 거라고 여기지 않았나.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소위 ‘감방 타투’라고 불리는, 못으로 새기는 타투가 많이 보이던 시기였다. 아마 나와 비슷하게 시작한 타투이스트 세대는 알 텐데 그 시절 학교 다닐 때 소위 일진이나 양아치들이 손가락에 왕(王) 자나 만(卍) 자를 새기곤 했다. 알고 보면 그게 사실 다 갱 타투다. 손가락에 새기는 왕은 본래 자신이 잡범이 아니라 큰손(빈집털이범)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타투를 배우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타투를 시작할 무렵에도 타투를 가르치는 타투이스트가 있었다. 일종의 크루나 집단의 성격을 띠고 활동했지. 그러나 그들 역시 내공이 쌓였다기보다는 이제 막 타투로 자리를 잡아가는 비기너의 단계였던 것 같다. 다 같이 배우는 입장이었던 거지. 시각 자료나 전문적인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아서 인터넷을 통해 외국 타투이스트들의 작업 사진을 몇 날 며칠이고 쳐다본 게 전부다. 그때는 큰 작업을 할 수 있는 신체를 제공받기도 쉽지 않아서 돈을 받지 못하더라도 우선 타투를 연습할 수 있다는 기회가 소중했다. 그렇게 친구들 몸을 하나둘씩 망쳤지. 그 시절 사람들은 아마도 다 비슷하게 시작했을 것 같다.

영화 같은 매체를 통해 러시아 크리미널 타투에 익숙한 이들도 많을 텐데.

그건 견장의 의미지. 무릎에 별이 있으면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무릎 꿇지 않겠다”라는 의미다. 어깨에 있는 건 그 사람의 지위를 말한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자신의 신체에 크리미널 타투를 새기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 해외에 나가서 러시아 갱을 실제로 마주친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눈가에 점 세 개 찍는 타투를 쓰리닷(Three Dots) 타투라고 한다. 이것은 MS-13이라는 매우 위험한 폭력 조직의 심볼이다. 집단구타를 당하는 입단식을 거치고 나면 정식으로 멤버로 인정받고 엄지와 검지 사이 또는 눈 옆에 점 세 개를 찍는다. 실제 경험으로는 쓰리닷 타투 때문에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린 적도, 오히려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

실제 조직폭력배들이 찾아왔는지?

이레즈미 작업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다.

타투를 독학하다가 돌연 외국으로 떠났다고 들었다. 왜 떠날 결심을 한 건지 궁금하다.

결국 생존이었다. 은행에서 현금 서비스를 받아 월세 메꾸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마 그 무렵은 잘나가던 타투이스트도 큰돈을 벌지는 못 했을 거다. 심지어 나는 초보였으니까 불 보듯 뻔했지.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작업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알고 보니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타투 머신의 일부 파츠를 꼭 바꿔줘야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몇 년을 그대로 사용했다. 망가질 수밖에. 나중에 고치려고 했지만 막상 의뢰할 곳도 없었다. 아는 사람들도 쉬쉬하면서 감추고 작업할 때다. 삶도 힘들었고 국내 실정도 좋지 않아서 이왕 죽을 거 외국에서 객사하는 거랑 뭐가 다르겠나 싶어서 무작정 지도를 들고 점 하나 찍어서 간 게 호주 브리즈번이었다.

호주에서 겪은 타투 신에 관해 들려 달라.

문자 그대로 충격이었다. 인구의 70퍼센트는 몸에 타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타투를 즐기는 나라였다. 게다가 운 좋게도 타투숍에서 좋은 멘토를 만났다. 그때 작업을 열심히 하면서 실력이 많이 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와서 타투를 받고, 온 가족이 함께 오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내기에 져서 우스꽝스러운 타투를 받으러 온 남자도 있었고, 각양각색이었다. 타투에 굉장히 열려있는 나라였다. 내가 살아온 한국은 타투가 설 자리가 없는데. 심지어 같은 시대에 사는데도 장소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문화가 다를 수 있는지.

타투를 배워나갈 때 영향을 준 아티스트가 있다면?

정체성이나 스타일이 구축된 시절은 아니라 장르 구분 없이 솜씨가 좋은 타투이스트의 작업이라면 다 좋아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필립 류(Filip Leu), 틴틴(Tin-Tin Tatouages), 아닐 굽타(Anil Gupta) 같은 인물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특히 아닐 굽타는 한창 공부할 때 레퍼런스로 많이 활용했다. 그때부터 아닐 굽타는 이미 세계 톱 레벨의 타투이스트였다.

버드와이저와 함께 기획전 ‘TATTOO, 자유와 예술에 관한 담대한 재해석’을 준비 중이다. 이번 전시의 주안점이라면?

지하 4층 전체를 내가 사용하기 때문에 얼핏 개인전처럼 비칠 수도 있지만, 사실 버드와이저라는 대형 브랜드와의 협업이기에 내 작업과 브랜드 이미지 사이에서 조율이 필요했다. 민화라는 장르가 대중에게 고루한 이미지로 다가갈 수도 있기에 전시의 의도, 즉 미래로 나아가는 뉘앙스를 살리기 위한 소재와 구도를 고민했다. 너무 내 걸 고집했다가는 이미지가 따로 놀 것 같았다. 단순히 한지와 먹을 가지고 그리는 장르라는 인식에서 탈피해 완전히 새롭게 민화를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주제를 다룰 예정인가.

접점(Contact)이다. 그것은 타투라는 다소 생소한 문화와 일반인과의 접점일 수도 있고, 민화라는 과거와 타투라는 미래의 접점일 수도 있다.

용과 호랑이라는 비교적 익숙한 동물을 중심 소재로 삼았다. 이번 전시 작품의 대략적인 구성과 표현 의도를 알고 싶다.

지금 내 작업의 주요한 관심사가 호랑이기도 하고, 왜 흔히 ‘용 문신’이라고 하지 않나. 타투라는 문화에서 일반인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용이 아닌가 싶어서 그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대표적인 소재, 즉 호랑이와 용을 택했다. 이번 작업의 재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하나하나가 메타포를 지닐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인주와 붉은 실, 못, 가죽 같은 것들을 활용했다. 인간의 피와 가장 비슷한 재료를 찾고 싶었는데 마침 인주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진하고, 끈적하고, 무언가 찍는다는 의미가 타투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았다. 붉은 인주를 바탕으로 무수히 박힌 못에 실이 연결되며 용의 형상을 이루는데, 모든 라인은 피가 흐르는 걸 상징한다. 못이 결국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혹은 타투이스트 한 명 한 명이 될 수도 있다.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부조리를 느끼는 수많은 타투이스트가 굉장히 용기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인 붉은색을 택했다. 저항, 투쟁의 의미로 비칠 수도 있다. 타투할 때 바늘이 한땀 한땀 들어가듯, 못 하나 툭 던져놓으면 별 볼 일 없지만 수천개가 모여 만들어내는 하나의 형상, 그것이 곧 상징적인 무브먼트가 아닐까 하고 상상한 것이다.

민화라는 장르를 하나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발전시켰다. 왜 민화인가?

계기는 별거 없다. 십 년 전쯤인가. 막연하지만 한국화로 타투를 해보고 싶었다. 한국화는 여백의 미를 중시한다. 또한 거침없는 맛이 있다. 물론 거침없이 표현하는 단계에 도달하려면 정교하게 그리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천 번의 붓질을 단 열 번, 단 한 번에 완성하는 것. 그런 경지야말로 조선 시대의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미학이 아니었을까 한다. 다만 그것을 타투로 표현하는 일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였다. 그렇게 잊고 살다가 해외에서 타투를 공부할 때 각국의 타투이스트와 대화를 나누면서 미국, 유럽, 일본, 태국 등 다른 나라의 스타일을 말하는 나 자신을 보고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한국인인데. 그때부터 김홍도의 호랑이와 같은 조선 시대의 민화를 내 방식대로 해석해서 타투를 하기 시작했다.

민화를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것으로 습득했는지 궁금하다.

막 민화를 공부할 무렵 우연히 알게 된 어떤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기가 무언가를 표현할 때, 그것을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의 차이가 극명하다고. 그 말을 듣고 내가 어렴풋이 알던 지식을 바탕으로 민화를 표현하는 것보다도 민화의 역사부터 표현, 주제까지 알고 그린다면 모르긴 몰라도 뭔가는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갤러리나 박물관에서 민화를 접하고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했다. 특히 한국화는 그림을 본다기보다는 읽는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형식과 역사 등 민화에 관련된 지식을 습득했지만, 도리어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민화는 말 그대로 정식으로 교육받지 않았던 민중의 그림이다. 형식에 연연할수록 그것이 내 표현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배움이 깊은 분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우습게 여길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천 번의 붓질을 단 한 번으로 표현하는 것이 과거 예술인들이 추구하던 경지라 말했다. 본인의 경우에 빗대었을 때 오랜 시간 타투에 매진한 지금 그 시작을 돌이켜보자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타투를 하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는 구간은 끊이지 않고 따라왔다. 슬럼프는 항상 예기치 않게 찾아오니까. 다만 3년쯤 지났을 때는 내가 잘하는 줄 알았다. 아장아장 걷는 주제에 우쭐했던 거지. 다른 이들의 작품을 무시하던 오만한 시기도 있었다. 7년 정도 됐을 때 “내가 뭘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 내가 뭔지도 모르면서 타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10년이 지나니까 이제야 “내가 이걸 ‘하고’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 걸음마를 떼기까지가 10년이었다. 내가 내 두 발로 걷는다는 걸 느끼는 단계. 이제는 걷기 시작했으니 똑바로 걷는 법을 훈련하고, 어디로 걸어야 할지 봐야 할 때인 것 같다. 한 30년쯤 하면 누군가에게 걸음마를 가르칠 수도 있지 않을까.

기피하는 타투 장르도 있나?

어릴 때는 오만해서 내가 하지 않는 장르나 하기 쉬워 보이는 작품을 무시했다. 지금에 와 조금이나마 성숙해지고 경험이 쌓이며 타인의 장르나 스타일, 작업물을 존중할 줄 알게 되었다.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더 못났고 하는 생각은 이제 아예 하지 않는다.

타투를 계속해서 열망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두 발로 걷기 시작했으니 이제 뛰고 싶은 거지. 그간 민화, 까치와 호랑이, 단청과 같은 주제에 집중했다. 특히 호랑이는 4~5년간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왔다. 매년 호랑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처음에 그린 호랑이는 지금 보면 유치한데, 마치 그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다. 그때는 너무 많은 아이디어를 집어넣으려고 애썼지. 해가 지나면서 호랑이의 디자인이 바뀌는 것처럼 나 또한 변하는 게 아닐까. 가지치기, 즉 잡스러운 걸 빼는 과정이다. 그걸 돌이켜보는 과정도 재미있다. 호랑이를 어디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지, 내가 어디까지 만족할 수 있을지, 호랑이를 이제 좀 놔줘도 될 시점까지 가보는 게 짧은 목표라면 목표다. 그다음에는 단청에 집중해보고 싶다. 주제에 관한 목표를 정하고 도달하는 걸 즐기는 단계다.

호랑이를 놓아준다는 말이 흥미롭다. 어떤 의미인가?

지금까지 호랑이를 수백마리 그렸지만 여전히 고민이 많다. 어제의 호랑이는 어떻게 그린 걸까, 오늘은 또 어떻게 그릴까, 하고 말이다. 이미 호랑이라는 개체에는 어느 정도 규칙이 존재한다. 다리 넷, 꼬리 하나라는 개념 안에서 결국 미묘한 변화를 주는 일이다. 언젠가 고민하지 않고 물 흐르듯 나아가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이 곧 놓아준다는 단계가 아닐까. 그게 내가 경한 경지다. 내 한계일 수도 있다. 실제 호랑이의 크기로 호랑이를 거침없이 한 번에 그려내는 경지? 누군가는 이미 쉽게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 그러지 못하니까 거기까지는 가보고 싶은 거지.

어떤 경우에 타투 시술을 거절하는가?

내가 하지 않는 작업을 원하면 당연히 거절한다. 그리고 너무 많은 아이디어를 요구해도 거절한다. 그 식당의 고유한 음식을 먹기 위해 직접 찾아가놓고 레시피를 다 바꾸는 일 아닌가. 그리고 예의 없는 사람. 나는 예의를 중시한다. 예의 없는 사람은 나뿐만 아니라 누굴 만나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타투가 불법이다. 그런 이들의 몸에서 타투가 보인다면 일반인이 더욱더 색안경을 끼고 타투를 볼 것이다. 그 반대라면 타투라는 문화를 더 좋은 쪽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겠지. 그렇다고 내가 거창하게 어디 가서 타투 운동을 펼치는 건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인식의 변화는 이 정도의 작은 일이 아닐까 한다.

호랑이, 까치, 용, 단청 같은 전통적인 소재가 아닌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며 얻는 영감이라면?

특별한 영감을 받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민화를 한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민화 작가로 살겠다는 의지는 없다. 타투라는 하나의 장르를 가지고 작업하지만 나는 결국 표현하길 좋아하는 예술가로서 다양한 매체를 즐긴다.

한국 타투 신을 바라보는 관점 또는 그 안에서 느낀 바가 있다면.

한국 타투이스트로서 한국에서 작업하지만 사실 나는 타투 신에서 굉장히 고립된 사람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타투 신과도 연관이 없다. 나 잘난 맛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그저 개인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타투를 한다는 이유로 타투이스트들과 교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게 영감을 주는 이들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한국 타투 신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조심스럽지만 한 가지만 말해보자면 실력 있는 타투이스트가 정말 많아진 것 같다. 인스타그램이나 웹에서 랜덤하게 한국 타투이스트의 작업을 접할 때가 있는데,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분명 해외 경험도 없고, 시작한 지 고작 몇 년 안 됐을 거 같은 분들인데도 이미 독특한 스타일와 정교한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한국에서 조용히 자신의 타투 작업을 이어가는 젊은 세대가 이미 세계적인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니 왠지 뿌듯했다. 한국의 타투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나는 한국의 타투 신이 더 발전할 거라 믿는다. 물론 지금 등장한 타투 세대는 인간의 피부나 세월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 또한 그렇게 배웠듯 세월과 경험이 결국 그들을 더 성장시킬 것이다.

타투 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편인가?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는 종합예술이지 않나. 영화라는 종합적인 예술을 만들기 위해 음악, 그래픽, 미술, 장치 등 수많은 테크니션이 참여하는데, 그 한 명 한 명 또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한 편의 좋은 영화 안에는 그걸 그대로 갤러리에 두면 바로 예술이 될성싶은 장면이 많다. 따라서 영화에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도 많다.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영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나는 보통 손님을 응대할 뿐이지, 거의 돌아다니지 않아서 그럴 기회가 적다.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는가?

그렇기도 하지만 일단 내가 집중해야 할 작업이 있어서다. 사십 대를 목전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라는 개념이 젊을 때와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나에게는 이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고 느낀다. 이상하게 들리나? 작업과 연관을 지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내가 만족할 만한 디자인을 하나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0년이라고 치면, 지금부터 고작 두 점을 완성했을 때 예순이 된다. 이러니 시간이 없다는 거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따라주질 않는 거지.

삶의 초점이 오롯이 본인의 작업에 맞춰진 것 같다.

이전에는 나도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 게 휴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방금 말한 것처럼 내가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 자신, 내 삶에 집중한 것 같다. 내 시간을 보내는 법을 터득한 거지.

타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사실 좀 유치한 상상을 하면서 살아간다. 원대한 목표 같은 건 없다. 타투 마스터, 세계적인 타투이스트, 뭐 이런 꿈은 없다. 중요한 건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인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후세계다. 나는 특정한 종교를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가 모두 죽으면 과연 그것으로 끝일지, 영혼이라는 게 있어서 어딘가로 향하게 될지 늘 궁금했다. 만약 영혼이 있고, 죽고 나서 어딘가로 간다면 나보다 먼저 온 이들에게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살아서 이건 좀 무서워서 못하고, 이건 좀 겁나서 못하고 그러다 보면 과연 그 세계에서 사람들과 나눌 이야깃거리가 있을까 싶은 거지. 그래서 위험해도 일단 해보는 거다. 도전하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조차 이야기가 아닌가.

다르게 말하면 다음 세대, 즉 앞으로 살아갈 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 아닐까 싶다. 내가 선택해서 이 땅에 온 건 아닌데, 막상 왔더니 죽기는 싫고, 잊히기도 싫고. 내가 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었다’, ‘나 여기 있었다’마저 없다면 꽤 슬플 거 같거든.

타투이스트에게 걸맞은 삶의 철학처럼 들린다. 살에 타투를 새기듯.

재밌는 건 타투 역시 사람과 함께 사라진다는 거지.

Apro Lee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진행 / 글 │ 권혁인
사진 │ 배추

대규모 타투 축제, ‘중국 랑팡 타투 컨벤션’ 2019

중국 랑팡시(Langfang Shi)에서 오는 5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타투 컨벤션을 개최한다. ‘랑팡(Langfang) 타투 컨벤션’은 국제적 행사인 만큼 다양한 국적의 타투이스트들이 모여 타투 경연을 펼치게 된다. 이 컨벤션의 주목적은 모델의 몸에 새겨진 타투를 보고 평가하는 것으로, 입상한다면 상금 970만원에서 1,600만원까지 현금으로 받는다. 타투이스트라면 본인을 세계적으로 알릴 기회가 되고, 해외 타투이스트들과 친분을 쌓을 수도 있으니 컨벤션에 참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만약 타투이스트가 아닌 일반인이더라도 얻을 수 있는 건 많다. 먼저 타인의 타투를 유심히 관찰하고 촬영할 수 있다. 현장에서 타투를 받는 이들 또한 생생히 볼 수 있는데, 본인이 직접 좋아하는 해외 타투이스트에게 타투 시술을 받을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타투를 대규모로 만날 드문 기회니, 관심이 생겼다면 하단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신청해 보자.

World Tattoo Events 공식 웹사이트

SAEMTATTOO

타투(Tattoo)는 인간의 내재된 표현 욕구에 기원한다. 생물학적 존재에 불과했던 인간이 사회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타투가 계급의 구분과 종교적 역할을 했고, 현대에 와서는 미학적, 장식적인 의미가 더욱 도드라졌다. 그 의미는 계속해서 변해왔고, 최근까지 위화감을 조성하며 특정 집단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타투의 퇴색된 의미를 되찾는 일은 한국 타투이스트의 과업일지도. 최근 한국계 미국인 타투이스트 샘(Saem)을 만났다. 미국의 올드스쿨 타투(American Traditional Tattoo)를 고집하는 그는 현재 와일드로즈(Wildrose Tattoo)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타투이스트로 활동하는 샘(Saem)이다. 지난 5년 동안 와일드로즈에서 올드스쿨 타투를 다루고 있다. 반갑다.

 

본격적으로 타투이스트의 길을 걷게 계기는 무엇인가?

큼직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고향인 시애틀에서 어렸을 적부터 스케이트를 같이 타던 동네 친구가 블랙 앤 그레이(Black and Grey, 미국 교도소에서 유래된 타투로, 검정 잉크를 물에 희석한 비율로 농도를 조절해 작업하는 타투 장르) 타투를 내 팔에 그려줬고, 그때부터 호기심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타투를 직업으로 삼게 된 건 수습생이 되고 나서다. 미국에서 2년 정도 수습 기간을 끝마친 뒤 휴식차 서울에 오게 되었고, 선렛 타투(Sunrat Tattoo)에서 3년 동안 지냈다. 이후 미국과 대만 등 여러 곳을 다니다 와일드로즈에 4년 전 정착했다.

 

도안 혹은 플래시(Flash) 작업물에서 내공이 쌓인 드로잉이 느껴진다.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있나?

없다. 그렇지만 항상 올드스쿨 타투(Amercian Traditional Tattoo)를 좋아했고 그림을 취미로 그려왔다. 게스트 워크로 세계 여러 군데를 여행하다 보면 다양한 아티스트를 만나게 되는데, 이게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들과 함께 도안을 그려보기도 하고.

 

도안을 그리기 위한 영감은 어디서 얻나?

클래식 레퍼런스(Classic Reference)는 언제나 내 영감의 대상이다. 예를 들어 1900년대 초반 서커스 피닝(Circus Pinnings)은 당시 서커스 공연의 포스터 역할을 했는데, 아메리카나(Americana, 미국의 자동차, 무기, 국기 등을 소재로 하며 역사 문화적 의미가 짙은 예술작품의 집합으로, 당시 미국인의 애국주의를 고취하기 위한 목적을 지녔다) 같은 것들은 지금 봐도 멋있을 정도로 정교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사실 정해진 레퍼런스를 두지 않고 빈티지풍이 물씬 나는 옛것들을 많이 찾고 이를 편하게 그려보는 편이다. 이후에는 그것을 타투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승화시킨다.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올드스쿨 타투만의 매력이 있다면?

어렸을 적에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타투라는 단어를 들으면 배, 독수리나 해골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고.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건 올드스쿨 타투가 영원하다는 걸 의미한다. 책도 마찬가지지만 고전은 유행을 타거나 시간의 제약도 없다. 그저 영원하다.

 

올드스쿨 타투에서 주로 다루는 모티브(독수리, 흑표, 대검 ) 떠올릴 , 다른 장르보다 정형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올드스쿨 타투이스트 사이에서 본인의 타투가 지니는 고유한 성질이 있다면 무엇인가?

타투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도안을 보고 타투를 새겨도 아티스트만의 색깔이 묻어나온다. 그저 도안에 맞게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 내 영혼을 담는 창작이다. 이를 끊임없이 상기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이를 추구하게 된다.

올드스쿨 타투의 고전 모티브 특히 선호하는  가지를 고른다면?

단연코 독수리를 꼽겠다. 해골도 좋아하지만 독수리가 존나 멋있다.

 

올드스쿨 타투의 역사적으로 독보적인 레퍼런스가 있다면 단연코 세일러 제리(Sailor Jerry)가 빠지지 않는다. 그를 제외한 다른 롤모델이 있다면?

짐 로잘(Jim Rosal). 물론 퍼시 워터스(Percy Waters)도 있다.

국내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선렛 타투 견습생 시절부터다. 잉크밤(Ink Bomb) 기획하는 등 국내 올드스쿨 타투 신(Scene)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선렛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견습 일련의 과정이 궁금하다.

미국에서 견습 기간을 마치고 난 뒤 휴식이 필요해서 여러 행선지를 둘러봤다. 서울에 도착해서 몇 군데의 타투샵을 눈여겨보다가, 지인이 선렛 타투를 추천했고 스튜디오의 수장 태남과의 만남을 주선해줬다. 나는 그와의 첫 만남에서 준비한 여러 도안과 작업 결과물을 보여줬고, 그 이후로 선렛에 출근하게 됐다.

 

선렛 타투에서의 경험이 현재 본인의 타투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미국에서 타투하던 시절에는 동양적인 레퍼런스가 비교적 많지 않아 작업이 획일적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선렛에서 지내면서 올드스쿨 타투의 동양적인 색깔을 많이 고민하고 분석했다. 새로 얻는 동양적 소재는 올드스쿨 타투를 향한 열정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수습생으로 일하던 시절은 어땠나.

일반적으로 미국의 타투숍은 수습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그의 충성심(loyalty)을 검증한다. 누군가를 쉽게 팀 멤버로 들이지 않는다. 믿음이 큰 기준이다. 만약 누군가가 믿을만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면 대부분의 숍은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믿음을 쌓아가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에서 2년 동안 수습생으로 있을 당시, 여러 자질구레한 일부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내부 청소나 쓰레기 버리는 과정을 모두 겪고 난 뒤에 미국에서 타투 라이센스를 따게 되었다.

지금도 한국과 미국 곳을 자주 왕래하며 활동 중이다. 두 국가의 전반적인 타투 신을 체험하면서 어떤 차이점을 느꼈나.

9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의 미국 타투 신이 현재 한국 타투 신과 비슷한 모습을 띤다고 생각한다. 아직 한국에서는 타투를 하려면 타투숍을 열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주방이나 거실처럼 적당한 장소만 있으면 된다.

또 다른 점은 타투를 배우는 과정이다. 한국에서는 먼저 석 달 치 강습비를 요구하고 그 대가로 타투를 가르친다. 그래놓고 3개월이 지나면 수강생을 내쫓는다. 그렇게 매몰차게 수습생을 내쫓고는 다시 줄을 세워 다음 수습생을 받아들인다. 수습생 예약 제도를 알고 난 뒤 마치 공장처럼 운영되는 한국 타투숍의 행태가 병신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미국의 경우, 수습생을 함께하는 동료로 간주해서 기본적으로 일 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하는 게 일반적이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와일드로즈는 이런 치욕스러운 행위와는 거리가 먼 곳인가.

그래서 이곳에서 일한다. 다른 곳은 절대 안 간다. 더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시애틀에 자리한 리버티 타투(Liberty Tattoo)에 자주 간다고 들었다.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미국 PNW(Pacific North West, 미국의 태평양을 낀 북서 지역)에 자리한 최고의 타투숍이라고 자랑할 수 있다. 사실 워싱턴(Washington)주의 수도 올림피아(Olympia)에 있는 몇 군데를 제외하면 올드스쿨 타투를 다루는 곳이 거의 없는데, 리버티 타투는 유일하게 올드스쿨 타투만을 고집한다. 미대륙에서 동부나 서부 쪽의 타투 신은 이미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만, 시애틀을 비롯한 이외 지방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리버티 타투가 더 빛난다. 멤버 6명 모두 진짜 실력자들이다. 문 열고 들어가자마자 느낄걸?

최근에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동양 문화권에서 타투는 갱단과 연계가 있거나,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본인에게 이러한 대중의 시선과 문화적 차이는 어떻게 비춰지는가?

한국에서 5년 정도 살면서 굳이 타투를 들지 않더라도 타인의 외모를 바라보는 시선이 유별나다고 느꼈다. 아니 거의 집착에 가깝다.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서로를 판단한다. 특히 여름에 반팔 입고 돌아다니면 시선이 따갑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별 신경도 안 쓴다. 만약 누군가 금목걸이를 몇 개씩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 모르겠다. 그건 확실히 튀니까, 하하.

 

그럴 때마다 한국을 뜨고 싶은가?

아니 전혀. 그럴 필요 있나.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인데. 소위 ‘눈치 문화’를 제외한 한국 문화 전반을 좋아한다. 여기 오래 살고 있는 거 보면 모르나?

 

 

타투 시술에는 책임감도 분명히 따를 것이다. 타투를 예술로 보든 그러지 않든 간에, 어떤 이의 몸에 자신이 새긴 무언가가 영구적으로 남는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시술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나?

타투를 받는 것은 고객의 선택이지만, 어떤 소재를 어느 위치에 둘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에서 타투이스트가 적확한 의견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즉 의견을 피력하는 행위가 내가 느끼는 책임감이다. 타투를 시술한 뒤 고객이 일 년 동안 행복해하면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20년, 30년이 지나서 그 타투를 보더라도 여전히 좋아했으면 한다. 그래서 클래식한 타투에 더욱 끌리는 듯하다. 물론 고객이 원하는 대로 도안을 짜고 타투를 그릴 수는 있지만, 완성된 타투를 보고 고객이 만족해야 하니까.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타투를 업으로 삼으면서 난감한 상황을 겪은 적은 없나. 시술 도중에 실수를 범한다든지 결과적으로 고객이 만족하지 않았다든지.

물론 있다. 약 일 년 전의 일인데, 한 고객이 손가락에 이미 그려져 있던 타투를 리터치하려고 찾아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손가락 마디에 굳은살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리터치 시술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지만, 고객은 정확하게 그 굳은살이 배긴 부분에 타투를 받고 싶어 했고, 결국 진행했다. 공교롭게도 시술이 끝난 뒤 그녀는 약간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내게 화내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맘에 안 든 거지 뭐. 이후 난 한 두 달 동안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굳은살에 타투를 새기는 이들은 흔치 않다.

그렇다. 굳은살이라니, 하하. 그래서 항상 고객이 원하는 타투 도안을 가져와서 보여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고객에게 전달하는 편이다. 다양한 작업을 시도해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종이에 그려진 그림에서 몸에 새겨진 타투로 옮겼을 때, 멋지게 나올 것 같지 않으면 거절한다. 한국이 가장 좋은 예일지 모르지만 많은 고객이 커버업을 원하는 편이다. 그런데 커버업 아이디어가 너무 구리면 구리다고 말하고 솔직하게 거절한다. 고객이 한두 달은 좋아하겠지만 그대로 진행하면 그 타투를 오랫동안 사랑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최대한 내 의견을 공유하는 편이고 그게 최선이라고 믿는다.

최근 흥미로운 작업이 있었다면

최근 ‘Man’s Ruins’라는 도안을 받은 고객이 있었다. 총, 담배, 자동차로 구성된 도안인데 꽤 재밌었다.

 

‘Man’s Ruins’ 도안 아이디어는 본인에게서 나왔나.

클래식 레퍼런스에서 가져왔는데 내 방식대로 변형했다. 버지니아(Virginia)주 리치먼드(Richmond)에 자리한 홀딧 다운 타투(Hold It Down Tattoo)에서 했는데 이곳 역시 멋진 공간이다.

 

반면에 가장 까다로운 작업이라 한다면 무엇일까

‘파라오의 말(Pharaoh’s Horses)’. 어려운 도안이다. 고객이 복부에 원했기에 더욱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만족했다.

유독 작업하기 어려운 부위가 있나?

갈비뼈 부분이 그렇다. 항상 좀 까다롭다. 고통도 크고, 작업자 입장에서도 피부가 움직이기 쉬운 부위라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어떤 고객이 주로 당신을 찾나?

잉크로 몸을 거의 다 덮은 타투 콜렉터가 빈 공간을 부분적으로 채우려는 경우부터 팔을 한 번에 덮으려는 고객까지 다양하다. 후자의 경우 블랙 앤 그레이처럼 다양한 아티스트에게 일부분씩 덮는 경우는 드물지만, 올드스쿨 타투는 사실 크게 하든 작게 하든 존나 멋있다.

 

보통 팔을 한 번에 덮는 슬리브(Full sleeve) 얼마나 소요되나?

고객이 한 세션에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12시간에서 15시간이 되기도 하고, 더 빨리 끝날 수도 있겠지.

 

본인은  번에 끝내는 편인가?

고객에 따라 다르다. 풀 슬리브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타투하는 과정에서 어떤 실수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한 달에 두세 번으로 나눠 작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고객이 서두르지 않는 이상 나 역시 서두를 필요는 없다.

 

시대를 거스르는 유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알게 모르게 올드스쿨 타투를 취급하는 스튜디오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국내 다른 타투숍과 비교했을 와일드로즈만의 특징이 있다면?

와일드로즈라는 공간은 소속 아티스트의 작업물을 통해 모든 걸 알 수 있다. 각 아티스트의 독창성이 모여 하나의 조화를 일궈내 와일드로즈가 완성된다.

 

본인이 와일드로즈에 어떠한 변화나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여기 있다고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 와일드로즈에서 일하는 이들 모두 자신의 실력을 아트워크를 통해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이 자신의 작업이다. 본인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거지. 그게 존나 멋있는 것 같다.

Saemtattoo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진행 / 글 │ 이준용
사진 │김도예

러시아 범죄자의 문신을 모은 사진집, ‘Russian Criminal Tattoo Police File’

문신을 새기는 행위에 누구나 각자의 의미가 있겠지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과 함께 본인에 대한 어떠한 정보를 나타내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일례로 갱단이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여주는 것이 있겠는데, 소련 내무부의 범죄학 수석 전문가 아르카디 브로니코프(Arkady Bronnikov) 역시 러시아 내의 마피아, 갱과 같은 범죄조직이 자신의 소속과 집단 내 본인의 위치를 몸에 새기는 것에 착안해 우랄과 시베리아 지역의 교도소를 돌며 범죄조직원의 문신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버젓이 적어놓는 경우도 다반사였으므로 브로니코프가 수집한 문신 정보는 러시아 내 경찰이 범죄자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위 선글라스를 착용한 범죄자의 문신 속 의미를 설명해보자면, 쇄골 위에 있는 별은 자신이 갱 내 꽤 높은 위치에 있다는 표식이며, 목 아래의 보타이는 누군가를 밀고했다는 의미로 조직의 배신자에게 ‘강제로’ 새겨지는 문신이다. 그리고 보타이 속 달러 표시는 이 사람이 조직 내 돈세탁을 도맡았다는 뜻이다. 문신만으로 그 사람과 범죄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것.

이런 범죄자 문신에 흥미를 느낀 브로니코프는 이를 조금 더 전문적으로 파고들어 ‘문신 도상학 전문가’라는 직함까지 얻게 된다. 이후 1966년부터 80년 중반까지 모은 사진 180여 장을 정리해 ‘Russian Criminal Tattoo Police File’이라는 제목의 사진집까지 발간했다. 책의 내용은 러시아 범죄자의 문신 사진과 함께 각 문신이 가지는 의미를 세세하게 적어두었으니 문신을 새기는 사람, 새기려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구매해 보아도 좋을 듯하다.

Russian Criminal Tattoo Police File 구매처

영국 현대 문신의 지평을 연 남자, Sutherland Macdonald

영국 최초의 타투이스트는 과연 누구일까? 영국에 문신을 처음 도입했으며, 이와 더불어 현대 문신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로 평가 받는 서덜랜드 맥도날드(Sutherland Macdonald). 그는 영국 군인 출신으로, 타국에서 처음 문신을 목격한 후, 1889년 본국으로 돌아와 타투 숍을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이 급속히 인기를 얻으며 영국 전화번호부에 타투이스트라는 항목이 생길 정도로 큰 호황을 맞는다.

오랜 시간 손으로 직접 문신을 새기던 서덜랜드 맥도날드는 이후 자신의 이름을 건 전기 문신 기계에 대한 특허권을 얻기까지 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동양적인 색채가 짙게 드러나는데, 이는 당시 영국 타투 신(Scene) 내 오리엔탈리즘의 인기를 반영한 것.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과 노르웨이, 덴마크의 왕이 그에게 타투를 받았다는 이야기 또한 서덜랜드 맥도날드의 위상을 더욱 높인다. 100년도 전의 타투가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지 직접 확인해보자.

문신하는 고양이, ‘Monmon cats’

20161215_02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무언가를 직업으로 삼거나 특출한 결과를 일궈낸 사람에게 ‘성공한 덕후’라는 칭호를 붙인다. 이런 의미에서 호리토모 카즈키(Kazuki Horitomo)는 진정 성공한 덕후라고 말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기반의 타투이스트로 활동하는 이 일본 아저씨는 자신의 업인 문신과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동물 ‘고양이’를 주제로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카즈키는 고양이를 의인화해 전신에 문신을 새긴 일러스트를 그려내는데, 옛 일본 전통화 기법으로 슥 그려낸 모습이 퍽 재미있다. 일러스트 속 고양이는 현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타투 머신이 아닌 손으로 직접 문신을 새기는 테보리(てぼり) 기법을 보여준다. 카즈키 또한 테보리 기법에 큰 관심을 지니고 있기에 이러한 시선은 자신의 작업으로 이어진다.

작품의 정식 명칭은 ‘Monmon Cats’, 문신을 뜻하는 일본말과 캣을 합성한 단어다. 카즈키는 자신이 창작한 여러 작품을 브랜드화해 모자와 티셔츠, 쿠션 같은 제품을 자신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판매 중이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 사진을 잔뜩 게시해놓았으니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방문해보자.

Kazuki Horitomo 공식 웹사이트

20161215_03

20161215_08

20161215_07

20161215_06

20161215_05

20161215_04

세계 최초의 타투 로봇, tatoué

오로지 인간의 영역이라고 믿어오던 일이 기계로 대체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신기함과 공포감이 뒤섞인 오묘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이런 감정은 산업보다 예술 분야에서 더욱 도드라지는데, 투박하다고만 생각하던 로봇의 움직임이 인간보다 정밀한 표현을 해냈을 때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드는 것이다. 2년 전 3D 프린터를 개조해 자동 타투 머신을 만들었던 피에르 엠(Pierre Emm)과 요한 다 실베르(Johan Da Silveir)는 ‘Appropriate Audiences’라는 회사를 설립, 3D 프린터의 다음 단계인 타투 로봇을 완성해 실제 인간에게 타투를 시술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첫 실험작은 간단한 나선, 정말 간단한 도안임에도 완성 후 환호하는 주변의 반응은 여기까지 오는데 상당한 노력을 들였음을 보여준다. 위에서 말했듯 복잡하고 세밀한 도안을 그려내지는 못하지만, 전망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과연 먼 미래 타투 로봇이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위 영상과 함께 상상해보자.

Appropriate Audiences 공식 웹사이트

여덟 손가락의 미학, Edward Bishop의 ‘Knuckles’

 

당신이 만약 타투를 새긴다면, 과연 신체의 어느 부위에 흔적을 남길 것인가. 아주 가까운 사람만이 확인할 수 있는 은밀한 곳인지, 혹은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이 될지. 분명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손가락 마디에 새긴 문신은 왠지 더욱 특별해 보인다. 검지부터 약지 위에 새겨진 여덟 글자엔 과연 무슨 뜻이 담겨있을까.

영국 출신의 포토그래퍼 에드워드 비숍(Edward Bishop)은 자신의 여덟 손가락에 당당히 타투를 새긴 사람을 만나 그들의 개성 넘치는 타투를 촬영했다. 여덟 글자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다양한 디자인과 의미를 담고 있는 ‘너클 타투’를 만나보자. 에드워드 비숍은 실로 방대한 양의 사진을 촬영, 이를 화보로 엮어 ‘Knuckles’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하단의 웹사이트를 통해 더욱 많은 사진을 만나볼 수 있다.

Edward Bishop 공식 웹사이트

3분 만에 보는 미국 문신 100년사

 

1891년 미국에서 전기 문신 기기가 최초로 특허를 얻었고, 이는 문신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지난 100년간 다양한 국가의 패션 사조, 조류를 단시간에 보여주는 ‘100 Years of Beauty’의 이번 에피소드는 미국 문신 100년사. 단 3분 만에 100년 동안의 미국 문신 역사를 정리한다. 단순히 그 시대 유행했던 문신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당시 미국의 역사적 타투이스트 작품에 영감을 받은 문신이 등장한다.

펜이나 마커와 같은 도구로 타투이스트의 문신을 흉내만 내는 영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제 한 여성이 등장해 직접 시술을 받는 과정은 보는 것만으로 흥미진진하다. 1910년부터 2010년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총 11명의 타투이스트 작품을 일주일에 한 가지씩 몸에 새겼다. 음악과 함께 흐르는 미국 문신 100년사를 직접 확인해보자.

100 Years of Beauty의 유튜브 채널

타투를 드러낸 사람들

 

영국계 포토그래퍼 Alan Powdrill은 몸에 타투를 새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COVERED’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그가 찍은 사람들은 어쩌다 몸에 한두 개씩 새긴 애교 수준의 타투라기보다는 이제 신체 부위에서 타투가 없는 곳을 찾기 힘든 타투 마니아들이다. Powdrill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이 평상시 옷차림을 한 사진과 나체, 또는 속옷만 입은 채 타투를 모두 드러낸 사진 둘을 나란히 배치해 대상의 숨겨진 면을 끄집어낸다.

단순히 타투를 보인 사진이었다면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일 인물이 옷을 갖춰 입고 같은 배경, 같은 포즈로 찍은 사진을 한 장 더 놓음으로써 이들의 타투는 은밀한 비밀로 변했다. 연세 지긋한 노인의 단정한 출근 복장과 대비되는 형형색색의 타투는 왠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전달한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가 보다. 직접 감상해보자.

Alan Powdrill 공식 웹사이트

Opium Tattoo Studio의 첫 전시 ‘X=X’

FIN_OPIUM_X=X_exhibition_poster

타투, 일러스트, 광고, 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오피움 타투 스튜디오(Opium Tattoo Studio)의 첫 자체 전시인 ‘X=X’가 다가오는 4월 10일 금요일부터 4월 17일까지 1주일간 진행된다. 전시 타이틀인 ‘X=X’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는 ‘X’와 Collaboration을 상징하는 ‘X’가 합쳐져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나타낸다는 상징성을 띔과 동시에 오피움의 소속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또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기약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피움의 대표이자 국내외 등에서 활발한 광고 및 일러스트 활동을 하고 있는 타투이스트 104, 힙합 레이블 아메바 컬쳐 소속 디자이너이며, 다양한 일러스트레이터 활동을 하고 있는 RD, 그리고 독특한 드로잉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타투이스트 미래의 작품을 이번 기획전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 개최날인 4월 10일 저녁 8시부터는 데킬라가 가미된 맥주 데스페라도스(Desperados)와 오뉴월츄러스에서 제공하는 핑거 푸드와 함께 파티 크루 DEADEND 소속 DJ SOMAL의 디제잉을 즐길 수 있는 오픈 파티가 진행될 예정이다. 더불어 홍대의 헤어샵 OVERMOUNT와 의류 브랜드 라이클리후드, MLB의 럭키드로우까지 함께한다.

Opium Studio 공식 웹사이트

토막상식 #3: 타투이스트와의 일문일답

직11

아직도 문신, 혹은 타투(Tattoo)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리는가? 예술가 같다는 소리를 한번쯤 들었을 법한 한국인이든, 명백하게 구분되는 외국인이든, 아니면 TV에서 수시로 접하는 연예인이든, 우리는 생활 곳곳에서 갖가지 타투를 새긴 사람들을 접한다. 한국에서도 이제 타투는 더 이상 ‘터부(Taboo)’가 아니라는 말이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을 비롯해 타투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의 시선 때문인지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타투는 ‘조폭’들의 특권에서 미용, 패션의 범주로 많이 옮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타투가 한국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타투 시술 행위가 명백한 불법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개최된 ‘Korea Tattoo Festival’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경찰의 난입으로 행사가 중지되며 역시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타투 양성화를 위한 입법은 매번 위생을 주된 이유로 한 의료계의 반발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 타투인 협회에 의하면 현재 고용노동부에서 추진하는 신 직업 창출 프로젝트에 타투이스트들이 1차 도입 대상으로 선정, 양성화가 진행 중이라는 좋은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정확한 통계가 없어 구체적인 숫자를 말하기는 힘들지만 한국의 타투이스트는 대략 약 1~2만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법은 타투를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일까? 우리 주위를 둘러싼, 아직은 조심스러운 문화인 타투에 대해서 타투이스트 Chloe와 간단한 대화를 나눠보았다. 

 

국가에서 타투이스트를 새로운 직업군으로 등록 하지 못하는 이유가 의사들의 반발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밥그릇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타투이스트의 직업군 등록을 막고 있다고.

Chloe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타투이스트의 정식 직업군 등록 이야기가 나왔다. 타투를 합법으로 인정해서 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것인데, 의사회 때문에 전부 엎어졌다. 의료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사실 타투는 의료 계통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사용하는 바늘도 다르고. 의사 중에서도 타투를 하는 사람이 있지만 전문적이지 않고 그 수도 많지 않다.

 

의사가 왜 압박을 넣는 것인가?

Chloe :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의사들이 타투로 큰 수익을 내는 것도 아닐 텐데.

 

같은 타투라도 의사에게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걸까?

Chloe : 사실상 타투를 의사에게 받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병원에서 시술하는 의사들과 타투이스트의 실력을 비교하자면.

Chloe : 나도 그들에게 타투를 받아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다. 천차만별인 것 같다. 실력 있는 의사도 있고 실력 없는 타투이스트도 많다.

 

단순히 테크닉이 아니라 예술성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닐까.

Chloe : 아무래도 타투이스트들이 자신의 스타일이 확고한 경우가 많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의사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 확답은 못하겠다.

 

타투 합법화를 위해 타투이스트들은 어떤 행동들을 하고 있나?

Chloe : 타투협회에서 정기적으로 탄원서도 내고 각자 1인 시위도 하고 있다. 그런데 별 효과는 없는 듯하다.

 

합법화가 되면 어떤 부분들이 좋아지나?

Chloe : 그렇게만 된다면 한국의 타투도 체계가 잡히지 않겠나. 시설 전반부터 위생, 인력 관리까지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해외의 타투 신(Scene)은 그런 부분들이 잘 갖춰져 있나?

Chloe : 해외의 경우에는 공식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장비를 가져가서 검사하고 감찰을 한다. 소독기 역시 매달 검사한다. 당연히 타투에 대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우리나라는 음지에서 타투 신이 오랫동안 형성되어 있다 보니 굳이 양성화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는 이들도 많은 것 같은데, 특이한 현상이다.

 

정부에서는 어떤 식으로 타투이스트들을 적발하는가.

Chloe : 방관하고 있다가 한 번에 우르르 잡는다. 웃긴 일이지만 타투이스트끼리 서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이즈미,리얼리스틱,트라이벌,레터링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재패니즈  이레즈미,리얼리스틱,레터링,트라이벌

 

지금 내가 당신을 신고한다면?

Chloe : 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경찰서에 출두해야 하는걸로 알고 있다.

 

브랜드 반스(Vans)에서 현재 타투 신을 서포트하고 있다고 들었다.

Chloe : 우리나라에서는 서포트까지는 아니고 행사가 있을 때 타투 부스를 만들어 줬다.

 

타투는 영구적인가?

Chloe  :타투를 처음 했을 때보다는 색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지워지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로 지워지는가. 시간이 지나면 보통 다시 리터칭을 하지 않나?

Chloe : 색이 빠졌을 때 다시 리터칭을 한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꾸기 위해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오래된 타투만의 느낌도 있으니 잘 결정해야 한다.

 

타투는 얼마나 아픈가?

Chloe : 타투를 받다가 기절하는 사람도 있다. 아파서 그렇다기보다는 스트레스에 의한 당 저하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시술할 경우에는 중간 중간 쉬어야 한다.

 

타투를 받는 일반인들이 많아지고 있나.

Chloe :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타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때, 단순한 별 디자인 타투가 한국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Chloe : 예전엔 별을 그려 넣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일부 연예인이 별을 새겨서 비슷한 유형의 타투가 엄청나게 많았지만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연예인의 타투 스타일을 많이 따라갔지만 지금은 자신의 개성을 살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별과 같이 단순한 도형만 그리는 타투이스트도 타투이스트라고 인정하는가?

Chloe : 타투이스트들 사이에서도 이걸로 말이 많았다. 굳이 답하고 싶지는 않다.

 바이오블그포트좌측부터  바이오니컬,블랙앤그레이,포트레이트

 

타투도 굉장히 종류가 많다고 들었다. 장르로 나눈다면?

Chloe : 재패니즈 이레즈미, 트라이벌, 레터링, 올드스쿨, 뉴스쿨, 블랙 앤 그레이, 리얼리스틱, 포트레이트, 바이오니컬 등이 있다.

 

올드 스쿨과 뉴 스쿨의 차이는 무엇인가.

Chloe : 두 장르를 구분 짓기는 어렵지만, 좀 더 심플하고 라인이 두꺼우면 올드 스쿨, 그것보다 좀 더 세밀해지면 뉴 스쿨이라고 한다. 

oldnew
좌측은 뉴스쿨 우측은 올드스쿨

타투에서 완벽한 색 구현이 가능한가?

Chloe : 완전하지는 않지만 많이 표현할 수 있다. 단, 금색과 은색은 안 된다.

 

타투를 하는 사람은 그림도 잘 그려야 할 것 같다.

Chloe : 그렇다. 감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대로 된 페인팅의 원리를 익힌 사람이 더 잘하는 것 같다.

 

실력 있는 타투이스트를 찾는 방법은?

Chloe : 첫 번째로 자신이 어떤 타투를 하고 싶은지 정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수소문을 하든지, 검색을 하든지, 찾아내야겠지.

 

타투는 어떻게 지우나?

Chloe : 레이저(Laser)로 지운다. 기술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흉터가 남고 가격 역시 비싸다.

 

앞으로 타투에 대한 인식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Chloe :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시간이 갈수록 타투를 좋아하고 몸에 새기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 같다.

 

Chole의 인스타그램 계정 (http://Instagram.com/chloe_tattooer)
Cover Artwork : Rarebi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