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17년, 유튜브가 온라인상에서 한 획을 긋기 시작할 무렵, 당시 알고리즘 추천 동영상엔 대중음악에서 히트했던 곡 혹은 명곡의 반열에 올랐던 곡의 커버 영상이 늘 자리했다. 필자는 이름도 모르는 유튜버가 아티스트를 어설프게 흉내 낸다는 이유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영상은 부분적인 창조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그저 ‘따라 부르기’ 혹은 재현에 불과한 창작물은 거기서 거기일 뿐 어떤 의미나 감흥조차 안겨 주지 못했다. 그런 필자에게도 편견의 벽을 허무는 영상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도카카(Dokaka)의 “Smells Like Teen Spirit” 커버 곡.
미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너바나(Nirvana)의 기념비적인 명곡을 부분 창조 혹은 재현하는 건 록 음악의 판도를 뒤바꾼 곡의 헤리티지에 도전하는 일과 다름없지만, 그는 본인만의 영역을 새롭게 구축했다. 록 스피릿은커녕 일렉기타 하나조차 없이 루프 스테이션과 마이크를 통해 그저 ‘입’ 하나로 기타, 드럼, 베이스를 연주한다. 사실적으로 소리를 아름답게 구현해 내는 아카펠라 뮤지션이라기보다는, 홍대 길거리 버스킹 존에서 볼 법한 허무맹랑한 1인 퍼포먼스로 필자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도카카는 자신의 목소리로 여러 악기를 흉내 내어 음악을 연주하는 일본의 실험 비트박서 혹은 1인 아카펠라 뮤지션이다. 그가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던 18살, 연습에 불참한 베이시스트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흥얼거린 베이스라인을 보컬 멤버가 좋게 듣고 전문적인 녹음을 추천하며 그의 음악 인생이 시작됐다. 도카카는 킹 크림슨(King Crimson),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슬레이어(Slayer),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등과 같은 록 밴드 음악이나 재즈, 비디오 게임 테마 음악을 독특한 스타일로 재해석해, 개인 웹사이트 또는 IUMA, MP3.com에 업로드하며 미국과 유럽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02년 뉴저지의 독립 라디오 쇼 ‘WFMU-FM 91.1’에서는 그가 커버한 미국 메탈 밴드 슬레이어(Slayer)의 “Angel of Death”가 송출됐는데, 이때 미국의 익스페리멘탈 전자음악 듀오 매트 모스(Matmos)가 그의 음악을 듣고 비요크(Björk)에게 소개하기에 이른다. 실험 음악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녀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이후인 2004년, 그는 비요크의 앨범 [Medúlla]의 수록곡 “Triumph of a Heart”에 참여하며 대중들에게 독특한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선보였다. 이후, 200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콘솔 게임, 남코(Namco)사가 제작한 ‘We ♥ Katamari’의 사운드트랙 앨범 [Katamari wa Damacy]의 수록곡 “Katamari on the Rocks”에도 참여하거나, 현재는 찾을 수 없지만 일본 TV 광고에도 여러 차례 그의 목소리로 등장하며 비트박서 또는 아카펠라 뮤지션으로서 전례 없는 행보를 보여줬다.
기성 아티스트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던 그에게도 어엿한 앨범이 존재한다. 2009년 그는 어떠한 이펙트, 오토튠, 샘플링, 믹싱이나 마스터링을 거치지 않고 목소리 하나로만 채운, 88곡 분량의 첫 번째 앨범 [Human Interface]을 발표한다. 앨범 단위의 감상을 즐기는 리스너에게조차 버거운 앨범은 그가 커버한 곡들만큼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으며, 이후 발매된 몇 앨범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게 다소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일각에선 독보적인 스타일 때문에 도카카는 아티스트가 아닌 그저 행위예술가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광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라이브 퍼포먼스 영상을 본다면 진정성을 쉽게 단정 짓기는 어려울 터. 올해 초까지도 개인 웹사이트에 곡을 올리고 있으니, 새롭고 독특한 음악을 찾는 이들은 매력적인 휴먼 신디사이저의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Dokaka 개인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