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긴 아쉬운, 장르의 경계를 흔드는 음반 발매 소식 모음

장르의 사전적 정의는 ‘예술에서 작품을 구분할 때 이용되는 느슨한 분류 범위’이다. 작품 감상과 분류를 도와주는 유용한 도구임이 분명하지만, 어떤 예술가들의 작품 감상에는 반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빠르게 지나간 2월, 놓치긴 아쉬운 음반 발매 소식들을 한곳에 모아봤다.


Young Fathers – [Heavy Heavy]

팬데믹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무너짐과 가라앉음을 안겨주었는가. 기적을 간절히 바라던 하루들이 길어진 채, 기다림은 일상이 되어 우리는 다시금 삶을 긍정하고 있다.

영국 에든버러 출신 3인조 Young Fathers가 전작 [Cocoa Sugar] 이후 5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다. 2023년 2월 3일 레이블 닌자튠을 통해 발표한 4번째 정규 앨범 [Heavy Heavy]는 팬데믹 기간 멤버들이 겪은 일상의 경험을 기반한다. 커리어를 시작하고 쉼 없이 작업을 이어오던 그들은 [Cocoa Sugar] 앨범으로 투어를 끝으로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

멤버 Alloysious Massaquoi는 일상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주변 친구들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그곳에서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것의 아름다움과 힘을 발견하며 그로부터 음악을 만드는 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다. 멤버 Bankole는 휴식기 동안 다녀온 가나와 에티오피아에서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서로 노래를 부르며 삶을 공유하는 것을 목격하며 앨범에 대한 큰 영감을 얻고 온다. Duveen Galleries에서 미술가 Hew Locke의 The Procession 작품을 보고선 영감을 받은 Hastings는, 내셔널 지오그라픽 사진집을 오려 가상의 청중을 만들어 스튜디오 벽에 붙이며 레코딩 세션의 환경을 조성한다.

그들은 전작 [Cocoa Love]에서 만들어놓은 확실해진 음악적 틀 바탕 위에, 영혼을 해방하는 방식으로 공동체적인 참여를 핵심으로 삼아 작업한다. 앨범 [Heavy Heavy] 에는 삶, 사랑, 정치, 영혼 등 다양한 주제를 함축적으로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담았다. 사라지지 않을 시간의 기록을 역동적인 순간으로 압축한 듯한 앨범은, 재생 시간이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마치 공연장에서 나와 돌아온 집 안 침대에서도 둥둥거리는 몸처럼 말이다. 커뮤니티, 어떤 의미에서 장르라는 단어를 넘어선 진정한 팝이 아닐까.

Young Fathers – I Saw Live at Elysée Montmartre

Liv.e – [Girl in the Half Pearl]

거울의 발견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을까? 깨진 거울의 무늬가 거미줄을 닮은 것은 우연일까? 2023년 2월 10일에 발표된 liv.e의 두 번째 정규앨범 [Girl in the Half Pearl]은 그렇게 시작된다.

앨범의 첫 번째 트랙 “Gardetta”에서 그녀는 자신의 뇌를 들여다봤더니 그곳에는 고통의 거미줄이 있었다고 한다. 스노우글로브를 보고 영감받아 제목을 붙인 Liv.e의 2번째 정규앨범은 전작과 같이 일기를 적듯 자기 내면의 소리를 낙서처럼 적어 내려간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하게 시적이다. 자신에게 혼란스럽던, 눈처럼 흩날리던 외부의 시간이 가라앉은 채, 눈 덮인 내면 안에는 고요히 침잠되어있는 그녀의 감정들이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꺼내 기록한다. 장르라는 말이 자신을 쫓지 못하게 앨범은 트랙마다 자신의 심경과 함께 빠르게 변화된다.

프로덕션에 Solomonophonic, John Carroll Kirby, Mndsgn 등 여러 유명 뮤지션이 참여하기도 하였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한 것은 역시 Liv.e 본인 자신이다. 그녀는 일기장 같은 앨범을 통해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오래된 습관’을 버리며 자신을 다시금 발견한다. 타인들로부터 벗어나 재탄생한 그녀. 이 앨범은 다른 누군가의 사적인 세계에서 [Blond]나 [Ctrl]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Liv.e – Wild Animals

Kelela – [Raven]

Kelela가 6년이란 공백을 깨고 2023년 2월 10일 ‘Warp Records’를 통하여 정규 2집 [Raven]을 발표했다. 오랫동안 활동 없던 그녀를 찾는 팬들의 트윗을 모아 재치 있게 활동 소식을 알린 그녀의 앨범에는, Yo van Lenz, Kaytranada, Carela, OCA, Maroof, LSDXOXO, Bambii 등 여러 프로듀서가 함께한다.

Kelela는 전작부터 지금까지 댄스음악의 안내자로서 자신의 목소리가 사라질 때 트랙들이 더 빛나는 방식을 차용하곤 하였다. Beyoncé 의 [Renaissance] 가 있기 전부터 댄스음악과 알앤비의 경계를 넘나들던 그녀가, 댄스음악이 흑인문화로부터 기원하였음에도 흑인 여성으로서 음악 신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소외받음을 이 앨범의 출발점으로 삼았었던 점. 그리고 ‘Phoenix’라는 소재에서 ‘Raven’으로 바뀌게 된 일화 또한 앨범을 즐기게끔 하는 이야기들이다.

물을 소재로 사용하여 전체적인 앨범을 관통하고 시들어가는 얼음조각부터 바다, 땀이 맺힌 이마 등의 이미지로 이어지게 한다. 클럽에서 눈물을 흘리게끔 하겠다는 그녀의 인터뷰처럼 그녀가 비워놓은 공간에 우리는 감정을 싣게 되는데 어떤 의미에서 최고의 댄스음악이다. 알앤비와 댄스음악의 경계에서 나온 결과물은 장르를 넘나들 뿐 아니라 음악 외적인 경계에서도 유효하게 작용하는듯하다. 그녀의 이번 앨범은 다른 의미로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

Kelela – Contact 

Caroline Polachek –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

2019년 정규앨범 [Pang]으로 주목과 좋은 평을 이끌었던 Caroline Polachek이 2023년 2월 14일 새로운 음반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를 발표했다. 신스팝 그룹 Chairlift의 활동을 마무리하던 시기쯤 만나 인연을 이어온 pc music 소속 아티스트 Danny L Harl과 이번 앨범에서도 대부분의 곡을 같이 작업하였다.

전작의 성공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재해 때문에 투어 대신 런던에 거주하며 새 앨범을 작업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팬데믹 기간 동안 개인적인 슬픔도 겪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가 코로나에 걸려 75세 나이로 사망하는데, 그녀 또한 아버지보다 먼저 코로나에 걸려 결국 만나지 못한 채 페이스타임을 통해 아버지와 작별하게 된다. 게다가 그다음 해에는 그녀가 사랑하는 친구, 뮤지션 Sophie의 사고사 소식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슬픔으로 가라앉지 않고 감정 위로 떠올라, 욕망을 자신의 섬으로 초대한다.

그녀의 시선은 노스탤지어가 아닌 미래를 향하고 자신 안에 침잠되지 않은 채 관객을 향하여 노래를 부른다. 앨범 제목처럼 욕망으로 향하는 탐구에서, 그녀는 팝이라는 박스 안에 들어있는 모든 장난감을 꺼내 가지고 노는 듯하다. 그녀가 준비한 나선형의 여행을 통해 자아에서 벗어나 자신을 잃는 자유를 택해보자. 앨범커버처럼 일상에서 초현실로 향하는 캐롤라인 폴라첵의 섬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들어보는 것 추천한다.

Caroline Polachek – Welcome To My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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