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서비스로 공개된 “Perfect Blue” 사운드트랙 돌아보기

2010년 8월 23일, 향년 46세로 작고한 재패니메이션 거장, ‘곤 사토시(Satoshi Kon)’의 데뷔작 “퍼펙트 블루(Perfect Blue)”의 사운드트랙이 지난 4월 유튜브 뮤직(Youtube Music)을 통해 공개됐다. ‘JVCKenwood Victor Entertainment’가 음원의 라이센스를 전담, 이제 “퍼펙트 블루”의 보컬 트랙을 포함한 풀 버전 사운드트랙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곤 사토시의 데뷔작 “퍼펙트 블루”는 1997년 개봉, 저예산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화, 그리고 능숙한 컷과 컷 사이의 교차 편집 연출, 현실과 가상의 괴리를 극대화하는 루프 등의 작법을 선보이며, 이로 인해 재패니메이션 연출의 교보재로 통했다. “퍼펙트 블루”는 도쿄에서 지하 아이돌 생활을 하며 힘겨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작품의 여주인공, ‘키리고에 미마’가 다가오는 일련의 시련을 극복, 온갖 악재를 견뎌낸 끝에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되는 성장을 배경으로 한다. 앰비언트, IDM 등의 장르로 갈무리한 사운드트랙은 적절한 위치에 배치되어 작품성을 극대화하며, 때로 분위기와 대비되는 경쾌한 음악을 사용해 연출 효과를 극대화하는 등 기발한 감독의 센스가 돋보이며 이는 곧 애니메이션 업계의 경전으로 입지를 굳혔다.

수려한 작화와 연출로 많은 호평을 받는 “퍼펙트 블루”. 과연 영화에 쓰인 음악은 어떨까? 본지에서 만나볼 수 있는 ‘디자인이 독특한 바이닐 14선’에서 언급한 것처럼, 퍼펙트 블루의 사운드트랙 바이닐은 앞서 언급한 미술 그리고 시티팝 열풍에 힘입어 그 가격이 150$까지 치솟는 등, 프리미엄이 붙어 기존 판매가보다 높은 시세에 거래됐다. J-POP 트랙이 수록되지 않은 포맷임에도, 영화의 명성 덕분에 “퍼펙트 블루”가 브랜딩되어 일어난 현상이었다.

하지만 올해 4월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퍼펙트 블루”의 사운드트랙은 기존 CD 포맷 형태로 발매되었던 J-POP 트랙을 포함한 풀 버전으로, 더욱 편리한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퍼펙트 블루”의 사운드트랙 공개를 기념해, 영화의 장면들을 복기하며 본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하단을 통해 직접 만나보자.


* Spoiler Alert

“愛の天使” / “Angel Of Love”

무대 공연을 준비하는 키리고에 미마. 영화의 막이 오르고, 동시에 흐르는 음악은 흥겨운 멜로디와 함께 시작하는 J-POP 트랙, “愛の天使” / “Angel Of Love”. 영화의 보컬을 담당한 3인방, ‘미사(MISA)’, ‘시미즈 미에(Mie Shimizu)’, ‘후루카와 에미코(Emiko Furukawa)’가 모두 모여 노래를 부르고 후반부 구간 장엄한 기타 리프를 곁들이는 일반적인 ‘아니메 송’이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무드와 상반되게 시작하는 활기찬 영화의 도입부. 그리고 후술할 장면 덕분에 이 곡은 “퍼펙트 블루”의 사운드트랙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테마로 자리를 잡는다.

영화의 중반부, 소속사의 입김 끝에 결국 외설적인 스릴러 드라마 ‘더블 바인드’의 조연을 담당하게 된 키리고에 미마. ‘더블 바인드’가 방영을 시작하고, 각본가 ‘시부야 타카오’는 일상을 보내던 와중 한 건물의 엘리베이터에서 붉은 배경과 함께 라디오를 마주하게 된다. 이어지는 장면은 끔찍하게 살해된 본인의 시체. 상기한 중반부 일련의 시퀀스에서 재생되는 음악이 바로 “愛の天使” / “Angel Of Love”. 피를 연상하게 하는 붉은 컬러의 배경과 각본가의 살해 장면이 몽타주되어 긴박함을 자아내는 와중, 본 트랙의 경쾌한 멜로디가 오버랩되며 극적인 대비를 만들고, 관객에게 자극적인 심상을 각인하게끔 연출됐다.


“一人でも平気” / “Alone But At Ease”

키리고에 미마가 몸을 담았던 아이돌 그룹, 챰!(CHAM!)의 “愛の天使” / “Angel Of Love” 이후 두 번째 신곡 “一人でも平気” / “Alone But At Ease”. 배우 데뷔를 위해 떠난 키리고에 미마를 제외한 두 멤버, ‘레이’와 ‘유키코’가 부르는 디스코 풍의 J-POP 트랙으로, 사운드트랙 크레딧은 시미즈 미에와 후루카와 에미코가 맡았다.

여주인공 키리고에 미마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 ‘버추얼 미마(Virtual Mima)’를 인식하게 된 뒤 헤어 누드 화보를 찍는 등 온갖 고난에 시달릴 시기 발매된 곡으로, 미마의 자아 혼동이 극심할 때 발매돼 즉시 대성공을 거두는 등, 이어지는 시련은 키리고에 미마를 급격히 압박했다.


“バーチャ未麻” / “Virtual Mima”

키리고에 미마의 또 다른 자아이자, 미마의 매니저 ‘히다카 루미’를 상징하는 테마 “バーチャ未麻” / “Virtual Mima“는 영화의 전체 리듬을 견인하고, 본 영화의 주제인 ‘자아의 괴리’를 상징하는 간판 트랙이다. 전체 사운드트랙을 감독한 이쿠미 마사히로(Masahiro Ikumi)가 프로듀싱한 본 트랙은 음산한 코러스(Chorus)와 비명 샘플링이 맞물리는 동시에 트로피컬한 리듬을 끼얹어 더욱 기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バーチャ未麻” / “Virtual Mima”는 미마와 버추얼 미마가 만나 격돌하게 되는 시퀀스 전반에 흐르는 곡으로, 감정이 점차 고조될수록 트랙이 울부짖는 비명 또한 콰이어(Choir)와 만나 멜랑콜리(Melancholy)한 무드를 느낄 때, 최후반부 브레이크비트 프레이즈를 끼얹으며 미마와 버추얼 미마. 그들의 격투 속 긴장감을 제대로 담아냈다.


“バーチャ未麻 (VOICEバージョン)” / “Virtual Mima (Voice Version)”

드라마 ‘더블 바인드’가 마침내 종영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대기실로 가던 도중 이전부터 줄곧 이상한 낌새를 느끼던 미마는 의문의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다. 괴한의 정체는 바로 매니저 루미가 고용한 경비원 ‘우치다 마모루’. 그는 미마가 챰!의 마지막 공연에서 “想い出に抱かれて今は” / “Cherish These Moments”를 부를 때 일어난 난동을 진압하려던 인물로, 그들의 첫 번째 만남 이후 줄곧 미마는 우치다가 계속해서 지켜보는 듯한 환각을 본다.

경비원과 매니저 루미 사이에 어떤 연이 있었을까. 영화의 후반부, 루미는 미마의 뒤를 줄곧 따라다녔던 ‘버추얼 미마’의 분신으로,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 일은 아이돌 미마가 배우로 전향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 나머지 본인이 직접 버추얼 미마를 연기하고 있었음을 키리고에 미마에게 밝힌다. 경악에 빠진 여주인공 키리고에 미마. 그 짧은 틈을 느낄 수도 없이 루미는 미마를 습격하고, 둘의 운명을 건 마지막 혈투가 시작된다.

“バーチャ未麻 (VOICEバージョン)” / “Virtual Mima (Voice Version)“는 상기한 “バーチャ未麻” / “Virtua Mima“의 비트리스 버전으로, 코러스 그리고 비명 샘플링을 더욱 강조하여 기괴한 분위기를 풍긴다. 괴성을 연상하는 듯한 보이스에 그들의 싸움은 고조되고, 키리고에 미마가 루미를 제압하려는 순간 루미는 앞에 닥친 트럭을 보며 버추얼 미마와 루미 본인 사이 자아의 혼동을 느낀다.

최후반부 트럭을 보며 양팔을 벌리는 모습. 상단의 이미지는 서구까지 퍼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로 본 영화를 사랑하는 미국의 영화감독, 대런 아르노프스키(Darren Aronofsky)가 자신의 영화 “블랙 스완”을 통해 해당 장면을 오마주한 것. “블랙 스완”과 “퍼펙트 블루”의 논쟁은 대런 아르노프스키와 곤 사토시 사이에서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안타깝게도 곤 사토시가 세상을 떠난 바람에 둘의 논쟁은 미궁으로 빠지게 됐다. 2024년 현재, 결국 시네필들은 대런 아르노프스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Season

모든 사건이 지나고, 키리고에 미마는 배우로서 대성공을 거둔다. 자신의 전 매니저 루미의 병문안을 온 미마. 비록 악연이지만, “루미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이니까요”라는 대사를 남기고, 본인의 차에 타 “난 진짜 미마야”를 외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일본의 밴드, ‘M-Voice’가 맡은 “Season”은 진짜 ‘미마’를 되찾고 난 키리고에 미마가 백미러와 겹치는 모습을 보여준 뒤, 당차게 시작하며 지금까지의 영화를 지켜본 관객에게 마지막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자신의 자아를 되찾고, 성공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 그것을 모두 겪어낸 자만이 이룰 수 있는 성취감을 표현한 듯한 본 트랙은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희망의 가사를 노래하며, 영화를 끝까지 지켜봐 준 관객에게 마지막 선물을 선사한다. 그 카타르시스 덕에 “Season”은 필자가 고른 본 사운드트랙의 선정곡 1위에 달하니, 본 영화를 관람한 독자들은 이 곡을 들으며 관람했을 당시의 감정을 다시 떠올려보길 바란다.


“想い出に抱かれて今は” / “Cherish These Moments”

작중의 키리고에 미마는 험난한 여정을 건너며 자신의 자아를 되찾고, 결국 큰 성공을 거둔다. “想い出に抱かれて今は” / “Cherish These Moments”는, 극중 키리고에 미마가 초반부 아이돌로서 마지막 공연을 챰!의 나머지 멤버와 함께 한 뒤, 이어서 올라오는 스태프 롤과 함께 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퍼펙트 블루” 전체 세계관을 관통하는 트랙이다.

“想い出に抱かれて今は” / “Cherish These Moments”의 사운드트랙 크레딧은 영화의 보컬을 맡은 3인방 중 한 명인 미사가 맡았으며, 감미로운 목소리 속에 흘러가는 평화로운 무드가 인상적이다. 음산하고 기괴한 사운드트랙 전체의 분위기를 환기하며, 후반부 허밍과 함께 맞물리는 피아노 연주는 마치 벚꽃이 흩날리듯 새로운 시작을 떠올리게 한다.

“퍼펙트 블루”의 에필로그와도 같은 “想い出に抱かれて今は” / “Cherish These Moments”. 유혈 묘사와 선정적인 장면이 많아 본 영화에 정을 들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극복하고 마침내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 키리고에 미마처럼 우리의 인생 또한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니 차근차근 이겨내며 성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곤 사토시는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빌려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Perfect Blue Original Soundtrack 유튜브 뮤직 링크


이미지 출처 MUBI, MAD HOUSE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