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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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인으로 기억되기엔 김태헌은 재능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페인터부터 아웃도어 디렉터까지, 명함을 수집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로 그는 다재다능하며 숱한 일을 해나가고 있다. 또한 그는 “무엇을 좋아하든 깊게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본질을 꿰뚫는다.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수박 겉만을 핥지 않았다는 자신감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한 신념과 양심으로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남자, 김태헌과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태헌이라고 한다. 현재 헬리녹스(Helinox)라는 브랜드의 어드바이저인 동시에 페인터로도 활동하며 즐겁게 살고 있다.

 

헬리녹스 어드바이저라면, 주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

디자인과 브랜딩 부분을 아울러가며 돕고 있다. 동시에 그 안에서 터그(TERG: Trial and Error Research Group 시행착오연구모임)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가방을 만들고 있는데, 헬리녹스 속 다양한 아웃도어 기술력을 사용해 가방뿐 아니라 전체적인 라이프스타일에 도움이 될 만한 포괄적인 것들을 제작하려고 한다. 헬리녹스를 하나의 문화로 녹여내는 것이 목표다. 터그는 그 안에서 조금 더 실험적인 것들을 연구한다. 시행착오 모음 같은 거다. 여러 프로덕트 라인을 통해 실험적인 제품을 생산해보고 싶다.

 

20150202_interview_02Helinox Chair One 

 

헬리녹스는 어떻게 시작한 브랜드인가.

헬리녹스의 베이스는 아웃도어다. 동아 알루미늄(DAC)이라는 회사를 모 회사로 한다. 텐트 업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회사이며 기술력은 감히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나 역시 아웃도어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초창기 등산 스틱과 의자를 만들며 테스트 샘플도 써보고, 이외 케이스나 배낭을 제작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처음엔 무척 힘들었다. 답답하기도 하고, 하지만 작년 일본에서 엄청난 반응을 이끄는 것을 보고 확신이 생겼다. 일본은 겉모습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기본적으로 변태같이 내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확실한 검증을 받은 셈이다.

 

맞다. 일본은 무엇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그 부분에서 한국과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처음 시작할 때 깊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다음에는 카피하는 사람들이 있다. 3~4년 전부터 캠퍼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문화를 돈으로 생각하고 프로 캠퍼라고 명함을 만들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더라.

 

문화가 제대로 정착하기도 전에 변질되는 모습은 이미 많이 봐왔다. 당신도 잘 알지 않나?

이전 픽시드 바이크도 그랬다. 처음 타기 시작했을 때는 모두가 즐겼다. 뭐 정치적인 부분도 없었고, 그저 자전거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결국 돈과 세력이라는 것이 꼬이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문화를 돈으로 바꾸려는 이런 부분은 좀 별로다. 지금 내 자전거는 빨래 건조대, 낚시 도구 거치대로 사용되고 있다. 가끔 타긴 하지만 이제는 힘들어서. 이렇게 쓰기엔 조금 비싼가. 하하. 어쨌든, 즐기는 것보다 돈이 우선이 되면 안 된다. 일본은 이런 부분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후발 주자들이 앞선 브랜드, 또는 아티스트를 모방하는 행위가 적어도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이라 여기는 것 같기도 하고.

카피는 범죄다. 개인적으로는 강력범죄라고 생각한다. 법적 대처도 그렇고 막상 당하면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 심하게 말하면 강간당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어떤 때는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지. 예를 들자면, 그림에도 모작이 있다. 모작을 하면서 자기 그림인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작품에 담긴 의미 역시 자기 생각인 양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이런 것들을 정상이라고 할 수 있나? 내가 만든 작품들 역시 카피가 많이 되었기 때문에 그 감정을 정말 잘 안다. 나중에 쓴맛을 꼭 보길 바란다. 옆에서 “네가 이걸 잘못한 거다”라고 말해도 본인은 도저히 모른다. 디자인은 항상 고민하고 생각해야 나올 수 있다. 나도 페인팅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다 보니 이런 부분에선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헬리녹스는 당신에게 중요한 커리어가 될 것 같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벌써 헬리녹스의 카피도 만들어지고 있다. 가장 뿌듯한 부분은 내가 지금까지 존경하고 동경하던 ‘오리지널(Original)’을 만들어가는 데 직접 참여한다는 것이다. ‘Made in Korea’를 외국에서 감탄하는 것을 보면 자부심도 들고 국위선양을 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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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유년기를 알고 싶다. 언제부터 의류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됐나?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교회에서 나눠준 가방을 메던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어린 시절을 노원에서 보냈는데, 친구와 동네 형들 덕분에 스케이트 보더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형들 패션을 따라 입고 그랬다. 당시 난 인터넷도 익숙하지 않았기에 동네 형들에게 듣는 것이 가장 값진 정보였다. 형들을 따라서 황학동도 가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정보를 많이 얻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소위 ‘끝판 왕’을 보고 싶어졌다. 값비싼 옷들이 왜 비싼지 알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급식비까지 빼돌리면서 하나하나 사 모았다. 자연스레 어둠의 루트 같은 것들도 알게 되었다. 옛날에 여러 가지 해외 브랜드의 이미테이션을 한국 공장에서 많이 만들었는데, 오리지널 샘플을 그냥 두고 가서 그걸 사장님에게 부탁해서 구해 입고 그랬다. B급 제품을 구한 적도 있다. 동시에 해외 패션 잡지도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 노원구나 의정부 쪽에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 잡지를 ‘주워’ 읽었다. 영어, 일본어도 잘 몰랐지만, 그저 사진만 보면서 어떤 ‘감’을 익혔던 것 같다. 입시를 시작하는 시점이었는데 재미있는 게 너무나 많았다. 끝까지 알아보자는 심정으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가진 것 같다. 광부가 광산 캐는 것 마냥 계속 정보를 찾았다. 별생각 없이 시작한 게 지금까지 오게 된 거다. 이후 전역을 하고나서 ‘와이(Why)’라는 브랜드에서 게스트 형식으로 참여해 본격적인 시작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린 걸로 알고 있다. 미술 학도로서 꿈은 없었나?

어릴 때 선생님에게 “예술은 자유로운 거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미술이 가장 자유로워 보였고, 같은 시간을 써도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시간이 빨리 갔던 것 같다. 중학교 졸업 후 예고 진학을 원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진학하지 못했다. 결국,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지만 그림은 꾸준히 그렸다. 내 인생에서 그림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최종 목표이기도 하다.

 

20150202_interview_04TBSB의 제품군

 

국내에서 한창 아웃도어 붐이 일었을 때, TBSB(The Blue Stag Beetle)라는 브랜드를 런칭했다. 어쩌다가 아웃도어에 빠지게 됐나?

처음부터 아웃도어를 선호했던 것은 아니다. 벽화를 그릴 때 페인트가 필요한데, 알다시피 그 페인트가 대단히 무겁다. 페인트를 수납할 튼튼한 배낭이 필요했다. 여러 배낭을 사용해봤지만, 일반 패션 브랜드들은 내구성이 강하지 않더라. 어깨끈이 쉽게 끊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아웃도어 브랜드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때 왜 아웃도어가 왜 비싸고 좋은지 알게 되었지. 나중에는 사용하던 제품을 분해해 보기도 했는데 제품에 내장된 기술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빈티지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철저히 준비한 것 같던데.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어릴 때 사진으로만 보던 리벤델 마운틴 웍스(Rivendel Mountain Works)의 젠센 팩(Jensen Pack)을 빈티지로 구매해 전부 뜯어보고 패턴을 보았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원래 리벤델 마운틴 웍스가 사라진 브랜드였는데 준비하는 동안 브랜드가 부활해버렸다. 하하하. 전 세계 최초로 발주까지 넣고 원단 역시 자체적으로 준비했었기에 돈이 꽤 많이 들었다. 사실 리테일 가로 계산을 하면 40만 원에 판매를 해야 했지만, 국내 시장에서 신생 브랜드가 그 가격으로 승부를 보기엔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처음에 내놓았던 가격이 29만 원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비싸다고 생각하더라.

 

그래도 업계에서 인정받지 않았나? 다양한 협업도 진행했다.

단순한 판매 이익보다는 재미있게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했던 것 같다.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Millet), 국내 브랜드 누드본즈(Nudebones)와 함께 진행했었지. 당시에는 거의 공장에서 살았던 것 같다. 하하. 직접 브랜드를 진행하며 아카이브와 소스의 중요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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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의류의 장점은 무엇인가?

일반 패션 브랜드는 단순히 보이는 것, 사람들 취향의 디테일이 있는데 아웃도어는 그것과 다르다. 원초적인, 이른바 기능성이라고 하는 것들? 필요에 의해 당연히 삽입되는 기술이 존재한다. 모든 기능이 최첨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재적소에 들어가는 기술로 내구성을 극대화시켰다. 이런 이유로 아웃도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합리적인 옷이다. 최첨단 소재를 가장 저렴하게 사는 방법이니까.

 

2014년, 미국 아웃도어 쇼에 방문했다고 들었다.

미국 아웃도어 쇼는 그 규모부터 매우 크다. 3일 동안 돌아다녔는데 스티커만 만 장 정도 가져온 것 같다. 하하. 시에라 디자인을 비롯해 여러 아웃도어 브랜드 창업주도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 영어도 못하는데 몇몇 단어만 사용해서 무작정 이야기했다. 브랜드의 모델명 같은 거 얘기하면서, 동양인이 몇십 년 전 브랜드를 알고 애정을 갖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참 열심히 설명해주더라. 함께 사진도 찍었다. 너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견문도 많이 넓힌 것 같고.

 

최근 아웃도어 시장에 대한 시각은?

난 아웃도어 그 자체를 좋아하는데, 또 다른 곳에서는 너무 포장만 하려는 게 부담스럽다. 내게 아웃도어는 첫사랑 같은 존재였는데 너무 변질되고 있는 것 같다. 해외만 따라가려는 느낌도 있다. 첫사랑이 연예계에 데뷔했는데 포르노가 유출된 느낌? 하하. 그래도 지금은 좀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해는 하지만 조금 더 깊게, 깊게 갔으면 좋겠다. 각자의 다양성이 필요한데 “이게 정답이다”라고 외치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무엇이든 발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정말 좋아한다는 것은 꾸준히 좋아한다는 것 아닌가? 잠깐 좋아했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그 물건은 그냥 쓰레기가 돼버리는 거다. 비싸게 주고 샀는데 유행이 지났다고 안 입고 안 신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주목하고 있는 브랜드가 있다면.

테크니컬 웨어 브랜드 아크로님(Acronym)의 디자이너 에롤슨 휴(Errolson Hugh)가 나이키 ACG와 함께한 디자인 한 제품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지퍼가 달린 에어포스 모델은 인기가 없었으면 좋겠다. 나만 신게. 하하. 사실 에롤슨 휴를 워낙 좋아한다. 틸락(Tilak)이라는 브랜드도 그렇고, 최근 스톤아일랜드(Stone Island)의 쉐도우 프로젝트도 모두 그가 했다. 이것 외에 크게 주목하고 있는 것은 없다. 뭐가 나왔다고 해도 그냥 그달 나오는 잡지 같은 느낌이다. 예전만큼 대박을 외칠 만한 것들은 없다.

 

좀처럼 보기 힘든 빈티지 신발이 보인다. 신발을 엄청 많이 모은 것 같은데?

많은 부츠나 운동화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이키(Nike)사 에어포스1(Airforce1)의 옛날 모델을 좋아한다. 지금도 꾸준히 나오는 신발이지만, 비교해보면 그 실루엣부터 다르다. 90년대 초반의 실루엣이 너무 매력적이다. 당시 저 신발들이 유행했을 때 못 샀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대리 만족도 있다. 그때는 멋있는 압구정 형들이 많이 신었지. 하하. 특정 모델을 좋아하기 때문에 비슷한 것들이 많다. 나한테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주위 사람들도 주고 하면서 하나 둘 씩 사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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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빈티지의 매력은 무엇인가.

빈티지는 1차원 적인 매력이 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설마 이거겠어?’라고 느꼈던 디테일이 진짜 그거인 경우가 많다. 하하. 그 시절 미국인들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즐겨 입는 후디의 포켓은 지금 주로 나오는 원 포켓이 아닌 투 포켓으로 만들어졌다. 그냥 주머니가 필요했으니까 박아 넣었던 거지. 또, 원단이나 부자재를 아끼지 않는다. 특히 미국은 워낙 자원이 풍부한 나라니까. 음식 같은 경우 순도 130%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말 그대로 어느 하나 아끼지 않는다.

 

그럼 주로 어떤 빈티지를 찾나?

60~70년대 제품을 좋아한다. 색감도 화려하고, 단순한 것이 매력이지만 동시에 제작자의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다. 배려라고 해야 하나. 카우보이의 대표적인 아이템인 웨스턴 셔츠 역시 카우보이들은 단추 잠글 시간이 없어서 여미기 쉬운 스냅 버튼으로 만들어 놓는다던가 하는 것들. 그때의 원단 색감, 내구성, 자수방식, 부자재 등 지금은 살 수 없다는 것도 또 하나의 매력이다. 아무리 복각이라는 명제로 똑같이 만들려고 해도 분명한 차이는 있다. 세월이라는 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또 만든 지역 특유의 색이 묻어 나오는 것도 매력적이다. 지금 나오는 제품보다 더 좋은 부분이 눈에 띄게 되니 계속 찾게 된다.

 

본인의 스타일은 어떤 단어로 딱히 한정지을 수 없을 정도로 또 굉장히 다양한 것 같은데.

지금은 별로 없지만, 예전엔 청바지도 200벌 넘게 있었다. 뭐 딱히 따지는 것 없이 다 좋아한다. 아웃도어도 좋아하고,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도 좋아한다. 프라다, 에르메스, 베르사체 같은 잘 알려진 명품도 좋아했다. 일본 브랜드도 좋아하고. 귀찮을 때는 그냥 섞어서 입는다.

 

그래도 옷을 입을 때, 확고한 정체성이 보이는 것 같다.

확실한 취향은 존재한다. 브랜드 색깔이 다 다른데 한 브랜드만 쫙 입는 것은 멋없는 것 같다. 옷을 구매할 때 브랜드보다는 디자이너나 그 자체로서 내 취향인지를 고민한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고 하면 입어보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다. 어릴 적 명품을 구매할 때는 투자라고 생각했다. ‘저런 거 왜 입어’라는 꽉 막힌 생각보다는 ‘아, 이런 것 때문에 입는구나!’라고 알게 될 때 무척 기분이 좋다. 작은 디테일도 많이 느끼게 된다. 이 브랜드는 왜 이렇게 만드는 것이고, 꼭 이거 하나 말고도 여러 가지를 잘한다는 등, 여러 가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브랜드와 디자이너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브랜드를 접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취향대로 사는 거다. 브랜드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브랜드마다 좋아하는 모델이 따로 있기도 하다.

 

당신은 과거, 현란한 헤어스타일로도 주목을 많이 받았다.

학창 시절 두발 자유가 없었기 때문에, 못 기르게 하는 게 게 한이 되었던 것 같다. 삭발하고 기르고의 연속이다. 하하. 오래 전에는 특수 머리를 하는 것도 즐겼다. 아프로, 드레드 락 등 정말 많은 도전을 했다. 어릴 때는 남의 시선 자체가 불편했었는데 나중에는 재밌고 즐기게 되더라. 지금은 생활 일부분이 돼서 별 신경도 안 쓰인다. 지금이야 비슷한 사람이 많지만, 동창회에 나가거나 그러면 귀가 간지러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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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는 네이처 트루퍼스(Nature Troopers) 팀과 함께 낚시를 다니는 것 같더라. 낚시에도 흥미가 생겼나?

예전부터 좋아했다. 원래는 견지낚시로 시작했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루어낚시에 빠져서 낚시 전문점 아저씨랑 새벽 두세 시에 출조까지 나가면서 배웠다. 최근에는 친한 형님과 낚시하러 다니면서 배스 낚시를 제대로 배웠다. 프로도 많이 만났다. 루어도 많이 잃어버리고, 낚싯대도 많이 부러뜨리면서 점점 더 매력을 느꼈다. 생각보다 낚시 도구가 비싸다. 낚시 도구에 얽힌 한 가지 얘기를 하자면 중학교 때 낚시 전문점에 전시되어있는 릴을 하나 탐냈다. 너무 갖고 싶었지만 70만 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가격 때문에 결국 구매하지 못했다. 그렇게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작년에 일본에 갔을 때 만 엔에 판매하는 걸 보고 냉큼 샀다.

 

예전 ‘여가의 재발견’이란 전시회에서 엄청난 양의 반다나(Bandana)를 전시했던데.

반다나 모으는 것을 즐긴다. 특유의 페이즐리 문양도 좋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를 좋아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페이즐리는 사실 영국의 동네 이름이다. 무늬도 아메바 무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인도 망고의 단면이 맞다. 솔잎이 들어가기도 하고 무화과의 단면이 들어가기도 한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의 면직 방적을 통해 지금의 반다나가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반다나를 구매할 때부터 굉장히 신중하게 산다. 똑같이 보이는 무늬라도 그 속의 디테일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만 개 중에 하나를 건진다는 느낌으로 구매한다. 이렇게 모은 것을 전시했다. 반다나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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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가장 아끼는 물건이 있나.

가장 아끼는 것은 없다. 모두에게 사랑을 준다. 하하. 예전에는 빈티지 물건이 엄청 많았는데, 친구들 나눠주고 플리마켓에서 판매도 했다. 지금은 웬만해선 전부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 돈 주도고 못사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최근 해외에 많이 다녔는데 어떤 영감을 받았나?

좀 전에도 말했지만, 실제로 봤던 것에 대한 의의가 있었다. 궁금한 부분을 굉장히 많이 채웠다. 10년간 추측만 했었는데 확신을 하게 됐다. 업무 때문에 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많은 발전을 했다. 특히, 일본에 갔을 땐 눈이 아프더라, 볼 게 너무 많아서. 관찰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얼음찜질까지 하면서 거의 스캔하듯이 봤다. 각각의 분위기가 너무 다른 게 너무 좋았다. 서울도 서울만의 아이덴티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은 어딜 가도 다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콜렉터로서 새롭게 수집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역시 낚시 도구가 아닐까. 근데 낚시는 그냥 취미로만 남겨두고 싶다. 깊게 빠지는 것은 싫다.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지만 시작하면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아다. 지금까지는 그냥 팬으로서 좋아하고 싶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그림 그리면서 낚시도 하고 느지막이 결혼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 아직 확실한 것은 잘 모르겠다. 계속 즐겁게 살고 싶다. 군대 전역했을 때 이 정도면 ‘충분히 놀지 않았나?’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놀 거리가 계속 생긴다. 좀 아쉬운 부분이라면 예전에 비해 많은 것들이 그저 스쳐 지나간다는 생각이 들더라. 즐겁게 일하고 열심히 놀고 나태해지지 않는 것이 목표다. 또한 열심히 일한 것을 사기 당하지 않고 합당한 대가를 받아 아버지에게 외제 차를 한 대 사드리는 것도 올해의 목표다.

 

헬리녹스 공식 웹사이트 (http://helinoxstore.co.kr/)
김태헌 인스타그램 계정 (http://instagram.com/7jensen)

진행/텍스트 ㅣ 오욱석

편집 ㅣ 오욱석 권혁인

사진 ㅣ 김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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