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무수히 쏟아지는 컬렉션과 맞물려 갈수록 방대해지는 아카이브, 현 패션계는 분명 다양성의 한계점에 다다른 듯 보인다. 고루함을 타파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은 럭셔리 패션하우스부터 신생 브랜드까지 모두가 떠안은 숙제다. 하지만 ‘디지털’이라는 21세기 최대의 무기를 활용해 무궁무진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놓는 이들도 있으니, 판타지, 호러, SF, 미스터리를 패션에 이식해 디지털 런웨이를 선보이는 런던 기반의 아티스트, 알프레드 피에트로니(ALFRED PIETRONI)는 그 대표주자 중 한 명이다.
현재까지 총 네 차례 디지털 런웨이를 선보인 알프레드 피에트로니의 컬렉션을 보고 있으면 마치 3D 게임 캐릭터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품 대부분은 90년대와 00년대 초 유행했던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 N64의 저해상도 그래픽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3D 그래픽의 폴리곤과 텍스처의 기술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던 당시, 게임 개발자들은 이를 극복하고자 더욱 독창적인 표현에 몰두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더욱 다채로운 작품의 탄생을 야기했다.
알프레드 피에트로니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Open the gate’부터 숲의 신전에서 고문당한 영혼을 탐구한 두 번째 런웨이 ‘Forest Shrine’, 피와 흙, 성장과 재생을 탐구했던 세 번째 런웨이 ‘a granted wish capsule’ 그리고 피혜한 중세 시대 기사단을 모티브로 한 가장 최근 런웨이 ‘Unholy Grotto’까지. 알프레드 피에트로니는 주로 HR 기거(HR Giger)의 책들과 화이트 드워프 매거진(White Dwarf magazine) 그리고 “사일런트 힐(Silent Hill)”,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등 각종 기괴하고 퇴폐적인 세계관에서 실마리를 얻어 이를 새로운 캐릭터로 풀어낸다. 그렇기에 그의 런웨이에는 현대 패션 런웨이에서 볼법한 디테일의 의상과 중세를 배경으로 한 3D 게임에 등장할 법한 각종 고대 무기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이외에도 알프레드 피에트로니의 홈페이지에 마련된 ‘Archive’ 코너에서는 각종 신비한 기물과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독특한 차림새의 캐릭터를 무더기로 만나볼 수 있다.
퇴폐적인 세계관 설정과 비주얼로 지루해신 패션 시장에 새로움을 더하고 있는 알프레드 피에트로니의 디지털 런웨이는 아티스트 공식 웹사이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