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아

INTERVIEW: 선우정아

선우정아는 다양한 얼굴을 가진 뮤지션이다. 1집 [Masstige]에서는 독특한 목소리로 주목받았고, 2집 [It’s Okay, Dear]에 와서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봄처녀”를 부를 때 그녀는 마치 관록 있는 아이유처럼 보였다. 휠라 오리지날레(FILA Originale)와 삼청동 146이 진행하는 ‘그라운드 프로젝트(Ground Project)’의 첫 번째 뮤지션, 다양한 얼굴로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선우정아와 오랜 대화를 나눴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한국에서 음악 하는 여자다. ‘한국’과 ‘여자’라는 단어가 내 음악과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는 얼마 만인가.

정말 오랜만이다. 반년이 넘었다.

 

프로듀서, 싱어송라이터를 비롯해 ‘선우정아’라는 음악가를 수식하는 단어가 많다. 가장 맘에 드는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음악인’이다. 이게 좀 각 잡는 어감으로 들릴 땐 ‘싱어송라이터’라고 한다.

 

‘네이버 온스테이지’는 당신을 보헤미안이라 칭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건 2집 [It’s Okay, Dear]를 냈을 때부터인데, 보헤미안의 이미지가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왜 하필 보헤미안인 것 같나.

그 당시 내 머리를 ‘해그리드 스타일’이라고 부르더라. 헤어스타일 덕분에 그런 별명이 생긴 것 같다. 사실 나는 보헤미안이 뭔지 잘 모른다. 내가 멋있게 무대를 꾸미기보다는 자유로운 감정으로 노래하는 사람이라서 보헤미안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 같기도 하다.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너무 축복받은 이야기인데, 어릴 때부터 음악 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피아노를 여섯 살 때 치기 시작했다. 자라면서 대중가요로 넘어갔는데, 어릴 때 피아노를 친 게 도움이 되더라. 20살이 지나서는 모던록 밴드를 꾸려서 활동했다. 그러던 와중에 1집을 발매한 회사와 연락이 닿았고, 회사 측에서 밴드는 안 된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 해체했다. 그렇게 나온 앨범이 [Masstige]다. 자연스럽게 망했다. 이후 대학에 복학했고, 재즈 신(Scene)에서 활동했다.

 

밴드를 하던 당시 지금과는 보컬이 사뭇 달랐을 것 같다.

왜 팝 보컬 따라 하는 여자애들 있지 않나. 그게 나였다. 20대 초반부터 강한 사운드에 꽂히긴 했지만, 그래도 내 보컬은 늘 팝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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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선우정아의 보컬에 ‘재즈’라는 수식어가 붙은 건 아무래도 대학교의 영향이 큰 건가?

그렇다. 학교에서 재즈라는 걸 처음 배웠고, 재즈 보컬을 익혔다.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오래 걸렸을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하며 단단하게 다졌다.

 

상당히 큰 전환점인 것 같다.

맞다. 편곡도 학교에서 배웠다. 1집은 편곡을 맡겼는데, 그때는 작곡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편곡을 모르면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할 수가 없다는 걸 그때 배웠다. 그래서 복학 후 편곡을 공부했다. 프로듀서로 활동한 것 역시 학교에서 배운 영향이 크다.

 

본인이 졸업한 대학교에 출강한 적도 있다. 감회가 남다를 법도 한데.

나도 아직 어리지만, 대중예술계에 있다 보면 1년, 2년이 굉장히 길다. 1년 전에는 학생이던 친구가 오늘은 동등한 뮤지션의 입장으로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민망했다. 그 민망함만큼이나 즐거운 게 있다. 개인적인 활동만 고집하면 고인 물이 될 수 있다. 그러다가 후배들이 잔뜩 모인 그 자리에는 굉장히 상쾌해지게 하는 에너지가 있다. 나도 그들에게 많은 걸 배운다.

 

당신은 팝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밝힌 적 있다. 지금도 변함이 없나.

그렇다. 팝이라는 게 광범위하지 않나. 나는 트렌드를 배제하지 않는 음악이 팝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독창적인 것도 하고 싶지만, 대중성이 아예 배제된 곡보다는 조금 더 공감 가는 범위 안에서 내 정체성을 간직한 음악을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팝 뮤지션이 되고 싶은 거고.

선우정아 – 아파 Live

 

[Masstige]의 “아파”는 슬픈 가사에 비해 멜로디는 굉장히 밝다. 선우정아의 음악엔 이런 형태가 많다.

그 곡의 편곡은 당시 활동했던 밴드가 맡았다. 물론 내가 그런 특유의 느낌을 좋아하기도 한다. 메이저, 혹은 마이너로 치우친 곡보다는 ‘웃픈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게 더 슬프게 느껴진다. 내가 그 감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웃픈’ 곡이 많을지도.

 

[It’s Okay, Dear]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팝’과 ‘올해의 음악인’을 수상하지 않았나. 한국에서 팝과 가요의 양상이 다른데, 그 간격이 무엇인 것 같은가?

말로 표현하긴 어렵다. 완전 메인스트림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음악적으로 자연스러운 것보다는 다양한 취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음악적 틀이 잡혀있다. 무형적이지만, 가요와 팝의 차이가 그런 것 같다. 예를 들자면, 메인스트림에서는 4분이 넘어가면 긴장한다. 4분을 넘어가면 실제로 대중이 지루해한다. 4분이 넘어가지 않게 자르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지는 게 메인스트림 프로듀서의 능력인 것 같다.

 

YG와 작업은 어떻게 성사된 것인가?

인맥,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과거에 내 팀과 함께 홍대 클럽에서 공연할 때, 당시 유행하던 가요를 내 스타일로 편곡해서 불렀다. 언젠가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를 재즈 풍으로 편곡한 적이 있는데, 그 동영상이 싸이월드에서 꽤 퍼졌다. 내 친한 친구의 오빠가 당시 YG 메인 프로듀서였는데, “토요일 밤에”를 양현석에게 보여줬고, 그렇게 “I Don’t Care” 리믹스에 참여했다.

 

비요크(Björk)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더라. 그녀는 오래전부터 전자음악을 차용해왔는데, 진보(Jinbo)와 대니 애런즈(Danny Arens)와 함께 한 “여름캠프 마지막 밤”에서 약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여름캠프 마지막 밤”은 내가 작곡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비요크를 정말 좋아한다. 말했듯이, 비요크는 예전부터 전자음악과 클래식 사운드를 즐겨 쓰지 않았나. 거기서 영감을 되게 많이 받았다. 이제야 비로소 비요크와 비슷한 음악을 조금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몸에 익으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불꽃놀이” 같은 곡에서 비슷한 시도를 했고, [It’s Okay, Dear]에서도 조금씩 건드린 부분이다. 완전히 전자음악에 집중한 건 아니겠지만, 다음 앨범은 그 비중이 커지지 않을까?

 

2015년은 디스코가 유행한 해였는데, “봄처녀”에서 이를 반영한 사운드가 느껴졌다. 트렌드에 민감한가?

그렇다. 고전도 좋고 재즈도 좋지만, 나는 최근의 팝, 좋은 팝 음악을 들으며 생기를 얻는다. 유행을 빨리 읽어내는 편은 아니다. “봄처녀” 같은 경우는 굉장히 오래전에 쓴 곡인데, 편곡하고 사운드를 입히던 시기에 그 당시 트렌드를 많이 따라갔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가 프로듀싱한 음악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좋은 음악’의 기준은 무엇인가?

내 기준은 양심적인 음악이다. 그런데 일하는 횟수가 늘다 보니, 안 좋은 곡이 꼭 양심을 버린 음악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외부요인에 치우친 음악은 잘 듣지 않는다. 그런 건 음악에서도 티가 난다. 물론,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처럼 이미지가 썩 좋지 않더라도, 진정성이 느껴진다면 즐겨 듣는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이어도 자기 색에 너무 갇혔거나, 날로 먹은 느낌이 들면 실망스럽다.

선우정아 – 뱁새 M/V

 

[It’s Okay, Dear]를 듣다 보면 낮은 자존감 같은 게 느껴진다. 타이틀곡 “뱁새”부터가 황새 따라가다가 다치는 이야기 아닌가.

맞다. 루저 소울이 담긴 앨범이다. 내 카카오톡 아이디로도 사용하는 문구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상대적인 소외감이 드러나기 쉽지 않나. 자본주의라는 게 많이 가진, 많이 가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빛나는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이 지점에서 많은 유혹에 흔들린다. 나도 정말 보통 사람이고, 속물근성이 있다. 그게 근간이 되는 것 같다. 또, 한창 YG와 재즈 신이라는 극과 극을 오가며 작업한 앨범이다. 연주는 엄청나게 잘하는데, 2시간 공연 후 몇 만 원 받는, 월세 내기도 힘든 재즈 뮤지션과 작업하고, YG 작업실에 넘어가서 또 작업했다. 냄새부터가 다르지 않나. YG도 음악으로 놓고 보면 너무 순수하고, 배울 점도 많다. 그렇기에 두 작업 모두 즐거웠다. 근데 당연히 비교될 수밖에 없다. 잡생각도 들고. 나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굳이 나한테 필요 없는 브랜드를 사기도 했다. 속으로 ‘아주 지랄한다’고 생각했지. 백날 사봤자 나는 뱁샌데. 근데 그 틈을 어둡고, 구질구질하게 표현하고 싶진 않았다. “야, 나 결국 그거 샀다? 내가 그걸 바른다고 전지현이 되는 건 아니지. 근데 샀다고”. 술자리에서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한 느낌의 앨범이 됐으면 했다.

 

[It’s Okay, Dear]에서 ‘Dear’가 본인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특별한 뜻은 없다. 앨범 제목을 지을 때, 고민이 많았다. 에너지는 연결되었는데, 장르나 사운드, 이야기가 너무 달랐다. 전체적으로 내 자신을 털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앨범 커버 사진을 찍어준 친구 구송이가 내 얘길 듣다가 “It’s Okay, Dear”라고 말하더라. 나한테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상대방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 ‘Dear’를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인마’ 정도가 아닐까.

 

“Purple Daddy”는 실제 아버지 이야기 같은데?

맞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 달 뒤 꿈을 꿨는데, 당시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화를 냈을 법한 잘못을 했다. 그 죄책감에서 비롯된 곡이 “Purple Daddy”다.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는 나오지 않다가, 잘못을 저지른 뒤 꿈에서 굳은 얼굴로 너무 생생하게 나왔으니까. 또, 장례를 치를 때 가족들은 시신을 확인하지 않나. 내가 알던 얼굴이 아니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꿈에서 본 아버지 모습과 장례 당시의 모습이 합쳐져 “Purple Daddy”가 나왔다.

 

“알 수 없는 작곡가”는 오해, 편견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이는 악플에 관한 이야기인가?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당시에도 악플이 달릴 만큼 인지도가 없었다. 하하. “알 수 없는 작곡가”는 관계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남에게 들은 이야기니 비슷하긴 하다. 나는 음악을 어릴 때부터 시작한 만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양아치도 만나고, 나쁜 사람들도 있었고. 그때 들었던 얘기를 종합한 곡이다. 지금은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지만, 이 노래는 젊은 치기에 반발하며 쓴 곡이기도 하고 어떤 다짐이기도 하다. 상업적인 뮤지션에 가까워지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에 더 가까이 있어야겠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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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느낀 점은 선우정아의 곡은 특정한 이미지가 보인다는 거다.

2집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프로듀싱에 제대로 참여했다. 되게 욕심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영상이었다. 음악을 들으면 영상이 보이는 그런 음악. “비온다”는 물론, 빗소리를 넣은 게 분위기를 잡고 들어갔다. 하하. 내가 느낀 걸 최대한 표현한다는 생각으로 주제에 관련된 영화를 찾아보거나, 그림을 그려보거나, 소설을 쓰는 등 음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표현해본다.

 

자신의 감정을 곡에 밀어 넣는 과정이 궁금하다. 조금 더 말해 달라.

“비온다”로 얘기해보면, 일단 비가 오면 괜히 울적하지 않나. 멍 때린 채 빗소리와 공기를 즐기게 된다. 그러다 어릴 때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비 오면 나가서 맞으려고 하고 맛보고 그랬다. 비를 맞으며 놀던 게 생각이 나면서 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지더라. 사람이 살면서 아주 어렸을 때를 그리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딱 아련하게 떠오르는 정도인데, 그때 처음으로 10대 이전의 시절을 그리워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라 그런지, 온 가족이 화목하던 때를 그리워한 것일 수도 있고, 외부적인 괴로움도 없던 순수한 시절이 그리웠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감정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는 거다.

 

“그러려니”의 소개 글을 본인이 썼다. 보통 회사에 맡기는데, 직접 쓴 이유가 궁금하다.

회사에서 쓰라고 해서 썼다. 하하. 글을 쓰는 담당자가 “그러려니”가 워낙 자전적인 곡이기에, 직접 써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나름 에너지를 낮추고 쓴 건데 내 얘기라 그런지 차분하게 쓰지는 못하겠더라. 기분 좋은 건 보통, 인스타그램 같은 걸 찾아보면 노래 가사와 커버를 올리지 않나. 근데 “그러려니”는 소개 글을 함께 올린 걸 봤다.

 

“Far Away”는 “그러려니”의 영어 버전이지 않나. 처음에는 다른 곡인 줄 알았다.

편곡이 다르다. 미세하지만, 사운드 결 자체가 다르다. 똑같이 피아노를 쓰지만, 톤 역시 다르다. “Far Away”는 햇볕을 쬐는 따사로운 느낌이었으면 했다. 반대로 “그러려니”는 심연의 바다에 빠져드는 기분으로 만들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영감을 많이 받나?

그렇다. 소리라는 게 되게 재밌다. 나보다 더 빠진 음악가들은 소리를 따서 곡을 만들거나, 수음 전문 기사가 되겠지. 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너무 재밌다. 생명이 없는 사물도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거 역시.

 

당신의 앨범을 들어보면, 1집과 2집에서 하는 이야기가 상당히 다르다.

1집 수록곡 중 일부는 다른 사람이 가사를 썼다. 하하. 처음 가사를 받았을 때 깜짝 놀랐다. ‘이런 걸 나보고 부르라고?’라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그렇고, 프로듀싱 역시 내가 온전히 한 게 아니었다. 2집은 그걸 나름 갖춘 상태였기에, 앨범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자세가 전부 다를 수밖에.

 

최근 인디 신에서 여성 솔로 음악가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를테면 김사월 같은 뮤지션이 있다. 근데 방송 안에서는 영향력 있는 여성 솔로를 찾기 어렵다. 이 지점에 관해 생각해본 적 있나.

당연하다. 재작년부터 머릿속에 있는 주제다. 예전에는 클럽과 재즈 신에서만 활동했지만, 지금 회사를 만나며 조금은 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나는 팝을 지향하는 사람이기에 인기를 얻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그래서 왜 여성 솔로가 잘 안 되는지 고민했다. 나뿐 아니라 주변 동료들도 그랬으니 말이다. 모르겠다. 아직 색깔 있는 여자 뮤지션이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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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 안에 속한 뮤지션으로서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는가.

나도 둥글게 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거고 세상이 변하기를 기다리기도 해야겠지. 남자들도 비슷하지 않나. 혁오나 자이언티(Zion. T) 같은 뮤지션이 몇 년 전만 해도 아이콘이 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근데 유일무이한 색채를 지닌 사람들이 이제는 대중스타 자리에 앉아있다. 여자 뮤지션들의 시기도 언젠가 오겠지. 전통적으로 남아선호사상이 지배하던 나라이기도 하니까 쉽게 풀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쉬운 건 내가 예뻐지는 건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하하.

 

박정현이나 이소라 같은 뮤지션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여성 뮤지션이다.

박정현, 이은미, 이소라 선배님들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낀다. 마지막 디바가 거미, 박정현 선배님인 것 같다.

 

컴필레이션 앨범과 피처링 작업도 많았다. 수락하는 기준이 있나?

우선은 시기다. 물리적인 거니까 가장 우선시한다. 또, 음악적인 에너지가 맞는지 고려한다. 이 둘 사이에 인간관계가 있다. 하하. 아무리 바빠도 인간관계에서 어떤 고리가 있다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유난히 힙합 뮤지션의 러브콜이 잦던데.

그러게 말이다. 왜 그럴까? 우선 브랜뉴뮤직(Brand New Music)에서 산이(San E)와 피타입(P Type)과 함께한 곡 덕분인 것 같다. 저스디스(Justhis)와의 작업도 피타입 소개로 하게 된 거다. 재즈와 힙합 모두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까. 잘은 모르지만, 힙합 역시 옛날 흑인 음악에서 소스를 많이 차용하는 것 같은데, 멜로디 파트도 재지하고 블루지한 걸 선호하는 것 같다.

 

그래서 카프카(Kafka)와의 작업이 재밌다. 기타로 달리는 음악이다 보니, 보컬도 다른 색이 느껴졌다.

노래마다 변신하는 건 너무 즐겁다. 여자가 화장하듯이 말이다. 그래도 내 색은 지키려고 한다. 선우정아가 느껴지게 하면서 최대한 아무거나 하는 거. 또, 내가 쓴 곡이 아니기에 프로듀서의 의도도 반영해야 한다.

 

록 보컬로서 선우정아는 어떤 것 같나.

완벽하다. 하하. 농담이고 어릴 적부터 마릴린 맨슨(Marilyn Mason), 슬립낫(Slipknot) 같은 걸 즐겨들었다. 지금은 듣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등교하면서 즐겨 들었다. 당시에는 그로울링(Growling, 포효주법: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창법)이 너무 하고 싶었다. 근데 나는 워낙 악기가 얇고 맑은 톤이라 절대 안 되더라. 그게 너무 싫어서 지금은 끊었지만, 담배도 피우고 소리도 지르고 했다. 그래도 목소리는 두꺼워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록 감성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다. 재즈 공연 때도 스캣(Scat)을 할 때, 에너지를 거침없이 내지른다. 어떤 분들은 “너는 재즈가 아니라 록을 하러 온 것 같다”고 싫어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그게 좋다.

 

‘기타에는 영혼이 담겨있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인지 몰라도 염신혜와 함께한 [Riano Poom]에서는 감정이 절제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악기 영향이 있다. 또, 함께 하는 거라 맞춰갈 수밖에 없었다. 염신혜 역시 화려한 건반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치는 연주자라서 나도 단아한 느낌을 내고 싶었다. 재즈긴 재즌데, 한복과 다과가 잘 어울리는 그런 음악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감정을 뺄 거면 확 빼보자는 의도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단둘이 진행하는 작업이라 호흡이 중요했다. 한 방에서 녹음을 받는 방식이라 한쪽이 잘했는데, 다른 쪽이 못하면 못쓰게 되기도 하고 굉장히 어려웠다. 근데 이 긴장감이 당시에는 부담스러웠는데 만들고 나니 만족스러웠다.

마정채 – Feel Like Makin’ Love

 

휠라 오리지날레(Fila originale)와 삼청로 146의 협업인 그라운드 프로젝트(Ground Project) 타이틀로 공연하는 ‘마정채’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마정채는 마더 바이브(Mothervibes), 선우정아, 강이채를 줄인 말이다. ‘태티서’의 아줌마 버전이다. 중국진출을 노리고 만들었다. 하하. 줄여봤는데 묘하게 사람 이름처럼 되었다.

 

 

마정채 멤버들과의 호흡은 좋은가?

나는 공연할 때, 내가 유리 벽 안에 전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왜, 연주할 때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소통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 에너지가 너무 잘 전해지는 사람들 말이다. 근데 나는 그쪽이 아니다. 나는 유리 벽 안에서 최대한 다 해줄 테니 그저 보라는 식으로 공연한다. 밴드와 눈이 마주쳐도 내가 먼저 고개를 돌릴 정도니까. 근데 마정채와 함께 할 때는 실시간으로 에너지 교감이 가능하다. 편하게 시선을 맞출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료라고 생각한다. 그들 덕분에 이런 즐거움을 처음 느꼈다. 언젠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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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오늘은 내가 요리사”에서 주연을 맡았다.

연기에 대한 로망이 있다. 편집으로 부족한 연기를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집중하는 건 잘한다고 믿었으니까. 근데 영화는 내가 건드릴 영역이 아니었다. 물론, 감독님이 나를 생각하며 만든 캐릭터라기에 받은 배역이긴 하지만, 너무 어려웠다. 매 순간이 미안하고, 어렵고. 하하. 큰 추억과 경험을 남겼다. 다시는 눈독들이지 말자는 교훈도 얻었다.

 

최근 인상 깊게 본 영화는 무엇인가.

“더 랍스터(The Lobster)”. 콜린 패럴(Colin Farrell)이 출연하고 그리스 출신 감독이 찍은 영화다. 나는 예술 영화는 잘 못 본다. 진중하게 음악을 해서 그런지 다른 취미는 편하게 감상하는 게 좋다. 때려 부수고 단순한 것들. 근데 어쩌다가 좋은 영화를 봤을 때 충격이 오래가더라. 이 영화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뮤지컬 음악도 담당하지 않았나. 그때 경험이 라이브 비주얼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뮤지컬 무대 미술을 보면서 배운 게 많다. 스케일이 다르다 보니, 뮤지션 개인적으로 실현하기엔 너무 어려운 얘기긴 하다. 다만 어떤 식으로 구현하는지 먼발치에서라도 봤기에 여러 의견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엔 뮤지션 시각 내에서만 아이디어가 나왔다면, 이제는 그 밖에서 바라볼 줄도 알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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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즈데이 프로젝트’에서는 공연마다 악기를 바꾸기도 했다.

미친 짓이었다. 너무 아쉬운 건 역사에 남는 공연이었고, 정말 열심히 찍었는데 영상만 남고 녹음된 소스가 들어있는 하드디스크가 날아갔다. 여하튼 너무 의미 있는 시도였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불가능은 없다고 느꼈다. 어떤 편성에서도 원하는 사운드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그냥 너무 재미있었다.

 

어떻게 시작한 프로젝트인가.

‘웬즈데이 프로젝트’라는 5회성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다. 시리즈 공연도 처음이었는데, 전에 하던 사람이 매회 게스트를 다르게 진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악기를 바꾸겠다고 툭 뱉었지. 정작 주변 사람들은 내가 무슨 꿍꿍이가 있으니까 이런 말을 뱉었을 거라고 자연스럽게 믿은 것 같다. 근데 난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하. 그래서 그때부터 편곡을 시작했다. 그때 했던 게 1회는 베이스, 2회는 오르간, 3회에는 관악기, 4회는 스트링, 5회에는 피아노와 라틴 퍼커션을 사용했다. 뒤로 갈수록 에너지를 풀어주는 형태가 되었다. 베이스 두 개에 보컬 나 한 명이면 아무도 화성을 담당하지 않기에 극도의 긴장 상태가 된다. 회가 거듭될 때마다 화성이 생긴다. 혹시라도 5회 공연에 모두 오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싶었다.

 

같은 곡도 5번 연습해야 하는 것 아닌가?

5회 모두 레퍼토리가 똑같았다. 10곡 정도를 했는데, 다 다른 편곡을 했다. 그러니까 나는 50곡의 연습을 해야 했던 거지. 근데 너무 재밌었다. 매회 망했다고 하면서 한 회 한 회 어떻게든 성공해냈다. 연주자들도 처음에는 ‘무슨 개소리야’ 하는 식이다가 마지막엔 서로 부둥켜안고 자축했다. 당시 무대는 너무 긴장된 상태라 큰 소리를 안 내도 에너지가 정말 많이 소요됐다. 또 하나 염두에 둔 부분은 디지털의 확장을 최소화시키는 것이었다. 마이킹을 정말 최소한, 뒷자리까지만 들릴 정도로 했다. 앞의 관객들은 내 생소리만 들었을 거다. 그러다 보니 의자 한 번만 움직여도 엄청난 방해가 되니 모두 굉장히 긴장한 상태로 공연이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내 음악에 관해서는 많이 이야기한 것 같다. 다음 행보를 기대해달라는 상투적인 말로 끝내겠다.

 

진행 / 글 ㅣ 심은보
사진 ㅣ 백윤범, 황성민
협조 ㅣ FILA Origin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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