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의 조각가, 한 장의 천,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제2의 피부, 검은색 목폴라, 테크놀로지, 아방가르드, A-POC, 기모노, 인간. 이 모두가 일본 아니, 세계 패션계를 비추던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를 상징하던 단어다. 향년 84세, 사인은 간세포암. 미야케의 사망 소식을 전한 요미우리 통신은 지난 5일 그가 도쿄의 한 병원에서 친구들이 곁을 지키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으며, 그의 뜻에 따라 공식적인 장례 절차와 공개 추모 행사 계획 또한 없을 것이라 덧붙였다.
“나는 패셔너블한 미를 창조하지 않는다. 나는 삶에 근간한 스타일을 창조한다.”
1965년 파리로 건너가며 시작된 52년의 경력 내내, 의복의 가장 근본적 형태에서 모든 해답을 얻고자 했던 미야케는 자신의 디자인을 ‘패션’이 아닌 ‘의류’라 칭하며 고집스러운 반골 기질을 내보였다. 1970년 텍스타일 디자이너, 마키코 미나가와(Makiko Minagawa)와 함께 설립한 미야케 디자인 스튜디오(Miyake Design Studio)의 두 가지 기조가 이를 증명하는데, 자유를 향한 이상과 신체와 의복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뜻하는 ‘아메리칸드림(American Dream)’과 청바지와 티셔츠만큼이나 ‘민주적이고 편안한 디자인의 발명’이 바로 그것. 일본의 전통 종이접기 오리가미(Origami)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생활을 위한 의복’ 플리츠 플리즈나 한 장의 천이 신체 위로 흘러내리도록 한 ‘A Piece of Cloth’, 스티브 잡스(Steve Jobs)에게 선물한 수백 장의 검정 목폴라 티셔츠야말로 기능적이고 편안한 ‘재패니즈 룩(Japanese look)’의 정수 선보이는 그의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현존하는 그의 컬렉션 피스들이 여러 박물관의 삼엄한 경계 아래 보여지고 있지만, 신체의 움직임에 의해 활기를 얻을 때 비로소 빛을 내는 것이 이세이 미야케의 진정한 미학인 것이다.
현재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는 그가 1999년 파리 패션계에서 은퇴를 선언한 뒤 여러 후임을 거쳐 콘도 사토시(Satoshi Kondo)가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과거와 미래, 동양과 서양, 신체와 의복, 전통과 테크놀로지 사이를 넘나들며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수공예적 근원에 집중한 ‘반-트렌드’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운 좋게 그의 시대를 향유한 이들과 빈티지라는 이름 아래 그의 브랜드를 몸에 걸치는 젊은 청춘들이야말로 이세이 미야케가 남긴 진정한 유산 아닐까.
이미지 출처 | The New York Times, w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