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간판, 길거리 음식, 지나다니는 사람들. 당신이 길거리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당신이 원했건 원치 않건 간에 오늘도 길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화려한 색상의 그래피티, 혹은 군데군데 붙어있는 다양한 스티커, 스텐실 그래픽 등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라는 이름 아래 많은 예술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길거리를 수놓고 있다. 또한 스트리트 아트는 갤러리에서만 볼 수 있던 예술에서 탈피하여 예술가로서의 명성 없이도 큰 비용을 소비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대중들에게 공개할 수 있는 음지의 예술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은 대한민국에서 스트리트 아트를 하고 있는 3명의 아티스트 식스코인, 지알원, 조대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1.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식스코인(이하 식) : 한국에서 그래피티 기반의 스트리트 아트를 하고 있는 식스코인(Sixcoin)이다. 캐릭터 기반의 작업을 하고 있으며 조금 더 밝고 유니크 작업을 선호한다.
지알원(이하 지) : 그래피티와 스트리트 아트를 하고 있는 지알원(GR1)이다. EKS라는 그래피티 크루에 소속되어 있다.
조대(이하 조) :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래피티 라이터 조대(Jodae)다. 아티스트 그룹 수파서커스(SUPACRQS)와 그래피티 크루 CRS, EKS 소속이기도 하다.
2. 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식 : 레터링보다는 캐릭터에 좀 더 비중을 둔 작업을 하고 있다.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지 : 몇 년 전까지는 폰트 위주의 그래피티 작업을 해왔다. 최근엔 조금 더 회화적인 작업을 주로 한다.
조 : 폰트 위주의 그래피티를 주로 작업한다. 그로부터 파생된 요소를 가지고 붓글씨를 쓰고 캐릭터를 그린다.
3. 스트리트 아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식 :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며 자연스럽게 이쪽 분야로 오게 된 것 같다. 특히, 2000년 초반 즈음 그래피티를 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지 : 단순히 그냥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물론 그전부터 이미 10년 이상 그림을 그려왔었다. 그림도 재미있었지만,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단순한 그래피티가 아닌 개인적인 생각, 메시지를 드러내고 싶었다. 시각을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조금 옮겼다고 해야 되나. 여전히 스트리트 아트와 그래피티의 교집합은 남아 있다. 나중에 두 가지를 절묘하게 잘 섞어낸 작업들을 해보고 싶다.
조 : 고등학교 때부터 힙합을 좋아했다. 그래서 고향 친구와 함께 그래피티를 시작했다.
4. 스트리트 아트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식 : 너무나 오래전에 장르가 무너졌기에 어떠한 장르 속에 포함시키려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지 않을까. 지금은 스트리트 아트를 명품,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차용하기도 한다. 작가들도 현대 미술이나 클래식 미술, 유행하는 디자인의 기법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서로 차용을 하는 거지. 일반적으로 거리에 그려진 것을 스트리트 아트라 칭하는 게 맞겠지만, 범위를 나누기엔 너무 넓은 세계다.
지 : 장르 자체가 모호하다. 무조건 스프레이만 쓴다고 그래피티인 것도 아니고 스프레이를 쓰지 않고 작업했다고 해서 그래피티가 아닌 것도 아니니까. 명확히 구분 짓기 힘들다.
조 : 생략하겠다.
5. 스트리트 아트의 매력에 대해 말해 달라.
식 : 한국 사람은 문화활동에 소극적이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많지만 책을 읽거나 미술관에 가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다소 공격적이지만 다양한 사람에게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스트리트 아트의 매력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매력은 스트리트 아트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가 즐길 수 있다. 캔버스에 작업하게 되면 결국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지 않나.
지 : 타인이 느끼는 매력은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꾸준히 하고 있을 뿐이다.
조 : 다른 작업들보다 빠르고 큰 스케일, 그리고 타 아티스트 와의 자연스러운 협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6. 스트리트 아트를 하며 느끼는 어려움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식 : 같은 곳을 지향하는 동료가 적다는 것이 가장 힘든 점이다. 그리고 우선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먹고 살기 힘든 나라 아닌가. 예술가는 더욱 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문화를 갖고 노는데 서툴다. 게다가 아티스트 대다수는 스스로 즐기기도 전에 비즈니스로 빠져버린다.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엔 생활이 너무 벅차니까. 다수의 아티스트가 실력이 자리 잡기 전에 비즈니스를 하려 한다.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도 어릴 때 더 즐기지 못 했다. 지금은 분명 일을 해야 할 나이기에 비즈니스와 병행하고 있지만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렸을 때 하나라도 더 즐길 것이다.
지 : 야외 작업이 많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이 힘들다. 최근엔 보통 ‘Wheat Paste’라 불리는 작업 방식(포스터 등을 미리 만들어서 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아무리 늦어도 10~15분이면 작품을 붙이는 게 가능하니까. 그래도 추운 겨울엔 접착제가 금방 굳어 버리더라. 날씨 때문에 힘든 적이 많았다.
조 : 야외 작업으로 인한 추위가 제일 힘들다.
7. 스트리트 아트와 공공기물 훼손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식 : 나 역시 예전에는 무분별한 바밍(bombing)을 경계했지만, 지금은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스트리트 아트는 적어도 테러 수준까지 가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도 지금의 선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지 :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개인의 소유물이니 우리의 행위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를 잠깐 테이블에 두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낙서가 되어 있다고 생각해봐라. 끔찍한 일 아닌가?
조 : 모두가 공공기물 훼손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피티나 스트리트 아트를 하는 사람이라면 계속해서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한다.
8. 한국의 법은 스트리트 아트에 대해 엄격하지 않은 편인가.
식 : 엄격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 : 한국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동남아는 더 자유로운 편이고. 말레이시아에서는 길에서 그림 그리고 있으면 경찰이 다가와 박수를 쳐준다고 한다. 하하. 아, 그런 것을 보면 한국에서의 스트리트 아트는 그렇게 까지 자연스러운 풍경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조 : 역사와 사회구조는 다른 외국과 비교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전에 강한 법적 처벌을 받을 일도 거의 없다.
9. 다른 장르에 비해 스트리트 아트가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는가.
식 : 일단 스트리트 아트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적다. 지금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차별은 그 사람의 무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전엔 일일이 답해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많은 부분을 이야기할 생각이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신감과 포부가 중요하다.
지 : 질문에 대한 완벽한 대답은 아니겠지만, 차별당한 적은 없다. 개인적으로 전시에 크게 목메는 타입이 아니기에 이런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 내 그림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전시이지 않나? 난 그냥 거리에서 내 그림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아직은 차별을 당한다고 느낀 적은 없다.
조 : 없다.
10. 스트리트 아트에 대한 대중들의 입장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식 : 스트리트 아트뿐만 아니라 서브컬처라는 틀 속의 문제로 답변하고 싶다. 신(Scene)과 신 사이 중간 매개체가 없는 것 같다. 한국 특유의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서로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것도 있다. 스트리트 컬쳐라면 정말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연결이 많이 부족하다.
지 : 이런 부분이 스트리트 아트가 재미있는 요소이지 않을까. 익명성을 가지고 하는 거니까. 즐길 사람은 다 알아서 즐긴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못 즐기는 거고. 하고 싶을 때 바로 시작하면 되는데, 최근 그래피티를 하고 싶은 친구들은 학원을 알아보고 스쿨을 알아보더라. 그런 것들이 아쉬울 뿐이다. 그런 곳에서 배운 사람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소수다. 오히려 혼자 묵묵히 활동하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사람이 더 놀라운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편하게만 하려고 하는 건 깊이가 없다. 스트리트 아트답지 않다는 이야기다.
조 : 그냥 귀엽고 예쁜 상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11. 한국에는 스트리트 아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가 없는 것 같다. 미디어에서 많이 회자되는 편도 아닌 것 같고.
식 : 2000년 초반에는 웹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굉장히 활성화되었다. 모두가 배워가고 발전해나가는 단계였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에 그렇다 할만한 웹 사이트는 나오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리고 지금은 개인 SNS 시대가 아닌가. 시스템이 변했다.
조 : 그런 웹사이트가 꼭 있어야 하나?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12. 한국 스트리트 아트 신의 현주소는 어디쯤인 것 같나.
식 : 한국에서는 스트리트 아트가 아닌 그래피티만이 존재한다. 어떤 문화를 놓고 봐도 한쪽으로 쏠리기 쉬운 환경이다. 새로운 아티스트와 작업을 하려 해도 수월하지 않다. 어떤 모임을 가면 내가 몇 년째 막내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럴 때 예술을 지속하는 사람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게 피부로 와 닿는다.
지 : 우선적으로 스트리트 아트와 그래피티를 구분지어야 할 것 같다. 그래피티 신은 사람들에게 이런 문화도 있다는 것을 알렸다. 이에 비해 스트리트 아트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한다. 국내 작가 개개인이 가지는 역량은 밖에 나가서도 견줘 볼 만 하다. 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스트리트 아트 관련 사이트를 들어가 최신 동향을 확인하고 동시에 국내 작가의 개인 SNS를 체크한다. 아티스트 간의 작품을 비교해보았을 때,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저변이 작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조 :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13. 국내 스트리트 아트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묻고 싶다.
식 : 아예 발전이 없던 것은 아니다. 갤러리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도 있고, 기업과도 연계해 상업 활동을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래피티 스쿨 역시 활발히 진행 중이다. 같은 장르라도 좀 더 멋있게 할 수 있는 친구들에게 기회가 많아지지 않을까? 앞으로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내가 이런 발전에 일조해야겠지.
조 : 이미 발전을 이룩한 부분도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작가들 스스로가 테크닉과 스타일 모두 고유의 것을 풀어내고 개발하는 모습이 더 필요하다.
14. 국내에도 뱅크시(Banksy)와 같은 스트리트 아트 스타가 탄생할 수 있을까?
식 : 아직은 힘들 것 같다. 해외와 달리 국내는 서로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다. 신의 발전을 위해 분명 슈퍼스타는 필요하지만, 지금은 여건이 부족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스트리트 아트를 하는 작가들이 멋있게 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 다양한 비주얼이 부족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스트리트 아트를 하는 사람만 벽에 작업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니까. 전 세계적으로 꼭 그래피티나 스트리트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만 벽에 그리는 것이 아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 :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서 스타를 바라는 건 아직 이르다. 다양성이 부족하니까. 뭐 나중엔 진짜 스트리트 아트 스타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 아쉬운 부분이지만 아직 초기이기 때문에 더 재밌는 그림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조 : 앞서 말했듯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것을 풀어내고 스타일을 더 개발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5. 한국 스트리트 아트 신의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식 : 최근 성수동에서 어반 업(Urban Up) 프로젝트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를 기획했고, 지금도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중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활동하는 것이 발전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지 : 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있다. 하하.
조 : 수파서커스 크루 속에서 해빗츠(Habits)라는 타이틀의 아트 쇼를 비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16.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스트리트 아트란?
식 : 대중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 그리고 잘 그린 그림을 좋아한다. 방금 답변과 반대되는 얘기일 수 있지만, 난 못 그린 그림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무분별한 낙서를 싫어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것도 멋지게 느껴진다. 잘 그린 그림도 멋있고 못 그린 그림은 그대로도 재밌다. B급 정서의 작업도 좋아한다. 결국, 내 스타일의 작품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하하.
지 : 좋은 스트리트 아트에 대한 스스로 기준을 몇 가지 잡고 있다. 아티스트의 색깔, 생각이 명확히 드러나거나 그런 것들이 분명하지 않더라도 아티스트 고유의 아이디어가 관객의 상식을 파괴하는 작업들.
조 : 진정성.
17. 스트리트 아트를 즐기기 좋은 장소를 추천해 달라.
식 : 아무래도 홍대가 아닐까. 남의 건물에 그래피티를 하고 태깅을 하는 등 지금은 거친 이미지가 많지만, 그것도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한다면 멋있게 느껴질 것이다.
지 : 한국이라면 역시 인터넷! 장소라고 하면 서울의 모든 길거리다. 스트리트 아트는 어느 한 장소에 모여 있지 않다. 아, 최근엔 식스코인이 기획한 어반업, 성수동이 있겠다. 그 외에는 꼭 어느 장소를 간다기보다는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걷다 발견하는 것이 스트리트 아트의 매력이다.
조 : 공덕역 수파서커스 갤러리, 홍대 거리, 이태원 거리, 압구정 굴다리를 자주 체크해볼 것을 추천한다.
Websites
식스코인 (http://blog.naver.com/6coin)
지알원 (http://grone.kr)
조대 (http://instagram.com/jodae)
진행/텍스트 ㅣ 최장민 오욱석
편집 ㅣ 오욱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